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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처럼 승부하라 - 권력의 화신에서 공론정치가로 ㅣ 군주 평전 시리즈 1
박홍규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12월
평점 :
추천권유도 8
누가 뭐라 하던 나의 관점으로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을 세운 이성계부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명 군주의 518년의 한국사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왕은 ‘권력의 화신’
혹은 ‘유교적 군주’라 불리는 ‘태종 이방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당 작품은 그런 태종에 대해 평가를 하기 위해 여러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나는 그런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을 제외한 주변 상황과 배경에 관한 이야기 중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저자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고 합리적 개관성이 인정된다고 생각되는 내용만을 중심으로 정리를 해
보았다.
만약 세세한 이야기까지 포함한 내용을 쓴다면 아마도 해당 작품의 분량보다 더 많은 내용으로 이야기 될 수 있었을 것이며 누구나 다 아는 내용에 대한 정리는 역사를 식상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여기서 제외하였다.
작품 내용을 정리한 후 후반부에 나의 관점, 해당 작품을 통해 얻어진 어느 카멜레온 같은 집단과 인간 등에 대한 평가도 하겠지만 태종 이방원, 그는 최소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교언영색(巧言令色)적 ‘일구이언(一口二言)’은 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확인하였으며
그렇게 입으로 짓고 까불고 있는 개인 그리고 집단들이 횡행하는 작금의 여의도를 보면 오른팔이든 왼팔이든 한심함을 떠나 처절함을 느끼고 있다.
* 역사 찬탈자들의 논리(P 52 ~ 55)
- 보통 사람은 폭력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폭력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장수가 그렇다. 폭력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또 있는데 ‘혁명가’다. 혁명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폭력을 사용해 정치 사황을 반전시킨다. 이방원은 ‘정치적’ 폭력 사용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 아버지(이성계)는 혁명가가 가진 정치적 폭력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몽주 격살 후 이성계를
추대하는 기간은 이방원이 주역이었으며 이방원다운 이방원만의 시간이었다. (P 52)
- 신하가 자신이 섬기는 군주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는 찬탈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유교이념을 향하는 왕조국가에서 이 문제는 온당한 처사인가?
---> 맹자의 ‘역성혁명론’을 통해 ‘이성계 일파’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다.
즉, ‘인(仁)을 해치는 자를 도적이라 부르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악하다 한다.
잔악하고 도적질하는 이런 사람을 한낱 ‘필부’라 부른다.(P 55)
☞ 결론적으로 필부를 해치는 행위를 문제 삼을 수 없다.
역사의 찬탈자들은 자기들이 몰아낸 군주를 폭군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의 폭력적
행위를 정당화한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맹자’의 혁명론을 사용한 것이다.
* ‘맹자’의 ‘역성혁명론’에 대한 주자의 조건부 승인(P 56)
- 인자(仁者)가 출현해 전국시대를 종결시킬 것이라는 맹자의 확신에 찬 주장과는 달리 천하는
‘법가사상’을 따른 진나라에 의해 통일
---> 진나라 이후 맹자의 의도와는 달리 한나라를 운영하는 데는 유교와 더불어 법가사상이
혼용됨
- 한나라 멸망 후 천하는 분열되며 유교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인도로부터 전파된 불교가 정치
세계를 지배하며 유교의 존재감이 약화
- 송나라가 시작되면서 정치무대에 나선 사대부들은 선진시대의 공자와 맹자의 유교를 부활,
계승하면서 불교의 논리를 극복하고자 했다.
---> 유교에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생명력 제공하며 송나라 학문이라고 ‘송학’, ‘도(道)’나
‘리(理)’를 중시 한다고 해 ‘도학’이나 ‘리학’ 또는 ‘성’과 ‘리’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해
‘성리학’이라고 부른 이 새로운 학풍은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다.
---> 주자에게 ‘맹자’라는 텍스트는 진리 그 자체로 맹자의 역성혁명론을 주자는 인정하지만
그 혁명론이 찬탈자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주자는 잘 알고 있었으나
‘맹자’를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주자는 ‘맹자’의 논리를 인정하지만 ‘주석’을 붙여 후대의 찬탈자들이 악용하지
못하도록 제한 장치를 설정.
