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은 큰 기대 않고 집었다가 든든해져서 덮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역자의 말대로, 크건 작건 나를 변화시키고, 무언가를 결심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중간점검 계기 삼기 좋은 책이다. 자신만의 방법론을 개선하는 데 소용되는 대목을, 어딘가에서는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자가 책에 소개된 일본 정보처(기관, 웹사이트, 지역)에 대응되는 한국 정보처를 주석으로 달아둔 점도 칭찬하고 싶다(2009년 당시로서는 최선의 정보였겠으나, 간혹 웹사이트 등이 없어지거나 주소가 바뀐 경우도 눈에 띈다).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지, 아직 재고가 소진되지 아니하였다. 후루룩 읽어 치우고 '청어람'하시길...

 

  여담이지만, 그의 책(『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을 15년 전에 처음 읽었는데, 지금껏 그의 이름을 다치'나바' 다카시로 잘못 읽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일본어에 무지했던 탓이다. 立花(ばな) 隆 혹은 橘(たちばな) 隆志이다. たちなば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한국어 사이트 중에 같은 오류를 범한 페이지가 '아주 많이' 발견된다.

 

  그의 저작들 중 번역된 것은 다음과 같다. 최근(2017. 1. 18.)에도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立花隆の書棚)』가 648쪽짜리 책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출간일을 고려하지 않고 내용에 따라 대략적으로 분류해 보았다. 청어람미디어의 책이 많다. 표지 이미지를 구하지 못하였지만, 신한출판사에서 나왔던 『뇌사』라는 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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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역사
F.클렘 / 미래사 / 1992년 8월
평점 :
절판


  1983년 처음 나온 책을 번역한 것으로, 시계(時界)가 80년대까지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독일에서는 1999년 네 번째 개정판까지 나온 것으로 확인되고, 몇 번째 개정판을 번역하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석기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경이롭다고밖에 할 수 없는 '기술의 역사'를,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압축적으로 잘 망라하고 있다. 이 사람 완전히 작정하고 우겨 넣었구나 싶을 정도로, 'brief but comprehensive'한 책이다. 기술사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얻기에는 충분하다.

 

  특히 유용한 점은, 풍부한 사료(史料)에 있다. 1932년부터 1969년까지 30년 이상을 뮌헨에 있는 독일 박물관 도서관 관장으로 일하고, 박사학위 논문 역시 '기술 문헌의 역사'(제목은 "Die Geschichte des technischen Schrifttums : Form u. Funktion d. gedr. techn. Buchs vom ausgehenden 15. bis zum beginnenden 19. Jahrhundert")에 관하여 쓴 이답게, 도판과 고전문헌이 풍부하게 인용되어 있다. 마니아들에게 기쁨을 안겨 줄 만하다. 번역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번역하여 주신 역자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1992년 8월 초판 1쇄만을 찍은 채 절판된 듯하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이 꽤 있다.

 

  자크 엘루의 책은 1996년 처음 소개되었는데, 다행히 2011년에 다시 출간되어 책을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스테디셀러라 할 만하다.

  토머스 미사의 『다빈치에서 인터넷까지』는 흥미를 끌 법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아마존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언젠가 읽어보려 한다. 국역본은 2011년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제목은 역시 컴퓨터공학과 교수보다는 기자가 잘 뽑는다.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는 단연 이 분야 판매량 수위에 올라 있다. 비밀독서단 추천도서로도 선정되었다. 평도 나쁘지 않다.

 

 

  『테크놀로지의 걸작들』은 2006년 생각의나무에서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다. 종래 평점을 남긴 모든 분들이 별점 4~5개를 부여하셨다. 새 출판사에서 가격도 내려 출간하였는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듯하다. 린 화이트 주니어의 중세기술사 연구는 저명하다.

 

 

   간략히 훑어보기 위해서는 송성수 교수의 살림지식총서를 읽으면 되겠다. 송성수 교수는 과거 녹두출판사의 '이야기주머니' 시리즈 중 하나인 『과학 이야기주머니 1, 2』를 낸 바 있는데, 최근까지도 많은 책들을 쓰고, 번역하고 계신다. 보다 상세히 읽고 싶다면 부산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사람의 역사 기술의 역사』를 읽으면 된다. 2005년 신원문화사에서 낸 『기술의 프로메테우스』를 2011년과 2015년에 거듭 증보한 것이다.

