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 제목을 잘못 알고 있었다. 타임 투 러브로. 그리고 그 다음엔 타임 투 리브인데 그 '리브'가 'live'인 줄 알았다. 영어제목을 먼저 보지 않고 한글 제목만 얼핏 봤기 때문에 일어난 오해. 그러니 난 이 영화가 처음에 멜로인줄 알았고, 그 다음엔 죽음에 관한 영화인줄 알긴 했지만 leave 를 live 로 착각했다. 결과적으로 사랑이야기도 맞고, 죽음이야기도 맞다. 

  7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우리나라의 영화를 포함하여 최근의 영화들은 지나치게 러닝타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꼭 필요한 장면이라면 모르지만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하나의 유행처럼 러닝타임이 기본 두 시간을 훌쩍 넘긴다. <타임 투 리브>는 최근의 추세를 거스른다. 7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은 영화를 접하지 않은 이들에겐 아니 무슨 애니메이션이야, 라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아직 없다. 왜냐면 제목이 애니메이션 같지가 않잖아) 

  우리나라의 박찬욱 감독이 복수 3부작을 냈다면, 프랑소와 오종 감독은 죽음 3부작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미 2000년 <사랑의 추억>을 통해 죽음 1부를 내놓았고, 이번에 개봉한 <타임 투 리브>는 그의 죽음 2부작이라 한다. 감독의 이름도 처음 들었고, 그가 죽음 시리즈를 다루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이미 본 영화 <타임 투 리브>가 죽음 3부작에 들어간단 사실도 처음 알았다. 미쳐 보지 못한, 개봉했었는지 안했었는지 모르지만, 1부작을 찾아 보고 싶다. 

  제목에 관한 오해를 앞서 밝혔듯 이 영화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 채 본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꽤나 인상적이었고, 가슴에 스며들었으며,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잠시 더 머물며 영화가 남긴 여운을 즐겼다. 나 뿐 아니라 거기에 앉아있던 다수의 관객들이 그러했다. 물론 극장 측에서 불을 환히 켜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 그의 죽음을 유일하게 말했던 할머니. 그녀는 로맹에게 말했다. "오늘 밤 너랑 같이 죽고 싶다."

 

* 로맹. 마지막으로 나의 가족들, 그리고 사람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젊고 능력있는 사진작가 로맹은 어느날 갑자기 쓰러진 뒤 의사로부터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평균적으로 남아있는 수명은 3개월. 젊고 잘 나가는 그가, 아직도 살 날이 한참 남을 것이라 당연하게 여겼던 그가, 사형선고를 받았으니 그 심정이 어땠을까. 지금 그에게 소중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앞으로 3개월 동안 내가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가, 무엇을 하며 생을 마감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열심히 일하던 회사도 휴직하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주변 사람들을 하나 둘 찾아가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항상 그를 걱정해주시는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고, 아웅다웅 만나기만 하면 다투던 여동생과 그녀의 어린 아이들을 몰래 카메라에 담는다. 여동생과는 전화를 통해 화해를 하고. 사랑한단 말을 전한다.  그가 유일하게 자신의 암선고를 밝힌 이는 할머니. 할머니는 나와 같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분이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사실이다. "오늘 밤 너랑 같이 죽고 싶다." 라던 할머니의 말은 죽음선고로 괴로워하는 로맹에겐 참 고맙다.




* 고속도로 식당 웨이트리스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로맹. 로맹은 그녀를 통해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어느날 고속도로에서 식사를 하던 중 웨이트리스로부터 긴급 제안을 받는다. 남편이 아이를 못낳으니 남편 대신 씨를 제공해달라는. 정자은행을 통해 수정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방법도 있건만 그녀는 왜 그런 방법을 택했을까. 전혀 모르는 낯선 젊은이에게. 하지만 이런 의문을 제기할 여유는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마감하기 전에 나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그는 처음에 거절했지만 다시 찾아와 세 사람은 섹스를 한다(그는 동성애자다). 로맹, 웨이트리스, 그의 남편. 쓰리섬 섹스를 통해 절정에 도달하고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있고, 로맹은 담배를 한 대 문다.

   시간은 흘러 3개월의 끝무렵. 암으로 인한 고통은 멋진 그의 모습을 빼짝 마른 병든 몰골로 만들어놨다. 삼각팬티를 입고 바다에 들어가 마지막 삶의 숨결을 느낀다. 파도치는 물결이 그의 피부를 자극한다. 찰싹찰싹. 이것이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차갑게 속삭이는 바닷물. 모래사장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눕는다.

  살아있다는 건은 어떤 것일까, 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엄마 뱃속에서 세상을 향해 나오는 순간 처음 숨을 들이마시는 것 그것이 살아있다는 것일까. 우리가 숨을 쉬고 음식을 먹으며 생을 연명해나가는 것. 그것이 살아있다는 것일까. 삶이란 무엇일까. 살아있다는 것은 삶과 어떻게 다를까. 영화는 매우 짧지만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살아있음, 죽음, 삶, 관계, 사랑 등. 그에게 남은 3개월은 그가 살아온 기간에 비하면, 또 그가 앞으로 살 날에 비하면 매우 짧지만 그는 3개월 동안 '살아있었다'. 죽음 선고를 받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홀로 남은 인생을 산다는 것은 매우 고독할 것만 같다. 왜 그랬을까.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이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지 않도록 숨겼던 것일까. 아니면 남은 인생을 혼자서 즐기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죽은 다음 제 3자를 통해 그의 죽음을 접해야 하는 가족들은 어떤 심정일까. 그는 때로 침대에 누워 아파하기도 하고, 홀로있음에 슬퍼하기도 하며 운다. 매우 조용하고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담담한 나머지 강렬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눈물을 자아내진 않는다. 하지만 가슴 먹먹하게 만든다. 차라리 죽음 앞에 엉엉 울어버렸으면 좋겠건만 그는 절대 소리내어 크게 울지 않는다. 나의 죽음을 모든 이에게 알리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삶의 끝을 준비할 뿐이다. 죽음 앞에 담담할 이는 아무도 없다. 담담한 듯 보이지만 그것은 더 큰 슬픔을 안고 있다. 가슴 속에 홀로 담아가야할 많은 추억들. 만일 내가 3개월 뒤에 죽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스물 여덟의 창창한 나이에 나는 죽음을 생각진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도 죽음은 닥칠 수 있다. 내가 과음을 하지 않는다고, 담배를 피지 않는다고 해서 암이 나를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 암이 아니더라도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다만 사람의 평균수명을 나의 수명으로 착각하고 있을 뿐.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의 죽음을. 내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언젠가 난니 모레티 감독의 <아들의 방>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 또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아들의 죽음을.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이 아닌 아들의 죽음을 맞이한다. 아들의 싸늘한 시신이 들어있는 관을 손수 닫고 어루만진다.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의 가족의 삶을 일상 속에서 그려낸 영화였다. 죽음을 다루는 감독의 시선과 죽음의 주체와 과정은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인생의 종착역인 죽음에 대해 차분하게 그려냈다. <타임 투 리브>는 아름다운 이별의 모습, 아름다운 죽음의 모습을 그려냈다. 당신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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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 2006-02-12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리뷰 읽다보니 눈물이 나네요.. 아~ 주책.. 눈물 땜에 안보여 사라집니다... 죄송!

마늘빵 2006-02-1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리님. 아. 영화 본 저도 눈물까진 흘리지 않았는데 리뷰보고 눈물 보이시면 어떡해요. 영화 좋습니다. 기회되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