“오직 아랫자리에 있는 자(신하)가 탕(湯), 무(武)와 같은 인(仁)이 있고, 윗자리에 있는
자(군주)가 걸(桀), 주(紂)와 같이 포악하다면 가하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이는 찬탈의
죄를 면치 못한다“
☞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의 건국세력은 맹자의 혁명론을 사용해 찬탈한 행위를 통한 조선
건국을 정당화했고, 이방원 자신도 그러한 폭력적 행위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 ‘역성혁명론’에 대한 신권력의 관점
- 마키아벨리가 ‘정상적인’상황에서 군주가 갖추고 있으면 찬양받을 만한 성품들로 자비, 신의,
절제, 정직, 진지함 등을 꼽았다.(P 59)
---> 신중한 지성인이라면 어떤 사람이 왕국을 조직하거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사용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 책망하지 않는다. 비록 그 행위가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용서받을 만한 것이라면 여하튼 적절한 것이다.(P 60)
- 새로운 왕조에서의 정도전의 첫 작품은 17가지 조목의 <즉위교서>로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를 ‘천명’과 ‘인심’이라는 [맹자]의 혁명 개념으로 설명
---> 당시의 집권자들은 명나라 황제의 승인에 의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자학’을 가지고
사태의 본질을 변질시킴으로써 찬탈에 의한 왕조교체를 정당화시키고자 했다.
---> <즉위교서>는 이제부터 혁명에 상응하는 실적을 올림으로써 비록 출발은 찬탈이었을지
모르나 언젠가 ‘정통 왕조’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의 건국세력은 맹자의 혁명론을 사용해 찬탈한 행위를 통한 조선 건국을
정당화했고, 이방원 자신도 그러한 폭력적 행위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 왕은 관념상으로만 절대권을 가지고 재상을 임명하는 데 그치고, 정치 운영의 실권을 재상이
쥐고 통솔해야 한다는 정도전의 견해를 이방원은 용납할 수 없었기에 사적 이익을 위해 도당을
형성해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반역을 도모했기에 이방원은 자신의 정변 행위는 그들을 징벌
하고 조선의 사직을 안정시킨 정의로운 행위라 주장한다.(P 91)
* ‘이방원의 행위’에 대해 ‘마키아벨리’에게 묻다(P 97~101)
- 태종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 환경에 불편해 했다.
---> 자신의 행위(2차 왕자의 난)는 계획한 것이 아닌 긴급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대응한 정당
방위.
---> 국가의 공익을 위해 자신의 비르투(Virtu, 탁월함)를 발휘.
즉, 네체시타(정상적인 상황에서 통용되는 도덕률을 벗어나 반도덕적인 행위를 허용하는
‘불가피한 국면’을 의미) 국면에서 비르투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 정치영역에서 이 개념을 사용할 때는 개인적인 이익이나 도덕성에 대한 통상적인 고려보다
자신이 태어난 정치공동체의 영광과 공동선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뜻한다.(P 98)
- 비르투를 발휘한 행위라고 내세우려 해도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고 아무리 자신의 능력 행사로
사태의 본질을 포장하려 해도 되지 않자 태종은 ‘사람의 힘’이 아닌 ‘하늘의 도움’이었다고 변명
- 포르투나는 운명의 여신을 의미,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일에 개입하는 힘 또는 존재로 포르투나 를 사용. 마키아벨리는 포루투나의 압도적인 힘에 지배되어 순응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보다,
자신의 비르투를 사용해 포르투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포르투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사람을
높이 평가
---> 태종은 결코 네체시타 국면에서 비르투로 돌파한 인물이 아닌 권력에 마취되어 지성이
마비된 그런 인물이었을 뿐이다.