 

 

 

  국내 저자들의 다음과 같은 책이 있다. 베버와 짐멜을 연구하시는 김덕역 님의 저작이 눈에 띈다. 『전쟁이 발명한 과학기술의 역사』도 끌린다. 장병주 교수의 책은 여러 버전이 있으나, 공학(교육)인증용 교재로 쓰이다 보니 거듭 개정된 것에 불과하다. 진한M&B에서 나온 책은 정체를 알 수 없다.

 

 

 

  각론 격이라 할 수 있는 기술 분야별 책도 다양하게 나와 있겠으나, 임석재 교수의 역작인 『서양건축사』 시리즈만을 언급하여 둔다. 요약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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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6 2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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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6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5시 홍신 엘리트 북스 6
콘스탄틴 버질 게오르규 지음, 최규남 옮김 / 홍신문화사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25시. 최후의 시간 다음에 오는 시간. 메시아가 강림한다 하더라도 구원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 구체적 인간을 추상적 범주로 전락시키는 서구 기술 문명과 그 몰락.

 

  번역이 매끄러워 몰입이 수월하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트라이안이 나치에 항거하는 의미로 수용소 규정을 위반하여 철조망을 향해 다가가다가 총을 맞고 죽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25시』는 2000년대 이후 세계문학전집을 주도한 민음사, 문예출판사, 열린책들, 문학동네, 펭귄클래식의 목록에 들지 못하면서 깨끗이 잊힌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실은, 1952년 한국에 소개된 이래, 1980년대까지 스테디셀러였다. 1999년 한겨레에서 전문가 6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20세기 걸작'에서 13위에 선정되었고(아래 표 및 "독자와 함께 정리하는 20세기 20대 뉴스 7. 세기의 걸작 '모던타임스', '예스터데이' 첫손", 『한겨레』(1999. 11. 19.), 17면  참조. 전문가 명단은 위 링크에서 1999. 11. 12. 기사 18면 참조), 2000년 KBS영상사업단이 <TV문화기행, 문학편 6: 게오르규, 25시의 증언>을 제작·방영하였을 정도로 적어도 1990년대까지 꾸준히 회자되었다.

 

순위 제목 작가 장르
 1 모던 타임스 찰리 채플린 영화
 2 게르니카 파블로 피카소  미술
 3 예스터데이 비틀스 대중가요
 4 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문학
 5 1984 조지 오웰 문학
 6 닥터 지바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문학
 7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문학
 8 이방인 알베르 까뮈 문학
 9 전함 포템킨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영화
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 문학
11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문학
12 시민 케인 오손 웰스 영화
13 25시 비르질 게오르규 문학
14 굿모닝 조지 오웰 백남준 미술
15 피아노협주곡 2, 3번 라흐마니노프 클래식
16 변신 카프카 문학
17 마이웨이 프랭크 시내트라 대중가요
18 분노의 포도존 스타인벡 문학
19 로미오와 줄리엣프로코피에프 클래식
20 황무지 T. S. 엘리엇 문학

 

  『25시』는 원래 게오르규가 루마니아어로 써두었던 소설이다. 작가가 프랑스에 망명해 있던 1949년, 프랑스 Plon 출판사에서 Rita Eldon의 프랑스어 번역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루마니아어로는 2004년에야 출간되었다. 일본에서 1950년 번역되었고, 한국에서는 소설가 김송이 전란 중이던 1951년 부산에서 번역한 일본어 중역본이 1952년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다음과 같은 번역본들이 이어졌다(국가자료종합목록에 따라 대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미 위 목록 자체에 입력상 오류가 눈에 띌 정도로 많아, 반드시 망라적이라거나 정확한 자료라고 장담할 수 없다). 특히 김인환의 번역본은 수없이 많은 출판사에서 나오고 또 나왔다; 알라딘에서도 검색되는 것은 53번 이후의 것들이다.

 

1. 김송 역, 『25시』, 동아문화사, 1952; 김송 역, 『25시』, 청춘사, 1952~1960 (일본어 중역본)

2.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5: 군도 외』, 정음사, 1959

3. 『세계문학선집 5: 게오르규』, 합동, 1964

4. 『세계전후문학전집 3: 불란서전후문제작품집』, 신구문화사, 1966

5. 「세계명작 다이제스트 ⑦ 二十五時」, 『명랑』(1966. 11.)에 발췌 소개.

