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ㅣ 비아 만나다 시리즈
마크 래리모어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7(전문가), 비전문가(3)


주님에 다가선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심자 수준인 나의 신앙심을 제고하기 위해

본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다.

성서 욥기는 대체적으로 ‘위로를 주는 책, 자기 수양을 돕는 책, 혼란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가슴에 담고 또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욥에 대한, 욥기가 품고 있는

종교적 의미를 알아보자는 아주 단순 무식한 수준에서 작품에 도전했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혼쭐이 난 작품이었다.

종교학 및 종교철학 공부를 3년 이상(?) 하였거나 현직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 아니면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무지몽매인 종교적 문외한은 가급적 도전하지 않기를 권유합니다.

 

생뚱맞게 욥기는 누가 지었는가, 욥기는 여러 작품이 짜깁기 된 것이다. 욥은 유대인인가?

등등 성경을 단편적으로 접한 나에게 작품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런 질문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시련의 연속으로 몰고가는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와 같은 종교적 깊이가 낮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신 저명하신 분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단문 위주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해당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그 내용도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것은 확신이 서지를 않지만 .......

 

참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욥의 유언 필사본은 10세기 사본이며 오늘날까지도 욥의 전설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설명이 담긴 문헌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깊이가 낮은 분들은 가급적 본 작품을 외면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하더라도 말입니다.

 

[서 론]

- ‘욥기’는 분명 성서에 속한 어떤 책보다도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데 악의 문제에 관한

  성서의 답변으로 이해되곤 한다.

-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에서 무고한 이들은 언제나 고통 받는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들은 도울 방편을 마련해 두신다고 말한다.(P 9)

- 그리스도교 장례 의식을 치를 때 성직자들은 ‘욥’의 연설을 인용하곤 했다. 

  ‘욥’이 인내의 한계를 규정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P 21)

-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욥기’의 면모는 그 자체로 ‘욥기’를 둘러싼 신비의 일부가

  되었다.(P 24)

- ‘욥기’가 제기하는 물음들, 섭리와 악,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 하느님의 본성,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 등은 모두 손쉽게 종결될 수 없는, 종결되기를 거부하는

  물음들이다.(P 24)

- ‘욥기’의 중심 대목은 널리 통용되는 지혜를 늘어놓는 ‘욥’의 친구들(엘리바즈, 빌닷, 소바르)을 

  하느님이 질책하는 부분이다.(P 25)

- ‘욥기’의 전기는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욥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즉 자신이 ‘욥’이라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그와 관련된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한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P 32)



[고대 해석자들이 바라본 욥기]

- ‘욥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해석인 ‘인내하는 욥’이다.(P 36)

- 그리스도교들은 ‘욥’을 그리스도의 예형(type)으로 보았다. 히에로니무스는 ‘욥기’ 주석에서

  ‘욥이라는 이름은 슬픔과 고통을 뜻한다고 주장. 그는 그리스도의 원형이었다’(P 39)

- 번영은 재앙을 수반한다. 절망이 희망을 수반하듯(P 48)

- ‘욥’의 유언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P 50)

-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네 우리가 주님에게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보여 주실 때까지 인내합시다.

- ‘제임스 쿠걸’이라는 유대인 성서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고대 해석자들’의 작품

  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빌론 유수 이후 지신들의 경전에 새로운 해석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

   1) 성서는 근본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문헌이다. 즉, 성서에 A라고 적혀 있을 때 흔히 실제 

     의미는 B다.

   2) 성서는 당대 독자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성서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책이 아니다. 성서는 유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다.

   3) 성서는 모순이 없으며 실수도 없다.

   4) 성서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주셨으며 하느님은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혹은 예언자들을 

     거쳐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P 60)

- 절망에 사로잡힌 채 울부짖는 ‘욥’의 말, 그의 분노 어린 말들은 ‘욥’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성서 

  전체의 것,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의 것이다.(P 62)

-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에게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 열쇠는 신약 성서였다.(P 75)

- 모세의 율법을 읽는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으며 이 너울은,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주님(예수)께로 돌아갈 때에 비로소 벗겨진다.(P 75)

- 중세 그리스도교의 토대가 된 ‘욥’기에 관한 저작은 하나다. 바로 기원후 578년에서 595년

  사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저술한 ‘욥기의 교훈들이다.(P 77)

- ‘욥’은 경건한 인물이지만 더 많은 의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P 78)

- 자신이 덕이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영혼을 해지는 것은 없다.

-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평온함이다.(P 82)

- '고통'은 죄라는 '암'을 퇴치할 때 필요한 '화학요법'이다. 문제는 하느님이 사악한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선한 사람들을 치료

  하지 않는 것이다.(P 83)

- 어떤 행동이 그 당시에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가치 있는 예언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듯 

  어떤 상황이 역사적 차원에서는 미덕이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악인 경우가 

  자주 있다.(P 85)


 

[논쟁 속 욥기]

- 에피크로스는 물었다.

  “신은 악을 없애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악하다. 신은 악을 없앨 수 있으며

  악을 없애려 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 92)

- ‘욥기’는 하느님의 존재 여부를 묻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성을 묻는 책이다.(P 93)

- ‘욥기’는 신성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곡,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섭리에 관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문헌이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과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욥기는 섭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참여하는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이다.(P 95)

- ‘욥기’는 인간이 가장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철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P 96)

- ‘욥’과 친구들의 발언은 그것이 긍정하는 내용보다는 부정하는 내용 때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P105)

- 악은 엄밀한 의미의 실체가 아니며 본질상 선한 모든 피조물에게 기생충처럼 붙은 결핍

  혹은 왜곡이다.(P110)

- 중요한 것은 섭리(우리는 이를 알 수 없다)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다(P115)

-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칼뱅에게 ‘욥기’가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피조물보다 너무나 높이 있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올바름의 규범조차 궁극적이지 않음을 ‘욥기’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컬뱅이 보기에 ‘욥기’를 읽는 실마리, ‘욥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논쟁에서 ‘욥’은 

  선한 편을 고수하는 반면, 그의 적대자들은 악한 편을 고수한다는 점이다”(P121)

  "‘욥’과 친구들이 재기하는 물음은 동일하다. 즉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

  하는가? 그에 따르면 ‘욥’은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때 ‘욥’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욥’의 친구들은 다른 누군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욥’의 친구들처럼 응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P122)

-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는 겸손과 침묵을 지키며 다른 이가 고통 받을 

  때는 그를 배려하고 위로한다.(P125)

- 섭리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 즉(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는 하지만)하느님에게서는 멀고 인간 동료들에게는 가까운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P130)

 


[공연되는 욥기]

- 수 세기에 걸쳐 ‘욥’ 성인은 나병 환자,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P135)

- 그리스도교인들은 ‘욥’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P139)

- ‘욥’ 이야기는 참되고 확실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야기인 것 못지않게 거짓 위안과

  감언이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P150)

- 구원에 대한 믿음은 섭리에 대한 확신과 인내만큼이나 성취하기 어렵고 유지하기 힘들다.

- 하느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인내를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P160)

- 짧은 생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계속 애통해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현명한 이들은 이 세계라는 ‘깊은 구렁텅이’를 순례하는 동안 인내심을 기른다.(P163) 

- 철학자들은 이성 너머 저편에서 오는 도움이나 통찰을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적어도 고결한 

  습관을 갖기 위해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다른 의심으로 대치하곤 했다.(P168)

 


[신정론과 욥기]

* 신정론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하나님의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를

  학문적으로 모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는데, 왜 세상에 악이 존재 하는가? 이 세상에 모순이

  이렇게도 많은가?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볼 때, 혹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은

  아니신가? 하는 회의(懷疑)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신정론이다.

   그리스어로 ‘신’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올바름을 뜻하는 ’디케(dike)'를 합쳐

  ‘신정론(theodicy)'라는 말이 나왔다.(p186)

 

-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느님이 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활동하는지, 

  설령 활동한다 해도 신이 정녕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물었다.(P182)

- 하느님은 왜 악을 용납하는가? 사람들이 악을 당연하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여기지 않게되자 

  악은 독특한 철학적 문제가 되었다.(P185)

- 칸트는 ‘욥기’를 성서, 교회 전통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도덕적 자율성을 지니고 신과 

  대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았다.(P192)

- 자신의 동기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 이해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진다.(P197)

- 참으로 고귀한 일은 고통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이다.(P197)

- 종교는 도덕 법칙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칸트),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코헨) (P198)

- 고통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처벌이다.

-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은 성서에 나오는 주장이나 성서가 그리는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너머 핵심에 있는 시적 진리를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욥기’는 그 중심이 

  되었다.(P202)

- ‘욥기’에 담긴 신의 선물은 ‘욥기’가 표현하고 또 빚어내는 인간의 감정이다.(P205)

- 자신의 경건함으로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면서도, 경건함 때문에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인정했다. 바로 그 사이에서 사탄이 나왔다.(P222)

- 모든 고통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정의

  결과다.(P223)

 

 

[추방당한 욥기]

- 하느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이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욥기 28:28)

  이 구절을 ’욥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P234)

- 역사 비평은 근대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좋은 도구를 활용해 성서를 이해하려는 선의를 담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P237)

- ‘욥’이 보여 주는 ‘인내’는 그의 비판과 저항을 포함할 때 더욱 심오해진다.(P250)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침묵만이 궁극적으로 기억과 희망이라는 역설적 임무에 온전히

  부합하는 실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침묵이 전도서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보여 주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P259)

- 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의 이름 ‘엘(EL)'은 물음을 뜻하는 말인 ‘셰엘라(she'elah)'안에 머물고 있다.

  ‘욥’은 자신이 차갑고 냉소적인 세계(참된 친구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하느님은 외로운 인간과 자신을 연결하고자 한다.(P260)

- 하느님과 투쟁을 할 때조차 ‘욥’은 하느님이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하느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할 뿐이다.(P265)

-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임을 알았다. 동시에 그분이 자신들을 

  박해함을 받아들일 때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P266)

- ‘욥’은 커다란 상실 가운데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현대인의 인도자다.

