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킹 베를린 - 천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소니아 로시 지음, 황현숙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한국에 '88만원 세대'가 있다면, 유럽엔 '천 유로 세대'가 있다. 천 유로. 환율 변동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대충 한국 돈으로 100만원 가량이라고 한다. 한국의 물가와 한달 생활비를 유럽에 고스란히 적용할 수는 없고, 유럽이라고 해서 다 같은 유럽이 아니니 동네(?)마다 체감 '천 유로'는 다르겠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젊은 이들의 상당수를 지칭하는 용어임에는 틀림없다. 천 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퍼킹 베를린. 대학에 가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독일로 온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표지를 넘기고서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이름. 소니아 로시. 설마 본명은 아니겠지? 본명이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먼저 스쳤다. 다행히(?) 본명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자 소개를 통해서 그녀의 주변인들은 그녀임을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열아홉 살에 이탈리아를 떠나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니아는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했다. 시간당 임금이 거기서 거기인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음란 채팅 알바를 했고, 옷을 벗었고, 돈을 더 벌기 위해 마사지방에 들어갔으며, 또 돈을 더 벌고자 몸을 팔았다.  

  독일에선 성매매가 합법이다. 그래서 그녀는 손님을 선택할 수 있었고, 계약 조건에 따라 업소를 옮겨다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마이킹(?)이나 포주의 학대 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이 책에 서술된 바에 의하면. 독일에서 섹스를 사고 파는 건 마치 마트에 가서 쥬스를 고르고 돈을 지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구매자는 업소에 와서 여자를 고르고, 합당한 값을 치르고 섹스를 한다. 그저 섹스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했다.  

  다시 돌아와서, 소니아는 처음 음란채팅을 하고 옷을 벗을 때까지만 해도 많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 옷도 벗었는데 마사지까지만 하자, 마사지는 하되 섹스는 하지 않겠다, 마사지에 오랄을 했고, 섹스로 넘어갔다. 기왕 섹스할거라면 정식 성매매 업소로 가자, 그리고 결국 성매매 업소에서 일을 하고 나중에는 벌이가 더 나은 업소를 찾아 멀리 떠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함께 사는 남자친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며 많이 싸우기도 한다.  

  그녀가 꿈꾸는 직장은 성매매 업소가 아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해서 번듯한 직장에 자리를 잡고 싶어했다. 그러나 서빙 알바를 해서는 학비를 충당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 아이까지 낳아버렸다. 딱히 직장이 없는 남자친구는 그녀의 집에 얹혀 살았고,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다른 일을 해서는 도저히 필요한 돈을 벌 수 없었다는 그녀에게 정말 그 길 밖에 없었냐고 묻기는 어렵다. 우리는 소니아를 이해해주는 동시에 다른 '소니아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그 전에 또 하나 물어야 할 것은, 이게 과연 문제거리가 되는 일인가, 라는 질문이다. '성노동'의 관점에서는 섹스를 사고 파는 일을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일과 동일하게 본다. 사람이 자신의 손과 발을 이용해 일을 해서 돈을 버나, 동일한 몸의 다른 부위인 성기를 이용해 - 성기뿐 아니라 입 등을 이용한 섹스도 포함해서 - 돈을 버나 어차피 같은 '노동'이라는 시각은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소니아의 지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읽어나가야 하는데 - 단지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베를린의 높은 학비와 생활비 정도 - 한국의 독자인 나뿐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이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의 슈피겔은 "<퍼킹 베를린>이 출간 직후 단박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한 사실은, 젊고 도전적인 독일의 수많은 여대생들이 이와 같은 위험한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라고 평했다. 분명 자신의 성기를 이용해 섹스 노동을 하는 것과 팔다리를 이용해 노동을 하는 것을 동일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의 신체에 달려있는 부위라고 해서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며, 별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듯 하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이 마지막까지 사수해야 할 것은 자신의 건강한 몸이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실험실 생쥐가 되기도 하고, 장기를 팔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실험실 생쥐가 되거나, 장기 매매의 대상이 되거나, 성매매의 대상이 되는 것을 동일선상에 놓는 이유는, 나 역시 성매매는 자신의 팔다리를 이용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켜내야 할 최후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팔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무자비한 자본과 권력은 개인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팔 것이 없는 사람들은 제 몸 밖에는 팔 것이 없다. 살긴 살아야겠고, 팔 것은 없다. 이해한다. 그들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자는 말이다. 그러한 선택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우리가 이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상황을 개선시킬 필요도 없다. 내가 가진 지식을 팔거나, 그들이 가진 몸을 팔거나 그건 모두 동일하므로. 하지만, 정말 두 가지가 동일한가, 다시 한번 물어보면 아니라고 말하겠다. 우리가 어떤 회사에 취직할까를 고민하는 것과, 그들이 어떤 실험실을 택할까, 어떤 업소를 택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분명 차원이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귀면 섹스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사귀지 않더라도 눈이 맞고, 마음이 맞으면 섹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에 돈과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매개 없는 자연스러운 섹스'와는 분명 다르고, 돈과 권력의 개입은 우리가 지양해야 할 바이며, 우리의 몸은 지켜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매매에 대한 내 생각이다.  

p.s. 이 책을 읽고서 관점에 따라 높은 학비와 생활비, 그리고 부모의 보호 아래 있다가 사회에 갓 나온 젊은이들에 대한 사회 제도적 방안 등을 논할 수도 있다. 언급한 모든 것이 맞물려 있어 함께 논의하는 것이 마땅하나 여러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게 되면 정신 사나울 듯 하여 이 글에선 다른 부분은 가급적 축소하고 성매매에 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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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6-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안녕~
요즘도 바쁘게 지낼 당신, 감기 조심해요.
요즘 감기는 두통이 장난 아닌 듯...-_-

마늘빵 2009-06-01 15:07   좋아요 0 | URL
네. 엘신님 감기 걸리셨구나? 여름 감기 안좋아요. 저는 좀 피곤한거 빼고는 괜찮아요.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게을러져서... 언능 나아요.

Pisces 2009-06-02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에 돈과 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매개 없는 자연스러운 섹스'와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마늘빵 2009-06-02 22:56   좋아요 0 | URL
첨 뵙습니다. 오히려 진보 쪽에서 우리네 지식이나 팔다리를 이용해서 다 파는데(노동), 성이라고 못 팔거 있냐는 시각을 가진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릴케 현상 2009-06-04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에 보수적인 편인지^^ 깊은 교감을 나누지 않은 사귐 상태에서 섹스하는 것조차도 그닥 긍정하진 않아요. '자유로운 섹스'에 열려 있지 않은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개없는 자유로운 섹스'라는 건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한편으론 아프님 말처럼 예전에 성매매법 얘기로 시끄러울 때 진보쪽 사람들이 자본주의 어쩌구 할 때 좀 난감했었죠.
여하간 머리나쁜 저로선 케 세라...

마늘빵 2009-06-04 11:05   좋아요 0 | URL
저도 물론 교감 없는 섹스는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 사귀지 않는 상태에서도 교감은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전제한거에요. 그런 점에선 저도 많이 자유롭진 않은 듯... '매개'라는 건 결국 돈과 권력인데, 넓게 보면 모든 남녀 관계를 포함한 인간 관계가 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이렇게 확장하다보면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라는 말처럼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결과를 얻게 되죠.

진보쪽에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성매매도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저도 희안합니다. 이건 성매매당에서 이야기해야 할 부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