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비아 만나다 시리즈
마크 래리모어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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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전문가), 비전문가(3)


주님에 다가선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심자 수준인 나의 신앙심을 제고하기 위해

본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다.

성서 욥기는 대체적으로 위로를 주는 책, 자기 수양을 돕는 책, 혼란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가슴에 담고 또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욥에 대한, 욥기가 품고 있는

종교적 의미를 알아보자는 아주 단순 무식한 수준에서 작품에 도전했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혼쭐이 난 작품이었다.

종교학 및 종교철학 공부를 3년 이상(?) 하였거나 현직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 아니면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무지몽매인 종교적 문외한은 가급적 도전하지 않기를 권유합니다.

 

생뚱맞게 욥기는 누가 지었는가, 욥기는 여러 작품이 짜깁기 된 것이다. 욥은 유대인인가?

등등 성경을 단편적으로 접한 나에게 작품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런 질문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시련의 연속으로 몰고가는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와 같은 종교적 깊이가 낮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신 저명하신 분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단문 위주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해당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그 내용도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것은 확신이 서지를 않지만 .......

 

참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욥의 유언 필사본은 10세기 사본이며 오늘날까지도 욥의 전설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설명이 담긴 문헌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깊이가 낮은 분들은 가급적 본 작품을 외면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하더라도 말입니다.

 

[서 론]

- ‘욥기는 분명 성서에 속한 어떤 책보다도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데 악의 문제에 관한

  성서의 답변으로 이해되곤 한다.

-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에서 무고한 이들은 언제나 고통 받는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들은 도울 방편을 마련해 두신다고 말한다.(P 9)

- 그리스도교 장례 의식을 치를 때 성직자들은 의 연설을 인용하곤 했다

  이 인내의 한계를 규정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P 21)

-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욥기의 면모는 그 자체로 욥기를 둘러싼 신비의 일부가

  되었다.(P 24)

- ‘욥기가 제기하는 물음들, 섭리와 악,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 하느님의 본성,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 등은 모두 손쉽게 종결될 수 없는, 종결되기를 거부하는

  물음들이다.(P 24)

- ‘욥기의 중심 대목은 널리 통용되는 지혜를 늘어놓는 의 친구들(엘리바즈, 빌닷소바르)을 

  하느님이 질책하는 부분이다.(P 25)

- ‘욥기의 전기는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욥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즉 자신이 이라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그와 관련된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한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P 32)



[고대 해석자들이 바라본 욥기]

- ‘욥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해석인 인내하는 욥이다.(P 36)

- 그리스도교들은 을 그리스도의 예형(type)으로 보았다. 히에로니무스는 욥기주석에서

  욥이라는 이름은 슬픔과 고통을 뜻한다고 주장. 그는 그리스도의 원형이었다’(P 39)

- 번영은 재앙을 수반한다. 절망이 희망을 수반하듯(P 48)

- ‘의 유언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P 50)

-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네 우리가 주님에게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보여 주실 때까지 인내합시다.

- ‘제임스 쿠걸이라는 유대인 성서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고대 해석자들의 작품

  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빌론 유수 이후 지신들의 경전에 새로운 해석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

   1) 성서는 근본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문헌이다. , 성서에 A라고 적혀 있을 때 흔히 실제 

     의미는 B.

   2) 성서는 당대 독자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성서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책이 아니다. 성서는 유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다.

   3) 성서는 모순이 없으며 실수도 없다.

   4) 성서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주셨으며 하느님은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혹은 예언자들을 

     거쳐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P 60)

- 절망에 사로잡힌 채 울부짖는 의 말, 그의 분노 어린 말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성서 

  전체의 것,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의 것이다.(P 62)

-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에게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 열쇠는 신약 성서였다.(P 75)

- 모세의 율법을 읽는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으며 이 너울은,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주님(예수)께로 돌아갈 때에 비로소 벗겨진다.(P 75)

- 중세 그리스도교의 토대가 된 기에 관한 저작은 하나다. 바로 기원후 578년에서 595

  사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저술한 욥기의 교훈들이다.(P 77)

- ‘은 경건한 인물이지만 더 많은 의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P 78)

- 자신이 덕이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영혼을 해지는 것은 없다.

-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평온함이다.(P 82)

- '고통'은 죄라는 ''을 퇴치할 때 필요한 '화학요법'이다. 문제는 하느님이 사악한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선한 사람들을 치료

  하지 않는 것이다.(P 83)

- 어떤 행동이 그 당시에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가치 있는 예언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듯 

  어떤 상황이 역사적 차원에서는 미덕이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악인 경우가 

  자주 있다.(P 85)


 

[논쟁 속 욥기]

- 에피크로스는 물었다.

  “신은 악을 없애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악하다. 신은 악을 없앨 수 있으며

  악을 없애려 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 92)

- ‘욥기는 하느님의 존재 여부를 묻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성을 묻는 책이다.(P 93)

- ‘욥기는 신성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곡,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섭리에 관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문헌이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과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욥기는 섭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참여하는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이다.(P 95)

- ‘욥기는 인간이 가장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철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P 96)

- ‘과 친구들의 발언은 그것이 긍정하는 내용보다는 부정하는 내용 때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P105)

- 악은 엄밀한 의미의 실체가 아니며 본질상 선한 모든 피조물에게 기생충처럼 붙은 결핍

  혹은 왜곡이다.(P110)

- 중요한 것은 섭리(우리는 이를 알 수 없다)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다(P115)

-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칼뱅에게 욥기가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피조물보다 너무나 높이 있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올바름의 규범조차 궁극적이지 않음을 욥기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컬뱅이 보기에 욥기를 읽는 실마리, ‘욥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논쟁에서 은 

  선한 편을 고수하는 반면, 그의 적대자들은 악한 편을 고수한다는 점이다”(P121)

  "‘과 친구들이 재기하는 물음은 동일하다. 즉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

  하는가? 그에 따르면 은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때 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의 친구들은 다른 누군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의 친구들처럼 응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P122)

-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는 겸손과 침묵을 지키며 다른 이가 고통 받을 

  때는 그를 배려하고 위로한다.(P125)

- 섭리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는 하지만)하느님에게서는 멀고 인간 동료들에게는 가까운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P130)

 


[공연되는 욥기]

- 수 세기에 걸쳐 성인은 나병 환자,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P135)

- 그리스도교인들은 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P139)

- ‘이야기는 참되고 확실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야기인 것 못지않게 거짓 위안과

  감언이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P150)

- 구원에 대한 믿음은 섭리에 대한 확신과 인내만큼이나 성취하기 어렵고 유지하기 힘들다.

- 하느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인내를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P160)

- 짧은 생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계속 애통해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현명한 이들은 이 세계라는 깊은 구렁텅이를 순례하는 동안 인내심을 기른다.(P163) 

- 철학자들은 이성 너머 저편에서 오는 도움이나 통찰을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적어도 고결한 

  습관을 갖기 위해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다른 의심으로 대치하곤 했다.(P168)

 


[신정론과 욥기]

* 신정론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하나님의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를

  학문적으로 모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는데, 왜 세상에 악이 존재 하는가? 이 세상에 모순이

  이렇게도 많은가?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볼 때, 혹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은

  아니신가? 하는 회의(懷疑)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신정론이다.

   그리스어로 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올바름을 뜻하는 디케(dike)'를 합쳐

  신정론(theodicy)'라는 말이 나왔다.(p186)

 

-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느님이 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활동하는지

  설령 활동한다 해도 신이 정녕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물었다.(P182)

- 하느님은 왜 악을 용납하는가? 사람들이 악을 당연하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여기지 않게되자 

  악은 독특한 철학적 문제가 되었다.(P185)

- 칸트는 욥기를 성서, 교회 전통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도덕적 자율성을 지니고 신과 

  대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았다.(P192)

- 자신의 동기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 이해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진다.(P197)

- 참으로 고귀한 일은 고통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이다.(P197)

- 종교는 도덕 법칙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칸트),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코헨) (P198)

- 고통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처벌이다.

-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은 성서에 나오는 주장이나 성서가 그리는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너머 핵심에 있는 시적 진리를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욥기는 그 중심이 

  되었다.(P202)

- ‘욥기에 담긴 신의 선물은 욥기가 표현하고 또 빚어내는 인간의 감정이다.(P205)

- 자신의 경건함으로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면서도, 경건함 때문에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인정했다. 바로 그 사이에서 사탄이 나왔다.(P222)

- 모든 고통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정의

  결과다.(P223)

 

 

[추방당한 욥기]

- 하느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이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욥기 28:28)

  이 구절을 욥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P234)

- 역사 비평은 근대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좋은 도구를 활용해 성서를 이해하려는 선의를 담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P237)

- ‘이 보여 주는 인내는 그의 비판과 저항을 포함할 때 더욱 심오해진다.(P250)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침묵만이 궁극적으로 기억과 희망이라는 역설적 임무에 온전히

  부합하는 실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침묵이 전도서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보여 주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P259)

- 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의 이름 (EL)'은 물음을 뜻하는 말인 셰엘라(she'elah)'안에 머물고 있다.

  ‘은 자신이 차갑고 냉소적인 세계(참된 친구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하느님은 외로운 인간과 자신을 연결하고자 한다.(P260)

- 하느님과 투쟁을 할 때조차 은 하느님이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하느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할 뿐이다.(P265)

-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임을 알았다. 동시에 그분이 자신들을 

  박해함을 받아들일 때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P266)

- ‘은 커다란 상실 가운데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현대인의 인도자다.

   기도서 이후로 은 개인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P273)

- ‘욥기는 신이 부재한 것처럼 보일 때, 세계가 윤리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때, 특히 정의가 

  실추되고 의미가 부정되어 상실과 고통을 겪을 때 오히려 신의 존재를 가장 예리하게 감지

  할 수 있다는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다.(P273)

- ‘욥기는 예언적 행동과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관상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P281)

- ‘욥기는 삶의 한가운데서 상실을 겪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천민들, 희생양들, 사대의 

  이단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다.(P283)

 

 

주워들은 이야기

 

- ‘성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책들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비블리아에서

  나왔다.

- ‘미드라시란 히브리 용어로 성경 주석의 설교 방식을 뜻한다

- 성무도일 : 매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성직자, 수동자들이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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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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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영국의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과 한국의 고승 네 분(성파, 도법, 금강, 정관)과의 평범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원초적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이야기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개신교 신자인 이같은 작품을 접한 이유는 편협 된 종교관에 매몰되어 있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노력(?) 때문으로 속된 말로 좀 있어 보이려고 접하게 되었다.

 

난 개신교도이지만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 논리인 내 종교만이 최고다 라는 생각은 갖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나의 종교와 종교적 신념이 중요하면 타인의 종교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기에 기꺼이 이런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거의 역적 수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아닌 것 아니다 -

가끔 언론을 통해 내 종교가 좋은 것이니 타 종교를 폄훼하는 일부 몰상식한 개신교도들의

사고치는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속상하며 진정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의 절대자께서 진정 그런

그들의 저급하고도 몰상식한 모습을 좋아 하실런지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절대 아닐 것이다.