   기도서 이후로 ‘욥’은 개인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P273)

- ‘욥기’는 신이 부재한 것처럼 보일 때, 세계가 윤리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때, 특히 정의가 

  실추되고 의미가 부정되어 상실과 고통을 겪을 때 오히려 신의 존재를 가장 예리하게 감지

  할 수 있다는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다.(P273)

- ‘욥기’는 예언적 행동과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관상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P281)

- ‘욥기’는 삶의 한가운데서 상실을 겪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천민들, 희생양들, 사대의 

  이단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다.(P283)

 

 

주워들은 이야기

 

- ‘성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은 ’책들‘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비블리아‘에서

  나왔다.

- ‘미드라시’란 히브리 용어로 성경 주석의 설교 방식을 뜻한다

- 성무도일 : 매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성직자, 수동자들이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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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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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영국의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과 한국의 고승 네 분(성파, 도법, 금강, 정관)과의 평범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원초적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이야기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개신교 신자인 이같은 작품을 접한 이유는 편협 된 종교관에 매몰되어 있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노력(?) 때문으로 속된 말로 좀 있어 보이려고 접하게 되었다.

 

난 개신교도이지만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 논리인 ‘내 종교만이 최고’다 라는 생각은 갖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나의 종교와 종교적 신념이 중요하면 타인의 종교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기에 기꺼이 이런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거의 역적 수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아닌 것 아니다 -

가끔 언론을 통해 내 종교가 좋은 것이니 타 종교를 폄훼하는 일부 몰상식한 개신교도들의

사고치는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속상하며 진정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의 절대자께서 진정 그런

그들의 저급하고도 몰상식한 모습을 좋아 하실런지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절대 아닐 것이다.

 

최근 정권이 바뀌면 새로이 출범하는 정권이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경내를 관람하던 어떤 옹졸,

치졸빤스같은 인간이 불상에 절하는 다른 사람을 보고 난리를 친 사건이 일어난 모양인데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개신교도인 나만이라도 내 종교 외의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또 서로를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상대 종교에 대해 존경은 아니더라도 폄훼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런 자세가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순복음 조용기 목사님을 부처님 오신날

조계종인지, 동국대인지를 방문해 종교와 관련된 특강을 과거에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타 종교의 거두께서 상대 종교시설에 가서 특강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상대편 종교인을 초빙한 불교인들에 대해서도 높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그들의 성숙된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작품 속에서 눈에 들어온 대목은

“-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기분이 들 때는 바로, 나 자신에게 

   ‘어떤 틀’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 자기의 틀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는 것은 상대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내가 그 ‘틀’을 깨야 한다.“

라는 대목으로 나이가 들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위의 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종교를 떠나서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 타협을 모르는 

정치인들, 갈라치기를 주업으로 삼고 사는 인간들은 위 문구를 잘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 대목은

“- 자신이 준 것만 따지는 사람은 불행하고,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대목은 성경의 말씀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었다고 생각하며 매번 위 문구처럼 살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를 않다. 그런 나는 오늘도 나의 절대자에게 위 문구처럼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품 제목 ‘오래된 질문’은 답이 없어 물어본지 한 참 지난 오래된 질문이 아니라 세상이,

시간이 흐르며 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즉, 구성원들이 쉼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던져진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도 역시 변할 수밖에 없기에 외견상 ‘질문’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질문이 아닌 오늘을 사는 모두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마음을 잘 추슬러 보라는 ‘죽비적 가르침’을 던져주려는 작품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 ‘생명’이란 DNA나 두뇌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교류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 삶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 아득한 심연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재대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쓸데없는 고통의 연쇄에 매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깨달음은 일상과 동떨어지고 신비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몰랐던 걸 알았다’, ‘잃었던 것을   

  찾았다‘, ’가려졌던 것이 벗겨졌다‘ 등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나의 참모습, 이 세상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확신하는 경험적 지혜가 바로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에 맞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 지금 현실적인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당면한 문제를 줄일 수 있는지 묻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고통은 그 자체로 우리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그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괴로움의 정도가 달라진다. 쓸데없이 과도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런 고통이 대부분 우리가

  관념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고통은 외부에서 주어진 상황이나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유래

  한다. 붓다는 이를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찾았다.

- 남들이 우리에게 붙인 이름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것이 바로 지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중도’라 부른다.

-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라.

- ‘염화 미소’란 말로 통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다.

- 시비, 분별, 번뇌, 망상이 있기 이전의 마음, 비교하기 이전의 마음, 나라고 하는 개념이 있기 

  이전의 마음, 부처님은 항상 그런 마음으로 행동한다.

- 그대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대에 의지하여 내가 존재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그대는 무한히 높은 자요, 귀한 자요, 고마운 자입니다. 그대 앞에서 나는 무한히 낮은 자입니다.

  끊임없이 나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어야 하는 자입니다.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몸짓이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절’이란 주체적으로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삶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 자존심이 센 사람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남과 견주어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 ‘좌선(坐禪)’이란 번뇌와 망상이 없는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로 앉는 것을 말하는데

  ‘좌(坐)’란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것을 진짜 앉아 있다고 말한다

  ‘선(禪)’이란 어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고요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 ‘화두’는 반드시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거 계속 반복해서 되뇌면서

  평화로운 본연의 마음 상태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 감정에 휘둘리거나 쉽게 끌려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금강’이라 한다.

- 참선은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

- 진정한 삶의 변화는 저 멀리 특별한 장소에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 노예로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주인으로 사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이다.

- 삶은 내가 마음먹고 행동하는 대로 살아지고 창조될 뿐이다.

- 남과 자꾸 비교할수록 내 행복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처한 지금의 환경과 함께하는 사람들, 

  그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교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 동양에서는 왼손을 ‘체(體)’라 하고 오른손을 ‘용(用)’이라 한다.

  ‘체용론’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동양 철학의 아주 오래된 패러다임이다.

  ‘체’는 사물의 본체나 본질을 의미하고, ‘용’은 사물의 작용이나 현상을 의미한다.

- 사찰음식에는 마늘, 파, 달래, 부추, 아위 이렇게 5가지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는다.

-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것은 따로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이다.

 

* 출판사에 표하는 이의제기

- P 46쪽에는 도법스님이 17살에 출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P 24쪽에서 이미 도법스님은

  18살에 출가한 것으로 씌여져 있다.

  독자는 이런데서 출판사에 대한 신뢰, 편집인에 대한 신뢰를 눈여겨 보게 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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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 - 전략형 인재를 위한 역사 다시 읽기
최중경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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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 8

(정치관심자 9, 비관심자 7)


작품은 이미 흘러간 역사를 오늘의 잣대로 역사를 재단해 보았을 때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고 또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자는 의미로 저술된 것으로 나는 이해하며 읽었다.


본 작품을 지난 2021년 처음 접했는데 당시 여러모로 지금처럼 국회가 시끄러울 때 강성의 이미지로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던 인물 중 한 사람이 ‘저자’였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작품을 처음 접하고는 내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 수준으로 본 작품 내용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었고 저자의 강성 이미지로 인해 독후감 정리를 주저하며 당시의 소회를 별도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몇몇 수준 낮은 ‘상임위원장’이라는 작자들의 개그콘서트를 방불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장관

청문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랄과 발광에 가까운 인간들의 작태를 보면서 과거 큰 임팩트로 다가왔던 작품 내용과 비슷한 면이 떠올라 본 작품을 다시 접하게 되었는데,

어떤 내용에서는 절로 감탄하게 하는 주장도 있었으나 어떤 주장에서는 너무도 저자의 개인적 소견이 강하거나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수위 조절 차원에서 또 역사에 대한 일천한 지식으로 저자의 주장에 논박할 능력이 부족해 정리에서 일단 제외하였다.


작품도 지적하고 있지만 우리의 정치와 리더들의 소명 의식 부족의 큰 원인은

‘현대판 음서제도’와 ‘노블리스 오블리주 미흡‘이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었는데 나는 전적으로 동감하며 특히 우리 역사 전체를 통틀어 어떤 변곡점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위 두 가지 문제점은 아주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해당 문제는 최근 이루어진 ‘장관 청문회’와 ‘국정감사’에서 또 형태를 달리해 나타났다고 판단하는데,

‘음서제도는 아빠 찬스’라는 형태로, ‘노블리스 오블리주 미흡’문제는 ‘공기업 수장 임명 부실 검증’과 현 집권 정부가 과거 야당시절 전 정부에 대해 독설에 가깝게 퍼부어 대던 과도한 물쓰기와 골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치졸한 행동을 보여주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만 그 점에 대해 이상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 생각하며 저자도 수년전 이미 이런 정치판에 ‘딱 맞는’ 현상을 아래 문장으로 예견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주장을 보면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 지배층은 국가를 경영하는 인재집단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기득권을 맹목적으로 수호하려는 패거리집단이라는 개념이 더 어울리는 한심한 집단으로 전락했다.“ (P 99)

라는 문구로 ‘임진왜란’ 자리에 작금 우리 정치 사회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을 적용해 보면 어느 것 하나 틀린 게 없는 즉, 오늘의 이런 개판인 현상을 정확히 예측한 문구였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느낀 것은 리더를 향한 ‘용비어천가’를 외치며 너도나도 충직한 측근임을 나타내고자 말도 안 되는 헛소리와 함께 수준 낮은 비난과 지적질로 협치를 통해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고 성장시켜야 할 상대를 싸잡아 비난으로 일관하며 리더의 눈에 들려고 난리치는 저열한 인간들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인조가 병자호란 때 그 수모를 당한 이유가 바로 음서제도로 등극시킨 측근들 때문이었다‘

라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며, 해당 작품 저자 주장을 내세워 우리 역사의 잘잘못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 내가 이야기해도 들어줄 대중도 없겠지만 -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관점의 변화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이지 어느 수준 낮은 인간처럼 역사에 대해 편협된 시각을 질타하는 대중에게 몰상식하게 ‘후지다’라고 표현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작품을 통해 느낀 점은 우리의 리더를 과거 정치 권력의 실세였던 송시열에게 사약을 내리면서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던 강력한 카리스마의 ‘현대판 숙종‘으로 만들지, 아님 모친에게 급소를 붙잡혀 후세도 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게 한 ’현대판 경종‘으로 만들지, 이도저도 아니면 그냥 그렇게 정권욕에만 눈이 어두웠던 ’현대판 세조‘로 만들지는 리더를 보좌하고 있는 측근들의 자세에 달렸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제1장 우리 역사의 두 가지 가정

(전략적 사고가 필요했던 순간)

- 중대한 역사적 기로에서 지도층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는 역사의 진로는 물론

  국가와 민족의 운명까지도 결정한다. 만약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의

  지도층이 실제 역사와 다른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지도층의 책임을 이해

  하게 되고 지도층의 자격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지도층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특권을 누리는 위치가 아니라 끊임없이 고뇌하고 노력

  해야 하는 고달픈 자리로 국민 대다수가 지도자 자리의 무게를 인식할 때 전략적 사고

  능력을 갖춘 진정한 지도자가 양성될 것이고 국민들도 진정한 지도자를 알아볼

  것이다.

