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비아 만나다 시리즈
마크 래리모어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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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전문가), 비전문가(3)


주님에 다가선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심자 수준인 나의 신앙심을 제고하기 위해

본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다.

성서 욥기는 대체적으로 위로를 주는 책, 자기 수양을 돕는 책, 혼란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가슴에 담고 또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욥에 대한, 욥기가 품고 있는

종교적 의미를 알아보자는 아주 단순 무식한 수준에서 작품에 도전했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혼쭐이 난 작품이었다.

종교학 및 종교철학 공부를 3년 이상(?) 하였거나 현직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 아니면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무지몽매인 종교적 문외한은 가급적 도전하지 않기를 권유합니다.

 

생뚱맞게 욥기는 누가 지었는가, 욥기는 여러 작품이 짜깁기 된 것이다. 욥은 유대인인가?

등등 성경을 단편적으로 접한 나에게 작품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런 질문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시련의 연속으로 몰고가는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와 같은 종교적 깊이가 낮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신 저명하신 분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단문 위주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해당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그 내용도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것은 확신이 서지를 않지만 .......

 

참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욥의 유언 필사본은 10세기 사본이며 오늘날까지도 욥의 전설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설명이 담긴 문헌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깊이가 낮은 분들은 가급적 본 작품을 외면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하더라도 말입니다.

 

[서 론]

- ‘욥기는 분명 성서에 속한 어떤 책보다도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데 악의 문제에 관한

  성서의 답변으로 이해되곤 한다.

-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에서 무고한 이들은 언제나 고통 받는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들은 도울 방편을 마련해 두신다고 말한다.(P 9)

- 그리스도교 장례 의식을 치를 때 성직자들은 의 연설을 인용하곤 했다

  이 인내의 한계를 규정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P 21)

-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욥기의 면모는 그 자체로 욥기를 둘러싼 신비의 일부가

  되었다.(P 24)

- ‘욥기가 제기하는 물음들, 섭리와 악,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 하느님의 본성,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 등은 모두 손쉽게 종결될 수 없는, 종결되기를 거부하는

  물음들이다.(P 24)

- ‘욥기의 중심 대목은 널리 통용되는 지혜를 늘어놓는 의 친구들(엘리바즈, 빌닷소바르)을 

  하느님이 질책하는 부분이다.(P 25)

- ‘욥기의 전기는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욥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즉 자신이 이라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그와 관련된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한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P 32)



[고대 해석자들이 바라본 욥기]

- ‘욥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해석인 인내하는 욥이다.(P 36)

- 그리스도교들은 을 그리스도의 예형(type)으로 보았다. 히에로니무스는 욥기주석에서

  욥이라는 이름은 슬픔과 고통을 뜻한다고 주장. 그는 그리스도의 원형이었다’(P 39)

- 번영은 재앙을 수반한다. 절망이 희망을 수반하듯(P 48)

- ‘의 유언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P 50)

-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네 우리가 주님에게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보여 주실 때까지 인내합시다.

- ‘제임스 쿠걸이라는 유대인 성서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고대 해석자들의 작품

  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빌론 유수 이후 지신들의 경전에 새로운 해석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

   1) 성서는 근본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문헌이다. , 성서에 A라고 적혀 있을 때 흔히 실제 

     의미는 B.

   2) 성서는 당대 독자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성서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책이 아니다. 성서는 유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다.

   3) 성서는 모순이 없으며 실수도 없다.

   4) 성서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주셨으며 하느님은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혹은 예언자들을 

     거쳐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P 60)

- 절망에 사로잡힌 채 울부짖는 의 말, 그의 분노 어린 말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성서 

  전체의 것,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의 것이다.(P 62)

-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에게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 열쇠는 신약 성서였다.(P 75)

- 모세의 율법을 읽는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으며 이 너울은,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주님(예수)께로 돌아갈 때에 비로소 벗겨진다.(P 75)

- 중세 그리스도교의 토대가 된 기에 관한 저작은 하나다. 바로 기원후 578년에서 595

  사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저술한 욥기의 교훈들이다.(P 77)

- ‘은 경건한 인물이지만 더 많은 의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P 78)

- 자신이 덕이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영혼을 해지는 것은 없다.

-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평온함이다.(P 82)

- '고통'은 죄라는 ''을 퇴치할 때 필요한 '화학요법'이다. 문제는 하느님이 사악한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선한 사람들을 치료

  하지 않는 것이다.(P 83)

- 어떤 행동이 그 당시에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가치 있는 예언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듯 

  어떤 상황이 역사적 차원에서는 미덕이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악인 경우가 

  자주 있다.(P 85)


 

[논쟁 속 욥기]

- 에피크로스는 물었다.

  “신은 악을 없애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악하다. 신은 악을 없앨 수 있으며

  악을 없애려 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 92)

- ‘욥기는 하느님의 존재 여부를 묻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성을 묻는 책이다.(P 93)

- ‘욥기는 신성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곡,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섭리에 관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문헌이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과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욥기는 섭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참여하는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이다.(P 95)

- ‘욥기는 인간이 가장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철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P 96)

- ‘과 친구들의 발언은 그것이 긍정하는 내용보다는 부정하는 내용 때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P105)

- 악은 엄밀한 의미의 실체가 아니며 본질상 선한 모든 피조물에게 기생충처럼 붙은 결핍

  혹은 왜곡이다.(P110)

- 중요한 것은 섭리(우리는 이를 알 수 없다)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다(P115)

-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칼뱅에게 욥기가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피조물보다 너무나 높이 있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올바름의 규범조차 궁극적이지 않음을 욥기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컬뱅이 보기에 욥기를 읽는 실마리, ‘욥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논쟁에서 은 

  선한 편을 고수하는 반면, 그의 적대자들은 악한 편을 고수한다는 점이다”(P121)

  "‘과 친구들이 재기하는 물음은 동일하다. 즉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

  하는가? 그에 따르면 은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때 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의 친구들은 다른 누군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의 친구들처럼 응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P122)

-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는 겸손과 침묵을 지키며 다른 이가 고통 받을 

  때는 그를 배려하고 위로한다.(P125)

- 섭리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는 하지만)하느님에게서는 멀고 인간 동료들에게는 가까운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P130)

 


[공연되는 욥기]

- 수 세기에 걸쳐 성인은 나병 환자,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P135)

- 그리스도교인들은 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P139)

- ‘이야기는 참되고 확실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야기인 것 못지않게 거짓 위안과

  감언이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P150)

- 구원에 대한 믿음은 섭리에 대한 확신과 인내만큼이나 성취하기 어렵고 유지하기 힘들다.

- 하느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인내를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P160)

- 짧은 생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계속 애통해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현명한 이들은 이 세계라는 깊은 구렁텅이를 순례하는 동안 인내심을 기른다.(P163) 

- 철학자들은 이성 너머 저편에서 오는 도움이나 통찰을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적어도 고결한 

  습관을 갖기 위해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다른 의심으로 대치하곤 했다.(P168)

 


[신정론과 욥기]

* 신정론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하나님의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를

  학문적으로 모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는데, 왜 세상에 악이 존재 하는가? 이 세상에 모순이

  이렇게도 많은가?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볼 때, 혹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은

  아니신가? 하는 회의(懷疑)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신정론이다.

   그리스어로 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올바름을 뜻하는 디케(dike)'를 합쳐

  신정론(theodicy)'라는 말이 나왔다.(p186)

 

-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느님이 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활동하는지

  설령 활동한다 해도 신이 정녕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물었다.(P182)

- 하느님은 왜 악을 용납하는가? 사람들이 악을 당연하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여기지 않게되자 

  악은 독특한 철학적 문제가 되었다.(P185)

- 칸트는 욥기를 성서, 교회 전통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도덕적 자율성을 지니고 신과 

  대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았다.(P192)

- 자신의 동기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 이해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진다.(P197)

- 참으로 고귀한 일은 고통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이다.(P197)

- 종교는 도덕 법칙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칸트),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코헨) (P198)

- 고통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처벌이다.

-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은 성서에 나오는 주장이나 성서가 그리는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너머 핵심에 있는 시적 진리를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욥기는 그 중심이 

  되었다.(P202)

- ‘욥기에 담긴 신의 선물은 욥기가 표현하고 또 빚어내는 인간의 감정이다.(P205)

- 자신의 경건함으로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면서도, 경건함 때문에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인정했다. 바로 그 사이에서 사탄이 나왔다.(P222)

- 모든 고통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정의

  결과다.(P223)

 

 

[추방당한 욥기]

- 하느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이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욥기 28:28)

  이 구절을 욥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P234)

- 역사 비평은 근대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좋은 도구를 활용해 성서를 이해하려는 선의를 담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P237)

- ‘이 보여 주는 인내는 그의 비판과 저항을 포함할 때 더욱 심오해진다.(P250)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침묵만이 궁극적으로 기억과 희망이라는 역설적 임무에 온전히

  부합하는 실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침묵이 전도서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보여 주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P259)

- 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의 이름 (EL)'은 물음을 뜻하는 말인 셰엘라(she'elah)'안에 머물고 있다.

  ‘은 자신이 차갑고 냉소적인 세계(참된 친구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하느님은 외로운 인간과 자신을 연결하고자 한다.(P260)

- 하느님과 투쟁을 할 때조차 은 하느님이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하느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할 뿐이다.(P265)

-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임을 알았다. 동시에 그분이 자신들을 

  박해함을 받아들일 때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P266)

- ‘은 커다란 상실 가운데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현대인의 인도자다.

   기도서 이후로 은 개인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P273)

- ‘욥기는 신이 부재한 것처럼 보일 때, 세계가 윤리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때, 특히 정의가 

  실추되고 의미가 부정되어 상실과 고통을 겪을 때 오히려 신의 존재를 가장 예리하게 감지

  할 수 있다는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다.(P273)

- ‘욥기는 예언적 행동과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관상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P281)

- ‘욥기는 삶의 한가운데서 상실을 겪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천민들, 희생양들, 사대의 

  이단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다.(P283)

 

 

주워들은 이야기

 

- ‘성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책들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비블리아에서

  나왔다.

- ‘미드라시란 히브리 용어로 성경 주석의 설교 방식을 뜻한다

- 성무도일 : 매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성직자, 수동자들이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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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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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영국의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과 한국의 고승 네 분(성파, 도법, 금강, 정관)과의 평범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원초적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이야기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개신교 신자인 이같은 작품을 접한 이유는 편협 된 종교관에 매몰되어 있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노력(?) 때문으로 속된 말로 좀 있어 보이려고 접하게 되었다.