6. 원응서 역, 『25시』, 창구사, 1967~1970

7. 『세계문학전집 4』, 삼성출판사, 1969~ (김동리, 양병탁, 이어령 등이 편집위원으로 관여)

8. 이군철 역, 『게오르규 25시/오오웰 1984년』, 동화출판(공)사, 1971~1977 (영어 중역본)

9. 한용우 역, 『25시』, 흥문도서, 1972~1978

10. 김송 역, 『세계명작장편소설 二十五時』, 성공문화사, 1972~1989 (위 1번 참조)

11. 김인환 역, 『세계전쟁문학대전집 3: 25시, 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 삼진사, 1972 (프랑스어 번역본, 하인리히 뵐은 곽복록 역)

12. 『세계의 문학대전집 32: 25시』, 동화출판사, 1972~1981 (임인규 편)

13. 『세계명작 순례』, 관동출판사, 1972 (천병식 편)

14. 『세계문학명저 100』, 청산문화사, 1973

15. 『세계문학전집 25』, 삼성출판사, 1974

16. 강인숙 역, 『25시, 키랄레싸의 학살』, 삼성출판사, 1974~1977 (프랑스어 번역본)

17. 원응서 역, 『25시 상/하』, 삼중당문고, 1975~1993 (위 6번 참조)

18. 김인환 역, 『25시/고원의 사랑, 선로지기 티일』, 삼진사, 1976~1977 (루이제 린저는 이영구, 하우프트만은 지명렬 각 번역)

19. 『신선세계문학전집 17: 25시』, 삼진사, 1976

20. 김인환 역, 『25시』, 동서문화사, 1978~1987

21. 강인숙 역, 『25시』, 문학당, 1978 (위 16번 참조)

22. 김병걸 역(?), 『25시』, 대산, 1978~2006

23. 김인환 역, 『25시』, 태극출판사, 1980

24. 김인만 역, 『25시』, 한영출판사, 1981

25. 백승철 역, 『25시』, 지성출판사, 1981~1982

26. 이상근 역, 『25시』, 서한사, 1981

27. 윤형복 역, 『25시』, 백양출판사, 1982~1989

28. 한용우 역, 『25시』, 삼육출판사, 1982~1989 (위 9번 참조)

29. 김병린 역, 『25시』, 문학당, 1982

30. 김병린 역, 『세계문학대전집 25: 25시』, 삼성당, 1982~1993

31. 이상근 역, 『25시』, 민들레, 1983~1984 (위 26번 참조)

32. 김인환 역, 『25시』, 학원출판공사, 1983~1985

33. 백승철 역, 『25시』, 시대문화사, 1983 (위 25번 참조)

34. 강인숙 역, 『25시/마닐라 로우프』, 삼성출판사, 1985~1992 (위 16, 21번 참조, 베이요 메리는 이인웅 역)

35. 김인환 역,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신영, 1986~1994

36. 김인환 역,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중앙문화사(중앙미디어), 1987~2006

37. 이광식 역, 『설국/25시』, 교육문화사, 1988~1990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윤정국 역)

38. 김인환 역, 『25시/변신, 유형지에서』, 중앙문화사, 1988 (카프카는 곽복록 역)

39. 최명 역, 『한 권의 책: 25시』, 학원사, 1988~1990

40. 김인환 역, 『학원세계문학전집 30: 아Q정전/봇짱/나생문/25시』, 학원출판공사, 1988~1996(루쉰 이가원, 나쓰메 소세끼 김영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김선영 각 번역)

41. 『25시』, 자유문학사, 1989

42. 김인환 역, 『벨라주 세계문학대전집 29: 25시/다뉴브강의 축제』, 신영(영신?)문화사, 1990 (위 35번과 같은 것?)

