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지음, 박지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그를 접한 것은, 혁명가로서의 그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한 외국 록밴드의 우상으로서였다. 지금은 해체한 Rage against the machine 이라는 유명한 뉴메틀 밴드가 있었다. 이 밴드의 보컬 잭 드라 로차 와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는 체 게바라를 사랑했고, 공연 때면 그의 커다란 사진을 배경으로 삼곤 했다. 그들은 '기계에 대한 분노'라는 그들의 밴드명과도 같이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들에 대해 음악으로서 분노를 표출했다. 미 제국주의에 대해, 자본주의에 대해, 그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전 세계 젊은이들은 그들의 음악을 듣고 열광했다. 심지어 미국의 젊은이들까지도. 현재 활동하고 있는 미국을 가장 심하게 비판하는 미국인으로 '노엄 촘스키'를 꼽곤 한다. 그의 미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과 경멸, 분노는 정말이지 '췩오'다. 미국을 비판하는 지성인으로 촘스키가 있었다면 불과 몇년전만 해도, 미국을 비판하는 뮤지션으로는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있었다. 탐 모렐로, 하버드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국회의원 보좌관으로도 일했던 그가 때려치고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자 밴드를 조직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을 통해 접하게 된 '체 게바라' 라는 이름. 아니 그가 누군데 이렇게 많은 이들이 숭배하고 열광을 하는거지?!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그래서 그를 뒷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쿠바의 유명한 혁명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2000년 3월, <체 게바라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체에 대한 나의 의문을 충분히 해소해주었다. 이후 체 게바라 열풍이 불면서 젊은이들은 너나 나나 그의 사진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평전은 베스트셀러에 안착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런 열풍이 부는거지? 솔직히 이해가 안됐다. 그를 알게 되고 그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와 같은 과잉 숭배 현상은 당황스러웠다. 나 같은 이들이 많아진건가? 그 뒤로 그에 관한 책이 물밀듯 쏟아진 것은 당연지사. 왜냐면 흥행코드였으므로. 내면 왠만큼 수익은 보장된다. 그러니 일단 내고보자.

  <먼 저편>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카스트로의 쿠바> <체 게바라, 인간의 존엄을 묻다> <체 게바라와 쿠바혁명> <체의 마지막 일기> <체 게바라 핸드북> <체 게바라가 살아 한국에 온다면> <체 - 한 혁명가의 초상> 심지어 <소설 체 게바라>까지. 엄청나다. 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나 많은 책들이 나올 수 있다는 건, 마르크스 이후 처음이 아닐까 싶다.

 지금 소개하는  <체 게바라 자서전>은 체 게바라 흥행시기에 맞춰 나온 기획상품은 아니다. 출판일이 2005년 겨울이니 적어도 시기에 맞춰 팔아먹기 위해 나온 책은 아니다. 내가 그에 관한 책을 접하는 건 2000년에 읽은 <체 게바라 평전> 과 더불어 이 책이 두번째다. 앞서 읽은 책은 평전이었고, 이 책은 자서전이란 이름으로 나왔다. 평전과 자서전은 어떻게 다른가?

  '평전'이라는 것은 비평을 겸한 전기를 말한다. '자서전'은 자기가 쓴 자기의 전기를 말한다. 어떤 한 인물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이야기의 화자가 다른 것이다. 평전은 남이 그 사람의 이야기를, 자서전은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살아생전 자서전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남긴 수많은 편지글과 칼럼, 시는 존재하지만 자서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자서전이 출간될 수가 있는가. 말이 자서전이지 후대의 사람들이 그가 남긴 이런저런 글들을 모아 만들어 짜깁기해 낸 책이 자서전이다. 비폭력 불복종 운동으로 유명한 간디의 경우도 자서전을 쓰지 않았지만 <간디 자서전>이라는 책이 있듯이 말이다.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의 삶'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체 게바라의 자서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1928년 6월 14일에 태어나 1967년 10월 9일의 날짜로 생을 마감한 이 젊은 혁명가 체 게바라. 그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의 그의 나이는 39살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한창 사회생활을 할 나이다. 돈 좀 모아 인생을 즐길 나이다. 하지만 그 나이에 그는 일찌감치 생을 마감했다. 아르헨티나 인이면서 쿠바 혁명가로 이름을 날린 체 게바라.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대를 다니던 대학생이었다. 친구와 함께 떠난 여행길에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본래 계획은 쿠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거쳐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행길에 보게 된 부조리한 사건들. 그는 과테말라 혁명에 참가했다 멕시코로 망명, 그곳에서 현재의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게 된다. 그를 만난 뒤, 그의 제안으로 쿠바의 혁명 선두주자로 나선다. 쿠바혁명은 성공했고, 그는 그곳에서 젊은 나이에 중앙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고생한 만큼 명예도 누렸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명예가 아니었다. 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뒷작업일 뿐. 그는 혁명이 자리잡았다고 생각할 즈음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혁명길에 오른다. 쿠바의 혁명이 목표가 아니라, 그는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나아가 세계의 혁명을 꿈꾸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그는 가슴 속에 불가능한 세계 혁명의 꿈을 지닌 채, 리얼리스트가 되어 혁명길에 오른다. 세계혁명의 꿈은 정말 꿈에 불과했다. 볼리비아에서 그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 사살당한다. 포로는 사살할 수 없다는 제네바 협정을 깨면서 그는 볼리비아 정부에 의해 죽었다. 그의 유해는 불과 10년도 안된 시기, 1997년에 비로소 쿠바로 오게 된다.

  <체 게바라 자서전>은 그가 남겨놓은 수많은 글들을 정리해서 묶어놓은 책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편지글과 칼럼과 인터뷰와 시들을 짜깁기해 낸 자료집에 불과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를 접할 수 있는건 다행인지도 모른다. 자서전은 애초 없었다. 그가 남긴 글 묶음이 자서전을 대신할 뿐이다. 친구에게 쓴 편지, 어머니에게 쓴 편지, 이모에게, 죽어간 동료에게 쓴 편지, 그리고 혁명을 역설한 글, 기자와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생생한 그의 친필 편지 사진도 실려있다. 사진도 있다. 그는 혁명가이기 전에 사진작가이기도 했다. 사진작가로 먹고 살았고, 사진찍기를 좋아했다.  자서전의 제 역할을 해주지는 못하지만 그의 수많은 자료를 한데 묶어놨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책이다.

  어쩌면 체 게바라는 실제에 비해 지나치게 숭배받는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미국의 젊은이들 조차도 체 게바라에 열광하는가. 그것은 마르크스가 죽은지 오래된 지금에서도 마르크스가 주목받는 이유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맑시즘을 토대로한 舊 소련의 혁명은 실패했다. 그리고 체 게바라의 쿠바의 혁명은 성공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세계의 혁명은 실패했다. 혁명은 모두 실패했지만 마르크스와 체 게바라, 두 사람은 현실에서 직접 행동하며 자신이 꿈꾸는 혁명을 이뤄보려 노력했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보여주었다. 혁명의 성공여부를 떠나, 그들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은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열정과 이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그들이 주목받는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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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1-27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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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1-2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를 본받는 건 어렵겠지요. 그를 좋아하는 것만으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될까요.......................

마늘빵 2006-01-2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정답 : 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