 

난 개신교도이지만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 논리인 내 종교만이 최고다 라는 생각은 갖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나의 종교와 종교적 신념이 중요하면 타인의 종교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기에 기꺼이 이런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거의 역적 수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아닌 것 아니다 -

가끔 언론을 통해 내 종교가 좋은 것이니 타 종교를 폄훼하는 일부 몰상식한 개신교도들의

사고치는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속상하며 진정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의 절대자께서 진정 그런

그들의 저급하고도 몰상식한 모습을 좋아 하실런지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절대 아닐 것이다.

 

최근 정권이 바뀌면 새로이 출범하는 정권이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경내를 관람하던 어떤 옹졸,

치졸빤스같은 인간이 불상에 절하는 다른 사람을 보고 난리를 친 사건이 일어난 모양인데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개신교도인 나만이라도 내 종교 외의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또 서로를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상대 종교에 대해 존경은 아니더라도 폄훼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런 자세가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순복음 조용기 목사님을 부처님 오신날

조계종인지, 동국대인지를 방문해 종교와 관련된 특강을 과거에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타 종교의 거두께서 상대 종교시설에 가서 특강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상대편 종교인을 초빙한 불교인들에 대해서도 높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그들의 성숙된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작품 속에서 눈에 들어온 대목은

-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이런 기분이 들 때는 바로, 나 자신에게 

   ‘어떤 틀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 자기의 틀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는 것은 상대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내가 그 을 깨야 한다.

라는 대목으로 나이가 들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위의 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종교를 떠나서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 타협을 모르는 

정치인들, 갈라치기를 주업으로 삼고 사는 인간들은 위 문구를 잘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 대목은

- 자신이 준 것만 따지는 사람은 불행하고,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대목은 성경의 말씀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었다고 생각하며 매번 위 문구처럼 살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를 않다. 그런 나는 오늘도 나의 절대자에게 위 문구처럼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품 제목 오래된 질문은 답이 없어 물어본지 한 참 지난 오래된 질문이 아니라 세상이,

시간이 흐르며 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즉, 구성원들이 쉼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던져진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도 역시 변할 수밖에 없기에 외견상 질문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질문이 아닌 오늘을 사는 모두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마음을 잘 추슬러 보라는 죽비적 가르침을 던져주려는 작품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 ‘생명이란 DNA나 두뇌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교류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 삶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 아득한 심연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재대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쓸데없는 고통의 연쇄에 매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깨달음은 일상과 동떨어지고 신비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몰랐던 걸 알았다’, ‘잃었던 것을   

  찾았다‘, ’가려졌던 것이 벗겨졌다등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나의 참모습, 이 세상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확신하는 경험적 지혜가 바로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에 맞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 지금 현실적인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당면한 문제를 줄일 수 있는지 묻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고통은 그 자체로 우리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그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괴로움의 정도가 달라진다. 쓸데없이 과도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런 고통이 대부분 우리가

  관념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고통은 외부에서 주어진 상황이나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유래

  한다. 붓다는 이를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찾았다.

- 남들이 우리에게 붙인 이름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것이 바로 지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중도라 부른다.

-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라.

- ‘염화 미소란 말로 통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다.

- 시비, 분별, 번뇌, 망상이 있기 이전의 마음, 비교하기 이전의 마음, 나라고 하는 개념이 있기 

  이전의 마음, 부처님은 항상 그런 마음으로 행동한다.

- 그대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대에 의지하여 내가 존재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그대는 무한히 높은 자요, 귀한 자요, 고마운 자입니다그대 앞에서 나는 무한히 낮은 자입니다.

  끊임없이 나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어야 하는 자입니다.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몸짓이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이란 주체적으로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삶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 자존심이 센 사람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남과 견주어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 ‘좌선(坐禪)’이란 번뇌와 망상이 없는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로 앉는 것을 말하는데

  ‘()’란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것을 진짜 앉아 있다고 말한다

  ‘()’이란 어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고요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 ‘화두는 반드시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거 계속 반복해서 되뇌면서

  평화로운 본연의 마음 상태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 감정에 휘둘리거나 쉽게 끌려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금강이라 한다.

- 참선은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

- 진정한 삶의 변화는 저 멀리 특별한 장소에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 노예로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주인으로 사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이다.

- 삶은 내가 마음먹고 행동하는 대로 살아지고 창조될 뿐이다.

- 남과 자꾸 비교할수록 내 행복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처한 지금의 환경과 함께하는 사람들

  그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교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 동양에서는 왼손을 ()’라 하고 오른손을 ()’이라 한다.

  ‘체용론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동양 철학의 아주 오래된 패러다임이다.

  ‘는 사물의 본체나 본질을 의미하고, ‘은 사물의 작용이나 현상을 의미한다.

- 사찰음식에는 마늘, , 달래, 부추, 아위 이렇게 5가지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는다.

-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것은 따로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이다.

 

* 출판사에 표하는 이의제기

- P 46쪽에는 도법스님이 17살에 출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P 24쪽에서 이미 도법스님은

  18살에 출가한 것으로 씌여져 있다.

  독자는 이런데서 출판사에 대한 신뢰, 편집인에 대한 신뢰를 눈여겨 보게 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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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 - 타고난 절대군주가 뿜어낸 애민의 카리스마 숙종의 진면목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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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국왕은 숙명이요 운명이다. 어떤 국왕을 만나느냐에 따라 한 시대, 한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한 개인의 운명까지 결정된다는 뜻으로 숙종에 대해 평가한다면 한 마디로 

쇠잔한 조선에 힘을 불어넣은 임금

이라 평할 수 있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는데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마주한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또 다른 리더 숙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작품을 통해 역사 속에 

남긴 그의 자취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중 가장 두드러진 

사항은 아마도 조선판 마키아벨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고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은 아마도

숙종을 끝으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염원인 북벌(北伐)’에 대한 의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도 

일부 확인한 아쉬운 시간이었다.


조선 19대 왕 숙종(肅宗)은 재위기간 4510개월로 그의 명칭은 사후에 신하들이 붙인 묘호(廟號)(, 엄숙할 숙)손에 수건(, 수건 건)을 들고서 깊은 연못(, 못 연)에서 일을 한다는 것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매우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연못에 임하듯이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숙종의 아버지 현종이 17녀 중 독자였고, 숙종 역시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사이에서 13녀로

독자로 1667(현종 8) 세자위에 올라 10세 때 김만기의 딸(인경왕후)과 혼인하여 딸만 둘을 

두었으나 자식들은 어려서 모두 요절했으며 부인 인경왕후도 20세에 천연두에 걸려 발병 8일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어떤 이유로 그런 평가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경왕후가 장수하였다면 숙종대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역사적 평가가 있다.

 

숙종을 거론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장희빈을 함께 언급하며 숙종을 조선의 여타의 

왕들처럼 여인을 밝혔던 왕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함이 없는데 이는 일부로 전체를 평가하려는 

편협한 생각이라고 본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숙종 재위기간 행한 여러 정치적 조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14세의 어린 나이에 권좌에 올랐으나 나이를 뛰어넘는 그의 정치적 행보만 봐도 숙종에 대한 

섣불리 내린 평가가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숙종은 신하들에게 엄숙했으며 신하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던 반면 공포와 경계의

대상으로 말 그대로 엄한 왕이었다고 한다.

숙종의 숙청([肅淸] 혼란한 세상, 그릇된 일 따위를 엄하게 바로잡음 혹은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을 추방하거나 제거함)은 무자비했고 또 국왕으로서의 위엄을 강조할 때는 서늘한 늦가을 

같았다고 한다.

그 결과 조선 ‘4대 사화를 통해 죽은 선비 모두를 합쳐도 숙종에 의해 목숨을 잃은 선비 숫자보다

훨씬 많았음에도 숙종을 어느 역사가도 폭군(暴君)‘이라 부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에브러험 링컨은 재위기간 동안 남북전쟁이라는 특수 사정이 있어 그랬다고는 하지만 언론을

  그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탄압했고, 통폐합하는 등 그 어느 대통령보다 언론을 심하게 다루었음

  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미국인들은 링컨을 언론을 탄압한 저급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과 동일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링컨이 이 땅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격변의 시기마다 자주

  심판 대상이 되어 아마 몇몇 무늬만 사학자인 저질 폴리테이너들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자리

  차지하려는 이상한 놈들이 주도하는 무늬만 이상한 단체인 것들에 의해 폄훼되고 평가 절하

  되어 국회라는 곳에서 언론 압살의 주역으로 평가되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겪은 뒤 국립현충원 

  명부에서도 삭제되었을 것이다 -


숙종의 성격내지는 통치술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는 사례는 태종이나 세조는 숙청을 단행할 때

최소한 관련 공신(功臣)만은 어느 정도 남겨놓고 정리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숙종은 한순간에 

모든 신하를 전격적으로 단칼에 바꿔버리는 환국(換局)을 단행한 인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

데 숙종은 자신이 계획한 거사를 실행함에 있어 조금의 미련도, 아쉬움도 남기지 않았던 인물

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숙종은 알면 알수록 과단성이 강하며 권위와 능력을 겸비한 왕으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다했던 리더로 평가할 수 있는데 작품에 나타난 숙종의 정치적 행보를 통해 얻은 강한 느낌을 

정리해 보면

* 본 작품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특정 사안에 대한 원인과 배경, 처리 결과에 대한 분석보다는 숙종시대에 

  활약했던 관련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 인물과 관련된 집안 설명이 많아 사건 내용에 집중했던 여타의 

  작품과는 차이가 있었다.

절대 왕권에 의해 운영되던 고려와는 달리 신하 및 참모에 의해 국가를 통치하고자 하는 이념이

강했던 조선은 좋게 이야기해 신하들의 자율성이 극대화된 혹은 여론 수렴 창구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역으로 이런 현상은 자칫 왕권을 무시하는 행위로도 비춰질 수도

있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항이 사문난적이라는 단어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던 당시 문관들의 절대권위자

였던 우암 송시열은 어린 나이에 권좌에 등극한 숙종을 가볍게 보고 - 송시열, 그는 나름 이유와

사정이 있어 그랬겠으나 왕의 출사 권유를 습관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은 내가 왕이라도 그런 행동

을 보이는 인간을 왕은 자신을 낮추어 본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 4번에 걸친 숙종의 출사 권유를

외면하는데선대왕부터 이어져 온 왕권의 정통성을 의심케 하는 복제논쟁과 현종(숙종의 

아버지)묘지문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조정과의 악연을 그의 제자들이 이를 옹호한다고 무리

하게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숙종의 미움을 받아 큰 화(사화, 士禍)를 자초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서인에서 남인으로 정권의 주도 세력을 바꾸지만 숙종은 서인들은 다루기는 어려우나 신뢰할 수 있었던 반면 남인은 다루긴 쉽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숙종은 참모들을 통치를 위해 자기를 보좌하는 집단으로 여기기 보다는 

단순히 자신의 정적 제거를 위한 수단이요 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결과숙종이 직접 특정인을 지명해 그를 탄핵시키도록 노골적으로 3사를 압박하는 일이 예사였다고 한다.