 

최근 정권이 바뀌면 새로이 출범하는 정권이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경내를 관람하던 어떤 옹졸,

치졸빤스같은 인간이 불상에 절하는 다른 사람을 보고 난리를 친 사건이 일어난 모양인데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개신교도인 나만이라도 내 종교 외의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또 서로를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상대 종교에 대해 존경은 아니더라도 폄훼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런 자세가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순복음 조용기 목사님을 부처님 오신날

조계종인지, 동국대인지를 방문해 종교와 관련된 특강을 과거에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타 종교의 거두께서 상대 종교시설에 가서 특강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상대편 종교인을 초빙한 불교인들에 대해서도 높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그들의 성숙된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작품 속에서 눈에 들어온 대목은

-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이런 기분이 들 때는 바로, 나 자신에게 

   ‘어떤 틀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 자기의 틀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는 것은 상대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내가 그 을 깨야 한다.

라는 대목으로 나이가 들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위의 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종교를 떠나서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 타협을 모르는 

정치인들, 갈라치기를 주업으로 삼고 사는 인간들은 위 문구를 잘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 대목은

- 자신이 준 것만 따지는 사람은 불행하고,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대목은 성경의 말씀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었다고 생각하며 매번 위 문구처럼 살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를 않다. 그런 나는 오늘도 나의 절대자에게 위 문구처럼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품 제목 오래된 질문은 답이 없어 물어본지 한 참 지난 오래된 질문이 아니라 세상이,

시간이 흐르며 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즉, 구성원들이 쉼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던져진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도 역시 변할 수밖에 없기에 외견상 질문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질문이 아닌 오늘을 사는 모두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마음을 잘 추슬러 보라는 죽비적 가르침을 던져주려는 작품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 ‘생명이란 DNA나 두뇌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교류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 삶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 아득한 심연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재대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쓸데없는 고통의 연쇄에 매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깨달음은 일상과 동떨어지고 신비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몰랐던 걸 알았다’, ‘잃었던 것을   

  찾았다‘, ’가려졌던 것이 벗겨졌다등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나의 참모습, 이 세상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확신하는 경험적 지혜가 바로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에 맞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 지금 현실적인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당면한 문제를 줄일 수 있는지 묻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고통은 그 자체로 우리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그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괴로움의 정도가 달라진다. 쓸데없이 과도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런 고통이 대부분 우리가

  관념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고통은 외부에서 주어진 상황이나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유래

  한다. 붓다는 이를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찾았다.

- 남들이 우리에게 붙인 이름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것이 바로 지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중도라 부른다.

-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라.

- ‘염화 미소란 말로 통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다.

- 시비, 분별, 번뇌, 망상이 있기 이전의 마음, 비교하기 이전의 마음, 나라고 하는 개념이 있기 

  이전의 마음, 부처님은 항상 그런 마음으로 행동한다.

- 그대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대에 의지하여 내가 존재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그대는 무한히 높은 자요, 귀한 자요, 고마운 자입니다그대 앞에서 나는 무한히 낮은 자입니다.

  끊임없이 나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어야 하는 자입니다.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몸짓이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이란 주체적으로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삶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 자존심이 센 사람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남과 견주어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 ‘좌선(坐禪)’이란 번뇌와 망상이 없는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로 앉는 것을 말하는데

  ‘()’란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것을 진짜 앉아 있다고 말한다

  ‘()’이란 어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고요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 ‘화두는 반드시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거 계속 반복해서 되뇌면서

  평화로운 본연의 마음 상태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 감정에 휘둘리거나 쉽게 끌려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금강이라 한다.

- 참선은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

- 진정한 삶의 변화는 저 멀리 특별한 장소에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 노예로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주인으로 사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이다.

- 삶은 내가 마음먹고 행동하는 대로 살아지고 창조될 뿐이다.

- 남과 자꾸 비교할수록 내 행복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처한 지금의 환경과 함께하는 사람들

  그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교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 동양에서는 왼손을 ()’라 하고 오른손을 ()’이라 한다.

  ‘체용론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동양 철학의 아주 오래된 패러다임이다.

  ‘는 사물의 본체나 본질을 의미하고, ‘은 사물의 작용이나 현상을 의미한다.

- 사찰음식에는 마늘, , 달래, 부추, 아위 이렇게 5가지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는다.

-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것은 따로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이다.

 

* 출판사에 표하는 이의제기

- P 46쪽에는 도법스님이 17살에 출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P 24쪽에서 이미 도법스님은

  18살에 출가한 것으로 씌여져 있다.

  독자는 이런데서 출판사에 대한 신뢰, 편집인에 대한 신뢰를 눈여겨 보게 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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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처럼 승부하라 - 권력의 화신에서 공론정치가로 군주 평전 시리즈 1
박홍규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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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8


누가 뭐라 하던 나의 관점으로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을 세운 이성계부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명 군주의 518년의 한국사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왕은 권력의 화신’ 

혹은 유교적 군주라 불리는 태종 이방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당 작품은 그런 태종에 대해 평가를 하기 위해 여러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나는 그런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을 제외한 주변 상황과 배경에 관한 이야기 중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저자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고 합리적 개관성이 인정된다고 생각되는 내용만을 중심으로 정리를 해 

보았다.

만약 세세한 이야기까지 포함한 내용을 쓴다면 아마도 해당 작품의 분량보다 더 많은 내용으로 이야기 될 수 있었을 것이며 누구나 다 아는 내용에 대한 정리는 역사를 식상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여기서 제외하였다.

 

작품 내용을 정리한 후 후반부에 나의 관점, 해당 작품을 통해 얻어진 어느 카멜레온 같은 집단과 인간 등에 대한 평가도 하겠지만 태종 이방원, 그는 최소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교언영색(巧言令色)적 일구이언(一口二言)’은 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확인하였으며 

그렇게 입으로 짓고 까불고 있는 개인 그리고 집단들이 횡행하는 작금의 여의도를 보면 오른팔이든 왼팔이든 한심함을 떠나 처절함을 느끼고 있다.


* 역사 찬탈자들의 논리(P 52 ~ 55)

- 보통 사람은 폭력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폭력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장수가 그렇다. 폭력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또 있는데 혁명가. 혁명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폭력을 사용해 정치 사황을 반전시킨다. 이방원은 정치적폭력 사용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 아버지(이성계)는 혁명가가 가진 정치적 폭력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몽주 격살 후 이성계를

  추대하는 기간은 이방원이 주역이었으며 이방원다운 이방원만의 시간이었다. (P 52)

- 신하가 자신이 섬기는 군주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는 찬탈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유교이념을 향하는 왕조국가에서 이 문제는 온당한 처사인가?

  ---> 맹자의 역성혁명론을 통해 이성계 일파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다.

         즉, ‘()을 해치는 자를 도적이라 부르고, ()를 해치는 자를 잔악하다 한다

         잔악하고 도적질하는 이런 사람을 한낱 필부라 부른다.(P 55)

    ☞ 결론적으로 필부를 해치는 행위를 문제 삼을 수 없다.

        역사의 찬탈자들은 자기들이 몰아낸 군주를 폭군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의 폭력적

        행위를 정당화한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맹자혁명론을 사용한 것이다.


* ‘맹자역성혁명론에 대한 주자의 조건부 승인(P 56)

- 인자(仁者)가 출현해 전국시대를 종결시킬 것이라는 맹자의 확신에 찬 주장과는 달리 천하는

  ‘법가사상을 따른 진나라에 의해 통일

  ---> 진나라 이후 맹자의 의도와는 달리 한나라를 운영하는 데는 유교와 더불어 법가사상이 

         혼용됨

- 한나라 멸망 후 천하는 분열되며 유교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인도로부터 전파된 불교가 정치

  세계를 지배하며 유교의 존재감이 약화

- 송나라가 시작되면서 정치무대에 나선 사대부들은 선진시대의 공자와 맹자의 유교를 부활

  계승하면서 불교의 논리를 극복하고자 했다.

  ---> 유교에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생명력 제공하며 송나라 학문이라고 송학’, ‘()’나 

         ‘()’를 중시 한다고 해 도학이나 리학또는 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해 

         ‘성리학이라고 부른 이 새로운 학풍은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다.

  ---> 주자에게 맹자라는 텍스트는 진리 그 자체로 맹자의 역성혁명론을 주자는 인정하지만 

         그 혁명론이 찬탈자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주자는 잘 알고 있었으나

         ‘맹자를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주자는 맹자의 논리를 인정하지만 주석을 붙여 후대의 찬탈자들이 악용하지 

         못하도록 제한 장치를 설정.

         “오직 아랫자리에 있는 자(신하)가 탕(), ()와 같은 인()이 있고, 윗자리에 있는 

          자(군주)가 (), ()와 같이 포악하다면 가하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이는 찬탈의 

          죄를 면치 못한다

       ☞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의 건국세력은 맹자의 혁명론을 사용해 찬탈한 행위를 통한 조선

          건국을 정당화했고, 이방원 자신도 그러한 폭력적 행위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 ‘역성혁명론에 대한 신권력의 관점

- 마키아벨리가 정상적인상황에서 군주가 갖추고 있으면 찬양받을 만한 성품들로 자비, 신의

  절제, 정직진지함 등을 꼽았다.(P 59)

  ---> 신중한 지성인이라면 어떤 사람이 왕국을 조직하거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사용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 책망하지 않는다. 비록 그 행위가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용서받을 만한 것이라면 여하튼 적절한 것이다.(P 60)

- 새로운 왕조에서의 정도전의 첫 작품은 17가지 조목의 <즉위교서>로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를 천명인심이라는 [맹자]의 혁명 개념으로 설명

  ---> 당시의 집권자들은 명나라 황제의 승인에 의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자학을 가지고

        사태의 본질을 변질시킴으로써 찬탈에 의한 왕조교체를 정당화시키고자 했다.

  ---> <즉위교서>는 이제부터 혁명에 상응하는 실적을 올림으로써 비록 출발은 찬탈이었을지

        모르나 언젠가 정통 왕조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의 건국세력은 맹자의 혁명론을 사용해 찬탈한 행위를 통한 조선 건국을

    정당화했고, 이방원 자신도 그러한 폭력적 행위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 왕은 관념상으로만 절대권을 가지고 재상을 임명하는 데 그치고, 정치 운영의 실권을 재상이 

  쥐고 통솔해야 한다는 정도전의 견해를 이방원은 용납할 수 없었기에 사적 이익을 위해 도당을

  형성해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반역을 도모했기에 이방원은 자신의 정변 행위는 그들을 징벌

  하고 조선의 사직을 안정시킨 정의로운 행위라 주장한다.(P 91)

 

* ‘이방원의 행위에 대해 마키아벨리에게 묻다(P 97~101)

- 태종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 환경에 불편해 했다.

  ---> 자신의 행위(2차 왕자의 난)는 계획한 것이 아닌 긴급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대응한 정당

        방위.

  ---> 국가의 공익을 위해 자신의 비르투(Virtu, 탁월함)를 발휘.