* 태종의 ‘이데올로그’, 권근 (P120~127)
- 태종은 지속되는 정변 구조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지속적인 정당화 작업과 함께
구왕조와 운명을 같이하려 했던 인물들에 대한 회유 등에 대한 적임자로 ‘권근’에게 요청했고
당대 최고의 성리학 이론가이자 문장가였던 그는 이를 성실히 수행한다. (* 또다른 변절자는
‘하륜’임)
---> 이방원 교서, 태자 옹립 교서, 이방원에게 왕위를 전하는 교서 등 중요 정치적 문건들과
폭력으로 얼룩진 권력 투쟁의 사건들을 성리학적 이론과 용어로 포장해 낸다.
- 무인정변 이전까지 태종과 특별한 관계가 없던 권근은 자신의 문장력으로 태종 집권기에
권력의 핵심적 지위에 진입한다.
---> 대표적 사례가 궁궐(수창궁)의 화재 사건인데, 동중서에 의해 정비된 천견론(天譴論, 하늘
이 경계를 내림)을 잘 포장한 사례
* 하륜, 유교국가의 기틀을 만든다(P138)
- 권근과 마찬가지로 신권력의 회유로 조선왕조에 편입된 인물로 이재에 밝았고 태종도 무한
신뢰했음.
---> 이재(吏材)란 국가제도를 만들고 국사를 처리하는 국정 운영 능력을 지칭하는 말로,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유감없이 자신의 이재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태종의 신임과
비호가 있었기 때문. 심지어 그가 탄핵을 당할 경우에도 태종이 전면에 나서서 보호해 주고
있다.
* 한비자와 술치(術治) 그리고 가지치기 (P172~177)
- 이방원의 정변은 유교적 국가 정체성으로부터의 일탈 행위였지만, 그는 유교 개념을 사용한
정당화의 논리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일탈 행위가 아닌 유교적 국가 정체성의 충실한 수행자임
을 천명.
---> 태종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와 함께 그런 민심을 배경으로 ‘난’이 일어난다.
---> ‘형제의 난’과 ‘조사의 난’(P115참조)을 겪으며 누군가가 난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의구심
과 강박감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세력이 누구인지를 생각.
---> ‘위협’에 대한 ‘객관적 사실’보다 태종 자신의 ‘주관적 인식’이 더 크게 작용
- 가장 귀중한 것은 인민이고, 그다음은 사직이며, 군주는 가벼운 것이라는 ‘맹자’의 주장과는
달리 ‘한비자’는 군주제에서 군주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한 논리를
활용.
---> 만물 가운데 군주 자신의 몸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자신의 지위보다 더 존엄스러운 것은
없으며 군주의 권위보다 더 중한 것은 없고, 군주의 세력보다 더 성한 것은 없다.
---> 군주가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한비자’는 ‘술(術)’과 ‘법(法)’을 제시
- ‘한비자’의 ‘술(術)’과 ‘법(法)’
‘술(術)’이란 담당할 힘에 맞추어서 관직을 주고 명분에 따라서 실적을 추구하며 살생하는
권병을 손에 들고 여러 신하들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 이것은 군주가 장악하는 것이다.
‘법(法)’이란 관청에 명시된 법령과 인민의 마음속에 새겨진 형벌로, 상은 법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고 벌은 명령을 어기는 자에게 가해지는 것.
군주에게서 ‘술(術)’이 없으면 윗자리에서 신하들이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신하에게
‘법(法)’이 없으면 아래에서 나라가 어려워진다. 모두 제왕이 갖출 조건들이다.
---> 군주가 속임을 당하지 않고 신하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술(術)’이 필요하고, 술을 구사하는
데는 ‘법(法)’과 달리 비밀성을 유지해야 한다.
---> 군주가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술조차도 거리낌 없이 구사하는 것을
‘술치’라 하며 ‘가지치기(피목, 披木)’가 한비자의 술치가 제시하는 백미다.
* [춘추]에서의 ‘춘추대의’와 태종 그리고 가지치기(P177)
- [춘추]는 노나라 사관이 기록한 춘추시대 각국의 역사를 공자가 수정하고 정리한 책으로,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 중의 하나로, 공자가 춘추시대 242년간의 사실을 빌려 자기의 사회적 이상과
정치적 관심을 표현한 책이다.