이즈음 되면 최근에 일어난 우리의 탄핵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숙종에 의해 주도되었던 당시의 탄핵과 최근 우리 정치사에서 남발되었고 지금도 툭하면 터져 나오는 다수당에 의해 추진되는 탄핵을 비교해 보면,

숙종의 탄핵은 절대권자가 지향하는 국정방향 내지는 의도하는 정치적 야망에 반할 경우 이에 

해당하는 집단 내지는 개인에 대한 정리 차원에서 추진되었다고 한다면, 작금의 탄핵은 민생을 

대표하는 다수당이 자신들의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다고 판단되면 민생 문제와는 관계없이 자신들이 속한 정당의 목표 달성을 위해 탄핵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마치 중국 

문화혁명 시대홍위병들이 순수한 소년 홍위대를 이용해 난리치던 방법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내 눈에만 그렇게 비춰지는 것일까?


듣보잡으로 살다 뱃지를 달게 해 준 리더에게 보은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이 앞장서서 난리

치는 모습과 정치 전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나라 걱정하는 질 낮은 행동을 보면서 웃음 이전에 눈물부터 나오는 것은 왜일까?

마치 어린이 성폭행범인 XX’이가 어린이 성범죄 예방 및 인권재단 이사장을 뽑는 단체에 

회장후보로 입후보하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또 왜일까?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특히 겸손이 힘들다고 난리치는 어떤 고매하신 안면 불량 자칭 언론인은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를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리며 연일 예술적으로 난리치면서 뚫린 입이라고 확인할 수도 없고,

취재원 보호라는 미명하에 첩보운운하며 마구 떠들어대도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는 특정 집단과 그에 편승해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하면서 수수방관을 가장하고 오히려 응원하는 

듯한 모습에서 그들이 진정 이 땅의 진정한 참 언론인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고는 하는데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더욱 애처로운 것은 무슨 일만 벌어지면 고발장 접수하러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서민의 대변인이 아닌 고발장 접수를 주 업무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수준 낮은 인간들이 더욱 문제이고 웃기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의도에 민생 챙기라고 보내놨더니 그런 일보다는 무슨 일만 생기면 고발장 접수하러 몰려다니고그런 모습을 남기겠다고 기념사진 촬영에만 열중하고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인간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난리치며 접수한 고발장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된 것이 무엇인지 나는 궁금할 따름이며 정말로 있다면 어느 내용인지 밝혀주길 바랄 뿐이다.

하여간 모두가 봉숭아 학당의 맹구 수준의 행동을 하지만 맹구처럼 자신은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눈깔 부릅뜨고 난리치고 있으니 애처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이다.


나는 얼마 전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을 만들지 말자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벌서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수준 낮은 중국 대표라는 저질 인간 아가리에서 드디어 우려되던 사항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미국이 부과한 한국의 관세가 낮아진 이유가 자신들이 미국과 싸운 결과이기에 자신들의 은공을 잊지 말라는 심청이 랩하는 개소리를 했다고 한다. 내가 뭐랬는가...수준 낮은 어느 인간의 혼밥질

과 영혼 없는 쎄쎄 발언 여파는 언젠가 후세에 또 다른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이다앞으로 이 색히들 더하면 더했지 질낮은 간섭질 절대 줄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서해 우리 영해에서 양식장을 위장한 채 해양영토를 넓히려는 야욕이 어떤 형태의 하인리히 법칙으로 나타날지 걱정스런 마음 뿐이며 그런 모습에 대해 쎄쎄라고 또 이야기할 것인지가 자못 궁금하다.


여기에 더하여 더욱 애타는 것은 간첩 때려잡는 관련 법안을 만들지 못하게 해 이제는 중국의 

고등학생까지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국가 안보시설을 촬영해 난리도 아닌 중차대한 시국에 원천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자기 반성적 성찰과 함께 정치인 모두가 합심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없고 이미 판결로 위법이 확정된 문제 사항을 사골뼈 진국 우려먹듯 재탕 삼탕하면서 상대 짓밟기에만 전력투구하는 어느 집단을 보면 공동의 외부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죽일 놈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행동하는 집단의 저의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잘못된 것일까?

 

두 번째는 안타깝게도 숙종시대나 현 시대나 동일하게 지록위마([指鹿爲馬]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제 마음대로 휘두름)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 고사는 너무나 잘 알려진 것으로 중국 진()나라의 조고(趙高)가 자신의 권세를 시험해 보고자 제2(황제 호해(胡亥)에게 사슴을 가리켜 ()’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작금 우리 정치사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거의 유사해 이렇게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특정 정당의, 특정 인물에 의해 위의 고사와 같은 현상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숙종은 3사를 동원해 지록위마를 실현하였으나 작금은 소년 홍위병들을 동원해 곳곳에 조고(趙高)같은 인물이 주도가 되어 숙종 시절 호가호위하던 김석주같은 인물이 여기저기서 나와 

난리치고 있는 모습이 위의 고사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고만고만한 김석주가 나오다 보니 차별화한다고 비슷하게 어필하거나 

밋밋하게 어필하면 자신에게 은전을 베푼 리더에게 찍힐까봐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사사건건 침소봉대하고 같은 문제라도 임팩트를 증가시키려 격한 단아와 문구로 이목을 집중

시키려는 현상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정 집단에만 나오는 현상도 아니다. 모두가 난리다.

대표적인 예가 종교지도자라고 참칭하는 어느 말도 안 되는 인간은 자기 수준의 괴상망칙한 말도 안 되는논리로 통수권자의 헛발질을 찬양하고 이를 빌미삼아 이를 반대하는 인간들은 기회를 

잡은 양 밑도 끝도 없는 제보형식을 빌어 세상을 마구 흔들어 대고 있으며, 민생 문제를 갖고 민의의 전당에서 토의하라고 하면 발제와는 상관없는 사항을 갖고 상대를 면박 주는 저급한 발언을 일삼고 이를 지적해야 할 중립을 지켜야 할 어느 리더는 한쪽에 치우쳐 자신이 왕이 될 상이라고 맹구같은 헛소리만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새 시대가 오면 바뀔 것이라고 외치며 촛불로 정권을 세운 이들도 그들의 정권이 막을 내린 뒤 

장부를 뒤져 보니 만만치 않은 여러 문제 사실이 나오고 있는 등 그 밥에 그 나물이었음이 나타

나며 상황이 좋지 않게 전개되자 반성은 고사하고 상대의 약점을 더욱 더 파헤치는 물타기 작전과 성동격서식 화제 전환용 단어를 주구장창 생성해 내면서 자신들의 선임자들이 저지른 오류와의 단절과 은폐를 유도하려 하나 그게 말같이 되지 않으니 이를 막아보겠다고 전직 고위직에 

있던 어느 인간은 보이는 것만 시원치 않은 줄 알았더니 터진 입도 쓰레기라 주접떠는 것 보면 

대학시절 사람 패 죽이라고 사주하다 전과자가 된 어느 잡독설가처럼 오늘도 자신만 똑똑하고 

예지력이 있다고 외치고 있다.

독설을 날리며 그들의 옛 영화를 구현하고 싶으면 또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잘 났으면 그들의 

전임자들이 유야무야 덮어 버리고 지나간 518 민주화 유공자 명단과 선정 이유, 사드로 중국과 

밀약한 삼불일한에 대해, 혼밥의 달인이 통돼지에게 넘겨준 USB 내용에 대해 조사하자고 왜 

이야기를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으며 이전부터 문제가 있어 이야기되어 와 금번에 문제가 되었던 통계조작에 대해 설명을 시원하게 줄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누구 말처럼 입으로만 반일을 외치고 머리로는 친일하지만 말고 올바른 독설가이고 나라를 진정 걱정하는 인물이라면 동일한 잣대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데 어찌 생각하는지 자못궁금할 뿐이며 이런 

수준 낮은 질문에 답을 못하면 정말로 그대들이 수준 낮은 인간들일 것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갖고 미래를 행해 닥쳐오는 시련을 이겨나가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어 가는 것이다라고했습니다.

우리에게 멋지고도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에 노력을 하시는 

창조적 소수자들에게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 것은 혼란한 세상에 이름 한 번 남겨 보겠다고 

오지랖 떠는 것도 중요하지만 엘라 골짜기에 나뒹구는 누구의 몽뚱이처럼 되지 마시고 아무리

자기의 리더가 말()을 갖고 사슴(鹿)이라 칭한다고 할 때 이를 적극 부정할 수 있는 올바름을 

최우선적으로 지녀주길 당부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에휴...어찌 되었던 나부터라도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원망하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는 가족에게 

욕 안하고 작은 일 갖고 침소봉대하지 않으며 비전과자 출신인 정치꾼이 아닌 정치가를 뽑고자 합니다.

 

오늘도 핏대 올리며 협치와 협력을 입으로만 외치는 창조적 소수자님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비천한 상태로 유배당했고 거기서 종말의 신비한 계시록을 받았고 

민족의 개혁을 꿈꾸던 정약용도 강진으로 비천하게 유배된 다음 목민심서를 썼다고 합니다

부채를 떠안은 채 치명적 마비 ㅇ증세를 앓으면서 구금상태로 지내던 헨델은 세기적 명곡을 

창작했습니다. 영광의 메시아, 할렐루야 대합창은 비천한 상태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런 심정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갈 혜안을 발휘해 주시길 희망합니다.

어느 박수무당 닮은 질낮은 인간이 자장면 쳐 드시면서 터진 입으로 개소리하는 영상이 가끔 

보이던데 우리의 수준 높은 창조적 소수자님들은 진중했으면 합니다.

첨언해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경계하지 않는 자신의 장점은 언젠가 자신에게 두 배의 약점으로

돌아온다는 것과 또 입으로 성공한 자는 반드시 입으로 망했음을 기억하라는 이야기입니다.

