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비아 만나다 시리즈
마크 래리모어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7(전문가), 비전문가(3)


주님에 다가선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심자 수준인 나의 신앙심을 제고하기 위해

본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다.

성서 욥기는 대체적으로 위로를 주는 책, 자기 수양을 돕는 책, 혼란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가슴에 담고 또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욥에 대한, 욥기가 품고 있는

종교적 의미를 알아보자는 아주 단순 무식한 수준에서 작품에 도전했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혼쭐이 난 작품이었다.

종교학 및 종교철학 공부를 3년 이상(?) 하였거나 현직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 아니면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무지몽매인 종교적 문외한은 가급적 도전하지 않기를 권유합니다.

 

생뚱맞게 욥기는 누가 지었는가, 욥기는 여러 작품이 짜깁기 된 것이다. 욥은 유대인인가?

등등 성경을 단편적으로 접한 나에게 작품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런 질문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시련의 연속으로 몰고가는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와 같은 종교적 깊이가 낮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신 저명하신 분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단문 위주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해당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그 내용도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것은 확신이 서지를 않지만 .......

 

참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욥의 유언 필사본은 10세기 사본이며 오늘날까지도 욥의 전설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설명이 담긴 문헌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깊이가 낮은 분들은 가급적 본 작품을 외면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하더라도 말입니다.

 

[서 론]

- ‘욥기는 분명 성서에 속한 어떤 책보다도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데 악의 문제에 관한

  성서의 답변으로 이해되곤 한다.

-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에서 무고한 이들은 언제나 고통 받는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들은 도울 방편을 마련해 두신다고 말한다.(P 9)

- 그리스도교 장례 의식을 치를 때 성직자들은 의 연설을 인용하곤 했다

  이 인내의 한계를 규정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P 21)

-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욥기의 면모는 그 자체로 욥기를 둘러싼 신비의 일부가

  되었다.(P 24)

- ‘욥기가 제기하는 물음들, 섭리와 악,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 하느님의 본성,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 등은 모두 손쉽게 종결될 수 없는, 종결되기를 거부하는

  물음들이다.(P 24)

- ‘욥기의 중심 대목은 널리 통용되는 지혜를 늘어놓는 의 친구들(엘리바즈, 빌닷소바르)을 

  하느님이 질책하는 부분이다.(P 25)

- ‘욥기의 전기는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욥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즉 자신이 이라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그와 관련된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한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P 32)



[고대 해석자들이 바라본 욥기]

- ‘욥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해석인 인내하는 욥이다.(P 36)

- 그리스도교들은 을 그리스도의 예형(type)으로 보았다. 히에로니무스는 욥기주석에서

  욥이라는 이름은 슬픔과 고통을 뜻한다고 주장. 그는 그리스도의 원형이었다’(P 39)

- 번영은 재앙을 수반한다. 절망이 희망을 수반하듯(P 48)

- ‘의 유언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P 50)

-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네 우리가 주님에게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보여 주실 때까지 인내합시다.

- ‘제임스 쿠걸이라는 유대인 성서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고대 해석자들의 작품

  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빌론 유수 이후 지신들의 경전에 새로운 해석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

   1) 성서는 근본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문헌이다. , 성서에 A라고 적혀 있을 때 흔히 실제 

     의미는 B.

   2) 성서는 당대 독자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성서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책이 아니다. 성서는 유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다.

   3) 성서는 모순이 없으며 실수도 없다.

   4) 성서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주셨으며 하느님은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혹은 예언자들을 

     거쳐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P 60)

- 절망에 사로잡힌 채 울부짖는 의 말, 그의 분노 어린 말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성서 

  전체의 것,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의 것이다.(P 62)

-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에게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 열쇠는 신약 성서였다.(P 75)

- 모세의 율법을 읽는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으며 이 너울은,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주님(예수)께로 돌아갈 때에 비로소 벗겨진다.(P 75)

- 중세 그리스도교의 토대가 된 기에 관한 저작은 하나다. 바로 기원후 578년에서 595

  사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저술한 욥기의 교훈들이다.(P 77)

- ‘은 경건한 인물이지만 더 많은 의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P 78)

- 자신이 덕이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영혼을 해지는 것은 없다.

