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서은국 외 옮김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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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정말 시간 남는 사람 5  

                                                                                              한가한 사람 6

                                                                                              바쁜 사람 3



‘세상에 좋고 나쁜 것이란 없으며, 오직 우리의 생각이 그것을 믿는 것이리라’

 

작품을 다 읽고 어떤 내용으로 정리할까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마주한 어느 신문의 컬럼에서 이런 자료가 눈에 들어와 올려 본다.

“스위스에서 어떤 노인이 자신의 여든 살 생애를 세부적으로 나눠 계산해 보았다고 

 합니다. 결과는 미로우면서도 씁쓸했습니다. 그중 일부를 보면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식사 시간 6년, 혼자 공상하며 낭비한 시간 5년, 담배

 피우는 데 1년, 세수하는 데 228일, 아이들과 노는 데 26일, 넥타이 매는 데 18일,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다린 시간 5년. 그중 행복했던 시간은 46시간이었습니다.

 행복을 위한 노력에 비해 결과가 너무 빈약하기만 합니다.“

신문 기사를 근거로 나를 비롯해 본 작품을 읽는 모든 이들은 결국 자기 인생의

‘46시간’을 알차게 보내고자 또 그 의미를 찾기 위해 이 책을 읽은 것 밖에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억울하고도 무척 짜증나는순간이었다. 

그런 짜증을 극대화시킨 것은 작품 제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었던 작품이었다는 게 나의 짧은 생각이다.


저자는 후기 글에 이렇게 쓰고 있는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나 승진, 해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경험하는 즐거움, 즉 행복인 것이다. 따라서 탁월한 선택이란 돈을 최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 즉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인생의 말년에 작품 제목처럼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고 싶었던 나’의 꿈과 희망을 해당 작품은 산산이 박살내고 있었다.

아무튼 작품을 읽으며 행복에 대한 나의 평소 지론을 확고히 하는 시간이었는데 내게

부여된 인생의 시간이 얼마나 부여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폼 나고, 멋지고, 신나고, 즐겁고, 재미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열심히 살 것이다!!!’

작품 정리....제목에 부합되는 내용은 아닐지라도 머리에 담아두면 좋을 듯해 정리해 보았다.

 

- 오직 인간만이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이 과거에도 하지 못했고,

  현재 그리고 이후에도 할 수 없는 그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생각한다. 이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야말로 인간을 독특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특징이다. (P 29)

  ---> 인간의 뇌가 이룩해낸 최대의 업적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물과 사상들

        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P 30)

  ---> 뇌는 일종의 ‘예견하는 기계’로 이 기계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지구상에 뇌가 처음으로 생겨난 것은 약 5억 년 전이다. 그리고 초기 영장류의 뇌로 진화하기

   까기 약 4억 3천만 년의 시간이 걸렸고, 7천만 년 정도의 시간을 거쳐 맨 처음 원인(原人)의 

   뇌로 진화. 그런 다음 어떤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약 2백만 년이 넘는 기간에 인간의 것과 

   비슷한 뇌가 전례 없는 급속한 성장을 겪으면서 그 부피가 두 배로 커진 것이다.

   이때 1.24파운드였던 ‘호모 하빌리스’의 뇌가 3파운드인 ‘호모 사피엔스’의 뇌로 변하게 

   되었다.

- 인간의 뇌의 한 부분인 ‘전두엽’은 건강한 성인이 자기 자신을 여러 시간에 걸쳐 확장

  된 존재로 여길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 준다. (P 42)

   ---> 전두엽은 일종의 타임머신 같다. 우리는 이를 통해 현재로부터 빠져나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 우리의 뇌는 고집스럽게 우리를 미래로 끌고 가려고 애쓰는 것인가?

  그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P 46)

- 우리의 뇌가 고집스레 미래를 상상하여 애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뇌는 우리가 경험

  할 것들을 통제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P 51)

  ---> 사람들은 통제력을 행사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낀다.

- 행복은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무언가를 지칭하기 위해 우리가 편의상 이름붙인 단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P 64) 

- 사람은 행복하길 원하고 행복 외에 바라는 모든 것은 대개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서 의미를 지닐 뿐이다. (P 68)

  ---> 사람의 의지는 행복 이외의 목적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 무언가를 선호한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더 큰 기쁨을 얻으려는 기대감으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거나 원하는 것“이다.

- 전통적으로 심리학자들은 인간 행동에 대한 이론을 행복이란 주제를 중심으로 정립해

  왔다.

- 행복은 고결한 삶의 결과물이 아니라 고결한 삶의 보상이며, 이 보상이 반드시 이 생

  에서 나타난다고 볼 수는 없다. (기독교 신학자들, P 71)

- 철학자들이 행복이라는 단어의 도덕적 의미와 감정적 의미를 뒤섞어놓았다면, 

  심리학자들은 행복에 담긴 감정적 의미와 평가적 의미를 뒤섞어놓았다. (P 73)

- 언어는 우리가 경험했던 것의 중요한 특징을 추출하고 기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우리가 나중에 그것을 분석하고 그것에 대해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해 준다.

