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어제 또 홀로 영화를 보고 왔더랬다. 집근처인 용산 CGV로 갔더니만 웬 사람들이 이리 바글바글 거리는지 도대체 몇시간을 기다려 영화를 봐야하는지 감이 안와서 즉시 지하철을 타고 나의 사랑스러운 종로로 직행. 역시 주말엔 종로야. 종로로 와야 편하게 영화를 선택할 수가 있어. 주중과 주말의 영화관람료에 차이도 없고, 똑같이 티티엘 할인하고, 단성사 카드로 적립하면 그야 말로 쵝오. 단 같이 보는 이가 없다는 것이 흠.

  도착시간 오후 4시. 다섯시엔 <국경의 남쪽>이 있었고, 다섯시 이십분엔 <콘스탄틴 가드너>가 있었다.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두 영화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분명 <국경의 남쪽>은 사랑영화인지라 커플들이 바글바글한 틈 속에서 봐야할 터이고, <콘스탄틴 가드너>는 20분 더 기다려야하긴 하지만 <국경의 남쪽>보다는 커플들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결국 커플 틈 속에서 고통스럽게 영화를 보는 것을 택했다.  한 시간이 남아 가지고 있던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 <도마뱀>을 읽고, 입장.  극장 뒷좌석에 앉아 앞문으로 커플들이 입장하는 것을 관찰. 그래 즐거운 시간 보내렴.



* 물에 빠질 위험을 감수하고, 북한군에게 총살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두만강 건너 한국땅에 왔다.
  이제 우리는 돌아갈 수 없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한국에서 발붙이고 살아가는 것 뿐이다.



*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으며 데이트를 하는 선호와 연화.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날만 있었음 얼마나 좋을까.

  아 가슴뭉클한 슬픈 사랑 영화. '국경의 남쪽'은 남한을 의미한다. 북한에서 전쟁시 공을 세운 돌아가신 할아버지로 인해 평양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던 한 가족에게 할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오기 시작했다. 뭐냐. 할아버지는 남한에서 내노라하는 자본가였던 것이다. 헉. 정부가 눈치를 챈 듯 하다. 가족회의 결과 도망치기로 결정. 결국 온 가족이 가볍게 짐을 싸들고 어렵게 남한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으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없고나. 남한의 삼촌들은 우리를 쏘아보고, 한번 마주친 이후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북한에 사랑하는 여자 이연화를 두고 온 김선호. 그녀를 향한 사랑은 변함없었으나 현실은 그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사기당하고,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배달, 나이트 삐끼 등 안해본 것이 없는 그는 결국 누나로부터 그녀가 결혼했단 이야기를 듣고. 결국 남한에서 만난 연상녀 서경주와 결혼을 한다.

 어느날 250명 가량의 탈북자가 남한으로 도피하는 데 성공했단 뉴스가 들려온다. 그리고 연화를 만난다. 그를 위해 다리에 총을 맞아가며 두만강을 건너 남한까지 도착한 연화를 만나 선호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결혼했지만 나 결혼했어라고 말 한마디 못하는 그는 연화와 놀이공원도 가고, 햄버거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들통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를 두고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
    되돌아갈수도 없습니다. 
   세상엔 넘을 수 없는 국경도 있다는걸 알았습니다. "

  "그여자 젖가슴이 만져딥디까? 그여자 젖가슴이 만져지더냐고요!!"

  그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만을 가지고 찾아온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연화는 선호와의 하룻밤을 보내고 조용히 몰래 사라진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우연히 선호는 연화의 결혼소식을 접하게 된다.

  나라면 어땠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그녀가 결혼했다는 거짓소문을 듣고, 포기한 채 그녀를 가슴에 묻어둔 채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 그러나 이미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혼자 슬픈 사랑 영화를 본다는 것은 둘이 함께 보는 것보다 더 나은지도 모른다.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또다른 맛이 있다. 컴컴해진 극장안에서 소리내지 않고 눈물 뚝뚝 흘리며 영화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내가 이상한 놈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뭐 어때. 솔직하게 감정 표현하고 좋잖아. 아무도 날 보지 않는다. 난 영화 속 선호가 되어 두 여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마음과 동화된다.

  분단은 슬픈 사랑을 낳았고, 청년은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을 괴로워했으며,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평생 그를, 그녀를 가슴 속에 묻어둔 채로 살아가야 했다. 사랑하기에 모든 것들 극복할 수 있다는 명제는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들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

  분단의 현실을 소재로 삼아 만든 또 하나의 감동 휴먼 드라마. <공동경비구역> <태극기를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에 이어 분단을 소재로 삼은 네번째 감동 드라마다. 한번은 남과 북의 경계선에서 벌어지는 군인들의 우정을, 한번은 형제애를, 한번은 대열에서 뒤떨어진 남북 군인과 순박한 산골마을 사람들의 정을, 그리고 이번엔 분단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만 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나는 오고 너는 남았다. 너는 왔고 나는 너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뜨거운 눈물 뚝뚝 떨구며 봤던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

 * 영화 속 차승원이 사랑하는 북한여자로 등장하는 조이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뭐 별로 이쁜거 같지도 않고 매력도 없어보이지만 그게 매력인 여자.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차승원이 사랑고백을 못하자 답답해하며 자신이 차승원의 속마음을 대신 말해버리는 여자. 당차고 솔직한 그녀가 좋다. 강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여리다. 사랑 앞에 무너져버리는 여자다.  

 

* 아이 이쁘다. 순박하니 산골 처녀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성격은 안그렇다.
   당차고 할말 다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표현하는 그녀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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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07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우를 뚫고 영화를 보셨군요. 난 돈주고 나오라고 해도 안갈텐데.저도 조이진 좋아하는데 요즘 성형했다는 소문이 돌데요.

마늘빵 2006-05-07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 네 폭우를 뚫고 기여이 영화보고 왔어요. 비오는데도 사람 많더라구요. 전 조이진 전에 어디 나왔는지 몰라서 성형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특별히 눈에 띄는 '연예인'형 얼굴은 아니라는 생각.

히피드림~ 2006-05-08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부터 이 영화 궁금했지만, 눈물을 흘리며 보셨다는 아프락사스님 글을 보니 더 보고 싶은데요.^^

마늘빵 2006-05-0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머 혼자 청승맞게 그런 짓 잘합니다. -_-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