-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평온함이다.(P 82)

- '고통'은 죄라는 ''을 퇴치할 때 필요한 '화학요법'이다. 문제는 하느님이 사악한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선한 사람들을 치료

  하지 않는 것이다.(P 83)

- 어떤 행동이 그 당시에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가치 있는 예언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듯 

  어떤 상황이 역사적 차원에서는 미덕이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악인 경우가 

  자주 있다.(P 85)


 

[논쟁 속 욥기]

- 에피크로스는 물었다.

  “신은 악을 없애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악하다. 신은 악을 없앨 수 있으며

  악을 없애려 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 92)

- ‘욥기는 하느님의 존재 여부를 묻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성을 묻는 책이다.(P 93)

- ‘욥기는 신성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곡,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섭리에 관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문헌이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과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욥기는 섭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참여하는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이다.(P 95)

- ‘욥기는 인간이 가장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철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P 96)

- ‘과 친구들의 발언은 그것이 긍정하는 내용보다는 부정하는 내용 때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P105)

- 악은 엄밀한 의미의 실체가 아니며 본질상 선한 모든 피조물에게 기생충처럼 붙은 결핍

  혹은 왜곡이다.(P110)

- 중요한 것은 섭리(우리는 이를 알 수 없다)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다(P115)

-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칼뱅에게 욥기가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피조물보다 너무나 높이 있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올바름의 규범조차 궁극적이지 않음을 욥기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컬뱅이 보기에 욥기를 읽는 실마리, ‘욥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논쟁에서 은 

  선한 편을 고수하는 반면, 그의 적대자들은 악한 편을 고수한다는 점이다”(P121)

  "‘과 친구들이 재기하는 물음은 동일하다. 즉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

  하는가? 그에 따르면 은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때 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의 친구들은 다른 누군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의 친구들처럼 응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P122)

-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는 겸손과 침묵을 지키며 다른 이가 고통 받을 

  때는 그를 배려하고 위로한다.(P125)

- 섭리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는 하지만)하느님에게서는 멀고 인간 동료들에게는 가까운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P130)

 


[공연되는 욥기]

- 수 세기에 걸쳐 성인은 나병 환자,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P135)

- 그리스도교인들은 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P139)

- ‘이야기는 참되고 확실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야기인 것 못지않게 거짓 위안과

  감언이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P150)

- 구원에 대한 믿음은 섭리에 대한 확신과 인내만큼이나 성취하기 어렵고 유지하기 힘들다.

- 하느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인내를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P160)

- 짧은 생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계속 애통해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현명한 이들은 이 세계라는 깊은 구렁텅이를 순례하는 동안 인내심을 기른다.(P163) 

- 철학자들은 이성 너머 저편에서 오는 도움이나 통찰을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적어도 고결한 

  습관을 갖기 위해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다른 의심으로 대치하곤 했다.(P168)

 


[신정론과 욥기]

* 신정론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하나님의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를

  학문적으로 모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는데, 왜 세상에 악이 존재 하는가? 이 세상에 모순이

  이렇게도 많은가?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볼 때, 혹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은

  아니신가? 하는 회의(懷疑)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신정론이다.

   그리스어로 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올바름을 뜻하는 디케(dike)'를 합쳐

  신정론(theodicy)'라는 말이 나왔다.(p186)

 

-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느님이 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활동하는지

  설령 활동한다 해도 신이 정녕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물었다.(P182)

- 하느님은 왜 악을 용납하는가? 사람들이 악을 당연하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여기지 않게되자 

  악은 독특한 철학적 문제가 되었다.(P185)

- 칸트는 욥기를 성서, 교회 전통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도덕적 자율성을 지니고 신과 

  대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았다.(P192)

- 자신의 동기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 이해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진다.(P197)

- 참으로 고귀한 일은 고통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이다.(P197)

- 종교는 도덕 법칙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칸트),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코헨) (P198)

- 고통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처벌이다.