 

1. 17세기 명청 교체기에 조선이 만주족 편에 섰더라면?

-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통일해 명나라에 반기를 들고, 그의 아들인 홍타이지가 1636년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황제로 등극, 홍타이지는 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의 후방

  지원자인 조선을 평정할 필요를 느낌.

  당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친명정책으로 청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냄

-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의 반정 명분 중 아버지의 나라인 명을 배신했다는 논리로 인해

  인조는 친명정책을 공고히 하나 후금은 이를 문제 삼아 1627년 조선을 침략

  ---> 조선은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게 됨.

- 명과의 연합 작전을 하던 중 후금을 공격한 일과 홍타이지 황제 즉위식에서의 결례로

  인해 청나라의 조선 침략 명분을 주게 됨.(병자호란)

- 청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군을 파견할 것을 제안하는 등 우호적이었다. 여진족은

  말갈족의 후예이고 말갈족은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으며,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연합해 세운 나라가 발해였기 때문이다. 여진과 조선은 실제로 함경도 지역에서는 

  서로 통혼을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 누르하치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 즉,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경주 김씨의 후손이라는 해석이 있다고 한다. 청나라와 손을 잡고 명나라 정벌에

  나섰다면 어떠했을까?

 

[한족에게 나라의 운명을 의탁한 이유?]

1) 예의와 명분을 집착하다 정신적인 종속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2) 여진족을 오랑캐라 하여 멸시하며 그들을 상전으로 모시는 데 거부감이 컸을 것이다.

3) 성리학이라는 형이상학적 학문을 숭상해 대외 정보 수집과 분석에 소홀했다.

4) 중국 왕조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저자는 후기 글에 이렇게 쓰고 있는데


2. 14세기 원명 교체기에 고려가 요동을 차지했더라면?

- 14세기 중엽 홍건적 일파의 두목인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였으나 군사적 입지는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중원을 차지했다고는 하나 만주와 조선까지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 당시 역사적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한족이 요동을 실효적으로 직접 지배한 시기는

  고구려 멸망 직후이기 때문에 한족이 직접 통치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 이성계의 조선은 알아서 굽히고 들어가 굴욕적인 군신관계를 맺었고 공민왕 이후

  중단되었던 공녀까지 바치는 제후국 신세가 되었고 그 결과 몽고군에 항복한 원나라

  부마국이 되었던 고려시대보다 훨씬 낮은 대우를 받는다.

- 위화도 회근으로 한민족이 자력으로 한반도를 벗어나 만주를 회복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를 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신채호 선생은 고려시대 묘청의 난을 고구려

  고토 회복을 추구하던 세력이 몰락함으로서 대륙 진출의 끔에서 멀어진 중대사건

  으로 인식했다. 위화도 회군이야말로 민족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 중 하나이다.

- 만약 당시 요동정벌이 이루어졌다면 요동의 인적 자원을 장악한 고려는 만주로

  세력을 넓혀서 군사력 측면에서 명나라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강국이 되었을

  것이다.

 

제2장 성장판이 닫혀 있던 조선

1. 잘못 설정된 조선의 건국이념

- 조선은 한 수 아래였던 일본에 식민지가 되는데, 조선 조정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일본의 호전성을 이야기하며 일본을 비난하기 전에 조선을먼저 돌아보고 조선의

  오류를 찾아내야 한다. 조선의 오류를 찾아내 그 오류가 발생한 원인을 찾아내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조선의 오류를 찾아내지 않고 일본 탓만 하면 또다시 유사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 건국이념에 대한 저자의 주장

      건국이념은 시대가 바뀌면서 국가의 장기적인 성장을 막고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

 

* 총 7개의 분야에 걸쳐 오그라진 조선의 성장판이 닫힌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 아래 제목은 내가 작품을 읽고 더 근접한 내용으로 만든 것임.

사대주의와 중농주의가 초래한 자충수

미약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해금정책(海禁政策)’과 ‘폐광정책(廢鑛政策)’

국민총화를 힘들게 했다. (논공행상/양반들/사제관계 등)

기술 선진국이던 조선, 산업혁명의 흐름을 놓치다.

정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조선.

조선의 불찰로 탄생한 텐진조약.


1) 사대주의 및 중농주의가 초래한 자충수

- 명나라에 종속된 사대주의는 17세기 만주족 굴기에 따른 중원 세력의 판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으며, 명분론에 매몰되어 붕괴되는 명나라에 집착하는 결과

  초래 또 ‘여진족 = 오랑캐’라는 선입견으로 중원의 새로운 주인이 될 청나라를

  지나치게 자극

- 조선 지배층의 ‘집단인지장애 증상’은 조선 사대부가 숭상한 ‘성리학’에서 비롯된

  문제이기는 하나, 이는 성리학의 문제라기보다 성리학의 오용, 남용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결국 명분과 예절을 중시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아무런 도전이 없는 정체된

  폐쇄사회를 유지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인 통치 철학일 수 있으나 외부로부터

  도전이 끊이지 않는 역동적인 개방사회에 맞지 않는다.

  ---> 체제 유지 또는 기득권 유지를 위한 안전판으로 유교사상이 이용됨.

- 중화사상에 매몰된 사대주의 외교가 평화공존을 위한 실리 추구를 벗어나 맹목적인 

  복종으로 변질, 중국 이외의 국가들 특히 서양 국가들과 관계를 설정하거나 국제       

  정세를 파악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버렸다.

   ---> 임란 당시 의병장 및 관군 장수들의 공적은 깍아내리면서 명나라 이여송이 이끈

         명나라 원군을 높이 평가한 점, 임오군란 당시 국가의 위기가 아닌데 부패한

         지배층이 청나라에 원군을 청한 점 등은 중화사대주의를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실리외교가 아닌 지배층 기득권 유지를 위한 안전판으로 사용되었다.

- 중농주의에 입각한 경제체제는 공업에 종사하는 장인과 상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낮춰

  근대국가 발전의 핵심요소라 할 수 있는 기술개발과 상용화를 가로막는 부작용 초래.

- 조선의 왕은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없는 구조로 사대부와 왕만 놓고 보면 입헌 

  군주제 비슷한 국가 지배구조로 중국에서도 조선을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런 조선의 신권정치는 실수를 줄이는 효과는 있을 수 있겠으나 탁월한 군주가

  속도감 있게 의사결정을 통해 국가 역량을 집중하기 어려웠으며 우매한 군주 등극 시

  부패가 가중되거나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 매관매직으로 국가 기강이

  무너지며 동학혁명으로 이어져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2) 미약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 양반은 사실상 납세의 의무와 병역의 의무 없이 특권만 누리는 계급이었다.

  한마디로 국가 위급 시 양반 즉 지배층 자제들이 앞장서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못했고

  심지어 돈이 있거나 빽이 있으면 ‘방군수포제’, ‘대립제’ 등을 통해 군대를 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호적상 양반 숫자의 급증은 군역 인구의 감소와 국방력 감소와 

  연결되었다. 특히, 납세 인구의 감소는 국가재정의 취약성으로 나타나 국방력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폐해 사례는 

  1866년 강화도 ‘정족산성 전투’에서 총 595명의 장졸이 참전했는데, 그중 67%인

  367명이 민간인 포수였다고 한다.

   ---> 조선이 518년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의 제후국 지위를 청하여 중국에

         종속되어 중국의 공동운명체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나라를 무너뜨린 ‘신해혁명’(1911년) 직전 대한제국이 무너진(1910년)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3) ‘해금정책(海禁政策)’과 ‘폐광정책(廢鑛政策)’

- 삼면이 바다인 조선은 농지가 부족한 반도국가로 해금정책으로 무역을 통한 번영의

   의지를 스스로 꺽어버리고 가난과 기아에 허덕였으며 풍부한 지하자원을 사장.

   위 두 정책은 이웃인 일본에게 번영의 기회를 양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 해금정책은 중국의 주원장이 중국내 권력투쟁에서 반대세력이 해상 세력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내린 정책이었는데, 조선은 특별한 고찰 없이 이를 따라했으며

  조선이 막을 내릴 때까지 이 정책을 고수한다.

  여기에 더해 섬에서 거주하는 ‘공도정책’까지 추진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일본은

  반사이익으로 ‘후추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

- 조선은 개인이 광산을 개발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쓰다가 병자호란(1637년)이후

  청나라와의 무역을 위한 은의 수요가 늘자 1651년부터 개인 광산 개발 허용한다.

  연산군 시절(1506년) 세계 최고의 제련기술인 ‘연은분리법’을 우리 손으로 개발

  하였지만 중종에 의해 사치 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폐기(1544년)되었고,

  이 기술은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막대한 양의 은을 생산하는 계기가 됨으로써 일본은

  세계 최대의 은 생산국이 되었고 은을 매개로 한 국제 무역에 참여해 국부 축적했다.

   ---> 중종이 은 제련기술을 폐기한 이유는 ‘사치풍조’와 관련되었으나 실상은 

         은 생산량 증가에 따른 신흥세력의 등장을 경계한 것일 수도 있다.

   ---> 1812년 발발한 ‘홍경래의 난’도 홍경래가 광산을 개발한다는 명분으로 사람을

         모아서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다는 기록이 되어 있다.

