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주어진 감정을 마비상태로 만들지 말고 예민하게 하고, 또 그러면서도 튼튼하게 키우는 데는 그 마음이 수시로 자극되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것은 감정이기 때문에 자극에 의해 촉발되고, 자극에 의해 성장한다. 가장 좋은 자극은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오는 그 사랑이다. 자신에게 오는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그 사랑을 보내는 존재를 감지한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은 내게 소중하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 슬픈 일을 겪었을 때, 그것을 지켜보는 나는 그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경험한다. 깊은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랑에 의해 자신 안에서도 꿈틀거리는 그 싹을 느끼고 자신에게 베풀어진 그 사랑에 반응한다. 그리고 반응하면서 내 마음을 키운다. -74쪽
그런 반성(자신의 이기적 행동에 대한 반성)이 가능해지면 사회 도처에서 사회의 관습 때문에 스스로 무감하게 누려 왔던 특권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편하면 나의 편안함을 위해 두 배 이상 애쓰는 누군가가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더 이상 자기 몸 편안한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 도처에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할 방법조차 갖지 못한 채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눈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의도적으로 끈질기게 약자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분노를 느끼고 그 억압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사회적 노력을 할 수도 있다. -83쪽
오곡은 곡식 중에서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여물지 않으면 비름이나 피만도 못하다. 인의 가치 역시 여물게 하는 데 달려 있다. (<고자 상>19)-84쪽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자 상>15)-97쪽
마음을 키우는 데는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사람됨이 욕심이 적은 사람이라면 마음을 보존하지 못한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드물고, 사람됨이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마음을 보존한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역시 드물다. (<진심 하>35)-100쪽
마음의 기능을 먼저 확고하게 세우면 감각기관이 그 자리를 빼앗지 못한다.(<고자 상>5)-102쪽
공자는 <논어>에서 "옛날 공부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위해 했는데(爲己) 요즘 공부하는 자들은 사람들을 위해 하는구나(爲人)"(<논어>헌문 25) 라고 한탄했다. 자신의 본성을 실현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면,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고 그들에게 미칠, 혹은 그들로부터 얻을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하는 학문은 위인지학(爲人之學)이다. 그 무엇인가는 통상 ‘명예와 공적’이다. -109쪽
공자 이래로 유학자들은 자신들의 인생 모토를 "스스로의 도덕성을 키워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脩己以安人)으로 정했다. 자신들의 본성을 제대로 키운다면 세상 사람들을 향해 그 측은지심을 발휘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군자는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목적으로 하게 되면 권력을 가진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본성에 의해 행동하는 군자의 당당함은 없어진다. 자신을 팔아야 하는 자의 가벼움을 면하지 못하게 되고, 그렇다면 그는 더 이상 군자가 아니게 된다. (중략) 세상에 쓸모가 없는 것은 위기지학 뒤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세상에 쓸모 있음은, 이 세상 모든 가치의 원천인 마음을 제대로 키워 냄으로써만 성취되는 일이다. 아무리 목표가 아름답더라도 그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면 이는 근본과 말단을 전도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보기 좋은 결과를 이루어 냈더라도 사상누각일 뿐이다. 나를 움직이는 것이 외부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110쪽
내 인격이 성장한다는 것은 내가 더 많은 사람의 삶에 관여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얽힌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며 그것들을 바른 길로 돌리기 위해 고심하는 것이다. -124쪽
사람들에게는 차마 못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거리낌 없이 하는 일에까지 확충해서 적용하는 것이 인이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거리낌 없이 하는 일에까지 확충해서 적용하는 것이 의이다. (<진심 하>31)
이는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확대해 가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매정하게 대할 수 없는 대상을 넓혀 가고 양심에 걸려서 하지 않는 일들을 넓혀 가는 것이다. 결국은 더 많은 대상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넓혀 가는 것이다. 내가 넓힌 내 마음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되고, 이제 그 길은 나만이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왕래하며 소통하는 세상의 것이 된다. -140쪽
좋은 삶은 자신의 인격을 키워 가는 과정이며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밟을 수 있는 올바른 길을 닦는 일이다. 올바른 길이란 인간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물질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곳이며, 그 위에서 서로를 고귀하게 하는 덕을 키우고 발휘할 수 있는 곳이다. 공자와 맹자의 구상대로 덕 있는 군자가 군주가 된다면 자신의 마음을 넓혀 세상의 길을 닦을 수 있을 것이고, 그 길에서 모든 사람들이 순박한 마음으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142-143쪽
