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피터 싱어가 책 냈다. 그럼 바로 장바구니에 넣고 카드 결제한다. 이런 필자들이 몇 있는데, 싱어는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뒤늦게, 바꿔 말하면 대략 1~2년 전쯤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온 철학자다. 어떤 철학자보다 쉽게 글을 쓰고, 어떤 철학자보다 철학자 같지 않고, 어떤 철학자보다 몸으로 행동하는, 나이도 많은 철학자다. 산책자가 지난해 <죽음의 밥상>에 이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를 펴냈다. 원제는 <The life you can save>. <죽음의 밥상>이 육식의 횟수를 줄여주었다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는 우선, 장기를 기증하게 만들었다. 장기 기증과 기아는 별 상관이 없지만, 이 책을 잃고나서 장기를 기증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왜 절반이 굶주리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화체로 간단하게 의문을 해소해주었다면, 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는 개인의 도덕적 행동에 호소한다. 많은 이들이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는 현실을 알고 있고,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은 하는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절반은 아직까지 굶주리고 있으며, 그들을 구하려는 이들은 없는가? 이게 싱어가 촛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다.
내년부터 적용될 7차 개정 중학교 1학년 도덕 교과서를 굳이 들먹이지 않고도,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도덕적 행동을 하게 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 도덕적 지식을 쌓고, 도덕적 사고를 하며, 이것은 곧 도덕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다, 는 도덕적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의 절반을 구해야 한다,는 도덕적 사고를 한다. 그런데, 왜 개인의 도덕적 실천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가. 교과서에서는 이것을 '실천적 의지'의 결여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비판한 부분도 이 지점이다.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싱어는 여러 지점에서 도덕적 실천을 하지 못하는 개개인을 압박한다. 이 책을 덮은 뒤에 나는 서문에서 싱어가 말한대로 "그의 의견에 동의해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이 책은 지식과 사고만으로 그치던 수많은 사람들을 행동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이미 이 책의 전신이 된 뉴욕타임즈(?)의 칼럼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소득의 50%를 기부하는 클럽을 만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소득의 5%를 내놓고 있다. 싱어가 요구하는 실천 지침은 소득의 5%를 내놓는 것이다. 이 책 어딘가에서 구체적인 비율과 수치를 들어가며 - 달러를 기준으로 - 소득 대비 합리적인(?) 기부 금액을 설정하기도 한다.
절반이 굶주린다는 사실로부터 세끼 식사 다 하는 우리들이 기부를 해야 한다는 당위가 도출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싱어의 말처럼 "뭔가를 할 ‘권리’가 있다는 것과 그것을 할 ‘당위성’이 있다는 것은 다르다.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남에게 강요할 권리는 내게 없다. 하지만 어떤 일이 어리석은 일이라거나, 혐오스러운 일이라거나, 잘못된 일이니 하지 말라고 말해줄 권리는 있다." 기부를 하는 자는 자신의 행위를 널리 알려 다른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기부를 하지 않는 자를 향해 기부를 하라고 강요는 하지 못해도, 기부를 하지 않는 건 결코 좋지 않아, 라고 말해줄 수는 있다.
구해야 할 생명이 너무나 많아서 내가 구한다고 해도 뭐 티도 안날 것이다,라는 생각은 금물. 당신과 당신과 당신과 당신과 당신과 당신과 당신들이 모여 티도 안나는 생명을 '티나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 티도 안날거라고, 내가 돕는다고 기아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미리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 티나게 하고 싶다면, 내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더 기부를 하게 만들면 된다. 그렇다. 기아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내놓는 것이다. 싱어가 이 책을 통해 우리의 행동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지점이 있다면, 제발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책의 부제를 하나 달자면, '도덕적으로 삥 뜯기' 정도.
싱어가 제시하는 '삥 뜯기'의 기준은, 실천할 수 없을 만큼 강하지 않다. 고작(?) 우리 소득의 5%를 -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에 한해서'라는 단서가 붙기는 한다 - 내놓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소득의 5%를 내놓고도, 매일 밥을 먹을 수 있고, 옷을 입고 다닐 수 있고, 차를 타고 다닐 수 있고, 가끔씩 영화도 보고, 책도 산다. 어쩌다 값비싼 구두를 살 수도 있다. 그 정도면 "우리는 절대 빈곤을 끝장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기부금을 갖추게 된다." 반면, 5%를 내놓지 않고 BMW를 몰거나, 일년에 수 차례 해외 여행을 다니고, 값비싼 양주와 와인을 홀짝이면, 그들의 가난을 끝장 낼 수 없다. 우리가 고작 고급 취미를 조금 줄이면, 그들은 그 돈으로 '살 수' 있다. 엄청난 차이다. 그런데 우리는 실천하지 못한다. 아니 않는다. 내가 아니라 '그들'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기부는 김장훈이나 문근영같이 착하고 마음이 큰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인줄 알았다. 기부를 하는 삶은 0에서 1을 생산하는 것이며, 그 1에 대해서는 아무리 칭찬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기부를 할 수 있는 여건에서 기부를 하는 것은 +1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0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며, 기부를 할 수 있는 여건임에도 기부를 하지 않는 것은 0이 아닌 -1의 삶을 사는 것이다. 실제로 돈을 번지 햇수로 5년째, 서울 바닥에서 옥탑방 말고는 갈 곳이 없어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청춘이다. 나는 분명 싱어의 기준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층은 못된다. 소득의 5% 실천에 동참하는 데는 아직까지 망설여지지만, 독서 이후 뇌사시 모든 장기를 기증하는 데에 동의했고, 앞으로 간간히 기부금을 - 이전보다 더 - 내겠다고 다짐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는 싱어의 말에 따라 이 같은 다짐을 밝힌다.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은 단지 상품을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람이 인생을 돌이켜보며 자신이 한 일 중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은 남들을 위해 자신이 사는 곳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든 일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보면 되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동기 부여가 세상에 있을까요?”(故 헨리 스피라, 동물 권익 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