---> 구절마다 시비선악을 판단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를 ‘춘추대의’라 한다.
- ‘춘추대의’에서 군주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신하의 사고와 행위를 판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신하의 모반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야 하고, 신하를 처단하기 위해 군주는 없는
사실을 날조 해서는 안 된다. 반면, ‘가지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권의 강화다.
군주가 왕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권신의 세력이 왕권을 위협하는지를 살펴야 하고,
이때 그가 실제로 모반을 꾀했는지 객관적 사실 여부보다는 그의 세력이 왕권을 가리고 위협
하고 있는가 하는 정치적 고려가 더 중요하다. 즉,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군주의 주관적인 인식과
판단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가지치기는 군주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 술치의 핵심으로 이방원의 사돈인 이거이와 처남 민씨 형제 처단에 적용!!!
* 정도전과 국가전략(P204~233)
[명나라 관점]
- 무력 팽창전략을 사용했던 원나라와는 달리 명나라는 무력 사용을 제한하고 주변국에 대해
외교사절을 파견,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했다. 이런 정책은 ‘책봉’과 ‘조공 관계’를 통해
명나라 중심의 천하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 명나라와 주변국사이에 책봉, 조공 제도를 통해 수직적 질서를 형성하는 데 이론적 자원으로
사용된 것이 ‘화이론(華夷論)’으로 이는 명나라를 문명을 구현하고 있는 중화로 설정하고
주변국을 중화문명으로부터 벗어난 이적, 즉 야만적인 오랑캐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사유다.
[조선의 관점]
- 정도전 주도로 ‘국가 경영’의 텍스트격인 ‘조선경국전’을 제정 기본적으로 신생 국가 조선이
명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천하질서 속에서 취해야 하는 ‘국가 전략’을 담고 있다.
- 또한 ‘천자’와 ‘제후’를 수직적 관계가 아닌 동일한 원리에 의해 존재하는 각각으로서 수평적
으로 묘사. 조선 왕조의 유지는 책봉한 천자가 해주는 것이 아닌 조선의 임금이 인정을 베푸는
가에 달려 있음을 주장 즉, 조선은 맹자가 말하는 ‘천명’과 ‘인심’에 따른 혁명을 통해 건국했고,
맹자가 말하는 ‘인정'을 시행함으로써 존속해 갈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 조선은 작은 주나라(=소중화)를 만들 것이니 명은 큰 주나라(=대중화)를 만들어서 함께
‘중화공동체’를 형성하자는 것으로 이러한 ‘중화공동체 전략’은 조선 ‘중심주의’가 아니라
명나라와의 협조체제를 형성하고자 하는 공동체 지향의 전략이다.
---> 조선은 천자가 추구하는 ‘평천하’의 길을 포기하고, ‘치국’이라는 제후국 국왕의 길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 태종은 정도전의 ‘사람됨’, 즉 사적인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소인배로 규정하고 폄하했을
뿐이지, 그가 설정하고 추진한 조선의 전략과 국가 정책을 비판, 변경, 폐지한 적이 없다.
오히려 태종은 정도전의 ‘중화공동체 전략’과 그에 따른 ‘국가정책’을 충실히 계승했다.
* 태종, 수성(守成)의 시대를 열며(P204~233),
‘유신의 교화’를 선언하다(P246~266)
- 태종에게 이성계의 존재는 정변 구조의 근원이자 정변 구조 지속의 상징적 존재였는데
이성계의 죽음은 태종에게 부친이자 군주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는 부담으로 인해
무기력증에 빠져 있을 때 태종이 등극과정에서 행한 행위가 ‘불효’가 아닌 ‘대효’였음을
주장하는 ‘하륜’의 폭력적 권력을 위한 곡학(曲學)의 진수로 태종은 정사를 재개하게 된다.
