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비아 만나다 시리즈
마크 래리모어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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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전문가), 비전문가(3)


주님에 다가선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심자 수준인 나의 신앙심을 제고하기 위해

본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다.

성서 욥기는 대체적으로 위로를 주는 책, 자기 수양을 돕는 책, 혼란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가슴에 담고 또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욥에 대한, 욥기가 품고 있는

종교적 의미를 알아보자는 아주 단순 무식한 수준에서 작품에 도전했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혼쭐이 난 작품이었다.

종교학 및 종교철학 공부를 3년 이상(?) 하였거나 현직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 아니면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무지몽매인 종교적 문외한은 가급적 도전하지 않기를 권유합니다.

 

생뚱맞게 욥기는 누가 지었는가, 욥기는 여러 작품이 짜깁기 된 것이다. 욥은 유대인인가?

등등 성경을 단편적으로 접한 나에게 작품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런 질문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시련의 연속으로 몰고가는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와 같은 종교적 깊이가 낮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신 저명하신 분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단문 위주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해당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그 내용도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것은 확신이 서지를 않지만 .......

 

참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욥의 유언 필사본은 10세기 사본이며 오늘날까지도 욥의 전설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설명이 담긴 문헌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깊이가 낮은 분들은 가급적 본 작품을 외면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하더라도 말입니다.

 

[서 론]

- ‘욥기는 분명 성서에 속한 어떤 책보다도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데 악의 문제에 관한

  성서의 답변으로 이해되곤 한다.

-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에서 무고한 이들은 언제나 고통 받는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들은 도울 방편을 마련해 두신다고 말한다.(P 9)

- 그리스도교 장례 의식을 치를 때 성직자들은 의 연설을 인용하곤 했다

  이 인내의 한계를 규정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P 21)

-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욥기의 면모는 그 자체로 욥기를 둘러싼 신비의 일부가

  되었다.(P 24)

- ‘욥기가 제기하는 물음들, 섭리와 악,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 하느님의 본성,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 등은 모두 손쉽게 종결될 수 없는, 종결되기를 거부하는

  물음들이다.(P 24)

- ‘욥기의 중심 대목은 널리 통용되는 지혜를 늘어놓는 의 친구들(엘리바즈, 빌닷소바르)을 

  하느님이 질책하는 부분이다.(P 25)

- ‘욥기의 전기는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욥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즉 자신이 이라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그와 관련된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한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P 32)



[고대 해석자들이 바라본 욥기]

- ‘욥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해석인 인내하는 욥이다.(P 36)

- 그리스도교들은 을 그리스도의 예형(type)으로 보았다. 히에로니무스는 욥기주석에서

  욥이라는 이름은 슬픔과 고통을 뜻한다고 주장. 그는 그리스도의 원형이었다’(P 39)

- 번영은 재앙을 수반한다. 절망이 희망을 수반하듯(P 48)

- ‘의 유언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P 50)

-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네 우리가 주님에게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보여 주실 때까지 인내합시다.

- ‘제임스 쿠걸이라는 유대인 성서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고대 해석자들의 작품

  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빌론 유수 이후 지신들의 경전에 새로운 해석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

   1) 성서는 근본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문헌이다. , 성서에 A라고 적혀 있을 때 흔히 실제 

     의미는 B.

   2) 성서는 당대 독자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성서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책이 아니다. 성서는 유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다.

   3) 성서는 모순이 없으며 실수도 없다.

   4) 성서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주셨으며 하느님은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혹은 예언자들을 

     거쳐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P 60)

- 절망에 사로잡힌 채 울부짖는 의 말, 그의 분노 어린 말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성서 

  전체의 것,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의 것이다.(P 62)

-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에게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 열쇠는 신약 성서였다.(P 75)

- 모세의 율법을 읽는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으며 이 너울은,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주님(예수)께로 돌아갈 때에 비로소 벗겨진다.(P 75)

- 중세 그리스도교의 토대가 된 기에 관한 저작은 하나다. 바로 기원후 578년에서 595

  사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저술한 욥기의 교훈들이다.(P 77)

- ‘은 경건한 인물이지만 더 많은 의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P 78)

- 자신이 덕이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영혼을 해지는 것은 없다.

-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평온함이다.(P 82)

- '고통'은 죄라는 ''을 퇴치할 때 필요한 '화학요법'이다. 문제는 하느님이 사악한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선한 사람들을 치료

  하지 않는 것이다.(P 83)

- 어떤 행동이 그 당시에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가치 있는 예언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듯 

  어떤 상황이 역사적 차원에서는 미덕이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악인 경우가 

  자주 있다.(P 85)


 

[논쟁 속 욥기]

- 에피크로스는 물었다.

  “신은 악을 없애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악하다. 신은 악을 없앨 수 있으며

  악을 없애려 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 92)

- ‘욥기는 하느님의 존재 여부를 묻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성을 묻는 책이다.(P 93)

- ‘욥기는 신성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곡,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섭리에 관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문헌이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과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욥기는 섭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참여하는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이다.(P 95)

- ‘욥기는 인간이 가장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철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P 96)

- ‘과 친구들의 발언은 그것이 긍정하는 내용보다는 부정하는 내용 때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P105)

- 악은 엄밀한 의미의 실체가 아니며 본질상 선한 모든 피조물에게 기생충처럼 붙은 결핍

  혹은 왜곡이다.(P110)

- 중요한 것은 섭리(우리는 이를 알 수 없다)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다(P115)

-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칼뱅에게 욥기가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피조물보다 너무나 높이 있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올바름의 규범조차 궁극적이지 않음을 욥기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컬뱅이 보기에 욥기를 읽는 실마리, ‘욥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논쟁에서 은 

  선한 편을 고수하는 반면, 그의 적대자들은 악한 편을 고수한다는 점이다”(P121)

  "‘과 친구들이 재기하는 물음은 동일하다. 즉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

  하는가? 그에 따르면 은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때 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의 친구들은 다른 누군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의 친구들처럼 응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P122)

-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는 겸손과 침묵을 지키며 다른 이가 고통 받을 

  때는 그를 배려하고 위로한다.(P125)

- 섭리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는 하지만)하느님에게서는 멀고 인간 동료들에게는 가까운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P130)

 


[공연되는 욥기]

- 수 세기에 걸쳐 성인은 나병 환자,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P135)

- 그리스도교인들은 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P139)

- ‘이야기는 참되고 확실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야기인 것 못지않게 거짓 위안과

  감언이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P150)

- 구원에 대한 믿음은 섭리에 대한 확신과 인내만큼이나 성취하기 어렵고 유지하기 힘들다.

- 하느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인내를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P160)

- 짧은 생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계속 애통해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현명한 이들은 이 세계라는 깊은 구렁텅이를 순례하는 동안 인내심을 기른다.(P163) 

- 철학자들은 이성 너머 저편에서 오는 도움이나 통찰을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적어도 고결한 

  습관을 갖기 위해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다른 의심으로 대치하곤 했다.(P168)

 


[신정론과 욥기]

* 신정론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하나님의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를

  학문적으로 모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는데, 왜 세상에 악이 존재 하는가? 이 세상에 모순이

  이렇게도 많은가?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볼 때, 혹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은

  아니신가? 하는 회의(懷疑)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신정론이다.

   그리스어로 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올바름을 뜻하는 디케(dike)'를 합쳐

  신정론(theodicy)'라는 말이 나왔다.(p186)

 

-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느님이 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활동하는지

  설령 활동한다 해도 신이 정녕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물었다.(P182)

- 하느님은 왜 악을 용납하는가? 사람들이 악을 당연하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여기지 않게되자 

  악은 독특한 철학적 문제가 되었다.(P185)

- 칸트는 욥기를 성서, 교회 전통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도덕적 자율성을 지니고 신과 

  대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았다.(P192)

- 자신의 동기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 이해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진다.(P197)

- 참으로 고귀한 일은 고통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이다.(P197)

- 종교는 도덕 법칙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칸트),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코헨) (P198)

- 고통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처벌이다.

-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은 성서에 나오는 주장이나 성서가 그리는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너머 핵심에 있는 시적 진리를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욥기는 그 중심이 

  되었다.(P202)

- ‘욥기에 담긴 신의 선물은 욥기가 표현하고 또 빚어내는 인간의 감정이다.(P205)

- 자신의 경건함으로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면서도, 경건함 때문에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인정했다. 바로 그 사이에서 사탄이 나왔다.(P222)

- 모든 고통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정의

  결과다.(P223)

 

 

[추방당한 욥기]

- 하느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이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욥기 28:28)

  이 구절을 욥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P234)

- 역사 비평은 근대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좋은 도구를 활용해 성서를 이해하려는 선의를 담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P237)

- ‘이 보여 주는 인내는 그의 비판과 저항을 포함할 때 더욱 심오해진다.(P250)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침묵만이 궁극적으로 기억과 희망이라는 역설적 임무에 온전히

  부합하는 실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침묵이 전도서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보여 주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P259)

- 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의 이름 (EL)'은 물음을 뜻하는 말인 셰엘라(she'elah)'안에 머물고 있다.

