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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부의 삶 - 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
임유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최근 조선 지식인들의 삶에 주목하는 책들이 여러권 나오고 있다. <대장부의 삶>은 이런 흐름 속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편지글을 묶어 오늘날의 한국어로 '번역'해 내놓은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 선비들인, 허균, 권필, 이덕무, 정약용, 박지원, 김정희, 이순신, 기대승, 이황부터 시작해서 잘 알지 못하는 홍귀달, 박사해, 조익, 이천보, 남구만, 이광사, 박태보, 이학규 등등의 선비들의 편지글까지 추스리고 있다. 책 한 페이지 분량도 안되는 짧은 편지글부터 시작해 두 세 페이지가 넘어가는 긴 편지글도 있고, 책을 돌려 달라고 떼쓰는 가벼운 쪽지 개념의 편지글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을 훈계하고 다그치는 편지글도 있다.
책은 주제별로 많은 편지글들을 분류하고 있는데, 뜻을 세우다, 벗으로 산다는 것, 세상살이 고생길, 아버지로 산다는 것, 죽음 앞에서의 다섯 범주를 사용하고 있다. 학문과 벗사귐과 삶과 관계와 죽음에 대한 이들의 편지글은 때로 지하철 간에서 속으로 크큭 거리게 만들기도 하고, 자세반듯 비장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웃겼다 울리며 마음을 動하게 만들고, 머리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한다. '대장부의 삶'이라 하여 유명한 조선 선비들의 비장함 각오와 학문에 정진하는 자세 등을 예상했다면 뜻 밖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빌려준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돌려주지 않느냐며 상대를 어르고 달래고 다그치고 독촉한다. 한번 빌려준 책은 '빌려' 준 것이 아니라 그냥 '준' 것이지 않느냐며 어찌 책을 달라고 하느냐고 대답하기도 하는 등 오가는 편지들이 아주 재미있다. 역시 선비들인지라 학문하는 자세나 책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아버지가 아들의 생활습관을 훈계하고, 멀리 유배 떠난 동료에게 안부를 전하고, 희망을 갖도록 만드는 편지들도 있으며, 열여섯에 시집가 스물다섯에 죽은 딸을 향해 부모로서의 슬픔을 표하는 긴 편지글에서는 멈추어 울컥한다. 선비라하여, 학자라하여, 그들이 우리와 다른 것은 없다. 그들도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이고,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거쳐가는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들은 그들에게도 해당한다.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짜증내고 하는 모든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고고한 학자라하여, 청렴하고 반듯한 삶을 살았던 선비라하여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을 학자나 선비로서가 아닌, 우리와 같은 하나의 삶을 살아간 사람으로서 마주한다.
"잔뜩 분위기 잡는 선비들일 줄 알았는데 아주 하찮은 문제에서조차 범인처럼 억지를 부리며 자기주장을 고집하곤 한다. 때로는 분위기 잡고 심각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농담으로 일관한 편지를 쓰기도 하는 등 선비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재밌게 읽던 와중에 새삼스럽게 얻은 깨달음 하나. 손으로 편지를 써본 지 오래인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형식의 간소화가 마음의 간소화로까지 번지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 뒷날개의 본인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