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교육의 파시즘 - 노예도덕을 넘어서 프런티어21 1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관심갖고 있는 우리나라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김상봉 교수는 그리스도 신학대학교 교수였다가 대학에서 해직된 이후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으로 지내왔다. 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을 거쳐서 현재 정책위원장으로 있다. 대학에서 해직된 교수가 다시 일거리를 얻기 쉽지 않다는 것이 우리나라 교수사회의 상식일진대 예외적으로 전남대 철학과 교수들의 배려(?)로 지금은 전남대 철학과 교수로 가있다.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굉장히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말만 철학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철학자 상을 보여주고 계신 분이다. 학벌없는 사회 모임을 통해 그간 생각했던 것을 토대로 <학벌사회>라는 두꺼운 책을 낸 그가 이번에는 한국의 중고등학교 도덕교과서를 물고 늘어졌다. 나 역시 도덕,윤리 교과를 가르치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도덕교과서의 문제점을 심각히 느끼고 있었던 바, 그의 책은 매우 반가웠다. 그리고 다 읽고 난 뒤 나는 그의 주장에 100% 동감하는 바이다.

-도덕교과의 변화

  도덕 혹은 윤리 교과 만큼이나 시대의 변화상을 반영하는 교과목은 없을 것이다. 수학, 국어, 영어, 컴퓨터, 기술 등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여러 교과목들이 입시제도에 따라 혹은 시대의 변화상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그 어떤 교과목도 도덕·윤리 교과만큼이나 변화를 겪은 것은 없다. 시대가 변한다고, 입시제도가 변한다고 수학 공식이 바뀌는 것은 아니며, 컴퓨터의 작동원리가 바뀌는 것도 아니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본질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다만 6차 교육 과정에서 7차 교육 과정으로 넘어오면서 수학은 수학Ⅰ과 수학Ⅱ 뿐 아니라 이과와 문과에 따라 기본수학과 실력수학으로 나뉘고, 그것이 또 세분화 되어 각각 수학 10-가, 수학 10-나, 수학 1 등 여러 가지로 분류되었다. 이는 윗세대들이 배워온 수학의 공식이 바뀐 것은 아니며, 다만 종류가 다양화되었을 뿐이라는 점에서 변화했다고 볼 수는 없다. 국어교과 역시 마찬가지로 예전엔 '국어'라는 하나의 과목만 있었지만 점차 '작문', '생활국어', '독서' 등의 다양한 영역들로 세분화되었을 뿐 우리가 사용하는 국어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다른 모든 과목들이 다 그렇지만 유독 도덕·윤리를 포함한 사회과 교과목들에 한해서는 정치적, 시대적 변화상에 따라 교과내용도 변화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 중 도덕교과는 여태 국사나 사회교과보다 그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거 이승만 전 대통령에서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소위 말해 '군사독재'라고 묶을 수 있는 그 시절의 도덕교과는 지금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남과 북으로 나뉘고, 남한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들을 싸잡아 뿔달린 도깨비로 칭하는 교육을 해왔다. 그리하여 우리의 부모님 세대에선 정말 북한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모습 - 뿔달린 도깨비 -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이것이 교육의 효과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부터 현재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민주화된 정부 아래 군사독재의 그늘은 걷혔고, 대외적으로는 오래전부터  표방해왔던 '진짜 민주주의' 시대에 살면서 과거와 같은 황당무계한 반공교육을 받지는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도덕교과서는 과거의 반공주의 도덕교과서와 확연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도덕교과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과거의 그것과 오늘날의 그것은 확실히 다른가?

  군사독재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화 정부를 맞이한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도덕교과서가 기존에 다루고 있던 반공교육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분명 우리네 도덕교육은 과거의 그것과는 분명 달라졌다. 하지만 그 본질은 바뀌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았다. 학생들은 아직도 수업시간에 '나'보다는 '단체'와 '국가'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국가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가, 개인과 공동체가 대립할 때 어떻게 해결해야하는가 등과 같은 부분에서 단체나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그리고 도덕교사인 나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이는 '반공'만 빠졌을 뿐 다른 내용은 군사독재시절의 그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도덕교과의 성격

  도덕을 제외한 중·고등학교에서 다루고 있는 교과목들이 "객관적인 사실 자체로부터 합리적으로 어떤 바람직한 행위규범을 이끌어내려 하지만, 도덕교과는 사실이 아니라 당위를 가르쳐야 하는 교과인 까닭에 문제가 되는 사실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거의 아무 가르침도 주지 못하면서 무슨 말을 하든 습관적으로 반드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인 진술을 늘어놓게 되지만, 막상 사회적 문제의 내용에 대해서는 사회교과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실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나 성찰도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당위규범만을 타율적으로 주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주어지는 당위 규범들이 과거 국민윤리 교육의 잔재 때문에 지극히 수구적이고 때로는 반도덕적이기까지 하다는데 있다."