  ‘은 자신이 차갑고 냉소적인 세계(참된 친구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하느님은 외로운 인간과 자신을 연결하고자 한다.(P260)

- 하느님과 투쟁을 할 때조차 은 하느님이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하느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할 뿐이다.(P265)

-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임을 알았다. 동시에 그분이 자신들을 

  박해함을 받아들일 때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P266)

- ‘은 커다란 상실 가운데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현대인의 인도자다.

   기도서 이후로 은 개인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P273)

- ‘욥기는 신이 부재한 것처럼 보일 때, 세계가 윤리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때, 특히 정의가 

  실추되고 의미가 부정되어 상실과 고통을 겪을 때 오히려 신의 존재를 가장 예리하게 감지

  할 수 있다는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다.(P273)

- ‘욥기는 예언적 행동과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관상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P281)

- ‘욥기는 삶의 한가운데서 상실을 겪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천민들, 희생양들, 사대의 

  이단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다.(P283)

 

 

주워들은 이야기

 

- ‘성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책들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비블리아에서

  나왔다.

- ‘미드라시란 히브리 용어로 성경 주석의 설교 방식을 뜻한다

- 성무도일 : 매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성직자, 수동자들이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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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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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영국의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과 한국의 고승 네 분(성파, 도법, 금강, 정관)과의 평범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원초적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이야기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개신교 신자인 이같은 작품을 접한 이유는 편협 된 종교관에 매몰되어 있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노력(?) 때문으로 속된 말로 좀 있어 보이려고 접하게 되었다.

 

난 개신교도이지만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 논리인 내 종교만이 최고다 라는 생각은 갖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나의 종교와 종교적 신념이 중요하면 타인의 종교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기에 기꺼이 이런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거의 역적 수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아닌 것 아니다 -

가끔 언론을 통해 내 종교가 좋은 것이니 타 종교를 폄훼하는 일부 몰상식한 개신교도들의

사고치는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속상하며 진정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의 절대자께서 진정 그런

그들의 저급하고도 몰상식한 모습을 좋아 하실런지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절대 아닐 것이다.

 

최근 정권이 바뀌면 새로이 출범하는 정권이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경내를 관람하던 어떤 옹졸,

치졸빤스같은 인간이 불상에 절하는 다른 사람을 보고 난리를 친 사건이 일어난 모양인데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개신교도인 나만이라도 내 종교 외의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또 서로를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상대 종교에 대해 존경은 아니더라도 폄훼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런 자세가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순복음 조용기 목사님을 부처님 오신날

조계종인지, 동국대인지를 방문해 종교와 관련된 특강을 과거에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타 종교의 거두께서 상대 종교시설에 가서 특강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상대편 종교인을 초빙한 불교인들에 대해서도 높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그들의 성숙된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작품 속에서 눈에 들어온 대목은

-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이런 기분이 들 때는 바로, 나 자신에게 

   ‘어떤 틀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 자기의 틀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는 것은 상대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내가 그 을 깨야 한다.

라는 대목으로 나이가 들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위의 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종교를 떠나서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 타협을 모르는 

정치인들, 갈라치기를 주업으로 삼고 사는 인간들은 위 문구를 잘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 대목은

- 자신이 준 것만 따지는 사람은 불행하고,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대목은 성경의 말씀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었다고 생각하며 매번 위 문구처럼 살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를 않다. 그런 나는 오늘도 나의 절대자에게 위 문구처럼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품 제목 오래된 질문은 답이 없어 물어본지 한 참 지난 오래된 질문이 아니라 세상이,

시간이 흐르며 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즉, 구성원들이 쉼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던져진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도 역시 변할 수밖에 없기에 외견상 질문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질문이 아닌 오늘을 사는 모두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마음을 잘 추슬러 보라는 죽비적 가르침을 던져주려는 작품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 ‘생명이란 DNA나 두뇌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교류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 삶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 아득한 심연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재대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쓸데없는 고통의 연쇄에 매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깨달음은 일상과 동떨어지고 신비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몰랐던 걸 알았다’, ‘잃었던 것을   

  찾았다‘, ’가려졌던 것이 벗겨졌다등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나의 참모습, 이 세상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확신하는 경험적 지혜가 바로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에 맞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 지금 현실적인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당면한 문제를 줄일 수 있는지 묻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고통은 그 자체로 우리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그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괴로움의 정도가 달라진다. 쓸데없이 과도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런 고통이 대부분 우리가

  관념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고통은 외부에서 주어진 상황이나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유래

  한다. 붓다는 이를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찾았다.

- 남들이 우리에게 붙인 이름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것이 바로 지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중도라 부른다.

-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라.

- ‘염화 미소란 말로 통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다.

- 시비, 분별, 번뇌, 망상이 있기 이전의 마음, 비교하기 이전의 마음, 나라고 하는 개념이 있기 

  이전의 마음, 부처님은 항상 그런 마음으로 행동한다.

- 그대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대에 의지하여 내가 존재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그대는 무한히 높은 자요, 귀한 자요, 고마운 자입니다그대 앞에서 나는 무한히 낮은 자입니다.

  끊임없이 나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어야 하는 자입니다.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몸짓이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이란 주체적으로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삶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 자존심이 센 사람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남과 견주어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 ‘좌선(坐禪)’이란 번뇌와 망상이 없는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로 앉는 것을 말하는데

  ‘()’란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것을 진짜 앉아 있다고 말한다

  ‘()’이란 어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고요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 ‘화두는 반드시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거 계속 반복해서 되뇌면서

  평화로운 본연의 마음 상태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 감정에 휘둘리거나 쉽게 끌려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금강이라 한다.

- 참선은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

- 진정한 삶의 변화는 저 멀리 특별한 장소에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 노예로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주인으로 사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이다.

- 삶은 내가 마음먹고 행동하는 대로 살아지고 창조될 뿐이다.

- 남과 자꾸 비교할수록 내 행복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처한 지금의 환경과 함께하는 사람들

  그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교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 동양에서는 왼손을 ()’라 하고 오른손을 ()’이라 한다.

  ‘체용론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동양 철학의 아주 오래된 패러다임이다.

  ‘는 사물의 본체나 본질을 의미하고, ‘은 사물의 작용이나 현상을 의미한다.

- 사찰음식에는 마늘, , 달래, 부추, 아위 이렇게 5가지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는다.

-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것은 따로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이다.

 

* 출판사에 표하는 이의제기

- P 46쪽에는 도법스님이 17살에 출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P 24쪽에서 이미 도법스님은

  18살에 출가한 것으로 씌여져 있다.

  독자는 이런데서 출판사에 대한 신뢰, 편집인에 대한 신뢰를 눈여겨 보게 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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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 지성의 몰락 - 미네르바 부엉이는 날지 않는다
송호근 지음 / 나남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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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지성은 그 생명을 조금이나마 연장하기 위해 산소 호흡기와도 같은 상식과 염치, 이성과

도덕에 의지해 발버둥치고 있으나 그 누구도 그런 몸부림을 애달아하기 보다는 나는 잘하고 

있는 데 상대가위정자들이, 여당이, 야당이, 교수는 잘하는 데 대학이, 사회와 정책이 대학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 이런 사태 즉, 지성이 죽어가고 있다

는 게 우리 사회에 보편적으로 깔려 있는 생각이라 판단하고 있다.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나는 사전 투표를 하고는 선거 당일 일찍 예전부터 계획했던 며칠간의 여행길에 올랐다.

올 초에 있었던 수술로 인해 몸이 너무 안 좋아 요양차 그동안 점찍어 두었던 전주 한옥마을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길에서 우리의 지성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더 확실한 표현으로 이야기한다면 반지성이 판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안타까웠다.


상황은 이랬다.

그날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기 때문에 선거 종료 후, 개표방송이 심도 있게 다루어질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선거 종료 후 방송된 선거 방송은 특정 정당의 선거 완승이 곧 특정 지역의 출신들에 의해 나라가 재 탄생된 듯한 멘트와 축하메시지로 난리 법석이었는데, 승자로서 

느끼는 환희는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특정 정당과 특정 지역의 나라가 아니지 않은가. 패자에 대한 배려나 선거 후 어떤 

방향으로 선거로 흩어진 민심을 달랠 것인지에 대한 거시적 방안은 고사하고 선거로 자신들만의 세계(?)가 완성 된 듯한 멘트로 일관하는 모습이 대한민국 속의 또 다른 나라와 국민을 보는 

듯하여 역겨웠다.

