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에세이 - 개정증보판 동녘선서 70
김교빈.이현구 지음 / 동녘 / 2006년 2월
구판절판


공자의 인은 사람다움을 구현하는 과정입니다. 공자는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예절을 갖추어야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음악을 잘 연주해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을 낮추어 개 같다, 돼지 같다 하는 표현을 씁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아무리 겉이 번드르르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며,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거나 훌륭한 글을 쓴다고 해도 기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제 시대, 훌륭한 글을 쓴 사람들이 한편으로 정신대나 학도병에 지원하라고 열심히 외치고 다녔던 일이 있습니다. 그렇제 좋은 일이고 옳은 일이라면, 남에게 권하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임이 분명하고 사람다운 행동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다움을 실천하는 일이 나의 임무이며, 죽은 뒤에나 그만 둘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공자편) -51-52쪽

공자의 자공의 대화

"정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경제를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세 가지 중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국방을 포기하겠다"
"둘 가운데 다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경제를 포기하겠다. 예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아예 사회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논어> '안연'편)-58쪽

도는 길입니다. 길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다니면 길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이 길을 넓히지, 길이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길 아닌 곳으로 가면 가시 덩굴이나 진흙탕에 빠져 고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길로 가야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요즈음은 인도보다 차도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사람이 갈 길에 차들이 점점 쳐들어와 인도가 차도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 중략 ...

차는 사람이 몰고 가는 것이므로 차도도 결국 인도입니다. 공자는 어진 사람이면 차를 타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바람이 치는 날, 막 뒤집힐 듯한 우산을 요리조리 가누면서 인도로 걸어가는 사람과 자가용 뒷자리에 편안히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도로 가는 사람을 상상해 봅시다. 얼마나 불공평합니까? 그러나 공자는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걸어가는 사람에게 흙탕물을 튀기지 않도록 주의하는 정도의 배려만 있다면 이런 불평등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자는 길을 넓히는 데 반대하지 않으며, 때로는 새 길을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장자는 공자의 말이 그럴듯 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속임수라고 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은 차도로 가도 좋고 길을 넓힐 수도 있다는 공자의 말은, '사람다운 사람'의 이름을 빌린 인간들이 길을 넓힌단든 명목으로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옹호해주고, 가난한 백성이 부역과 전쟁에 동원되어 가족과 떨어져 객지에서 죽고 마는 상황을 합리화한다고 장자는 생각하였습니다. 공자가 군대(군사력, 식량(경제력), 백성들의 신뢰(권력의 정당성) 가운데 정치가가 끝내 잃어서는 안되는 것은 백성들의 신뢰라고 한 것을 생각해보면, 장자의 비난이 지나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장자는 '부국강병'을 외치는 법가나 '도덕 정치'를 외치는 유가나, 춥고 배고픈 백성들의 눈으로 보면 그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자편) -119-120쪽

아름다움과 추함이 구분되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추한 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또 좋아함과 싫어함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선택하고, 싫은 것을 버리게 합니다. 이러한 분별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좋은 것을 차지하고 싫은 것을 벗어나려 경쟁하고 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연관되어 있고 세계가 하나임을 아는 사람을 지극한 사람, 달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가 없습니다.

(장자편)-136쪽

장자는 사람들이 미인 대회를 열어 고르고 고른 미인이라도 물고기가 보고는 물속으로 숨고, 새들에게 다가가면 날아가 버리고, 사슴이 보고는 결사적으로 도망칠 것이니, 미인 대회에서 뽑은 미인은 진정한 미의 기준에 맞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편견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판단 차이를 비유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장자는 세상에서 소외된, 세상의 기준에서 비정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온전한 덕과 인간미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장자의 주장은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고,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나 벌레 한 마리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며, 싫어하고 미워하고 싸우던 사람들이 서로를 포용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장자편) -137쪽

순자는 인간의 화와 복은 오직 인간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자의 생각은 인간의 지위와 실천을 극대화한 인물 정신의 완성이었습니다.
하늘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순자의 눈에 보인 인간의 참모습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존재였을 뿐입니다. 이것이 순자의 성악설입니다. 순자의 성악설은 판도라의 상자인 셈입니다. 그러나 순자의 판도라 상자 속에는 악한 본성을 이겨 나갈 숭고한 인간의 의지가 남아있었습니다. 순자의 철학이 인문 정신의 극치를 보였음에도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본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순자는 마치 프로메테우스처럼 뒷날 많은 학자들에게 두고두고 비판받는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순자편)-180쪽

"아주 옛날에는 임금도 없고 신하도 없었다. 사람들은 우물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 먹었으며,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었다. 매이지 않은 배처럼 자유로웠고, 편안하며 만족했다. 경쟁이 없고 영리를 바라지 않았으며, 명예도 없고 치욕도 없었다.
만물이 서로 화합하여 자연의 도에 드렁가므로 역병이 유행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완전한 삶을 누릴 수 있었고, 마음이 착해서 욕심이 없었다. 입에 먹을 것을 물고 즐기면서 배를 두드리고 놀았다. 그들의 말은 화려하지 않았고, 그들의 행동에는 꾸밈이 없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어떻게 무거운 세금을 매겨 백성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엄한 형벌을 받아 굴에 갇힐 수 있었겠는가? "
(갈홍, <포박자> '힐포'편 : 포경언의 말)

-278-279쪽

"임금과 신하의 신분이 생기면 변화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본래 수달이 많아지면 물고기가 놀라고, 매가 많아지면 작은 새가 근심하는 법이다. 부리는 사람이 늘어나면 인민은 고통스러우며, 위에 바치는 것이 많아지면 아랫사람은 가난해진다."
(갈홍, <포박자> '힐포'편 : 포경언의 말)-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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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교빈의 동양철학 에세이는 "제목에 낚여" 아이들 교육용으로 한권 산적이있지요.
곧바로 쓰레기통..
한국의 고등학생용 교양목록 리스트에서 이 책이 사라지기를 희망합니다.
아프락사스님.

마늘빵 2007-05-1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랑은 생각이 좀 다르시네요. 저는 한국의 역사적 상황과 관련하여 볼 수 있는 괜찮은 책이라 생각했는데요. 내용이 가독성이 높지는 않고, 문장이 조금 딱딱하기는 하지만, 다른 동양철학 대중서에서 보이지 않는 농가 등의 다른 부류도 넣었다는 점에서도 괜찮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