- 태종의 집권기는 1398년 정변에서 시작해 태종 10년 민씨 형제의 처결까지를 전반기로, 유신의
교화 선언 이후를 후반기로 한다.(P250)
- 태종은 죽은 태조와 신의왕후를 종묘에 모시는 부묘(祔廟) 직후 배향공신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 유신의 교화(維新之化)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데 ‘조선왕조실록’ 원문에는 총 502회나
나온다. 즉, 유신의 교화는 태조 없는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었는데, 전반기와는
전혀 다른 ’공론정치‘를 구현하기 시작한다.
---> 대표적인 사례가 이거이, 이저 부자의 복권과 이색의 아들 이종선이 자신의 부친의 업적을
기리는 비명(碑銘)에 언급된 ‘용사자’와 관련된 해석의 문제로 발생된 권근, 하륜에 대한
처분을 통해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
- 전반기의 태종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인의 그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유교적 군주상과 일정한 선을
그으며 권력정치가로서의 자율성을 누리고 싶어 했다면, 집권 후반기의 태종은 자신을 유교적
군주로 완전히 위치시킴으로써 신하들과 더불어 유교적 정치를 펼쳐나가고자 했다.(P238~268)
* 성리학적 공론정치(P303~304)
- 주자는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수기修己’를 강조하고, 수기를 이룬 인간이 통치를 하는
‘치인治人’을 수기의 연장선에서 생각한다.
‘주자주의’는 천리天理와 인성人性, 즉 ‘성, 리’의 정치사상이다. 그것은 절대 불변적인 천리의
세계로의 가능성을 인성에서 구하는 정치사상이다. ---> 수기치인(修己治人)
---> ‘주자주의’는 초월자나 극락을 믿지 않으며 오로지 이 세상 내에서 존재, 인간, 수양, 통치의
모든 것에 걸쳐 일관된 체계를 꼼꼼하게 구축하고 그 실천을 추구한다. - ‘천리’와 ‘인성’을
탐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이 ‘성리학’이고, 성리학에서의 정치, 즉 주자주의는 천리에
부합하는 공론을 도출해 실행하는 정치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적 공론정치다.
---> ‘공公’은 공공성 또는 공정성으로 천리 그 자체의 속성을 나타내고, ‘론論’은 공개적이고
비판적인 논의의 측면을 나타낸다. 그리고 ‘공론公論’은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찾아낸
천리에 부합하는 의견을 말하고, ‘공론정치’란 공론을 찾아 실행하는 정치를 말한다.
- 태종은 신군주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강한 의욕을 갖고 ‘저화법(종이 화폐)’을 야심
차게 추진하지만 일방적인 정책 결정과정과 추진으로 파국을 맞고 유신의 교화를 선언한 이후
새로운 정치(공론정치)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시행된다.
---> ‘노비변정 사업’은 유신의 교화 이후 태종의 강화된 왕권과 리더십, 그리고 신료들과의
긴밀한 논의와 토론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가장 어려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공론정치 사례다.
* 태종의 아픈 상처....세자 양녕(P335~359)
- 세자 양녕의 ‘일탈적’ 모습은 양녕이 원자로 책봉된 이래 오랜 기간에 걸쳐 태종을 롤 모델로 해
‘형성되어 온’ 양녕의 정체성이 ‘변화한’ 태종의 정체성과 충돌하면서 발생된 현상.
특히 태종이 세장의 공부에 흡족해하지 않은 것은 세자가 못해서라기보다 태종의 기대치가
높아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어린 시절(태종 5~6년) 잘 극복해 오던 영민한 세자가 태종 12년에 이르러서는 세자로서 부여
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 아유는
첫째, 세자라는 신분적 제약성과 궁궐이라는 공간적 제약성이 세자의 ‘일탈적’ 행위를 초래했고
둘째, 세자의 자부심이 어느덧 ‘자만심’으로 변질되어 태종의 성군 프로젝트에 저항, 반발함.
- 태종이 세자 교체의 파행성이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폐세자를 감행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정체성의 변화를 통과한 태종의 이념의 세계에 대한 의지, 즉 태종의 이념성에서 찾을 수 있다.
