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에 개봉했으니 참으로 오래된 영화다. 다소 촌스러운 영화 포스터는 그 세월을 어느 정도 말해주는 듯 하다. 유명한 영화였고, 오래된 영화였지만 제대로 본적은 없었다. 우연히 티비를 돌리다가 마지막 부분을 조금 봤을 뿐. "내가 곧 법이다"라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대사는 한참 동안 머리 속에 남아있었다.

 "서기 2천년대에 세상이 바뀌었다. 기후(Climate), 국가(Nation) 그 모든 것이 격변했다. 지표는 오염되어 매마른 사막으로 변하고 그 저주받은 땅(The Cursed Earth)을 피해 수 백 수 천만의 사람들이 몇 안되는 거대 도시에 모여살게 되자 거리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정부는 치안 능력을 상실하고 법은 무너졌다. 혼란 속에서 새 질서가 탄생했다. 한 손으로 정의를 구현하며 다른 한 손으로 처벌권을 행사하는 새로운 엘리트 집단이 다스리는 사회, 새 통치자들은 경찰이자 배심원이었으며 심판자였다. 사람들은 그를 판사(The Judges)라 불렀다."

혼란스러운 지구. 정의는 땅에 떨어지고, 온갖 범죄와 혼란이 난무한다. 서로 영역을 차지 하기 위해 죽고 죽이는 살육전을 벌이고 이를 말리는 경찰들은 수적으로 폭동자에 비해 훨씬 부족하다. 하루에만도 엄청난 사건이 여러차례 벌어지기 때문에 도대체가 경찰이 범죄자를 잡아다 법정에 세우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다. 그래서 이들은 경찰에게 법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데, 그들을 '판사' 라고 불렀다. 거리의 경찰임과 동시에 스스로 법에 따라 즉결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판사. 그들의 권력은 실로 막강했다.

 그중에서도 해결하지 못할 사건이 없는 능력이 뛰어난 판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판사 드레드다. 정의의 심판관으로서 모범이 되었던 그가 어느날 헤리스(?) 부부의 살인사건의 주인공으로 재판정에 불려가게 되고, 유죄를 명받지만, 그와 절친한 대법관이 자리를 물러나며 마지막 명령을 내림으로써, 사형은 면케된다. 그러나 그는 무고한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다며 억울해한다. 정의를 세우는 판사가 한순간 종신형을 받은 범죄자로 전락한 순간이다.

 감옥으로 가는 셔틀안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 그는 그가 재판정에 불려가기전에 마지막으로 유죄를 선고했던 인물이다. 막 출소했고 혼란한 거리의 총싸움을 피해 어느 기계 안에 숨어있다가 발견되었는데, 그 기계를 함부로 건드렸다는 죄목으로 5년형을 받았다. 나의 몸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위로 5년형을 받다니. 억울해할만도 하다.

 어찌되었건간에 그는 자신을 모함한 자를 찾아나서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야누스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형이 주인공이었던 것. 야누스 프로젝트란 대법원에서 협의하에 만들어진 복제인간의 일종인데, 정의를 실현할 완벽한 판사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였고, 이로 인해 드레드와 그의 형이 탄생했다. 그의 형도 판사였지만 그는 오히려 범죄자에 가까웠고, 드레드는 그를 즉결 심판해 감옥으로 보냈다. 그가 감옥을 탈출해 드레드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져지 드레드>는 두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의의 문제와 복제인간의 문제. 사실 복제인간의 문제는 이 영화에서 아주 사소하게 취급되는 부수적인 부분인데, 이것도 따로 생각해놓고 보면 할 말이 많을 듯 하다. 일단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가장 중점이 되는 것은 정의의 문제인데,

 1.  "내가 곧 법이다"

  드레드는 사건현장마다 그들에게 외친다. 내가 곧 법이라고.   영화 <져지 드레드>에서 정의의 실현은 각각의 판사에게 달려있다. 이때의 판사는 오늘날의 경찰에 가깝다. 모든 경찰들이 판결권을 가지고 있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바로바로 즉결심판해 감옥으로 보내거나 바로 사형시킨다. 아무리 폭동이 난무하고 그들을 재판장에 데려와 심판할 만한 여력이 안된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의 판결에 흠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드레드가 즉결심판해 5년형을 선고한 땅꼬마 아저씨 또한 내가 봐도 억울한 피해자다. 법의 피해자.

