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은 <이웃집 토토로>가 극장에 걸리던 2001년 여름, 아무도 극장에서 보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나 2001년에 개봉된 것이지 일본에선 그보다 한참 전에 개봉됐었기 때문에 해적판으로 나돌아 다니는 씨디를 구워다가 아니면 재주껏 인터넷에서 다운받아다가 봤을 터. 나 같이 인터넷 어디서 영화를 다운받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구할 수 있는지 모르는 작자들이나 <토토로>를 극장에서 봤을 것이다.
내가 엠피쓰리를 안듣고, 영화를 다운받아 보지 않는 것은, 음악과 영화 저작권에 대한 존중 때문이기도 하지만 귀차니즘과 무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난 그 흔한 엠피쓰리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 사실 지하철 홍대역 화장실에서 엠피쓰리 하나를 올해 여름에 줍긴 했으나 아직까지 써먹지 않고 있다 -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그 노래가 들어있는 음반 전체가 흡족한 경우에 한해서 음반을 구입해서 듣는다. 내 컴퓨터에는 엠피쓰리 파일이 몇개 있긴 하지만 그것은 모두 일요일에 나가는 밴드에서 하는 합주곡인 경우로 한정된다. 엠피쓰리가 없는 대신 엠디를 소장하고 있기에 그걸 실시간 녹음해서 가지고 다닌다. 흠. 그럼 뭐야. 저작권 침해는 마찬가지잖아?! 그래서 내가 말했잖은가. 귀차니즘과 무지에서 비롯된 이유도 있다고.
사설이 길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 하나인 <토토로>. 자연에 대한 존경과 존중을 노래하고 있다고 흔히 말해진다. 어머니가 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아버지는 대학 연구원인데 어머니의 퇴원이 가까워지자 자연의 숲을 배경으로 한 시골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온다. 도토리 나무가 우거진 숲. 다 쓰러질 듯한 집을 구경하는 사츠키와 메이. 동그리! 동그리! 이건 우리말로 도토리다. 집안 저 위 계단에서 뭔가 떨어졌는데 보아하니 도토리다.
언니 사츠키가 학교에 가고, 아빠는 서재에서 일하고, 메이는 혼자 소풍 나왔다. 어 근데 자그마하고 귀엽게 생긴 넘이 뭔가를 흘리고 간다. 뒤따라갔더니 웬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은 동굴이?! 그 안엔 커다란 곰탱이가 입을 벌리고 자고 있다. 이힛. 툭툭. 건드린다. 아~~~~움. 하품한다. 말똥말똥 눈을 뜨고 바라보는 곰탱이. 넌 이름이 뭐니? 토~~~토~~~로. 아 니가 토토로구나?! 이렇게 메이와 토토로의 만남은 이루어진다.
* 토토로와 메이의 첫 만남. 자고 있는 토토로의 콧등을 어루만지어라. 에취~!
비가 엄청나게 오던 날 아빠에게 우산을 가져다드리러 가는데 메이의 말을 믿지 않던 사츠키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엄청 큰 곰탱이. 토토로. 비 맞는 토토로에게 우산을 건네 주니 토토로는 도토리 씨앗을 준다. 그리고는 고양이 버스를 타고 휑하니 사라졌다.
* 엄청 빠른 고양이 버스. 근데 고양이 다리가 몇 개냐? 너 고양이 맞냐? 사람들 눈엔 절대 안보인다. 그저 거센 바람만 느낄 수 있을 뿐.
* 버스정거장에서 비 맞는 사츠키와 메이, 토토로. 우산을 줬지만 토토로의 몸뚱이를 가리기엔 역부족이지?
영화 <이웃집 토토로>는 자연의 아름다움 풍경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우리의 눈 앞에 선사한다. 마냥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깨끗해질 것만 같다. 하이얀 백지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달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대단한 것은 이렇게 아름답고 깔끔한 영상미와 함께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내용까지 어우러지기 때문일 터이다. 보통 에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돈 주고 보기는 왠지 아깝다. 하지만 그의 에니메이션은 결코 돈이 아깝지 않다. 그만큼 감동적인 영화를 본 것 만큼이나, 오히려 더 큰 만족감과 감동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화 속 토토로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메이처럼 토토로의 뱃살을 콕콕 찔러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커다란 토토로 인형을 사다가 잘 때 껴안고 자면 참 푸근하고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므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