 

- 자의대비, 즉 장렬왕후 조씨는 말 그대로 비운의 왕비로, 15세에 인조 16년 인렬왕후 한씨의 

  뒤를 이어 인조의 계비가 되지만 피부병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문제로 인조와 사실상 별거에 

  들어간다.

  인조와 효종 사후 손주며느리인 명성왕후가 수렴청정을 할 경우 자의대비의 존재가 껄끄러워질

  것을 우려해 자신의 가족을 지배세력으로 넣으려 국왕인 숙종을 보필할 사촌 김석주를 등용

  시킨다.

- 숙종의 아버지 현종은 조선 국왕 중에 유일하게 정실왕후(명성왕후 김씨) 한 사람만을 아내로

  두었다명성왕후는 영의정을 김육의 아들인 김우명의 딸로 숙종 즉위 후 일어나는 주요 사건에

  배후 조정자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 14세의 숙종의 명령에 송시열은 대놓고 4번이나 거부하며 항명한다. 아니 게겼다는 게 맞다.

  1) 송시열을 원상에 임명하나 이를 거부

  2) 성균관 유생들의 건의를 받아 요직에 앉히려 하나 이를 거부

  3) 현종의 묘지문을 지어 올리라는 명을 거부

  4) 중추부 판사라는 관직을 제수하나 이를 거부

  숙종은 조선 최고의 호모 폴리티쿠스태종에 버금갈 정도의 정치력을 갖춘 인물로, 집권

  과정에서 정변을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세져야 할 공신이 없었다. 군주로서 본인의 능력만 

  탁월하다면 왕권강화를 추구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 어린 시절 누구로부터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었느냐 하는 것은 훗날 그가 보여줄 통치

  방식을 미리 점칠 수 있게 해준다.

  14세 숙종의 공부는 논어자치통감을 양축으로 진행된다. 허적의 추천으로 조정에 들어온

  남인계통의 허목과 윤휴도 특별히참여하게 되는데, 숙종의 기본적인 학문 틀은 남인계열에 

  의해 만들어진다.(P122)

  * 송시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문제로 영의정 허적과 의견이 갈려 허목은 강경파 청남(淸南)

   영수가 되고 허적은 온건파 탁남(濁南)의 영수가 되어 대립

  * 윤휴는 독학자답게 당시 유학자라면 누구나 당연시 하던 주자학적 경전해석을 거부하고 

    독자적 해석을 가해 당시 큰 파문을 일으킨다.

- 숙종 대에 행한 여러 치적 중 눈에 띄는 것은 선대에 대한 예우가 극진하였다는 점이다

  1)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를 태묘에 배향하고 태조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이방석(소도군), 이방번(무안군)을 추증했다는 사실이다.

  2) 태종 이방원에 의해 허수아비 임금을 했던 공정대왕을 정종으로 정한 일

  3) 자칫 왕실의 정통성을 위협할 수 있는 노산대군을 단종으로 정한 일

  4) 사육신의 복작(復爵)을 명하고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한 일

  5) 인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소현세자의 강빈과 그의 세 아들에 대한 회복을 명한 일

- 숙종은 청나라와의 항복 조건을 깨고 북한산성을 수축하고 강화도를 요새화하고 군제를 개편

  하는 등 북벌의 꿈을 키우게 되는데 숙종 6년 청나라 사신들이 귀국길에 백두산에 들로 제사를

  올리는 일이 조정에서 현안으로 떠올랐는데 숙종의 엄명으로 청나라의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

  시키라는 엄명을 내린다.

  특히,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외교 문서를 통해 일인들에게 분명하게 통보하였으며 2년에 한번씩

  강원도 부사들이 현지를 순찰하고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 화폐유통을 건의한 인물은 영의정 허적과 좌의정 권대운인데 화폐유통은 태종도 실패한 국가

  프로젝트로 숙종은 특유의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화폐유통을 관철시킨다. 그로 인해 조선의

  상공업은 일대 약진(P199)

  반면에 상업이 본격화되고 농민의 이농현상이 극심했으며 화폐유통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

  전국을 떠돌며 유리걸식하는 유민의 숫자도 급격하게 증가했다.(P401)

- 암행어사 제도는 세종 때 예종에서 당나라의 예에 의거해 강력히 추진하던 제도이지만 숙종 

  때처럼 거의 해마다 조선 팔도 전체에 파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암행어사를 파견할 때 

  숙종은 즉위 초부터 지방 수령과 변방의 장수를 반드시 직접 불러서 격려와 함께 경고를 잊지

  않았다.

- 인재 발굴의 어려움에 봉착하자 경연에서 신하들이 인재 부족을 토로하자 숙종은

  인재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어찌 말세여서 인재가 없기 때문이겠는가? 예부터 창업한 임금은

   모두 이전 나라의 인재를 등용하여 성공에 이르렀으니 어느 시대인들 인재가 없겠는가? 다만

   알아보지 못함으로 인해 쓰지 못할 뿐이다’ 라고 일갈하고 있다.(P208)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리는 적폐청산이전청산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 집안은 송시열과 같은 서인임에도 불구하고 대동법을 비롯해 

  여러 문제로 송시열과 갈등을 빚어왔다. 사촌 오빠 김석주와 함께 남인이 추진한 송시열 제거에

  동의한 이유가 그런 맥락이다.

- 숙종 5년 중반부터 남인의 과도한 당파성과 무능에 숙종이 싫증을 내기 시작했고 그 점을 

  간파한 김석주는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의 핵심 인사들과 비밀리에 의견을 교환하며 정권 

  교체 준비에 들어갔다.


작품에서 얻은 지식들

- 함벽여츤(銜璧與櫬) 패한 나라의 군주가 손을 뒤로 결박 지은채 구슬을 입에 물어 진상하며 

  죽음에 처해도 이의가 없다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관()을 짊어지고 가는 것

- ‘참람하게란 분수를넘어서 왕실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뜻이다.(P 95)

- 일언가파 [一言可破] 한마디의 말만으로도 능히 판단할 수 있음. 즉 단칼에 정곡을 찔렀다.(P102)

- 도목정(都目政) 이조와 병조에서 매년 두 차례씩 인사평가를 하여 승진과 좌천시키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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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 시켰을까 -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스토리
이병호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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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본 작품은 지난 2024123일 작품을 완독한 후, 작품에 대한 소회를 인터넷에 올리려는 순간

갑자기 들려온 통수권자에 의해 벌어진 이상한 일로 인해 지연시키다 오늘에야 올리게 되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일어난 통수권자의 헛발질로 인해 이런 저자의 외침이 자칫 그 연장선상에 

있는 가치없는 외침처럼, 어떤 측면으로는 보수들의 광란으로 폄하될 수도 있겠다는 찜찜한 

측면도 있었으나 그래도 저자의 주장과 통치권자의 헛발질이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

했기 때문에 일부 수준 낮은 인간들과 저열한 정치 협잡꾼들에 의해 천편일률적인 평가로 폄하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있었지만 저자의 문제점 지적과 통수권자의 행위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사고의 다양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글을 올리나 그렇다고 내가 통수권자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행한 헛발질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작품은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최고의 정보를 취급했던 조직의 장이 재임 중 경험한 요상한 일들과 그런 요상 야릇한 일을 촉발시킨 주역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희한하고도 기이한 집단으로부터 

받은 어처구니없는 홀대말도 안 되는 조치에 대해 저자의 연륜과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트럼프 가야금 타는 소리 같은 부분을 부분 발췌해 격정적으로 자신의 입장과 함께 그런 판단을 내린 집단의 비열함을 질타한 작품이다.


저자의 한 맺힌(?) 주장을 담은 이야기나 억울함을 토로하는 작품을 읽을 때 자칫 저자의 감정에

휘둘려 당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소회를 밝히는 경우가 

왕왕 있어 이런류의 작품을 읽을 때 몇 가지 개인적 가이드 라인을 설정해 독서하는 게 평소 나의 독서 방식인데 나름 그런 기준을 잘 세워 독서에 임했다고 생각하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작품을 다 읽은 현재는 그 기준이 약간 허물어진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후회되는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저자가 주장하는 특정 정보기관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저자의 

위치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정보에 기반해 특정 주장을 할 경우 - 특히, 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는 내용일 경우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할 수도, 그렇다고 적극 반박할 능력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경험했고, 현실에서 목격한 수많은 작고 소소한 정보들을 나도 나름대로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또 매일 매일 접하는 각종 매체를 통해 수준이 낮기는 하지만 

지득한 단편적인 정보가 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분야이거나 완전히 

생경한 부분이 아닌 이상은 저자의 일방적인 주장에 쉽게 부하뇌동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평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안보관, 국가관, 정치활동 등)이 특정 이념에 크게 경도되어 있지 않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기에 저자의 간곡한 주장이라 할지라도 나의 견해로 보았을 때 타당성과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쉽게 동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접했다,

 

특히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보낸 대다수의 시간과 업무 내용이 기업 리스크 관리와 관련된 

정보 및 보안분야에 관련된 일을 추진했었기에 큰 틀(?)에서 보면 저자의 업무 내용과 방식이 

내가 회사를 다니며 종사한 그것과 비교했을 때 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큰 맥락으로 보았을 때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조직을 위한 발전적 지향점이 비슷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저자가 작품에서 자신의 특정 분야에 대해 어떤 주장이나 억울함을 주장할 경우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작품을 접하고 있었는데 작품에서 평소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명쾌하고도 매력적인 문구로 인해 내가 위에 언급한 나만의 독서 가이드 라인과 상관없이 저자가 주장하는 모든 내용에 대해 숙독하게 되었고 나는 그의 판단을 전적으로 존중

하기로 했는데 나를 이렇게 만든 문구는 바로

'국정원은 긴 수난의 역사를 거쳤다. 다 아는 대로 그 수난의 정점은 문재인 정부시절이었다'

                                                                                                            (P 89)

는 이야기에 완전 공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구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이유로 몇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

첫째는 내가 과거 다녔던 기업은 기업 리스크 대응과 관련된 정보 조사업무를 크게 우선시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하게 우선시하지도 않으면서 보통의 업무와 균형감 있게 관리해 왔던 조직이었는데 해당 업무의 담당 임원이 어느날 외부 영입 인물로 대체되면서 리스크 및 조사 업무 담당자들을 회사 매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도, 가시적인 도움도 주지 못하는 조직이라는 이유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비효율적인 조직을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일류기업에 운영하고 있느냐며 비난하며 관련 인력과 조직을 극도로 폄하하는 것 - 적폐청산 - 을 보면서 그동안 회사 생활하면서 가졌던 조직에 대한 충성과 신뢰를 접게 되으면서 이 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회사를 빨리 퇴직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 속에 퇴직하게 되었다.

