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네크세노스>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매춘부인 그녀야말로 페리클레스의 변론술 선생이라고 말한다. 즉 민주주의의 기본인 변론술도 매춘부 여성이 가르쳤던 것이다. 철학과 민주주의의 기원에 매춘부가 있었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매춘을 하고 철학도 가르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가르쳤던 헤타이라는 원래 신전에서 일하는 여성이었다. 그들은 상대방에게 성적 쾌감을 주고 자신들도 느끼며, 그뿐만 아니라 문화를 생성해내는 힘을 가진 여성이었다. 벨은 쾌락과 생식으로 여성이 분할되기 이전의 여성으로서 헤타이라의 모습을 그렸다. -39쪽
성 상품화 또는 상품이 된 성의 뒷면에는 공공연하든 비밀이든 반드시 상품이 되지 않은 성과 성의 본질이라는 말(개념)이 상정되어 있다. (중략) 성적인 것은 상품이 아니어도 존재할 수 있다는 공통된 인식 위에서만 비로소 유의미한 상품이 될 수 있다. -56쪽
상품이 됨으로써 비로소 근대적인 의미에서 노동(개념)이 탄생했으며, 노동력 상품이 탄생함으로써 비로소 상품이 된 노동(임금 노동)인 생산 노동의 구별이 성립되었다. 동시에 양자의 공통된 본질로 노동 그 자체(라는 개념)가 성립된 것이다. 상품이 된 노동의 소외감에 의해 상품이 되지 않은 노동 그 자체에 장밋빛 인간의 본질이자 인간성의 확증 행위인 듯한 심장이 부여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 상품이 됨으로써 비로소 상품이 된 성(금전을 매개로 한 성)과 상품이 되지 않은 성(가령 애정만을 매개로 한 성)의 구별이 생겨났고, 양자의 공통된 본질로서 성 그 자체의 쾌락이라는 성에 관한 인식이 탄생했다. -56-57쪽
선진적 상품사회에서 ‘성교육’의 필요성이 증가하는 현상도 이렇게 보면 아주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성 상품화가 진전되는 가운데 시장경제의 냉혹한 법칙 아래서 성적인 것이 그 밖의 노동이나 상품과 차이가 점차 희미해지는 상황에 직면하여, 성이 인간의 본질에 관여하는 중대사이자 삶 그 자체라는 이데올로기 교육을 통해 성의 본질, 즉 상품이 된 성의 가치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또한 급속히 부패하는 상품의 가치 하락을 막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아니, 그것은 나아가 상품이 된 성의 교육 효과와 맞물려서 상품화한 성의 소비자를 생산하는 소임까지 담당하고 있다고 하겠다. -58쪽
성산업 밖에 있는 여성의 처지에서 보면, 가사 노동과 성상품 시장은 완전히 다른, 분단된 영역인 듯하다. 그런데 남성의 처지에서 보면, 자신의 신체를 매개로 항상 그 절반은 성 시장에, 남은 절반은 가족 관계 내부에 두는 식이 된다. -66쪽
"개인 생활이 관리되늰 복잡한 현대 생활의 기계적 매너리즘을 감소시켜서 그 무미건조한 단조로움을 끝내고 생활에 활기와 변화를 주는 것이 매춘의 영향력"(엘리스)-72쪽
자본․국가가 여자를 취득하는 방법은 처에 대한 남편의 점유율을 몇 퍼센트씩 훔쳐 내는 교묘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이 사회는 외관적으로 일부일처제의 균형적 제도를 이용하면서 자본․국가에 의한 권력 구조를 재생산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여성을 빼앗긴 남성들에게는 실제와 비슷한 일부다처제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디ㅏ. 바로 시장에서 성산업에 의해 여성이 공급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이는 여성의 성적 서비스에 대한 일시적 사용권만을 상품화해서 파는 방식이며, 성적 노동력인 여성 그 자체를 파는 것은 아니다. 그 자원은 항상 자본의 손 안에 있다. 이렇게 해서 성산업에서 남자들은 일시적으로 일부다처제를 누린다. 이것이 바로 자본과 국가에게 빼앗긴 처에 대한 지배를 메워 주는 반대급부이다. -76쪽
연애는 성적인 욕망을 혼인에 의한 가족 형성으로 매개하는 성애의 특수 형태이다. -98쪽
연애는 특정한 남성 이외의 남성과 성교섭을 하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금욕을 의미했다. 한편, 연애로 연결되지 않는 성적 행위는 성노동자들처럼 불특정한 남성과 성교섭하는 것을 함의하는 성적인 욕망의 노골적 상징이 되었다. -102쪽
성적인 욕망을 사고파는 것은 남성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 소비자로서 욕망 충족을 위해 화폐를 쓰는 행위와, 그 욕망의 환기와 충족의 구조 면에서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105쪽