-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은 성서에 나오는 주장이나 성서가 그리는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너머 핵심에 있는 시적 진리를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욥기는 그 중심이 

  되었다.(P202)

- ‘욥기에 담긴 신의 선물은 욥기가 표현하고 또 빚어내는 인간의 감정이다.(P205)

- 자신의 경건함으로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면서도, 경건함 때문에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인정했다. 바로 그 사이에서 사탄이 나왔다.(P222)

- 모든 고통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정의

  결과다.(P223)

 

 

[추방당한 욥기]

- 하느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이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욥기 28:28)

  이 구절을 욥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P234)

- 역사 비평은 근대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좋은 도구를 활용해 성서를 이해하려는 선의를 담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P237)

- ‘이 보여 주는 인내는 그의 비판과 저항을 포함할 때 더욱 심오해진다.(P250)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침묵만이 궁극적으로 기억과 희망이라는 역설적 임무에 온전히

  부합하는 실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침묵이 전도서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보여 주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P259)

- 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의 이름 (EL)'은 물음을 뜻하는 말인 셰엘라(she'elah)'안에 머물고 있다.

  ‘은 자신이 차갑고 냉소적인 세계(참된 친구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하느님은 외로운 인간과 자신을 연결하고자 한다.(P260)

- 하느님과 투쟁을 할 때조차 은 하느님이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하느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할 뿐이다.(P265)

-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임을 알았다. 동시에 그분이 자신들을 

  박해함을 받아들일 때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P266)

- ‘은 커다란 상실 가운데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현대인의 인도자다.

   기도서 이후로 은 개인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P273)

- ‘욥기는 신이 부재한 것처럼 보일 때, 세계가 윤리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때, 특히 정의가 

  실추되고 의미가 부정되어 상실과 고통을 겪을 때 오히려 신의 존재를 가장 예리하게 감지

  할 수 있다는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다.(P273)

- ‘욥기는 예언적 행동과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관상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P281)

- ‘욥기는 삶의 한가운데서 상실을 겪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천민들, 희생양들, 사대의 

  이단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다.(P283)

 

 

주워들은 이야기

 

- ‘성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책들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비블리아에서

  나왔다.

- ‘미드라시란 히브리 용어로 성경 주석의 설교 방식을 뜻한다

- 성무도일 : 매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성직자, 수동자들이 드리는 기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6


영국의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과 한국의 고승 네 분(성파, 도법, 금강, 정관)과의 평범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원초적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이야기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개신교 신자인 이같은 작품을 접한 이유는 편협 된 종교관에 매몰되어 있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노력(?) 때문으로 속된 말로 좀 있어 보이려고 접하게 되었다.

 

난 개신교도이지만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 논리인 내 종교만이 최고다 라는 생각은 갖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나의 종교와 종교적 신념이 중요하면 타인의 종교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기에 기꺼이 이런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거의 역적 수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아닌 것 아니다 -

가끔 언론을 통해 내 종교가 좋은 것이니 타 종교를 폄훼하는 일부 몰상식한 개신교도들의

사고치는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속상하며 진정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의 절대자께서 진정 그런

그들의 저급하고도 몰상식한 모습을 좋아 하실런지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절대 아닐 것이다.

 

최근 정권이 바뀌면 새로이 출범하는 정권이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경내를 관람하던 어떤 옹졸,

치졸빤스같은 인간이 불상에 절하는 다른 사람을 보고 난리를 친 사건이 일어난 모양인데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개신교도인 나만이라도 내 종교 외의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또 서로를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상대 종교에 대해 존경은 아니더라도 폄훼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런 자세가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순복음 조용기 목사님을 부처님 오신날

조계종인지, 동국대인지를 방문해 종교와 관련된 특강을 과거에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타 종교의 거두께서 상대 종교시설에 가서 특강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상대편 종교인을 초빙한 불교인들에 대해서도 높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그들의 성숙된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작품 속에서 눈에 들어온 대목은

-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이런 기분이 들 때는 바로, 나 자신에게 

   ‘어떤 틀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 자기의 틀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는 것은 상대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내가 그 을 깨야 한다.

