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
왕원화 지음, 문현선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매우 두꺼운 소설이긴 하지만 줄거리의 빠른 전개로 인해 그렇게 집중해서 봐야 할 책도, 오래오래 곱씹으며 생각해야 할 책도 아니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와 같은 책들이 문장 하나하나 씹고 되새기며 읽어야하는 데 반해 왕원화의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는 마치 잡지를 보듯이 훑어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소설이 알랭 드 보통의 연애소설보다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의 질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연애소설이 교훈을 줘야 할 의무는 없지만, 우리는 연애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며 나의 사랑을 성찰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소수의 등장인물과 장면의 변화없이 정체된 자리에서 머리 속으로 사랑에 대한 상념을 펼치는 반면, 왕원화는 많은 등장인물과 빠른 사건 전개 속에서 각각의 놓여있는 상황 속에서 뭔가를 느끼도록 해주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대사 한줄에는 별 의미를 찾아볼 수 없지만 그들의 대사가 모이고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지며 메세지를 전달한다.

  "맞아요. 그날밤, 두팡은 날 '메아리 입구' 앞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큰 소리로 '나는너를 사랑해'라고 외쳤어요. 난 아주 기뻤고, 줄곧 메아리를 들었어요."
"그곳의 메아리는 오래가죠?"
"아주 오래. 심지어는 이 가게에서도 메아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리고 오늘까지, 난 줄곧 메아리를 들었죠."
밍홍은 머리를 카운터에 대고 있었는데, 문득 조금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진작부터 존재하지 않았어요. 맞죠?"
안안이 물었다.
한바탕 기나긴 침묵으로 무거운 숨소리마저 메아리가 뒤어 돌아왔다.
"말해봐요. 맞죠?"
"난 몰라요. 난 두팡이 아니니까."
"당신은 당연히 알고 있어요! 당신은 사실 두팡과 마찬가지로...... 당신들은 모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몰라요......"
밍홍은 고개를 떨구었다.
"당신은 나랑 같아요." 안안이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같죠?"
"우린 다 알거든요. 사실 그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말은 진작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걸."
"난 몰라요."
"당신은 당연히 알고 있어요! 린밍홍, 사실 당신도 나랑 같아요 우린 모두 '메아리 입구'앞에 살고 있죠......"

(428쪽)

  안안의 대사와 밍홍의 대사를 따로 놓고 봤을 때 그건 아무것도 아닌 문장이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사가 '대화'로 바뀌는 순간, 저들의 이야기는 나의 가슴을 울린다.

  왕원화의 소설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에서의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란 말 그대로이다. 한 여자가 있고 이 여자는 그동안 몇명의 남자들을 사귀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남자들이 모두 이 여자와 사귀고 헤어진 이후에 결혼할 여자들을 만났다. 그러니 이 여자는 그 남자들의 마지막 여자친구 바로 이전의(!) 여자친구가 된 셈이다. 결혼까지 골인하기 바로 직전의 여자친구라는 의미. 모든 사랑이 결혼으로 연결 될 필요는 없지만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인물 저우치는 그간의 남자친구들과 사랑을 하며 결혼에 이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비극적인 인물이다. 사랑했으나 사랑에 실패한.

  정말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고, 만일 내가 그간 내가 사귄 여자친구들의 끝에서 두번째 남자친구가 된다면 이보다 슬픈 사랑의 운명이 있을까 싶다. 좋아하고 사랑하고 만나고 사귀고, 결혼은 또다른 시작이라고들 말하지만 현재 사귀고 있는 연인들에게 있어 사랑의 종말은 결혼이다. 어떤이는 연애따로 결혼따로 라고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결혼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때의 '결혼'은 법적인 신고가 이루어진 결혼 뿐 아니라 함께 같은 공간안에서 사는 것을 포함한다. 즉 동거까지도 포함. 하지만 결혼식 을 통해 주위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고 싶은 것이 모든 연인의 바램이 아닐까 싶다.

  아직까지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결혼하지 않았고, 다행히도 난 그녀들의 끝에서 두번째 남자친구가 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아직 나와 내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들의 나이가 주변의 재촉을 받을 정도의 결혼적령기가 되진 않았고,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나 다음에 다른 남자, 그리고 이후의 다른 남자와 사귄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나와 헤어진 뒤 현재 솔로이거나 아니면 다른 남자를 사귀고 있을 경우, 그녀들이 새로운 남자를 만나거나 아니면 지금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될 경우 여지없이 난 '끝에서 두번째 남자친구'가 되고 만다.

  끝에서 두번째 남자친구건 세번째 남자친구건 아니면 또 몇번째 이든, 끝에서 두번째 여자친구건 세번째 여자친구건 아니면 또 몇번째이든 간에, 남녀 모두 이전의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만남에서 이별에 이르기까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그것은 좋게 헤어지건 나쁘게 헤어지건 상관없이, 지금 그 사람이 좋건 싫건 상관없이, '사랑했던 경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처음의 사랑에서, 두번째 사랑에서, 세번째 사랑에서 우리는 사랑을 경험할 때마다 새로운 교훈을 얻고 다음의 사랑에서 좀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렇게 교훈을 얻어 성숙한 두 남녀가 모이면 결혼을 하게 되겠지.

  "만약 어느날 그가 당신을 잃는다면, 그는 마침내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이해하게 되겠죠. 지나간 잘못을 아파하며 뉘우칠 거고. 그러고는 그가 다음 여자를 만날 때는 더 나아지는 거에요. 그는 그녀와 결혼할 거고, 아주 좋은 남편이 되겠죠.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당신이 있을 거에요......" (4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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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6-01-0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책 빌렸어요. 재미있겠다. 흐흐

마늘빵 2006-01-04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 이거 두껍지만 금방 읽을거야. 난 게으름 피우느라 오래걸렸지만. 재밌어. 마치 연속극 드라마를 보는듯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