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글이 있어 '연필을 들고'에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다시한번 옮겨놓는다. 진중권의 신작 <호모 코레아니쿠스>의 한 대목으로서 논쟁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논쟁은 누군가의 문제제기 내지는 딴지로 시작하여 상대방의 반응을 이끌어냄으로써 진행된다. 얼마전 있었던 '중복리뷰' 논쟁 역시도 누군가의 문제제기로 시작하여 몇몇 님들의 각자의 의견을 통해 점차 확산됐더랬다. 논쟁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 싶으면 각자의 견해차이를 알았을 것이고, 더 좁혀지지 않으면, 이제는 안되는갑네 하고 "유감입니다" 하면 될 것을, 애초 문제를 제기한 측은 집요하게 논쟁을 이어가려한다. 그들에 반대하는 측은 그들의 '집요함'에 대응한다. 그러다가 논쟁이 종료되는 시점은 '집요함'을 보이던 그들이 슬슬 빠지는 시점이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네요, 유감입니다" 하면 될 것을, '우리는 옳다'는 관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며 왜이리 말귀를 못알아먹어 니들이 책 좀 읽었다는 놈들이냐, 등의 비아냥 내지는 훈계를 통해 어떻게든 가르치려 든다. 그것이 내용에 관한 것이건, 형식에 관한 것이건.

  흔히 '논객'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그렇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라는 전제하에 상대방을 가르치려 든다. 그리고 어떻게든 자신의 우세를 보이려하고, 상대방이 나가떨어지면 아 역시 나는 옳아, 하고 스스로 대견해하며 자리를 뜬다. 한 때 '논객'의 위치에 이름을 올리고 싶었던 적도 있더랬다. 지금도 어리지만 그보다 한참 더 어릴 적에. 그러나 일찌감치 깨달았다. 겉으로 멋있어 보일지라도 쓸데 없는 짓이라는 걸. 다시, 얼마 되지 않은 그 때의 일을 생각해본다.

***

  한국은 뜨겁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구에서는 서로 논쟁을 벌이다가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유감이네요"하고 논쟁을 멈춘다. 하지만 모든 성원이 가치관을 공유하는 공동체 정서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견해의 차이는 참을 수 없는 것. 그 차이를 없앨 때가지 한국인은 가망 없는 논쟁을 집요하게 이어간다. 월터 옹은 구술문화에 사는 사람들은 어조가 논쟁적이라고 지적한다. 토론을 할 때 사안의 논리적 해결보다는 인격의 명예를 건 승패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인터넷 문화와 더불어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것이 이른바 '논객'들. 논객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검객'을 연상시킨다. 구술문화에서는 어떤 이가 주장하는 논리보다,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솜씨에 더 관심이 많다. 이런 사회의 논쟁은 대개 '논리의 대결'이라기 보다는 ;검객의 결투'로 치러진다. 사안의 해결보다 중요한 것이 승부를 통해 결정되는 명예의 감정. 여기서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논쟁이 합리적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인터넷은 고수들이 명멸하는 무협지 속의 '강호'. 혹은 검투자들이 사투를 벌이던 고대의 아레나다. 인터넷은 무림의 고수를 지향하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준다. 한국 사람이 목숨 걸고 인터넷을 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내 이름이 영광스럽게 거론된 기사를 발견했다. 논쟁을 바라보는 이 사회의 코드를 그대로 보여준다.

  "글 싸움에서 시사평론가 진중권 씨에게 이길 사람이 없다면, 말싸움에서 유시민 씨에게 이길 사람은 없어 보인다."

(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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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1-31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족주의 집단주의 우리나라처럼 무서운 나라가 없는 만큼. 맞어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가르치려 드는것... 지금 미학 오디세이를 다시 읽고있거든요.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하나두 나지 않길래. .. 이것보고 저도 요번에 나온 신작 읽으려구요 마지막 문장. 때문에 역시 진중권이라는 생각을 슬쩍 하고 가요.^^

마늘빵 2007-01-31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학오디세이 모셔놓고 아직 안봤어요. 미술에 문외한인지라 어렵던데요. -_- 일단 모르는 작품이 많고. 다시 읽어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