라는 대목으로 나이가 들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위의 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종교를 떠나서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 타협을 모르는 

정치인들, 갈라치기를 주업으로 삼고 사는 인간들은 위 문구를 잘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 대목은

- 자신이 준 것만 따지는 사람은 불행하고,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대목은 성경의 말씀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었다고 생각하며 매번 위 문구처럼 살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를 않다. 그런 나는 오늘도 나의 절대자에게 위 문구처럼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품 제목 오래된 질문은 답이 없어 물어본지 한 참 지난 오래된 질문이 아니라 세상이,

시간이 흐르며 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즉, 구성원들이 쉼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던져진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도 역시 변할 수밖에 없기에 외견상 질문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질문이 아닌 오늘을 사는 모두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마음을 잘 추슬러 보라는 죽비적 가르침을 던져주려는 작품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 ‘생명이란 DNA나 두뇌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교류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 삶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 아득한 심연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재대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쓸데없는 고통의 연쇄에 매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깨달음은 일상과 동떨어지고 신비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몰랐던 걸 알았다’, ‘잃었던 것을   

  찾았다‘, ’가려졌던 것이 벗겨졌다등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나의 참모습, 이 세상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확신하는 경험적 지혜가 바로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에 맞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 지금 현실적인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당면한 문제를 줄일 수 있는지 묻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고통은 그 자체로 우리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그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괴로움의 정도가 달라진다. 쓸데없이 과도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런 고통이 대부분 우리가

  관념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고통은 외부에서 주어진 상황이나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유래

  한다. 붓다는 이를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찾았다.

- 남들이 우리에게 붙인 이름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것이 바로 지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중도라 부른다.

-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라.

- ‘염화 미소란 말로 통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다.

- 시비, 분별, 번뇌, 망상이 있기 이전의 마음, 비교하기 이전의 마음, 나라고 하는 개념이 있기 

  이전의 마음, 부처님은 항상 그런 마음으로 행동한다.

- 그대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대에 의지하여 내가 존재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그대는 무한히 높은 자요, 귀한 자요, 고마운 자입니다그대 앞에서 나는 무한히 낮은 자입니다.

  끊임없이 나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어야 하는 자입니다.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몸짓이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이란 주체적으로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삶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 자존심이 센 사람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남과 견주어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 ‘좌선(坐禪)’이란 번뇌와 망상이 없는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로 앉는 것을 말하는데

  ‘()’란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것을 진짜 앉아 있다고 말한다

  ‘()’이란 어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고요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 ‘화두는 반드시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거 계속 반복해서 되뇌면서

  평화로운 본연의 마음 상태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 감정에 휘둘리거나 쉽게 끌려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금강이라 한다.

- 참선은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

- 진정한 삶의 변화는 저 멀리 특별한 장소에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 노예로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주인으로 사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이다.

- 삶은 내가 마음먹고 행동하는 대로 살아지고 창조될 뿐이다.

- 남과 자꾸 비교할수록 내 행복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처한 지금의 환경과 함께하는 사람들

  그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교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 동양에서는 왼손을 ()’라 하고 오른손을 ()’이라 한다.

  ‘체용론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동양 철학의 아주 오래된 패러다임이다.

  ‘는 사물의 본체나 본질을 의미하고, ‘은 사물의 작용이나 현상을 의미한다.

- 사찰음식에는 마늘, , 달래, 부추, 아위 이렇게 5가지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는다.

-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것은 따로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이다.

 

* 출판사에 표하는 이의제기

- P 46쪽에는 도법스님이 17살에 출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P 24쪽에서 이미 도법스님은

  18살에 출가한 것으로 씌여져 있다.