그 이후 - 잘난 체 하는 게 아니라 - 퇴직한 회사가 그간 자랑으로 여기던 리스크 관리업무 및 

정보 조사 업무시스템이 기존 인력과 조직을 비아냥대던 임원들에 의해 망가져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외부의 안티세력 및 집단으로부터 연일 난타 당할 때 자신들 잘못이 아닌 전임자들로 인해 벌어진 결과라는 말도 안 되는 책임 회피성 발언을 듣고 또 나를 키워주었던 그 조직과 내 손에 의해 육성되던 후배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탄감과 이루 말 할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퇴직 당시 느꼈던 개인감정과 내가 몸담았던 조직과 업무가 

특정 인간들에 의해 매도되고 그 기능의 일부를 제한 당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저자가 당했을 현실이 내가 당했던 현실과 너무나 유사하게 느껴진 결과, 저자의 울분이 내 울분으로 변하면서 저자가 강하게 주장한 위 문구로부터 일종의 동병상련의 안위를 얻으며 전적으로 동감하게 된 

것이 첫째 이유이고.


둘째는 기업 리스크 관리 업무는 시대와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그 중요성을 낮게 평가해서는 

절대 안 되는 업무이며 이 리스크 관리의 주요 기본 요소는 정보 수집 및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조직이 어떤 위기와 난관에 봉착하지 않는 이상 그와 관련되는 어떠한 일도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해 어느 누구도 해당 업무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도, 의문을 갖지도 

않는다는 특성이 있고 설혹 그런 위급하거나 난관에 봉착하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자금과 인맥을 동원,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아주 저차원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게 일반적인 사실이다.

 

우리는 과거 많은 기업들이 칭기스칸이 어떻게 강력한 국가를 만들게 세계를 호령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또 어떤 통치를 통해 그 넓은 면적을 통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를 심층적으로 하면서 대체적으로 두 가지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정복한 면적 : 칭기스칸(777), 알렉산더 대왕(348), 나폴레옹(115), 히틀러(219)

                                                              (출전 : CEO 칭기스칸 / 김종래 / 삼성경제연구소)

  - 기업 경영에서 속도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으로 성공의 첩경이다.

  - ()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라는 아주 그럴듯한 그러면서도 누가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결론을 얻어내 거기에 맞는 정책

이나 제도 등을 너도나도 만들어 이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살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았을 때 위의 두 가지 사항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 있었지만 폼 잡고, 외향적인 멋에 도취되어 사는 인간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추상적이고 그 효과가 당장 외부적으로 보여 줄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외면하거나 고의로 누락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칭기스칸의 무리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위의 두 가지보다 ‘‘정보 마인드의 중요성이 그 

무엇보다 강했고 그들은 이를 철저히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칭기스칸에 대래 연구한 이들은 

전부 이를 간과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칭기스칸, 그들은 드넓은 초원에서 외지인을 만나게 되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 대신

'당신이 온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였다고 한다.

가만 상상해 보라.

* 참고문헌  1. CEO 칭기스칸(2005, 김종래/삼성경제연구소)

                2. 칭키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2005, 잭 웨더포드. 사계절)

 

아무도 없는 바람과 먼지만 이는 광활한 광야나 사막에서 우연히 만난 상인이 되었던 지나는 

객이 되었던 칭기스칸은 그런 이들을 만나게 되면 반가움도 있었겠지만 아직 자신들이 가보지 

않은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다. 미지에 사실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도 언젠가는 그쪽으로 갈 것인데 아니면 가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당신이 온 그 쪽으로부터 얻을 만한 상황이 어떤지, 가치가 있는지, 만약 가려고 한다면 어찌 가야 효과적인지 등을 묻고 또 묻고 있다.

방목하는 가축을 키우기 위해 칭기스칸들은 가축을 사육하는 데 초원이 필요했을 것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초원은 어디에 있으며 그 초워은 양질의 초원인지 또 있다면 어떤 상태인지 없다면 

목초지로 만들만 한 땅과 사람은 있는지 등에 대해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이를 오늘의 우리들 특히 기업과 국가 운영에 적용해 보면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기업 및 기업의 구성원들은 물론 국가의 대업을 담당

하거나 추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태가 어떠하고 경쟁 상대가 누구이고, 무엇이며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당면한 과제가 무엇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매일같이 점검과 반성을 통해 좀 더 비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보고자 정보 조사를 통해 이를 

확인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세부적인 실천 방안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특정한 목적이 있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외면하는 등 기본적인 사항까지도 전부 다 묶어버리고 눈까지 가려

버리는 만행에 가까운 짓거리를 해 왔다는 저자의 외침과 내가 당했던 당시의 상황이 오버랩되어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를 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중차대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보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 땅에서,

내부적으로 국가발전과 국민을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려는 순수 집단과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자신들의 색깔과 야욕을 감춘 특정 집단 - 그들도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고 있겠지만 그 집단이 추구하는 우선 순위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 이 순수 집단을 무너뜨리려 애쓰고 있는 과정에 또 이들 뒤에서 우리 조선역사에서 가장 불필요한 정쟁의 단초를 

제공했던 사문난적(斯文亂賊,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남발하며 정적을 작살내던 송시열 일파와도 같은 집단과 공동으로 전개되는 이념의 고지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정쟁은 누구 하나 사라질 때까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지만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지 못해도 그런 집단이 힘쓰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할 우리의 정보 조직을, 긍정을 배가시키고 부정을 제거시켜야 할 우리의 정보 조직을 무력화시키려 작당하는 집단과 

인물에 대해 울분을 토해내는 저자의 입장을 나는 골백번 동의하는 바이기에 다시 한 번 저자가

강조한 해당 문구를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 고지전의 의미를 알고 싶으면 

   1. ‘신영복을 존경하세요’(넥스테이지),            2. ‘유성룡인가 정철인가’(너무북스)‘, 

   3.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역사의 아침),       4. ’나는 선비로소이다‘(역사비평사),

   5.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21세기 북스) 등을 읽으면 그 의미를 조금 알 수 있다.

저자는 울분에 가득차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전 정부에서 민생을 상대로 보여주기 식으로 펼쳤던 정책과 그들이 벌인 적폐청산'이라는 칼춤 속에 양산되는 정치범(P172)을 보면서 또 자유를 찾아 탈출한 사람들을 도운 인도주의적 

노력조차 조사 대상이 되게 한 잔인함(P206)과 어렵게 탈출한 동포를 사지로 다시 몰아넣을 때 

북자들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우리의 공무원이 표류하다 저들의 총에 사살된 사건을 

남의 일처럼 대하는 모습과 그들로부터 그 어떤 사과를 받아내려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간첩 잡자는 법을 만들지도 간첩 잡는 수사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의 저열한 수준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숨겨진 민낯을 더욱 자세히, 리얼하게 알게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의 하나가 바로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 남대서양 앞바다에서 발생한 우리 국민 22명이 수장된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 사건이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바로 대통령 선거 직전이라 유가족 표를 의식해 수천 미터 바다 밑에 수장된 선원의 시신을 찾아와 유가족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겠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언론도 맞장구를 치면서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교훈삼아 가족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사고 원인은

물론 실종자까지도 찾아드리겠다며 난리를 치다 막상 당선 후 모르쇠로 일관하며 덮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패산 도룡룡이 죽어간다고 스님이 단식 투쟁에 돌입하자 스님도 살리고 도룡룡

도 살려야 한다며 매스콤 앞에서 주접떨던 인물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에서, 침몰한 선원 가족을

도룡룡만큼도 취급하지 않았던 그와 그가 속한 집단의 정체가 어떠한지를, 노동자의 망치질과 

판사의 망치질의 가치가 동일해야 한다며 환호하며 우리의 사법기관 판결봉 무게도 동일 수준

으로 끌어내린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행한 정보 업무 파괴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기에 역시

저자가 강력하고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국정원은 긴 수난의 역사를 거쳤다. 다 아는 대로 그 수난의 정점은 문재인 정부시절이었다'

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 것이다.

 

작금 거대한 어느 정당이 국정 운영 뒷다리를 잡아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정권 탄생 초기 

나는 이념과 방식 그리고 당선인이 속한 집단이 과거에 어떠한 행동을 했었는지를 문제 삼지 

말고 당선인이 집권 초기에 그가 갖고 있는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통치 여건을 만들어 주자고 

우리 모두는 이념을 초월해 좋고, 싫음을 떠나 새롭게 출발하는 정권의 성공적인 출발을 성원해야 한다고 하면서 조금씩 양보하고 자제하며 출범하는 새 정부에 협조하자는 꼴값을 떤 적이 있었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연일 남발하는 탄핵 시리즈를 보며 지금은 과거 내가 했던 주장을 

무지 후회하고 있다.

나는 이전 정부의 리더와 그의 일파들이 촛불 운운하며 순박한 민중을 동원해 난리로 정권을 

잡은 것에 맛을 들여 이상한 짓거리하다 정권을 뺏긴 뒤 새로이 선출한 전과자 경력을 가진 

리더와 함께 역대 입법부 수장중 가장 질 낮은 수장과 함께 벌이는 한풀이 횡포와 추잡한 행동을 보면서 크게 든 생각은 무식한 리더보다 그런 리더를 보좌하는 참모들이 더 문제라는 생각을 

크게 하고 있다.

얼마 전 돌아가신 민주화의 산 증인이셨던 장기표 선생도 강한 톤으로 이야기했듯이 그를 보좌

하는 측근들이 문제라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최근 통수권자의 한심한 행위로 인해 발생한 난리로 인해 장날 미친년처럼 나대는 인간 

말종들의 얼굴 아니 면상을 보면 중국에서 한 시대를 쥐고 흔들었던 희대의 간신들인 역아’, 

개방’, ‘수조와 더불어 진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이 되었다.

박 역아, 전 개방, 정 수조, 이 진회, 최 개방, 서 역아, 조 개방, 한 역아......


작금의 우리 정치판에는 간신이 없는 듯 보이지만 국가의 존망을 좌지우지하는 광의의 간신을 뜻하는 의미에서의 간신들은 수면 밑에 가라 앉아 노회한 정치 야바위꾼들과 수준 낮은 박수

무당급 인간들, 입만 열면 독설을 날리며 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는 이상하고도 이상한 박복한 

여인들, 이상한 발언으로 리더의 눈에 들어보려 노력하는 새내기 초년 정치모리배들이다.