  경찰 각자가 법이 되는 사회에서 실행되는 법은 완벽하지 못하다. 실수투성이다. 영화 속에서 그런 오류를 인식하고 있으니 야누스 프로젝트라는 것을 계획한 것일테지만 말이다. 법을 집행하는 기관은 판결을 내리는 순간 어느 때보다도 공정하고 항상 옳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개 개인에 불과한 경찰이 곧 법이어서는 안된다. 또한 판사 혼자만이 법이어서도 안된다. 법의 집행은 모두가 공유하고 고개를 끄덕일 때 실행되어야 한다.

 

  영화 속의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2.  "죄가 있고 없고는 타이밍이다"

 이 대사는 드레드의 형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그를 보러 온 재판관에게 한 말이다. 영화 속에서 악역을 맡은 선천적인 범죄자로 나오는 자의 말이지만 내가 볼 때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영화 속 혼돈상태에서의 범죄에 연관된 이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죄가 있고 없고는 타이밍에 의해서 달라진다.

 예를 들어 여행중 아이가 아파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소나타 한 대. 감시카메라에 딱 걸렸다. 그럼 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 과속을 즐기는 폭주족이 단 한번도 걸리지 않았다면 그는 죄가 없는 것이다. 죄가 있고 없고는 타이밍이다. 감시 카메라에 걸리는 순간이냐 아니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단편적인 사건 말고도, 신문 1면을 장식했던 탈옥수 신창원이나 뒤를 이은 살인범 유영철 역시도 시각에 따라서는 타이밍을 못맞췄기 때문에 범죄자가 됐다고 볼 수도 있다. 이때의 타이밍이란 범죄가 일어난 시각이나 발견된 시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의 가정환경이나 교육환경 등의 모든 환경요소를 일컫는 것이다. 그가 만약에 부유한 집안의 인자하고 따뜻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 정상적인 교육을 다 받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와 같은 범죄자가 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선천적으로 원래 나쁜 놈이란 존재하는가. 난 여기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3. "그 말을 믿으십니까"

 영화 속에서 드레드가 함정에 빠져 재판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뒤 그와 절친했던 대법관에게 그는 말한다. 그 말을 믿으십니까?! 그 말을 믿으십니까?! 그 말을 믿으십니까?!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법은 항상 옳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드레드 마저도 법에 의해 무고한 자신이 죄를 뒤집어썼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그래서 유죄를 선고 받고 셔틀을 타고 감옥으로 가는 과정에서, 옆에 앉은 그가 5년을 선고한 땅꼬마 아저씨가 그에게 그런 말을 한다. 자신도 무죄라고. 무죄인데 당신이 정의를 실현한답시고 나에게 유죄를 선고했는데, 그럼 당신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법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법을 불신해서도 안되겠지만 법이 항상 옳다고 믿는 것 또한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헌법재판소를 들먹이며, 이들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하나만으로 모든 것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겠다는 자세 그건 법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법이 믿을 만한가? 과거 군부독재시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법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감옥에 들어가고 나오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고 때로는 고문으로 죽기도 하고 불구가 되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부패한 권력과 법이 짝을 이루었기 때문이겠지만, 법은 외따로 존재하며 정의를 실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역사이기도 하다.

흔히 "법 없이도 살 인간이다"라는 말에서, '법'은 모든 선함을 의미하지만, 그건 이상적인 법의 모습일 뿐이다. 우리네 사회에서 법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  꽤나 오래된 영화이고, 그저 근육질 사내 실베스타 스탤론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찾은 사람들이 많을테지만 정의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지금 언급하지 않은 복제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도 좋을 듯 하다.

* 최근 본 영화 <아일랜드>에서도 인간복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때의 인간복제는 인간의 영생에 대한 욕구, 혹은 질적으로 높은 삶을 살고자 하는 자기만족의 욕구를 위해서 클론이 악용되고 있는 경우를 다룬 것이고, <져지 드레드>에서의 인간복제는 완벽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되었다. 인간복제라는 것이 기술적으로 그런 것이 불가능하고 가능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만약 그것이 실현가능하다면, 무엇인가를 위해 완벽한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때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해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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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7-2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타칸가요? 그거 생각나네요...

마늘빵 2005-07-2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그게 머에요.... ?

키노 2005-07-28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단 호크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가 있습죠...아닌가요 물만두님

물만두 2005-07-28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을걸요? 음,., 저한테 인물 물어보시면 안되요. 기억력이 안좋아서리 ㅠ.ㅠ;;;

마늘빵 2005-07-29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검색을 한번 해봐야겠군요. 가타카?? ㅡㅡ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