  독자는 이런데서 출판사에 대한 신뢰, 편집인에 대한 신뢰를 눈여겨 보게 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은 행복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 우리 삶에 우여곡절이 필요하다는 과학적 증명
오이시 시게히로 지음, 신소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3


나는 최근 큰 외도를 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아마도 내 만족을 위해 그랬던

것 같다내가 행했던 외도란 평소 외국어(중국어)를 공부하고 싶어 많은 고심 끝에 방송통신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추진하려 했으나 그런 과정을 너무 만만히 생각하고 쉽게 도전하였다가 

당초 의도했던 방식으로 추진되지 않고 여러 장애물을 만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독서는 독서

대로 또 공부는 공부대로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추진되지 못한 채 헛바퀴만 돌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 방통대 학습은 언젠가 다시 시작할 것이다 -

때문에 마음이 심히 괴로웠고 몇 주 맘 고생만하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

하는 분야에 충실하기로 마음 먹고 선택한 작품이 본 작품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작품을 접한 뒤, 정리하면서 다소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일수도 있으나 작품에서 언급된 여러 좋은 문구를 읽고 또 읽으며 나만의 방식으로 재음미와 해석을 

통해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 몇몇 문구를 발췌, 정리해 보았다.


-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이란 

  관점을 바꿔주는 다양하고 독특하고 흥미로운 경험으로 가득한 삶우연곡절이 있는 삶. (P 24)

- 행복은 부단히 노력하며 자기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주관적인 감정이다. (P 29)

- 우리는 성공에 따라올 행복뿐만 아니라 실패에 따라올 불행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P 37)

- 행복은 거대한 성취의 결과물이 아니다. 날마다 단짝과 차를 마시는 것 같은 소소한 일상사가

  장기적인 행복으로 이어진다. 행복은 긍정적인 사건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달려 있다.

- 행복이란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대인관계의 성공이다.

- 가짜 웃음을 짓는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건 아니지만 외향적으로 행동하면 확실히 행복해지기

  쉽다.

- 항상 행복해야만 한다고 느낀다면 가끔은 슬퍼하거나 화를 내거나 두려워해도 괜찮다는 것을

  명심하자이런 감정들은 내면을 더욱 복잡하고 풍요롭게 한다. (P 49)

- 행복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은 멍청하고 이기적이며 건강해야 한다. 특히 멍청하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플로베르, P 50)

-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체로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고 외향적이며 

  신경성이 없다또한 싹싹하고 양심적이며 지존감도 높다고 한다. (스테거, P 57)

- 세상은 한 권의 걸작과도 같지만, 고향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게 된다

                                                                                                                   (P 63)

- 때로는 절망하거나 불쾌할지라도 평소와 다른 경험을 하고 도전하며 새로운 뭔가를 배우는 

  것이 정신적 풍요로움의 비결이다. (P 91)

- 풍요롭게 죽기보다는 풍요롭게 사는 게 더 낫다. (새무엘 존슨, P 92)

-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은 다양하나, 성격 연구에 따르면 의미 있게 사는 사람의 특성은 첫 번째로

  성실성그 다음으로 정서적 안정과 외향성과 우호성이다. (P111)

-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경험에 개방적이고 외향적인 사람

  어떤 사람이 행복할까?? 외향적이고 정서가 안정된 사람

  어떤 사람이 의미 있게 살까?? 성실하고 정서가 안정된 사람 (P 113)

- 행복이 손에 닿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시기에는 삶의 틀을 잡아줄 또 다른 가치들이 있다

  불행한 사건에 관해 이렇게 생각해 보자. 풍요로운경험이 행복한 경험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의도치 않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말이다. (P215)

- 우리가 불행을 견제하는 한, 정신적 풍요로움과 불행은 공존할 수 있다.

- 결혼한 부부의 만족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기 쉬운 이유 중 하나는 자기 확장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며 부부가 함께 새로운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이런 기회를 늘릴 수 있다. (P249)

-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은 우여곡절이 있는 삶, 멈춤과 우회와 전환점이 있는 삶이다.