그 지역에서의 선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지역 국민들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은 게 아니라 

특정 지역의 민심과 그들만의 자부심을 고양시켜 줄 인물 뽑기 대회를 보는 듯 하였는데

특정 정당이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내가 본 그 방송은 선거는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들만의 인력과 자리 나눠먹기 잔치였다는 게 선거방송을 본 나의 심정이었고 그것을 통해 나는 해당 지역의 지성이 살아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 최악의 방송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특히 압권은 자신들의 지역구 당선 국회의원에 대한 출신지를 정리하는 것까지는 이해되는데,

전국 당선자들 중 자신들 지역 출신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느 지역에서 당선되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지속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보면서 그게 올바른 방송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그 행위가 방송국 놈들이 기획한 만행인지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의 뜻을 대변하는 

지역 이기주의적 행위인지를 놓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정권에서는 출신지역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 서러웠다고 외치던 그 지역 분들이 이제는 

대 놓고 지역색깔지역 갈라치기‘ - 내가 볼 때는 그랬다 - 를 전면에 내세우고 난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게 들었다. 이런 저급한 행위는 분명 추후 어떤 형태로든 댓가를 

치룰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며 해당 지역의 지성이 살아 있다면 더 이상 이런 치졸한 짓은 자제

했으면 한다.

그 방송은 말미에 의사들의 파업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의사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도 있었는데 지역 갈라치기를 하는 그 방송이 말 할 자격이 있었는지가 의심스러웠다.


하여간 이런 하나의 사례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말도 안 되는 비지성적 행태가 심심치 않게 자행되며 사람들을 물들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이 땅의 중심점이 되는 지성과 지성인이 있기나 한 것인지 또 있다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또 지성이란 단어를 적용할 만한 경우가 있기는 한 것인지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께서는 작품을 지성의 산실은 대학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내가 볼 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대학과 교수들이 행태가 얼마나 저급해졌는지를 저자께서 그 곳에 소속되어 있어 잘 몰라 

그러시는 것 같은데,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거의 경악에 가까운 관점이라 생각하고 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 사회에 있어 대학과 교수들이 지성의 변방의 시정 잡배 수준으로 변화된지는 이미 오래 전이며 정치 모리배들이 깔아준 길을 대학과 대학인 특히 폴리페서들이 따라가고 있고 대다수가 이를 추종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무슨 이야기가 필요한지 답답할 뿐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조선의 식자층을 상대로 사문난적의 칼춤을 추던 송시열이후 이 땅에 

진정한 지성과 지성인은 멀리 출장 갔고, 이상한 적폐청산 논리를 갖고 승자처럼 행동하려는 

몇몇 수준 낮은 리더라고 참칭하는 일부 위장 전술의 대가들이 벌이는 진지전고지전을 

벌이는 집단들만이 득세하며 아류들만 남아 있을 뿐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판단하고 있는 지성이 사라진 흔적을 살펴보면

- 무죄 추정의 원칙을 악용해 감언이설로 국민을 대표한다고 외치는 인간들

- 노조 활동이 만사 형통하다는 믿음 속에서 더 약자인 노동자들의 골육을 빼먹는 인간들

- 입만 열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괴벨스 같은 세치혀의 달인에 열광하는 인간들

- 남들이 뭐라하든 누구보다 정신적 멘탈이 강한 어느 일가족과 그 일파들

- 한 때 고위 공직자로 활동하다 임기가 끝났으면 조용히 여생을 보낼 일이지 또 노욕을 부리고

  자신만이 제일이라고 떠드는 인간들

- 상대의 잘못은 침소봉대하고 자신의 잘못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적폐 청산의 정점에 섰던 저급

  저질의 인간들

- 정치권에 기대 난리치다 효과가 떨어지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질낮은 딴다라 인간들

- 조폭들과 한 패되어 난리치다 대중이 망각의 늪에 빠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 빳빳이 들고

  활개 치는 인간들

- 재산 불법 상속과 우리 편 밀어 달라고 외치던 인간이 코너에 몰리자 아니라고 우기는 인간들

- 코인 갖고 놀기, 후원금 빼 먹기다 걸려 놓고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인간들

- 자신들 편이 불리하게 되자 재판 질질 끌다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재판부 기피하는 인간들

- 영끌 청년들 자살로 내 몬 법안 만들어 놓고 반성 근처에도 가지 않다가 때 되면 나와서 자기는 

  잘났다고 지랄하는 인간들

- 툭하면 민의가 어떻다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헛소리하는 인간들

- 지들이 외치는 민의의 전당에서 상대방 발언할 때 깐죽거리는 저질 인간들

- 자신은 잘했는데 후임이 잘못한다고 외치는 찌질한 전직 고위 공직자에 있었던 인간들

- 대기업 저승사자라 자랑질 해 그것 믿고 뽑았더니 3류 보다 못한 시민운동가 출신 인간들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맹자는 다섯 가지 불효를 경계하라고 했는데,

첫째, 수족을 게을리 해 부모님을 잘 섬기지 못하는 것

둘째, 도박과 음주를 즐기면서 부모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

셋째, 재물 욕심과 자기 처와 자식만을 알면서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것

넷째, 듣고 보는 대로 말하면서 부모님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

마지막, 불량한 자들과 다니면서 부모님의 신변에까지 위협을 끼치는 것

이라고 했다. 부모 대신 백성을 대입해 보면 우리의 지성이 왜 죽어가고 있는지 알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하도 여기저기 쓰고 이야기해서 더 이상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안타까울 뿐이다.

 

나의 호소와 주장이 얼마나 이 땅의 지성인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가 그들에게 대오 각성을 

촉구할 수 있겠냐만은 그렇지만 나는 이 땅에 참 지성이 살아날 수 있도록 오늘도 노력하고자 한다.

 


[1부 막오른 문명 대변혁]


121세기 문명의 도래

- 외부 환경의 변화와 내부 동력의 점진적 교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간 능력에 잠재된 

  적응력과 대응력에 기대를 걸기 마련이다.

-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가져온 ‘20세기 문명은 지구 생물계에는 최고의 독()이었다.

- 산업혁명 이후 줄곧 성장률은 자본수익률을 밑돌았는데, 결과는 성장률 제로 시점의 도래이다.

  그것은 불평등 악화와 자본주의의 붕괴를 의미한다.

- 20세기 문명을 작동하는 뇌관과 문법이 교체됐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반에 활발하게 개발

  됐던 정보커뮤니케이션기술(ICT)‘21세 문명으로 넘어오는 징검다리였다.

- 21세기 문명은 글로벌 네트워크에 AI, 사물인터넷(IOT), 로봇, 가상현실(VR), 메타버스

  (Metanerse)의 세계를 구현해서 예측보다 더 빠르게 20세기 문명의 엔진을 갈아치우고 있다.

  그것이 혁명적인 이유는 사회집단과 인류 사회의 존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인프라 

  패러다임의 변혁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 ‘문명은 어느 장기적 시간대의 생존양식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개념, ‘문화는 그 생존양식을 

  이끌어 가는 정신적 양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 두자. 문명과 문화는 육체와 영혼의 관계와 

  유사한데 두 가지 개념을 합쳐 문명이라는 개념으로 통칭하기도 한다.

- 19세기 과학과 경박한 경험주의가 배태한 비인간적 자본주의 경쟁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한다는

  굳은 의지에 불을 붙인 일단의 지식인이 태어났다. 대표적인 인물이 관념론의 기수였던 

  ‘루카치그는 영혼과 형식이라는 저서를 통해 정신적 각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

  했는데패전국가 독일이 관념론 부활의 적지였다.

- 작금에 들어서 과학은 인간의 통제범위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급기야 AI, 디지털 시대에 돌입

  하면서 수십 년간 지속된 과학에 대한 인간적 통제 환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오픈AI, 기술합리성이 오히려 지배체제로 등극하는 현상에 직면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통제 불능 상태로 진입하는 과학기술에 주체의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 것이다.

- 기후위기 극복방안으로 제출된 네 가지 해결책들 - 성징 레이스 완급조절, 탄소제로, 생산과 

  소비 적정화대체 에너지 개발 - 은 곧 문명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 과학과 지구를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적 오만으로 가득 찬 이데올로기 시대가 저물고 인간이

  오히려 통제 대상이 되는 과학 독주의 시대가 출항하고 있다.


2장 규율권력, 과학기술21세기 문명의 도래

- 정보화로 통칭된 지난 40년간은 챗봇 AI 탄생을 향한 짧은 전환 과정이었다.

- 인간이 창조했지만 인간이 오히려 규제당하는 감시체계의 탄생 이것이 감시 자본주의 

  본질이다이에 비하면 인터넷 기술은 과학기술이 선물한 낭만에 지나지 않았다.

