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도 목적이 있을까?
연애와 사랑은 다를까? 다르다면 뭐가 다를까?
연애란 뭘까?
사랑은 뭘까?
결혼은 뭘까?

영화를 본 뒤에 더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꽤 '철학적'이다. 철학은 어느 한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더 많은 궁금증을 만들어내며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애의 목적>을 보고 난 뒤에 나는 더 많은 질문이 생겼다. 이 영화보다 조금 더 일찍 개봉한 <연애술사>를 보지는 않았지만 예상컨대 <연애술사>가 보여주려는게 두 남녀의 연애와 쾌락이라면, <연애의 목적>이 보여주려는 바는 지금 내가 던진 이러한 많은 질문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저 웃고 즐겨보려고 본 영화는 내게 기대치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고, 사랑에 대해, 연애에 대해, 결혼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으로 의심받고, <질투는 나의 힘>에서 사랑에 실패한 이 남자 박해일 능구렁이 영어선생이 되어 돌아왔다.

<올드보이>에서 첫선을 보이며 최민식과 함께 지내던 그녀가 사랑의 배신을 가슴에 품은, 아픔을 간직한 어리숙한 교생으로 돌아왔다.

두 배우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한 영화다. 반면 감독이라는 위치에 이름을 올려놓은 '한재림'이라는 인물은 생소하다. 그는 뒷조사해본 결과 서울예대를 졸업한 75년생 젊은 감독으로 이 영화의 그의 첫 데뷔작이라 한다. 오호 데뷔작치고는 처음부터 꽤 반응이 괜찮다. 게다가 이렇게나 젊은데. 다른 경험도 별로 없는 듯 하다. 대개의 감독들이 연출, 조감독 등 이런저런 영화판의 시다바리를 하다가 경험을 쌓고 데뷔하는 반면 이 감독은 프로필에 올려져있는 경력이 전무하네? 일부러 안올렸나? 아니면 원래 경험이 없었나?

그는 <연애의 목적>이라는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말을 던진다.

“연애의 목적이 뭐냐고 물으면, 난 연애의 목적은 여행의 목적과 비슷하다고 대답한다. 여행은 떠나기 전의 설레임과 다녀 온 후의 추억을 준다. 대신, 상처 받을 수도 있다. 굉장히 지칠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고, 다시는 가기 싫을 수도 있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여행을 간다. 여행은 목적을 논할 수 없다. 그것을 즐긴다는 자체가 목적이듯이, 연애의 목적도 그런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솔직한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저 관계일 뿐인 그런 연인 말고, 서로 실컷 삐치고 실컷 미워하고 실컷 싸우고 실컷 부둥켜 안는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이 사람 연애를 꽤 많이 해봤나보다. 풉. 연애를 별로 안해본 나야 뭐 연애를 논해도 알 게 있나. 관념적인 그림만 그려볼 뿐이지. 어떤이는 연애를 단지 성적 관계, 즉 섹스와 동일시하고, 어떤 이는 연애는 결혼의 목적과 같다고도 하며, 어떤 이는 한재림 감독이 말한 것과 같은 "서로 실컷 삐치고 실컷 미워하고 실컷 싸우고 실컷 부둥켜 안는" 것을 연애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연애에 대한 각각의 사람들의 생각이야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할테지.

첨 본 한살 많은 여자 교생한테 무턱대고 자자고 덤비는 이유림. "혹시 마약하세요?" 라고 응수하는 교생 최홍. 껄떡대는 이유림이 처음엔 싫었는데 언젠가부터 귀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를 좋아하게 된다. 처음엔 단지 연애만 하자는 거였는데 이런 서로를 알다보니 연애에 목적이 생겨버렸다. 연애의 목적이 뭘까? 사랑?

유림에겐 분명 6년동안 만나온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홍에겐 사랑하진 않지만 편안하게 해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친구가 있다. 하지만 유림은 홍을 사랑하게 되고, 홍은 유림을 사랑하게 되고. 그게 과연 사랑일까? 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지만.

홍은 과거에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배신당한 경험이 있고, 그는 배신과 더불어 홍에게 스토커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우기도 했다. 그리고 홍은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학교에서 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둘은 위기를 맞는다. 유림은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도 별 다른 사이도 아니고 단지 친하게 지냈을 뿐이라 변명하지만 홍은 자신이 예전에 겪었던 사건이 반복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결국 홍은 유림이 자신을 성추행했노라며 밝히고 울어버린다. 상황역전.

과거에 홍이 당했던 일을 이제는 유림이 당하게 되었다. 유림은 경찰서에 끌려갔고 성폭행범이 되었으며, 학교에서 짤렸다. 그리고 동네 영어학원에서 강사하고 있다. 홍은 나중에 유림을 찾아가지만 유림은 예전에 홍이 느꼈던 공포심을 홍에게서 느낀다. 그러나 이내 둘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채로. 연애는 사랑으로 연결됐다? 그런가?


p.s. 1
이 영화는 연애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먼저 있던 학교에서 잘못한 일이 지금의 학교에까지도 소문이 번져있다. 이 바닥은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뒷다마가 심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겉으로는 다들 웃으며 대하지만 뒤로는 누가 어떻게 누가 어떻게 평가를 내린다. 사립학교끼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한 군데에서 잘못되면 다른 데도 못간다. 등등...

p.s. 2
<연애의 목적> 음악감독은 눈에 익힌 이름 '이병우'씨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악대학교 클래식기타과 수석 졸업하고 미국 피바디 음악원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한 그. 그는 영화판에서 음악을 담당했고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한지 얼마 되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음악 작곡가로서 그는 순식간에 자리매김했고 영화팬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가 작곡한 영화는 <마리 이야기> <쓰리> <장화, 홍련> <스캔들> <분홍신> <연애의 목적> 정도. 몇 작품 하지도 않았지만 각 영화들의 특성을 잘 살려주는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듯한 음악으로, 들리면서 들리지 않는 듯한 음악으로 관객의 가슴속에 조용히 자리잡는다.

<연애의 목적>을 봤지만 영화의 음악은 떠오르지 않는다. <장화, 홍련>에서도 그랬고, <스캔들>에서도 그렇다. 음악의 잔상은 남지만 음악은 남지 않는다. 그게 그의 영화음악의 묘미다. 자신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영화를 두드러지게 하는. 난 몇해전 그의 팬이 된 나머지 독집 음반을 따로 구입하기도 했다.

영화음악가로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봄날은 간다>의 조성우씨와 지금 말한 이병우씨. 두 사람을 주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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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6-1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제가 가장 보고 싶은 건데... 극장에서 꼭 봐야 겠어요. ^^

마늘빵 2005-06-1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네 재밌어요. 꼭 보세요.

하루(春) 2005-06-1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방준석도 요즘 영화음악에 많이 참여합니다. 그 사람도 님의 레이더에 넣어 주시길.. ^^;

마늘빵 2005-06-1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그 사람도 알아요. 잘은 모르지만. 그 사람도 영화음악 많이 작곡한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