         즉, 네체시타(정상적인 상황에서 통용되는 도덕률을 벗어나 반도덕적인 행위를 허용하는

         ‘불가피한 국면을 의미) 국면에서 비르투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정치영역에서 이 개념을 사용할 때는 개인적인 이익이나 도덕성에 대한 통상적인 고려보다

    자신이 태어난 정치공동체의 영광과 공동선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뜻한다.(P 98)

- 비르투를 발휘한 행위라고 내세우려 해도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고 아무리 자신의 능력 행사로

  사태의 본질을 포장하려 해도 되지 않자 태종은 사람의 힘이 아닌 하늘의 도움이었다고 변명

- 포르투나는 운명의 여신을 의미,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일에 개입하는 힘 또는 존재로 포르투나    를 사용마키아벨리는 포루투나의 압도적인 힘에 지배되어 순응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보다,

  자신의 비르투를 사용해 포르투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포르투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사람을 

  높이 평가

  ---> 태종은 결코 네체시타 국면에서 비르투로 돌파한 인물이 아닌 권력에 마취되어 지성이 

         마비된 그런 인물이었을 뿐이다.

 

* 태종의 이데올로그’, 권근 (P120~127)

- 태종은 지속되는 정변 구조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지속적인 정당화 작업과 함께 

  구왕조와 운명을 같이하려 했던 인물들에 대한 회유 등에 대한 적임자로 권근에게 요청했고

  당대 최고의 성리학 이론가이자 문장가였던 그는 이를 성실히 수행한다. (* 또다른 변절자는 

  ‘하륜)

  ---> 이방원 교서, 태자 옹립 교서, 이방원에게 왕위를 전하는 교서 등 중요 정치적 문건들과 

        폭력으로 얼룩진 권력 투쟁의 사건들을 성리학적 이론과 용어로 포장해 낸다.

- 무인정변 이전까지 태종과 특별한 관계가 없던 권근은 자신의 문장력으로 태종 집권기에 

  권력의 핵심적 지위에 진입한다.

  ---> 대표적 사례가 궁궐(수창궁)의 화재 사건인데, 동중서에 의해 정비된 천견론(天譴論, 하늘

        이 경계를 내림)을 잘 포장한 사례

 

* 하륜, 유교국가의 기틀을 만든다(P138)

- 권근과 마찬가지로 신권력의 회유로 조선왕조에 편입된 인물로 이재에 밝았고 태종도 무한

  신뢰했음.

  ---> 이재(吏材)란 국가제도를 만들고 국사를 처리하는 국정 운영 능력을 지칭하는 말로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유감없이 자신의 이재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태종의 신임과

        비호가 있었기 때문심지어 그가 탄핵을 당할 경우에도 태종이 전면에 나서서 보호해 주고

        있다.

 

* 한비자와 술치(術治) 그리고 가지치기 (P172~177)

- 이방원의 정변은 유교적 국가 정체성으로부터의 일탈 행위였지만, 그는 유교 개념을 사용한 

  정당화의 논리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일탈 행위가 아닌 유교적 국가 정체성의 충실한 수행자임

  을 천명.

  ---> 태종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와 함께 그런 민심을 배경으로 이 일어난다.

  ---> 형제의 난조사의 난’(P115참조)을 겪으며 누군가가 난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의구심

        과 강박감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세력이 누구인지를 생각.

  ---> ‘위협에 대한 객관적 사실보다 태종 자신의 주관적 인식이 더 크게 작용

- 가장 귀중한 것은 인민이고, 그다음은 사직이며, 군주는 가벼운 것이라는 맹자의 주장과는 

  달리 한비자는 군주제에서 군주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한 논리를

  활용.

  ---> 만물 가운데 군주 자신의 몸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자신의 지위보다 더 존엄스러운 것은

        없으며 군주의 권위보다 더 중한 것은 없고, 군주의 세력보다 더 성한 것은 없다.

  ---> 군주가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한비자()’()’을 제시

- 한비자()’()’

  ‘()’이란 담당할 힘에 맞추어서 관직을 주고 명분에 따라서 실적을 추구하며 살생하는 

  권병을 손에 들고 여러 신하들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 이것은 군주가 장악하는 것이다.

  ‘()’이란 관청에 명시된 법령과 인민의 마음속에 새겨진 형벌로, 상은 법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고 벌은 명령을 어기는 자에게 가해지는 것.

  군주에게서 ()’이 없으면 윗자리에서 신하들이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신하에게 

  ‘()’이 없으면 아래에서 나라가 어려워진다. 모두 제왕이 갖출 조건들이다.

  ---> 군주가 속임을 당하지 않고 신하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 필요하고, 술을 구사하는

        데는 ()’과 달리 비밀성을 유지해야 한다.

  ---> 군주가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술조차도 거리낌 없이 구사하는 것을 

        ‘술치라 하며 가지치기(피목, 披木)’가 한비자의 술치가 제시하는 백미다.

 

* [춘추]에서의 춘추대의와 태종 그리고 가지치기(P177)

- [춘추]는 노나라 사관이 기록한 춘추시대 각국의 역사를 공자가 수정하고 정리한 책으로,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 중의 하나로, 공자가 춘추시대 242년간의 사실을 빌려 자기의 사회적 이상과

  정치적 관심을 표현한 책이다.

  ---> 구절마다 시비선악을 판단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를 춘추대의라 한다.

- ‘춘추대의에서 군주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신하의 사고와 행위를 판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신하의 모반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야 하고, 신하를 처단하기 위해 군주는 없는 

  사실을 날조 해서는 안 된다반면, 가지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권의 강화다.

  군주가 왕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권신의 세력이 왕권을 위협하는지를 살펴야 하고,

  이때 그가 실제로 모반을 꾀했는지 객관적 사실 여부보다는 그의 세력이 왕권을 가리고 위협

  하고 있는가 하는 정치적 고려가 더 중요하다. ,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군주의 주관적인 인식과

  판단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가지치기는 군주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 술치의 핵심으로 이방원의 사돈인 이거이와 처남 민씨 형제 처단에 적용!!!


* 정도전과 국가전략(P204~233)


[명나라 관점]

- 무력 팽창전략을 사용했던 원나라와는 달리 명나라는 무력 사용을 제한하고 주변국에 대해 

  외교사절을 파견,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했다. 이런 정책은 책봉조공 관계를 통해 

  명나라 중심의 천하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 명나라와 주변국사이에 책봉, 조공 제도를 통해 수직적 질서를 형성하는 데 이론적 자원으로 

  사용된 것이 화이론(華夷論)’으로 이는 명나라를 문명을 구현하고 있는 중화로 설정하고 

  주변국을 중화문명으로부터 벗어난 이적, 즉 야만적인 오랑캐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사유다.


[조선의 관점]

- 정도전 주도로 국가 경영의 텍스트격인 조선경국전을 제정 기본적으로 신생 국가 조선이 

  명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천하질서 속에서 취해야 하는 국가 전략을 담고 있다.

- 또한 천자제후를 수직적 관계가 아닌 동일한 원리에 의해 존재하는 각각으로서 수평적

  으로 묘사조선 왕조의 유지는 책봉한 천자가 해주는 것이 아닌 조선의 임금이 인정을 베푸는

  가에 달려 있음을 주장 즉, 조선은 맹자가 말하는 천명인심에 따른 혁명을 통해 건국했고,

  맹자가 말하는 인정'을 시행함으로써 존속해 갈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 조선은 작은 주나라(=소중화)를 만들 것이니 명은 큰 주나라(=대중화)를 만들어서 함께 

  ‘중화공동체를 형성하자는 것으로 이러한 중화공동체 전략은 조선 중심주의가 아니라 

  명나라와의 협조체제를 형성하고자 하는 공동체 지향의 전략이다.

  ---> 조선은 천자가 추구하는 평천하의 길을 포기하고, ‘치국이라는 제후국 국왕의 길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 태종은 정도전의 사람됨’, 즉 사적인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소인배로 규정하고 폄하했을 

  뿐이지그가 설정하고 추진한 조선의 전략과 국가 정책을 비판, 변경, 폐지한 적이 없다.

  오히려 태종은 정도전의 중화공동체 전략과 그에 따른 국가정책을 충실히 계승했다.

 

* 태종, 수성(守成)의 시대를 열며(P204~233), 

                                         ‘유신의 교화를 선언하다(P246~266)

- 태종에게 이성계의 존재는 정변 구조의 근원이자 정변 구조 지속의 상징적 존재였는데 

  이성계의 죽음은 태종에게 부친이자 군주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는 부담으로 인해 

  무기력증에 빠져 있을 때 태종이 등극과정에서 행한 행위가 불효가 아닌 대효였음을 

  주장하는 하륜의 폭력적 권력을 위한 곡학(曲學)의 진수로 태종은 정사를 재개하게 된다.

- 태종의 집권기는 1398년 정변에서 시작해 태종 10년 민씨 형제의 처결까지를 전반기로, 유신의

  교화 선언 이후를 후반기로 한다.(P250)

- 태종은 죽은 태조와 신의왕후를 종묘에 모시는 부묘(祔廟) 직후 배향공신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 유신의 교화(維新之化)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데 조선왕조실록원문에는 총 502회나

         나온다, 유신의 교화는 태조 없는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었는데, 전반기와는 

         전혀 다른 공론정치를 구현하기 시작한다.

  ---> 대표적인 사례가 이거이, 이저 부자의 복권과 이색의 아들 이종선이 자신의 부친의 업적을

        기리는 비명(碑銘)에 언급된 용사자와 관련된 해석의 문제로 발생된 권근, 하륜에 대한 

        처분을 통해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

- 전반기의 태종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인의 그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유교적 군주상과 일정한 선을

  그으며 권력정치가로서의 자율성을 누리고 싶어 했다면, 집권 후반기의 태종은 자신을 유교적

  군주로 완전히 위치시킴으로써 신하들과 더불어 유교적 정치를 펼쳐나가고자 했다.(P238~268)


* 성리학적 공론정치(P303~304)

- 주자는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수기修己를 강조하고, 수기를 이룬 인간이 통치를 하는

  ‘치인治人을 수기의 연장선에서 생각한다.

  ‘주자주의는 천리天理와 인성人性, , 의 정치사상이다. 그것은 절대 불변적인 천리의 

  세계로의 가능성을 인성에서 구하는 정치사상이다. ---> 수기치인(修己治人)

  ---> ‘주자주의는 초월자나 극락을 믿지 않으며 오로지 이 세상 내에서 존재, 인간, 수양, 통치의

        모든 것에 걸쳐 일관된 체계를 꼼꼼하게 구축하고 그 실천을 추구한다. - ‘천리인성

        탐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이 성리학이고, 성리학에서의 정치, 즉 주자주의는 천리에

        부합하는 공론을 도출해 실행하는 정치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적 공론정치다.

  ---> ‘은 공공성 또는 공정성으로 천리 그 자체의 속성을 나타내고, ‘은 공개적이고 

        비판적인 논의의 측면을 나타낸다. 그리고 공론公論은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찾아낸 

        천리에 부합하는 의견을 말하고, ‘공론정치란 공론을 찾아 실행하는 정치를 말한다.

- 태종은 신군주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강한 의욕을 갖고 저화법(종이 화폐)’을 야심

  차게 추진하지만 일방적인 정책 결정과정과 추진으로 파국을 맞고 유신의 교화를 선언한 이후

  새로운 정치(공론정치)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시행된다.

