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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가 - 채식주의자가 된 미국 최대 축산업자의 양심 고백
하워드 F. 리먼 지음, 김이숙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왜 채식주의자가 되었는가."
대놓고 스스로에게 묻는 직설적인 질문은 그만큼 시원스런 대답을 안겨줄 것 같고, 이 책을 읽는 이로 하여금 함께 동참하고픈 욕구 내지는 의지를 불태우도록 할 것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하다. 피터 싱어에 대한 관심으로 동물을 함부로 도살하고 먹을 권리가 인간에겐 과연 있는가, 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고, 비록 피터 싱어의 저서보다 이 책을 먼저 손에 들었지만,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다.
이 책이 설득력을 갖는다면 그건 과거 미국의 최대규모의 축산업자였던 하워드 F 리먼이 업계동료들을 등지고 실태를 고발했다는 것이며, 생각끝에 스스로가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 사실만으로 이 책을 보지 않고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어필이 되었고,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자신이 몸담았던 분야를 뛰쳐나와 그들의 등에 칼을 꽂고 진실을 고발할 수 있는건 대단한 용기다. 지금까지의 인맥과 친분, 그들의 비판과 욕설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내던지지 않고서야 이런 모험을 하기는 힘들다. 결국 그는 '음식물 경멸법'이라는 묘한 법에 의해 최초로 고발당한 사람이 되었다.
4대째 이어져온 축산업을 가업으로 물려받으며, 그는 제초제, 화학비료 등으로 길러진 가축들이 인간에게 어떤 해악을 끼칠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날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서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공부를 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화학비료와 좁아터진 가축의 성장환경이 그들에서 멈추지 않고 도살된 고기를 먹는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실태를 고발했고, 이후에도 이렇게 길러진 가축고기가 인간에게 왜 문제가 되는지, 어떤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하워드 리먼 본인이 대규모 축산업자에서 채식주의자로 변신한 과정을 서술한 자전적 에세이다. 그는 우리가 고기를 먹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를 말한다. 소를 기르는 축사가 매우 좁아 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라난 소고기를 먹는 인간에게도 그 영향이 미친다는 점, 소 먹이는 이미 죽은 소나 불구가 된 소를 죽여서 모든 부위를 다 갈아만든 사료를 주로 사용하며, 소가 소를 먹게 되면 처음엔 아무 이상이 없지만 시간이 흐르고 누적되며 점차 이상증세가 발생한다는 점, 그것이 광우병이고, 인간에게 옮겨갈수도 있다는 점 등의 근거를 든다.
또한 좁은 축사에서 기르지 않고 방목해서 기른 소들에게는 문제가 없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 소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넓은 목초지에 방목하여 소를 기르게 되면, 목초지의 토양이 훼손되고, 나아가 자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환경보존을 위하여 소를 대량으로 사육하지 않도록 해야하고, 그러자면 수요를 줄여야하니 우리 인간이 식용으로 소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친절하게도 '날씬한 몸매를 꿈꾸는 사람들의 희망'으로서 채식을 주장한다. 고기 다이어트라는 것도 있지만 고기만 먹으며 다이어트를 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은 뼈가 약해진다는 사실이다. 골다공증의 위험이 있고, 고로 다이어트를 위해서 고기를 먹는 것도 좋지 않다고 말한다. 건강도 챙기고 몸도 날씬해지려면 결국 채식 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저런 근거를 들어가며 결국 고기를 먹어선 안되고, 모두에게 이로운 채식을 하자고 하는데, 사실 실천하기까지는 매우 힘겹다. 무엇보다 내가 채식을 결심했다고 해도 함께 사는 가족들이 동참해주지 않으면 실천이 힘들고, 더구나 한국같이 개인보다 전체를 중요시하는 집단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회식자리는 당연히 삼겹살 집이 되기 마련이고, 나 하나 개인의 의견은 반영되기 힘들다. 그렇담 다수의 의견에 따라 삼겹살 집에 갔다고 치자.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다. 모두들 열심히 상추에 고기 싸먹고 소주잔을 들이킬 때 나는 옆에서 젖가락으로 샐러드나 끼적대고 있어야 한다. 내가 괜찮다 해도 남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그들은 나를 배려한답시고 그 자리를 불편해할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성을 우선시하느냐, 아니면 나 개인의 소신과 결정, 자연환경, 건강을 중요시하느냐, 의 갈림길에서 선택은 쉽지 않다. 둘 다를 취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P.S. 나는 이 책을 읽기전, 저자가 채식주의를 결심한 이유가 건강이나 자연환경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동물의 지위에 대한 고민과 사색 때문이길 바랬다. 하지만 저자의 채식주의 결정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었고, 동물에 대한 배려는 털끝만치도 이 책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인간이 동물을 함부로 먹어도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지만, 육식이 인간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가, 에 대한 답변만을 들어야했다. 같은 채식주의라고 할지라도 저자처럼 육식이 인간에게 해롭기 때문에 채식주의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약육강식 싸움에서 승리한 인간이 하등한 동물을 잡아먹는 것이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다고 판단해 채식주의를 결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과는 '채식주의' 지만 그 도출과정은 분명 차이가 있겠다. 난 이 책이 후자에 대한 답변이길 기대했으나 책은 전자에 대한 답만을 들려주었고, 이 점이 참 아쉽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무래도 철학자 피터 싱어에게서 얻어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