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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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26-27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사람행세를 하고 사람대접을 받는 데 물질적인 조건들은 여전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36
노예에게 얼굴이 없다는 것은 그에게 지켜야 할 체면 또는 명예가 없다는 것, 타인을 대함에 있어서 얼굴 유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편에서 노예의 얼굴을 고려할 필요가 없음을 뜻한다. 노예는 고프먼이 분석한 ‘상호 작용 의례’-그 핵심은 상대방이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다-에서 제외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노예는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는 타인 앞에 현상할 수 없고, 타인은 그의 앞에 현상하지 않는다.

44
고대의 전사들은 자유인으로 전쟁터에 나가서, 잡히면 굴욕을 겪고 노예가 되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서 싸웠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싸웠다. 오늘날의 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이미 노예와 다름없다. 그들은 명예를 위해 싸우는 대신 생존을 위해 싸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잃어버릴 명예 따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60
주인들에게 노예는 인정투쟁의 상대가 아니라, 인정투쟁이 일어나는 장의 외부를 상징한다. 노예의 복종이 주인의 위신을 높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주인의 자부심은 노예의 굴욕을 대가로 삼는다. 하지만 이것이 곧 주인의 명예가 노예의 인정에서 비롯됨을 뜻하지는 않는다.

69
외국인에 대한 환대의 철회는 그들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의해 정당화된다.

120
감옥이나 군대에 있는 사람들은 바깥세상을 자기들이 있는 곳과 구별하여 ‘사회’라고 부르는데, 이는 아주 정확한 명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러한 명명을 통해 사회의 본질은 제도나 위계 또는 역할들의 구조가 아니라-감옥과 군대도 제도이며, 위계와 역할들로 짜여 있다-환대, 즉 타자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라는 무의식적 깨달음을 표현한다.

173-174
걸인에게 예의 바르게 적선을 하는 방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걸인으로서는 거기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굴욕이기 때문이다. 그를 그 자리에 버려둠으로써 사회는 이미 그를 모욕하고 있다.

229-230
어떤 사람을 절대적으로 환대한다는 것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자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42
환대란 타자를 도덕적 공동체로 초대하는 행위이다. 환대에 의하여 타자는 비로소 도덕적인 것 안으로 들어오며, 도덕적인 언어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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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5-10-30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대야 말로 기독교의 핵심 교리라는 생각을 했는데(물론 다른 많은 종교들도 그렇지만) 개신교가 넘쳐나는 이나라는 어찌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