                                                                                                     (P 78)

- 행복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과 남에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P 93)

- 칸트의 새로운 이상주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하는 경험은 우리 눈이

  세상의 이미지를 그대로 뇌로 전달할 때 일어나는 생리적인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지각현상은 눈이 보는 것들이 우리가 이미 생각하고 느끼고 알고 원하고 믿던

  것들과 합쳐지는 심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

  결국, 현실 지각은 감각 정보와 현존하던 지식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내는 합작품인

  것이다. (P129)

- 우리는 처음에 기억과 지각 경험을 정확한 것으로 받아들이듯, 상상도 정확한 것으로

  가정하고 시작한다.

-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은 종종 우리 마음에 있는 맹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미래의 사건 그 자체에 대해 틀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 사람들은 미래를 상상할 때 자신의 상상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P145)

- 보통사람은 두 현상이 인과적으로 관련되어 있는지를 알아내려 할 때, 대개 발생했던

  일에는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하지만 발생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기억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언가를 심사숙고하는 행위는 ‘보는 것’에 국한되고, 보이지 않는 것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P147)

  ---> 우리가 선택할 때는 대안들의 '장점'에 주목하지만, 거부 결정을 내릴 때는 주로

        대안들의 '단점'을 고려한다. (P149)

- 아주 먼 '과거나 먼 미래의 사건'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사건이 발생했던 '이유'나 

  발생하게 될 이유를 '추상적'으로 떠올리는 경향이 있으나, '가까운 과거나 가까운 

  미래사건'을 생각할 때는, 그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혹은 '앞으로 어떻게 발생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P156)

- 나이가 지긋한 과학자가 어떤 현상에 대해 가능하다고 진술한다면 그 말은 십중팔구

  옳다. 하지만 그가 어떤 현상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범하는 실수가 있다면 그것은 거의 대부분 

  미래가 현재와 굉장히 비슷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다. (클라크의 제1법칙, P167)

- 인간의 뇌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낄지 그리고 어떤 것을 무시해버릴지에 대해 엄격한

  우선순위를 갖추고 있다. (P180)

- 우울증의 징후 가운데 하나는 미래를 예측할 때 그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182)

- 상상은 현재의 경계를 쉽게 뛰어넘지 못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상상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동시에 지각을 담당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P184)

-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면서 경험하는 정서는 사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경험에 따라 결정된다.

- 시간은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므로 상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은 어떤 추상적인 것을 생각할 때, 그 추상적인 것과 비슷한 ‘구체적인 사물’을

  떠올려 그것으로 추상적인 것을 대신한다.

  그것은 공간으로, 시간을 공간적인 것으로 상상한다고 한다. (P187)

- '습관화‘를 이기는 한 방법은 다양한 경험을 해 보는 것이며, 또다른 방법은 반복되는

  경험 사이사이의 시간 간격을 늘리는 것이다. (P191)

- 우리가 미래의 느낌을 예측하려고 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느낌을 그 시작점

  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더 미래가 현재와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P199)

- 사람의 뇌는 자극의 절대 강도에 민감하지 않다. 오히려 뇌는 ‘차이’와 ‘변화’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다.

- 사람들이 절대 강도보다 상대 강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성은 무게, 밝기, 

  부피 등과 같은 물리적 속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가치, 재화, 부와 같은 주관적인 

  속성에서도 나타난다. (P201)

- 나란히 놓고 비교할 때 발생하는 가장 위험한 사실 중 하나는, 비교 대상이 되는 여러

  대안들은 서로 구별하도록 해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의 주의를 끈다는 

  점이다. (P208)

- 역사가들은 역사상의 인물들을 현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성을 가리켜 

  현재주의라 표현한다. (P213)

-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생각은 미래의 감정에 대한 우리의 예측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현재 경험하는 현실이 매우 강력하고 생생해 그에 기초한 미래는 현재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주의는 우리가 미래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과,

  현재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깨닫기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P214)

-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엄연히 현실과 이상 사이의 타협이다. 즉, 우리는 명백한 현실과

  낙관적인 환상의 적절한 조합을 경험하고 있다. (P231)

- 우리가 원하는 결과에 부합하는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을 판단할 때 울리는 

  ‘불공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결론을 내리게 해주는 정보에 대해

  서는 관대하나,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훨씬 

  엄격한 증거를 요구한다. (P245)

- 우리의 현실 왜곡은 우리의 경험이 본질적으로 모호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유리한 사실을 접하면 그것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잘 기억하며, 

  그 사실의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도 관대하게 적용한다. (P248)

-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은 그것이 정직하게 얻어진 결론이라고 믿어질 때만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을 조작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하고, 

  그 결과를 즐길 때는 의식적으로 한다. (P251)

-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선택들은, 그 선택으로 미래에 경험하게 될 후회의 크기를 

  예상하는 방법에 따라 결정된다. '후회'란, 우리에게 발생한 나쁜 결과가 우리가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다면 피할 수 있었다고 느낄 때 경험하는 매우 불쾌한 

  감정이다. 따라서 현재의 행동은 미래의 후회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결정된다.