이들 모두는 광의의 간신들이다

이들 때문에 머리가 무거운데 더 문제인 것은 그런 수준 이하의 인간들을 대표로 뽑아놓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해당 지역구민들의 한심한 수준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전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지만 하지만 어쩌랴 그들도 우리 유권자들인 것을 다시는 그 유권자들이 반 푼이,

박수무당급 대표를 뽑지 않기를 마음으로 빌 뿐이며 앞으로 진실된 참 일꾼을 대표선수를 뽑아 줄 것을 기대할 수밖에..........

간신들 이야기를 보니 이런 이야기가 생각났다.

중국의 여황제 무측천밑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던 [색원례][주홍]이라는 인물이 

있었다그들은 당시 잔학한 고문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무측천이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권력을 주무르게 되자 그간 자신에게 충복을 다 했다. 하지만 '무측천'은 두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계책의

일환으로 [주홍]이라는 자에게 [색원례]주살’하도록 지시 내린다

따라서 [주홍]은 절친인 [색원례]를 불러 주연을 베풀며 

어떻게 하면 사람을 쉽게 고문할 수 있느냐?’고 묻자. [색원례]는 즉각

'커다란 솥에 물을 붓고 장작불을 때서 서서히 물을 끓여 가며 불게 하면 쉽다

고 알려 주자 일순간 표정을 바꾸어 [색원례]의 죄상을 열거하며 그가 이야기한 방식으로 

고문하자 [색원례]는 즉시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런 [주홍] 역시 오래지 않아 '무측천'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어제의 동지...정의가 출장나가 불의가 자리를 틀고 있음 언젠가 당신들도 색원래가 되고 주홍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말 귀를 못 알아 듣는 인간이 너무 많다.


위와 같은 사실 외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또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를 

더욱 힘들게 하는 집단이 바로 사법기관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하는 내용 중 나의 판단과 일치한다고 

여겨지는 내용을 나의 의견을 약간 추가해 그대로 옮겨보면

 

나는 정치인들이 사법기관을 쥐고 흔들 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작금 벌어지고 있는 내용을 가만 들춰보니 사법부는 그들 스스로 박쥐같은 처신으로 자기 무덤을 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P222)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의 행간을 읽어보면 여의도 쪼다들과 서초동의 머저리들이 대한민국 

무뇌아 합창곡을 연이어 만들어 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나는 이를 반박할 이유를 근거를 절대 찾을 수 없었다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비겁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합의로 판결했다. 이 중차대한 역사적 판결에 소수 의견 하나 없었던 것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얼마나 비겁했는지, 어떻게 법관으로서의 소신과 양심을 저버렸는지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다. 민주주의를 채택한 문명국 역사상 그렇게 쉽게, 불과 몇 달 만에 증거도 없이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 사례는 전무하다. 그렇게 해서 

졸지에 문재인 전부가 들어섰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5년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잔혹한 조선 시대 사화(士禍)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되었다.

갈등과 분열, 증오와 미움만이 가득한 상처 난 사회가 등장했다. 공정과 정의가 사라지고 법치가 유린당했다. 문재인 정부가 남김 정치적 유산이다. 이제는 누구도 미국산 소고기 때문에 '뇌송송 구멍 탁'을 주장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으로 지금은 누구도 '촛불 혁명'을 자랑스럽게 주장하지 

않는다. 광우병 시위와 촛불 시위는 우리 사회의 시민 의식 수준이 얼마나 낮고 선동에 취약한가를 보여 준 전형적 사건들이다막무가내 뗏법이 법치를 짓밟았다.

이전 정부와 민노총, 전교조 등 좌파 세력은 뗏법 분위기에 올라탔고 민주주의 이름으로 가짜 

뉴스를 주동적으로 선동하고 시위를 부추겼다. 종국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그렇게 불행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가 쓰였다.(P216)‘ 또한 국정원 특활비 사건을 심리한 적폐 청산의 정치 

논리가 정한 '답정너'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 중 한 명도 소수 의견을 낸 사람이 없다는 것이 김명수 대법원의 민낯이었으며 이 판결에 임한 법관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싶지도 않으며 모르긴 몰라도 대장동이나 다른 실력자들의 뒤를 봐주는 부업에 참여 하느라 바빠서 그랬을 것

 

이라고 일갈하고 있는데, 작품이 출판된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런 내용을 갖고 가타부타 

시비를 거는 법관들이나 서초동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니 맞는 말인 둣하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무슨 정치평론가도 아니고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진다는 것이다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리더이고 그 뒤에서 

이 나라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쟁의 전쟁터로 만들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촛불로 연계시키려는 질 낮은 브레인들의 분탕질 단막극 조장 세력과 질 낮은 리더를 조정하려는 송시열과 같은 인간 말종들을 싸그리 손을 봐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며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래야 살 맛 나는 세상일 될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절제의 기술(스벤 브링크만/강경이 /다산초당) 라는 작품에 이런 글귀가 

있어 옮겨본다.

철학자 해리 클로는 절제하는 정치인을 이상적으로 보았다. 이런 정치인은 협의를 만들어가며 통합한다파벌을 넘어 동의를 구하고 대립하거나 선동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결을 위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 , 그는 정치에서 절제하는 행위를 사려 깊은 과학 연구에 비유한다.”

이 땅에 이런 작품, 이런 아픔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절제가 부족한 인물이 나와서 권력을 

잡아서도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국가안보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절대적 가치다. 그 가치의 수호는 정보로부터 시작된다.

- 독재는 원칙적으로 나쁜 것이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원칙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바람과 의지만으로 꽃피울 수 없다.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냉엄한 역사의 교훈이다.

- 대표적 운동권이었던 민경우씨는 '운동권에 대한 박해 주장은 10, 20배 이상 부풀려져 있고      당시 군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던 폭력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했다'라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P39)

- 정보활동의 3요소는 사람, 환경, 과학기술 이중 정보 업무의 핵심은 사람이다.

- 정보 분석과 평가 작업은 정교한 사회과학적 지식과 접근 방법이 사용되는 분야이다.

- 정보 업무에서 스파이의 운영, 즉 휴민트가 중요하다. 휴민트 포섭의 수단을 보통 MICE(Money,

   Ideology, Compromise, Ego)라고 한다.

  즉, 돈을 통한 매수, 체제에 대한 환멸이나 이념적 신념의 활용, 개인의 약점을 이용한 강요와 

  타협그리고 개인의 자만심을 활용하는 방법이 스파이 포섭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법을 전면 개정했다. 그러나 이 법 개정 시 정보 업무의 3대 기능의 하나인

  비밀 활동에 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개정된 국정원법에도 이 기능이 누락되었고

  그 결과 국정원 정보활동의 실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개정된 국정원법 제4조는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국외 및 북한에 관한 정보, 방첩, 대테러, 국제

  범죄 조직에 관한 정보'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이 수행하는 대북한 특수활동은

  두 법적 근거가 없는 활동이 된다. 또한 북한과의 막후 접촉 업무도 법적 근거가 없는, 해서는 

  안 되는 업무가 된다. (P 73)

  ---> 정보기관이 동원된 작전은 현재와 같은 우리 국정원법으로는 수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거 문제인 정부가 국정원을 남북 대화를 위한 대북 교섭 업무에 동원하고 있다.

         이는 검찰이 주장하는 국정원법에 나와 있지 않은 활동이다. 검찰의 논리에 따르면 이 

         업무는 불법이다.(P 75)

- 문재인 정권 시절의 권력자들이 왜 국정원을 첫번째 표적으로 조준했을까?

  민주화 세력으로 포장되었지만 그들 운동권 세력의 사상적 표리부동과 비리,

  그리고 무능을 잘 아는 조직이 국정원이기 때문이다.(P 92)

- 한국의 민주주의는 법이 아닌 야수가 된 민중이 지배한다. 한국 민중은 부패했다. 한국은 민중의

  뜻이면 죄 없는 대통령도 감옥에 보낼 수 있다는 체험을 했다.(외신 클럽 회장), P219)

- 핵을 포기한 리비아 카다피의 몰락은 북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로

  각인되어 있다.(P247)

- 다른 인간을 굴복시키는 무한한 권력을 경험한 자는 누구든 자신의 감각(이성)을 제어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독재는 습관이다. 이는 마침내 질병으로 변한다. 권력의 습관은 훌륭한 인간을

  죽일 수 있으며 짐승 수준으로 타락시킬 수 있다. 피와 권력은 도취를 낳는다.(도스토옙스키)

- 적의 의도 보다는 적의 실체적 역량을 주시하라.

- 나라를 지키려면 나라를 위협하려는 자가 그 나라를 두려워하거나 존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절대로 얕보이면 안 된다.

- 가난하면 적을 선택할 수 없다. 우선은 가난에 지배당하고 결국에는 운명에 지배당하게 된다.

- 남한과의 평화 공존은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해야 할 정당성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 정권을 내 

  놓아야 하고 김씨 왕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김정은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때문에 남북

  관계는 늘 교착상태일 수밖에 없다. 비관적 견해지만 한반도의 진실이다.(P260)

- 국정원은 다른 선진국 정보기관과는 달리 국정원이 하는 일을 모두 몹쓸 짓으로 고착화

  시키려는 강력한 비토 세력과 직면해 있다. 이 비토 세력의 주축은 우리 사회 각계에 포진해 

  있는 종북 세력이다.(P266)

- 전교조나 민주노총은 진정한 의미의 좌파 세력이 아니다. 오로지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자신들

  을 추종하는 일반 시민을 자신들의 권력 쟁취를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 세력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초법적, 초국가적 경계를 넘나들며 국제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상식을 외면하는 북한을 추종하는 변형된 사이비 좌파 세력일 뿐이다.(P273)

  ---> 간첩 수사에는 어김없이 민변 소속 변호가가 등장한다. 이들은 마치 북한이 보낸 변호사 

        같은 행동과 역할을 한다.(P277)

- 진정한 발견의 항해는 새로운 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마르셀 프루스트)

-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정치권력이 어떻게 진실과 정의를 약탈할 수 았는지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건으로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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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1 - 역사평설 병자호란 1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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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나라 전체가 진실 규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목소리 큰 놈이 주인 행세하고, 분별없이 

엄한 짓한 주인은 세인들의 눈총을 받고 엄한 곳으로 붙들려 가 제 목소리도 못 내는 이런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이와 유사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우리 선조들은 어떤 혜안으로 어지러운 

국가적 난국 상황을 극복했고, 헤쳐나갔는지를 역사로부터 얻어서 개인 차원에서 주변에 널리 

알리기 위해 홍경래의 난이라는 작품 이후 또 다른 작품에서 교훈을 얻고자 - 내가 국가와 민족

을 그 누구보다 생각하는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건전한 상식을 지닌 그냥 평범한 한 

국민으로서 - 고심하던 중 우리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런 능욕을 당했고 가장 큰 혼란의 시기

였다고 판단된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을 선정해 작품으로 이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평소 알고 

있었던 내용보다 작품으로 마주한 우리 조상들의 피해 정도와 후유증이 더욱 심각할 것 같아 

읽는 과정내내 속 뒤집어지기가 수차례였다.

