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
김순천 지음 / 동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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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청소년들의 희망과 꿈, 자유와 좌절에 관한 이야기." 한번쯤 이런 기획이 필요했다. 암울한 10대들의 인터뷰를 동녘이 책으로 엮었다. 여기 인터뷰이로 참여한 청소년들은 10대들 중 '암울한 일부'가 아닌, '암울한 모든' 10대들을 대변한다. 우리가 뉴스나 신문으로만 알고 있던, 보도와 기사로 전해져오는 무미건조한 사실들은, 여기엔 없다. 여기에서 함께 살아가는 힘겨워하는 우리 곁의 사람들만 존재한다. 현실이 이 정도일까, 물음을 던져보면서도,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네 명의 10대가 책에 이름을 올렸다. 2년 전의 인터뷰라고 했던가. 지금 자라서 대학생이 된 아이도 있고, 자신의 꿈을 한번 접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도 있고, 여전히 괴로워하며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도 있다. 2년 전과 달리 그들의 신분이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고등학생에서 대학생, 혹은 여전히 자퇴한 소년소녀일지라도, 그들의 방황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선생님들마다 두발 규정이 달라서 아무리 깎고 또 깎아도 불려가서 맞고 머리카락을 잘리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머리를 기르면 나라 경제가 망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수업 시간에 맞기 싫어서 공상을 하는 건 애교다. 나도 고등학교 3년 동안 공상을 무척이나 많이 했다. 공상을 하다 지겨우면 노트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창밖을 보거나, 머리를 책상에 박는 행위는 바로 제재 당한다. 나름 모범생'이었다고' 그래도 봐주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원래 모범생이 아니었던 친구들에겐 가차없었다. 어쩌면 나를 자꾸 봐줘서 내가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교가 감옥인 건 여전한가보다. 아니, 요즘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그때보다 더 나쁜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기도 하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OO야, 정석 공부하고 있니?", "네? 정석이 뭐에요?", "아니다... 됐다. 교실로 가봐." 당시 선생님와 나의 짧은 대화다. 지금은 더 심하지만, 당시에도 선행학습이란 게 있었다. 이건 누구의 말마따나 학원이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이다. 선생님은 내게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공부하고 있냐고 묻고 있었고, 나는 거기에 대고 그게 뭐냐고 묻고 있었다. 선생님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이 짧은 대화를 기억하고 있는 건, 그 선생님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내게 그걸 아직도 공부하지 않고 있으면 어쩌냐고 말했다면, 그 선생님에 대한 나의 기억이 달라졌을 것이다. 

  책 속에서 어느 학부모가 전한 이야기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 친구가 그랬단다. "수학 어디까지 나갔어?", "아무것도 안 나갔는데", "너 그렇게 공부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도 못 들어가", "너 왜 이렇게 망가졌냐" 그날 그 아이는 펑펑 울었다. "엄마,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키지 그랬어?"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다.

  학생에서 선생으로 신분 탈환을 한 지난 3년 간,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이었을까. 그걸 선생이 아닌 지금에서야 생각해보고 있다. 나름 한다고는 했지만, 돌이켜보면 못난 부분이 많았다.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 성적이 아닌 다른 것으로 - 차별을 했던 것 같고, 매를 들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매를 들었고, 감정을 절제한다고 했지만 감정을 실어서 때리기도 했다. 다 못난 탓이다. 마음만큼 현장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다. 내 탓이었다. 좀 더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준비된 선생이었다면 달랐을텐데. 다행히 난 미숙한 그 모습을 뒤로 선생을 하고 있지 않지만, 학교엔 그 당시의 나보다 훨씬 더 경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더 미숙한 선생들이 쎄고 쎘었다.  

  우리네 선생들은 보고 배운 것이라고는 본인의 학창 시절밖에 없어서 다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하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뉴질랜드나 덴마크 등에서 공부하다 온 아이들은 한국의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밖으로 돈다. 자율주의에서 규제주의의 영역으로 넘어온 그들이 적응할 수 없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그곳으로 갈 수는 있어도, 그곳에서 이곳으로 오는 건 애초 불가능했는지도. 대안학교와 일반학교를 놓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학생도 다르지 않다. 대안학교로 가면 일반학교에 돌아와 적응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고민은 한없이 길어지기만 한다.  

  참 다양한 환경에 처해있는 학생들이 나온다. 어떤 아이는 돈을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떤 아이는 타워팰리스에 산다. 그러나, 그 아이도, 이 아이도, 고민이 많다. 힘들다. 주어진 환경은 달라도 모두가 힘들다. 강남 아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강남의 한 정신과 의사는 강남 학교에 가서 현장 조사를 해보고 놀랐다고 한다.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녀석들이 많았던 것이다. 강남 학부모들의 등쌀에 못이겨 고통스러워 했던 것이다. 통보했더니 알아서 찾아왔단다. 스스로 알고 있는거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아이들을 건드려주지 않았던거다. 한번만 말을 걸어주면 되는데. 

  우울한 청소년과 우울한 사회다. 이 아이들은 힘들어하면서도 대학은 끝끝내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왜 대학에 가야 하냐고 물으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이게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하는 대답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 어릴적만해도 친구들은 꿈이 많았다. 변호사, 의사, 판사는 물론이고 소방관, 경찰, 대통령, 간호사, 유치원 선생님, 무용가 등 참 다양한 직업이 나왔다. 그땐 변호사를 하고, 의사를 하려고 해도 그 이유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나오는 직업도 제한되어 있지만 그 직업을 가지려는 이유도 똑같다. 우리들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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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9-15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극적인 통제 집단의 역할을 하던 학교가 변하고 있습니다. 그 통제에 불안감을 느끼는 집단도 있겠지요. 남자 고등학교인 우리 학교도 여교사 비율이 65%가 넘어서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억압과 통제 일변도의 학교를 유지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관리자의 경영 마인드가 정말 필요한 시점인데... 아래로부터의 변혁... 그건 단위학교에서 일어나야 하는데요... 예전같이 교사모임도 없어서...(교사 집단이 20년 전부터 그대로 늙어오고 있거든요.) 앞길이 깜깜합니다.

마늘빵 2009-09-15 09:08   좋아요 0 | URL
네, 단위 학교에서, 학교 내 선생님 개개인이 변화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도 바뀌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아닌 교사들이 많이 있죠. 교사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아닌 사람들이.

카스피 2009-09-1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스승으로서의 선생님보다 강사로서의 선생님이 더 많은것이 현실이지요.학교도 학부모도 모두 스승보다는 강사를 더 원하고 선생님들도 스스로 강사가 되어가는 것이 어찌보면 정말 안타깝습니다.

마늘빵 2009-09-15 19:28   좋아요 0 | URL
네, 스승보다 강사가 많고, 그나마도 제대로 된 강사 노릇도 못하는 직업 교사들이 많죠. -_- 현실이 또 그래요. 말씀하신대로 서로 원하는 게 같으니. 교사는 학부모가 원하니 애들 인성교육이다, 전인교육이다 신청 안쓰고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상처입는 건 결국 애들이죠.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고민 있으면 선생님 찾아와라, 라는 말은 이제 안 통합니다.

BRINY 2009-09-1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도 변하지만, 학부모도 많이 변했다고 느낍니다.

마늘빵 2009-09-15 19:28   좋아요 0 | URL
네. 애들 위해서 힘써봐야 학부모한테 욕만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