재분배와 호혜 교환에서는 물건을 받는 쪽 욕망의 동기는 부차적이며, 어떠한 물건을 줄 것인가 하는 결정권은 보내는 쪽에 있다. 따라서 받는 쪽의 욕망은 받은 물건과 보낸 쪽의 인간관계 속에서 나중에 형성된다. 이에 비해 교환은 사는 쪽의 욕망이 선행한다. 사는 쪽에 ‘사고 싶다’는 욕망의 동기가 먼저 형성되지 않으면 구매 행위는 일어나지 않으며, 물건의 이동도 실현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교환이란 화폐와 상품 사이에 일어나는, 시장 경제의 교환이다. -109쪽
도덕적으로 성매매의 가치는 항상 혼인에 의한 성교섭보다 하위일 것, 즉 행위 선택 시에 항상 혼인 관계의 성교섭을 우선한다는 것이 가치관의 타협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혼인을 해서 특정한 남성과 지속적으로 성교섭을 할 것인가, 또는 불특정한 남성과 시장경제적 계약에 기반한 성교섭을 할 것인가는 사회에서 비중이 같은 선택지가 아니다. 후자를 선택하는 일은 언제나 억제되어야 한다. 이 억제의 대가로 보통 여성의 노동력보다 비싼 가격이 설정된다. 성매매의 가격이 고가인 것은 수급의 불균형, 즉 희소성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도덕적 가치 등급에서 하위에 위치한 대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118쪽
일부다처제는 모든 남성이 선택할 수 있는 혼인 제도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수의 남성이 선택하는 혼인 제도이다. 성매매 시스템은 처 여러 명을 특정한 남성에게 할당하는 일부다처제와는 달리, 여러 불특정한 여성이 시장에 의해서 그때마다 일시적으로 불특정한 남성의 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성매매 시스템은 근대 자본주의의 ‘평등’ 이념을 실현한다고 하겠다. -123쪽
"오늘날 여자는 (중략) 어차피 자신을 한평생 사줄 상대를 찾아야 하는 상품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결혼이 남자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라는 기본적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즉 재래 남녀 관계의 근본적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단지 연애의 색을 덧칠해서 만족하고 있다. 이는 매물인 여자에게 무사 부인의 예복 대신에 양장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겉모양만 근대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야마카와 기쿠에)-133쪽
쾌락의 성은 파는 행위가 규탄을 받고, 생식의 성은 파는 것이 되지 않고 찬미되는 도식은 어딘가 좀 이상하다. 생식은 성노동에 포함되지 않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현실을 둘러보면 이미 생식은 성노동이 되었다. 대리모나 정자은행은 생식의 성을 팔아서 돈으로 바꾸는, 바로 성노동이 아닌가? -144쪽
성매매 반대론에서는 성매매가 노동이 아니라는 근거로서, 노동은 그 결과가 노동자에게서 분리되어 독자적 의미를 갖지만, 성은 인격의 일부여서 성매매 행위와 여성의 육체에서 성매매가 갖는 의미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든다. -194쪽
연애는 멋있다. 그런데 연애는 상대하고 사이의 관계성에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질 환상이 있기에 멋있는 것이다. 자신의 연애를 객관화할 수 있는 단계에서 연애 관계는 안정되고 풍부하게 변한다. -204쪽
제가 여성을 사러 가는 행위에도 그런 공포감이 있습니다. 아마 시작은 쉽겠죠. 기쁘게 해주려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의 뭔가를 발산시켜 준다면 그걸로 족하죠. 단, 힘들이지 않고 마음이 편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이번에는 그녀와 하는 관계가 시큰둥해져 멀어지게 되죠. 즉 단지 돈을 매개로 한 섹스의 거래가 남녀 관계로 발전하는 게 무섭다고나 할까요. 역시 섹스는 그런 실마리를 제공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성매매는 노동이라고 생각하지만, 노동임과 동시에 섹스 그 자체가 인간 관계가 시작되는 한 부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데라카와, 자유기고가 30대)-306-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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