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은숙씨는 편집자를 일컬어 "자신이 편집하는 책의 산모"라고 말한다. 나아가 편집자는 "편집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편집자는 세상을 작업(?)의 대상으로 삼아 하나의 완결된 책을 만들어내는, (정은숙씨의 표현에 따르면) 지식을 편집하는 사람이 아닌 세상을 질료로 삼아 편집하여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편집자는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무릇 자신이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거듭해서 물어 보아야 한다." 

  편집자는 그 자신의 삶과 주변의 것들에 끊임없이 시선을 유지한 채 새로운 물음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편집자와 저자는 책의 어머니와 아버지이다. 편집자가 새로운 물음을 제기하고 그 물음에 답해줄 저자를 만났을 때, 비로소 책은 모습을 채 갖추지 않은 가능태로 '존재'한다. 두께와 크기는 얼마나 될지, 표지는 어떤 문양으로 꾸며질지, 목차와 머릿말 등 아무 것도 확정된 것은 없지만, 일단 독자의 손에 쥐어질 물질로 태어나기 위한 시작은 고한 셈이다. 편집자와 저자의 막연한 물음과 대답은 둘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구체화 될 것이다.

  이렇게 물음을 제기하고 책이 태어날 때까지 열달이고 스무달이고 머리와 마음을 온통 집중하는 편집자는 책의 산모다. 저자가 원고를 주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원고는 단지 씨앗일 뿐 씨앗이 가진 외형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물도 주고 햇볕도 쬐어주고 가끔 편안한 음악도 틀어주면서 시간을 두고 차분히 가꿔야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온갖 노력을 기울여 태어났지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점차 잊혀지는 녀석들도 있다. 아니 많다. 그것은 편집자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녀석들이 잊혀짐으로 인해 가장 마음 아파하는 이는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녀석과 함께 시간을 보낸 편집자일 것이다. 

  책이 태어나기 위해선 씨앗을 품어줄 저자를 만나야 한다. 저자는 때로는 제발로 알아서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개는 편집자의 끊임없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관찰로 시작해 구애를 통해 끌어온다. 좋은 저자, 내 물음에 답해줄 저자를 만나기 위해선, 편집자는 매력적이고 멋있는 저자를 찾아내야 한다. 두 눈 멀쩡하다고 해서 매력적인 저자가 그냥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누가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지, 누가 어떻게 멋있는지 판별할 줄 아는 자만이 매력적인 저자를 '발굴'해 낼 수 있다. 지금은 허름한 옷차림에 빌빌 거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조차도 모르는 그만의 매력을 발견하고 끄집어낼 때 편집자와 저자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이 책은 장장 20년간 매력적인 저자를 발굴하고 씨앗을 품어 세상에 내보인 정은숙의 산모 체험기다. 처음엔 기자가 되려 했다가 책 만드는 일에 발을 담근 뒤 그 길을 묵묵히 계속 걸어온 그는 이제는 버젓이 자신의 출판사를 차려 "우리 삶의 넓이와 깊이를 부여할 수 있는" 문학과 예술, 인문서적들을 만들고 있다. 그는 몇몇 책을 통해 물음을 던지고 답했다. 어떤 책은 스스로 대견하다 싶을 정도로 가슴 뿌듯했고, 어떤 책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뿌듯하면 뿌듯한대로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모두 소중하다. 세상에 선보인 모든 책들은 그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이 책엔 20년간의 편집자로서의 경험이 담겨있다. 기획하고 저자를 섭외하고 외형을 만들며 세상에 내보내기까지의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과 수많은 고민들. 정은숙씨는 이 책을 통해 편집자로서가 아니라 저자로서 20년간 그가 해왔던 역할과는 다른 방식으로 책만듦에 참여했다. 그가 몸담은 '마음산책'을 통하지 않은 건, 책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책임을 동시에 떠맡기가 힘겨워서였을까. 이 책은 '마음산책'이 아닌 '바다출판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안겨졌다. 편집자로서의 뜨거운 열정과 애정을 느꼈고, 책탄생의 과정을 보았다. 내 손에 들어오는 책들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하니, 그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8-03-05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집자로 지낸 나로선 공감 백배의 책이네요

마늘빵 2008-03-05 00:21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