  ---> ‘노비변정 사업은 유신의 교화 이후 태종의 강화된 왕권과 리더십, 그리고 신료들과의 

        긴밀한 논의와 토론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가장 어려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공론정치 사례다.

 

* 태종의 아픈 상처....세자 양녕(P335~359)

- 세자 양녕의 일탈적모습은 양녕이 원자로 책봉된 이래 오랜 기간에 걸쳐 태종을 롤 모델로 해

   형성되어 온양녕의 정체성이 변화한태종의 정체성과 충돌하면서 발생된 현상.

   특히 태종이 세장의 공부에 흡족해하지 않은 것은 세자가 못해서라기보다 태종의 기대치가 

   높아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어린 시절(태종 5~6) 잘 극복해 오던 영민한 세자가 태종 12년에 이르러서는 세자로서 부여

  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 아유는

  첫째, 세자라는 신분적 제약성과 궁궐이라는 공간적 제약성이 세자의 일탈적행위를 초래했고

  둘째, 세자의 자부심이 어느덧 자만심으로 변질되어 태종의 성군 프로젝트에 저항, 반발함.

- 태종이 세자 교체의 파행성이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폐세자를 감행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정체성의 변화를 통과한 태종의 이념의 세계에 대한 의지, 즉 태종의 이념성에서 찾을 수 있다.

                                                                                                                 (P438)

- 세자 양녕을 폐위하고 목숨을 유지시켜 지방에 안치한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기에 양녕의 

  아들을 후계로 삼지 않아도 좋다는 주장으로 이런 권도론은 주자주의에 위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자주의자들이 때가 되면 어김없이 사용하는 논리다.

  ---> 이런 논리에 대해서는 사전에 태종과 교감(밀지)이 있었던 것으로 유추


* 상왕정치의 장치들(P469)

- 상왕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 중 으뜸은 세종의 군무 능력을 교육시키는 데 있다.

  국왕의 통치권은 교지(敎旨)를 통해 행사된다. 국왕의 명령이 담긴 말을 ()’, ()’는 

  여기에 담긴 국왕의 의중을 가리킨다. 따라서 교지란 국왕의 명령이 담긴 말씀이다.

  교지를 왕지(王旨), 교지를 내리는 것을 하지(下旨)라고 하고, 교지를 전달하는 것을 전지(傳旨)

  라고 하고 교지를 받는 것을 수교(受敎)라고 한다.

  ---> 상왕의 경우는 비록 금상보다 높은 위상을 갖고 있지만 최고의 통치권자가 아니다

        따라서 상왕은 자신의 의중을 금상의 교지를 통해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금상인 세종의 교지와는 별도로 행사되는 명령을 선지(宣旨)’라 는 명칭으로 정했다.

- 상왕이 지적한 핵심적인 논지는 상왕 자신은 사헌부의 감찰과 규탄의 대상이 아니며 자신에게

  할 말이 있으면 금상이나 병조에 고해 전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상왕 자신은 극가의 공적

  제도 밖에 있는 초법적인 존재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P475)

 

* 신권력의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P483)

- 세종 2(1420) 56세 나이로 태종의 무인정변 성공의 큰 역할을 한 대비 원경왕후가 생을 

  마감

- 원경왕후의 투기와 민씨 형제들의 억울한 옥사로 인해 불만을 품은 왕비에 대해 태종이 왕비를

  폐위시키려 하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되며 대신 후궁을 간택하기로 함.

- 태종 7년에 이어 태종 16년에 또다시 민씨 형제에 대한 추가 처리하자 태종에 대한 왕비의 

  불만이 높은 상태에서 대비가 죽게 되나 대비의 장례에 관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비를

  향한 차가운 마음이 엿보이는 장면만 있을 뿐이다.

  ---> 태종은 즉위 직후 불교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불교신자인 이성계로 인해 실행하지 못함

        고려말 불교 폐단의 본질(방대한 토지 및 노비 점유)을 목격하고 국가 관리를 추진

        태종은 대비의 장례와 관련된 불교식 의례를 유교식으로 변경시키거나 불교식 관례를 

        폐지시켜 유교적 군주로서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 소중화 조선, 대마도를 정벌하다(P493 ~ )

- 조선은 명의 일본 정벌 계획을 크게 우려했다. 명의 일본 정벌이 실행될 경우 조선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은 명의 일본 정벌을 사전에 막기 위해 명의 왜구 

  피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대마도를 정벌했다는 것이다.

- 왜국의 조선 침략은 중화공동체 전략을 구사한 대 일본 기미정책에 대한 도전이었고, 소중화

  조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었다고 판단한 상왕(태종)은 그러한 대마도주의 배신을 응징

  하고자 했다.

- 중국의 서쪽과 북쪽 변경의 일을 처리하기에 몰두하고 있는 영락제가 동쪽의 여진을 관리

  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굳이 바다 건너 일본을 정벌하지는 않을 것으로 태종은 판단.

  ---> 영락제는 일본을 정벌할 의지도 계획도 없었다. 왜구 정벌은 왜구 침략이 있을 때 표명된

        수사에 불과했다. 그것은 일본에 대해서는 압박용으로, 조선에 대해서는 협조용으로 사용.

 

* 책으로부터 얻는 상식

- 표전문(表箋文)이란 중국에 대한 사대문서(事大文書)로 조선 국왕이 중국의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표문(表文), 황태후, 황후 또는 황태자에게 올리는 글을 전문(箋文)이라 한다.(P 82)

- 도언반사(倒言反事) 신하가 하는 간악한 일의 실정을 알기 위해서 군주가 일부러 뒤바꿔서 말을

   하고 반대 행동을 보이는 것.(P192)

- 균름(囷廩)이란 각 지방의 곡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던 창고(P273)

- [서경]은 요, 순을 비롯한 삼대 제왕들의 사적과 치적들을 여섯 가지 문체로 기록한 문헌으로 

   중국 고대 성왕들의 구체적인 제도와 가르침을 제시한 경전으로 중시되었다.

   ---> <무일>[서경]의 여러 편 중에서 <洪範홍범>과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된 편으로 

         조선에서는 이 부분만 별도로 필사해 왕세자 교육에 사용했다.(P297)

- 편달(鞭撻)이란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종아리나 볼기를 때리는 것(P335)

- 조계(朝啓)란 조정의 신하들이 왕에게 국사를 아뢰는 정규회의(P350)

- 무연(憮然)이란 크게 낙심하여 허탈해하거나 멍한 상태를 의미(P421)

 

 

작품을 읽으며 무책임한 행동으로 밖에는 평가되지 않는 상황을 만든 어리숙한 리더가 그런 상황

으로 몰고간 원인 제공자와 해당 집단을 오히려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어버린 기기묘묘한 우리의 현실과 작품 속 상황을 대비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가급적 외눈박이적사고의 틀로 현실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작품을 통해 다시는 그런 미성숙한 리더를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 또 한편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러한 최악의 선택을 피할 수 있는지를 역사를 통해 배워보고자 했으나 그 보다는 역사를 왜 읽어야 하는지를 크게 느낀 시간이었다.

 

작품을 통해 크게 다가왔던 것은 권력층의 암투혹은 권력 쟁취를 소재로 한 역사 작품을 

접하면 권력층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식 다툼이 그 옛날에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작품을 통해 그런 내용을 발견하게 되면 권력 암투의 전개 과정과 방식보다는 가급적 그런 다툼의 이면에 흐르는 배경힘의 논리에 더 주안점을 두고 사건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한다

그 이유는 여러 역사작품을 접하다 보니 역사, 그것도 좋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는 

사실을 여러 작품과 실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자주 목격하고는 했기 때문이며 그런 사실을 깊이 사유하다 보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당시의 환경과 참여자의 목적이 유사 사건과 조금은 상이

하더라도 큰 틀에서 조망해 보면 지금 당장 우리에게 일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 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건의 승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특징 중 하나를 또 다시 확인하였는데, 그것은 승리 세력들이 벌이는 

같은 편 공적() 나눠 먹기와 상호 챙겨주기‘ 

로 아주 웃긴 것은 최근의 공훈 챙기기 현상은 과거 자신에게 국한되던 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최근에는 해당자 부모, 자식들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공훈자로 둔갑시키는 아주 기묘한 현상이 역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적() 챙겨주기가 헌신적(?)으로 운영되다보니 실제가 아닌 가공의 인물과 허위의 인물에 대해서도 유공자로 둔갑되어 포상금 잔치까지 벌어지는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데이러다가는 홍길동은 없는 자들을 위해 의적 활동을 했다고, 흥부전의 

흥부도 제비 다리를 고쳐주어 야생 동물 보호와 관련된 유공자로 선정해 그들의 혼백이라도 

현충원에 안장하자고 덤비지 않을까 심히 걱정될 지경이며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이 땅에 사는 

우리 국민이 유공자 집단비유공자 집단으로 나뉘어지는 사태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고 있지만 마땅한 공적도 없고 나를 그런 집단에 넣어줄 사람도 없어 문제가 있다는 말도 못 꺼내고 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유공자로 선정된 위인(?)의 후손들이 자신의 조상을 평소 흠모하여 조문 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텐데 그런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출입을 금지시킬까 그것도 걱정된다.

 

위의 사실에 기반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살펴보면 이전에 읽었던 중종과 관련된 작품에서도 언급되었던 리더나 권력자들의 측근들이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들의 공적에 대해 댓가 즉, 새롭게 출현한 신권력 집단에 대해 자신들도 일조를 했으니 공훈을 인정해 권력의 지분을 

공개적, 암묵적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이며 이를 요구받은 신권력 집단은 이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무슨 일만 벌어지면 나라가 금방 절단이라도 날듯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무슨 연대혹은 단체에 소속된 수준 낮은 인간들이 벌이는 지랄 수준에 가까운 아우성도 공훈 챙겨주기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자기들에게도 뭐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런 잡탕들 난리 굿에 기름을 붓는 인간집단들이 또 있는데 나라에 무슨 일만 벌어지면 원탁

회의니 무슨 구국대회를 외치는 한물간 이데올로거들이 벌이는 굿판으로 그런 노욕에 찬

이데올로거들을 보면 어느 작품 제목과도 같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도 같은 또 다른 

주인공 엄석대를 발견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여간 사면을 받아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출소하자마자 고급 음식점에서 된장

찌개로 서민 코스프레하는 종자와 법원도 인정한 기금 횡령에 대해 일언반구 사과도 없는 어느 철면피한 인간에 대해 행해지는 공훈 챙겨주기 발언은 이 땅에서 벌이고 있는 수준 낮은 아주 

저급한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사면권이야기가 나와 한마디를 덧붙여 보면

지금 사면권을 발동한 대표자는 과거 통수권자들이 행했던 사면권에 대해 얼마나 비난을 했었는지는 세세히 열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최근 벌어진 사면권 쇼는 하여튼 삶은 소대가리도 아닌 설익은 소대가리도 웃게 만들고 있으며 스스로 사면권을 희화화시킨 웃기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금번 사면령을 아주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앞으로 이와 같은 수준 낮은 

사면권 발동과 유사한 조치가 이 땅에서 일방적으로 자주 실시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내가 감히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보통 사람과 뇌구조가 다른 이상한 사람은 절대 안 변하기 때문이다.

