자살 살림지식총서 222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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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하나. 스칸디나비아에 거주하는 햄스터같이 생긴 쥐 레밍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을 한다.
하나. 세계적으로(국내포함) 유명한 사람들 중 자살한 이들이 많다.
-배우 이은주, 음악인 커트코베인, 배우 장국영, 철학자 들뢰즈, 가수 김광석, 서지원 등등 
하나.  누구나 한번쯤 자살 충동을 느낀 적 있다. 정말?
하나. 2002년도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죽은 사람들은 총 8,631명으로 사망자 100명당 4명이라고 한다.


  많은 목숨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지만, 또 심리학, 철학, 사회학 등등의 분야에서 자살에 대해 여러각도에서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내고 미리 방지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자살자는 존재한다. 왜, 어떤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일까. 수 억개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를 만나 어렵게 수정되고, 열 달을 기다려 어렵게 세상의 빛을 보지만 그 소중한 목숨을 포기하는건 한 순간이다. 쉽다고는 말 못한다. 어렵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무섭다.

  자살은 죽음의 한 종류이다. 죽음을 말함에 있어 자살을 말하지 않는 것은, 일부의 죽음만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자살은 쉽게 말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남에 대해서 말할 수 없듯 죽음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태어남과 죽음은 모든 인간이 한번씩만 경험하는 것이고, 태어나기 전 그리고 죽은 후 우리는 그 경험을 풀어놓을 수 없다. 쉴러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한번, 죽음도 한번, 태어남도 한번, 소멸도 한번뿐이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기에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고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사색과 고찰은 인간의 '이성'의 영역으로 죽음을 들여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쓴이는 망설인다. 죽음을 고찰하는 것에 대해서.

  이 책은 죽음, 그 중에서도 자살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어떤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의식하지 않고 지내던 죽음에 대해, 자살에 대해 의식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뿐이다. 가까이에서 벌어지지만 무심코 지나가는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 자살에 대한 해석

  예로부터 자살은 금기의 영역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후기까지 자살은 신성에 대한 모독이며, 인간에 대한 범죄이며 자기자신에 대한 살인이므로 죄악으로 여겨졌으며, 18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자살'이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자살을 희생으로 간주하여 하나의 병리적 현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도, 자살을 선택의 문제로 보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에 있어서 자살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철학자와 정치가에 한해서였다. 황제에게서 총애를 잃어버린, 신임을 받지 못하는 정치가의 경우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도리를 다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이마신 것은 방법적 차원에서 스스로 마신 것이니 자살이지만, 국가에 의해 강제로 명령된 경우이니 순수한 자살로 보기 어렵다.

  19세기의 자살에 대한 인식은 크게 두 가지로 양분된다. 하나는 프로이드가 대표적인 경우로, 자살을 광기나 우울증, 신경쇠약, 자아분열과 같은 의학적, 심리학적 병리현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뒤르켐의 경우로, 자살은 사회적 현상이며, 하나의 문화권 안에서 발생하는 집합적 증후로 간주하는 경우이다. 순수하게 개인에게 국한된 현상이냐 아니면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냐, 이렇게 두 가지 해석이 존재했다. 나는 그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라고 말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시대에 따라, 개인의 환경에 따라, 자살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쳐서 자살한 경우야 프로이드식의 해설에 더 적합하겠지만, 청백리로 알려졌던 인물이 한 순간의 작은 죄악으로 자살을 택하는 경우 이는 프로이드보다는 뒤르켐의 해석을 따라야하지 않을까.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사망자 100명당 4명의 자살자는 대개 사회적 차원에서의 자살이 아닐까. 돈이 없고, 백도 없고, 살기 막막하고, 에라 모르겠다 세상아 같이 죽자, 자식 내던지고, 아내 살해하고, 나는 불태우고. 뒤르켐은 자살의 진짜 원인은 개인이 사회에 통합되는 정도와 그가 정신적으로 수행하는 적응하려는 행동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도시보다 시골에서, 카톨릭보다 신교사회에서, 전통적 가족구조에서보다 이혼율이 높은 가족구조에서 자살율은 높게 나타난다.