  우리네 도덕교과서는 기술·가정, 사회, 국사 등의 여러 교과목들이 짬뽕된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그 내용들이 체계이지도 않고, 지식을 전달해줄 만한 꺼리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내용들이 '객관적 지식이나 사실'을 배제한 행위명령만을 담고 있다. '행위명령'은 주어진 어떤 상황과 사건하에서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저렇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해답을 제공함으로써 던져진 상황과 사건에 대한 학생들 개개인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하겠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 행위명령의 기준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국민윤리'교과의 그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앞서 '도덕교과의 변화'에서도 언급했듯 시대는 변화했으되 교과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결론

 우리나라 도덕교과는 외국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나라안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고, 본래의 도덕교육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왔다. 학생의 도덕성 함양을 목표로 해야 할 도덕교과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을 겪으면서 도덕성 함양이 아닌 반공성 함양이 목표가 되었고, 지금은 '반공'부분은 삭제되었지만 그 자리에 '국가'가 들어서 있다.

  도덕교과는 당연히 학생들의 도덕성 함양을 목표로 해야 하고 이에 걸맞는 교육내용과 평가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 그리고 오늘날의 도덕교과는 그것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들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상황 제시를 통해 깊이있고 다양한 사고를 열어줌으로써 학생 개개인 스스로가 나름대로의 '자기도덕성'을 만들어 가야 할 진대, 우리네 도덕교과는 대신 행동명령을 내림으로써 답안을 제시하고 있어 그 중간과정은 당연히 생략되고, 결론 또한 미리 정해주고 있다. 교과서가 내리고 있는 결론은 학생들이 습득하고 따라야 할 행동의  표본이 되며, 그리하지 않을 경우 그에 반하는 행동들은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된다.

  가수 유승준이 병역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갔을 때, 국방부는 그의 국내 출입을 금지시켰으며, 국가는 병역을 거부하고 국적을 포기한 자는 국내에서 이익활동을 할 수 없다고 규칙을 정하였고, 언론들은 선동적 기사를 찍어내 비난여론을 부추겼다. 그러나 과연 유승준의 행동이 잘못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도덕교사인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도덕교과서를 통해 개인보다 국가가 우선이라고 배운 학생들은 당연히 군대를 안가는 유승준과 같은 이들을 비난하고 욕을 할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양심은 무슨 양심, 국가가 정하고 있는 의무를 거부하고 있는 그들을 어떻게 그냥 놔둘 수 있느냐는 식으로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정해져있는 결론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덧붙이며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수업을 할 때마다 교과서의 애국주의, 전체주의적 성격에 강한 반발심을 느낀다. 나부터 거부감을 일으키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왜냐면 나의 거부감은 나 개인의 의견이고, 월급 받고 일하는 나로서는 국가가 만든 교과서대로 수업을 할 수 밖에 없으므로. 교과서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교과서와 반대로 가르침으로써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다만 선생님은 이런 부분은 이렇게 생각한다 라고 다른 의견을 제시해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도덕교과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나뿐 아니라 많은 선생님들이, 많은 학자와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것으로, 분명코 개정되어야 한다. 아니면 폐지하고 철학으로 대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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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1-0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 시험을 본 애들 말하길, 착한 사람이 되서 답을 고르면 도덕 시험 문제 다 틀린데요.-..-a

깐따삐야 2006-01-0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뀐다고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대부분의 교과서가 자유롭게 사고하는 인간이 아니라 회의 없이 복종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데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똑똑한 아이들은 교과서는 학교 시험용으로 공부하고 이외의 시간엔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나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와 같은 체제 비판적인 책들을 읽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합니다. 씁쓸한 풍경이지요...

마늘빵 2006-01-0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니님 / 네. 중학생만 돼도 도덕시험과 도덕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들 하죠.
깐따삐야님 / 자유롭게 사고하고 회의하며 생각하는 인간을 길러야 될 도덕교과서가 국가에 복종하고 충성하는 애국시민을 양성하는데에 치중하고 있어요. 국가 이데올로기죠. 똑똑하고 생각있는 애들은 도덕교과서 내용엔 관심이 없습니다. 정말. 다른 책들을 읽으며 자기사고를 키워나가죠.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나 <1984년> 같은.

이리스 2006-01-01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꾸욱... ^^

코마개 2006-01-0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으로 대체 해야 한다에 한표! 당췌 철학이 없어요.

사마천 2006-01-27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번 공감합니다. 저도 경찰이 시위대 패는 장면이 나오니까 가끔 우리나라 경찰은 나쁜짓을 한다고 했더니 와이프가 반대하더군요. 아이가 헷갈린다고.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학교가 다 맞다고 가르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대학때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학자는 부모와 밥상에서 밥 먹으며 왜 이 사람이 내 부모일까하고 의심도 할 줄알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싫은 교육이 바로 도덕교육입니다.

마늘빵 2006-01-2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 / 네 저 역시 도덕을 가르치지만 가장 맘에 안드는 과목이기도 해요. 내가 생각하는 것과 책이 가르치는 바가 다르니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난감할 때도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럴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그러다가 결국 책의 내용을 가르치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다른 의견을 제시해주곤 하죠. 그치만 학생들이 나중에 도덕시험 공부를 할 땐 제 이야기는 까먹고 교과서의 내용을 '정답'으로 간주하고 공부하겠죠. 철학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철학사의 지식'이 아닌 '철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