 

4) 국민총화를 힘들게 했다. (논공행상/양반들/사제관계)

- 임진왜란이 끝나고 논공행상을 하는 과정에서 최일선에서 싸운 의병장들을 배제하고

  역으로 누명을 씌운 과 이순신 장군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을 보면서 또 백성을 버리고

  야반도주하며 임금의 피난길을 동행한 사람들 중심으로 공적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병자호란과 구한말 외침에 항거해 일어나는 의병의 숫자를 격감시키는 결과 초래.

   --->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은 국민이 일치단결해서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고 국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응집력을 상실한 나라 즉, 국민총화가 불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 또한 돈만 있으면 양반 신분도 얻을 수 있어서 조선 개국 때 10% 미만이었던 양반이

  조선 말기에는 최고 70%까지 이르러 세수의 부족과 군력의 부족 등으로 또 세금

  포탈을 위해 호적을 허위로 기재하는 것이 허용된 사회 전체에 영이 설 수 없는

  구조였다.

  특히 ‘음서제도’로 인해 조선 지배층이 대대손손 벼슬길에 나가면서 고관대작을 

  독차지하면서 악착같이 공부할 유인도 없어졌진 것도 조선의 대외감각을 무디게 한

  중요 원인이었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 17세기 초부터 난가쿠(蘭學)라 해서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오는

  서양 문물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을 정도였고, 페리제독을 통해 일본이 개항됨과 

  동시에 미국의 산업기술 능력이 도입되면서 일본은 일취월장하게 된다.

- ‘군사부일체’는 성리학의 주요 축으로 스승이라 할지라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는데

  비록 스승의 틀린 주장이라 할지라도 제자 입장에서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국가의 중요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었던 것도 조선의 큰 문제였다

  또 ‘방납 폐해’를 비판하면서 대동법을 제안한 송시열이 스승인 김집이 대동법을

  반대하자, 송시열도 입장을 바꾸며 대동법을 외면한다.

 

5) 기술 선진국이던 조선, 산업혁명의 흐름을 놓치다.

- 최석정의 ‘구수략(九數略)’이라는 수학책

- 세계 최초의 산탄대포(조란탄) / 세계 최초의 작열탄인 ‘비격진천뢰’라는 지연탄 및

  로켓탄인 ‘신기전’

- 기관총의 원형이라 불릴 수 있는 변이중의 ‘승자총통’

- 권총으로도 전환이 가능했던 세종 때 만들어진 ‘세총통’

- 획기적인 은 분리법인 ‘연은분리법’

- 괴테가 극찬했던 복식 부기인 고려시대 때에 창안된 ‘송도사개치부법’

위의 모든 결과물은 과학적이지 못한 건국이념으로 인해 기술자와 상인을 천하게 여기게 되었고 형이상학적인 방법론 때문에 발전시킬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답보 및 퇴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P 67)

 

6) 정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조선.

: 저자의 주장이 일견 맞는 이야기일수 있으나 정밀하고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 없이 우리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두 사건(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예로 들면서 ‘조선이 정보에 무관심해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는 일방적인 

  저자의 주장만을 강조하고 있는데 패망의 여러 조건 중 특정 분야만 부각시키고 있는

  저자의 주장은 평소 나의 관점과 다르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은 존중하나

  정리에서 제외하였음.

-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열두 차례 방문했지만 일본의 

  물질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이 일취월장한 것은 보지 않고 윤리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의 차이만 보았다. (P 79)

   ---> 결국, 일본발 위기요인이 축적되는 것을 방치하다 한일강제 합병을 초래한다.

 

7) 조선의 불찰로 탄생한 텐진조약

- 조선 붕괴의 결정적 단초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이 바로 ‘텐진조약’이다.

  텐진조약의 출발점은 ‘임오군란’이었다. 임오군란으로 인해 청국 군대가 조선에     

  주둔하자, 일본도 제물포 조약을 통해 일본공사관 경비 병력을 조선에 주둔시켰고,   

  갑신정변 과정에서 양국의 군대가 충돌하는 물의가 빚어져 텐진조약 체결.

- 주요 연관 사건을 연결해 보면,

  병인양요(1866)/신미양요(1871)/거문도 사건(1885)의 여파가 축적되고 조선 나름대로

  생존해 보겠다고 별기군을 창설(1881)하지만 관리 부실로 임오군란(1882이 발생하고 

  연이어 개화파에 의한 갑신정변(1884)의 여파로 러, 일간 벌어진 전쟁의 배상

  과정에서 ‘텐진조약(1885)’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 텐진조약을 근거로 청과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키는데, 청군은 조정의 요청

  대로 ‘아산’으로, 일본군은 ‘인천’에 상륙했는데, 청군의 목표는 조선의 요구대로 

  농민군 진압이 목적이었으나 일본군의 목표는 조선을 장악하는 데 있었다.

   ----> 일본군은 조선에 주둔한 청군을 공격한 다음 청나라에 선전포고 후 청일전쟁을

           일으킴.

- 텐진조약은 조선과 종주국 청나라가 범한 과오와 실책의 결과물로,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청일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패가 되었다. (P 87)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

- 조선은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질서로 산업 기반을 형성하기 어려웠고 대외무역 금지로

  물질적으로 빈곤해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시한부 국가였다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 지배층은 국가를 경영하는 인재집단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기득권을 맹목적으로 호하려는 패거리집단이라는 개념이 더 어울리는

  한심한 집단으로 전락했다. (P 99)

- 조선이 잘못된 건국이념과 재조지은이라는 왜곡된 중화사대주의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부재로 인해 망국의 길로 가는 것이 필연적이었다고 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정당화되고 식민지 근대론의 궤변성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P100)

   ---> 식민지 근대화론은 요시다 쇼인이 주창한 ‘정한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3장 전략적 사고를 위한 역사 다시 읽기

(논쟁이 필요한 역사적 사건에 관한 질문)

- 중대한 역사적 고비에서 도움이 되는 것은 자긍심이 아니라 어두운 역사로부터 

  냉철한 교훈에 입각해서 추출한 전략적 사고능력이다.


1. 고구려는 왜 백제의 위기를 외면했을까?

- 백제가 고구려의 숙적인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면 고구려 남쪽이 당나라 군대에    

  노출될 뿐 아니라 당나라와 신라의 원활한 교역으로 당나라의 군대가 강력해지는 

  반면, 고구려 안위가 염려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는 백제를 돕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첫째, 당나라의 양동 작전에 말렸을 가능성

  둘째, 고구려 조정이 백제의 상황을 늦게 파악했다

  셋째, 백제의 구원요청을 안일하게 대응했다

  넷째, 이른 붕괴로 고구려가 손 쓸 틈이 없었다.


2. ‘신립’은 왜 ‘새재’를 버리고 ‘탄금대’로 갔을까?

- 주력이 기병으로 구성된 신립의 군대는 문경새재에서 싸우자는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병력을 충주 ‘탄금대’로 옮겨 배수의 진을 치고 달천령 평야에서

  싸웠다.

   ---> 신립 부대의 구성을 보면 주력이 ‘궁기병’으로 새재와 같은 산악지형에서는 

         쓸모가 적었고 갑자기 투입되다 보니 보급에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새재보다

         평야를 택한 것으로 판단.


하지만 평야에서의 싸움에서 완패를 하는데 이유는 논밭으로 이루어진 땅 바닥이

질척거리고 지반이 약해 기병이 속도를 내기 어려웠고 조총의 위력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3. 명이 조선을 구했는가. 조선이 명을 구했는가?

-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보낸 것은 조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명나라를 일본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사전 예방 조치적 성격이 강하다.

   ---> 명군이 주도적으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작전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사실이

         없다. 오히려 명 조정은 협상에 의한 해결을 추구하기 시작. (P131)

- 일본과 강화 협상을 하던 명군 장수 심유경은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명나라 군대에게 피하라고 통보한다. 결국 고립된 조선군과 조선 백성이

  몰살될 때 명나라 군대는 방관했다.

  또한 울산성에 웅거한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를 공격할 때 조선군이 선봉에 섰으나 

  통합 사령관격인 명군 지휘관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도 않고 현장을 떠났다.

- 임진왜란 기간 중 총 100 여회가 넘는 전투 중 명군이 참여한 전투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또 당시 조선 백성들 사이에서는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명군에 의한 폐해가 심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간단한

  사실만 갖고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를 평가해 본다면 결국 조선은 명나라에 의해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명나라를 도와 준 것이고 우리의 힘으로 일본을 물리쳤다는

  것이다. (P134)

 

4. 병자호란 때 조선군의 작전이 엉망이었던 이유?

- 조선은 청나라에 대한 정보 수집을 게을리하다 예견된 청나라의 침공을 받는데 이에 

  대항하여 할 도원수 김자점은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를 구출할 생각은 하지 않고 

  거의 수수방관한다.

  그 결과, 도원수 김자점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파직되지만 다시 부활해 영의정까지

  오른다. 그는 ‘음서’로 관직에 진출한 문과 출신의 병조 하급관리였으나 인조반정에 

  참여, 반정공신이 된다.

  정묘호란 때에는 인조를 강화도로 호종하는 역할과 임진강 수비사령관을 담당한 것이

  군 경력의 전부다. 그는 효종시절 정치적으로 불리해지자 북벌계획을 청나라 조정에

  밀고하는 배신 행위를 서슴없이 행했던 기회주의자였다.

-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는 극심한 불안감에 병권을 함부로 내 편이 아닌 사람에게 

  내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반정공신이자 병조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김자점이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인조는 왕자와 중전, 후궁들을 강화도로

  피신시키면서 강화도 수비사령관으로 문관이고 전투 경험도 전무한 ‘김경징’을 

  임명하는데 그 역식 반정공신이었는데, 현직 영의정 김류의 아들이었는데

  그 역시 ‘음서’로 관직에 진출한 자로 능력이 의심되는 자였다.

  결국 병자호란 때 인조가 갖은 수모를 당한 여러 이유 중 극명한 한 가지는 ‘음서출신'

   측근들로 인해 벌어진 사태가 주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5. 후기 조선통신사는 왜 중단되었을까?