43. 김인환 역, 『25시』, 어문각, 1991~1994

44. 김지원 역, 『25시』, 고려출판문화공사, 1992

45. 김인환 역, 『25시 외 4』, 동서문화사, 1992

46. 김인환 역, 『25시』, 마당, 1993~1997

47. 김인만 역, 『25시』, 나나, 1993 (위 24번 참조)

48. 김병걸 역, 『25시』, 여명출판사, 1994 (위 22번 참조)

49. 김지혁 역, 『25시』, 삼성기획, 1995

50. 김인환 역, 『25시/인간의 대지/어린왕자/좁은문/말테의 수기』, 학원출판공사, 1995~1997 (생텍쥐페리 안응렬, 지드 이휘영, 릴케 염무웅 각 번역)

51. 김병걸 역, 『25시』, 현대출판사, 1995~1996 (위 22, 48번 참조)

52. 김병걸 역, 『25시』, 삼성당, 1996~2002 (위 22, 48, 51번 참조)

 

53. 김양순 역, 『25시』, 일신서적, 1986~1994

54. 최규남 역, 『25시』, 홍신문화사, 1992~2012 (필자가 가진 책은 1992. 4. 30. 1판의 1995. 2. 10. 6쇄)

55. 김인환 역, 『25시』,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1992~1997

56. 김지혁 역, 『25시』, 육문사, 1995~2008 (위 49번 참조)

57. 나희영 역, 『25시』, 청목, 1993~2004

58. 이선혜 역, 『25시 상/하』, 효리원, 2006~2007

 

  게오르규는 한국에서, 앤써니 퀸이 주연한 영화의 흥행에다(극장에서 4번 넘게 상영되었고, TV에서도 수차례 방영되었다), 1974년, 1976년, 1984년, 1987년 방문 당시의 '립서비스'("서구와 달리 조화의 덕을 갖춘 한국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초가지붕, 분묘 예찬과 홍익인간, 화랑, 흰옷, 선비, 태극기, 도자기에 관한 언급, 석굴암·불국사 방문) 등으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친한파 지식인으로 추앙되었다. 게오르규도 한국을 십분 활용하였다. 그는 첫 방한 때부터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하겠다고 공표하였고, 그 덕분에 호감을 사 위와 같이 여러 번 초청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프랑스 문화계에서 입지까지 다질 수 있었다(이어령과 문학사상사는 '세계지성과의 대화'라는 이벤트를 기획하여 게오르규를 초청하는 등 그를 '루마니아의 양심'으로 밀었다. 창비의 백낙청은 '러시아의 양심' 솔제니친을 내세웠다). 민중진영에서도 게오르규를 '약소민족의 양심적 지식인, 저항작가'로 이해하여 반정부적 참여문학의 자양분으로 삼았다[일찍이 김수영은 이어령과의 순수참여논쟁 무렵, "24시간 중 단 한 시간이나 단 10분만이라도 통행금지가 해제된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적과 맞설 수 있다."는 글을 썼고{「시의 '뉴 프런티어'(1961)」,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2003, 241}, 영화 <25시>에 대한 감상을 남기기도 하였다{「삼동유감(1968)」, 『김수영 전집 2』, 민음사, 2003, 130~131}. 김성한은 1982년 『바비도』를 내면서 소설 「난경」의 제목을 「24시」로 바꾸었다. 시인 배태인은 「내 25시적 삶」, (신경림 외), 『작가의 편지』, 어문각, 1983, 176~177을 통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나치 독일, 루마니아를 침공한 소련뿐 아니라, 연합군과 미국까지도 기계적 관료주의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아 통렬하게 비판하였던 그의 작품과는 달리, 게오르규 자신은 루마니아 파시스트 정권의 외교관이기도 했다. 그의 극렬한 반공주의는 독재와 부정부패의 폐해를 직시하는 눈을 흐렸고, 기계문명을 비판하면서도 산업화 경쟁을 상찬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기도 하였다. 한국에 와서도 '소련보다는 독재가 낫다'면서 어용적 발언을 쏟아냈는데, 당시 대통령 전두환을 일컬어 "동양의 현인"에 "위대한 군인"이며, "정의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가진 대통령"이라고 격찬하였는가 하면, 『한국찬가』에서는 자신이 "한국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까닭은 그 군대 때문"이라는 커밍아웃(?)을 하기까지 하였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누군가의 조종으로 맹목적으로 동원된 소요사태'라고 폄하하기도 하였다. 게오르규의 뜨악한 발언은 87년 항쟁 이후에도 계속되었다(엉망진창인 그의 삶 탓에, 작품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의 감동에도 불구하고, 별점을 주기가 주저된다).