- 2015년 에릿 슈미트가 웹의 미래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인터넷은 사라질 것입니다라는 답을 

  주었는데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감시 자본주의를 주장한 쇼사나 주보프

  ‘우리는 디지털 자본이 제조하고 조작하는 행동시장의 객체로 전락한다. 우리가 남긴 디지털 

   발자국과 디지털 빵부스러기들은 요새화된 디지컬 테크에 의해 행동예측상품으로 둔갑한다.

   그 행동에서 파생된 지식에 대한 접근권도 통제권도 거부당한다. 디지털 수탈이다

   우리는 우리 경험의 지도를 스스로 그릴 권리를 박탈당한, ‘인간이라는 천연자원에 불과하게

   된다.‘

    ---> 디지털 자본은 현실 마이닝을 통해 인간을 천연자원화하고 급기야는 인간성 멸절을 초래

          한다는 엄청난 가설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 사용자를 포획해 우리에 가두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행동엔지니어링을 통해 기획 상품으로

  제조하는 욕망, 거기에 포박될 수밖에 없는 사용자들의 운명이 문제다

  그것은 곧 인류의 미래운명이기도 하다.

- 행동주의 과학자에게 자유, 의지 같은 추상적 개념은 없다. 그것은 다만 아직 설명되지 않은

  아직 행위 코드로 정복되지 않은 빈 공간이자 무지일 뿐이다.

 

3장 펜데믹이 가르쳐 준 것, 문명적 뉴딜

- 코비드19의 감염과 사망 수준은 의료서비스의 사회적 포용 수준에 반비례 한다.

  ‘사회적 포용이란 공적 서비스와 제도에 대한 사회집단들의 접근성을 지칭한다.

- 문명의 패어다임 관점에서 관찰한다면, 산업화 이후 20세기까지는 땅의 문명이었다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의 분석처럼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했던 

  기간이었다문제는 여기에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이동해도 땅을 착취하는문명의 본직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코비드19는 이 땅의 문명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려준 슬프고 뼈아픈 계기다.

  즉, 성장 일변도의 각축전과 풍요를 향한 무지의 질주가 낳은 대가가 무엇인지를 각인시켜준 

  엄중한 경고장이다. 그 경고장의 제목은 문명의 그늘이다.

- 땅의 문명은 번영과 성장의 배후에서 그것을 파괴하는 두 가지 힘이 자라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그것은 공간미립자의 세계다.

- 펜데믹은 최악의 경우 인류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만, 공간의 역습은 전멸이다.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 공간의 공습이 예상되는 시점이다.

- 기후재앙과 바이러스는 일란성 쌍생아다. 공간의 역습은 마이크로 세계를 깨운다. 인간의 면역    체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교환하는 바이러스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인체를 위협한다

  미립자 바이러스는 땅의 문명이 번성했던 경로를 따라 전파된다.

- ‘문명은 보이는 적과의 전쟁에서 취득한 전리품이다.

- 코비드19가 몰고온 뉴노멀 현상

   1) 언택트 문화

   2) 탈세계화와 지역협력, 혹은 블록경제로의 회귀현상

   3) 땅의 문화의 핵심인 자원 활용의 극대화에 심각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4) 위험의 불평등

   5) 페놉틱 사회 혹은 모니터링 민주주의를 불러온다.

- 자본주의 체제가 지난 250년간 발전시킨 이윤극대화 성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린 뉴딜은 불가능하고 더불어 지구의 생명도 종언을 고한다.

 

 

[2부 대학의 사회생태학]

아카데미즘의 본질 변화

- 지식인의 집단거주지인 대학의 성격 변화가 지식인의 실종을 부추겼다.

- 교수들은 문명비판의 전사가 되고 싶다. 그러나 숨 막히는 대학의 현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교수들은 의사 사회주의라는 작은 오아시스로 도피하기

  일쑤고총장과 개혁 성향 교수들의 혁신안은 조직화된 무정부주의속으로 증발된다.


4장 대학과 지성

- 문명은 지성을 낳고 지성은 문명을 이끈다.

  한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조망하는 지적 능력, 또는 시대의 중추 신경을 정확히 짚어 내고

  그것의 본질을 드러내 보이는 지식의 응결체가 지성이다. 지성은 부분적 현상 분석에 머물지 

  않고 전체와의 상관관계를 포착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부분의 합이 

  창출하는 발현적 성격을 놓치면 종합적 조감은 불가능하다. 지성은 앎과 지식의 총체로부터 

  나오는 무형의 힘이지만 세상의 현실을 바꾸고 인간의 행동을 개조하는 유형의 충격파다.

  독일어 개념인 시대정신(Zeitgeist)'는 시대를 관통하고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 내는 정신의

  요체를 지칭한다. 19세기 말 유럽을 지배했던 정신 사조를 실증주의라고 했을 때

  그것은 곧 시대정신을 뜻한다.

  이후 손에 잡히는 것, 보이는 것, 반증 가능한 것에 집착했던 실증주의의 경박성을 부정하고 

  그 배면에 작동하는 더 본질적인 원리, 깊숙한 곳에 존재하면서 현상적인 것들을 운영하는 

  원리가 있다고 믿는 관념론적 사상 풍조가 실증주의에 반격을 가했다. 그것 역시 시대정신이다.

- 지성은 시대의 거대한 조류를 파악하는 지적 사고체계이자 현실 세계에 대한 비판적 조망을 

  동시에 담는 사상의 동력이다.

- 19세기 대학은 교양시민을 길러내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었다. 예비지성인을 길러내는 곳

  타락한 사회에 도덕과 윤리의식을 불어 넣을 지식 전사를 배양하는 곳이었다.

- 대학의 첨단기술은 글로벌 기업이 상용화하는 테크상품과 디지털 네트워크의 부속품에 불과한 

  정도다.

- 지성은 문명의 휘슬 블로어였다. 문명의 치명적 폐해를 주시하고 경고했던 휘슬블로어를 배양

  하고 보호했던 곳은 대학이었다. 과거에는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지성인의 위상은 SNS 시대에

  작은 초가집 정도로 전락했다

   ---> 문명비판의 주체가 기술문명을 주도하는 조직의 하수인이 된 것이다.

- 공중이란 공적 쟁점에 대해 감응하고 반응하는 대중, 어느 정도 학식을 갖추고 대중매체를 

  구독하는 일반 대중을 말한다.

- 공중을 매료시키던 청년 지식인들 즉, 문명비판을 생산했던 문화적 프런티어가 무너진 것은 

  대학이라는 안정된 제도권 내부로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흡수된 1960년대 후반부터 두드러졌다.

- 첨단과학기술의 엄청난 영향력과 디지털 테크 기업의 세계적 장악력에 의해 대학은 문명의 

  프런티어에서 문명의 동력을 공급하는 납품업체가 되어 버렸다.

- 대학은 미래 대응적 구조조정을 단행할 여력과 자율성이 없고, 자체 경쟁력을 배양할 지원이 

  절대 부족하다.

 

5장 대학의 진화와 사회생태학

- 대학은 권력집단은 아니지만, 권력의 부침은 물론 권력의 본질까지도 꿰뚫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기에 권력 집단 이상의 존경과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대학이 사회의 구성원이면서도 사회

  질서의 원리를 규명하고 진리로 다가서는 통로를 개척하려고 항상 사회와 거리를 유지했다.

- 대학이 서구사회의 중요한 제도로서 지금껏 존속해 왔던 이면에는 사회의 진보과정에 따라 

  그 존재 이유를 어렵사리 수정해온 대학 자체의 적응력과 대응력이 놓여 있다.

- 근대의 대학은 대학의 존립근거였던 절대주의적 가치관을 붕괴시키면서 상대주의를 대학의 

  새로운 정체성으로 수용하였다.

- 대학은 하나의 거대한 지식공장이며, 연구실과 실험실은 공장의 부서이고, 미국의 아이비리그와

  같은 주요 대학군은 하나의 거대한 지식산업이라는 제조개념으로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대학의 정신과 이념, 대학 구성원의 내부 조직, 교육과정과 교육방법 등에 현저한 변화가 

  수반되었다.

- 대학은 대학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전체적 진화과정에 따라야 한다는 신념이 소외와 고립에 

  기반을 둔 대학의 전통적 이념을 대치하게 되었다.

- 교수들이란 해결책보다는 문제 제기를 좋아하며, 분명하지 않은 어떤 쟁점에 대하여는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 대학은 사회적 환경에 적응력을 키워 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진보의 경로 설정과 

  수정에 적극 개입해온 지성적 사회조직이다.

- 20세기 대학의 성격 변화에 영향을 미친 환경적 요인은 크게 3가지이다.

  산업화, 도시화, 개입국가가 그것으로 이 요인들은 아카데미즘의 본질과 정향을 바꾸어 놓았다.

  첫째, 산업화는 대학에서 자유지식’‘에의 순수한 열망을 억제하는 대신 유용한 지식울 향한 

         실용주의적 성향을 촉진하였다.