작품을 접하면 느낀 사항을 독후감으로 정리하려다 보니 역사관이 흐릿하거나 과거에 대한 

무지의 수준이 과도한 인간들이 나의 독후감을 보았을 때 요즘 사태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비루한 인간으로 비춰지거나 자칫 누구로부터 사주 받아 글을 올리는 으로 비춰져 폄하할 

것 같아 고민하다. 쉽고 평이한 수준에서 머리 속에 맴도는 내용과 나만의 주장을 갖고 정리하려

노력했다.

 

작품으로 들어가,

다른 이들은 본 작품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최근 우리의 

통수권자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과정과 인조반정을 합리화하는 모반 세력들의 처세술, 청나라와

맺는 굴욕적인 외교상황 그리고 이를 비준하는 과정에서 논의하는 신료들의 말과 행동이 최근 

우리의 통수권자에 의해 초래된 질 낮은 통치 행위를 촉발시킨 행위와 상당한 유사성을 띄고 

있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런 질 낮은 조치를 취하게 만든 정치 환경을 보면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역사는 누가 뭐래도 반드시 반복 된다는 것과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 그리고 깨진 

유리창 효과,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들었음직한 여러 귀한 문구들

이 지닌 의미성이 한꺼번에 밀려와 큰 소름이 돋았던 시간이었다.

특히, 작금의 사태와 연관지어 보았을 때 위에 언급된 하인리히 법칙깨진 유리창 법칙에 

부합되는 여러 사건이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난 현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대표적인 그 이유로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반정공신들과 그 자식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을 

바라보면 '촛불정신' 운운하며 집권했고 아직도 그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 뒷다리 잡기가

특징인 어느 집단의 패악질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으며

자신의 리더만을 위해 만민 앞에 평등해야 할 법을 악용하고 남용하는 집단을 통해 패거리로 

왕과 백성을 농단했던 송시열의 잔당들이 살아 돌아온 느낌이 들었으며,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비토권을 남발하는 못된 인간 군상들을 통해 또 이유도

명분도 빈약한 상태에서 정권 쟁취에 몰두하는 수준 낮은 무뇌아 집단도 보았으며,

대단한 권력이라도 잡은 양 입만 열면 국민의 대표라고 큰소리 치는 대표같지도 않은 인간과 

연륜과 경험도 일천한 인간이 옛날같았으면 마주 보지도 못할 선배에게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며

조선에서 포로로 청나라 잡혀간 뒤 악질로 변한 역관들과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에 들어와 패악질

을 일삼던 중국의 사신들과 보았다.


특히, 전임자의 알박기 인사로 후임자의 인사권을 제한하며 악날하게 버틴 후 퇴임과 동시에 터진

아가리로 지랄하는 수준 낮은 인간과 자신이 무슨 큰 벼슬을 하고 있는 인간인양 아무에게나 

막말과 하대하는 저질의 인간과 민의의 전당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할 인물들 줄줄이 탄핵시키고

돌아서서 자랑스럽게 웃음짓는 모습에서 남송의 재상 악비를 제거하는 데 앞장 선 희대의 

간신이자 매국노의 상징인 진회(1090~1155)라는 인물의 환생도 마주했고, 그런 인물이 틈만 

나면 우리를 깔보고 흔들어대는 국가에 대해 쎄쎄만 하라고 외치는 모습과 그런 리더를 믿고 

따르자는 무지 몽매한 저능무뇌아 집단을 보면서 저들을 진정 내가, 우리가 뽑은 국민의 

대표인가하는 의구심과 자괴감에 밀려와 미치는 줄 알았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을 갖고 난리친다고 해서 그런 인간들과 그런 인간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집단을 질책하자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그런 그의 상대가 똑똑해서 또 그들의 행위가 올바르기

때문에 그의 적수가 되는 집단을 칭찬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집권 세력의 반대의 편에 선 집단이 지금과 같이 국가와 국민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작은 

발언 하나, 행위 하나하나가 정권 쟁취라는 그들의 대의명분에 가려져 지속적으로 자살 행위적 

발언으로 연결될 경우 언젠가 그보다 몇 배 아니 몇 백 배 크나큰 부담과 국가적 변란으로 우리

에게 나타날 것이 우려되기에 , 소소한 현재의 작은 잘못이 하인리히 법칙깨진 유리창 

법치으로 연결되는 것이 우려스러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일념 하에 지적하는 것이다.


정치권이 이런 저런 이유로 정신 차리지 못하고 이전투구식 헤게모니 싸움으로 난리를 칠 때 

과거 우리의 리더였던 사람이라면 큰 어른으로서 양 쪽을 자제시키고 합심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그 리더였던 양반은 아직도 과거의 미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모문룡의 후손들에게 받았던 홀대는 잊은 채, 고무다리 긁는 애먼 소리만 남발하고 있고

정치권의 수장이라는 어느 인간은 자기의 분수와 그릇도 모른 채 루돌프 사슴도 아니고 방울소리

요란하게 딸랑거리며 중국집만 기웃거리고 내가 왕이 될 상이 아닌가하고 헛심을 품고 다니며

비루한 면상으로 만면에 웃음을 띠면 자신이 높아지는 줄 알고 폼잡고 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그 사람 집에는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도 없는 모양이다. 그런 인간을 보면 거울을 사 주고 싶은 

심정이다. 집에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이다. 

 - ‘군주의 거울’(21세기 북스, 김상근 )이라는 작품을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하고 싶다 -


거듭 이야기하지만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깨진 유리창 법칙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그 단초를

작금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의 일부 몰지각한 위정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단초는 우리가 찾아간 나라에서 받은 홀대에 관한 사항으로 나는 굳이 그것을 

혼합의 문제라 칭하지는 않겠지만 하인리히 법칙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그와 같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강조하고 싶다.

외국 사절을 불러놓고 혼 밥을 하게 하는 문제는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받은 치욕적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 국민과 국가에 대한 모독 행위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어느날 우리의 새로운 후임 지도자가 모문룡홍타이지후손들에게 동일한 대접을 

받아 항의해도

너희 전임자에게 대접했던 방식과 유사하게 너희 신임 리더를 동일하게 대접했는데 옛날 

 전임자는 조용히 밥만 잘 먹고 쎄쎄하고 갔는데 후임자는 전임자와 달리 왜 지랄하냐?“

며 타박하면 무어라 대응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가 우리의 자위권을 위해 도입한 방어 무기에 대한 굴욕적인 정책을 전임자가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우리의 주적에게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를 USB도 줬는데 저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아마도 더한 것을 갖다 주었을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후임자가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저들이 전임자는 인상만 써도 잘만 갖고 오던데 

너희 후임자는 왜 안 갖고 오냐고 몽니를 부리면 어찌할 것인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결국 전임자의 수준 낮은 대응 자세로 인한 악순환은 관례가 될 것인데 그래도 혼밥의 문제가 

향후 우리의 위상을 결정지을 요소가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혼밥 한 그 당사자는 오늘도 자신은 떳떳하며 해당 출장 기간 동안 자신은 그들 서민의

실생활을 잘 파악하고 왔노라 이야기하고 앉아 있으니....국가를 대표해 회담하러 가라고 했지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다 나오는 그들의 실생활을 파악하러 거기까지 가서 할 일인지가 자못 

궁금하며 우리의 말단 공무원도 그런 식으로는 답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리더라는 양반은 원래 모지리라 그렇다 치더라고 그를 보좌한 참모라는 작자들이 더 문제이며

진정으로 나라와 리더를 위하는 참모라면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최근 러 - 우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가 만나 회의 도중 면박 당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졌을까?

절대 아니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부터 해 왔던 일련의 발언들을 생각해 보라.

작은 게 모여 그런 큰 모습을 보인 것이다

청나라에 의해 이 땅이 침탈 당할 때 수 십 만의 우리 선조들은 북으로 북으로 끌려갔고 종국에는

포로로 끌려간 선조들이 상품으로 취급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진정으로 모르고 있다는 것인가?

그런 그들에게 쎄쎄를 외치며 굴종하자는 어느 리더의 선조 중 한 사람이 그 호란 당시 북으로 끌려간 사람 중 자신의 조상이 한 명이라도 끼여 있었다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었을까?

세월이 흘러 지금은 몰라도 자잘한 증세가 모여 어느날 크게 밀려 올 때 당신의 후손도, 나의 

후손도 안전할 수 없으며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의 이런 발언은 그런 상대국과 철천지 원수로 지내자는 게 아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리더라면 발언을 하더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행동을 하더라도 국민을 대신한다는 당당한 자세로 해 달라는 것이지 비열한 웃음을 띠며 쎄쎄하며 헤롱거리지 말라는 이야기다.

제발 우리 민족이 당한 아픈 역사책 좀 읽고 다시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갖추어 수준 낮은 망발과 국민을 낮추어 보이게 하는 발언은 지양하라는 의미다.

법인 카드로 호의호식했을 터인데 그런 구분도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성격은 얼굴에 나타나고, 본심은 행동에 나타나며, 인간성은 약자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남을 우리 국민 모두는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거듭 이야기합니다.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그리고 어정쩡한 색이든 정신들 차립시다.