사면권과 사람 안 변하는 게 무슨 연관성이 있냐고 할 수 있지만 해당 작품을 읽어보면 나의 이런 주장이 왜 나왔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태종은 술치(術治)’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해 왔는데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 나의 이런 주장이 왜 나왔는지 궁금하면 작품을 읽어보시라 -

, 태종이 자신의 처남들을 작살냈고, 사돈을 사약으로 처단하였듯이 가족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타인을 존중할 수 없으며 그 자신 안에 내재된 참혹한 본성과 독불장군식 조치를 

자신에게 부여된 최고의 권한을 활용하여 반드시 만천하에 보여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권력이 추구하는 전략 몇 가지를 살펴보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암수목표 달성 전략이다.

대표적인 행위가 상대편을 내란당’, ‘반란세력운운하면서 코너에 몰아넣고 자기의 이득을 취하는 다시 말해

작은 거 하나 주고 더 큰 하나를 뺏어가는 전략

으로 그들은 낮 뜨거운 난해한 목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반드시 내란당반란 세력이라는 

단어를 서두에 꺼내든다. 그러면 모두가 그 단어에 집중해 뒤에 무슨 말이 나오는지 거의 신경을

쓰지 않거나 앞 단어의 무게에 눌려 뒷 문장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나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만든 후 자신들이 목적하는 바를 슬쩍 끼워넣는다.

대표적인 사항이 특활비 부활이다.

그들은 이전 정부가 돈이 없어 일 못한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면서 특활비 82억 전액을 

삭감시킨 전력이 있는데 상황이 바뀌자 특활비가 없어 일하기 힘들다면서 자기들 손으로 삭감한 특활비 부활을 요구하고 있는데 일을 하다 보면 상황 예측이 잘못되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를 복원하는 과정이 치졸하다.

특활비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일단 상대를 내란당’, ‘반란 세력등과 같은 단어로 자신들의 실수를 상쇄시키기 위해 상대를 몰아 부친 후 뒷말 속에 자신들의 목적을 은근 살짝 끼워 넣어 관철

시킨다

그 방식도 좋기는 하지만 요구하는 액수도 합리적이어야지 아주 얍쌉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 전임 정부의 특활비 1년치에 해당하는 82억원 보다 훨씬 많은 92억 원을 요구하고 있는데

신권력이 지난 6월에 정권을 잡았으니 년 말까지 일할 특활비 7개월치만 요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왜 전임 정부 1년치 특활비 82억원을 상회하는 금액을 반년 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신청했는지가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신정부가 구성되어 인수위 과정도 없었고, 전임 정부의 무능으로 할 일이 태산처럼 쌓였다고

그럼 지금이라도 인수위를 만들고 무엇을 할 것인지 업무 리스트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공표해 

비용이 왜 많이 들어가는 지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과거 박수무당이 이야기한 영수증도 

없이 집행될 예산이 왜 그리도 많이 소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한 소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나라 곳간도 비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비용을 왜 그리 많이도 신청하는지 궁금할 뿐이다하여간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가 기계체조하는 모습이 곳곳에 숨어 있다.

모두가 내란당 운운하며 전임 통수권자의 옥중 투쟁기에 관심을 쏟게 하고 그들은 사육장의 곰 쓸개즙 빼 먹듯 예산 사용의 단물을 즐기며 자신들만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또 하나 사면권 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모든 이들의 저의를 더 확실히 확인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강력한 포퓰리즘으로 많은 이들을 달콤함에 취하게 한 후 외부의 그 어떤 자극에 쉽게 

반응하지 못하도록 만든 후 자신들이 숨겨놓은 암수목표를 공공연히 노출한 후 손쉽게 목표 

달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 이 놈 저 놈 다 사면시키고 과거에 지은 죄 전부를 없는 것으로 풀어 놓으면 전과자 아닌 인간 찾기가 아주 어려워지는데, 그럴 경우 온 천지 사방이 전부 전과자 세상인데 특정인의 전과 기록은 그런 인간들 이슈에 묻혀 문제화 되지 않을 것이 뻔하게 될 것이다. 이쯤되면 해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자기에게 돌 던질 사람 있음 나와 보라

는 전략으로 밀고 나갈 것이 눈에 보인다그래도 이것을 지적하는 기레기들이나 때만 되면 지랄하는 이데올로거들과 질낮은 단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면서 연일 전임자 옥중 투쟁기와 그 부인의 목걸이 사건과 구두만 갖고 콧수염 앞세우고 난리에 난리들이라는 것을 태종처럼 승부하려고 연구하다 보니 금번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누군가가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태종처럼 승부하기를 원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스스로 언관이 되라는 전략을 추진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언론을 이용해 대응하라는 것으로 이해되기 쉬우나 그게 아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항을 기록해 후손들에게 오늘의 이 현상을 명명백백 증언해 주라는 것으로 기업으로 이야기하면 불량품 새벽 시장이나 불량품 전시회같은 행사를 하라는 것이다.

내란당이라고 위축되어 다수당의 우두머리 박수무당이 입만 열면 비상식적 발언에 너무 위축

되지 말고다수당이라고 자만에 빠지지 말고 진정으로 협치의 노력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분간 절대 다수가 내란당이니 반란 세력이니 하는 단어를 즐겨 쓰며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 단물을 있는 대로 빼 먹으려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인데 

이를 막아보겠다고 나서지 말고 그들이 펼칠 막춤을 감상한다는 마음을 갖고 느긋하게 지켜

보라 전략이다.

? 내란당, 반란세력이 입이 열 개여도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그들이 지속적으로 난리를 피우며 추게 될 권력의 막춤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막을 방법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나 그렇다고 저들의 행동을 손 놓고 그냥 구경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바로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 그 옛날 언관들처럼 다수들이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전부 기록한 후 저들의 모든 행동을 백서형태로 만들어 주기적으로 발표하라는 것이다.

어느 인간이 어떤 법안을, 어떤 의도로 발의했고, 누가 동의했으며, 법안을 발의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부 기록해 주기적으로 언론에 발표하던지 나름의 장소를 만들어 전시하자는 전략이다

상대의 것만 이야기하면 안 된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도 포함하여 반성하는 차원에서 발표해야 합니다. 이것은 문재앙 시절부터 소급해야 운영되어야 합니다.

통계조작으로 나라의 백년대계를 망치려 한 작태 경위와 내용, 주택 정책 및 부동산 정책의 오류로 젊은이들 길거리로 내 몬 경위, 국제적으로 망신살을 뻗치게 한 새만금 잼버리 행사의 실패 

원인과 감사결과, 싸드 설치 반대를 외치며 가발 쓰고 춤춘 인간들, 세월호와 천안함 침몰 당시 

허위 사실을 공공연히 퍼트린 인간들, 고위 공직자로 있으면서 자기 부친 민주화 유공자 만든 

인간들 모두를 전부 기록해 발표하고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상시 전시를 해 놓으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더 나아가서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입장이 바뀌어 태세가 전환된 사건과 법안에 대해서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아마 그 모든 자료를 모으면 아마 팔만대장경은 거의 부록 수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과거 어느 분이 어떤 집단을 향해 외치던 구호가 생각납니다.

대가리는 親日, 아가리는 反日

이라는 구호입니다. 이 구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나 단체가 친일적일까요 아니면 반일적일까요?

지금 이 땅에 이런 특성을 지닌 집단이 구국의 선봉대로 활개치고 있습니다.

할 이야기 너무 많은데 손가락이 아파 여기서 줄일까 하며


하지만 나는 이런 이들에게 어느 신문 컬럼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가인은 질투 끝에 아벨을 죽였지만 사실은 자신을 해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인과 아벨은

 대립적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통해 온전해지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흙으로 빚어진 

 외형’, 아벨은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를 뜻합니다. 육체와 호흡이 함께해야 온전한 인간이

 되듯, 가인과 아벨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중략)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은 ’, 하와는 생명입니다. 흙만 있으면 죽은 존재이고 

 생명만 있으면 허상입니다. 두 존재가 만나야 진정한 인간이 됩니다. 따라서 성경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어떤 학자는 이를 이웃을 사랑하라. 왜냐하면 

 그가 곧 네 몸이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합니다. 이웃을 미워하거나 해치는 것은 곧 자기 파괴 

 행위입니다.

                      (중략)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함께 있어야 온전한 인간입니다. 이웃은 나를 온전하게 만드는

 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뜻 안에서 서로를 품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국민일보 오늘의 설교, 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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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평전 - 사화의 시대, 성리학적 이상을 꿈꾼 개혁가의 비상과 추락 한겨레역사인물평전
신병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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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작품을 우리 역사에서 개혁이란 타이틀로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인 조광조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기대하고 접하였지만 그런 내용보다는 ‘4대 사화(士禍)’, 그것도 제일 처절한 피비린내를 초래했던

‘3대 사화의 배경과 결과를 더 비중 있게 다룬 작품으로 역사에 깊이 있는 지식이 미비한 이들과 역사에 관심을 가지려는 초보 역사 애호가들에게 도움이 된 이야기였지 작품 제목처럼 어느 특정

인물에 대한 평전으로 평가하기가 다소 애매했던 작품이었다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내가 생각해 볼 때 평전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주인공에 대한 공과(功過)’를 독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다루어지고 평가 - 그렇게 할 경우 평전이 아닌 새로운 장르로 갈 우려가 높겠

지만 - 되어야 진정한 평전이라 할 수 있지 특정 부분만 - 주인공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 혹은 주장이 주인공 전체의 업적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 부각된 상태에서 평전이라 부르는 것은 역사에 기본 지식이 일천한 사람에게 그리 좋은 방식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조광조라는 인물에 대한 평전으로 이름을 붙이려면 더 심층적으로 개인의 업적에 

대해 언급이 선행된 후 그에 따른 업적에 대한 공과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각도에서 언급되었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작품을 읽으며 작품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나의 판단이 옳은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훈(위훈)삭제기묘사회라는 파장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파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정치사의 근현대사 중 매번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이를 감추려는 자의 논란의 단골 

논쟁 거리인 '‘518 유공자 명단공개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정보와 상식으로는 해당 사안을 꺼내기만 하면 밝히려는 자밝히지 않으려는 자

에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차제에 이 부분에 대해 조사를 명확히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해당 사안에 대해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이 항시 발목을 잡고 넘어지려는 자세에 대해 확실한 대못을 박는다는 심정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자들이 명명백백 유공자분들의 명단과 개인별 공훈 업적내지는 선정 이유를 밝혀 다시는 발목 잡는 인간들이 이 땅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후손들에게는 떳떳한 자료로 남겨보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진실을 감추려 하거나, 밝히지 않으려는 자들이 518 유공자분들이 잠들어 계신 

신성한 장소에 대해 돌아가신 분들로부터 무슨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들처럼 행동하면서 이 나라의 국민이고 그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유로운 조문이 가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문 오는 분들에 대해 어떤 근거로 조문을 막는지 그리고 그런 행동이 과연 옳지 행동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있으며 그런 행동이 잠들어 계신 영현들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일군 오늘날의 대한민국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조문을 온 몸으로 저지하는 분들이 잠들어 계신 분들의 진정한 후손인지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계속해 오고 있었는데 이러다가는 조만간 황해도 안중근 의사충청도 이봉창 의사, 마산의 김주열 열사와 서울의 연세대 이한열 열사 등을 조문하려 할 때 그 지역 사람이나 관계자가 아니면 조문을 못 받겠다고 난리치거나 조문을 방해하는 집단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으며 곧 조문오는 사람들에게 잠들어 계신 분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주민등록 등본과도 같은 증명서를 제출해 돌아가신 분과 어떤 연관성이 명확한 확인이 되어야만 조문이 가능한 날이 올 것 같아 아주 걱정스럽다.