                                                                                                   (P256)

  --->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했던 것보다 하지 않았던 것을 훨씬 

         더 많이 후회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심리적 면역체계는 행동하지 않은 것보다 행동한 것에 대해 

         훨씬 더 쉽게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자유가 제공해주는 유익은 쉽게 상상하지만 자유 때문에 오히려 훼손될 수 

  있는 즐거움은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 기억은 경험의 중요한 요점만을 골라 보관하는 편집자로, 우리가 기록을 다시 읽고 

  싶어 할 때마다 그 요점들을 사용해 매번 기억을 재구성한다. (P282)

- 흔하지 않은 이례적인 사건들을 잘 기억하는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하는 주범 중 하나이다. 우리의 뇌는 사실과 이론을 결합하여 과거 사건에

  대한 추측을 만들어내고, 동일한 원리로 사실과 이론을 결합해 과거에 경험했던 

  감정을 추측한다.

- 우리가 ‘내일’ 어떻게 느낄지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오늘’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보면 된다. (P326)

 

책으로부터

-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는 독사 이빨보다 날카롭다. (세익스피어, 리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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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말실수 - 조선의 역사를 바꾼, 개정판
이경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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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말이 당신의 입안에서 돌고 있을 때, 그 말은 당신의 노예이지만 일단 입 밖으로 튀어

 나오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 (탈무드)

 

위 문구는 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특히 정치권은 물론이고 크던, 작던 특정 집단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라면 이 문구가 던지는 의미와 뜻을 정말 가슴 깊게 되새기며 자신의 행동거지를 되돌아보아야 할 지침으로 새겨 볼 금언이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

하지만 작금의 세상은 전과자들이 판을 치고 똥 묻은 놈이 묻은 이들을 타박하는 

세상이고 그런 리더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다 보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나는 언젠가 지금의 여당이 야당시절 종횡무진 난리를 치면서 정권을 향해 막말과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퍼부을 때 그들도 언젠가 입장이 바뀌어 ‘동일하게 당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 적이 있었는데,

작금의 우리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말의 잔치를 보고 있으면 내가 과거에 주장했던 방식으로 그들이 던졌던 무책임한 발언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모습들이 재연되는 모습과 

분위기를 보면서 내가 예측한 내용대로 상황이 전개되어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치 수준이 나 같은 평범한 범인도 예견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낮아졌음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누구 편을 들고 누구를 질타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아무리 정권욕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동네 시정잡배들처럼 막말을 쉽게 쉽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이며 그것도 책임지지도 못할 말에 대해 ‘카더라’ 수준으로, 면책특권 그늘 뒤에 숨어서 난리를 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나는 항시 이야기했다.

입이 하나고 귀가 두 개인 이유가 뭔지를 생각하라고.....점잖지 못한 수준 이하의 인간들로 인해 그들이 생각 이 혹은 정권욕에 급급해 툭하고 내뱉은 저질 발언들로 인해 

앞으로 십 수 년간 이 땅은 바람 잘날 없이 시끄러울 것이 예상된다 할 것이다.

그런 단적인 예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법을 수호하는 대법원장에게 막말을 해 대고,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장군들이 통수권자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내란 

세력’운운하는 막말을 쉽게 날리는 인간들은 정신이 나가도 한 참 나간 인간들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반드시 그들이 입으로 쌓은 업보는 입으로 되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우리의 역사를 마주하다보면 큰 재난을 거치며(임진왜란, 한국전쟁 등) 역사적 증거가 많은 부분이 소실되고 왜곡되어 그런지는 몰라도 예기치 않은 역사적 굴곡점에서 그런 소실되거나 변형된 증거로 인하여 이상하게 석되고, 판단되는 역사적 사실들이 간혹 

눈에 들어오고는 했었는데 그동안 역사적 지식이 짧았던 내가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몇몇 가지 사실은 내가 너무 무식했기 때문인데

그런 의문 중에서 몇몇 가지를 본 작품을 통해 다소 해소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학창 시절 배운 내용 중 ‘태종의 외척 정리사건’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태종이 세종에게 왕권을 물려 줄 때 왕권을 강화한다는 이름으로 외척을 강하게 정리

하면서 세종의 삼촌들인 ‘민씨 일가’를 거의 도륙에 가까운 정리를 하고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처가 식구들을 ‘박살’냈다는 이야기다.

학창 시절 나는 태종이 아무리 왕권을 강화하고 외척을 정리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껏 했겠지 그렇게까지 험악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태종의 와이프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그의 형제들을 정리해 자신의 후임자 권력을 강화해 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가식구들을 박살냈다고 하는 이야기는 처가 식구들이 태종에게 

씻을 수 없는 커다란 미운털이 박히는 행동을 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잠깐 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왕권까지 빼앗다 시피해 왕이 된 그가 처갓집까지 박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라는 즉, 배은망덕의 극치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작품을 통해 완벽하지는 않지만 태종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확인하고는 그간 내가 가졌던 의문의 상당부분을 해소했다.

 

또 하나의 의문점(?)아닌 의문점으로 다가온 것은 ‘남이 장군’에 관한 사항이다.

학창 시절, 내가 살던 지역에서 북한산 넘어 사시던 친척 집을 한 달이면 한 두 번 정도 주말에 놀러가게 되면 반드시 ‘세검정’이라는 곳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 부근을 지나게 되면 ‘남이 장군’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기록된 입간판을 지나곤 하였는데 당시 

나는 남이 장군이 어떤 인물이며 누구의 후손인지 또 무엇을 한 사람인지에 대한 

의구심보다는 친척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데면데면 입간판을 쳐다보기만 

했지 그 분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마주한 역사 속에서 마주한 남이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아사리 정치 축소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 안타까움 그 자체였고 아쉬움을 크게 남는

시간이었다.


