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들이다 싶더니 주드로와 니콜키드먼과 르네젤위거였다. 다 알만한 인물들임에도 난 꼭 영화를 보고 나서 포스터를 확인해야만 아 그 배우였구나 하면서 무릎을 탁 친다. 비슷하게, 난 몇년동안 이 동네에 살면서도 철물점이 어디있고, 뭐가 어디있는지 잘 모른다. 청소년독서실이 근처에 하나 있는데 이걸 모르고 있다가 엄마에게 아니 몇년을 살았는데 그것도 못봤냐는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난 주변 사물을 인지하는 감각이 떨어지는 듯 하다. 내가 봐야할 것, 당장 필요한 것들만을 보고 다니다보면 그 주변의 것들을 잘 못보고 지나친다. 영화를 볼 때 분명 다른 영화에서  몇 차례 본 배우이고, 아는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꼭 이름을 확인해야만 안다.

  <리플리>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을 만든 안소니 밍겔라  감독이 만든 영화. 사실 감독은 잘 몰랐다. 이름도 처음 듣는다. 별 관심을 두지 않던 감독인지라. <콜드 마운틴>, 차가운 산? 흠. 아마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한 겨울의 눈덮힌 산을 말하는 듯 하다. 처음에 난 '콜드'가 아닌 '골드'인줄 알았다. 2004년 아카데미 7개에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꽤나 파장을 일으켰던 영화였나본데 개봉일이 2004년 2월 20일. 내가 아직 민간인이 아닐 적에 나온 거라 여태 잘 모르고 있었나보다. 무심결에 본 영화인데 꽤나 감동적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평화로운 산골마을에 전운이 감돌고 고추달린 남자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모두가 전쟁에 나가 전사하거나 아니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 의용군 대장과 그 일당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탈영병을 색출하고 먹을 것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희롱한다. 탈영병을 숨겨주거나 도움을 줄 때엔 교수형에 처한다는 법칙에 따라 탈영병을 함부로 들일 수 없지만 그들은 전쟁의 피해자일뿐이다. 전쟁에 나간 사람치고 전쟁이 좋아서, 사람 죽이는게 좋아서 나간 사람 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은 선이요, 탈영병은 악이라는 규정은 그네들만의 규정일 뿐. 대의를 위해 싸우는 군인들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혹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죽여야하는 상황으로부터 피하고픈 자들 모두가 옳다.



* 이보다 더 기쁠 수 있으랴. 죽은 줄만 알았던 사랑하는 이가 돌아왔고 재회했다. 사랑을 나눴다.

  아이다와 인만. 짧은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았고, 느꼈고, 사랑했다. 그리고 인만 역시 다른 남정네들과 똑같이 전쟁통속으로 끌려갔고, 전쟁에서 부상당했으며, 아이다를 위해 탈영했다. 결코 탈영을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다. 국가보다 사랑하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탈영한 것이다. 아이다에게 가는 길은 너무나 멀다. 붙잡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연줄 연줄 묶여 사막을 걷기도 하고, 가까스로 할머니에게 발견되어 구사일생 했으나 탈영병을 잡기 위해 돌아다니는 의용군을 피해다녀야하는 처지.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왔지만 멀찌감치 그녀는 내게 총을 겨누며 돌아가라 한다. 아... 하지만 이내 그임을 알아채고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전쟁영화지만 남과 북이 전쟁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영화의 주가 되는 것은 탈영병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히려 남과 북의 전쟁이 아닌 탈영병을 색출하고 마을 사람들을 약탈하는 의용군과 탈영병, 마을주민들과의 대립이 중심이 된다. 어린 두 아이를 전쟁에 내보내지 않았다고 즉결 처형된 아버지와 고문당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고통받는 것을 보다못해 뛰쳐나온 두 꼬마아이는 총살당했다. 닭, 돼지, 양을 빼앗고, 옷을 빼앗고, 겁탈하고, 살해하고. 전쟁이 무서운 것은 적과의 대치가 아닌 힘없는 주민들의 핍박이다.



* 마지막으로 총을 겨누고 그는 생을 마감했다.

  끝내 탈영병 인만은 아이다를 지키다가 총에 맞고 생을 마감한다. 울부짖는 아이다. 그리고 영화는 전쟁이 끝난 뒤 아이다와 죽은 인만의 딸을 비춘다. 행복한 가정.

  인만은 탈영병이었지만 죽음이 두려워 전쟁을 피한 것이 아니다. 그는 많은 이들을 죽였고, 자신의 영혼이 썩어감을 괴로워했으며, 사랑하는 아이다를 지키기 위해 끝내 목숨을 바쳤다. 전쟁 통 속에서 그 어떤 공적을 세운 병사 못지 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해냈는지도 모른다. 전쟁 속에 깃든 감동적인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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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5-09-17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이 영화 정말 보고 싶어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상하게 소리소문없이 개봉했다가 금새 간판을 내렸던 것 같아요. 언데 개봉했는지도 모르고 지나쳐버렸다니까요...DVD로 꼭 봐야겠습니다!!

마늘빵 2005-09-17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민간인이 아니어서 이 영화 개봉했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감금당해있어서. ㅋㅋㅋ 재밌어요. 감동적이고.

marine 2005-09-1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정말 재밌게 봤어요 여담이지만 르네 젤위거와 니콜 키드만, 이렇게 비교돼도 되는 겁니까? 민간인과 선택받은 이의 차이 같더라구요 ^^

마늘빵 2005-09-1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나나님도 보셨네요. 영화에서 르네젤위거가 좀 비중이 약하게 나오죠? ㅎㅎ 주드로에게 선택받은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 젤위거에게도 사랑의 대상이 있었지만 조금 나오다가 말더라구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