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렸다. 개봉과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현 한국 영화판을 홀로 독주하고 있는 <친절한 금자씨> 아니 월마나 친절하길래 사람들이 그리도 좋아한댜? 모두들 보는 친절한 금자씨. 나두 그녀를 만나러 갔다.

 지나치게 광고가 부풀려진 탓인가, 너무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불어넣었던 탓일까. 내가 본 <친절한 금자씨>는 예전의 박찬욱 감독의 복수 2부작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보다는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쎄 작품성 면에서는 결코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지나치게 이영애 위주의, 이영애를 위한, 이영애에 의한, 이영애의 영화였다는 점이 오히려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물론 그것은 이영애의 연기력이 탁월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가 지나치게 이영애 한명에게만 집중되고 있었다. 조금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 영화에 출연한 한국영화계의 대가들, 송강호, 강혜정, 신하균, 김부선, 최민식, 오달수, 유지태 등의 화려한 스타들이 모두 "이영애 밑으로 집합!" 이 되어버렸다. 오야붕 이영애와 꼬봉 그들이 빚어낸 영화는 오야붕만 왕이 되고, 꼬봉들은 그야말로 조무래기가 되어버리는 사태가 발생. 어찌보면 스타 꼬봉들이 화면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라져가는 것 또한 영화를 보는 또다른 재미이긴 하다만 그래도 너무했다. 한밤중 차안에서 이영애를 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송강호와 신하균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한 1초 출연한 유지태는 또 어떠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잘 드러나지 않는 김부선과 강혜정은 또 어떠한가.

  <친절한 금자씨>는 현재 개봉 4일만에 15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하니 엄청난 기록이다. 이러다 한국영화계의 최고 기록을 세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갖게 되는데, 나는 여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영화를 본  이들 중 다수가 <친절한 금자씨>가 지나치게 작품위주로 짜여진 나머지 흥미, 재미, 긴장감 등의 대중성을 배제하게 되었고, 이것이 내용을 보는 관객이 아닌 영화에서 재미와 흥미를 찾는 나머지 다수의 관객들의 호흥까지 불러오지는 않으리란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주변인들의 재미없다 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도 있겠지만 그것도 한정적일뿐.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지금껏 작품성과 대중성을 적절하게 혼합해 평단과 관객 모두의 인기를 받았다고 평가되지만, 이번 영화에서 대중성은 거의 없어졌다. 물론 작품 내용면에서는 논의할 부분이 많다. 복수, 정의에 대해서.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리라 기대할 순 있겠지만 많은 관객을 확보할 것 같지는 않다.



살벌한 눈화장. 그녀는 자신이 친절해보일까봐 일부러 빨갛게 눈화장을 했다고 한다.

 * 친절함에 대해

  친절한 금자씨는 정말 친절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는 친절했다. 마지막 백선생을 땅을 파 묻으면서도 그녀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푼다. 그녀의 친절은 인간의 냉정함을 담고 있기도 하다. 최악의 상황에서 조차 친절을 베푸는 것은 친절이 아니라 냉정함이다. 인간의 차가움이고 독함이다. 독기를 품은 자만이 냉정함을 유지하고 친절함을 베풀 수 있다. 자기자신을 제어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타인에게 비추어지는 나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야 그러한 친절함이 몸에서 나올 수 있다.

  그녀는 누명을 쓰고 13년간 복역한 감옥에서조차 친절녀로 찍혔고, 그녀보다 먼저 사회에 나온 이들은 그녀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 가 없다. 철저한 자기관리능력. 그녀의 친절함은 살벌하다.  "너나 잘하세요" 라고 말하며 그녀를 맞이하러 나온 이들을 거부하는 그녀의 모습은 유일하게 불친절한 모습이다. 그녀는 심지어 백선생을 폐교에 가둬놓고서 백선생이 죽인 아이들의 부모를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대화까지 백선생에게 들려준다. 스피커를 통해서. 아 이 살벌한 친절함. 그건 상대에게 친절이 아닌 고통이다. 친절은 베푸는 사람이 아닌 받은 사람 입장에서 '좋은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일인지 이영애의 친절함은 상대에게 고통으로 다가간다.

  * 복수, 정의에 대해

  그녀는 왜 복수를 하려고 하는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채 13년간 감옥에서 썩은 나의 삶을 보상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복수를 하기 위해 누명을 씌운 백선생을 찾아가고 13년의 복수를 실행에 옮긴다. 그냥 죽이면 재미없다. 그녀는 주문제작한 총의 방아쇠를 몇차례 당겨보기도 하며 백선생에게 겁을 주고, 넥타이로 목을 졸라 질질 끌고 다니기도 하고, 총으로 아무 예고 없이 발가락을 뚫어버리기도 한다. 왼발, 오른발 둘 다. 발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이것으로 끝이냐? 절대 아니다. 그녀는 백선생이 죽인 어린아이의 부모들을 소집한다. 그리곤 차근차근 친절하게 그들에게 백선생의 범행비디오를 보여주고, 말한다.