추가적으로는 ‘사도세자’와 관련된 죽음의 배경에 관한 사실과 우리 정치권의 아귀다툼의 원조격인 이조전랑임명권에 관한 동서 분당에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심의겸’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내용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아무튼 심의겸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조선 시대의 ‘의겸’이나 허무맹랑하고도 

무책임하게 터트려 온 나라를 벌집 쑤셔놓은 듯 난리를 치게 만든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지금의 ‘의겸’이나 하여간 문제의 단초를 제공하는 데 일가견 있는 인간들이 아닐 수 없고 지금도 사과 한마디 없이 고개 빳빳이 들고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뻔뻔함의 극치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하여간 뭐가 잘못돼도 한 참 잘못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회기 중 주식 투자하던 놈도 그렇고 돈 봉투 받고 뿌렸다 문제 되었다 기사회생 한 놈, 툭하면 같이

일했던 비서관들로부터 난도질 당하는 집단과 성 비위 문제가 터지면 이를 문제 삼는 집단에 대해 ‘내란 세력,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외치며 물타기 하는 집단을 보면 아무튼 답답한데 그런 놈들이 좋다고 응원하는 인간들을 보면 도대체 그들은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인지 또 그들의 육체위에 달린 머리를 장식품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며 그런 집단에 대해 싸워야 할 집단은 오늘도 주판알 튕기며 자신의 몫만 

챙기려하는 모습을 볼 때 이 땅의 정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 밖에는 없다.

한마디로 한심한 백치 인간들의 향연장이 아닐 수 없다.

 

위에 언급된 대표적 역사적 진실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전문적인 역사책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행위이기는 하나 그에 앞서 본 작품을 구매해 읽는 것도 좋을듯하여 

강추하는 바이다.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쉽게 알 수 없었던 숨겨진 기타 이야기

1) 정도전의 활약상을 보면서 든 생각은 

    ‘한 고조 유방이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쓴 것이다’

    라는 문구가 떠오른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잘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작금 우리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설익은 진보들의 계엄 잔존세력 소탕 타령을 보면

    위의 문구가 절로 떠오르고 있다.

2) 줄을 잘못서 한직으로 내 몰리며 절치부심하던 중 태종의 처남 민무질에 빌붙어 

   기회를 엿보던 ‘이무’라는 작자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경언’이라는 작자의 행태를 보면 작금 이 땅에서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는 어느

   ‘새 한 마리’와 ‘드라이크리닝 집 딸’이 생각나는 듯했으며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날아라 슈퍼 보드 속 주인공 부캐를 지닌 어느 여인도 떠올랐다.

3) 생육신의 신하 신숙주 아들 ‘신정’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자식은 부모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생각 그리고 부모들이 아무리 자식을 올바른 길로 가르치려 해도

   자식은 자신이 타고난 성향대로 간다는 사실을 통감했는데 이 내용을 읽으며 

   영조시대 우의정이면서 희대의 도박꾼이었던 원인손이 생각났고 그의 아들 ‘원재명’

   이도 생각났는데 왜 그 사기꾼 부자의 이름이 떠올랐는지 잘 모르겠으나 작금의 

   혼란한 우리 정치판에 그들이 환생한 것 같은 느낌이 크게 들고 있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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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바라보자 -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 ㅣ Jesus facebook 시리즈 1
유기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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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초심자 7,

             비신자 8


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작품을 읽던 해당 작품으로부터 ‘정신’과

‘마음’에 모르게 꽂히는 문구가 1~2개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은, 숨기고 싶었던 나의 심중을 헤아려주는 듯, 상처 입은 나를 어루만져 

주듯 나아가서는 내가 그리던 부모님이 내게 들려 주는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문구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해당 작품에서 그런 문구를 마주했다.

평소 읽던 성경에서 혹은 기타 작품에서 자주 보던 문구이기도 했지만 왜 지금 나를 

자극하는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작품을 읽던 심정이 그 문구와도 같은 상황을 갈급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해당 문구는

-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면 나도 나를 사랑해야 마땅하다’

- ‘정작 주님이 저를 인도하시려고 할 때 제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P185)

-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의 죽음을 선포하고 나아가면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 하신다. (P236)

아무튼 작품을 읽으며 마음으로 다가왔던 문구를 정리하며 그 분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하며 그 분을 사무하는 나의 마음 속에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 믿음은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방법이다. (P 26)

- 우리의 목표는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봐 문제가 생각나지 않게 되는 것. (P 33)

- 성공은 준비가 먼저 필요하다. 그 준비는 항상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는 것으로 성공은 산의 정상과 같아서 오래 누리지 못한다. 순간에 지나간다.

  따라서 준비되지 못한 자는 성공하고 망한다. (P 35)

- ‘당신은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순종이 어려워서라기 보다 ‘마음’의 문제이다. (P 50)

- 성경이 권위자의 명령이라고 해서 모든 명령을 다 그대로 따르라고 하지는 않는다.

  결국, 잘못된 권위에도 순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잘못된 권위에 대한 해석은 

  누가 내리나?

-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자가 가장 개혁적인 사람이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P 59)

  --->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믿고,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

        하는 자가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곧, 자아가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P 60)

- 우리의 문제는 악한 자에 대해 분노하면서 우리 자신도 똑같이 악하다는 것이다. 

