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대한 수식어들이 삐까뻔쩍하다.   "일본 <책의 잡지>가 선정한 '2004년 베스트셀러 10' 1위" ,"2005년 제 2회 서점대상 1위 선정" ,"제26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 수상"(이상 일본),  "2005년 올해의 청소년 도서 120선"(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대한출판문화협회)

 사실 어떤 작가가 썼는지,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읽기 시작한 책이다. 작년 연말 이벤트 상품으로 올라온 책이며, 이 책과 함께 끼워주는 <연애소설>이라는 책도 괜찮을 듯 싶어 무턱대고 선택했다. 본래 소설을 많이 안읽었으나 소설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고, 또 우리나라 소설을 접하기 전에 일본 소설에 맛을 느낀 탓에 일본 작가들을 하나 둘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온다 리쿠라는 일본작가는 그의 프로필에 의하면, 미스터리, 판타지, SF, 호러물 등 장르에 구애를 받지 않고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다. 이 소설 <밤의 피크닉>은 앞서 언급한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으며,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고 부르면 딱 좋을까 싶다.

  소설의 제목 '밤의 피크닉'은 하룻밤 동안 떠나는 여행길을 의미한다. 흠. 산행이라고 하면 될까.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학창시절을 마감하는 의미로, 수학여행을 대신해서 떠나는 여행길이다. 장장 362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소설은 단 하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고등학생들의 보행제 시작부터 종료되는 순간까지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소설을 읽기 전 처음에는 아니 고딩들이 산행하면서 나누는 잡담을 가지고 무슨 362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써낼 수 있느냐, 는 물음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흠. 그게 바로 소설가의 재주겠지. 24시간 동안, 그것도 커다란 사건이 터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고딩들의 산행길에서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가지고 소설을 풀어가는 것은 오로지 작가의 능력이다.  

 수학여행 대신 생긴 보행제라는 행사로 인해 학생들은 짜증을 낼만도 하다. 산행길의 시작은 들뜨고 긴장된 마음으로 출발했을지 모르나, 한 시간, 두 시간, 마냥 걷기만 하는데 어찌 짜증이 안날소냐. 소설 속 청춘남녀들은 지루하고 끝이 없어 보이는 길을 한 걸음 두 걸음 걸으며, 서서히 각자의 마음 속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누가 누구랑 사귀는 거 같다, 이웃 학교의 어느 여자애가 우리학교 3학년 남자애의 애를 배었다가 낙태했다더라, 그 여자애의 사촌언니가 지금 이 행렬에 있는데 여자애들한테만 사진을 돌리며 아는 걸 캐내고 있다더라, 쟤네둘은 서로 미워하는 거 같은데 또 어찌 보면 좋아하는거 같더라 하는 등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흔히 학생들이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점심 시간에 하는 잡담과도 같은 이야기지만 보행제 라는 행사 속에서 이들은 좀더 진실되고 깊이있는 대화를 나눈다. 지금 내가 풀어놓는 이야기의 제한시간은 없다. 함께 걷는 친구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고, 나는 그들에게 나의 마음 속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누가 주인공이랄 것 없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낯선 일본이름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의 기억을 뒤 흔들어놓고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되게 만들지만, 괜찮다. 그 까짓 이름 모르면 어떠냐, 누가 누군지 모르면 어떠냐,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그들을 모르는 제 3자의 입장으로 들어주면 될 것이 아니냐, 는 마음가짐으로 묵묵히 재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몇명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수많은 인물들 간의 심리적 묘사와 갈등 해소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그래서 굳이 그들을 일일히 기억하지 않고 페이지를 넘겨도 뒷이야기를 읽어나가는데 있어 부담이 없다. 별다른 사건도 없이, 별다른 배경의 전환이랄 것도 없는 산행길, 묵묵히 책장을 넘기듯, 작가는 묵묵히 이야기를 넘긴다. 목표지점 1KM. 보행제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갈등과 경계심은 이제 없다. 그들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친구에 대한 경계심, 미움, 갈등을 모두 해소한다. 사실 그게 목적은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하는 보행제는 그들을,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그저 걷기만 할 뿐인, 아무것도 아닌 행사가 이렇게 특별한 것인줄 몰랐어." 라는 누군가의 대사는 보행제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6-01-1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