  - 자살은 권리인가, 불가피한 선택인가

   자살에 관해서 많은 문제들이 얽혀있다. 위암 말기환자이고 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죽음에 점점 다가가고 있고, 죽음이 결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러나 너무나 고통스럽다. 고통을 견디며 죽어가는 것 보다 좀더 인간적으로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 허락해달라. 안락사의 문제이다.

  안락사에 관한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의 목숨은 하느님이 주신거다. 어떻게 감히 인간인 너 따위가 죽음을 선택하려 드느냐는 기독교식의 논리에서 내가 나의 생사를 선택하겠다는데 남이 왜 참견이냐고 말하는 죽음의 권리를 내세우는 사람까지. 그 중간에는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의견들이 놓여있다. 안락사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순수하게 개인의 영역에 던져주지 못하는 것은, 안락사와 관련되어 사회적 범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며, 허가했을 때 사람들이 더 쉽게 어려운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허가하지 않자니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조차 주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보아도 자살에 대해서 모두 의견이 가지각색이었다.

  "자살이란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빚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자 그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에, 그리고 만일 이것이 의도적이고 자유롭게 영속적으로 행해진다면 오직 신에게만 속하는 권한을 사취하는 신에 대한 범죄이므로 자살은 치명적인 죄악으로 간주해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방법이 죽음 말고는 다른 것이 없을 때 이 세계를 떠날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오직 철학자에게만 속하는 지고의 존엄이다" (세네카)

  "만일 자살이 허용된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 만일 모든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자살 또한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것이 바로 윤리의 본질에 관한 문제다. 자살은 말하자면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살을 알아보려고 시도하는 것은 수증기의 본질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수은 증기를 만져보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중략) 그런데 자살은 그 자체로서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비트겐슈타인)

  형제가 셋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을 보았던 비트겐슈타인조차도 자살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하게 답변하고 있다. 자살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문제는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끝없는 논쟁의 영역에 놓여있다. 어릴적 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실행에 옮겨본 적은 없다.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내가 자살을 하려고 한 이유는 내가 너무나 힘들어서가 아니라 나를 억압하는 부모님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죽으면 부모님이 슬퍼하겠지, 하는 생각에 자살을 생각해봤으나 단지 '생각'의 차원이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쉽게 비난한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았으면서. 그 사람이 왜 그런 결단을 내렸는지 이해해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 혹은 그녀를 비난한다. 아직까지 자살은 죄악이라는 의식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살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적어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을 존중해줄 필요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키에르케고어의 말은 되새겨 볼만하지 않을까.

  "각자가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곳에서 (타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그를 위해 걱정해 주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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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6-0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도 있었네요. 재미있겠네 ...
살림 지식 총서 중에는 꽤 알찬 책들이 제법 있더라구요. :-)

마늘빵 2006-06-0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살림지식총서 제가 책 주문할 때 가격 맞춰 주문하려고 종종 집어넣어요. 괜찮은 책 많아요. <르 몽드> 좋았고, <자살>도 좋고요.

가넷 2006-06-0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에서 몇권은 30% 할인 하더군요..-_-;;;(이 책말구요. 흠.)30%할인 하는 책 몇권은 교보에서... 지를려고 하는 중이여요..ㅎㅎ 르 몽드랑, 뉴에이지, 커피이야기 2004년도에 나온 몇권은 30%하던...^^ 흠.;

마늘빵 2006-06-0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가요? 이 싼 값에 더 할인해요? ^^ ㅎㅎ
전 그냥 다른 책 주문할 때 끼워서 하나씩 천천히 볼래요.

비로그인 2006-06-08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미셸 푸코가 자살했어요? 들뢰즈가 자살하고 푸코는 에이즈로 죽지 않았나요?

마늘빵 2006-06-08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자꾸때리다님/ 들뢰즈랑 푸코 착각한거 맞습니다. 얼른 고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