  개혁한다고 하면서 잘못하면 또 다른 악한 자가 악한 자를 제거하는 셈이다.

-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은혜 받은 것도 믿은 것도 아니다. (P 64)

- 두려운 마음이 들수록,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여 살기를 더욱 힘쓰라. (P 67)

  ---> 정말 두려운 것은 주님과 친밀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이다.

-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결단이나 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도하게 

  하시는 분, 성령님의 역사로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분이다. (P 73)

- 찬송가를 좋아서 부르지만 말고 그 찬송 가사를 주 예수님이 들으신다고 생각하고

  불러라. (P 85)

- 좋고 싫음의 판단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님의 마음만 구해야 한다. (P 91)

- 주님은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왜 기도를 ‘오래’, ‘꾸준히’

  하는가? 하나님을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닌 우리가 좀처럼 변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P101)

- 믿음이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이다.

   ---> 두려움이 없는 믿음으로 살려면 분명한 대가 지불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24시간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다. (P109)

- 양이 이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목자와 함께 있는 것이다.

- 예수께서 “내게로 오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과 함께 살자고 부르신 것이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께서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살기 원하심을 믿는

  것이다. (P146)

- 마귀가 우리를 지배할 때는 가장 먼저 우리의 생각을 통해 역사한다.

  ---> 마귀가 노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보되 24시간 

        하자는 것은 철저히 하자는 것이다. (P173)

-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주 예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것으로 살아

  가면서 잘되고 못되는 일을 겪는 것은 오직 주님과 더 친밀해지는 계기일 뿐이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데 있다. 기도 응답은 선물일 뿐이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기도 응답만 바라보면, 기도조차 스트레스가 된다.

                                                                                            (P214) 

 - 우리의 자아가 죽었다는 말은 육신의 소욕이 더 이상 우리 안에서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P235)

  또한 “내가 죽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어놓으신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하며 선포하는 것이다. (P245)

- 인간의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강함을 나타내시는 것이 ‘십자가 복음’이다. (P258)

- 우리가 반복되는 실패에서 구원받는 길은 더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를 붙잡는 것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주 예수님을 보이는 분처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P267)

- “나는 죽었습니다.” 고백하는데도 부활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차원에 머물렀지 “예수님으로 산다.”는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    보지 않기 때문이다. (P285)

- 나를 힘들게 한 독일 뤼벡교회의 돌판 문구 ‘주(主)는 우리에게 말씀 하신다’

  너희는 나를 주라 부르면서 따르지 않고,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 우러러보지 않고,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 따라 걷지 않고,

  너희는 나를 삶이라 부르면서 의지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존귀하다 하면서 섬기지 않고,

  너희는 나를 강하다 하면서 존경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의롭다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런즉 너희를 꾸짖을 때에 나를 탓하지 말라.

 

신앙적 에피소드

1. 4 * 7 = 27이라고 우기는 놈과는 상종을 하지 말라.

2. 길을 가다 만나 복면강도를 만나는데 그 강도는 자기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 자기를

   괴롭히더란다. 그래서 그 강도를 붙잡아 복면을 벗겼더니 그 강도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책에서 얻은 지식

- 유대인들 머리에 쓴 모자를 '키파(Kippah)'라 하는데, 이는 ‘내 위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는 상징을 나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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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묻고, 톨스토이가 답하다 - 내 인생에 빛이 되어준 톨스토이의 말
이희인 지음 / 홍익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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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작품은 ‘톨스토이’라는 대 문호를 작품 제목에 언급해 대중의 선택을 받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나는 생각했고, 작품 중간부분까지 읽을 동안 내게 그다지

큰 감흥이나 어떤 느낌을 전해주지 못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작품으로 다가오게 하여 

저자와 출판사의 ‘책팔이’ 마케팅 전략에 내가 요번에도 속았다고 느끼며 작품을 고르는

안목에 스스로 자책할 즈음 맞이한 저자와 출판사의 ‘훼이크적 전략’에 분노보다는 

보다는 그렇지 않은 감정, 즉 우호적인 감정이 더 밀려들어 와 나 스스로도 약간 놀랐다.


저자는 톨스토이의 명작인 <안나 카레리나>, <전쟁과 평화>, <이반 일리치의 죽음>, 

<바보 이반>이라는 작품과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죄와 벌> 등에 나온 인물과 사건에

연루된 여러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인생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많은 분들은 작품에서 언급된 여러 작품을 전부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작품을 

접하게 되면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여러 소주제에 대해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에 별도의 작품에 대한 느낌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부분적으로 저자의 생각과

일치하는 몇 가지 꼭지들을 정리해 보았다.

 

- 행복한 가정은 모두 다 서로 비슷한 것이고, 불행한 가정은 어느 경우나 그 불행의 

  상태가 다른 법이다.

- 하나님은 십자가를 내려 주시지만 그걸 짊어지고 갈 힘도 함께 주신다.

