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주류와 비주류라는 말 자체가 이미 개봉된 영화들에 대한 이분법적 시선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영화들을 지칭해야 할 좀더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겠다. 인디영화라고 하면 되려나. 아니면 예술영화? 인디영화와 예술영화가 의미하는 바가 뭐더냐. 그리하여 나는 '이런 영화'들을 지칭하는데 있어 좀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고, 결국 짱구를 굴린 끝에 '비주류'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주류 영화를 보는데 요새 재미들린 나는 이 영화의 감독과 시나리오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이 오로지 '강혜정'이라는 이제는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뜬 한 여배우의 이름을 보고서 골랐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고, 영화 포스터가 담고 있는 저 두장의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래 사진은 영화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렸건만)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그저 그것으로 보여주고 던져놓은 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면 받아들이겠다. 때로는 허무함도 영화의 매력이다. 하지만  "강혜정이 합류한 초특급 범 아시아 프로젝트"라는 문구는 좀 오버였다. 강혜정이라는 스타(?)를 내세워 관객몰이를 좀 해보겠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영화를 대단하게 보이게끔 하려는 의도였을까. 되려 지나친 기대는 관객을 배신하는 법이다. 아무리 거창하고 화려한 문구라 할지라도 영화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역효과를 부를 밖에. 나쁘진 않았지만 뭔가 이렇게 확 끌어당기는 매력도 없는 영화였다.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 - 태국
  강혜정 - 한국
  아사노 타다노부 - 일본
  크리스토퍼 도일 - 호주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호주출신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을 제외한다면 아시아의 세 나라의 합작이라고 부를 만 하다. 각국의 유명인사 하나씩 참여했으니. 감독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그냥 제끼자.



* 아사노 타다노부. 극중 쿄지. 허름한 차림새지만 노숙자로 보기엔 뭔가 있어보인다.



* 거칠고 짧게 친 머리와 끈나시가 참 인상적이다. 햇빛 가득한 저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무언가를 응시하며 사색에 잠긴 이 여자의 모습이 아름답구나.

  영화에서 가장 비중이 큰 아사노 타다노부는 <자토이치>에서 핫토리 겐노스케 역을맡은 바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국내 개봉된 영화에서 알려진 것은 아마도 <자토이치>가 아닐까 생각. 전형적인 일본 사무라이의 외모를 갖춘 그는 조용하고 감성적일 듯 보이지만 어딘지 반항적인 구석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암흑가에서 활동하는 조용한 반체제인사라고 하면 딱 일듯. 내면과 외면이 따로 노는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감성적이고 여리지만 냉혹하고 차가운 이미지. 양면을 모두 갖춘 배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물결>에서 어느 한 식당의 주방장으로 일하며 보스의 아내와 놀아나다 보스의 지시로 여인을 살해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여자만 죽인다고 모든 일이 해결됐다고 끝나진 않는다. '휴가'라고 푸켓으로 떠나지만 온갖 재수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살해당할 위험에 처해있다. 휴가길에 만난 당돌하고 황당한 애 엄마 노이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뒤 까무러칠뻔했다. 

  비록 불륜이었지만 사랑했던 한 여인을 살해하고 휴가를 떠나는 기분은 썩 좋진 않을 터이다. 게다가 그것으로 끝인줄 알았건만 보스는 나까지 살해하기 위해 마카오가 아닌 푸켓으로 나를 보냈고, 그곳에 또다른 심복을 깔아두었던 것이다. 아 이 밀려오는 복수심. 일상에서 벌어지는 그의 멍청하고 어리버리한 행동과 어울리지 않게 그도 복수심을 가지고 있다. 기필코 성공하리라 죽을 위험에서 벗어나 달려왔건만 - 그냥 숨어지냈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 그를 죽이지 못했다. 애 때문에. 애 엄마 때문에.

  "너무나 행복해보여서 죽일 수 없었다.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아 이런 멍청한. 남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희생하는 이런 멍청한. 순진한건지 멍청한건지. 역시 그는 처음의 그 이미지 그대로 삶을 마감한다. 여행길의 애엄마 노이가 그를 향해 던졌던 "죽는게 두렵지 않아요?" 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남편이 있는 여자와 연인이 되지만 그녀를 죽일 수 밖에 없는, 또 그 남편의 또다른 정부와의 행복한 모습 때문에 결국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남자의 이야기. <보이지 않는 물결>은 그런 영화이다. 아름답지만 기묘한 황당한 이야기가 조용히 밀려와 영혼을 적신다. 



하나. 강혜정은 생각만큼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녀의 특유의 이미지가 영화를 더 빛나게 했다고 생각하지만 억지스럽게 정확한 발음을 내려한 그녀의 대사 때문에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보다 그녀의 발음을 신경써야만 했다. 그러나 들어도 그게 제대로 된 발음인지 아닌지는 난 모른다. 하지만 확실히 연기하는 그녀가 영어 대사 발음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둘.   영화 중간중간 별스럽지 않은 장면에서의 툭툭 내뱉는 유머러스한 장면들은 영화를 지나치게 밋밋하게 하거나 지루하게 하지 않기 위한 장치로 보였다. 한편으로는 또 알 수 없지만 죽음의 운명에 놓인 쿄지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도 든다.

셋.  영화의 장면은 너무나 멋있었다. 이뻤다. 재생을 멈추고 정지시켜 각각의 장면을 좀더 감상하고 싶을 만큼. 크리스토퍼 도일 이라는 촬영 감독은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력을 뒷조사해보고 아! 하는 감탄사는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퍼햅스 러브> <2046> <영웅> <해피 투게더> <타락천사> <중경삼림><동사서독> 등의 촬영일지만을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들 중 하나라도 봤다면 그가 창조해낸 아름다운 영상미를 기억에서 지울 수 없으리라.
(아래사진)



* 적절한 조명과 시멘트 자욱이 그대로 드러난 벽, 그리고 벽에 붙여진 삼류 포스터(?). 벽에 기대 키스를 하고 더듬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새빨간 원피스는 애정행각의 비밀과 스릴을 나타낸다.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는 스릴 넘치는 사랑. 그러나 그때뿐. 불륜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영상이 참으로 아름답다.

 

* 새까만 밤, 여러개의 작은 전구들이 발산하는 빛의 아름다움, 낡은 빠알간 통통배 위에 한 여자, 한 남자.
   구도도 빛도 시선도 두 사람의 헤어스타일과 차림새도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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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 2006-06-0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이지 않는 물결>에 대한 댓글로 답방인사를 대신해도 되겠죠? ^^
전 아사노 타다노부라는 배우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더랬어요. 펜엑 감독의 전작에도 출연했었는데, 무심한 얼굴 뒤에 숨겨진 수많은 사연들이 그대로 온몸으로 묻어져나오는게 참 좋더라구요,,,ㅎㅎ 영상도 정말 멋졌구요...^^

마늘빵 2006-06-0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는 이 배우 처음 알게 됐지만 참 맘에 들었습니다. 얼굴 안에 참 다양한 모습이 숨어있더군요. 크리스토퍼 도일의 영상미도 참 좋았습니다. ^^ 앞으로 자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