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구판절판


모든 사회는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자신의 채색된 렌즈를 통해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서구문화의 유별난 점은 그것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또 너무나 강력해졌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을 비교해볼 ‘타자’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거나 우리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여기는 것이다.-23쪽

라다크 사람들은 운좋게도 개인의 이익이 전체 공동체의 이익과 상충하지 않는 사회를 물려받았다. 한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손해가 되지 않는다. 가족과 이웃에서부터 다른 마을 사람들과 낯선 사람에 이르기까지 라다크 사람들은 남을 돕는 것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한 농부가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것이 다른 농부에게 흉작을 초래하지 않는다. 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가 이곳의 경제를 이루고 있다. 다시말해서, 이곳은 공생의 사회인 것이다. -75쪽

사물이 어떠해야 된다는 생각에 매달리기보다 그들은 복되게도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106쪽

라다크 사람들에게도 슬픔과 문제가 있다. 그들도 병이나 죽음에 직면하면 슬퍼한다. 내가 본 것은 절대적인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해마다 산업화된 세계로 내가 돌아올 때 그 대조는 점점 더 두드러진다. 삶의 그토록 많은 부분이 불안감과 공포로 채색되어 있는 우리에게는 집착하지 않는 것, 우리 자신 및 우리의 주위와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라다크 사람들은 확장된, 포괄적인 자아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우리처럼 두려움을 느끼면서 자기보호막을 쳐놓고 그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은 우리가 자부심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자존심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들의 자존심은 의문의 여지없이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109쪽

오늘날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교육’이라고 불리는 과정은, 똑같은 가정과 똑같은 유럽중심의 모델에 기초를 두고 있다. 보편적인 지식이라는 동떨어진 사실과 수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책들은 지구 전체에 적합한 것으로 의도된 정보를 전파한다. (중략) 서구의 교육체계는, 온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환경에서 나오는 자원을 무시하고 똑같은 자원을 사용하도록 가르침으로써 우리 모두를 더 빈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교육은 인공적인 결핍을 만들어내고 경쟁을 유발한다. -140쪽

먼 오지의 자급경제 속에서는 산업세계의 중심에서든 GNP를 사회복지의 주 지표로 보는 체계에는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다. 그 체계에서는 돈이 사람 손에 건너갈 때마다 -토마토를 팔든 자동차 사고 때문이든 - 그것은 GNP에 합산되고, 그만큼 더 부유해졌다고 계산된다. 따라서 흔히 환경이나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도 불구하고 GNP부양 정책이 추구되는 것이다. (중략)
상황은 아주 터무니없게 되었다. 자기의 뜰에서 키운 감자를 먹는 것보다 나라의 다른 편에서 키워서 가루로 만들고 얼리고 말려서 만든 화려한 포테이토 과자를 사서 먹으면 경제를 위해 더 낫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소비는 물론 더 많은 운송, 더 많은 화석연료, 더 큰 오염, 더 많은 화학첨가물과 방부제,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더 큰 거리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GNP의 증가를 의미하고, 그래서 장려된다. -175쪽

오늘날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더 많은 자원착취와 더 많은 기술혁신, 더 큰 시장, 더 큰 이윤을 향한 무자비한 추진력이다. 금전적, 심리적 압력이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맹목적인 소비주의로 몰아붙이고 있다. 좌우명은 "인류의 향상을 위한 경제 성장"이다. 광고와 대중매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지를 알려주고 있다. 즉, 현대적이고 문명화된 부유한 사람이 되라고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187쪽

현대적 상황에서 경제개발이 다양성을 증가시켰다고 믿기 쉽다. 효율적인 운송과 통신 덕분에 여러 문화권으로부터 많은 다양한 음식과 생산품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문화적 경험을 용이하게 만든 체제 자체는 그러한 다양한 문화를 말살시키고 세계 전역에 걸쳐 지역문화의 차이를 제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링곤베리와 파인애플 쥬스는 코카콜라로 대체되고, 모직의복과 면 사리는 청바지로, 야크와 고지대의 소들은 저어지 암소로 대체되고 있다. 다양성이란 같은 회사에서 제조한 열 가지 종류의 청바지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14-215쪽

문화적 또는 경제적 고립주의로 후퇴하지 않고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역 전통을 북돋울 수 있다. 문화적 다양성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남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이국적인 문화를 우리의 소비를 위해 꾸러미로 만들어 이용하고 상업화하는 것도 아니다.
문화적 차이를 되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불필요한 무역을 줄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 것이다. 바로 지금도 우리 납세자들의 돈이 수송을 위한 하부구조를 확장하고, 무역을 위한 무역을 증진시키는 데 쓰이고 있다. 우리는 대륙 전체에 걸쳐 우유에서 사과와 가구에 이르기까지, 그 도착지에서 쉽사리 만들 수 있는 온갖 물품을 수송하고 있다. 그 반대로 우리가 하고 있어야 할 것은 지역 경제를 강화하고 다양화하는 일이다. 수송을 위한 보조금의 감축과 제거를 통하여 우리는 결정적으로 쓰레기와 오염을 줄이고, 농민의 지위를 높이고, 공동체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 -215-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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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08-08-28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작권 문제로 시끄러워져서 참 의외였어요.
김종철 발행인이나, 녹색평론사가 일부러 그럴만한 사람들이 아닌데,
아무래도 저자가 처음부터 뭔가 오해를 했던 모양이예요.
아니면 중앙북스에서 뭔가 대단한 조건을 걸고 저자를 빼가면서,
이런 해프닝을 만든 건지도 모르지요.

녹색평론사를 먹여살리던 책이었는데, 참 안타깝네요!

마늘빵 2008-08-28 15:52   좋아요 0 | URL
저도 자세한건 모르지만, 굳이 헌책방 뒤져가면서 녹색평론사 책으로 구한 이유는, 녹색평론사야 말로 이 책의 내용대로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중앙북스는 반면에 전혀 그와는 상관이 없죠. 하드커버도 맘에 안들고, 비싼 책값도 맘에 안들고. 중앙북스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이 책에 어울리는 출판사가 아님은 확실합니다. 새책을 좋아하지만 굳이 싸지도 않은 헌 책 뒤진건 그런 이유랍니다.

2008-08-29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29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