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죽은 시인의 사회>라 불리는, <엠퍼러스 클럽>. 이번으로써 두번째 이 영화를 본 것인데, 가끔씩 봐줄 필요가 있는 영화다. 적어도 학생들을 상대하고 있는 나로서는.

  세인트 베네딕트 고등학교의 역사선생인 훈데르트 선생. 그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과 같은 재치와 악동(?) 기질은 없지만, 점잖은 품행과 도덕적인 인격으로 학생들의 모범이 되는 이상적인 교사상이다.



  로마의 성립과 멸망을 다루고 있는 교실. 아주 개구지다 못해 버릇없고 제멋대로인 세드윅 벨이라는 학생이 칠판 앞에 나와있다. 훈데르트 선생은 그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작성하던 도표를 마저 작성하라고 해보고, 못하니깐 로마의 왕 40명을 읊어보라고 하고, 또 여기에 장난으로 맞받아치자, 그에게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명언을 던지며 자존심을 꺾어버린다. 아 문구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내용은 이런거였는데. 지식이 없는 자에게는 지식을 전수해주고, 뭐가 없는 자에게는 뭐를 해주면 되지만, 인격적으로 안된 자에게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라는 식의 내용. 한번의 일격. 그리고 이어지는 확인사살. 훈데르트 선생은 벨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에게 로마의 40대 왕을 연대순으로 읊게 만든다. 20명쯤 외웠을까. 여기서 그만. 그것으로도 벨을 향한 확인사살을 충분했다.





* 왼쪽에서 두번째가 벨, 맨오른쪽이 벨 때문에 대회에 나가지 못한 마틴.

  벨은 상원의원의 아들로, 매우 명민하고, 똑똑하지만 그 좋은 머리로 잔꾀를 부리는 바람에 온갖 말썽을 다 불러오는 학생이다. 타고난 성격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그를 잘 따르며, 그가 한가지 행동을 선동하고 나서면 나머지 친구들도 모두 그를 따라 하게 된다. 그러니 학교에서 문제가 될 밖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학교 물을 다 흐리게 하는 셈이다.

  하지만 훈데르트 선생의 고민은 그가 다른 학생들까지도 물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매우 똑똑한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딴 짓으로 그 잔머리를 쓰는 것이 안타까운데 있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시킬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그에게 자신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건네주며, 그 책으로 공부를 해보라고 격려한다. 그리고는 조금씩 변화되는 벨의 모습.

  이 학교에는 줄리어스 시저 대회라는 것이 있는데, 시험성적에 따라 1등부터 3등까지가 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그 중 주관식 문제를 순서대로 맞춰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그 해의 줄리어스 시저가 되는 대회다. 벨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은 이 대회에 목을 매고 매 시험이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한다. 마지막 시험. 훈데르트 선생은 벨에게 A- 를 주었다. 그리고 순위표를 보니, 벨이 4위로 대회에는 출전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훈데르트는 그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과 애정으로 그에게 A+ 를 주고, 3위에 있는 마틴을 끌어내린다. 대회날. 학부모들과 교사,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대결이 펼쳐지고, 선생은 벨의 컨닝행위를 눈치챈다. 교장에겐 말했으나 그대로 진행하라는 지시. 할 수 없이 그는 벨의 차례에 어려운 문제를 낸다. 벨은 떨어지고 다른 친구가 대회 우승했다. 대회가 끝난 뒤 대면한 두 사람. 벨은 결과를 위해서는 과정은 중요치 않다는 주의자. 선생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주의.

  훗날. 20년쯤 지난 뒤, 벨은 거대한 회사의 사장이 되었고, 리조트로 친구들과 선생을 초대 재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이때에도 그는 대학원생을 고용해 이어폰으로 정답을 받아내고 선생은 또 눈치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가 알지 못하는 문제를 내서 대회 우승을 막는다. 화장실에서 대면한 두 사람. 20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주고 받는데, 화장실 대변칸에서 나온 벨의 아들이 이 대화를 들었다. 당황한 벨. 어쩌랴. 이미 벌어진 일인 것을.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기질을 가지고 상원의원에 도전한다.

