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등록금의 나라 - 반값 등록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지금+여기 1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지음 / 개마고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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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여진이 '반값 등록금'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반값 등록금. 이것은 2006년 선거 때 한나라당에서 이주호 의원이 먼저 내세운 정책이었다. 그러나, 진보적 주장을 해왔던 정당과 단체들이 '좋은 정책을 내놓았다'고 호응해주니 이 반응이 부담스러웠던 건지, 그들은 이 공약은 "등록금을 반으로 깎는 게 아니라 부담을 반으로 줄이자는 것"이란 해명을 내놓았다. 주장은 괜찮았는데 이를 실현할 방안이 없자 슬그머니 말을 바꾼 것이다. 선심성 공약을 내세워 인기 좀 끌어보려다가 정작 인기가 있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며 어떻게 할 건데, 물으니 실은 그게 아니고, 말을 흐리면서 빠지는 수법이다.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가는 시대. 전쟁 이후부터 7,8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의 이야기다. 대학은 많고 학생수는 줄어들어 누구나 원하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입시철이 되면 인 서울의 대학들과 지역 국립 대학들이 아니고서는 교수까지 몸소 학생들을 모시러 고등학교에 영업하러 오는 풍경이 벌어진다. 대학이 많은 탓이다. 누구나 대학 갈 수 있지만 여전히 대학에 가지 않는, 아니 못 가는 사람들도 있다. 성적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돈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에 왜 가고자 하는가? 한 때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입시생이라면 누구나 대학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가야 할 타당한 이유를 몰랐던 것이다. 굳이 가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주변에 떠밀려 입학하여 공부한 뒤에는 갈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지금, 대학은 초등학생이 중학교에 진학하고, 중학생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듯 자연스럽게, 고등학생이 그곳에 진학해야 하는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에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지만 대학에 가야 할지를 묻는 학생이나 부모는 거의 없다. 대학은 이미 '국민 교육'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왜 그런가? 이 사회가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업무도, 일단 대학 졸업장을 필요로 한다. 마치, 기업에서 영어를 전혀 사용할 일이 없음에도 영어 성적과 영어 실력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업무는 따로 정해져 있고, 소수지만, 기업의 꼴을 갖춘 회사들은 모두 영어 성적을 요구한다. 국민 교육의 영역으로 들어갔으나 국가의 지원은 없는, 공부를 하고자 하는 개인이 알아서 등록금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진 것 없는 다수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까마득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등록금이 비싸면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른 상황들이 연출된다. 돈이 있는 집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만 해서 자신의 스펙을 쌓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위해 마련했다고 하는 등록금 대비 얼마 안 되는 성적 장학금을 가져간다. 왜냐면 다른 걱정 안 하고 공부만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없는 집 아이들은 공부를 해야 할 때에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씩 하면서 돈을 벌어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 이들이 일과 공부 두 가지 영역을 다 잡기는 힘들 것이다. 당연히 성적 장학금은 이들의 것이 아니다. 어쩌다 그들이 일과 장학금 둘 다 잡았다고 하더라도, 학점과 관계 없이 취직을 위해 스펙을 쌓는 데까지 기울일 여력은 없다.  

  등록금이 비싸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지만, 정작 등록금을 내야 하는 다수의 학생들은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지 않는다. 등록금을 본인이 아닌 부모님이 내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으로 체감도가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사회 문제에 그다지 관심 있는 이들이 없어서일 수도, 집이 좀 살아서 그 정도 내는 데 크게 부담이 안 될 수도 있고, 문제는 느끼지만 등록금 투쟁하기 위해 싸우는 시간이 아까워서 차라리 그 시간에 내 스펙 쌓고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타는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소수의 학생들 중에서도 자신이 직접 거리로 발벗고 나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불행히도 등록금을 내야 하는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가세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여러 근거를 들면서 고등록금을 옹호하는 주장을 펼친다. 그렇게 받지 않으면 대학이 유지가 안 된다, 건물을 지어야 한다, 다 학생들에게 투자하는 돈이다 등등 내세우지만, 이것은 대개 열어보면 근거가 아니라 핑계나 변명일 뿐이다. 캠퍼스를 짓겠다며 땅을 사놓고 놀리면서 땅값 올리기에 바쁜 재단도 있고, 등록금으로 주식놀이 하다가 날려먹은 재단도 있다. 이렇게 손실이라도 입게 되면 대학은 여태 모은 금액을 다시 맞추고자 등록금을 더 올려서 빈 구멍을 메우려 든다. 이는 회계 처리가 불분명하여 학교 법인의 재산이 아닌 설립자 개인의 재산으로 편입되는 경우도 부지기수. 교과부와 정부는 이걸 알지만 모른 척 한다.    