  익숙하고 아늑한 삶이 아니라 극적이고 다사다난한 삶, 복잡성과 다양성이 있는 삶이다.

  저울질하는 삶이 아니라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된 즉흥적인 삶, 단순하고 직선적인 여정이 

  아니라 길고 구불구불한 여정이다. (P271)


작품을 다 읽고 작품을 음미하는 나만의 독서 후기를 정리하던 중 모 방송프로에 국내 유명 

인지심리학자인 어느 대학 교수께서 행복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그 분이 강조한 내용과 작품 내용이 유사해 여기에 내용을 옮겨보면

작은 행복을 자주 기록해라....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전쟁과 관련된 내용만 있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난중일기를 자세히 뜯어보면 전쟁의 와중에 있었던 소소한 행복에 관한 

 내용도 기재되어 있다.

  ..... 행복은 빈도다. 만 원짜리 행복에 집착하지 말고 천 원짜리 행복을 자주 마주하며 기록하고

 어려울 때 들여다보는 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또 작품을 읽으며 요즘 세간의 인기를 얻고 있다고 소문이 난 인생을 위한 최소한의 생각이라는 작품에서 행복에 대해 안톤 체홉의 글을 우연히 발견하여 여기에 같이 옮겨 보았는데,

[참된 행복은 조건을 초월한다. 우리는 환경이 완벽해야 행복할 거라 믿지만, 정작 행복한 순간에

 는 외부 조건이 중요치 않다.....(중략).....조건이 완벽해도 불행할 수 있고, 부족해도 행복할 수 

 있다. 겨울이 추운 것은 자연의 섭리지만, 그 추위가 가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마음이 헐벗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중략).....행복을 외부에 의존하면 우리는 영원히 불완전함에 머문다

 완벽한 상황은 존재하지 않으며, 만약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지속될 수 없다. 하지만 내면의 

 행복은 외적 흐름과 무관하게 유지될 수 있다. 결국 진정한 행복은 주어지는 기적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조건 안에서 의미를 선택하고 마음의 중심을 스스로 세우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또 같은 작품 속에 쇼펜아우어가 이런 글도 남기고 있었다.

[삶은 언제나 한쪽 끝에 머물지 않는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 우리는 안식을 갈망하고, 평온이 

 오래 지속되면 다시 자극에 대한 욕망이 고개를 든다. 이 두 감정은 번갈아가며 인간을 흔들고,

 그 진폭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인생은 고통과 지루함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운동에

 가깝다.....(중략).....행복은 이 두 극단 사이의 짧은 균형점일 뿐이다. 고통에서 막 벗어난 순간의

 안도, 권태 속에서 피어나는 소소한 설렘그 찰나가 우리가 행복이라 부르는 것이다.]


위의 글을 읽고 정리하며 나는 진부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본 작품을 정리해 본다.

사람들은 세 잎 클로버[행복]가 주는 천 원짜리 평범한 의미는 도외시하고 신기루 같은 만 원

 짜리 네 잎 클로버[행운]만을 찾으려 하고 있다. 중에 한 명이 바로 나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에세이&
안미옥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2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은 차원이 다른 '육아일기' 혹은 색다른 육아일기를 읽는 느낌이어서 

솔직히 실망이 크게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맘에 드는 문구 3개를 찾아내 본전은 뽑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1. 29쪽 上9

  좋아하는 것에 이름을 지어주는 일은 내 시간을 선물하겠다는 의미


2. 44쪽 上9

 헤어짐이 슬픔이 되는 것은 보고 싶은 마음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3. 65쪽 下7

  살아가는 일은 열망을 겹겹이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배워가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소한의 윤리 -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는 우리의 선한 본성에 대하여
이권우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5


작품은 사유의 깊이가 낮은 이들에게 너무도 피곤하고도 난해한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수준의 작품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작품 전개 방식이 작가의 취향이나 저자의 의도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뉘어지는 게 