  둘째, 대학은 인구증가와 대규모의 도시화에 따르는 급격한 사회 변동에 영향을 받는다.

  셋째, 개입국가의 문제로 대학은 때로 국가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제조창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였다.

  산업화가 이공계 대학의 산업참여를 촉진하였다면, 복지국가는 사회과학대학의 정치참여를 

  촉진전자는 이윤추구와 시장경쟁의 논리를 , 후자는 사회계획과 개혁의 논리를 대학교육과 

  연구의 중심 영역에 위치시켰다.

- 고학력 시대에 대학은 기회비용을 늘리는 기관일 뿐이어서 투자 매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

- 보편성과 객관성의 기준 및 가치관을 둘러싼 논쟁이야말로 자유지식의 본질일지 모른다.


6장 대학의 조직 생리와 양면성의 정치

- 교육시장이 학력시장에서 변화된 배경에는 교육이 곧 엘리트의 여과기제이며 신분과 계층상승

  욕구 실현의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기능하여 왔다는 한국사회의 독특한 사정이 놓여 있다.

- 교육이란 사람들의 인성과 지식을 계발하고 모든 사람이 선천적 불평등과 관계없이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교양과 지혜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한국 사회는 교육을 지위 획득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 현실주의자라는 딱지는 이상주의에 매진하는 대학생의 주체성을 훼손시키는 것이어서 대학생

  에게는 가장 심한 욕설이다.

- 학력이 유사한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평등 이념은 거시적으로는 사회적 비판의식으로 작용하고

  미시적으로는 학내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 사회주의 이념의 중요한 평등주의는 교수 - 학생의 관계를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학생에 대한 평등주의적 관리는 곧 형식적 관계로 변질된다.

   ---> 사회주의적 원리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대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 한국의 대학은 평등주의 방식으로 방목되어 평등주의적 가치관을 내면화한

  그래서 이제 불평등한 사회 환경과 많은 마찰을 빚을 후보생들을 길러냈다.

- 교수들의 활동이 사회의 각 분야로 확대되면서 교육과 강의에 쏟는 절대적 시간이 축소되었다.

- 논의의 무성함과 행동의 결여가 학내 정치의 특징이다.

 

 

[3부 지성의 몰락]

대중과 작별 또는 이념의 전사되기


7장 지식인의 실종

- 지시의 최전선에서 물러가는 대학은 이제 주체의 자리를 기업과 대규모 연구소에 내주고 있는    중이다.

- 학문의 벽을 깨고 융합적 사고방식과 이해 지평을 넓히는 교육은 중요하다

  전인적 시선을 확보  하는 것 이것이 대학교육의 본질이다.

- 지식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 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귀담아듣는 사람이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 사회의 현재적 변동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사회와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올 사태를 

  미리 예견해 대비책을 쓰도록 경고하는 것은 사회과학자들의 기본임무이나 그러나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 학술계간지와 문학계간지의 시대가 저물고 전문학술지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학문 발전을 기한다는 점에서 전문학술지의 확산은 긍정적 현상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 사회 

  쟁점의 제기와 비판, 논쟁의 전선에서 지식인이 대거 물러갔다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했다.

- 문사철 주소의 시대에 지성 종합지가 태어니 지식인 사회를 하나로 묶어 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이들은 종합지성지를 통해 대중과 접속하고 대중적 언어로 시대적 쟁점을 풀어 

  나갔다. 주요 일간지도 이런 작업에 동참해서 종합지성지와 언론이 공론장을 주도하는 시대를

  이끌었던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고 시대적 고민을 집약하는 대중 매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종합지성지가 구심점을 점령했다고 볼 수 있겠다.

- 문사철의 시대는 19805월 광주민주화운동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식인들은 광주학살과 같은 역사적 비극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떨었고, 나아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에 유용한 혁명이론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사회과학의 시대1980년대 신군부의 개막과 동시에 열렸다.

- ‘문사철도 혁명에 봉사하는 문학, 주체성을 구축하는 역사, 자본주의의 전복을 꾀하는 철학이

  아니고는 지식인 공론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 586세대가 재촉한 현실참여와 이념적 몰입이 2020년대 현재 지식인의 죽음내지는 지성의 

  몰락을 낳은 원초적 요인이었다.


8장 민주주의는 왜 지성을 몰락 시켰는가?

* 도입부의 내용(청산의 정치)은 전 정권에 대한 비판일색으로 여기에 정리하기엔 부담이 되기에

  독자들이 직접 작품을 읽고 느꼈으면 한다. 솔직히 틀린 말이 별로 없지만 요약해 정리하기가

  부담스럽다.


-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욕망과 의지가 아무리 강하고 정당하다고 확신해도 공론장에서의 

  발화는 술집 주먹다짐과는 다르다.

- 지식인을 자처하는 부류도 지성의 파괴를 초래하는 행동거지를 주저 없이 행한 것이 한국 

  민주화의 유별난 특징이다. 정치인과 지식인은 한국사회에서 지성의 몰락을 초래한 두 

  주역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는 한국사회의 일번 언어와 도덕적 양심을 깨트렸고

  지식인은 이데올로그를 자처해 그런 행위를 정당화했다.

- 특정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악의의 난장에서 일반 시민들은 진위를 판단할 방법이 없다

  판단 기준을 잃어버린 공중들은 정치꾼들의 유쾌한 거짓말과 악마의 궤변에 매혹된다.

  1860년대 영국도 그러했다. 자유주의의 본질을 사수하고자 했던 밀(J. S. Mill)은 혐오로부터 

  공중을 보호하지 못한 점을 걱정했다.

- 정신적 성숙의 징표는 덕(VIRTUE)이고, 덕을 쌓는 방법은 교육이다.

- 새로운 시대와 요구에 대응하려면 지적, 도덕적 심성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 ‘지성이란

  “옛것과 새로운 것을 통합해 재구성하는 능력, 과거의 경험을 지식으로 전환하고 그 지식을 

   생각과 목적에 투영해 미래의 무엇을 예견하고, 또 바라는 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지시하는

  능력을 뜻한다.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실천이다. 지성이 바로 자유주의를 

  혁신하는 근본적 힘이자 사회적 실천이었다.

- 지성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작동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으로서, 개인적 욕망의 제어

  타인에 대한 배려, 공익을 향한 비전을 뜻한다.

- 한국의 민주주의는 지성을 죽였다는 점에서 반 지성주의의 전형이다. 반 지성중주의란 사회적

  공론장에 지적 담론을 축출하고 정치적 행태에 지적 논리와 비판을 들이대는 것을 배격하는 

  일체의 행동과 사고 양식을 말한다.

- 매도와 불신, 왜곡과 비방, 적대와 증오의 측면에서 보면 현 한국 사회는 매카시즘 선풍에 

  휩싸였던 1950년대 미국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

- 294쪽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너무도 가슴에 와 닿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양쪽으로 갈라진 공중의 응원부대로 작동했다.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고, 반정권 

   슬로건을 만들어 배포했다. 모두 더 나은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웠음은 물론이다

   시민단체는 민주주의 투사를 자처했다. 시민단체가 자행한 비민주적 투쟁방식과 비밀 결사적     행태는 민주주의라는 대의명분에 가려 정당화됐다. 크고 작은 불법은 그대로 덮였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시민단체의 회계장부 조사 결과가 그렇다. 시민단체는 회비와 정부지원금

   을 멋대로 써 버렸다. 사적 횡령은 물론 시민단체의 목적과는 다른 별개의 사업에 객관적 

   규제 없이 낭비했다지식인그룹 역시 양쪽으로 갈라져 투쟁의 열기를 북돋웠다

   조망적 시선과 양비론적 성찰을 요구하는 지식인들은 기회주의자로 몰렸다

   어느 한편에 가담한 지식인들의 인기가 한순간 높아졌고, 그들이 획득한 대중적 인기는 정치

   입문의 기회를 넓혀 주었다. 대규모 시위와 쟁점별 시민운동을 통해 정치권에 안착한

   지식인들과 시민운동가들은 그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권력을 실행하거나 정권투쟁을 반복했다.

   거리의 정치가 의회 정치가 되었고, 의회 정치가 거리의 정치를 통해 출구를 찾았다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지적 성찰과 양심적 자제가 사라진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악한

   욕망과 악의에 감염되었다.

    ---> 국민들은 투표권이 보장되는 한, 거리에 나가 자신들의 의지를 표출할 수 있는 한 

           정권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 극단적 선동가와 정치인들이 대중적 인기를 통해 정당을 장악하면 민주주의 오물을 여과할 

  거름망이 망가진다. 그러면 민주주의는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서서히 무너진다.

- 민주주의 가드레인 붕괴 현상 3가지 지표 중 2번째가 상대 정당의 정당성 부정과 비방이다.