-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들은 주제를 뭐라 한마디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

  삶에 특별한 주제가 있을 수 없듯이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 한 위대한 작품들에

  이렇다 할 주제가 없는 게 마땅하다. 가장 훌륭한 작품은 주제가 여러 가지로 읽히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P 34)

- 클리셰(cliche) ① 진부한 ② 케케묵은(hackneyed) ③ 진부한 상투어

  즉, 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 따위를 이르는 말

- 미래의 사랑은 없다. 사랑이란 언제나 지금 현재의 행위다. 사랑을 지금 보여 주지 

  않으면 사랑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P 45, ‘인생이란 무엇인가’)

- 모든 종류의 복수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나 소설이 심어 준 일종의 환상이다.

  현실의 생활에서 일반인들의 복수가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복수를 허용할 만큼

  법이 녹록하지 않으며, 복수의 대상인 상대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중략) 

  억울한 일을 당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내가 그들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중략) 모든 일의 최고의 복수는 그 불의한

  자들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P 61)

- 인생의 시간이 많이 남았다 생각하는 이라도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게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 크게 공감하는 대목이다.


(반성 1) 내가 아닌 타인의 잣대로 살았다.

  난 내가 조금씩 조금씩 산을 내려오는 것도 모르고 산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고 믿고

  있었던 거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산을 오르는 것이었지만 실은 정확히 그만큼씩 

  내 발밑에서 진짜 삶은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지. 그래, 이제 다 끝났어 죽는 일만 

  남은 거야!!!. (P115)

  ---> 타인이 만든 룰과 규칙, 자본이 만든 유행과 트렌드에 조종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부추겨진 인생을 사는

        것이다. 나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이 나를 바라보거나 기대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다. (P119)

(반성 2) 경쟁이 내 인생을 망쳤다.

  경쟁 대신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고, 비록 당장 인정받지 못하거나 평생 인정받지 

  못하여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는 성정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진정한 인생의 승자다.

  ---> 경쟁심으로 어떤 아름다운 것도 만들 수 없고, 오만한 마음으로는 어떤 고귀한

         것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P124)

(반성 3) 집만 넓혔지 행복은 넓히지 못했다.

  한번 비대해진 욕망은 줄이거나 조절하기가 어려워지는 게 사람의 성정이다. 

  우리를 길들이는 것은 ‘편리함’의 유혹이다. 이 말은 반대로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에게

  삶의 잃어버린 의미와 태도를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얘기가 된다. (P128)

- 오래 지속되는 사랑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P145)

- 진실이 선한 것은 아니며, 선하다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P146)

  ---> 철학자들에 따르면 ‘진’과 ‘선’과 ‘미’를 분리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순전히 칸트

        철학의 공헌이라고 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진리는 선한 것이고, 선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며, 또한 아름다움은 진리라는 식의 생각들이 사람들 머릿속에 

        굳게 자리 잡았었다. 그런데 이들이 서로 같지 않으며 그 각각의 경계를 칸트가

        분명히 했다.

        진리는 ‘순수이성비판’으로, 선에 대해서는 ‘실천이성비판’, 아름다움과 추함은 

        ‘판단력비판’으로 나누어 생각하게 되었는데, ‘과학’이나 ‘윤리학’에 이어 ‘미학’

        이라는 것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된 것은 모두 칸트에 와서 가능해진 일이다. 

                                                                                                  (P 148)

- 분노는 반드시 그것을 불러일으킨 상대의 행위 이상으로 유해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종종 분노에 사로 잡혀 그것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분노 속에

  일종의 남자다움이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 멈추지 않고 달려갈 것을 다그치는 ‘속도’와, 적은 노력으로 최대한 많이 얻을 

        것을 요구하는 ‘효율’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속도와 효율을 무한대로 강요

        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그만큼의 스트레스를 부여안고 살 것을 강요한다. 

        조금 천천히 가도 되고, 조금 덜 이익을 보아도 되는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P87)

-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악을 행하지 않기 위해선 더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P191)

- 가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부를 두려워하라.

  --->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 부를 늘리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부패한 

         정치인이나 부도덕한 사업가들과 같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P197)

- 무엇보다 먼저 좋은 책부터 읽어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평생 그 책을 읽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P202)

- 책은 여행을 부르고, 여행을 다시 책을 부른다. 세 개의 길을 통해 우리는 예지에 도달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사색의 길로, 이것은 가장 고상한 길이다. 

  두 번째는 모방의 길이며, 이것은 가장 쉬운 길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경험의 길인데 이것이 가장 힘든 길이다. (P203, 공자)

-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경험들은 나를 키우는 스승이 된다. (괴테)

-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만한

  사람들이었다.(P208)

- 스스로 높이는 자는 신에 의해 낮춰지지만 스스로를 낮추는 자는 신이 그를 높여 

  주리라.(탈무드)

- 지금 당장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남겨진 시간을 뜻밖의 

  선물로 생각하고 살아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가장 눈에 뛰는 현상은 필요 없는 지식을 산처럼 채워 넣고 자신을 학자나 교양인, 

  현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의의도 모르며 오히려 그 모르는 것을

  자랑하는, 깊은 미망의 구렁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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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말 2 - 나를 떠난 글이 당신 안에서 거듭나기를 ㅣ 이어령의 말 2
이어령 지음 / 세계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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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선거철이다 보니 아무리 사소한 사항을 언급하신 내용이라도 해당 글을 접하게 되면 

특별한 이유나 문구가 함의한 관점에 특별한 의미가 없어도 일단 선거와 관련된 인물

혹은 특정 집단의 부정적인 모습과 자꾸 연관시키게 되는 이상한 방향으로 해당 내용

과 문구가 내게 ‘훅’하고 다가오니 심히 착잡하다.