일반적 특정인데 본 작품은 저자가 자신이 주장하고픈 이야기를 저자의 입장에서 

강하게 피력했다기보다는 국내 저명한(?) 인물들의 주장 나는 솔직히 잘 모르는 인물

들이 태반이다 혹은 그런 분들의 학설을 통해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강조한 것인지 그런 분들의 주장을 홍보하는 작품인지가 헷갈릴 정도였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 작금의 시대처럼 혼란스런 시기에 저자께서 극찬한 맹자의 중요성에 동의 하나

웬지 당초 내가 기대했던 순수한 특정 분야에 관한 내용이 아닌 너무도 고차원적 

이야기로 인해 작품을 읽는 나로 하여금 독서의 의미성을 잃게 하여 솔직히 약간은 

섭섭했다.

뿐만 아니라 저자의 후기에 언급된 특정인을 찬양하는 내용은 해당 인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이들에게는 흥미를 돋구어주는 역할을 하기 보다는 다소 저항감으로

다가왔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작품을 읽으며 과거 이런 주장을 한 적이 있다.

특정 세력이 집권하는 시기가 되면 그 시대를 대변하거나 상징하는 작품이 활개친다

라는 내용의 독서평을 어느 작품을 일고 기록한 적이 있는데, 바로 본 작품이 그런 

주장에 부합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본 작품은 현 집권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그들이 재야 시절 난리치며 벌여온 뻘쭘한 짓을 합리화하는 저질스런 놀이에 대해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최소한의 윤리를 알려 주려는 의도에서 작품을 

집필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저자가 맹자역성혁명론

뜬금 없이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확고히 갖게 된 근거는 25쪽에서 트리시마코스소크라테스가’ 

논쟁하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는데, 트리시마코스의 주장을 음미해 보면 작품의 기저에 깔린 의도가 저자가 현 시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용문 1.]

정의란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으로 각 정권에서 통치자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법을 제정하고 이를 정의라고 공표하게 마련이다. 정치 체제가 민주정이든 참주정

  이든 결국은 정권에 이익이 되는 것이 정의가 되고, 정권은 곧 힘 있는 자를 뜻하니 

  정의란 더 힘 있는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냐

고 주장하면서 이어서 이어지는 애덤 스미스[국부론]을 언급하면서


[인용문 2.]

저녁에 고기 안주에 와인 한 병 비우고 빵으로 입가심하는 것은 정육점, 양조장, 빵집

 주인의 자비 덕이 아니라 물건 열심히 팔아 돈 왕창 벌려는 각자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는 저자의 언급을 접하면서 나름 숨겨진 작품의 의도를 파악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에 더 확고한 확신을 준 대목은 55쪽에서 언급되고 있는 군자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을 접하면서다.

 

[인용문 3.]

연민의 마음은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에 우선 영향을 끼치지만 그 울타리를 넘어 세상

 으로 확산되어야 마땅하다. 자로가 공자에게 군자의 정체성에 관해 물으니, 경으로 

 자신을 닦는 [修己以敬]이라 답변했다. 다음 단계를 물으니 자신을 닦아 남을 편안

 하게 하는 것이라 했고,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를 물으니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 했다.‘

 

위에서 언급된 내용을 보강하기 위한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양식이 있고, 생각이

있고, 머리를 장식품 수준으로 달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저자가 주장한 각

인용문들이 무슨 의도로 이런 시기에 언급되었을까를 생각해 보기 바라는 바이다.


저자는 이런저런 비판을 우회하기 위해 작품 서문에 향후 작품이 가져올 파장을 

최소화하고 이를 사전에 완충시키려 연막을 치고 있다고 판단되는데,

서문에서 저자는 두려움을 언급하며 그 원인을 기후 위기, 세계적인 불평등, 한반도를

둘러 싼 위기 상황과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 저자는 마지막에 언급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강조하고 싶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이런 이야기하기가 껄끄럽고 수준 미달의 인간들이 저자의 주장과는 달리 트집을 잡아가며 자구하나 문구하나에 매달리며 지랄하는 게 역겨워 이를 살짝 피해

간듯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본 작품에서 역성혁명을 주창한 맹자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서이다.