  독선적 정치인은 경쟁자를 범죄자, 파괴분자, 매국노 혹은 국가안보 및 국민의 삶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비난한다이런 선동 행위와 언설이 대중에게 먹힐 때, 더 나아가 대중이 거리로 

  뛰쳐나와 선동에 화답할 때 민주주의는 대중 독재에 감염된다

  항생제는 자각, 자제, 성찰 외에는 없다이런 역할을 담당할 유일한 집단이 지식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들은 이미 지성의 위선과 우유부단함, 기회주의적 성향을 몰아세우는 

  반지성주의의 전사가 되었다. 아니면 침묵을 선택했다. 반지성주의를 깨트려야 할 지식인이 

  반지성주의의 참호를 지키는 경비병이 되어 버렸다.

- 대학 캠퍼스는 비밀결사의 생성 장소이자 도원결의의 집회장으로 변했다.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폭력적 인지를 검토하는 문학적, 철학적 담론공간은 혁명이론으로 채워졌다.

  사회구성체론이 혁명 분파를 생산했다.

- 혁명세대는 독재의 종식과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할 일을 잃었다.

- 어느 국가나 이념 대립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한국의 이념 분열은 유별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민운동의 정치화가 이념균열을 더욱 강력한 분절선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2020년 총선에서 다수당 지위를 차지한 것에 기대어 각종 법안 남발

  행정명령긴급자금과 추가예산 지출 등을 단행하였다. 비용과 혜택 간 권리와 책무 간 균형 

  감각은 안중에 없었다시장은 자본과 대기업의 놀이터, 고용규칙은 정규직의 배타적 특권

  정권의 취지에 앞장선 민노총은 정의를 구현하는 기사단으로 상정되었다.

  그러는 사이, 불평등은 악화되고, 평균소득은 제자리걸음을 치거나 하락했고, 고용은 줄었다.

  영세자영업자와 영세 기업주는 급격히 무거워진 고용유지 책임과 세금 부담에 어려움을 

  호소했다그러나 이미 자본으로 분류된 그들의 고통에 집권층이 신경 쓸 리 없었다.

 

[ 출 구 ]

- 유럽 대학의 역사는 은둔하는 대학에서 시민사회의 주요 행위자, 특히 사회와 역사의 발전 

  방향을 시사하고 사회변혁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지식 기지로 이동한 궤적이다.

- 한국에서 지식인의 이념 성향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는 영역은 시민운동과 언론매체의 컬럼 

  쓰기다시민운동과 칼럼 쓰기는 이데올로기 분쟁의 열기를 식힌다거나 해소하는 창구가 

  아니라 원한과 증오를 증폭하는 수단이 되었다. 논쟁은 진리로 다가서는 방법일진대 서로 

  허위의 껍질을 벗기고자 달려드는 양상은 자기검열의 최소한의 기제도 배양하지 못했다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 논쟁의 가열은 좋은 현상이지만 분노의 가열은 적대감을 양산한다.

  지적 성찰이 도모하는 적대감의 해소가 지성의 힘이라면 이념적 낙인찍기, 궤변과 욕설로 

  상대 논리를 저지하기, 진영의 장벽을 높이 쌓아 올리기로 일관되는 한국 사회 공론장의 현실은

  ‘지성 몰락의 슬픈 증거다.

- 객관성과 학문적 자기검열의 긴장을 버린 주장과 논조들이 지식인의 경계대상 1호다.

- 촛불 민심의 독점이 일어났다. 촛불 민의의 왜곡이 일어났다. 평등, 분배의 정치이념을 민심과      민의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반민주적 독주가 민주주의의 명분으로 강행되었다.

  공공지식인의 편파적 언설에 촉발되었다면 공공지식인의 책임이다합리적 토론의 기초가 

  파괴되면 반 지성주의와 신비주의로 빠져든다언론방송은 이데올로기 전쟁의 전사들이다.

  공공지식인의 주요 구성원인 기자는 언론사의 이념적 위를 사수하는 경비병이 되었다.

  글로벌 무대가 더 친숙한 신세대가 약진하는 현실에서 북한이 민족모순의 동반자는 사고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시간대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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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유대인 제국 - 유대 기업은 현대 중국의 탄생에 어떻게 기여했나
조너선 카우프만 지음, 최파일 옮김 / 생각의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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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중국은 미국과 패권 전쟁 중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경계하는 분야 중 하나가 유대 금융 세력의 중국 금융 시장과 외환

시장 공격이다그럼에도 중국은 금융 시장 개방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이다.

 

중국은 금융 시장 개방을 위해 2020년 적격 외국인 기관 투자자에게 파생 상품 거래를 허용했다. 뒤이어 원자재, 곡물, 지수옵션 등 41개 파생상품을 추가로 개방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은 외국인 기관 투자자에게 주요 주식 지수 관련 파생 상품은 

개방하지 않고 있다이유는 유대 금융 세력이 1990년 초 파생 상품으로 일본 주식

시장을 순식간에 망가뜨리는 것을 생생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뉴욕 기관 투자자들은 닛케이 지수에 터무니없는 버블이 끼었다고 보았다.

그들은 일본에서는 닛케이 지수 상승에 베팅하는 파생 상품을 주로 판 반면,

뉴욕과 런던에서는 하락에 베팅하는 파생 상품을 많이 팔아 일거에 일본 주식시장을

폭락시켰다물론 자산 시장의 버블이 폭락의 주원인이지만 폭락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유대 금융 세력이었다.

이후 닛케이 지수는 20년 간 하염 없이 추락했다. 1989년 말 38915에서 200937054까지 주저앉았다.

미국의 대외정책, 중국과의 패권전쟁을 주도하는 국무장관과 국가정보국장, 재무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모두 유대인이다. 중국이 미국 유대인의 동향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중국 상하이에 몰려온 유대인들

 

중국인과 유대인 간에는 애증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다.

1차 아편전쟁이 끝난 1842년 상하이 개항 때 인도에 살면서 중국과 거래하던 유대인 700여 명이 상하이로 건너왔다. 이들이 영국, 인도, 중국을 연결하는 삼각무역을 주도해 상하이의 국제화에 많이 기여했다.

반면에 인도산 아편을 수입해 중국을 해롭게도 했다.

당시 유대 기업을 이끈 대표적인 가문이 사순(Sassoon)가와 커두리(Kadoorie)가였다.

---> 해당 작품은 두 가문이 대륙에서 중국 공산당이 완성되는 단계에서 중국을 대상

       으로 펼친 밝지만 한편으로는 어두운 활약상 그리고 그 양 가문이 어떻게 중국

       으로부터 용도 폐기되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는

       즉, 중국 애증의 역사를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다.

- ‘커두리가와 서순가는 중국 공산당에 자신들의 재산을 몰수하자,

   커두리가는 중국 남단의 영국 식민지 홍콩으로, 서순가는 런던과 바하마 제도

   심지어 텍사스주 댈러스까지 도망치지만 그들은 상하이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 서순가는 세계가 불황에 빠져들고 있던 1930년대 중국 경제를 안정화시키는 데

  이바지했으며 중국인 한 세대를 세계 자본주의 안에서 육성하며 오늘날 중국의 

  놀라운 성공을 위한 길을 닦았다.

  커두리가는 홍콩을 중심으로 지역을 변모시켜 21세기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주역이다하지만 1949년 공산당이 승리했을 때 양 가문 모두 거의 모든 것을 다 

  잃었다.

- 중국에 커두리가와 서순가는 어떤 의미였을까?

  상하이의 과거는 중국의 미래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물론 두 가문은 제국과 식민주의의 수혜자였다. 서순가가 부를 축적한 토대였던

  아편 무역은 수 백 만의 삶을 망가트렸다

  서순가와 커두리가가 얻은 막대한 재산을 저임금과 불공정 경쟁 위에 쌓아올린

  것이었다. 그들은 중국 공산당의 대두와 승리를 부채질했다. 양 가문은 상하이를 착취

  했지만 한편으로는 현지인을 활용해 경제 호황에 불을 붙였다. 중국이 경화된 봉건

  사회를 탈피하고 현대적인 산업 사회로 진입하려고 몸부림치고 있을 때 그들은 그 

  도시에서 과감한 사업의 꿈을 추구할 곳을 찾아냈다.

  상하이를 그리고 중국을 탈바꿈시킨 것은 중국인들이었고 양 가문은 퓨즈에 불을 

  붙이는 일조를 했다.


 이후 1895년부터 10년간 러시아 유대인들이 대 박해(포그롬)와 공산혁명을 피해 만주를 거쳐 상하이로 몰려들었다. 1930년대 말 상하이 유대인 수는 4천 명을 넘어섰고 

유대 회당이 7곳이나 되었다.

* 중국과 유대인 사이에는 애증의 역사가 존재한다. 1842년 상하이 개항 때 인도에 

  살면서 중국과 거래하던 유대인 700여 명이 상하이로 건너 왔다. 이들이 영국, 인도,

  중국 사이의 삼각무역을 주도해 상하이의 국제화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인도산 

  아편을 수입해 중국을 해롭게도 했다.