  이 책에는 등록금과 관련한 대학 주체와 보수 정치인들의 주장이 나와 있다. 그리고, 그들이 고등록금을 유지해야 한다고, 또는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에 대해 하나씩하나씩 구체적이고 깔끔하게 반박해낸다. 더 이상 재반론이 있을 수 없도록. 대중들이 가장 혹하는 그들의 주장은, 등록금을 내리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 이 책을 읽고난 뒤에는 교육의 질은 등록금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교육의 질은 등록금이 폭등하는 동안에도 열심히 떨어졌다. 교수 1인당 학생수, 한 강의실에 200명씩이나 들어가 강사나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고 집중도 되지 않는 교양 수업들, 낡고 닳은 기자재 등 말도 못한다.

  반값 등록금은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공부하고픈 이들이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험한 일을 하다 목숨을 잃고, 때로는 자살로 내몰리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누구에게도.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한편, 반값 등록금이 어떻게, 왜 반값 등록금이 됐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단순히 교육을 받는 이의 입장에서 액수가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닌, 교육은 공공재이고 따라서 국가와 사회가 이를 부담하는 것이 옳다는 의식, 나아가 내가 싼 값에 교육을 받으니 이런 여건을 마련해준 사회에 뭔가 기여를 해야겠다는 의식을 갖는 데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학생들은 그동안 대학을 공동체 삶을 학습하고 체험함으로써 건강한 시민의식을 일깨우는 공간이 아닌 개인의 출세 수단으로 여겨왔다. 국가가 교육을 책임져주지 않고 개인에게 맡기는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등록금 문제가 무상교육으로써 해결된다면 학생들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할 것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이들의 책임의식이 크게 고양되는 것이야말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소득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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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1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뉴스에서,
등록금 투쟁으로 여학생들이 삭발하는 것을 보니
같은 여자로서 짜안했습니다. ㅠ

당연히 사학재단 배불리는 등록금은 낮춰져야 합니다.
공부하고픈 사람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대학이라는 문제에 다다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됩니다.
모든 국민이 대학에 가는 나라가 과연 제대로 된 것이 맞을까
모든 국민이 특히 일류 대학을 가서, 그것으로 모자라 스펙을 만들려고 혈안이 된
이 나라가 제정신인 나라일까 하고 말입니다. 결국 교육도 교육이지만
일자리와 임금 격차의 문제로 되돌아 오게 되어버립니다, 저는.

좋은 리뷰입니다, 즐거운 날되세요, 아프님~

마늘빵 2011-05-18 17:47   좋아요 0 | URL
매년 그같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정작 등록금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냥 자연스러운 일들로 치부하겠죠. 모두 대학에 갈 필요도 없죠, 사실. 대학 수를 확 줄이고, 교수의 학생 1인당 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줄이면서, 입시단과학원 같이 수백명씩 한 강의실에 집어넣는 수업을 없애야 해요. 무상급식 실현했듯 이것도 실현하면 좋겠습니다.

saint236 2011-05-1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이 책 읽고 같은 생각을. 교육은 공공재인데 마치 사유재로 여기는 듯 합니다.

마늘빵 2011-05-18 17:47   좋아요 0 | URL
공공재 맞습니다. 설립자와 총장들은 자기 재산인줄 알아요. 그래서 정부가 통폐합하려고 하면 돈 달라고 하고.

루쉰P 2011-06-11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달의 당선작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들어와서 읽고 갑니다. ^^ 리뷰의 논리의 정연함이 참으로 좋네요. 저도 등록금 문제에 대해 생각은 많이 하지만 그것이 체감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하다 보니 방관자와 같은 심정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치만 리뷰를 읽으며 결국은 언제가 나 역시 저 문제로 똑같은 고통을 당할 것이라 생각하니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 32살이라서 나중에 아이들을 키우면 분명 다시 만날 문제라고 여겨져서요. ^^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마늘빵 2011-06-11 23:46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다른 분 서재에서 자주 본 닉네임이에요. 반값 등록금 시위가 고조되고 있는데 이 책도 같이 많이 팔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연회 때 공동 저자 중 한 분이 책이 별로 안 나간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모르겠어요. 당장 내가 겪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앞으로 내가 겪을 일이 없는 문제라 해도 잘못된 것이라면 당연히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봐요. 굳이 내 일이 아니어도요. 반드시 쟁취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