(P438)
- 세자 양녕을 폐위하고 목숨을 유지시켜 지방에 안치한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기에 양녕의
아들을 후계로 삼지 않아도 좋다는 주장으로 이런 ‘권도론’은 주자주의에 위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자주의자들이 때가 되면 어김없이 사용하는 논리다.
---> 이런 논리에 대해서는 사전에 태종과 교감(밀지)이 있었던 것으로 유추
* 상왕정치의 장치들(P469)
- 상왕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 중 으뜸은 세종의 ‘군무 능력’을 교육시키는 데 있다.
국왕의 통치권은 교지(敎旨)를 통해 행사된다. 국왕의 명령이 담긴 말을 ‘교(敎)’, ‘지(旨)’는
여기에 담긴 국왕의 의중을 가리킨다. 따라서 교지란 국왕의 명령이 담긴 말씀이다.
교지를 왕지(王旨), 교지를 내리는 것을 하지(下旨)라고 하고, 교지를 전달하는 것을 전지(傳旨)
라고 하고 교지를 받는 것을 수교(受敎)라고 한다.
---> 상왕의 경우는 비록 금상보다 높은 위상을 갖고 있지만 최고의 통치권자가 아니다.
따라서 상왕은 자신의 의중을 금상의 교지를 통해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금상인 세종의 교지와는 별도로 행사되는 명령을 ‘선지(宣旨)’라 는 명칭으로 정했다.
- 상왕이 지적한 핵심적인 논지는 상왕 자신은 사헌부의 감찰과 규탄의 대상이 아니며 자신에게
할 말이 있으면 금상이나 병조에 고해 전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상왕 자신은 극가의 공적
제도 밖에 있는 초법적인 존재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P475)
* 신권력의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P483)
- 세종 2년(1420년) 56세 나이로 태종의 무인정변 성공의 큰 역할을 한 대비 원경왕후가 생을
마감
- 원경왕후의 투기와 민씨 형제들의 억울한 옥사로 인해 불만을 품은 왕비에 대해 태종이 왕비를
폐위시키려 하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되며 대신 후궁을 간택하기로 함.
- 태종 7년에 이어 태종 16년에 또다시 민씨 형제에 대한 추가 처리하자 태종에 대한 왕비의
불만이 높은 상태에서 대비가 죽게 되나 대비의 장례에 관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비를
향한 차가운 마음이 엿보이는 장면만 있을 뿐이다.
---> 태종은 즉위 직후 불교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불교신자인 이성계로 인해 실행하지 못함
고려말 불교 폐단의 본질(방대한 토지 및 노비 점유)을 목격하고 국가 관리를 추진
태종은 대비의 장례와 관련된 불교식 의례를 유교식으로 변경시키거나 불교식 관례를
폐지시켜 유교적 군주로서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 소중화 조선, 대마도를 정벌하다(P493 ~ )
- 조선은 명의 일본 정벌 계획을 크게 우려했다. 명의 일본 정벌이 실행될 경우 조선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은 명의 일본 정벌을 사전에 막기 위해 명의 왜구
피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대마도를 정벌했다는 것이다.
- 왜국의 조선 침략은 중화공동체 전략을 구사한 대 일본 기미정책에 대한 ‘도전’이었고, 소중화
조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었다고 판단한 상왕(태종)은 그러한 대마도주의 배신을 응징
하고자 했다.
- 중국의 서쪽과 북쪽 변경의 일을 처리하기에 몰두하고 있는 영락제가 동쪽의 ‘여진’을 관리
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굳이 바다 건너 일본을 정벌하지는 않을 것으로 태종은 판단.
---> 영락제는 일본을 정벌할 의지도 계획도 없었다. 왜구 정벌은 왜구 침략이 있을 때 표명된
수사에 불과했다. 그것은 일본에 대해서는 압박용으로, 조선에 대해서는 협조용으로 사용.
