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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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하려는 사람에게는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적 목적을 위한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머리를 길러야 할 이유나 치마를 줄이고 싶은 이유를 학생들이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권을 제한할 때는 제한하는 사람이 그 이유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지, 제한받는 사람에게 입증 부담이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학생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것은 무엇보다 청소년에게는 기본권이 없다는 심각한 오해 때문입니다. 학생들도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의 당연한 주체입니다.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성인들 모두 ‘청소년은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가 아니다’라고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공부 때문입니다. -45쪽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결혼제도는 가부장제도를 강화할 뿐인데 굳이 동성간 결혼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리지만,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과 제도가 금지되어 있어서 ‘못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리고 가부장제도의 핵심이 결국 남성인 아버지에 의한 일방적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동성간 결혼의 인정이야말로 이 구조를 깨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85쪽

일부에서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부를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장애인을 친구처럼 생각하며 친근하게 부른다는 의도지만, 이것 역시 사랑표현의 가면을 쓴 차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업인, 동호인, 변호인, 군인 등을 굳이 기업우, 동호우, 변호우, 군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가톨릭 성당에서 서로를 교우라 부르는 것처럼 장애인들이 혹시 자기들끼리 약속하고 서로를 장애우라고 부르는 것은 몰라도, 비장애인들이 마치 우정을 베푼다는 듯이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155-156쪽

가능성 패러다임은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합니다.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한계를 느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장애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결코 장애 그 자체가 불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불가능성 패러다임에 기초한 교육과 근로기회의 박탈이 오히려 장애인들을 일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만들어버린 것뿐입니다.
-161쪽

사람은 돈만 들어가면 일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비정규직으로 자리를 불안정하게 만들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영혼이 있는 존재입니다. 불안정성이 외형적인 생산성을 높일지는 몰라도, 불안한 영혼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에는 혼이 빠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혼이 빠진 상품이 고객에게 감동을 줄 리도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경제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면이 너무 많습니다. 그걸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국가와 기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오로지 경제논리를 기반한 정책만 양산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날로 행복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삶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양극화만 심화됩니다. -188쪽

국립대 교수들은 모여앉아 "철도 공사 직원들이 우리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다니 기가 막히지 않냐?"고 한탄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런 의문을 품습니다. ‘철도 공사 직원이 국립대 교수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게 도대체 뭐가 잘못된 일일까?’ 물론 교수 되는데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박사학위 취득할 때까지 학비도 많이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억지로 시켜야 그리된 게 아니라 공부가 좋아서 선택한 길입니다. 교수들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고 원하는 글을 쓰며 그걸로 월급을 받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명예와 존경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왜 자기들이 철도공사 직원보다 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194쪽

보이지는 않지만 병역필 남성들의 내면에는 이 영화(용서받지 못한 자)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비극적인 상처들이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군가산점부터 시작해서 페미니즘과 관련한 모든 주제에 뛰어들어 맹활약을 벌이는 병역필 남성들의 비정상적인 에너지 분출현상이 그 명백한 증거입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젊은 남성들이 치러야 하는 희생이 더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병영문화를 개선하는 일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가지고 노는’ 그런 문화 속에서 청년기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낸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인권의식을 갖고 남을 이해하기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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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0-09-0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 책 읽고 있어요. :)

마늘빵 2010-09-06 12:23   좋아요 0 | URL
언급하는 영화가 옛날거 빼면 거의 다 본 거라서 저도 공감하면서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