- 후기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의 요청으로 1607년 이후 200년간 모두

  12차례에 걸쳐 파견되었으나 1811년 이후 중단된다. 그이유를 추측해 보면

1) 1811년 조선의 큰 기근과 평안도 지역에서 홍경래의 난 발생으로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고

2) 19세기 들어서 조선은 여러 가지 제도적 모순, 매관매직으로 인한 부패, 민란과 

    도적떼의 잦은 출몰, 사농공상으로 인한 산업의 피폐화, 양반 급증에 따른 국가

    재정의 어려움으로 많은 예산이 드는 통신사 파견이 어려운 상태였을 것으로 추측

    일본의 경우는 서구 열강과 잦은 교류를 통해 일본의 문화수준이 높아져 조선

    문화에 대한 동경심이 사라졌고, 자신의 문화 예술작품(그림, 도자기 등)이 유럽으로

    넘어가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되면서 어느 순간 조선 문인들과 더 이상 대화하기가 

    힘들어졌음을 자각했을 것이다.

3) 조선은 해금정책으로 대외교역이 금지되어 있어 산업혁명의 물결에서 벗어나 있었고

   사농공상의 사회라 자체적으로 기술이 발전하기 어려운 구조로 인해 통신사 교류가

   시작된 17세기나 200년이 지난 19세기나 조선에서 생산되는 물품 수준에 별 차이가

   없었고 새로운 발명품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 일본 지식인들은 조선 문화에 대한 존경보다 일본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고양

- 신분이 고착되어 있고 개인의 노력에 따른 보상과 신분 상승이 보장되지 않은 

  사회였던 조선은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나라였기 때문이다.

 

6. 세계 유일의 자생 기독교인 조선 천주교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 조선의 천주교는 중국에 들어온 유럽 천주교 신부들에게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서학’이라 불리는 하나의 학문으로 받아들여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종교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P153)

- 서학을 연구하던 조선 선비 이승훈이 1784년 조선사절단의 일원인 아버지를 따라 

  북경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세례를 받아 한국인 최초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이승훈이 조선으로 돌아와 동료를 신부로 임명한 후 미사를 집전하고 포교를 시작한

  것이 조선 천주교의 출발점이다.

- 조선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발전한 이유는 천국, 지옥, 연옥이 불교의 극락세계 또는

  염라대왕이 지배하는 지옥과 유사해 낯설지 않았고, 천주교 사제가 불교 승려처럼 

  결혼하지 않고 오로지 신앙생활에만 정진하는 모습도 영향을 주었는데 가장 두드러진

  영향력은 우리 민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이 설명의 열쇠이다.

- 조선의 강력한 통제사회에서 억눌려 잠자고 있던 한민족의 유연한 사고가 천주교에

  의해 다시 일깨워졌다고 보면 조선의 백성들이 신분에 관계없이 천주교에 심취하고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한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된다.

 

7. 동학혁명 때 청나라에 원병을 청한 이유는 무엇일까?

-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조정은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는데, 조선의 원병 요청은 

  결과적으로 조선의 명줄을 끊은 결정타가 되는데 그 이유는

  첫째, 동학혁명은 탐관오리의 처벌이었고 일제 침략을 막는 것이었지 임금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다.

  둘째, 어느 일방의 조선 출병은 또다른 일방의 조선 출병을 의미하는 텐진조약 

         때문이었는데 이로 인해 일본의 침탈이 가속화되는 상황이 되었다.

-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한 이유?  

  첫째, 조선 조정이 텐진조약의 세부 내용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임오군란 때 청군 개입으로 일이 풀렸듯이 가볍게 상황이 종료될 것으로   

          생각하고 파병 요청

  셋째, 친일 세력이 고종을 부추겼을 가능성이 있는데 실제로 일본군이 청군을 제압후

          일본정부의 입김 아래 친일파 내각이 등장해 갑오경장이 이루어진다.

  넷째, 내정 간섭을 일삼던 원세개가 청군 파병을 강요했을 가능성이 크다.

- 조선의 고위관료들이 거세게 파병을 반대하면 파병 요청이 성사되기는 어려웠을

  텐데, 분명히 조선 조정의 일부 세력이 맞장구를 쳤기 때문에 파병이 성사.

 

8. 고종은 왜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을까?

- 을미사변으로 왕비를 잃은 고종은 친일내각을 견제하고 조선의 주권을 방어할 방도의

  일환으로 친러파 이범진과 이완용의 적극 건의에 따라 아라사(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러시아는 고종을 볼모로 조선 왕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에서

  상당한 이권을 챙긴다.

- '아관파천'을 통해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굳혔고 영국과 미국이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자 조선을 일본 지배아래 두는 것이 러시아 남진을

  저지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만든 사건이다.

- 조선 조정, 특히 고종은 국제정치 감각이 무디고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아관파천으로 친러국가로 오해받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거문도 사건 때 영국과 직접 대화했다면 국제질서를 지도하는 국가가 영국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크게 아쉽다.


9. [조선책략]이 청나라의 발등을 찍었을까?

- 『조선책략(朝鮮策略)』은 1880년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조선에 제시한 외교·

  개화 전략서로 당시 러시아의 남하와 열강의 세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이 어떤

  외교 노선을 취해야 하는지를 설명한 책으로 주요 내용은

  ① 친중국(親中國) : 청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해 조선의 외교적·군사적 안전을

                           확보한다는 전략.

  ② 결일본(結日本) : 일본과 관계를 맺고 협력하여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에 대응.

  ③ 연미국(聯美國) : 미국과 연대하고 수교하여 러시아의 위협을 견제하며 서양

                           열강과의 외교 관계를 넓히자는 주장입니다.

- 『조선책략』은 조선의 독립과 안전만을 위한 순수한 조언은 아니었으며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고, 일본 역시 조선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 따라서 이 책에는 조선의 개화와 외교적 대응을 촉진한 측면과 청·일의 이해

  관계를 반영한 측면이 함께 존재하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조선책략』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청나라와 친교를 유지하고

  일본과 관계를 맺으며 미국과 연대하자는 전략을 중심으로, 서양과의 수교와

  근대화를 촉구한 책자다. (Chat GPT)

- 해당 작품은 청나라 이해관계에 입각해 저술되었고, 당시 세계의 중심 국가인 영국에 

  대한 언급이 소홀히 다루어진 작품으로 영국의 국제적 지위에 대해 정확히 언급하고

  조선에게 영국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면

  ‘거문도사건’을 계기로 조선의 개화파가 영국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했을 수도 있다.

- 청나라는 조선이 미국, 유럽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도록 주선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한반도로 진출하려는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조선책략은 조선이 청나라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도록 만들려는 의도로

  기획되었지만 청나라에 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제4장 전략형 인재를 위한 역사 다시 읽기

(불편한 진실을 알아야 전략이 보인다)

 1. 삼국의 몰락

 2. 계백부대는 최후 결전을 벌인 결사대가 아니다

 3. 위화도 회군 4불가론은 궤변

 4. 파국의 씨앗이 된 임진왜란 논공행상

★ 5. 이겼다는 신미양요에 숨겨진 진실

- 미국 입장에서는 개항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는 조선 관료들의 경직된

  사고방식, 조선 백성들의 곤궁한 모습,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벼드는 조선군의

  감투정신에 놀라면서 조선 개항에 따른 무역에서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철수 결정

- 조선 입장에서는 이 전투를 승리로 둔갑시켜 버린다.

★ 6. 러일전쟁의 전쟁터가 된 조선

- 1904년 2월 일본 해군이 여순과 인천에 있는 러시아함대를 기습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 즉, 러일전쟁은 한반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점임.

★ 7. 가쓰라 - 태프트밀약 전후 미국과 일본의 움직임

- 러일전쟁이 끝나고 일본 수상과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태프트와 맺은 대화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기로 한 약속을 기록한 각서.

- 조선은 루스벨트 대통령에 대해 접견 요청을 하나 조선은 일본의 보호국으로

  외교권이 없으니 더 이상 직접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거절.

- 일본은 가쓰라 - 대프트 밀약 2주 후 1905년 영국과 2차 영일동맹을 맺고 조선에 

   대한 권리를 영국에서 인정받았다.

★ 8. 원세개의 9년 전횡

- 원세개는 임오군란 때 대원군을 텐진으로 전격 압송해 임오군란으로 인한 혼돈

  상황을 일거에 정리하는 데 성공, 이에 고종은 갑신정변 때에도 원세개에게 다시 

  큰 신세를 졌다. 그러다 보니 청나라가 보낸 감시관에 불과하던 청년 그에게 코가

  꿰어서 원세개가 사실상 조선의 총독 노릇을 하게 된다.

★ 9. 항일 무장투쟁의 전술적 승리와 전략적 한계

- 청산리전투에서 승리한 선열들은 물론 중국 대륙에서 중국공산당, 국민당과 함께

  일본군과 싸운 선열들, 어려운 여건에서도 상해 임시정부 직할부대에서 활약한

  선열들과 그들을 지도한 임시정부 지도자들의 희생과 노고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분들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정기를 확립하고 계승하는 데 있어 정신적 기반을

  확실하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임시정부를 이끈 지도자들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장투쟁을

  효과적으로 기획하고 조율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위의 소제목 앞에 붙은 ★표는 진정으로 우리 역사 교육 시 반드시 포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소제목들인데 해당 내용에 대해 세세히 정리하지 않은 이유는 

    내용이 민감하고 아직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판단이 정확히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저자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제외한 것으로

    추후 해당 분야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나온다면 그때 가서 개인적으로 정리를 해

    볼까 생각하고 있다.



작품 오류 수정의견 제시

 

- P204쪽을 보면 ‘미국 해군육전대의 스프링필드 전장식 소총 유효사거리가

  900m’라고 했는데, 이를 확인해 보니 아래와 같다.

· 스프링필드 모델 1855 : 유효사거리 약 365m (약 400야드)

· 스프링필드 모델 1861 : 유효사거리 180~365m (약 200~40야드)

탄환은 약 900m 이상에서도 치명적 위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는 통상적인 정확한

조준사격이 가능한 유효사거리와는 구분해야 한다. (Chat 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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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의미 - 두려움 없는 은퇴, 여름날보다 충만한 인생의 가을을 위하여
폴 투르니에 지음, 강주헌 옮김 / 포이에마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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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5

(50대 미만 7, 50대 이상 6)

세상은 2025년 기준, 7명 중 1명이 60세 이상(14~15%)이고 2030년 전후에는 60세 이상이 17%로 6명 중 1명, 2050년 전후로는 약 22%로 5명중 1명이 60세 이상이라고 

한다. (Chat GPT)

 

‘노년의 기준’을 몇 살로 보아야 할까?