* 책으로부터 얻는 상식
- 표전문(表箋文)이란 중국에 대한 사대문서(事大文書)로 조선 국왕이 중국의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표문(表文), 황태후, 황후 또는 황태자에게 올리는 글을 전문(箋文)이라 한다.(P 82)
- 도언반사(倒言反事) 신하가 하는 간악한 일의 실정을 알기 위해서 군주가 일부러 뒤바꿔서 말을
하고 반대 행동을 보이는 것.(P192)
- 균름(囷廩)이란 각 지방의 곡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던 창고(P273)
- [서경]은 요, 순을 비롯한 삼대 제왕들의 사적과 치적들을 여섯 가지 문체로 기록한 문헌으로
중국 고대 성왕들의 구체적인 제도와 가르침을 제시한 경전으로 중시되었다.
---> <무일>은 [서경]의 여러 편 중에서 <洪範홍범>과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된 편으로
조선에서는 이 부분만 별도로 필사해 왕세자 교육에 사용했다.(P297)
- 편달(鞭撻)이란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종아리나 볼기를 때리는 것(P335)
- 조계(朝啓)란 조정의 신하들이 왕에게 국사를 아뢰는 정규회의(P350)
- 무연(憮然)이란 크게 낙심하여 허탈해하거나 멍한 상태를 의미(P421)
작품을 읽으며 무책임한 행동으로 밖에는 평가되지 않는 상황을 만든 어리숙한 리더가 그런 상황
으로 몰고간 원인 제공자와 해당 집단을 오히려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어버린 기기묘묘한 우리의 현실과 작품 속 상황을 대비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가급적 ‘외눈박이적’ 사고의 틀로 현실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작품을 통해 다시는 그런 미성숙한 리더를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 또 한편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러한 최악의 선택을 피할 수 있는지를 ‘역사’를 통해 배워보고자 했으나 그 보다는 ‘역사를 왜 읽어야 하는지’를 크게 느낀 시간이었다.
작품을 통해 크게 다가왔던 것은 ‘권력층의 암투’ 혹은 ‘권력 쟁취’를 소재로 한 역사 작품을
접하면 권력층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식 다툼이 그 옛날에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작품을 통해 그런 내용을 발견하게 되면 권력 암투의 전개 과정과 방식보다는 가급적 그런 다툼의 이면에 흐르는 ‘배경’과 ‘힘의 논리’에 더 주안점을 두고 사건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한다.
그 이유는 여러 역사작품을 접하다 보니 ‘역사, 그것도 좋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는
사실을 여러 작품과 실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자주 목격하고는 했기 때문이며 그런 사실을 깊이 사유하다 보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당시의 환경과 참여자의 목적이 유사 사건과 조금은 상이
하더라도 큰 틀에서 조망해 보면 지금 당장 우리에게 일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 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건의 승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특징 중 하나를 또 다시 확인하였는데, 그것은 승리 세력들이 벌이는
‘같은 편 공적(훈) 나눠 먹기와 상호 챙겨주기‘
로 아주 웃긴 것은 최근의 공훈 챙기기 현상은 과거 자신에게 국한되던 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최근에는 해당자 부모, 자식들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공훈자로 둔갑시키는 아주 기묘한 현상이 역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적(훈) 챙겨주기가 헌신적(?)으로 운영되다보니 실제가 아닌 가공의 인물과 허위의 인물에 대해서도 ‘유공자’로 둔갑되어 포상금 잔치까지 벌어지는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홍길동’은 없는 자들을 위해 의적 활동을 했다고, 흥부전의
‘흥부’도 제비 다리를 고쳐주어 야생 동물 보호와 관련된 유공자로 선정해 그들의 혼백이라도
‘현충원’에 안장하자고 덤비지 않을까 심히 걱정될 지경이며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이 땅에 사는
우리 국민이 ‘유공자 집단’과 ‘비유공자 집단’으로 나뉘어지는 사태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고 있지만 마땅한 공적도 없고 나를 그런 집단에 넣어줄 사람도 없어 문제가 있다는 말도 못 꺼내고 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유공자로 선정된 위인(?)의 후손들이 자신의 조상을 평소 흠모하여 조문 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텐데 그런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출입을 금지시킬까 그것도 걱정된다.