지금은 또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한 참정권 제한’이라는 무시무시한 내용으로 ‘재선거’

운운하는 집회가 열혈 시민들에 의해 여기저기서 열리는 모양인데 과거 특정 집단이 ‘광우병’과 ‘후꾸시마 원전’을 갖고 상대방에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어깃장을 놓으며 

온갖 단물을 쪽쪽 빨았던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 되는 가운데 특정 기업의 

마케팅 전략을 이상하게 꼬아서 또다시 표 몰이하는 방식을 통해 변하지 않은 일부 

질 낮은 인간들이 즐겨 쓰는 단물 빨기 작전 모습을 보면서 ‘역시 인간은 안 바뀐다’

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크게 느끼고 있는 순간이다. 참으로 징그럽다.

하여간 이 꼴 저 꼴 보기 싫은 가운데 책을 펼치자 작품 속에서 마주한 ‘치매(P201)'를 읽으며 요즘은 존재 가치가 거의 바닥 수준인 과거 ’만나면 좋은 친구‘라는 슬로건으로 재미 좀 본 회사 출신의 특정인이 과거에 했던 ‘치매 노인’ 발언이 떠올랐는데, 과거 

그의 발언은 아마도 자신은 치매에 걸리지 않을 듯해서 행한 것으로 보이나 그들의 

후배들이 최근 벌이고 있는 여러 수준 낮은 작태를 보면 그와 그들의 후배들 역시

‘치매’에서 완전 자유롭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선거 때만 되면 노인을 폄하하는 젊은 정치인들의 수가 늘고 있습니다. 노인성 치매와 달리 청년성 치매는 자기도 곧 아버지처럼 늙게 된다는 뻔한 사실을 잊어버릴 때 발생하는 병이지요’

위와 같은 문구가 나를 자극하다 보니 또 이런 문구도 눈에 들어옵디다.

‘별을 만들어낸 건 하늘이지만 별자리를 만들어낸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P125/별자리)

언뜻 읽으면 그냥 무색무취의 문구이면서 단순한 내용으로 치부해도 이상할 게 없는 

문구이지만 내게는 해당 문구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리더는 하늘이 내나, 리더의 자취는 그 리더가 지닌 인격이고 인품에 따라 이루어져 

 간다.’

라는 말로 변환되어 다가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입만 열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국민을 대표’ 한다고 철면피한 면상 치켜들고 난리치며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특정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질 낮은 인간 - 이 인간 말고도 더 있다 - 이 떠올라서인데 이런 질 낮은 인간의 출현을 예측해 질 낮은 인간들을 질타하는 글을 선견지명 있게 언급해 주신 교수님의 혜안에 머리 숙일 뿐이다.

위 문구와 그렇게 긴밀한 연관성을 갖지는 않지만 그래도 억지로 해석해 연관시켜 보면 최근 천만 돌파 영화로 각광받고 있는 ‘왕사남’ 속 또 다른 주인공인 ‘한명회’라는 인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있는데,

그는 훗날 ‘부관참시’의 형벌과 함께 그의 자손들(1남 4녀)까지도 그리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국민을 대표한다고 하면서, 위기의 정국을 타개한다고 하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토사구팽’ 당할 것이 뻔히 보이는 데도 나는 아닐 것이라고 충견처럼 짖어대는 꼴이란 애처롭기 그지없고 여기저기서 짓고 까불고 있는 정치 모리배들의 앞날과 연관되어 위 문구는 내게 범상치 않게 다가왔다.


한마디를 덧붙이면 최근 우리의 ‘입법권’이 ‘사법권’을 우습게 여기고 난리도 아닌 사항이 자주 연출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사법권을 가진 그들 스스로가 ‘화’를 자초한 결과로 나타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초 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법을 집행했다면 국민들을 대상으로 크게 외친 내용대로 

법을 집행했으면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 사안을 갖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기회를 

놓치니 별의 별 놈들이 거기에 편승해 다수의 힘을 믿고 내로남불을 외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고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이러다가는 과거 6.25전쟁 직전 우리 대대급 병력을 이끌고 북으로 넘어간 ‘강태무’와

‘표무원’에 대해서도 ‘전쟁 방지를 위해 국가 평화통일에 앞장 선 선각자’로 탈바꿈시켜 포상하자고 덤벼들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역사 속 과거를 교훈삼아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으로 사용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발췌해 자신들 잇속만을 챙기려는 집단들과 기득권층에 짜증이 날 뿐이며 아직도 죽어서도 편히 쉴 곳을 찾지 못해 구천을 헤매고 있을 전임 통수권자의 사례가 자신들에게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는 그들을 보면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 

봉숭아 학당의 ‘맹구’가 생각날 뿐이며 진시황 탄생의 단초를 제공했던 거상 ‘여불위’

같은 인간들만 난무하는 철면피한 저질 인간들의 향연장이 되어 버린 우리의 여의도가 애처로울 뿐이다.


아무튼 할 이야기는 많고도 많지만 교수님의 작품을 통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다.

위에 언급한 ‘별자리’라는 문구 아래에 ‘애국’이라는 내용의 글이 있다.