  1930년대 말에는 상하이의 유대인 수가 4천 명명을 넘어섰다.

 

중국에는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1842년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까지 

107년간이 외세에 시달린 치욕의 시기였다.

이 기간에 일본도 대륙 침략에 가세했다. 만주를 놓고 일본과 러시아가 충돌했고 

1905년 러일전쟁으로 비화했다. 이 전쟁에서 일본은 유대인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거의 패전 상황에서 군비 마련이 시급할 때, 뉴욕의 유대인 금융가 야곱 시프가 거액의 전쟁채권 판매를 선뜻 주도해 러일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일왕이 야곱 시프를 초청해 최고 훈장을 수여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1930년대에 유대 국가를 만주에 건설하자는 국제적 제의를 했다.

일본은 유대 자본을 활용해 만주를 개발하고 이들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사실 그즈음 만주에는 러시아 출신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이들의 만주 이주는 크게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900년대 초 러시아는 뤼순항을 점령하고, 만주 개발을 위해 러시아인들의 만주 

이주를 독려했다

그러자 반유대주의에 시달리던 러시아 유대인들이 종교의 자유와 비즈니스 기회를 

찾아 만주로 이주해 왔다. 이후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을 피해 온 유대인들이 

합세했다그 뒤 철도 건설 붐과 은행 개설로 유대인 숫자는 더 불어났다.

그 무렵 하얼빈이 대표적인 유대인 도시였다. 상업 지역의 80%가 유대인 소유였다고 한다하얼빈은 20세기 초 동북아의 대표적인 국제도시였다. 19국의 영사관이 

하얼빈에 들어와 있을 정도로 인종 용광로였다

당시 하얼빈의 외국인 인구는 도시 인구의 절반이 넘는 19만 명이었다이 중 2만 명이 유대인이었다.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 가문이 하얼빈 출신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 더 많은 유대인이 몰려온 건 히틀러 등장 이후이다

1930년대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은 극심한 사회 혼란을 불러왔다. 이 틈을 타 1933년 

나치 정권이 탄생했다히틀러는 아리안족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열등한 

인종을 청소해야 한다는 망상을 갖고 있었다.

1935년 도입된 뉘른베르크 법을 바탕으로 유대인 차별이 가해졌다.

1938년에는 반유대 폭력이 시작되었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유대인을 가두는 게토가 다시 만들어지고 탄압은 더욱 거세졌다.


유대인의 탈출을 도운 동양 영사들

 

독일과 오스트리아, 폴란드 유대인들은 탄압이 거세지자 탈출을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갈 곳 잃은 유대인들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자 난민 문제가 발생했다.

19387월 프랑스 에비앙에 32국 대표들이 모여 유대인 난민 문제 처리를 협의했다. 유대인들의 딱한 사정에 동정을 표하긴 했지만, 2차 대전 직전 각국의 민감한 국제관계와 국익 앞에 어느 나라도 선뜻 유대인 난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회의는 소득 없이 끝났다히틀러는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유대인 탄압이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며 고무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 유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오히려 동양 외교관들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주재 중화민국(현재 대만) 영사관의 허펑산 영사는 도움을 청한 

유대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가장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상하이로 2~3개월 만에 거의 4000명을 도피

시켰고 1940년 리투아니아 주재 일본 영사관 스기하라 지우네영사도 이웃 폴란드에서 피신해 온 유대인들에게 일본 통과 비자를 발급해 수천 명의 유대인을 살렸다.

이렇게 해서 2차 대전을 전후해 유럽에서 피란 온 2만여 명 등 25000명의 유대인들이 상하이 일대에 거주했다. 어느 나라도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 난민들을 중국은 받아들인 것이다.

1949년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그제야 이들을 받아들여 중국 내 유대인들은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으로 떠났다. 지금 상하이에 사는 유대인들은 2000명 남짓이라 한다.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1969년 일본 영사에게 훈장을 수여해 고마움을 표했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는 상하이시에 감사를 표하고 2000년에 야드바샴(이스라엘을 도운 의인의 전당)’에 허펑산을 동양인 최초로 등록시켰다. 대만 정부도 2015년 이미 고인이 된 허펑산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출처 : daum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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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부자의 언어 - 어떻게 살아야 부자가 되는지 묻는 아들에게 리더스원 큰글자도서
존 소포릭 지음, 이한이 옮김 / 윌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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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작품은 나를 비롯한 상당수의 덜 떨어진 인간들이 꼭 그렇지는 아닐지라도 뚜렷한 실력이나 남보다 뛰어난 능력도 없는 주제에 막연히 하늘만 보고 부자가 되기를 꿈꾸며 살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치를 제고시키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는데,

본 작품은 속물들이 갖고 있는 상투적이고도 막연한 감상을 벗어버리지 않고 작품을 접하게 되면 실망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되는 그런 작품일 공산이 아주 크다.

하지만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위와 같은 속물적 목표가 아닌 큰 인간’,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길라잡이,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진솔한 조언을 해 주는 작품으로 여긴다면 좋은 독서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그 이유는 해당 작품을 읽어본다면 내가 왜 이렇게 이야기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본 작품은 예비 부자를 위한 작품이라기 보다 인간의 기본도리요, 사회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적 자세를 언급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여겨지는데결국 그런 기본에 충실한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작품 전체적으로 금과옥조와 같은 문구들의 향연이었다.

결국, 나는 이 글들을 읽으며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의 반의 반이라도 내가 실행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부자가 아니라 성인군가가 되어 있겠다라는 생각을 

크게 갖게 한 시간이었다.

작품에서 얻는 여러 이야기를 해 봐야 나만의 로맨스다. 그저 모두 그러모아 정리해 

보았다.

 

- 뿌리가 깊다면 바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 승자는 신이 주신 자신의 재능을 알아차린 사람이다.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자신이 가진 힘과 무관한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모두가 천재다라고 말하면서 나무에 오르는 재능으로 물고기를 판단

  한다면 물고기가 멍청하다고 믿으며 평생을 살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 새로운 세상은 귀 기울이고 행동하는 자에게 자연히 열리게 되어 있다.

  우리는 목적이 있는 인생을 추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태어났다무엇이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의 모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 부자는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이다

  돈의 노예가 되기보다 돈을 다스리는 주인이 되고, 돈으로부터 인생을 속박 당하지

  않는 것, 이것이 부자가 되고 싶은 가장 정확하고도 유일한 이유.

- 하루의 시간은 모두 하나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부는 욕망을 씨앗 삼아 자라난다.

- 돈은 산소와 같아서 부족해지기 전까지는 중요한 줄 모른다.

- 거둔 것들로 하루하루를 판단하지 말고, 그날 심은 씨앗으로 판단하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시간을 충실히 쓰지 않는다면 타고난 재능은 아무 소용이 없다. 부를 포함해 우리가    욕망하는 삶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가 받아 든 결과물은 우리가 보낸 시간을 반영

  한다.

-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것이 일을 제대로 하는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즉, 제대로 된 일을 한다는 말은 목표한 결과에 다다를 수 있는 효율적인 일을 한다는

  뜻이다.

- 명확하게 목표를 세우고 자신의 효과 활동들이 무엇인지 성실히 찾아 나가라

  찾고 나면 큰 결과를 내는 그 작은 행위를 하는 데 시간을 써라.

- 우리가 한 행동들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면, 최선의 활동들을 

  하는 데만 시간을 쓰도록 일정을 조정하라.

- 효과 시간은 가치 있는 성과를 쌓는 벽돌 같은 것.

- 성공은 때로 하고 싶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을 근간으로 한다.

  일은 친구이지 애인이 아니다. 그것도 수수하고 오래 사귄 친구이다.

-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

  --->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지금 있는 자리에서

- 경제적 안정이 신념, 결과에 대한 확신, 영향력을 작동시키는 내면의 힘에 있고 가장

  바라는 일에 생각을 집중하면 경제적 안정은 저절로 따라옴을 알게 되었다.

- 특별한 삶은 시간을 희생시키고, 평범한 삶은 꿈을 희생시킨다.

- ‘고통은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준비되지 못한 마음가짐에서 온다.

  ---> 고난은 좌절이 아니라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의 정신은

        갈등으로 인해 더 단단해진다.

   ---> 잔잔한 바다는 항해 실력을 늘려주지 않는다

   ---> 쉬운 삶을 기원하지 마라. 강한 사람이 되길 기원하라.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을 기원하지 마라. 일을 감당할 힘을 기원하라.

        짐이 가볍기를 기원하지 마라. 등이 더 튼튼해지길 기원하라(시어도어 루스벨트)

- 행복은 문제없는 삶이 아니라 문제를 극복하는 삶에 있다.