이런 저런 환경적 조건과 생활환경에 따라 그 기준은 다를 것이며 또 이것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수학적 수치나 범위로 특정 나이대로 설정하기가 상당히 난해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 누구에게나 ‘노년’으로 가는 인생의 여정 길에서 반드시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장애물은 ‘은퇴’라 여겨지는데, 그것은 누구에게나 세월이 흐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또 살아있는 생명체로 사회활동을 해 온 사람이라면 반드시 받게 되는 자연이 청구하는 삶의 고지서가 아닐까?

세월이 흘러 ‘노년’이 되는 것도 그런데 인생 황혼 길에 ‘은퇴’까지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이는 비탄감에 또 어떤 이는 아쉬움과 허전함으로 만감이 교차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 단어가 주는 묘한 자극(?)은 아마도 여러 감정과 회한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튼 위에서 언급된 ‘노년’이라는 단어와 ‘은퇴’라는 단어가 개개인에게 어떤 느낌의 형태로 다가오던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해당 단어가 주는 의미를 너무 비관적,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해 또 다른 개인 발전의 토대로 만들 수 있도록 이를 행복하게 해석하고 활용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려 노력하는 모습과 자세를 견지한다면 남은여생이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과거 박완서 선생님의 어느 에세이집에서 내용인데 십 수 년이 흐른 지금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내용은 어느 지인의 딸 혼인 식장 한 귀퉁이에서 팔순의 선배가 혼인 식장(?)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뭔가를 쳐다보고는 중얼거리고 있어서 나중에 그 선배가 무엇을 하기에 저러나 하는 마음에 슬쩍 선배의 손에 들린 것을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영어 단어장’이었으며 그 단어장 외우는 모습을 보면서 노년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듬해 그 선배를 잘 아는 또 다른 선배를 만나 단어장 외우던 선배의 안부를 물었더니 자신이 단어장을 우던 모습을 본 그해 말에 돌아가셨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 느낌으로 해당 내용이 다가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돌아가신 단어장을 외우던 박완서 선생의 선배가 큰  스승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늘, 나는 그런 마음으로 갖고 노년의 시기에 찾아오는 ‘은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삶의 Tip을 전해주는 본 작품을 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 작품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강조하고 있지만 - 은퇴 후 삶의 정체 즉,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싶지 않다면 나와 관련되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분야가 있다면 꾸준히 계발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 집중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은퇴의 성공 여부는 은퇴하기 전에 자신의 개성을 얼마나 잘 계발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은퇴와 동시에 성공적인 개인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은퇴 시기보다 훨씬 빠른 50대 심지어 40대에라도 준비가 시작되어야 하며 노년의 준비를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일찍 시작해야 할 것을 작품은 강조하고 있다.


주한 미군 사령관의 동아시아 작전 지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지도와는 달리 한반도를 중심으로 거꾸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생각의 중심에 한반도를 놓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아무리 막아도 막을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노년과 은퇴를 수동적, 패배주의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위에서 언급한 주한 미군 사령관과 같은 관점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몰랐던 인생의 또다른 부분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고귀한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 작품은 사회생활을 할 때 씨앗을 먼저 뿌릴 것을 권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과거의 영화에 사로잡혀 있거나, ‘라떼’라는 의식을 갖고, 꼰대적 사고를 갖고 있는 한, 알찬 노년의

시간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염두에 두면서 살아가야 한다.

 

은퇴는 노년의 시작일 수 있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조건은 과거를 잊는 데 있다.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서 직장에서는 관리자로서 명령하고 지시하는 권위적인 태도를 내려놓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말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하나 작품을 통해 귀한 조언도 한 가지 더 받았는데 노년에 가져야 할 두 가지 포인트로 “무관심”과 “종교로의 도피”를 권유하고 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무튼 이 작품을 통해 노년으로 가고 있는 나의 삶이 더 알차게 될지 아니면 더욱 허접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느 쪽이 되었던간에 모든 것은 나의 자세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은퇴 후 내가 꿈꾸었던 ‘독서’와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 너무도 행복하다.

누군가 이야기한다.

책 읽으면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나이들어 근력 떨어지게 책상머리에 앉아 책 읽는다고 집에만 박혀 있지 말고 산으로, 들로 골프와 여행을 다니며 노년을 즐기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지금의 내가 더 좋은 것을 보니 몸은 노년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마음은 아직 중장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집에만 박혀 있지 않고 여타의 생활에도 적절한 시간을 배분하며 살고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들 

예를 들자면 독서와 글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살고 있지만 놀 때는 논다. 미치고 빡세게 논다. 


16명이 회식하면서 16인분 고기 시켜 놓고 누구처럼 혼자 6인분 처먹고서는 나는 그렇게 추접하지 않다며 뻔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누명을 쓴 것처럼 주접을 떨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수준 낮은 어느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추한 노년이 되고 싶지는 않다. 

만주 개장수는 때가 되면 개만 팔고는 조용히 떠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에게 의리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이며 착각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 1945년 맥아더 장군의 연설

“사람은 일정한 햇수를 살았다고 해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버리기 때문에 늙습니다. 해가 가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지만 이상을 버리면 영혼이 늙습니다. 걱정과 의심, 두려움과 절망은 우리가 죽음을 맞기 전에 우리에게서 천천히 기운은 빼앗아가며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적입니다.“ (P365)

 

[1. 일과 여과]

- 노동이 없는 여가는 여가가 없는 노동만큼이나 영혼을 파괴한다. 노동과 여가는

  상호보완적이어서 우리를 한층 균형적인 삶으로 인도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노동)에 관해서는 훈련받지만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훈련받지 않았다.

- 여가활동과 노동은 분명히 다르다. 여가활동이 자유를 상징한다면 노동은 제약을        상징한다. (P 50)

* ‘여가활동’이란 긴장 완화와 휴식, 창조적 상상력과 자발성 등을 뜻한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을 절대적인 권리도 있어야 한다. (P245) 여가활동의 주된 묵적은 이익이나 유행 혹은 허영심의 충족이 아니라 순수한 즐거움의 추구에 있어야 한다. (P251)

- 은퇴 후의 삶은 당사자의 문화 수준에 크게 좌우되며 여가시간을 지속적으로

  만족스럽고 유익하게 활용하게끔 해주는 것은 오로지 문화이다. 문화는 예술이지만 

  타인과의 관계이고 자연과의 교감이며 삶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P 17~18)

* ‘문화수준’이란 문화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은 배우고 이해하려는 의욕, 시도하고   

  지속하며 수정을 거듭해서 개선해 나가려는 욕망, 경험을 얻고 요령을 익히려는 의지,

  새로운 길을 뛰어들어 정신세계를 확대하고 시야를 넓히려는 욕심, 한마디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장하려는 욕망이다. (P218)

즉, 외적인 활동과 전문적인 활동을 조금씩 줄여가는 대신에 은퇴 후에도 계속할 수 있는 문화적 활동에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더 할애하는 것이 중요하다.

- 문화적 활동이란 자신을 계발해서 꾸준히 진보하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며, 직업

  활동을 끝낸 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P 17)

- 노년을 보람차게 보내기 위해서 늙기 전에 문화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 (P 20)

- 은퇴는 후퇴가 아니라 개인적 성취를 향한 전진이다. (P30)

- 당신이 지금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노년과 은퇴 후에 맞을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 

- 우리 사회는 의무가 아니라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선택한 행위보다 실용적인 노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P 58)

- 습관은 당사자가 삶과 세상에 대해 갖는 마음가짐과 관계가 있다. (P 68)

- 모두가 자신의 의무를 충실하게 해내기를 바라지만, 의무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때로는 의무에서 옆길로 일탈도 해보기를 권한다. (P 72)

 

[2. 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하여]

- 우리 사회의 질병은 심리적 문제로 인한 질병이다. 다시 말해 근원적인 이유가 심리적

  상태에 있는 물리적 증상(물질적이고 경제적인 문제)과 도덕적 증상(갑갑증과 우을증)

  으로 나타나는 질병이다. (P 77)

- 노인이 경멸의 대상이 된 이유는

  1) 과거 사회에서는 노인이 희소했으나 오늘날은 노인의 수가 급증했고

  2) 최신 테크놀로지를 신속하게 배우기 때문에, 新 테크놀로지를 모르는 노인의

     조언이 필요 없게 되었고

  3) 세대가 짧아졌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고 한다. 그 결과 키케로가 ‘노년에 관하여’에서 언급한 찬사가 상실된 지 오래다.

 

* 키케로의 저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에서(도서출판 숲, 천병희)에서 발췌한 ‘노년’에 관한 이야기 (축약)

: 포도주가 오래되었다고 모두 시어지지 않듯이, 늙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비참해지거나 황량해지는 것이 아니며 의미 있게 즐길 수 있는 노년을 역설했다.

·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성격 탓이지 나이 탓이 아니다. 늙어서도 절제할 줄 알고 

  까다롭거나 퉁명스럽지 않은 사람은 노년을 잘 참고 견딘다. 

  반면에 무례하고 퉁명스러운 사람에게는 나이에 관계없이 인생이 괴롭다.

· 노년에 관한 최선의 무기는 학문을 닦고 미덕을 실천하는 것이다.

  미덕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훌륭하게 

  살았다는 의식과 훌륭한 일을 많이 행했다는 기억은 가장 즐거운 것이 되기 때문이다.

· 무지한 자들이 자신의 악덕과 과오를 노년에 떠넘긴다.

· 노년이 비참해 보이는 이유

  1) 노년은 우리를 활동할 수 없게 만들고 

  2) 노년은 우리 몸을 허약하게 하며

  3) 노년은 우리에게서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가며 

  4) 노년은 죽음애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 노년이 되어 가장 비참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성가신 존재가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

· ‘노망’이라는 노년의 어리석음도 모든 노인이 아니라 경솔한 노인의 특징이다.