 

  한국문단은 이러한 사정을 애써 외면하거나 망각했다. 1990년대에도 많은 이들이 그와의 인연, 추억을 회고하며 자랑스러워했다. 겉으로는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애환을 공유한다 여기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서구의 권위에 굴종하고 있었던 탓은 아닐까.

 

 

덧. 이상은 이행선, "게오르규의 수용과 한국 지성사의 '25시' -전후문학, 휴머니즘, 실존주의, 문명비판, 반공주의, 어용작가-", 한국학연구 제41집(2016. 5.), 9~41을 크게 참고하고 인용한 것이다.

"1938년 저는 루마니아의 유대인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1940년대에는 헝가리의 루마니아인 수용소에, 1941년에는 독일에 있는 헝가리인 수용소에, 1945년에는 미군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틀 전에 다하우 수용소에서 석방되었습니다. 13년간의 수용소 행활을 끝내고 나는 열여덟 시간 동안 자유롭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로 끌려왔습니다... 이것이 1938년부터 오늘까지 지내온 길입니다. 수용소, 수용소, 수용소에서만 13년을 보냈습니다."

- 요한 모리츠(389쪽)

"진보의 최후 단계에 접어든 서구문명은 개인의 존재에는 신경도 쓰지 않게 마련이오. 문명이 개인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한다는 건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일이라오. 이 사회는 개인이 지닌 약간의 가치밖에 인정하지 않거든. 개인으로서의 완전한 인간은 이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거요. 죄없이 갇혀 있는 당신이나 그밖의 많은 사람들도 이제 그들 자신으로는 존재할 수 없단 말이오. 우리는 단지 하나의 카테고리의 무한히 작은 분자로서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지. 예를 들면 당신은 독일 영토 내에서 체포된 한 사람의 적국 시민에 지나지 않소. 바로 이것이 서구의 기술사회를 한결같이 똑같은 사회로 만들 수 있는 하나의 특질이지. 또한 바로 그것이 그들 앞에 당신을 나타낼 수 있는 전부인 거요. 이 사회는 당신을 그러한 특징으로밖에 인정하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곱셈, 나눗셈, 뺄셈, 덧셈의 법칙에 따라 당신이 소속된 그룹 전체로서의 당신을 대우하는 것뿐이오. 당신은 루마니아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그 작은 분자가 붙들린 셈이지. 체포된 원인-또는 죄-은 당신이 이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는 데 있소."

(이어서) "서구사회는 인간을 기술의 견지에서 보고 있소. 즉 살과 뼈를 가진 인간, 기쁨과 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요. (중략) 그래서 누군가를 체포한다든가 죽이는 경우에도 이 사회는 살아 있는 그 무엇을 체포하고 죽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관념을 처벌하는 거요."

- 트라이안 코루가(247~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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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검시제도를 논하다
문국진 지음 / 글로세움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별점 다섯 개를 주러 왔다가 책 표지에 관한 문제제기를 보고 별 네 개를 거둔다. 출판사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http://www.amazon.com/The-Valley-Masks-Tarun-Tejpal/dp/9350290464/ref=sr_1_1?ie=UTF8&qid=1346113053&sr=8-1&keywords=the valley of masks

 

  한국에서 변사자에 대한 부검은 판사의 영장을 받아, 검사의 지휘 하에, 주로 경찰관이 위임을 받아 집행한다. 이들은 모두 비전문가들이다. 검시에 참여하는 의사마저 법의부검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다.

 

  영미법계에는 검시를 전담하는 직책인을 두는 이른바 '전담검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검시관(coroner)을 두고, 미국에서는 선거로 선출하는 법의관(medical examine)을 둔다. 미국에서 일반의사들은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가 사망하였을 때에 한하여 사망진단서를 발부하고, 다른 죽음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않고 법의관에게 사체를 넘긴다.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검시교육의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미국 전체 의과대학 중 법의학 교실을 개설한 대학은 불과 5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207쪽). 반면 대륙법계에서는 특정 직종의 공무원이 검시업무를 겸임하는 '겸임검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는 해방 이후 법제도 측면에서는 (일본을 통하여) 대륙법 체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의학 교육 측면에서는 미국의 교육과정을 도입하였다. 당시의 시찰단은 미국 의과대학 교육과정에 없는 것을 굳이 우리나라 대학에서만 교육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바람에 우리는, 미국과 같은 법의관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제대로 된 법의학 교과가 없는 채로 60여 년의 세월을 흘려 보냈다(2012년 책 출간 당시 43개 의과대학 중 12개 대학에만 개설). 그 사이 억울한 죽음들도 수없이 묻혀 보냈다(단적으로, 몇몇 유명 연예인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둘러싸고 끊임없는 설왕설래가 오가는 것을 보라).

