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면 눈 비비고 일어나 제일 먼저 티비를 켠다. 아침 10시가 되면 <퀴즈 대한민국>을, 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채널을 돌리면 11시에 <육감대결(?)>을 보는데 오늘은 요 프로그램을 보다 머리 속에서 핀 생각을 풀어볼까 한다.
육감대결 게임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잠시 설명을 하자면, 일단 둘씩 짝을 지은 여섯 팀이 함께 출발한다. 한 팀씩 제시어를 골라가며 나머지 다섯 팀에게 문제를 내는데, 문제에 따라 최상부터 최하까지 난이도가 정해진다. 최상을 고르게 되면 나머지 다섯 팀이 거의 다 못 풀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틀린 상대를 지목하기 쉽다.
하지만 난이도 최하의 문제를 골랐을 경우엔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풀 확률이 높아지고, 틀린 상대를 찾기 위해 문제를 낸 팀이 머리를 굴려야 한다. 요때 문제를 맞추는 다섯 팀 중 어느 한 팀이 일부러 틀리게 답을 써놓고 당연히 아는 척 하면서 '연기'를 할 수도 있는데, 여기에 걸려들면 오히려 문제를 맞춘 팀에게 X표가 하나 돌아가고, 이런 식으로 반복하다가 X표가 세 개가 되는 팀이 '육감옥'으로 끌려(?)간다.
매주 일요일마다 재밌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인데, 문제를 맞췄으면서도 아닌 척, 혹은 모르면서도 맞게 쓴 척 연기를 하는 출연자들의 쇼를 보는 것이 매우 즐겁다. 개인적으로 문제를 푸는 재미도 있고. 그런데 한번도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오늘 어떤 출연자가 - 아침에 봤으면서 누가 그런말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 세 팀이 탈락하고 세 팀이 남았을 때 이런 말을 하더라. 솔직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다 탈락하고 여기 남아있는 팀들은 다 두 얼굴의 인물들이라는 비슷한 말을.
그러니깐 그 출연진이 한 말의 의미는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잘 아는 사람들만이 마지막 세 팀 안에 포함된 것이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의 게임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라는 뜻이었다. 문득 티비 속 그 작은 스튜디오 무대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순해빠지고 솔직한 사람들은 남을 속이지 못해 인생의 초반부터 피라미드의 아래에 위치해야하고, 꾸준히 자신을 관리해 두 얼굴을 보여준 사람들은 인생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피라미드의 위쪽으로 향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그 출연자는 농담삼아 한 말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을 포함하고 있었다. 스튜디오에 짝을 지어 앉아있는 출연자들 중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들은 문제를 잘 맞추거나 똑똑해서라기보다는 상대를 잘 속이거나 지목받지 않음으로써 매 고비를 넘기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출연한 연예인들의 실제 삶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이 프로그램을 본지 꽤 오래되었는데 매번 출연하는 신정환이 포함된 팀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확률이 매우 높았던 것 같다. 떨어지더라도 초반에 탈락하지는 않으며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일부러 깐죽대거나 장난을 치다 자연스레 공공의 적이 됨으로써 탈락되는 경우였다.
반면 박미선과 김영철로 이루어진 오늘의 조는 초반에는 어느 정도 버텼을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에게 패가 돌아와도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거나 혹은 문제를 맞추는 입장에서 상대를 속이지 못함으로써 금방 탈락하고 말았다. 이계인이 포함된 팀도 대개 그런 식으로 떨어졌다. 이계인의 오늘의 짝꿍은 강수정이었지만 - 강수정은 평소엔 신정환 못지 않은 활약을 보여준다 - 무게감이 이계인에게 실림으로써 강수정의 살아남는 기술(?)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픈 말은 신정환이 교활하거나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것이 아니라, 결국 티비를 끄고 현실을 돌아봤을 때 사회에서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간 자신의 인생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속이거나 누르며 그 자리에 올라왔고, 그들은 그런 식의 게임과 경쟁에 매우 익숙해져있다는 사실이다.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지는 않더라도, 소박하게(?) 어느 정도 중간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 비극적이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속이거나 연기를 하는 어느 정도의 교활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함께 사는 길이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 사회는 점점 경쟁을 요구하고 있고,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기를 종용하고 있다. 내가 누군가를 밟거나 속이지 않는 한, 내가 상대에게 나의 패를 솔직하게 다 보여주는 한, 내가 설 자리는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온지 3년이 흘렀다. 사회는 생각보다 냉정했고, 개인에게 자신이 가진 무기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기를 가진 어떤 자는 열심히 속이고 올라설 것이고, 무기를 가진 어떤 자는 자신의 무기를 다 내려놓고 피라미드의 아래로 내려가기를 자청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놓을 무기도 없어 자의건 타의건 누군가의 사다리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주어진 길을 택하지 않는다면 함께 또다른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게 개인이 처한 오늘의 현실이다. '또다른 길'이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