· 노인 같은 젊은이를 좋아하듯, 젊은이 같은 구석이 있는 노인을 좋아한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자는 육체는 노인이 되었어도 정신은 그리 될 수 없을 데니까

· 명망이야말로 노년의 더 없는 영광이다. 권위란 높은 관직을 역임한 뒤 노년이 

  되어서야 생기는 것으로 청년기의 모든 감각적 쾌락보다 더 값진 것이다.

· 권위란 명예롭게 보낸 지난 세월의 마지막 결실.

· 노년의 엄격함은 옳다고 보지만, 그것은 매사가 다 그렇듯 절제된 것이어야 한다.

· 노인이 죽음은 무시되어 마땅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수명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 노인들은 짧은 여생에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되지만 까닭 없이 그것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 노년은 인생이라는 연극의 마지막 장인만큼 거기에서 기진맥진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 노년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했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일을 하게 되는 시기다.

- 제대로 된 삶의 철학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한 번뿐인 삶을 낭비하게 된다.

-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은 대부분 돌연한 쇠락에 이르기 전 삶의 내리막길에서 

  누렸다.(세네카)

- 노년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노쇠’와 ‘질병’이 아닌 죽음에 대한 ‘예견’으로 죽음을

  예견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잘못 살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 일관된 삶의 철학을 가지면 죽음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일관된 삶의 철학이

          있는 사람은 삶에서 얻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얻으려

          노력하며 살 것이다.

- 스토아 철학자들이 하루하루를 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 이유도 그날에 마지막 날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날 하루에서 또 그 다음 날에서 최대한의 가치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 또한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라’고 외친 이유는 오늘 하루를 사는 사실에 감사하고

  남은 날을 허투루 보내지 않도록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라는 것으로 우리의 행동이

  아닌 행동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임.

 

- 위대한 국가는 젊은이들로 인해 흔들리고 노인들로 인해 유지되고 다시 세워진다.

- 우리는 인간보다 사물을 우선시해왔고, 인간보다 사물에 기반해서 문명을 건설했다.

  노인은 그야말로 인간에 불과하고, 노인은 더 이상 생산자가 아니라 인간이란

  점에서만 가치를 지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시되고 폄하된다. (P 83)

- 노인에게 주어진 원대한 사명은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에 따뜻한 인간미와 이타적인

  감정을 더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노인들이 맡을 수 있다. (P 88)

- 유행에 대한 편견이 바뀔 수 있다면 사회적 편견도 바뀔 수 있다. 사회적 편견은

  개인과 사회적 집단 간의 관계를 해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P110)

- 노인에게도 상대적으로 젊은 성인의 심리와 다른 고유한 심리가 있으며,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더 성장하려면 사랑받고 이해받으며 자신의 의견이 경청된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P122)

- 우리 시대에 중대한 문제는 노인 인구의 증가로 노령화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이유는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것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노인 폄하를 우리 문화의 한 특징이 아니라 자연법칙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노인 인구가 증가한다는 데 있다. (P128)

- 연령층 간의 접촉이 접촉이 활기차게 유지되지 않으면 모든 연령층의 성장이

  저해된다. 노인에게는 어린 아이만큼이나 청소년도 필요하다. 노인에게는 둘 모두의

  사랑이 필요하다. (P136)

- 노인도 인격적 실체가 되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이 말을 걸고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노인은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며 더 성장할 수 있다. (P141)

 

[3. 노인의 운명]

- 은퇴 후 여가활동이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설정되어야 한다.

  1) 갑자기 일을 중단함으로써 생긴 공허감을 채우는 활동

  2) 일을 중단함으로써 고립된 사람에게 사회적 접촉을 시도할 기회를 제공하며

  3) 퇴행의 위협을 받는 사람이 인간다움을 지속적으로 계발하는 수단이 된다.

- 결혼 생활은 끊임없는 교환이며, 상대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삶이다. (P185)

- 고통은 남에게 전달할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개인적인 커다란 시련은 고독이란

  비극적 감정에 의해 더 커진다. (P188)

- 많은 노인을 괴롭히는 외로움이란 비통한 문제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문명의 한계와 단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P196)

-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분노하며 저항하는 사람보다, 수긍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행을 더 쉽게 이겨낸다는 것은 보편적인 법칙이다. (P202)

- 노년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성향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일종의 돋보기에 불과하다. 

- 젊었을 때 비판하는 행위는 왕성한 생명력의 한 형태일 수 있다. 그러난 늙어서

  비판하는 행위는 유약함의 증거여서 당사자를 더욱더 유약하게 만든다. 무기력과

  관련된 슬픔과 후회와 불안은 강박적으로 변한다.

  많은 노인들과의 대화는 거의 그들이 비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로 채워져

  있었다. (P229)

 

[4. 제 2의 삶 혹은 제2의 이력]

-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을 우리 사회에 재통합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변화와 사회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P238)

- 제2의 이력은 한창 활동할 때 씨가 뿌려져서 뿌리를 내린 식물과 같다. 그 식물이

  처음에는 천천히 자라지만 은퇴 후에는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 것이다. (P243)

- 삶은 투쟁이기 때문에 여하튼 뭔가에 맞서 싸우는 노년이 아름다운 노년이다.

- 자신의 가치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지위에 있는 게 아니라 본래의 인간적인 모습에

  있다. (P272)

- 나이가 들면,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하는 일에 담긴 정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아직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 목표가 없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실존적 고뇌가 어김없이 나타난다. (P312)

- 은퇴자들은 죽음으로 몰고가는 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내면의 무력감이다. (P315)

- 고통과 불행에 시달리는 노인은, 질병과 노화와 죽음이 있는 세상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단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반발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불평과 비판을 일삼고 자신의 한계와 허약함과 의존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5. 수용에 대하여]

-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내려놓기는, 나에게는 세상을 등진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 폭넓고 더 깊이 세상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P320)

- 수용은 미완성을 인정하는 것이고, 미완성으로 끝났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P322)

   ---> 수용한다는 것은 삶 전체에 긍정적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P338)

   ---> 노년의 즐거움을 맛보려면 불완전한 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은퇴는 삶 전체가, 그것도 미완성으로 끝나는 죽음의 예고이다. (P325)

- 인간적인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적 현실은 만들어지고 창조되는 것이다.

  미완성은 우리 존재의 일부이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죽음을 향해

  변하는 것이다. (P333)

-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P341)

- 인간은 진실을 추구하지만 진실을 회피한다. 또 인간은 진실을 회피하지만 끊임없이

  진실을 추구하기도 한다. (P345)

- 우리가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 식물처럼 무기력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 확신을 갖고 삶에 ‘좋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P350)

- 노화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고,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현실을 정면에서 맞닥뜨려야 한다.

- 죽음은 내 준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 있다.

   ---> 늙으면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지만 하나님만이 다가온다.

- 몸으로 산 사람의 노년은 쇠락이지만, 정신으로 산 사람의 노년은 찬란한 개화이다. 

- 노년이 요구하는 모든 포기는 몸과 관련된 것이지 마음과 정신에 관련된 것은 아니다.

- 노인은 직업과 사회의 경쟁 대열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더 폭넓은 관점에 마음을 

  열 수 있는데 노년의 의미는 즉각적인 이득으로부터의 해방, 마음의 문을 크게 

  열 기회로 해석될 수 있다. (P369)

- 과거의 관심사에 집착하거나 무기력에 빠지는 현상, 이는 노년에 실패하고 노년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게 하는 주된 두 원인이다. (P374)

- 삶은 단계별로 사랑을 배우는 학교다.

- 모든 것을 놓아줄 때 모든 것을 다시 찾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총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서는 내려놓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내려놓기는 행동의 포기를 

  뜻하는 게 아니라 내 고유한 의지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뜻이다. (P403)


[6. 믿음]

- 죽음은 필요한 것이어서 설명 가능한 것인 동시에 이해되지 않는 불가해한 것이다.

  은퇴가 노년을 예고한다면 노년은 죽음을 예고한다.

- 인간은 질문을 받을 때가 아니라 상대가 귀 기울여 들어줄 때 마음의 문을 여는 

  법이다. (P411)

- 우리가 죽음과 노년에 대해 거의 입에 담지 않는 이유는 죽음에 관련된 감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노년의 두려움을 몰아내려면 노년에 대해 가벼운 마음으로 숨김없이 얘기 할 수 

  있어야 한다. (P412)

- 죽음의 수용이 노년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P413)

- 죽음의 의미는 종교의 문제이기도 하다.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은 성경과 교회의 

  설교에서 무시무시한 협박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평온한 사람은 은총과 

  관련된 약속만을 받아들인다. (P417)

-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강하게 보이려고 불안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인간의 유약함을 

  인정하고, 내적인 진실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불안을 고백하는 것이다. (P420)

- 내가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존재하면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 존재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P424)

- 죽음은 인간에게 훗날 닥치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함께하는 

  시간이다. 인간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태어나서 살아간다. 죽음은 우리 

  존재의 일부이다. 매일 우리는 죽음으로써 살아간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존재이다.

  죽음은 우리에게 삶에는 가치가 있지만 미완성의 가치라는 걸 가르쳐준다.

-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자체가 이미 하나님과 영생을 함께하는 삶이다. (P435)

 

작품에서 오탈자 찾기

- 76쪽 上 6줄

  우리나 약해서 ---> 우리가 약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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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ㅣ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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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정조 어찰첩 6첩 297통’

 

‘정조’는 개혁을 추진한 학자풍 군주(참고, ‘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著 참조)로, 

‘세종’과 더불어 성군 이미지로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러 역사적, 사실적 정황으로 보았을 때 그런 개혁가 이미지인 정조를 독살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만큼의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심환지’와 정조가 주고받았던 어찰첩(편지)이 발견되면서 그런 의심은 모두 소멸되었고 오히려 정조는 막후에서 그런

정적을 이용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노련한 정치가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정조의 어찰은 본질적으로 정치문건으로 정치현안을 지시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정치적 기능이 중심을 이룬 비공개를 전제로 한 ‘비밀편지’인데, 국왕은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 나아가 복잡 다단하게 얽힌 정치 과정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어가려 했음이 밝혀졌는데 아직도 그 진의를 정확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금번 작품은 어찰첩의 개괄적인 사항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는 사항으로 어찰 내용 하나하나를 분석한 작품은 아니다.