 

  초동수사에서부터 법의학 전문가가 개입하도록 하는 검시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 비전문가인 수사기관이 보는 외관만으로는 결코 범죄성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부검은 수사기관의 시각에서 범죄에 의한 사망일 때 비로소 실시하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반대로, 전문가가 부검을 통하여 사인을 명확히 규명한 뒤에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범죄성이다. 법의학 전문의를 충분히 양성하여야 하고, 법률가들 역시 법의학 교육을 충실히 이수하여야 한다. 범죄수사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법검시 외에도 전염병 사망, 행려 사망, 사인불명의 병사, 신생아 및 임부의 사망 등과 같이 보건정책상 필요한 부검에 대하여 '행정검시'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우리 법과 연계성이 높은 독일, 일본, 오스트리아 등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다). 끝으로, 제도개혁을 위해서는 '두벌주검'에 대한 인식 전환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환자가 생존 시 앓고 있던 병에 대한 진단이 정확하였는지, 그 질병에 사용된 약물이 어느 정도로 효과적이었는지와 같은 것은 사후 부검을 통해서만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의료행위에 대한 비판과 반성, 시정과 개선이 반복되는 가운데 의학은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검이 여의치 못해 다른 나라 통계를 빌려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의학발전을 위한 부검은 고사하고, 사법부검마저 두벌주검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로막히기 일쑤이다. 유럽에서는 늦게는 18세기 초경까지도 '용의자가 진범이라면, 자신이 가해한 피해자의 사체를 보거나 접촉하는 순간 시체의 상처에서 출혈이 야기된다거나, 해당 용의자의 얼굴 표정과 몸의 거동이 달라진다'는 식의 '관법 棺法 Baarrecht'에 의거한 검시가 이루어졌다. 그에 비하여, 우리는 이미 1438년(세종 20년) 『신주무원록 新註無寃錄』[책 20쪽에 따른 것이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역시 동일하나, 두산백과 등에는 1440년(세종 22년) 출간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1456년(세종 38년) 『심리록 審理錄』이 간행되고, 1792년(정조 16년) 앞의 책을 증보한 『증수무원록 增修無寃錄』을 편찬하는 등 수백 년을 앞선 과학적 검시기술과 제도를 갖추고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미 법의학을 다룬 다양한 대중서를 펴냈다. 2000년 이후에 나온 책들만 최근작부터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미술작품과 연계한 저서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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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서서
이우환 지음, 성혜경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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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언젠가 내가 돌을 보고 있자니 눈길은 돌 저쪽으로까지 꿰뚫어나가고 동시에 돌의 눈길 또한 내 등뒤로까지 꿰뚫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윽고 두 개의 눈길이 서로 뒤돌아보았을 때 그곳엔 나도 돌도 없고 투명한 공간만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 4

 

  어쩌다 바람에 너울거리는 나무와 흔들리는 나의 눈길이 만난 순간 나는 멈춰 선 나무가 되고 나무는 걷는 내가 된다

 

  이리하여 나와 나무는 그곳에 있으면서 어디론가 돌아다니는 옮아 탄 운명의 공간을 이루게 된다

 

산정山頂 2

 

산정에 서면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라

 

이윽고 하늘이 쏟아지면

품에 안고 산을 내려오라

 

가지 끝

 

가지를 따라 생각을 더듬어 가면

 

기억이 끊어진 저쪽에 열린 봉오리

 

우산

 

비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거니는 사람은

모두 고독하다

 

그건 비에

적시고프지 않은 작은 공간을

나르는 때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 공간에 들어가

빗속을

여기저기 저 너머로 장소를 옮긴다

 

사람이

투명한 유리케이스처럼

자신을 가둔 채 걷고 싶어하는 것은

 

우산 아래서

차가운 고독의

비에 젖고 싶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세계를 이해함에는 그의 글들을 함께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본에서 그의 이름을 알리고, 그를 중심으로 '모노하(物派) 운동'을 집결시킨 것도, 그가 1969년 6월 『산사이三彩』에 발표한 「존재와 무를 넘어서 - 세키네 노부오 론 存在と無を越えて - 關根伸夫論」을 기점으로 해서였다.

