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SERI 연구에세이 14
복거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복거일은 시인이자  소설가이지만 실상 시인이나 소설가로서보다는 사회비평가로서의 업적과  활약이 더 두드러진다.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은 몇몇 지식인들을 거쳐 복거일에 닿게 해주었으며, 복거일은 내게 미묘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식인이 되었다. 대개 개인에 따라서 지지, 동의, 공감하는 지식인과 이와 정반대되는 위치에 있는 지식인으로 나눌 수 있다면, 복거일은 그 어느쪽도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정반대에 위치되는 지식인일 것인데, 그의 의견에는 반대할지라도 그의 문제제기는 들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는 기존에 다른 지식인들이 주장하던 것을 반복해서 언급하지 않고, 항상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또한 자본주의 사회이면서도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인들 사이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점을 지적하며 자본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관점을 취한다.

  "근년에 우리 사회에선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이 거센 물살이 되었다. 활기찬 자본주의 체제 덕분에 우리 사회가 지난 한 세대에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런 사정은 반어적이지만, 우리는 그런 반어를 느긋한 마음으로 음미할 처지가 못 된다. 그러기엔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은 우리의 안녕과 복지에 너무 큰 위험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본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책이다. 복거일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자들의 가장 큰 비판은 자본주의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며, 이를 제대로 옹호해야만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은 정의로움과 도덕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효율성을 언급하며 자본주의를 옹호했으며, 복거일은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하기에 '정의로움'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라 말한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정의로운가? 자본주의 이전에 "그것을 떠받치는 이념인 경제적 자유주의가 정의롭다는 것을" 밝혀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복거일이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재산권의 정의로움을 밝히는 일이다. "자본주의가 사유재산 제도에 바탕을 두었고사유재산 제도는 재산권을 통해 세워지고 유지되므로, 재산권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만일 재산권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다른 면들에서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자본주의는 정의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에 대한 권리는 기본적으로 재산의 형성에 대한 공헌에 바탕을" 두고 있고, 재산의 형성에 공헌한 이들이 공헌 정도에 따라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며, 그것 말고 우리는 다른 어떤 기준도 생각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노동가치설에 근거를 두며, 노동으로부터 재산권이 나온다고 보는 관점을 취하는데, 사회주의의 대표주자인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이 논파되었으므로 남은 것은 "재산은 그것의 형성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옳다는 사회주의의 근본적 가정" 뿐 이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더 잘 옹호해주고 있다 한다.

  복거일이 이 책에서 펼치는 자본주의 옹호론의 구도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기본은 사유재산권에 있으며, 사유재산권은 정당하고 자연스러우며, 고로 자본주의 또한 정당하다는 식이랄까. 그러나 중간에 좀 더 보충되고 언급되어야 할 것이 사유재산권의 정당성에서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뽑아내는 부분이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복거일은 평등과 정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불과 30-40년 전의 롤스와 노직 등의 논쟁과 관련해서도 이를 살펴볼 수 있는데, 복거일은 노직의 롤스비판을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롤스의 노직에 대한 반박을 그 근거로 삼는다면 복거일의 주장은 쉽게 논파당한다.

  평등에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 있으며, 기회의 평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결과의 평등에는 다수가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복거일은 기회의 평등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로버트 노직의 <무정부, 국가, 그리고 이상향>에서 "기회의 평등에 대한 권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존재하는 것은 특정한 사물에 대한 특정한 사람들의 특정한 권리들 뿐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기회의 평등이 정당하다는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라는 것이다.

  잠시 이 책을 벗어나 롤스와 노직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복거일은 책에서 노직의 입을 빌려 롤스를 비판하면서,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자유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연결짓는다. 그러나 롤스 비판자인 노직의 눈에는 롤스의 이론이 당연히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노직이 말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이익을 증진하는 동안 국가나 타인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으며, 고로 자신이 증진한 이익을 타인에게 나눠줄 정당한 근거로 없고 궁극적으로 누진세와 같은 세금의 적용은 재산권에 대한 배타적 권리의 박탈인 동시에 세금에 해당하는 양만큼 국가가 개인에게 강제노동을 시킨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롤스에 따르면 개인의 이익 개선이라는 부분이 순전히 개인 활동일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타자와 연관되어 있다. 후생경제학자 센은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차등원리가 정당화 될 수 있는 근거를 언급한다. 일명 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것인데 "자원의 가장 효율적인 분배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다른 어느 한 사람의 효용도 증가시킬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고로 복거일이 앞서 자본주의에서 노직의 입을 빌려 사유재산권의 정당성을 옹호한 부분은 롤스와 센에 의해 논파된다. 복거일은 나름대로 자본주의의 비판에 대해 자본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적극 옹호해보려 했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 진행되었던 서양에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논쟁 안에 다 들어있던 내용이라 더 언급하거나 옹호할 꺼리가 있는지 모르겠다. 롤스와 노직의 논쟁에 대해 공부 중인지라 더 깊이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한 학자의 입을 빌려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삼는데 그친다는 점에서 그다지 효력이 없다고 본다.

  이 책은 매우 얇지만 읽기는 어렵다. 가볍게 읽으려고 했다간 큰 코 다친다. 이 책의 목차 순서상 중간 부분에선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잘 모르는 이들이 등장하는데다가 생소하지 않은 언어로 생소하지 않은 말들을 늘어놓는지라, 그치만 그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은 아니라는 판단에 꼼꼼히 읽지 않고 넘어갔다. 분량에 상관없이 어렵게 쓰여진 책에 대해 꼼꼼히 읽지도 않고 비판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자신없으나 이 책에서 복거일이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 논증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주로 생각하고 언급하는 것으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한 가지, 복거일은 이 얇은 책자 안에서도 꽤나 많은 인용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그 인용구들이 전부 다 필요하진 않다는 생각이다. 짧게 짧게 끊어 인용하거나 복거일이 본인의 입을 통해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책의 난이도만 높아지게 길게 늘어뜨린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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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2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소 간명하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므로 경제적 문제에 평등은 본성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의 평등은 역설적으로 상대적으로 못 가진 계층의 이기심의 발로이지요..
인간의 이기심을 국가 제도로 억제하면 궁극적으로 "북한"이 됩니다.


드팀전 2007-01-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거일은 흔히들 자유주의의 전사로 이야기하지요.이 책을 보진 않았지만 그 도상에 놓여 있는 것 같네요...그리고 한사님의 평등론에 대한 간명한 생각에는 절대 동의할수 없습니다..푸웃.그러고보니 많이 보던 어떤님의 선악론과 유사하네요.그냥 '잘난척 하지말고 제 살길 잘 찾아라'가 늘 그의 결론이었는데..

마늘빵 2007-01-25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 음 전 아직 확실한 입장이나 시각이 잡히진 않았지만, 간단히 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강점도 있지만 그 폐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논쟁이 되는 것이겠고, 그 와중에 폐해를 수정할만한 사회주의적 요소가 있겠죠. 사회주의적 요소가 꼭 아니어도요. 좀 더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드팀전님 / 네 복거일의 책을 계속 보고 있는데, 논리는 같죠. 자유주의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 관점에서 보는 사안들을 바라보죠. 이번에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을 구입했습니다. 이것도 함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