매번 선거철이나 무슨 때만 되면 민주화 영현께 조문 오는 것을 막는 자들도 이상하고 그래도 

가겠다고 박박 우기며 아우성치는 사람들은 더 이상하다. 오지 말라고 하는 데 굳이 우기며 가는 행동은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을 모신 곳이 특정 지역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앞으로 계속 이런 저런 사유로 특정 지역에서 특정 단체나 사람들의 조문을 막는다는 것은 유공자가 특정 지역과 단체의 상징이 아니기에 또 다른 현대판 지역차별이요 인격 차별이라 생각되기에 

굳이 그런 차별화가 일상화된 지역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고 다른 민주화 영현들께서 잠들어 

계신 지역을 성시화하여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관리에 적극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질 낮은 작태를 보면서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후손이라면 그렇게 치졸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번 기회에 정확히 유공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제안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조문 오는 사람을 막고 난리 피우는 이유는 유공자 후손들 속에 가짜가 많거나 무늬만 

유공자 후손인 자들이 많아 그 가짜 후손들이 난리를 치기 때문이며 또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난리를 그악스럽게 쳐대야 진짜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 속에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이런 나의 생각이 완전 틀렸다고 생각하는지요?

 

진실은 시간이 흐른다고, 손으로 가린다고 가려지는 게 아니니 이런 저런 방식과 사유로 진실을 가려도 언젠가 누군가 반드시 밝혀 낼 것입니다.

하여튼 518 민주화 유공자 명단과 숫자를 정확히 알고 싶을 뿐입니다.

 

작품을 읽으며 작금의 이 땅에는 왜 이렇게 함량 미달의 정치인들과 무늬만 민주화 유고자들이 갑자기 넘쳐 나게 되었는지 이유가 몹시 궁금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위에서도 언급되었고, 작품에서도 기묘사화를 촉발시킨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가짜 유공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 ‘빈 수레가 요란하듯가짜가 진짜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가짜가 선동적으로 난리쳐 국가 사회적으로 혼란스럽고도 시끄럽게 만들어야 난리치는 가짜들을 수용하는 어떤 중재안이 나와 더 

이상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얼렁뚱땅 넘어가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함량 미달인 가짜들도 거기에 은근 슬쩍 섞여 자신들도 진짜로 포장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혼란한 정국을 숙주로 함량 미달의 암적인 정치인들과 인사들이 갑자기 늘어나게 된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위선으로 가득한 가짜들의 특징은 누가 봐도 겉과 속이 다른 행실로 국민을 기가 차게 만들고 

있지만 자칫 구설수에 휘말리기 싫은 대다수의 국민들과 매체들은 극성스런 팬덤 현상에 매몰

되지 않으려 좌도 우도 아닌 중도에서 미적지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진행된 청문회에서 들의 비상식적 수준 낮은 행실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런 후보와 그런 후보를 지명한 집단에 대해 질타는커녕 오히려 그들 편에 서서 사과 없이 변명하려는 주도 세력의 기이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대중들은 너희도 별 수 없구나라는 식으로 침묵하고 있지만 이럴 때 나서야 할 우리의 매체들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파수꾼으로서 기능을 다해 

팩트를 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집단이 내 놓는 논평을 받아쓰기에 급급한 이상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지만 누구하나 이를 지적하지 않거나 반성하지 않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

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느 수준 낮은 인사가 청문회에서 문제되는 사항을 지적하자 임명권자를 

이기려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으나 누구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대응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주장하는 내용이 옳아서라기보다 그런 질 낮은 지적질에 일일이 대응하였다가 

그런 수준 낮은 인간과 그의 평가를 인정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언급을 외면하는 것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 개 무시로만 일관하고 있는 그런 자세가 좋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일견 답답한 - 민주주의는 답답한 면이 강하다 - 면도 있다.

그 이유는 그런 질 낮은 발언에 환호하는 집단은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일인자가 행한 평가에 

대해 아무도 비판하거나 댓거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비판이 맞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근자감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호도되어 그의 생각과 시각에 벗어난 집단과 개인에 

대해 조롱질 하는 것이 정의고 진리라 믿으며 더욱 활개치고 있어 그런 답답함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저질 발언을 한 인간은 더 기세등등하여 내 말이 맞으니 세상이 내가 이렇게 

말을 해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내 말이 맞지‘, ’나를 이길 자는 없다고 하면서 온갖 폼 

다 잡고 콧수염 날리며 한마디 더 하고 있다. ‘내가 뭐랬어...별거 아니라 했지?’

 

이런 갑갑한 시절에 전진과 발전의 토대를 더욱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처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기본기 충실과 함양 방법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초석을 놓은 우리의 민주화 유공자들 툭히 518 유공자에 대한 조사를 통해 그분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오셨는지와 어떤 방법으로 현실적 난제를 해결해 오셨는지를 연구해 

보자는 것이다.

, 그분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과 버려야 할 점이 무엇이지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전, 현직 정치인들을 우선 대상으로 조사해 보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

조사 대상으로 그들을 먼저 선정한 이유는 작금의 현실에서 앞장서서 난리를 치니 너는 얼마나 깨끗한지 조사해 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난리치는 너의 조상은 이러이러한 관용과 아량을 

갖고 계신 훌륭한 분이었다는 것을 부각시켜 화합과 상생의 방식을 찾아보자는 의미이며 이를 

바탕으로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보자는 차원에서 제안하는 것이니 용단을 내려 동참하기를 읍소하는 바입니다.

 

어느 신문을 통해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가 있어 여기에 옮겨 본다.

 

140년 전 이 땅에 선교사 윌리엄’‘메리 스크랜턴이라는 두 사람이 한국 땅에 파송되었습니다.

윌리엄 스크랜턴은 병을 앓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는 진료소를 엽니다그 진료소가 바로 상동교회입니다.

그곳에 돌을 던진 소년이 있었습니다. 전덕기.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던 가난한 숯장수였습니다하지만 스크랜턴 부부는 그를 품었습니다. 그 사랑이 아이를 바꿨습니다. 그는 자라 

상동교회의 목사가 돼 하늘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윌리엄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은 여성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화학당, 오늘의 이화여자대학교. 수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그곳에서 배웠습니다

한 번의 용서가 한 교회를 살렸고 그 교회가 도시를 살렸고, 그 도시가 민족을 흔들었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은 것은 우리가 선하거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비로우시기 때문

입니다그 용서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도 용서의 사람이 됩니다. 그 은혜가 지금도 우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출처 국민일보 20250728]

 

- 조선 전기,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던 보수 세력인 훈구파에 의해 새로운 개혁 진보 세력인

  ‘사림파가 화를 당한 대표적 사화가 무오사화(1498, 연산 4), 갑자사화(1504, 연산 10),

  기묘사화(1519, 중종 14), 을사사화(1545, 명종 즉위년)이다.

  * ‘훈구파공훈을 지닌 구세력을 뜻하는 용어로 조선 건국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공신의 

     특권을 가지고 그 기득권을 제대로 승계한 정치 세력을 지칭한다.

     ---> 훈구파의 세력이 공고히 된 이유는 세조 집권 과정에서 공신이 대거 배출되었고 

            그들에게 많은 특권을 주었기 때문인데 정치적으로 보수 기득권 세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강했지만 조선의 제도와 문물을 정비하고 외교와 국방을 튼튼히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학문적, 실무적 능력을 겸비했던 이들의 역할이 컸었다.

- 사림파의 뿌리는 여말선초,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조선왕조의 건국에 반대한 길재

  (吉再)등의 영남사림파로부터 시작되며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등극하며 급속 그 세력이 

  확산된다.

   ---> 성종이 사림파 인물들을 정계로 불러들여 훈구파 견제라는 역할을 기대하지만 의리와 

          충절이라는 성리학 명분으로 무장한 사림파에게 세조의 불법적인 왕위 찬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었다.

- 왕에 대한 견제를 주 업무로 하던 사림파들은 주로 언관직에 진출해 있었는데 왕에 대해 사사

  건건 제동을 걸던 사림파들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찾던 연산군의 폭정이 더해지면서 사림파는

  크게 화를 입는다.

    ---> 특히, 김종직의 조의제문으로 촉발된 1498년 무오사화는 영남사림파의 몰락을 초래

- ‘무오사화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사림파의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사건이 동시에 

  이들이 추진한 과거사 바로잡기가 훈구파의 저항을 받은 사건이다.

- 친모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어 일어난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능상(凌上, 위를 업신 여긴

  다)에 대한 피해 의식이 확실히 드러난 사건.

   ---> ’연려실기술에서는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모친의 죽음에 대해 알린 것이 사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무오사화 피해자가 52명이었던 것에 비해 갑자사화는 239명인데 이중 40%96명이 

         사형되었다.

   ---> 갑자사화는 표면적으로는 모친에 대한 복수극인 듯하지만 실제는 독재 군주(연산군)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은 가차 없는 처벌이 뒤따른다는 어떠한 비판 세력도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사건이다.

   ---> 1506년 연산군의 이복동생 진성대군(중종)’을 옹립하는 반정으로 조광조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주요 배경이 된다.

- 조광조의 인생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은 무오사화로 평안도에 귀양 온 김굉필과의 

  만남으로 이는 영남사림파의 학맥이 기호사림파에게 접목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의 학문과 사상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책은 소학으로 소학은 주자가 삼대의 이상을 실현

  하기 위하여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여러 책에서 주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편집한 책으로 수신

  (修身)’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림파 성향에 부합되는 측면이 많았다.

  한마디로 소학은 유교사회의 도덕규범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내용을 가려 뽑은

  책으로유학 교육의 입문서이다.

   ---> 김굉필의 학문을 계승한 조광조는 중앙의 정치 현실에서 소학을 정책 이념으로 구현

          함으로써 스승의 사상을 뒷받침하고자 했다. 조광조를 위시한 중종 시대를 대표하는 

          사림파 학자들은 연산군 이래 퇴폐해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소학으로 존중과 학문  

          의리를 구명하는데 몰두했다.(P57)

- 조광조는 성리학의 이념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소학과 함께 향약(鄕約)’ 보급에도 

  전력을 다했다.

  ---> 기묘사화로 향약이 흐지부지되며 1574(선조 7)을 고비로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던 

        흐름이 중단되고 각 향촌마다 특수성을 반영한 개별 향약들이 다수 등장한다.

- 중종 반정의 주요 공신(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이 모두 사망하자 중종은 왕의 입지를 찾기 

  시작했중종은 자신의 입장을 적극 추진할 인재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조광조를 적극 

  신임하게 된다.