 

  이 영화  한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1. 교실에서 벌어진 학생의 장난질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영화에서 훈데르트 선생은 벨이 머리는 좋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지식으로 망신을 주는 방법을 택했고, 먹혀들었다. 이 장면을 볼 때 떠오른 생각은, 학생들 마다의 각각의 특성을 기억하고 있다가 거기에 맞게 일대일로 대응해야한다는 것이다. 사실 말은 쉬운데 이게 굉장히 힘들다. 교단에 서본지 얼마 안되는 나는 영화 속과 같은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나와 말장난을 치려고 할 때를 경험했는데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같이 놀아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내 맘은 이 상황을 빨리 수습하고 수업을 해야하는데 였다. 앞으로 교실에서 참 다양한 유형의 학생들을 접하게 될텐데 매트릭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머리좋고 공부 안하는 학생은 지식으로 망신을 주고, 머리도 나쁘고 공부도 안하고 인격적으로 문제도 있는 아이는 어떻게 다루고 하는 방식들을 세워야겠다.

2. 어떻게 흥미를 유발할 것인가?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 어떻게 흥미를 유발 할 수 있을까? 또 관심은 있는데 노력해도 별로 발전하지 않는 학생을 어떻게 이끌어줄 것인가? 사실 이 문제 많이 느끼고 있고, 고민도 하는데, 방법은 찾지 못했다. 공부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데 내가 제대로 이끌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 대해 자질의 회의감을 가진적도 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 학생들에게는 참 미안하다. 영화 속에서는 다행히 벨을 제외하고는 다른 학생들은 알아서 각자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특별히 문제가 되거나 흥미를 이끌어줘야 할 만한 학생은 없었다. 물론 영화가 벨과 훈데르트 선생 두 사람을 촛점으로 삼았기 때문이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3.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생은 어찌할 것인가?

  세드윅 벨은 교실에서도, 20년이 지나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 상황에서도, 인격적 결함을 보여줬다. 성공한 대기업의 사장이고,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는 줄리어스 시저 재대결에서조차도 컨닝을 했다. 그리고 20년뒤 그를 찾은 선생님에게 또다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크겠는가. 인격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훈데르트 선생은 그에게 공부에 대한 열기를 불어넣어줬고, 결국 편법을 쓰면서까지 줄리어스 시저 대회에 올라갈 수 있게 해줬다.

  그러나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이었다면 훈데르트 선생처럼 개인적인 욕심을 부려 신경써줬을테지만, 인격적인 결함이 있는 학생인 경우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공부에 대한 흥미나 열정이 필요한게 아니라 인간됨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훈데르트는 공부를 통해서 그가 좀 변하길 바랬겠지만. 나의 개인적인 교육관은 그렇다. 인격적으로 안된 놈은 공부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학생일 때에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학생이 그대로 사회로 나아갔을 경우에 문제는 커진다. 머리 똑똑하지만 잔머리쓰고 인격적으로 안된 놈은 밖에 나가서 분명 큰 일을 저지른다. 그가 비록 겉으로 성공한 사업가나 의사, 변호사, 판사 등과 같은 사회지도층에 위치해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내면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인간이 사회지도층에 위치해있을 때 우리사회는 더욱 암울하다. 조금 공부를 못했지만 인격적으로 된 놈이 그를 바라보면서 느낄 자존심의 상처 혹은 상실감은 어떨것이며, 또 그런 놈이 지도자로 있는 사회가 돌아가는 논리는 어떻겠는가.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미성년자를 벗어나기 전에 수정불가능한 존재로 인식되는 학생이라면 난 그가 사회지도층으로 올라가는 과정을 오히려 막겠다. 방해하겠다. 중도에 그를 변화시키지 못한 부모와 선생과 사회의 잘못도 있지만.

 

 두번째 같은 영화를 봤지만 내게 주어진 상황마다 느끼는 바는 다르다. 지난번엔 교사의 입장에서 보기보다는 그냥 감동적인 휴먼드라마 정도로만 봤고, 이번에는 교사의 입장에서 교사-학생의 관계에 중점을 두어 봤다. 같은 영화도 어느 시기에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 그러므로 나는 이 영화를 다음에 또 볼 생각이 있다. 필요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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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08-0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흥미를 유발할 것인가' - 정말 현실적 문제입니다. 억지로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마늘빵 2005-08-0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항상 고민입니다. 저는 말빨도 없고, 유머감각도 없는 놈이라, 그런거 영 소질이 없거든요. 어린 학생들일수록 그런게 중요한데... 영 젬병입니다.

이리스 2005-08-1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영화 꼭 봐야겠습니다. ^^;

마늘빵 2005-08-1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이거 정말 재밌습니다. 감동도 있고. 근데 배신도 있죠. 저 학생이 다 커서까지도 끝까지 샘을 배신하는 바람에, 샘의 얼굴에 표정이...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