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그때 나는 고작 열 살이었다.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촌스러운 포스터는 유치하기보다 되려 정겹다. 영화는 안봤어도 지금 애들도 '백투더퓨쳐2'라는 영화 제목은 다 안다. 나도 이 영화 오늘 처음 봤지만 워낙 유명한 영화였고, 애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던 '제목'이었기에 마치 전에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나의 기억력이 어디까지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부실한 기억력에 의존해 검색해본다면 이 영화 안봤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적에 애들은 그렇게 놀았다. 입에 가래를 잔뜩 머금고 친구 얼굴을 향해 빽.투더.퓨쳐.투우우우. 투우 하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 머물던 그 가래가 뿜어져나온다. 아 더러워. 나는 이런 놀이 별로 취미없었지만(정말이다) 내 친구들은 서로에게 침을 팍팍 튀기며 이러고 놀았다. 그 어떤 영화제목보다도 백투더퓨쳐투는 다섯 음절안에 가장 가래를 많이 끌어모을 수 있는 단어였다. 퉤퉤.

  더러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백투더퓨쳐투>는 타임머신에 의한 시간여행을 다루고 있다. 전편에서 마티 맥플라이를 열연한 마이클 폭스는 2편에서는 마티 맥플라이와 그의 아들 마티 주너어 역까지 소화해낸다. 시간여행에 관한 영화니 따로 분장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연기할 수 있다. 미래에 마티 주니어가 사고를 치고 감옥에 들어가고, 또 그의 딸도 사고를 치고 감옥에 가고, 연쇄작용으로 결국 마티 맥플라이의 집안이 아예 쑥대밭이 되어버린다는걸 알아버린 마티는 브라운 박사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사고가 일어나는 그날로 뛰어넘어간다. 그러나 미래의 늙은 비프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몰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뒤바꿨으니 이를 어쩌랴.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역사는 둘로 나뉘어졌다. 원래 존재했던 시간의 띠와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 뒤바꿔버려 생겨난 같은 시간대의 또다른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마티와 브라운 박사는 물론 고쳐진 그날로 돌아가 다시 역사를 돌려놓는다.

  타임머신이 정말 발명돼 나의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리고 내 미래를 지금의 내가 원하는대로 바꿔놓을 수 있다면 어떨까. 만일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미래로 바꿔놓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비프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위해 과거를 돌려놓았을 때 바뀐 것은 비프의 미래만이 아니요, 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단 한 사람의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의 '사소한 조작'으로 인해 10년, 20년 후의 미래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한다. 겨우, 고작, 스포츠연감 하나를 건냈을 뿐인데. 그러니 이것이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조작해 미래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나의 사소한 조작은 나의 미래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미래를 변화시킬 것이니 모든 이들이 자신의 삶에 아무리 사소한 '조작'을 가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원하는 삶은 이뤄지지 않는다.

  어릴적 타임머신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나의 부실한 기억력에 의존해볼 때 그런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나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판사가 되고 싶어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요, 이런 장래희망은 정말 '아무나'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누구나' 한번쯤 꿈꿔본 미래가 아닌가. 타임머신도 이와 같지 않을까. 어릴 때 한번쯤 생각 해본 그 공상을 다시 한번 해본다.

  타임머신이 정말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나만이 사용할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어? 음. 아마도 영화 속의 마티처럼 한 20년 뒤쯤의 나의 미래로 건너가 어떤 모습일지를 보고서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과거로 돌아와 고쳐놓겠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인연이 어긋났다면 이 또한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와 그녀와의 사랑이 지속될 수 있도록 고쳐놓을 것이고, 지금의 내가 과거를 돌아봤을 때 후회되는, 아쉬운, 고치고 싶은, 나의 과거를 돌려볼 수 있겠지. 학창시절 들입다 공부만 해단 사람들은 날라리처럼 놀아보고도 싶을 것이고, 거꾸로 학창시절 맨날 먹고 자고 싸고 자고 사고치고 먹고 자고 싸고 자고 사고치고 했던 사람들은 아 그때 좀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하고 후회하며 모범생인 자신을 만들어볼 수도 있겠지. 그치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상. '정말 타임머신이 있다면'하고 공상하는 시간에, 정말 타임머신을 만들 기술을 발명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편이 좀 더 현실적일터다.

   시간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고, 시간의 띠는 여전히 지속되어 나아가고 있다. 타임머신을 통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사소한 변화를 줌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가 있다면, 지금 내 모습에 변화를 줌으로써 나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다해도 2007년 1월 10일 오후 열시 이십오분의 나는 나에게 사소한 변화를 줄 수 있으니까. 지금 나에게 가하는 변화가 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너무나 도덕교과서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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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7-01-10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작 3살이였죠...^^; 백투더 퓨처... 어릴때 정말 재미있게 봤었던 것 같은데... 지금 봐도 재미있더군요.

2007-01-11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07-01-1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늘사초님 / 하핫. 뭐 저랑 별로 차이 안나시는군요! (정말?) 지금보면 유치하지만 당시엔 굉장히 뛰어난 영상을 선보인 영화였어요. 아이디어도 그렇고. 전 당시엔 1편만 보고 2,3편은 못본거 같은데.
속삭이신님 / ㅎㅎㅎ 맞아. 겁쟁이라고 하면 일이 꼬여요. 화나서. 3편 예고까지 봤는데 서부로 가서 박사님 만나고 또 거기서 한바탕 총싸움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