   ---> 중종과 조광조의 동거와 몰락의 과정은 조선 건국 초기 신권 강화론을 주장한 정도전이

          왕권 강화론의 핵심 인물인 태종에 의해 제거되었던 정치적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 중종 대의 정치적 과제들 중에서 중요했던 일 중 하나는 폐위된 왕비 신씨에 대한 명예

  회복이었다.

  1) 소릉 복위운동

    :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안치된 소릉에 대한 복위 운동으로 소릉 복위는 세조 대의 

      정치적 유산을 청산하고 사림파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했던 조광조에게 날개들 달아준 사건

  2) 폐비 신씨 복위론

    : 중종을 왕으로 추대 직후 단경왕후인 왕비(연산군 처남인 신수근의 딸)를 폐위 시킨 것에 

     대한 복위 문제는 조광조가 주도가 되어 추진하였다.

- ‘소격서는 원래 도교의 제천 행사를 주관하던 관청으로 나라에 천재지변이 있을 때 일월성신

  (日月星辰)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는데, 조광조는 성리학의 이념에 입각한 도덕정치의

  실천을 위해 소격서의 혁파를 추진.

   ---> 조광조와 중종 개인 사이의 논쟁을 넘어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보여 준 사건으로 조광조가

         실각한 이후 소격서는 다시 설치된다.

- 조광조는 개혁정치를 추진하면서 자신과 손발이 맞는 세력을 원했는데 이런 인력을 과거를

  통해 끌어 모으는 데 한계가 있어 인재 등용의 한 방법으로 천거(薦擧)’제도를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해 강력 반발한 이가 이조판서 남곤이었다.

  천거제도는 추후 현량과로 변모하여 인력 추천 방식이 더 강화되지만 이를 통해 조광조가

  정치적으로 세력화하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결집시키는 계기와 함께 조광조의 몰락을 

  재촉하는 원인이 된다.

   ---> 소격서 혁파, 향약 실시에 이어 현량과까지 추진하면서 개혁에 탄력을 받은 조광조는 

         중종이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기득권 세력에 치명타를 가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국공신의 전면적인 개정 요구였다.


역대 왕별 공신 숫자

   · 태조 개국공신 52· 태종 1차 왕자의 난 정사공신 29, 즉위 직후 좌명공신 46

   · 계유정난 직 후 정난공신 43· 세조 등극 후 좌익공신 46

   · 이시애의 난 직 후 적개공신 45· 예종 즉위 후 익대공신 39

   · 성종 즉위 후 좌리공신 75· 중종 정국공신 120여명

    ---> 정국공신들 중 상당수가 문제가 있는 인물임을 공표하는 것은 반정으로 즉위한 중종으로

          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으로 왕으로서의 정통성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는 상황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 중종의 결단으로 바로잡을 공신 명단이 발표되는 데 약 76명의 공신 명단에서 제외됨

    ---> 조광조 세력은 명단 발표 4일 후 중종이 대대적인 역습에 직면한다.

- 중종은 조광조를 붕당 형성 죄목으로 전격 구금시키지만 영의정 정굉필이 조광조에게 붕당죄를

  적용하면 중종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붕당 죄 적용이 중종의 뜻인지 홍경주나 남곤과 같은

  인물의 뜻인지를 분명히 해 줄 것을 요구.

   ---> 정굉필 및 안당과 성균관 유생들의 논리에 중종은 일단 후퇴, 조광조 일파의 처형을 

          미룬다.

- 홍경주와 남곤 그리고 홍경주의 딸인 희빈 홍씨가 작당하여 만든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으로

  조광조를 더욱 사지로 내 몬 결과 거세되고 만다.

  결국, 사관의 기록을 보면 조광조는 중종에 대한 믿음을 계속 보였지만, 조광조 세력의 성장에

  부담을 느낀 중종의 갑작스러운 변심에 의해 기묘사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 남곤, 홍경주, 심정은 이들이 주도한 기묘사화로 인해 조선 최고의 간신으로 평가되고 있다.

- 중종은 조광조가 시의를 헤아리지 않고 날뛰었기에 죄를 주었다고 하면서 조광조 일파를 

  처리한 직후 공신 개정에 관한 일을 재 논의할 것을 지시하고 남곤과 심정을 조정의 요직에 

  전진 배치함은 물론 현량과 폐지 문제를 거론하면서 조광조가 추진했던 각종 개혁 흔적 

  지우기에 집중.

- 인종은 세자 시절 사림파를 중용했는데 그중에서도 인종의 스승으로 활약을 한 대표적인 

  인물은 김인후였는데, 인종 즉위 직후 조광조와 기묘사림에 대한 신원 상소가 성균관 유생,

  사헌부, 홍문관 등 곳곳에서 올라왔다.

  조광조의 신원의 당위성을 알면서도 선왕인 중종의 처분을 쉽게 바꿀 수 없었기에 인종은 

  고민했다.

   ---> 1567년 선조 즉위 후 사림정치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때에 이르러 가능했으며 조광조 

         추존의 대미를 장식하는 사업은 문묘 종사로 1610(광해군 2) 광해군이 오현의 문묘 

         종사를 허락한다.

   --->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이자 사림파의 영수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조식, 이황,

         이이는 공통적으로 조광조에 대해 깊은 존승을 표시하고, 그의 학문을 계승하는 것을 

         소임으로 삼았다.

- 기묘사화의 비극은 왕권에 대한 견제 장치로서 성리학의 이념을 무기로 하여 등장한 신권의 

  도전에서 신권, 즉 조광조가 패배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기묘사화는 우리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인물이었던 조광조의 정치 노선이 중종과 보수 세력의

  반격을 받아 좌초한 사건으로 조광조의 사림파 학통을 계승한 인물인 이황은 자신의 언행록

  에서 냉정하게 조광조를 평가하며, 조광조가 일의 형세와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무리하게 

  개혁 정책을 추진한 점과 걷잡을 수 없는 개혁의 분위기 속에서 정치적 타협을 이루지 못한 

  점을 실패원인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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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할 수 있다 -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술
비탈리 카스넬슨 지음, 함희영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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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199쪽까지 1, 319쪽까지 5, 447쪽까지 2


살면서 여러 장르의 작품을 많이 접해 보았지만 본 작품처럼 작품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우러지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았을 때 저자가 강조하고픈 내용을 작품 전반에 걸쳐 산발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마치 한 권에 몇 개의 강조 분야가 얽히고설켜 한마디로 자장면을 

주문했는데 탕수육과 짬뽕도 함께 나온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내가 평가한 작품 추천권유도를 보더라도 199쪽까지는 저자 자신의 신변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중간 부분(201~319)은 해당 작품의 의미를 살려주는 스토아 철학에 대하여,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뭔가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아무리 감을 잡으려 해도 내 머리로는 어디에 방점을 두고 읽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던 시간이었다.

 

이런 작품을 만들어 놓고 저자는 443쪽에

작품을 통해 생각할 기회를 만들었거나 삶의 용기가 필요한 부분에서 긍정적인 힘을 얻었다면 

 그리고 당신이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에 넷 포지티브가 되었다면 나는 성공한 것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어떤 근자감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도저히 감을 못 잡겠다.

굳이 저자의 주장에 동조를 한다면 스토아 철학 소개를 통해 포지티브라는 단어의 의미를 

확고히 해 준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내용의 작품은 아니었다는 게 나의 생각으로 

언젠가 내가 읽은 후 혹평했던 작품인 나는 메트로폴리탄...’류와 같은 수준의 작품이었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하여간 나의 견해로는 작품 제목과 내용이 별개였던 도저히 저자의 집필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작품이었는데 굳이 본 작품을 통해 얻은 게 있냐고 묻는다면 나도 작품 내용과는 상관

없는 아래와 같은 3가지 사항으로 해당 작품에 대한 소회를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는 스토아 철학이야기를 하면서 언급된 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네카, 에픽테토스)

외쳤던 금언들을 이야기할 때 눈에 들어왔던 특정 문구가 나를 작품 내용과는 상관없는 우리의 정치 현실 속으로 나를 몰고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나를 유인했던 문구는

누군가를 파괴하고 싶다면 그에게 절대적 권력과 무한한 부를 주면 된다. 역사에는 부와 

 권력으로 망가진 통치자가 가득하다‘(P211)

였다. 이 문구가 왜 나를 긴 사유의 터널 속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상과도 너무나 연관성이 깊어 

이 문구가 내게 단순한 문구 이상의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절대 권력을 틀어진 다수의 집단에서 터져 나오는 상대를 향해 행해지는 상생의 정신이 사라진 질 낮은 발언이 언론까지 가세해 가며 난무하고 있지만 이에 완급이나 강도를 조절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저명인사나 단체가 나서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까워 해당문구가 강하게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작품은 이런 현상에 대해 조심스런 경계를 하고 있다.

소피스트를 조심하라. 훌륭한 연설가는 감정으로 논리를 왜곡할 수 있고 의사 결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P277)

나는 정의를 추구하고 올바름을 추구하는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찬사와 지지를 보내는 

바이나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던 우리의 사법체계에서 범법자로 문제가 있었던 인물이 세상이 

변했다고 만인을 위한 진정한 위정자인양, 우리 국민과 국가를 미래로 이끌기 위해 고뇌하는 

리더인 양 포장되는 모습에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데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그런 인간들을 임명하는 리더 자신에게도 결격 사유 내지는 찜찜한 부분이 있어 임명을 강행하고 있는데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점을 잡고 특정 집단의 독주에 대해 적절한 견제와 

제동을 걸어 주면서 전체적인 균형감을 갖추어야 할 우리의 담치기 달인께서는 자신의 본분이 뭔지도 모르고 새로 출범한 권력에 뭐가 아쉬웠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 앞에서 연일 딸랑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하고 있지만 우리의 기레기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무언의 동조를 하고 있어 더욱 짜증이 난다.

하도 답답해서 Chat GPT에 우리나라 넘버 2'국회의장의 의무와 책무를 물어보니 중립성 

유지의무를 이야기하면서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의 월담 선생은 그 

의무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무능한 월담 선생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모든 것을 가졌고, 가질 수 있다고 느끼는 오늘의 다수들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참 뜻을 

되새기면서 훗날 질 낮은 위정자로 폄하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를 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상생의 길이고 우리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소수로 변한 상대 집단은 어서 빨리 해산 후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기를 강하게 권하고 싶을 따름이다.

 

둘째P348쪽을 보면

지적토론은 유대인 법률 체계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유대인 법에 따르면 법원에서는 사형을 

결정하는 23명의 판사가 만장일치로 내린 사형 평결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맞다, 평결이 인정

되려면 적어도 반대 의견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 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판사들에게 반대 의견을

접하게 할 목소리가 한 명이라도 있었는지 확인한다. 다시 말해서 법원은 판결이 집단적 신념이 아니라 논쟁을 통해 결정되도록 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으며 우리의 사법 체계는 진정으로 많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으로 느껴졌던 부분이 아닐 수 없으며 전직 국정원장이 사법부를 향해 날렸던 

돌직구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좌파 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 시켰을까’/기파랑/이병호)

 

셋째아파르트헤이트와 만델라의 날(7/18)’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를 되새겨 우리 모두가 화합하고 동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위정자들이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여 안타까울 따름으로 이런 우려 사항을 

이야기하고 싶다.


