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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본 과학은 노벨상을 탔는가 ㅣ 살림지식총서 379
김범성 지음 / 살림 / 2010년 1월
평점 :
일본인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은 1949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가 최초이다. 하지만 일본인은 이미 1901년, 즉 노벨상이 시상되던 첫 해부터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郞, 1854~1917)가 추천되는 등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었다[그러나 상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노벨상 위원회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하여, 하인리히 코흐(Heinrich Hermann Robert Koch, 1843~1910,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문하에서 히데키와 혈청 요법에 관한 논문을 공저한 '이미 저명한 백인'인 베링(Emil Adolf von Behring, 1854~1917)에게 상이 돌아갔다]. 1907년부터 노벨상 위원회로부터 노벨상 추천 의뢰를 받았고, 노벨상에 다가가는 연구 성과를 꾸준히 냈다. 급기야 2002년에는 박사 학위가 없는 평범한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제 일본인의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더 무서운 것은 노벨상은 '빙산의 일각'일 뿐, 그것만으로 일본 과학의 저력과 저변을 모두 대변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 책은 비록 사회문화적 분석에까지 깊이 나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노벨상 수상을 가능하게 한 바탕에 자율적, 자립적, 수평적, 민주적 연구 문화가 자리잡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책에 나온 예화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
1.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1955. 7. 9.)에 서명한 열한 명 중 한 명이다. 그는 1957년 '퍼그워시 회의'에 참석하였고(위 회의는 영국 과학자인 Joseph Rotblat과 함께 199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 1962년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郞, 1906~1979, 196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사카타 쇼이치(坂田昌一, 1911~1970) 등과 함께 핵무기 근절을 내세운 '교토 과학자 회의'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도모나가는 '원자력 이용 3원칙', 즉 민주, 자주, 공개의 원칙을 수립하는 데 힘썼다.
2. 일본 화학회는 2001년 11월, 젊은 연구자를 장려하겠다며 새로이 상을 제정하였다. 그런데 수상자로 추천된 것은 이미 고인이 된 198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후쿠이 겐이치(福井謙一, 1918~1998)와 200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 1936~)였다. 시라카와 히데키는 이러한 움직임이 노벨상의 권위에 기대어 일본 화학회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수상을 거부했다.
3. 일본 정부는 한때 '50년간 3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대하여 200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1938~)는 '노벨상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은 경박한 행동이며, 이러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학문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4.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인 3인 중 한 명인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1940~)는 위 1. 사카타 쇼이치 연구실의 일원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 방법론으로 '변증법적 유물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고백하였다. 사카타 연구실은 1946년 '학문의 자유와 평등'을 내건 '물리학 교실 헌장'(역자는 이와 같이 번역하였으나, '나고야 대학교 물리학과 헌장'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링크 참조)을 제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 헌장은 '연구의 주체는 교실 회의를 구성하는 연구원으로, 대학원생급 이상의 연구원은 모두 대등한 자격을 지닌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마스카와는 현재도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노요리의 지적(위 3.)처럼, 노벨상은 연구의 과정에서 주면 받는 것이지, 따내는 것이 아니다. '노벨상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기획한다는 것은 연구활동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일 뿐 아니라, 연구성과가 언제 어디서 누군가에 의해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고 평가받을지를 예측한다는 것도 어렵다. 일본인 과학자들의 노벨상도, 그들의 30년 전, 50년 전 연구성과에 대한 것이었다. 노벨상은 연구가 이어지면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일 뿐,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다(이상 책 88-89면).
역자의 다음 번역서들도 이 책의 연장선에서 '일본의 과학문화'를 들여다 보기 위하여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단, '이공계 기피현상'은 오늘날 극심한 취업난 속에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었다. 그 본질이 변하였는지는 의문이지만... (박진용, "'인구론을 아시나요' 취업 절벽에 한숨 짓는 문과생들, 서울신문 2016. 12. 12.자 기사; 안하늘 외, "문과생들, 취업 위해 공학 복수전공까지?", 아시아경제 2015. 3. 18.자 기사 등을 참조)
그 외에도 다음과 같은 책들이 보인다. 정재승 교수의 책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2009년 우수과학도서로 선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