최근 보도를 보니 똥 묻은 뭐가 겨 묻은 뭐에게 명예훼손에 관한 법무분별한 

플랭카드 게시에 관한 법을 손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하던데 얼핏 들으면 

정의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지만 그런 주장을 했던 인물들이 과거

콧수염을 앞세워 가짜 뉴스선동질로 얼마나 많은 과실을 따 처먹었는지를 의식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이제 공격자에서 수비자로 바뀐 그들이 그 법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돌아올 불화살을

어떻게든 피해보려 해당 관련법을 개정하자고 한 것 같은데 다른 것은 몰라도 명예

훼손과 관련된 그 법 개정했다가는 아마도 자기들에게 대해 할 이야기가 세상에 차고 넘친다는 것을 잊고 이야기한 모양인데 앞으로 해당 법 개정으로 인해 차고 넘치게 될 이야기를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바뀌어야 할 법이긴 한데 어떤 

형태로 흘러갈지 자못 궁금하다.


아무튼 작품 중간에 툭툭 튀어나오고 있는 정치철학자, 동양철학자 분들을 내가 잘 

모르니 저자가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이분들로 인해 나의 독서 동력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참고로 작품 후반부의 내용은 특히 196쪽 이후의 내용은 요, , 상의 내막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일 경우 저자의 주장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상당히 난해하였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어느 분이 해당 작품의 서평으로

고전 읽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윤리. 맹자의 언어를 21세기 담론과 연결

 하며 치밀한 독서와 현실 인식에 바탕한 진정한 고전 해석입니다.‘

라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고전에 능통하신 분의 관점이며 나와 같이 현재를 아등바등

힘겹게 살아가는 일반인들은 작품을 쉽게 이해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면 어려웠던 작품이었기에 하나의 정리된 텍스트로 본 작품을 요약해 가며 이해하기가 녹녹치 않은 

그런 작품이었다.

작품을 마무리하면서 작품으로부터 얻은 내용이면서 이 땅의 위정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문구를 마주해 여기에 옮겨보면 [* 맹자, 인륜을 말하다 (P120)]

- 관계성의 철학을 상징하는 낱말은 ()’이다.

  ‘()’자는 (사람 인)(둥근 륜)자가 결합된 것으로 자는 둥글게 말아 놓은

   죽간을 그린 것으로 둥글다라는 뜻이 있다. 옛사람들은 세상은 돌고 도는 것으로 

   생각했다내가 인륜을 저버리면 언젠가는 나에게 불행으로 돌아올 것이고 반대로

   내가 도리를 지킨다면 언젠가는 나에게는 좋은 일로 되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侖자는 그러한 의미가 반영된 것으로 둥글다는 뜻을 가진 자를 응용해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의 도리와 윤리를 뜻하고 있다.

 

수준 낮은 위정자들이 쓸데없이 세비나 왕창 받아먹으며 지랄하지 말고 그 세비로 

이런 책 좀 구매해 읽고, 느끼고 스스로 윤리적으로 부족한 점은 없는지를 돌아보기를 기원해 본다.

 

최소한의 윤리를 겸비한 인간들이라면 최근 이랜드 물류창고 화재 사건은 어떤 연유인지 모르나 보도가 극히 자제되고 있고, ‘한강 출근버스종묘 문화유산문제를 

연일 반대파 늙은이부터 과부까지 전부 힘을 합쳐 이슈화하고 있는데 그 저의는 누가

봐도 상대당 출신의 리더를 흔들어 자신들의 세력을 그 자리에 앉히려는 수준 낮은 

저의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데...아무튼 리더 하나 잘못 뽑아 놓으니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최소한의 윤리도 지키지 못하는 위정자들이 세상을

쥐고 흔들려는 그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득세는 조만간 곧 우리에게 크게 

그것도 아주 큰 부담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