 

  그가 쓰거나, 그를 다룬 책 중 현대문학사에서 출간된 네 권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고, 네 권은 품절되었다.

 

  2009년에 나온 『시간의 여울』은 화백의 에세이집이다. 일본의 <미술수첩>, <예술신조 藝術新潮>, <현대시수첩>, <현대사상>, <통일일보>, <아사히신문>, <일본경제신문> 등에 발표한 것들과, 미발표 원고를 모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1987년 小沢書店에서 처음 출간되었다가 2004년부터는 みすず書房에서 출간하고 있다(2016년 4월에도 책을 다시 찍어냈다). 한국에서는 1994년 디자인하우스에서 서인태 씨 번역으로 처음 나왔다가 2002년 여섯 편의 단편을 추가하여 남지현 씨가 새로이 번역하였고, 2009년에 월간 <현대문학>에 실었던 다섯 편을 더하여 현대문학사에서 재발간되었다.

  2002년에 나온 『여백의 예술』은, 화백이 미술 표현에 대한 단상, 현대 예술 일반에 대한 견해, 유럽이나 한국, 일본의 문화감각 등을 주제로 1967년부터 최근까지 일본의 잡지, 신문, 카탈로그 등에 발표하였던 단문, 또 미발표 원고를 묶은 책이다. 『시간의 여울』이 주로 신변잡기라면,  『여백의 예술』은 그의 '예술론'이다. 일본 みすず書房에서 2000년 11월 출간되었던 책을 김춘미 교수가 번역하였다.

  2004년에 나온 『멈춰 서서』는 화백의 시집이다. 그의 그림과 조각이 詩적인 만큼이나, 그의 詩도 회화적이다. 詩라기보다는 차라리, '시각(視覺)에 관한 단문'에 가깝다. 2001년 4월 일본 書肆山田에서 출간되었던 책을 성혜경 교수가 번역하였다.

  가장 최근인 2014년에 나온 『양의의 예술』은 심은록 작가와 화백의 대담집이다. 전문성을 갖춘 인터뷰어의 충실한 질문 덕분에 화백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심은록 씨는 작년 4월, 서용선 화백과의 대담집 『사람에 대한 환원적 호기심』(교육과학사)을 펴낸 바 있다.

 

 

  절판된 책 중 화백 자신의 책으로는 우선 열화당에서 1977년에 처음 나온 『이조의 민화: 구조로서의 회화』가 있다. 조선시대 미술의 특징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1. 이조미술의 특징: 생활애(生活愛)의 예술, 2. 회화의 본령: 이조회화의 평가를 중심으로, 3. 화가와 제작: 방랑화가들과 폐쇄사회, 4. 용도와 종류: 회화와 생활공간, 5. 화관(畵觀)과 방법: 윤곽회화의 구조, 6. 성립과 해소: 무명성이라는 것'까지 총 6장으로 구성된 짧은 책이다. 본문은 48쪽이고 이후는 모두 도판이다. 아래 책 이미지는 열화당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가장 중요한 책은 2011년 학고재에서 나온 『만남을 찾아서』이다. 이는 1960년대 말경 화백이 쓴 논문 6편을 수록한 책으로, 이들은 오늘날 이우환을 있게 한 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세키네 노부오 론'도 여기에 실려 있다. 1971년 田畑書店에서 처음 나왔지만, 2000년 美術出版社에서 간행되었다가, 2016년에 『시간의 여울』, 『여백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みすず書房에서 재출간되었다. 번역본은 김혜신 씨가 번역하였다.

  그 밖에, 화백에 대하여 많은 글을 쓴 바 있는 김미경 교수가 낸 『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공간사, 2006), 독일 미술사가인 질케 폰 베르스보르트가 화백의 예술세계를, 현대미술의 국제적 맥락에서 철학적으로 분석한 『이우환, 타자와의 만남』(학고재, 200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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