작품을 분석해 보니


첫째, 지금도 우리 역사에서 하인리히 법칙의 단초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옛날의 임진왜란의 일본병자호란의 중국에 의해 발생한 역사적 침탈 행위, 근세사에서는 

일제에 의한 한반도 강점과 중공에 의한 한국 전쟁 참전등의 사건은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

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과 중국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자잘한 사건, 사고 역시 또 다른 역사적 하인리히 

법칙으로 연결되어져 몇 년 전 일본에 의해 벌어진 반도체 원재료 수출 금지사건과 중국이 

사사건건 몽니를 부리는 싸드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 후자로 발생된 일본과 중국이 일으킨 문제는 우리의 수준 낮은 리더가 입만 열면 죽창가

운운하며 과학적으로 규명된 오염수 문제를 통해 저열한 반일 감정을 부채질하고 우리의 안보를 위해 도입한 싸드에 대한 실행하지도 못할 삼불일한약속을 남발해 중국의 수모를 자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쎄쎄만 하면 모든 게 해소된다는 망발로 인해 또 다른 하인리히 법칙을 초래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특히 아쉬운 것은 어느 분이 짱개주의에 대해 극찬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자 그에 대한 맞장구를 

치면서 극찬하고 있는데 과거 청나라가 호란 당시 우리 선조 수 십 만을 끌고 가 상품으로 취급

했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그러면 그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언제적 이야기를 하느냐며 과거에 얽매여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수준이하의 사람이라고 질타할 것이다.

과거를 들먹여 그들과 싸우자는 게 아니다. 과거를 정확히 알고, 미래를 잘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동일한 실수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즉,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을 재발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며 왜 그렇게 중국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죽창가를 운운하며 오염수 방류에 대해 난리를  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전 정부를 삶은 소대가리로 평가한 북에서도 일본은 100년의 적, 중국의 천년의 적이라 표현

하지 않았던가. 그런 적 앞에서 쎄쎄하라?

심청이 아버지 시력검사 하는 소리하고 있는 우리의 질 낮은 차기 리더라고 외치는 어느 작자의

미소가 참으로 가소로울 뿐이며 그런 리더에 아부하는 수준 낮은 무뇌아 집단들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하인리인 법칙을 끊어보고자 지금의 통수권자는 당신이 그렇게 밖에 할 수

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잘못된 수단의 선택으로 인해 국민을 아주 피로하게

만들고 있고 그의 편에 서서 무엇을 이야기하려 해도 모든 게 부정 당하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같은 이야기의 무한 반복이지만 좀 더 신중했어야 하며 좀 더 체계적이어야 했었다.

결국 리더는 하늘이 내지만 그런 리더를 믿고 따를 수 있는 목표가 정당하고 합리적이어야 했다.


둘째는 리더의 자질도 중요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리더를 보좌하는 참모다운 참모의 부재(不在).

1) 광해 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요소 중 하나가 훈련대장 이흥립의 사위였던 국왕의 경호실장

   격인 훈련도감 대장인 장신의 변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 전란 중에 가장 시급했던 것은 민생 문제였으나 조정 신료들은 후금과의 화의가 불가피

   했으나 오랑캐와 화약을 맺을 수 없다는 명분 때문에 고민한다

   ‘윤황은 후금과의 화의에 반대하면서 

   ‘오늘의 화친은 이름만 화친일 뿐 실제로는 항복입니다. 전하는 요행을 바라는 간신들에 

    넘어가 더러운 오랑캐 사자를 접견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십니다라는

   직격탄을 날리나 오히려 

   ‘유식한 그대들은 오랑캐에게 항복한 임금을 섬기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라고 맞받으며 윤황을 잡아다 국문하라고 지시했다.

    ** 요즈음 우리 정치현실과 비슷하다고 여져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3) 당시의 상황을 보면,

  신하들은 무관은 춥지도 않은데 떨고 문관은 천장만 바라보고 슬퍼하면서 임금에게만 모든 

  허물을 전가한다고 통탄하고 있다홍타이지는 조선의 신료들을 상대로 책은 읽었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해 경륜을 발휘할 줄은 모르면서 한갓 허언만 일삼는 소인배들이라면서 왕은 지금 

  서생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다고 힐난하고 있다.

4) 인조는 사태의 책임을 앞뒤를 따져 보지도 않고 오버했던 것이 청의 침략을 부르고, 궁극에는

   자신과 백성을 끔찍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했지만 전란 중에 문제를 일으킨 반정공신

   과 그의 자손들 김자점, 김경징, 장신 등에 대해 엄격한 군율 적용을 주저하고 있다.

5) 진정한 참모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신규 세력이 등장하면서 구세력을 감싸지 않고 처단을 

  택해 발전의 동력을 스스로 제거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조반정 직후 이이첨과 정인홍을 비롯한 30여 명의 관인들을 처형했다. 쉽게 이야기해 적폐

  청산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가...‘적폐청산이라고....

  그러다 보니 인조반정이 성공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새 정권이 구정권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새 정권의 행로를 주시하던 구정권의 잔당들 그리고 새 정권에 기대를 걸었던

  사민들 가운데 불만을 품은 자들이 역모와 고변을 자주 언급하면서 인조 정권은 공신들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기득권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정신이 극히 희박했다.

1) 반정 공신들인 이귀, 김류, 이서, 신경진의 행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한된 자료에 국한되어 전체를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기득권 세력이 된 반정공신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보위와 영구 집권을 위해 반이성적 행위의 주도자들이었다.

   특히 군사부문에 있어 반혁명 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기찰(譏察, 향동을 넌지시 살핌)’

   강화해 국가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더욱 강화했는데, 이괄의 난 이후에는 자신들을 보호하는

   사병의 숫자를 대폭 늘리는데 혈안이 되었었지만 정작 인조를 경호하는 인력은 극히 제한

   시켰으며 반정공신 신경진의 경우는 인조가 군사적 지시를 내렸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

   ---> 호란 당시 후금 군에 대항해 싸우다 전사한 남이홍인조 정권 실세들이 벌이는 

       '기찰' 때문에 군사 훈련도 변변히 할 수 없었다는 유언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2) 반정 공신들은 광해군 정권을 뒤엎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괄에 대한 공훈을 낮춘 결과

   ‘으로 연결되어 인조가 파천하는데, 인조를 지원하는 인력이 추종해 이를 따르는 무리가 

   거의 없었고 인조가 궁궐을 비우자 약탈이 심했다고 하며 심지어 반정 공신들의 집이 백성들

   에게 약탈당했을 정도로 민심이 반정 세력으로부터 떠나 있었다는 것은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집단이 무슨 짓을 했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으며 간단히 이야기해 혁명

  으로 권력을 잡은 공신들이 이전 정권의 문제점이라 지적했던 폐정을 바로 잡기는커녕 광해군

  대에 자행되었던 비리를 반복했음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3) 부제학 정온은 인조에게 진정으로 오랑캐와 싸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반정

   공신들이 거느리고 있던 정예병들을 정규군에 배속시킬 것을 간청했으나 인조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고 반정공신인 김류는 남한산성에서 청의 기습에 당한 것을 자신의 지휘부재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을 잘 따르지 않았던 부하들의 책임으로 돌렸으며, 왕실이 강화화도로 

   파천하자 강화도 방어 책임자로 자신의 아들(김경징)을 추천하지만 그는 도성을 출발할 때부터

   철저히 멸공봉사(滅公奉私)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인조의 기대를 저버렸다 특히 그가 강화도

   에서 보인 패악질은 극에 달했다고 한다. .

   ---> 반정공신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약을 받을 정도였다면 어느 정도의 

       패악질이 강화도에서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며 반정공신의 아들의 비리가 이정도였다면

        반정공신과 그 가속들에 의한 비리는 입에 담지 모 할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4)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었던 백년 전쟁 당시 잉글랜드군에 저항한 책임을 물어 도시를 대표

   하는 칼레의 6과도 같은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 같은 위정자들이 있었던 반면,

   인조를 비롯한 높은 관료들은 자칫 자신들이나 자신의 자식이 전쟁의 결과로 청의 인질로 끌려

   갈 것을 우려해 고위 관료직을 사직하거나 임명되지 않으려 높은 벼슬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 해당 부분의 부실함이 호란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하고 싶고,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 두 개가 아니나

   나보다 더 똑똑한 분들이 많아 조용히 넘어가고자 한다

   하여간 나쁜 인간들이 너무도 많이 활개치는 세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넷째 권력쟁취와 리더의 안위 보전에 몰입되어 국가 운영에 대한 전략과 

     전술이 전혀 없었다.

1) 국내적으로는 광해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수립된 인조정권은 권력 쟁취 후 국가 운영에 대한 

   대안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직 광해 정권을 무너뜨리며 제시한 대의명분(폐모살제, 재조

   지은, 청과의 관계무리한 토목공사로 인한 백성 원망) 중 어느 하나 합리적인 운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보여 주었고, 국가적 변란 중 보여 준 지도층의 수준 낮은 행동

   으로 인해 그들도 이전 정권과 다르지 않았음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다.

2) 국외적으로는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외교 전략에 대한 분석 능력도, 대처 능력도 부실을 

   초래한 결과심각히 전개된 대륙의 거대 세력 싸움에서 오판함으로써 나라와 백성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데,

   대표적 사례가 광해에 의해 치루어진 사르후 전투’(심하전투)‘ 사후 대처부실로 인해 집권층과

   백성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3) 병자호란을 통해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역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청나라에 인질로 나가있던

    기간 동안 신문물을 접한 소현세자를 귀국 즉시 독살(?)시켰다는 점이다.

   이로써 조선은 국가 발전은 고사하고 외부 세계와의 철저한 단절모드로 들어간 결과 당시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에 대한 난맥상으로 중국과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만 당했다는 점이다.

   - 당시 조선은 새로운 칸으로 누르하치’ 8남 홍타이지(1592~1643)에 대해 주시하면서 적정을

     탐지할 사신 등을 통해 후금의 내부 사정을 파악했지만 내부 권력 다툼이 심화되면서 대처 

     능력을 상실했고

   - 임진왜란 이후 철저히 관리해 온 일본에 대해서 정보(조선 재침략, 청과의 연합을 통한 조선

     침공)를 파악하면서 견제하려 했으나 가장 시급했던 누르하치 위협에 대처하려면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다고 판단해 일본의 몽니에 가까운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은 이를 적극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병자호란을 바라보는 개인적인 종합적인 판단

해당 독후감을 작성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했으나 나로서는 이 내용을 정리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내가 어떤 형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던 시간이 지나 작금의 이 글을 본다면 동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서쪽에서 난리를 칠 것이고, 서쪽으로 쓰면 동쪽에서 지랄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땅에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과도 같은 고난사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동이고 서이고간에 남이고 북이고 간에 합심할 것은 합심하고 가슴에 묻어둘 것은

묻어두면서 ,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겠다는 자세로 화합하며 앞으로 전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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