인륜에 의해 맺어지는 바람직한 사회란, 서로 멀어져 가는 인간성을, 자기 성장을 통해 서로 통용되는 틀 안에서 유지해 나가는 것이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매 시대마다 각 사회 구성원의 자기 성장이 필요하다. 즉 서로 통용되는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각자의 감정이라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여, 사회에서 소통하고 인정되는 수준까지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가치의 원천인 마음은 사회 규범의 근원이므로 제도화되고 형식화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 경우에도 물론 예는 인의예지의 마음이 형식화되어 있는 것이다. 성인이란 나와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보통 사람보다 예민하고 빠르게 마음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래서 늦게 깨닫는 사람들을 위해 제도를 만들고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 의거해야 하는 기준이란 자신의 마음에 비춰보아 옳은 것이며, 그것은 동시에 누구의 마음에 비춰 보아도 옳은 것이다. 즉 보편적으로 옳은 것이다. -144쪽
공자와 맹자는 광자, 견자, 향원 순으로 선비의 등급을 매긴다. 광자가 이상이 너무 커서 실천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견자는 자신과 타인의 부도덕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사람이다. 광자가 자신의 현실적인 능력 이상으로 지향이 큰 사람이라면, 견자는 자신의 행위가 행여 도에 어긋날까 전전긍긍하느라 자신의 능력보다 스스로 위축되어 있는 사람이다. 중도의 선비란 광자와 견자의 중도를 지키는 선비일 것이다. 마음의 지향과 몸의 실천이 떨어지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광자와 견자는 중도를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선비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자는 중도의 선비가 없다면 광자와 함께 하고, 광자도 없다면 견자와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들이 지향하는 도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문제에서 바람직한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결함이 있지만, 옳은 것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일단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공자는 광자나 견자와는 달리 향원의 부류와는 상대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209쪽
향원은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키운다. 밖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따진다면 그는 누구에게 해를 입히기는커녕 대단히 훌륭한 사회인이다. (중략) 이들이 보여주는 언설이나 행위만으로 본다면 그들은 덕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언설이나 행위는 동네 사람들의 칭찬을 목적으로 하여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이다. 나아가 도덕이 인간을 평가하는 모든 척도가 되는 사회에서 그들의 그러한 행위는 사회적 명성과 부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에너지가 집중된 결과다. (중략) 향원의 행위 방식은 ‘위선’이라는 것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그것이 사회 규범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나아가 실제로 많은 보통 사람들이 사회 규범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공자와 맹자가 상대하고 싶지 않다고, 덕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던 향원은 사실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212쪽
공손추가 물었다. "남의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편파적인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가려 있는지를 알며, 근거 없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어디에 빠져 있는지를 알고, 사람을 망치려는 사특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정도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고, 둘러대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처한 궁지를 안다. 이러한 나쁜 말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면 정치에 해를 끼치고 정치로 행해지면 나라 일을 해치게 된다. 성인이 다시 살아와도 내 말을 틀리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공손추 상>2)-220쪽
유학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학은 적극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진보의 이념일 수는 없다. 유학은 본성적으로 보수적이다. 오히려 유학이 바람직한 보수주의의 콘텐츠가 되어, 현대의 정치 이념으로서 자신들의 신념을 피력하고 그것이 진보주의가 초래하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완화시키는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는 오히려 유학의 현대적 활로가 될 수 있다. 유학은 현실을 직면하고 그 현실을 충분히 숙고하면서 행복한 인간생활에 대해 고민하고 당당하게 조언하는 사려 깊은 집단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270쪽
인이라는 것은 나를 밖으로 확장시키는 기능을 한다. 맹자는 이 말을 다른 사람의 불행을 함께 느끼는 능력으로 해석했고, 고자는 나의 육체적인 감각을 충족시켜 줄 대상을 원하는 마음으로 해석했다. 어느 쪽이든 사랑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다. 맹자에 의하면 사랑은 대상에 대해 측은함과 애틋함을 느끼는 것이지만, 고자에 의하면 사랑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관점에서 대상을 원하는 것이다. 사랑을 원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외로움이나 성욕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다의적이듯 인의 의미도 다의적이지만 그것이 개인을 개인 안에 머물지 않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는 한가지이다.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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