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오프 더 레코드 -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연애의 모든 것
박진진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읽는 동안 뜨끔해서 혼났다. 그녀*가 볼까 두려워 이런 소리 못하겠지만 나는 스스로  '나쁜 남자'이기는 해도 '못된 남자'는 아니라 생각해왔다. (둘의 차이가 뭔지 정확히 전달하기 힘든데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나만의 '착각'에 불과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이 책의 어느 구절에 공감을 표하며 아 그래, 난 그랬지, 그랬어, 끄덕이면서 괜찮은 남자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쩔 땐 영 아니게 보이면서, 어쩔 땐 또 괜찮아 보이고, 어느 장단에 맞추어 스스로를 평가해야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자 생각하고, 잘못한 건 잘 하려고 애쓰면 되지,라는 결론으로 맺는다. 

  이 책은 남녀 간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을 다루고 있고, 그 중 상당 분량을 둘만의 '그것'에 할애하고 있다. 그것은 대개는 오래 사귄 남녀들에게만 해당하는 행위라 여겨지기만, 길지 않은 연애 기간임에도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모든 언행들이 직접 다가와 부딪쳤다. 그것은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지도, 잘 몰라서 궁금한 영역도 아니다. 저자의 펜은, 생생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끄집어내면 떠올릴 수 있는, 나의 과거의 기억들-엄밀히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모두 한 자리에 펼쳐놓았다. 

*'그녀들'이라 말하지 않는 건, 연애 상대가 한 명은 아니었지만 서로 다른 느낌과 기억을 안겨준 전 여친들을 '들'로 묶어 한꺼번에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어짐이 어찌되었든 모두 각기 다른 기억으로, 다른 느낌으로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다.

  좋아함과 사랑함이 어떻게 다른지를 고민하던 첫사랑의 시절부터, 연애의 각 단계가 보다 빨리 진행될 즈음인, 그래서 심지어는 내가 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가까운 과거까지, 만남과 헤어짐, 그 과정이 어찌되었건 나는, 사랑했다. 마지막 이별을 경험한지 시간이 꽤 흘렀고, 내게 다시 사랑이 찾아오길 바라지만, 일부러, 애써서, 인위적으로, 사랑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언제나처럼. 기대치 않은 곳에서, 기대치 않은 때, 사랑은 불쑥 찾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냥 자신의 운명이 찾아오길 한없이 바라는 그런 기다림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이는 그런 인연을 만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소개팅은 안한다고 했잖아!)

  이 책은 호기심으로 도서관에서 뒤적이던 그런 연애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저자가 내가 아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여기 쓰여진 문장들은 꽤나 깊다. 그건 저자의 글발이 좋아서이기도 하겠지만, 단순히 글발만 좋아서는 이럴 수 없다. 저자의 생생한 연애경험과 성찰로 인한 직접체험, 그리고 주변인들과의 대화와 상담과정을 통한 간접체험이 함께 저자의 머리와 마음을 열심히 헤집어놨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쉽게 몰입했고, 때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때로 스스로 토닥이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왜 그때 내가 그랬을까, 왜 그렇게 헤어졌을까, 왜 그보다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이 끊임없이 오갔다 . 장면을 하나씩 떠올리며 지난 내 행동을 되짚어봤다. 웃음도 나왔다. 눈물도 나왔다.   

  지난 연애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대개 먼저 헤어짐을 '통보'했고, 눈물로 붙잡는, 때로는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나를 원망하는 그녀에게, 아주 냉정하게 무 자르듯 관계를 끊었다. 당장은 힘들지라도 그건 '잘한짓'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다음에도, 그건 한편으로 잘한짓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순전히 관계를 깔끔히 정리하기 위함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고려치않은 나의 일방적인 '관계의 단절'에 가까웠다. 어느날의 일방적인 통보와 눈물, 그것이 다였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난 뒤 연락하는 그녀를 막지 않고 친구로 다시 받아준 건, 내 잘못이었다.

  이 책에 의하면 헤어진 여자친구를 다시 친구로 만나는 건, 매우 못된 행위이다. 그런데 나는 과거의 여자 중 몇몇을 실제로 친구로 만나고 있고, 그들도 나도 연애감정으로 서로를 대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둘 사이의 지난 일을 잊었다는 말은 아니다.) 추측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믿는다. 분명 다시 만나면 안되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다시 만나면 오히려 더 좋은 친구 사이로 만날 수 있는 인연도 있다. 저자는 그것을 간과한 듯 하다. 심지어는 짝이 있는 과거의 여친과도 친구로서 자연스럽게 대화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그 여인의 새로운 짝 또한 내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해괴하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현실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렇게 스위치 껐다 켜듯이 버전을 바꿔가며 옮겨다닐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그렇다.