 "경찰에 넘길까요? 아니면 지금 당장 처분하시겠어요?" 아 이 살떨리는 친절함. 살인자 처리에 있어서 선택의 길까지 열어준다. 당시 현장에는 그녀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걸 알면서도 눈감았던 형사도 자리하고 있었다. 경찰에 넘기면 그 아저씨가 데려가는거고, 아니면 자기한테 맡겨달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즉결처분을 택했고, 이 사실은 스피커를 통해 '친절하게도' 백선생의 귀에 들어갔다. 아흐흐흐 흐느껴봐야 소용없다. 당신은 이제 빨리 죽는 게 최선의 결과다. 그러나 이를 어째. 그가 죽인 아이의 부모가 모두 모였으니 합치면 몇명이냐? 한 아이의 엄마는 자살했고, 아빠는 해외로 갔다. 대신 할머니가 왔다. 그렇다면 2+2+2+1 = 합이 7명이다. 7명으로부터 복수를 받아야한다.

  그들의 복수는 함무라비 법전의 정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물론 방법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강도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겠다. 각자 피가 튈것을 염려해 비닐을 뒤집어 쓰고 칼을 들고, 도끼를 들고 각자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있다. 무서운 사람들. 복수의 칼을 갈며 순서가 되면 교실로 들어가 복수를 실행에 옮긴다. 퍽퍽 칼이 꽂힌다. 도끼가 꽂힌다. 피를 흘린다. 잔뜩. 흥건히. 고통스러워하는 백선생. 어쩔 수 없소. 왜 그랬소. 사람을 잘못 건드렸네. 모든 이들이 복수를 직접 실행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겁에 질려있으면서도 곧잘 실행에 옮긴다. 마지막 할머니. 오. 할머니 비닐도 안쓰고 홀로 뚜벅뚜벅 온전히 걸어들어가 홀로 온전히 걸어나온다. 뚜벅뚜벅. 화면은 이동. 어이쿠. 죽었구나. 백선생. 백선생의 목에는 칼도 도끼도 아닌 가위가 꽂혀있다. 다 끝났는가? 아니다. 이영애의 복수가 남았다. 금자씨. 그녀는 백선생의 무덤(?)에서 그의 머리에 총을 쏜다. 팡. 팡. 두방.

  소름끼치는 복수혈전은 이영애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아이가 저자에게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당했고, 나는 저자에게 복수를 가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부모들은 아이의 복수 앞에 잔인했다. 백선생이 죽은 뒤 비닐에 흥건히 고여있는 피를 빼내기 위해 협심하여 비닐을 살짝 들었을 때 나는 어느때보다 그들의 잔인함을 느꼈다. 살인범의 잔인함을 초월한 보통인의 잔인함. 그 잔인함에는 차이가 없었다. 누구나 다 그만큼 잔인해질 수 있다는 사실만이 우리의 뇌리에 들어온다.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의이다. 금자는 백선생의 몫을 백선생에게 돌려줬다. 그리고 그녀의 정의를 실현했다. 그녀의 복수를 실현했다. 여기서 정의는 곧 복수가 된다. 내가 손해본 만큼 상대에게 돌려준다. 이익과 손해는 이제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여기서 정의는 실현됐다.

 

사족

이 한편의 영화 속에는 이영애의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그중에 난 고딩 이영애가 가장 맘에 든다. 껄렁껄렁한 옷차림, 하지만 뭔가 단정해뵈는 모습. 전화를 걸어 말한다. "하하핫 선생~님~ 나 임신했어요. 임신했다고요. 임.신. 아니~ 임.신" 이라고 전화 속 상대방 교생이었던 백선생에게 말하는 그녀의 말투. 아직도 기억난다. 언제 또 이영애의 고딩모습을 볼 수 있으랴. 나이 30대 중반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고딩의 모습이 가능하다니. 놀랍다. 이영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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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5-08-03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은 그야말로 엑기스 오브 스포일러 ! ㅋㅋㅋ
이영애 고딩 모습 조금은 어색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수용되던 -_ ㅠ
놀랍도다 -_ ㅠ

줄리 2005-08-03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친절하시게 친절한 금자씨를 소개해 주셨네요^^ 보게 되면 내용이 아주 잘 들어올것 같네요~

마늘빵 2005-08-0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 ^^ 그쵸. 고딩모습. 날라리 고딩인데 왜 이뻐보이는거죠? 귀엽구. ㅋㅋ
줄리님 / ^^ 앗 저때문에 중요내용을 머리속에 담아가시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릴케 현상 2005-08-03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저런 분석이야 가능하겠지만-_-저로서는 한 가지밖에 생각이 안 나요 '잼없다'
어쨌든 아프락사스님 정리 잘 하시네요^^

마늘빵 2005-08-03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그 잼없다가 '대중성없다' 죠 머.ㅋㅋㅋ 정말 지루하더라구요. 5명이서 봤는데 20살 먹은 한 여자아이는 친구한테 전화해서 "야 잼없어 잼없어 지루하고 니가 보면 진짜 잘거야" 라고 말하더라구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