‘히틀러는 독일을 사랑하지 않았던가? 그렇지 않다. 그는 너무나도 독일을 사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맹목적인 사랑이 그의 조국을 망치게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애국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 것인가가 아니고 애국하는 방법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가

 하는 데에 있다‘

선거철이니만큼 모두가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아주 명문구도 있었다.

‘전쟁은 상대방을 섬멸시킬 때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정치나 기업은 상대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협상을 통해서 완전한 승리를 얻는다.'(P188 / 승리)

너무도 명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작품 후반부의 내용은 죽음을 앞둔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 같은 느낌의 내용이 연속되고 있어 너무도 쓸쓸한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어 가슴이 너무도 아팠다.

‘18. 생명 : 모태와 무덤 사이’의 전체 내용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의 연속이었으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삶과 죽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있었다. 


308쪽에서 ‘인간’이라는 소제목으로 언급되고 있는 내용

‘영어로 어머니의 자궁은 움womb, 무덤은 툼tomb이다. 자궁의 w를 t로 바꾸면 

 무덤이 된다.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 모태와 죽음이라고 하는 무덤의 사이에서 잠시 

 사는 것이다.’


또 311쪽의 ‘생애’에서는 ‘인간의 한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탄생과 사망이다. 생의 시초와, 그리고 그 생의 마지막보다 대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탄생을 기억할 수 없고 우리들 자신의 죽음을 

말할 수 없다.’

 

329쪽의 ‘준비’에서는 ‘열매들은 꽃의 진정한 죽음들이다. 아무리 향기로운 과일도 

끝내는 썩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동그란 죽음 속에는, 모든 그 과일 속에는 내일의 

생명인 씨앗이 박혀 있지 않는가, 그렇다. 부패의 죽음 속에는 언제나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무슨 말과 느낌으로 선생의 고언을 정리하며 나의 생각을 나열하겠는가...모든 근심 

걱정 다 내려놓으시고 그토록 사랑하셨던 따님과 편히 쉬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 그 사람을 위해 돈을 써보면 안다. 그 돈이 아깝지 않다는

  건 그 사람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P 21 / 돈)

- 아버지가 아들에게 선물을 할 때에는 부자가 함께 웃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선물을 할 때는 부자가 함께 운다. (P 26 / 아버지)

- 세미오시스 semiosis

‘노웨어nowhere = 어디에도 없다’, ‘나우 히어 now here = 지금 여기에’ 이렇게 글자 

하나만 고치면 바뀌는 것.(중략) 글자로는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님’이 되는 것 이걸 ‘세미오시스’라고 합니다.

창조 중에서 돈 안 들고 제일 쉬운 방법이 언어 조작입니다. 이걸 독재자들이 다 썼어요.

언어 조작에 의해서 이념을 조작하는 거예요. 

가령 ‘저 사람들이 세뇌 됐어’ 하면 ‘아, 무서워’하지만

‘제가 의식화 됐어’ 그러면 박수치는 거예요....(중략) (P 39 / 세미오시스)

- 편리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순간 생명은 그 불편을 극복하기 위해 독특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P111 / 진화)

-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할 때 인간은 여태까지 열 길 물속을

  재는 기술만 개발했지, 한 길 사람 속을 아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기술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문화란 한 길 사람 속을 아는 기술입니다. 사랑하고 믿고 눈물 흘리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는 오늘날의 기술로 한 치도 해결하지 못하는 데 문화는 그것을

  해석한단 말입니다.(중략) 이게 진짜 문화에요. (P116 / 문화)

  ---> 문명이 ‘액셀러레이터’라면 문화는 바로 그 ‘브레이크’에 해당합니다.

                                                                                 (P123/브레이크)

- 앞으로 오게 될 문화자본주의를 맞기 위해서는 시간은 돈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실과, 삶의 목적은 노동의 고통이 아니라 여가의 즐거움과 창조적인 기쁨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P120 / 여가)

- 단추는 위에서 아래로 채워가는 것이지만 지퍼는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잠가야 한다.

  개혁은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야만 성공을 거둘 수가 있다. 

  지퍼 역시 첫 단추를 끼우듯이 올리기 전에 이를 잘 맞춰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서 걸려 잠겼던 것이 풀어지고 지퍼는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게 된다.

                                                                                     (P121 / 개혁)

- 문화라는 말은 언뜻 뭔가 수준 높아 보이고 좋은 것 같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인간이 자연 속에서 그냥 살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낸 궁여지책일 뿐입니다. 짐승들은

  문화 없이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저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사회를 만들고 문명이라는 것도 만듭니다. (P127 / 사회)

- 사회가 바뀌려면 누군가가 나쁜 짓이라도 해야 한다. 가만히 있는데 사회가 바뀌지는

  않는다. 자물쇠는 도둑에 의해 발전했다. 도둑은 나쁘지만 자물쇠를 만드는 사람은 

  그 도둑 때문에 보다 나은 자물쇠를 만들어서 먹고살고, 그로 인해 더 완전한 기술들

  이 발전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그 자체는 법이지만, 그로 인해 약점이 발견되고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보완하며 끊임없이 바뀌는 것이 많다. 그건 것을 필요악이라고

  한다. (P165/ 필요악)

- 헴록hemlock은 소크라테스가 처형될 때 마신 독약으로 한국 말로는 독미나리. (P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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