  분명 저자는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의 몸을 구석구석 탐하듯 연애에 있어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세심하게 건드리지만, 여기 활자화된 모든 경험들이 수학공식처럼 적용돼 반드시 같은 결론을 도출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건 어쩌면 저자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연애와 사랑은 언제나, 자로 재듯, 공식에 적용해 도출하듯, 항상 같을 수는 없으며, 같은 경우 또한 있을 수 없다. 여기 쓰인 말들이 잘못되었다고, 거짓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독자들이 거시적인 차원에서 옳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한다면, 저자의 깊이 있는 문장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책은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와 사랑은 언제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참고할 순 있겠지만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뭐뭐 해야한다는 식의 단정적인 서술은 진리치를 담보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건 한 권의 책으로서, 하나의 완성된 글로서 보이기 위한 장치쯤으로 생각해야 한다. 예외가 빠져나갈 구멍은 언제나 열려있으며, 때로는 예외가 대세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대세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예외로 현재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지난 연애를 돌이켜 보았고, 책상 앞에 두고 한 꼭지씩 다시 차근차근 읽으며 지난 연애의 장면들을 하나씩 꺼내어 볼 것이다. 연애휴식기에 돌입한지 오래인 나에게, 저자는,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 연애를 준비하라 말한다. 다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p.s.

1. 누군가로부터 선물받아 읽은 책인데, 여러모로 나를 돌아보게 한 책이라 시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 지인에게 소개해줬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헤어짐을 선택한 지인에게 부디 이 책이 쓴 약이 되길. 아픔을 치유하는 약이 되길 바란다.  

2.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 연애의 모든 것'이라지만 이 책엔 다분히 남자를 의식한 듯한 문장이 숨어있다. 어느 구절에서 난 그걸 발견했다. 분명 남자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자들끼리만 공유하는'은 여자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 정도이고, 여자들만 알아서는 좋은 연애가 이루어지기 힘드니, 연애의 다른 상대자인 남자들도 꼭 읽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메세지.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제인 셈이다. :)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06-24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내가 이 책을 읽기엔... 우리 딸을 위해선 좀 후에... 그래도 추천은 꾹! ^^

마늘빵 2008-06-24 23:11   좋아요 0 | URL
^^ 네. 물리적인 나이가 중요한건 아니지만, 대략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에 읽으면 좋을 듯 합니다. 아니 어쩌면 미리 읽어두고, 수년 후 다시 읽어보며 돌아보는 게 더 나을수도.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영화처럼요.

2008-06-25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매지 2008-06-2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에서 슬쩍 봤는데 꽤 공감되는 글들이 많을 것 같았어요 :)
연애는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ㅎ

마늘빵 2008-06-25 09:34   좋아요 0 | URL
네 케이스 바이 케이스 ^^ 그게 맞죠. 근데 경험은 축적되더라고요. 축적되면서 계속 변화한다는.

플라시보 2008-06-25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프락사스님. 정말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이 리뷰가 거의 이벤트 마지막에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추천수를 받았네요. 축하드려요. 일단 상품권 10만원의 주인공은 아프락사스님이 되셨습니다. 짝짝짝^^

제가 리뷰를 쓸때는 몰랐습니다. 잘 쓴 리뷰는 그저 책 읽는 사람들 즉 독자들에게만 좋은건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군요. 저자가 되고 나니 이 리뷰는 독자일때보다 훨씬 고맙고 마음에 와닿습니다. 내가 놓친 부분들.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일일이 꼬집어주시니 더더욱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가지 죄송스러운건 제가 상품권을 미리 구매했어야 하는데. 신청만 해놓구서는 입금할 시간이 없어서 (요새 정신이 많이 없어서 사실은 구매 신청만 해놓은걸 입금 완료로 생각했습니다. 늘 책살때 신용결제 하던 버릇이 되어서요.) 지금 구매를 하기 때문에 조금 기다리셔야 한다는겁니다. 아...정말 죄송합니다. 조금 전에서야 알았어요. 그냥 구매 신청만 해놓고 입금 안했다는걸요. (상품권은 카드로 구입을 못하더라구요.)

그래도 최대한 빨리 상품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직접 보내드릴께요. 온라인으로 상품권이 아프락사스님께 가도록 하는 방법도있겠지만 작은 편지라도 함께 보내고 싶어서요.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이벤트 종료를 알려야겠네요. 사실 이벤트 하면서 아는 사람이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다소 팔은 안으로 굽는 생각을 했더랬는데. 꿈이 이루어졌군요. 더구나 단순히 아는 사람이 아닌. 정말 잘 쓴 리뷰에 돌아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책을 칭찬해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경험도 녹여가면서 너무 진실하게 써 주셔서요.

다시한번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마늘빵 2008-06-25 09:38   좋아요 0 | URL
끄아 플라시보님 ^^ 주인 없는 새벽에 들러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어제 밑줄긋기 올리기 전에 리뷰 먼저 쓸까 하다가 피곤해서 그냥 잠들어버렸다는. 어젯밤에도 무지 피곤했는데 쓰고 잤어요. 쓰고선 글이 썩 맘에 들진 않았어요. 비문도 많고. 상품권 유익하게 잘 쓰겠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8-06-25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당첨 축하드리고 이글을 보니 이책 읽어보고 싶네요.. 요즘 긴축재정 중인데 아잉 -.-

마늘빵 2008-06-25 09:39   좋아요 0 | URL
^^ 찬찬히 과거사를 끄집어내어 생각하며 읽으면 느끼는바가 많을 거에요.

도넛공주 2008-06-2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애는 이제 안할거라서! 책은 읽지 않을 것이지만! 아프락사스님의 리뷰는 정말 애틋하네요.

마늘빵 2008-06-25 10:05   좋아요 0 | URL
연애를 안하심 어떡해요. 그 좋은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