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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ㅣ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린비의 호모 시리즈 중 최근작이다. 호모 쿵푸스와 호모 에로스를 썼던 고미숙이 이번엔 공부와 사랑에 이어 돈에 관해 썼다. 돈에 관해선 딱히 쓸 말이 없었으나 지인의 부추김에 본인이 집필을 시작했다고. 따라서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공부하면서 써나갔다고 한다. 아마도 저자는 관련된 여러 책을 읽었던 것 같고, 그 중 몇몇 책에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책에는, 서너가지 책이 자주 인용되거나 소개되는데, 주로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저자의 언어로 풀어낸다. 유누스의 그리민 은행이나, <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 이야기, 비노바 바베라는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철학자가 지은 <버리고 행복하라>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돈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고, 불려나갈 수 있는가를 말하는 재테크, 자기계발서 식의 전개가 아닌, '화폐에 대항하는 공동체'라는 뜻으로 '코뮤니타스'를 내세워, "어떻게 하면 자신의 삶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지킬까를 고민하는" 돈의 달인이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고미숙은 고정된 밥벌이 수단인 정규직 회사원의 삶을 박차고 나와 당시 연구 중이던 고전을 가지고 글을 쓰며 밥벌이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수유연구너머의 구성원이 되기까지, 또, 수유연구너머에서 일종의 기숙사 형태의 여러 방을 만들고, 원하는 이들이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도록 삶을 꾸리기까지의 과정 등에 관해 말한다. 그 모든 것이,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쓰는 길이 아닌 적은 돈으로 알차게 사는 삶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은 수유연구너머의 공동체적 삶을 말하는 것 이상으로 어떤 특별한 메세지가 있는지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그린비의 호모 시리즈가 대개 이렇게 성격이 뚜렷하지 않고, 관련된 주제에 관해 재밌게 썰을 푸는 식으로 쓰여져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저자가 돈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저자와 연구너머 공동체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이 있는가, 하면 이외의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책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적은 돈을 정당하게 벌면서 소박하게 사는 삶에 관한 이야기고,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것. 때문에 그린비의 호모 시리즈를 이미 접한 이들은 대충 책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지만, 호모- 식의 거창한 이름 때문에 책을 집어들었다면 다시 내려놓는 것이 맞다.
이 책의 내용이 별로이고,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책을 펼치기 전에 책에 기대를 많이한 독자의 잘못이다. 한편, 책의 내용 중 이 부분은 좀 관련 단체들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고미숙은 자신이 글과 강연으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강연료가 너무 박하다는 지적을 한다(내용 전개상 엉뚱하기는 하다). 단체마다 천차만별인데, 어떤 단체는 돈이 없다고 사정사정하면서 불렀는데 갔더니 끝나고 회식을 거창하게 하더라, 또 어떤 단체는 돈을 적게 주는 것이 예의인 것 같아서 그랬다더라 하는 일화가 나온다. 적은 돈으로 공동체의 삶을 꾸리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고미숙과 수유연구너머에게도 유일한 수입원인 강연과 원고료, 인세는 매우 중요하다.
진보를 표방하고,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인물과 단체에는 마치 적은 돈을 주는 것이 예의인양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도 돈은 중요하다는 것. 공동체의 삶을 꾸리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 단지, 그들은 어떤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은 이들과 그들이 누리는 공동체적 삶을 함께 하기 위해 그 돈을 사용한다는 것. 그것만큼은 알아야 한다. 고미숙을 비롯해 연구너머 팀원들이 강연을 해봐야 얼마나 받아가겠나. 청와대나 한나라당과 끈이 연결된 이들이야, 대학 강연이나 각종 단체 강연에 참석도 하지 않고 고액의 가욋돈을 받아가겠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노동으로 정당한 댓가를 받고자 하는 것일뿐. 봉사도 한두번이지 매번 돈을 안 받거나 적은 돈을 받아가며 봉사해서 이들이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는 없다는 것.
그런데, 그린비의 이 시리즈. 인터넷체, 채팅체를 좀 절제할 수는 없을까. 각종 이모티콘과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들 써가며 친근하게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더 거부감이 든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도 재밌게 쉽게 대중적으로 잘 풀어낼 수 있다. 고려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