위의 3단어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퇴행적인 반역사적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 그리고 응징도 좋지만 우리의 위정자들이 

하루 빨리 재발 방지책을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새겨진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겠다는 각오보다는 

용서는 모르겠고 이번 기회에 한 하늘 아래에 같이 숨을 쉴 수 없는 집단이라 생각하고 아예 

작살을 내버리고 말겠다

는 식으로 오늘의 어려움을 이용하려는 듯한 집단의 질 낮은 행동 ,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고

역사적 방지책 수립보다는 이를 빌미로 우리의 고매한 위정자들은 관련 예산 타령, 숙적 정당해산 타령, 남 탓, 전 정부 탓에 올 인 하면서 또 상대 진영의 자중지란과 와해를 목도하며 승리의 맛을 알게 된 이상 절대 상생의 차원으로 관련 방지책 수립에 속도를 내지 않을 것이 예측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악의 무리를 발본색원하고 다시는 이 땅에서 그런 세력들이 다시는 동일한 꿈도 꾸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면서 강력한 방안을 수립한다는 핑계 아래 일정을 대책 수립 일정을 최대한 늘이고 지연시키면서 자신들이 누릴 효과를 극대화시킬 가능성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할 것이다.

이런 우리의 속사정을 꿰뚫고 있는 주변국들은 특히 중국의 경우 지금의 현 정부가 과거 야인 

시절에 내뱉은 쎄세발언을 활용해 현 정권을 향해 지속적인 신 사대주의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이며 정치적, 국지적 문제로 우리를 지속 힘들게 할 것이 뻔하고 우리의 혈맹인 미국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당당해 지라고 뒤에서 무언의 응원을 우리에게 보내며 

미국과의 균일을 획책할 것이 뻔하다.

이런 시기에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방위적으로 홀로 서기도 좋고 미국이라는 나라와 동등하게 서려고 하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일이기는 하나 지난 89년 당시 세계 경제 NO2인 

일본이 미국을 염두에 두고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내 놓고 이를 행동으로 연계하려다 30년의 잃어버린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줄기차게 미해결 종군 위안부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그리고 핵 오염수 문제를 

갖고 우리가 정치권 문제로 단합하지 않고 자중지란에 빠질 것을 예상하여 지속적으로 괴롭힐 

것이지만 우리의 위정자들은 절대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굳건히 상대 진영 죽이기에만 혈안이 될 것이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응답 없는 북쪽의 인간들을 향해 목소리 높여 가며 같이 놀자고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할 것이 명확하지만 대답 없는 우리의 외침으로만 될 것이 뻔하다.

나는 앞으로 우리의 정치 외교적 지형도가 이 범위 내에서 그려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찌되었던 작품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이야기하는 나도 답답하다.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 우리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영원히 지키리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아니 다만 오랫동안이라는 기간만큼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세네카, P 41)

- 글쓰기는 내면의 대화를 외면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P 59)

- 살날이 천 년 만 년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라. 죽음은 항상 문 앛에 와 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힘이 있는 동안 선을 행하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P 63)

-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일하라.

-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게 되면 그 일은 더 이상 단순한 일이 아니라 정교한 기술이 되고,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자부심, 사랑, 정성을 다하게 된다.(P 67)

- 자존심과 업적이 배움과 성장을 억누르고 멈추게 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새로운 지식에

  열린 마음으로 끊임없이 배우려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P 70)

- 아이들은 우리가 보지 못할 미래에 보내는 살아있는 메시지다.(F.케네디, P 81)

-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당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가졌는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다이것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데일 카네기, P171)

- 말은 진실한 말인지?, 필요한 말인지?, 친절한 말인지를 생각한 후 실행하라.(P179)

- '비난은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들고 자신을 정당화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에 쓸데없다. 비난은

  상대방의 고귀한 자존심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위험하다.(181)

- ()는 소유물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줄이는 것.(에픽테토스, P197)

- 스토아 철학은 내세에 대한 약속이나 하늘에 있는 친구와의 관계, 비약적인 믿음을 요구하지

  않고현세의 삶을 위한 운영 시스템, 즉 삶을 살아가는 매우 논리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했다.(P207)  즉, 스토아 철학은 불필요한 감정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감정을 최대화하는

  것을 추구한다.(P208)

  ---> 스토아주의자는 두려움을 신중함으로, 고통을 변화의 기회로, 실수를 배움의 시작으로,

        욕망을 책임으로 바꾸는 사람이다.(니콜라스 탈레브, P209) 

 

- 작품 속에서 스토아 철학자들이 언급한 내용들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논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라.

· 약속을 깨거나 자존감을 잃게 만드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유리한 일로 여기지 말라.

· 사람의 가치는 그가 품은 야망의 가치를 뛰어넘지 못한다.

·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질 꿈에 빠져있지 말라.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축복을 생각하라.

  그리고 그 축복이 내 것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생각하며 감사하라

· 모욕을 당할 때 최고의 복수는 당신의 적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 행동을 막는 걸림돌이 행동을 진전시킨다. 길에 놓인 장애물이 길을 만든다.

· 인기를 갈망하는 사람의 행복은 타인에게 달려있으며,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의 행복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기분에 좌우된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의 행복은 자신의 자유로운 행동에서

  비롯된다.(P317)

2) 세네카

· 우연히 지혜로워지는 사람은 없다.

· 부는 현명한 사람에게는 노예지만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주인이 된다.

· 질그릇을 은그릇처럼 사용하는 사람은 위대하다. 하지만 은을 진흙처럼 사람도 그만큼  

  위대하다.

· 스스로를 비웃는 사람은 웃음거리가 될 수 없다.

· 칼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살인자의 손에 쥐어진 도구일 뿐이다.

· 일이 어려워 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엄두를 내지 않기 때문에 일이 어려운

  것이다.

·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사람이다.

  ---> 당신이 가진 것이 부족해 보인다면 세상을 다 가진다 해도 여전히 비참할 것이다.

· 진정한 행복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 없이 현재를 누리는 것이다.

  인류의 가장 큰 축복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 손이 닿는 곳에 있다.

  현명한 사람은 없는 것을 바라지 않고 무엇이든 있는 것에 만족한다.(P299)

· 노동이 신체를 단련하듯 어려움은 정신을 단련한다.

3) 에픽테토스

· 어떤 일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만 어떤 일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통제 이분법)

  --->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가치를 부여할수록 우리는 점점 통제력을 잃게 된다.

  ---> 타인의 찬사에 기댄 행복은 중독성 있는 마약과 같아서 끊임없이 갈망하고 더 많은 용량을

        원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행복을 건다.(P219)

·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사건 그 자체는 재앙이 될 수 없다.

· 우리의 마음이 상하는 것은 어떤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 때문이다.

· 상황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기꺼이 받아들이라.

  이것이 평안에 이르는 길이다.(P254)

· 누군가가 당신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그 말에 맞서 자신을 변호하지 말라. 오히려 나에 대해

  나쁜 말을 한 사람을 향해 나의 다른 나쁜 점을 잘 모르는 모양일세, 알았더라면 그 애기도 

  했을텐데’ 라고 말하라.

· 행동은 동기부여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동기부여의 원인이기도 하다.

· 부유함은 소유물이 많은 데 있지 않고 욕구가 적은 데에 있다.

· 없는 것에 슬퍼하지 않고 있는 것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지만 많은 사람이 부와 지위 따위의 수단을 행복한 삶으로

  착각한다좋은 삶을 위한 수단에 엉뚱하게 초점 맞추면 사람은 행복한 삶에서 더욱 멀어진다.

  진정 가치 있는 것은 행복한 삶을 구성하는 덕행이지 행복을 가져다줄 것처럼 보이는 외형적

  수단이 아니다.(P306)

 

- 우리의 행복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과 연결할수록, 외부 세계의 부정적인 변화에 점점 

  휘둘리게 된다 그러므로 목표를 설정할 때 주의해야 한다. 목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우리

  내부적 요소이어야 하고 과정 중심적이어야 한다.(P220)

-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 우리가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힘이 존재한다.

  우리의 성장과 자유는 우리의 반응에 달려 있다.(P223)

   ---> 눈에 보이는 것에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반응하기 전에 잠시

         멈추면 자제력을 유지하기 쉬워진다.

- 부정적 시각화란 사전에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상상하고 숙고해 보는 것으로서 미래의

  불행에 대한 예방주사와도 같고 현재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배가시키는 일이기도 하다.(P226)

   ---> 긍정적 행동의 원동력이 되며, 실시간으로 스트레스에 대처하고 현실의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P227)

- 매일 아침 당신이 오늘 마지막으로 하게 될 일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언제나 미래에 존재하므로 우리가 가진 것은 현재뿐이다.(P235)

- ‘는 좌절감을 전달하는 감정적 지름길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 당신의

  목표라면 화는 타인에게 당신의 왕국을 마음대로 통치하도록 권한을 내주는 것이기에 그

  목표를 놓치기 가장 쉬운 방법이다.(P244)

  ---> 분노는 타인의 동기에 대해 부당하다는 확신에서 시작한다.

  ---> 분노에 대한 최선의 대답은 침묵이다.

- '모욕은 우리를 기분 상하게 하는 방식으로 표현된 타인의 생각이다.(P259)

  ---> 모욕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을 모욕하는 것은 당신을 조롱 

        하거나 때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것들에 모욕당했다고 여기는 당신의 생각이다. 누군가

        당신을 화나게 할 때마다 화는 당신의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보이는 것에 휘둘리지 않도록 노력하라. 잠시 멈추어 시간을 가지면 스스로를 통제하기

        쉬워진다.(P260)

- 당신은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 5명의 평균임을 잊지마라.(P266)

- 스토아주의자는 베타 버전이다. 전성기에 도달한 듯 행동하지 말라. 항상 베타 버전의 자세를

  유지하라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사는 법을 배우라였다.

-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노력은 아무에게도 없다. 하지만 가지지 않은 것을 탐내지 않고

  가진 것을 즐겁게 사용할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P270)

- 탐심보다 탐심의 해로운 사촌인 시기심이 더욱 흥미롭다 시름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탐내다가 그 이유로 그 사람에게 적대감까지 품게 만든다.(P270)

- 의식적인 생각이 배의 선장이고 잠재의식이 배의 기관실이라 생각하라.(P276)

- 행복을 만약과 연결해서는 안 된다. 즐거움은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오며 실제로 목표를

  성취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만약 쾌락이 우리의 핵심 가치라면 궁극적으로 우리는 불행에

  다다를 것이다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새로운 수준의 쾌락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쾌락이 증가할 때마다 오히려 행복감은 줄어들 것이다.(P296)

  ---> ‘만약에 빠져 끊임없이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노년을 위해 즐거움을 미뤄놓는 것과 같다.

- 문제를 피해 다닌다면 당신은 공허하고 슬픈 존재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생의 행복은 좋은

  문제를 만나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는다.(P304)

  ---> 행복은 추구할 대상이 아니라 따라오는 결과다. 사람은 행복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그러면 수많은 장애물이 문제가 아니라

        행복의 원천으로 보일 것이다.(P305)

- 자신의 정체성이 세운 가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결국 정체성과 일치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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