따라서 어찰 내용과 관련된 당시 정치 및 경제 환경적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정조의 의도를 파악하기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에 세세한 어찰 내용을 다루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리더는 ‘X'라는 것을 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비밀이 없는 요새 세상에 리더가 자신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좋은 의도로 생각되나 너무 잦은 문자질은 문자 내용과 관련된 중간 관리자들을 무용지물화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진중한 처사라 느껴지지 않는다 할 것이다. 


과거의 어찰이나 오늘의 ‘X'나 같은 맥락이 아닌가 생각은 드는데 ‘X’라고 하니 웬지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여간 정조의 어찰이나 요즘 마구 날리는 'X'나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며 어찰첩 297편이 담고 있는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리더와 리더를 따르는 자들간의 소통을 갈구하는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은 어찌 생각할지.........


- 어찰(御札)은 임금의 편지를 가리키며, 임금이 직접 쓴 글씨는 ‘어필(御筆)’, 임금이

  직접 지은 글은 ‘어제(御製)’, 세자나 세손이 직접 쓴 글은 ‘예필(睿筆)’. 직접 지은 글은

  ‘예제(睿製)’라고 하였으며 직접 쓴 편지는 ‘예찰(睿札)’이라고 하였다. 

  ‘돈유(敦諭)’란 임금이 교지를 내려 신하에게 명령하는 문서를 지칭하고

  ‘서계(書啓)’란 임금의 명령을 받은 신하가 일을 마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문서를 

  일컫는 말 (P 27)

- 심환지가 보유하고 있던 ‘어찰첩’의 형태상 특징은 거의 모두 겉봉투와 함께 ‘장첩’

  되었고

* 장첩(粧帖, 책처럼 아담하게 꾸며 만든 서화첩) 

   : 글씨나 그림 따위를 잘 보관하기 위하여 두꺼운 종이를 붙여 책처럼 꾸며 만듦

  각 겉봉투에는 어찰을 받은 날짜를 적은 쪽지(부전지)가 달려 있다. (P 16)

- 어찰은 귀한 유물이지만 국왕이나 왕비의 어찰이 실제로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집안에 요행히도 어찰을 소장한 신하들은 그것을 조정에 바쳤고, 조정은 그들에게 

  그 대가로 벼슬을 내리거나 후한 포상을 해왔으나 그런 관례가 형성되자 툭하면 

  옛 임금의 어찰이라며 조정에 바쳐 벼슬을 내려주기를 기대하는 자들이 늘어나

  어찰의 궁중반납은 폐단이 될 정도였다. 그 폐단을 없애기 위해 어찰을 받지 않는다는

  명을 내리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P 74)

- 실록에 나타난 정조는 “진실한 선비의 전형이라기보다 국왕 지지세력 조차도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기만과 독단을 자주 사용했고“, ”자신의 국정 운영 방침에 반대

  하는 세력에 대해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공격 대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위협하곤 했다“

   ---> 정조는 어찰을 통해 신하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드리고 통제하고 자기 사람으로

         활용했다.(P 41)

   ---> 어찰이 정치문건이자 비밀편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편지가 ‘의문’을 나타내는

          ‘야(耶)’자를 흔히 사용했는데 이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상대의 의견을 묻는

          어투였다는 점이다. (P 88)

- ‘상소’는 신하가 국왕에게 의견을 개진하는 행위인 동시에 여론을 형성하고 정국의

   방향을 흔들기도 하는, 매우 중요한 정치행위였다. 조선 오백 년 역사에서 고비

   때마다 상소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P 74)

- 정조가 자신의 의도대로 정국을 이끌려 했던 대표적 사건이 1797년 홍국영을 실각

  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상고’를 김종수가 올렸다고 하는 데, 실상은 정조의 

  하명에 따라 올린 상소라 하며 상소 초본을 아예 정조가 직접 지어서 보냈다고 함. 

                                                       

해당 작품을 읽으며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즉, 리더는 자신이 그 위치에 있을 때보다 리더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그 위치에서 내려온 뒤 자신에게 내려질 평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정조 어찰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며 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 집단의 리더들을 살펴보니 자신들이 퇴임 후 밀려올 평가에 대해 - 그런 비난을 무서워하며 평가를 의식한 행동이나 아예 평가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어느 정도 의식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 걱정을 안 하는 듯이 행동하는 리더들을 보면 대단히 우려스런 마음이 일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나의 절친한 후배가 해 준 이야기인데,

자신이 다녔던 회사에서 무소불위의 강력한 권력과 파워를 가졌던 비서실장이 있었는데, 그 비서실장은 지금도 일반인들에게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아는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데 현역으로 활동할 때의 카리스마 넘치고 당당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퇴임 후 그의 모습은 동네 노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하면서 최근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퇴직 후 비서실장이라는 분은 여느 동네 노인처럼 공원 벤치에 홀로 나와 앉아 있곤 했었는데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분이 해당 장소에 거의 나오지를 않고 있다고 한다.

그 비서실장 밑에서 일했던 과거의 부하직원들이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면 ‘재수 없다’고 발길을 돌리거나 ‘왕 재수’라고 하면서 그와 의도적으로 마주치지 않으려 자신이 오던 길을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비서실장은 길에서 자주 만나던 과거 자신의 부하나 동료들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를 친한 후배로부터 전해 듣고는 거의 두문불출한다고 한다.

무슨 뜻이겠는가?


비서실장이 현직에 있을 때 강력한 힘을 자랑하며 무소불의의 권력을 휘둘렀고 항상 자신만이 최고라는 의식 속에서 살았었다. 현직에 있을 당시 모든 이들이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조아림이 그에 대한 존경심 내지는 그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판단은 항상 옳다는 모습을 공공연히 공식 석상에서 보이고는 했는데 그렇게 자신이 내린 판단이 실수로

판명되었을 때에 그 자신은 어떠한 변명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부하직원 탓만 했다고 한다.

그럴수록 그 부하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겉으로 웃으며 수긍했지만 이내 돌아서서는 비난의 독설을 퍼붓고는 했지만 아마 듣고서도 모른 체 했을 것이라고 한다.

비서실장 자신 권력은 영원할 줄 알았던 것 같고 언제까지 자신만이 조직을 가장 사랑하는 참 리더인줄 알고 착각하며 살아왔기에 자신이 그 위치에서 내려와야 하는 순간, 자신이 현직에 있을 때와 같은 동일한 대접을 주위에서 해 줄 것으로 알았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파악하고는 상당히 당황했을 것이고 좌절했을 것이다.

아무튼 비서실장이든 누구든 자신이 뿌린 만큼 돌아오며 자신이 준만큼 돌려받는다는 평범한 진실을 이제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작금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는 기득권자들 사이의 여러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정신이 온전하고 건전한 국민의 생각과 의식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지금의 기득권들이 과거 야인시절 분탕질에 가깝게 난리치며 나라를 혼란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던 그대로 자신들도 되돌려 받을 것이라는 사필귀정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권력을 쥐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의 힘을 후회 없이 맘껏 즐기면서 자신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모든 것은 힘의 논리에 의해 덮여질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 편이었던 세치 혀의 달인, 냄새의 달인, 오늘도 자신은 물론 온 식구가 과잉 조사를 받았다고 끝까지 우기는 두꺼운 안면 소유자와 배추 테크로 한 몫 잡은 어느 돌격대원 등과 같은 어제의 친위대들은 리더가 무슨 우려를 하고 있는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가 더 크다고 자랑질로 연일 떠들겠지만 힘없는 민초들에게는 피로감만 쌓이게 할 뿐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무슨 일만 일어나면 분란의 단초를 제공하는 주인공’은 항시 분쟁을 초래하는 말과 행동으로 모두를 힘들고, 헷갈리게 만들어 놓고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SNS 뒤에 숨은 뒤 밖으로만 돈다.

그리고는 노름판을 전전하다 집에 들어온 어느 무능력한 가장이 ‘내가 너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 줄 알아?‘ 하는 식으로 집 식구들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연일 잡도리 해 대고 있다.

그런 뒤 자신만이 집안을 걱정하며 살고 있는 정의롭고도 희생정신에 가득찬 인물인양 행동하고 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될 경우 본인이 과거에 쌓았던 업적은 측근들이 무분별하게 쉴드치는 행동으로 인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간단하다. 

‘정도를 걷는 것’이고 ‘정직하게 말하고 행동’하면 된다.

모범을 보이고, 자신이 내뱉은 말과 일치되는 행동을 하고, 상생의 모습을 보이면 되고, 전과자들이 활개 치며 선량인척 행동하는 모습이 매스컴에 나오지 않게 했으면 좋겠고, 내로남불의 공직자들을 좀 더 발본색원해 지명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부동산 문제가 

안 잡히는 이유가 뭐고 주식이 어찌하여 개폭락하고 있는지 이를 설계한 자들을 불러내 따져보고 이해를 구하게 하고, 법과 상식을 벗어나 자신의 리더를 무조건 쉴드 치려는 측근들 솎아냈으면 좋겠고, 다수가 알고 싶어 하는 인물에 대해 소상히 밝히면  되고,

과거 정부의 특할비는 완전 없앴지만 지금은 왕창 있어야 하는 이유를 소상히 밝히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진정성을 담아 사과하면서 재발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아무튼 답답하다. 

다수는 거창한 답변을, 완벽한 답변과 행동을 요구하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리더는 마치 우리 옆집 만주벌판 개장수처럼 행동하며 오늘도 모르쇠다.

아무튼 합리와 상식이 출장가고 비합리와 몰상식이 보초 서며 활개 치는 그런 세상이 아닌 모든 이들이 귀하고 평등한 대접을 받는 그런 세상을 보고 싶고 그런 곳에서 살고 싶은 게 오늘을 사는 민초들의 마음인 것이다.

나는 그래도 아직 애정이 남아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일 나오는 내용을 들어보면 아마도 내가 이야기하고 희망하는 이루어질지가 암담하다.

측근들이 난리치는 것을 보면 한마디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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