-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첫 번째이자 마지막 일은 위기를 버티고, 위기로 인해 

  망가지지 않는 것 (어니스트 헤밍웨이)

  견뎌라 그리고 더 나은 일을 위해 자신을 지켜라(고대 로마시인 베르길리우스)

- 햇빛을 보고 싶다면 태풍을 견뎌라.

  비극 자체보다 비극을 대하는 우리의 반응이 인생을 결정한다.

- 모두가 선망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비극이 있다. 하지만 비극은 그것이 핑계가 될 때    진정한 비극이 된다.

- 행동하지 않고 말만 하는 사람은 잡초로 우거진 정원과 같다.

- ‘언젠가라는 단어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오직 용감하게 뛰어드는 사람에게만      대답해 준다.

-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려면 미지의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 식물이 태양을 향해 자라는 것처럼 인간 역시 늘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 한 사람의 수입은 자신이 한 일이 필요한 일인지, 자신이 그 일을 얼마나 잘 해냈는지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기여했는지와 등가다.

- 사람들은 1년 안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자신이 10년 안에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

- 크든 작든 가치 있는 성취는 모두 시작과 투쟁과 승리의 단계를 이룬다.

  무슨 일이든 5년간의 개혁으로 가능하다.

- 움직이는 육신은 움직이려 하고, 휴식을 취하는 육신은 핑계를 수없이 찾아낸다

  일은 결국 시작이 반이다. 행동을 시작하는 것으로 각각의 일을 정복할 수 있다.

- 생산적인 삶이란 과거 수많은 씨앗을 뿌린 결과이다.

- 노력은 걱정을 자신감으로 바꾸고 피로를 활기로 바꾼다.

- 우리가 정복해야 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어떻게 하면 자기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실행이 우선이다. 성취하겠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믿고 어떤 

  대가도 치르고, 어떤 역경도 이겨내며, 실수를 극복할 수 있다. 자신을 믿을지 말지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 성취감이 있는 일을 찾아라. 성취감 있는 일이란 각자의 다양한 가치, 성향, 재주

  야망, 내면의 목소리에 부합하는 것이다.

- 조심성 없는 야망은 브레이크 없는 버스나 마찬가지고, 용기 없는 야망은 열쇠가 

  없는 버스와 마찬가지다. 부는 조심성과 용기를 적절히 지닌 사람을 좋아한다.

- 실패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최악은 성공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루스벨트)

- 믿음의 눈으로 보는 방법은 이성의 눈을 감는 것이다. 비현실적이라는 건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능력은 목표의 크기에 맞추어 성장하게 되어 있다.

- 친구는 삶이란 정원에 핀 꽃이다.(메리 엔젤브레이트)

- 부정적인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라. 가장 탐나는 

  목표에 초점을 맞춰라.

- 보통 이상의 노력에는 만족감이 따라오지만 보통의 노력은 후회를 남길 수 있다.

- 신성한 노력은 한 사람이 지닌 잠재력을 끝까지 짜내는 분투를 말한다.

- 자신에 대한 믿음과 명확한 목표들은 이전에 알아채지 못한 기회들에 빛을 

   비추어준다.

- 하루하루는 영원의 씨앗이고, 우리는 그것을 뿌리는 정원사다.(에리카 해리스)

- 오늘 보낸 시간이 내일을 말해준다. 방향을 가지고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방식을 견딜 수 있다.

- ‘감사는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감정이다.

   먼저 감사할 때, 성공은 순차적이고 자연스러운 사건처럼 느껴지고, 또 그렇게 된다.

-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면 믿음이 생긴다.

  내가 해 낼 것이라는 믿음, 주변의 모든 상황이 나를 위해 잘될 거라는 믿음 말이다.

- 소망이 충족되었다고 미리 불타는 듯한 감사를 느끼는 것은, 잠자는 거인을 께워서      놀라은 결과를 안겨준다.

- 감사가 기회의 문을 열어준다면, 확신을 그 문을 발로 차서 확 열어버리는 것으로 

  확신은 현실적인 투쟁에서 작동하는 마음 상태다.

- 감사는 평화로울 때의 믿음이고, 확신은 마음이 어지러울 때의 믿음이다.

- 감사는 사건이 일어나게 하고, 확신을 그런 나날들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해 준다.

- 절대적 믿음은 우리를 강인하게 만들어 준다

  확신이 없다면 결코 목표를 이룰 수 없다.

- 마음은 정원, 생각은 씨앗이다. 꽃을 키울 수도 있고, 잡초를 키울 수도 있다.

- 기도가 신을 바꾸지 못한다면 기도하는 자신을 바꾸어라.

- 좋지 않은 기분이 든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 편안함은 모든 감옥을 다 합친 것보다 더한 감옥을 만들어낸다.

- 술은 자신의 상황에 안착한 사람에게는 괜찮을 수 있지만 자신만의 환경을 만들어

  나가느라 애쓰고 있는 사람에게는 형편없는 전략이다.

- 부를 열망한다면 불확실성과 취약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우리는 영원히 안정보다

  야망을, 쉬운 것보다 노력을, 핑계보다 분투를, 안주보다는 기여를 선택해야만 한다.

- 불편은 우리가 현재 있는 곳과 있고 싶은 곳 사이의 다리이다. 우리는 그 다리를 

  건너거나 지금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

- 성공이란 계속 문제를 현명하게 다루어나가는 사람들에게 있다.

- 인생이란 즐거운 선택의 연속이 아니다. 힘과 결단력, 그리고 근면함을 요구하는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걸으면서 잉태된다.

  어떤 생각이 걸으면서 떠오른 게 아니라면 절대 그것을 믿지 말라.(니체)

- 행동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앙리 베르그송)

- 전략의 기초는 무엇을 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것이다. 뭘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게

  뭘 할지 결정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다.(스티브 잡스)

-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주변의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야 한다.

- 지성은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다.(스티브 호킹)

- 삶이든 소설이든, 수정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 우리가 얻은 것은 우리가 배운 것들과 관계가 있다. 지식이 증가할수록 선택할 수 

  있는 것 역시 많다.

- 스스로를 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가지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것.

- 사람들은 당신이 말한 것과 행한 것은 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했는지는 절대 잊지 않는다.

- 문제에 저항하면 고통이 밀려올 수도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보의 시작이다.

- 시간은 말을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을 듣지 못한다.(마이클 거로펄로)

- 마음을 따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끔은 그렇게 해야 한다. 마음이 듣는 것을 늘      눈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럴 때는 때로 눈을 감는 것이 현명하다.

- 실패의 99%는 변명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일어난다.

  반면에 성공은 하루하루 반복된 영향력 있는 작은 일들의 결과다.

- 거둔 것들로 하루하루를 판단하지 말라. 그날 심은 씨앗으로 판단하라(스티븐슨)

- 질문할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성공할 것이다. 꿈은 질문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모든 삶의 기회는 침묵하면 사라지지만 질문은 열어준다.

- 후회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이다. 타인은 물론 스스로를 관대하게 용서하라.

- 투자의 위험은 잘못된 행동에 의해 더 많이 발생한다.

  위험은 두려움의 위협이나 탐욕의 유혹으로부터 충동적으로 일어난 결과다.

- 조바심은 절대 돈을 증식시키지 못한다

  부는 인내하는 자에게 찾아오는 달콤한 꿀이다


작품의 말미에 언급되고 있는 ‘10가지 부의 씨앗‘15가지 부의 덕목은 개인별

환경별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에 여기에 정리하지 않겠다. 작품 전체에서 이야기

되고 있고 강조하고 있는 사항을 잘 준수 한다면 그것이 부의 씨앗이고 부의 덕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작품을 통해 부자가 되고자 하려는 자세이던, 성공하려던 자세이던 간에 내가 느낀 

4가지 point

 

POINT 1. 매일 고독한 시간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침묵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초점을 좁히지 못한다면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영원히 흘려 보내게 될 것이다.


POINT 2. 목표는 평범한 도전을 위한 게 아니다. 우리가 현재 자리에서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꿈을 위한 것이다. 목표가 있으면 우리 자신도 미처 몰랐던 내면의 

             지혜가 발동된다. 목표는 이성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

 

POINT 3. ‘가장원하는 것과 지금원하는 것을 기꺼이 맞바꾸라.

             행동의 동기가 마음 깊은 곳에 있을수록, 저항을 견뎌내고, 핑계를 만들지 

             않고, 희생을 선택하고, 좋은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따르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될 것이다.

 

POINT 4. 주의를 기울이고 의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절망의 치유제이다.

             에너지는 주의를 기울이는 곳으로 흐른다. 내면의 목표를 단단히 붙잡으면

             모든 일이 스스로 생각하는 그 모습이 된다

             최악의 경제적 고난을 극복할 해결책을 마음에 품어라목표를 신뢰하면 

             그곳에서부터 계획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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