위의 사실에 기반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살펴보면 이전에 읽었던 ‘중종’과 관련된 작품에서도 언급되었던 리더나 권력자들의 측근들이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들의 공적에 대해 댓가 즉, 새롭게 출현한 신권력 집단에 대해 자신들도 일조를 했으니 공훈을 인정해 권력의 지분을
공개적, 암묵적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이며 이를 요구받은 신권력 집단은 이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무슨 일만 벌어지면 나라가 금방 절단이라도 날듯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무슨 ‘연대’ 혹은 ‘단체’에 소속된 수준 낮은 인간들이 벌이는 지랄 수준에 가까운 아우성도 공훈 챙겨주기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자기들에게도 뭐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런 잡탕들 난리 굿에 기름을 붓는 인간집단들이 또 있는데 나라에 무슨 일만 벌어지면 ‘원탁
회의’니 무슨 ‘구국대회’를 외치는 한물간 이데올로거들이 벌이는 굿판으로 그런 노욕에 찬
이데올로거들을 보면 어느 작품 제목과도 같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도 같은 또 다른
주인공 엄석대’를 발견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여간 사면을 받아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출소하자마자 고급 음식점에서 된장
찌개로 서민 코스프레하는 종자와 법원도 인정한 기금 횡령에 대해 일언반구 사과도 없는 어느 철면피한 인간에 대해 행해지는 공훈 챙겨주기 발언은 이 땅에서 벌이고 있는 수준 낮은 아주
저급한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사면권’ 이야기가 나와 한마디를 덧붙여 보면
지금 사면권을 발동한 대표자는 과거 통수권자들이 행했던 ‘사면권’에 대해 얼마나 비난을 했었는지는 세세히 열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최근 벌어진 사면권 쇼는 하여튼 삶은 소대가리도 아닌 설익은 소대가리도 웃게 만들고 있으며 스스로 사면권을 희화화시킨 웃기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금번 사면령을 아주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앞으로 이와 같은 수준 낮은
사면권 발동과 유사한 조치가 이 땅에서 일방적으로 자주 실시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내가 감히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보통 사람과 뇌구조가 다른 이상한 사람은 절대 안 변하기’ 때문이다.
사면권과 사람 안 변하는 게 무슨 연관성이 있냐고 할 수 있지만 해당 작품을 읽어보면 나의 이런 주장이 왜 나왔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태종은 ‘술치(術治)’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해 왔는데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 나의 이런 주장이 왜 나왔는지 궁금하면 작품을 읽어보시라 -
즉, 태종이 자신의 처남들을 작살냈고, 사돈을 사약으로 처단하였듯이 가족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타인을 존중할 수 없으며 그 자신 안에 내재된 참혹한 본성과 독불장군식 조치를
자신에게 부여된 최고의 권한을 활용하여 반드시 만천하에 보여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권력이 추구하는 전략 몇 가지를 살펴보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암수목표 달성 전략’이다.
대표적인 행위가 상대편을 ‘내란당’, ‘반란세력’ 운운하면서 코너에 몰아넣고 자기의 이득을 취하는 다시 말해
‘작은 거 하나 주고 더 큰 하나를 뺏어가는 전략’
으로 그들은 낮 뜨거운 난해한 목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반드시 ‘내란당’과 ‘반란 세력’이라는
단어를 서두에 꺼내든다. 그러면 모두가 그 단어에 집중해 뒤에 무슨 말이 나오는지 거의 신경을
쓰지 않거나 앞 단어의 무게에 눌려 뒷 문장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나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만든 후 자신들이 목적하는 바를 슬쩍 끼워넣는다.
대표적인 사항이 ‘특활비 부활’이다.
그들은 이전 정부가 ‘돈이 없어 일 못한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면서 특활비 82억 전액을
삭감시킨 전력이 있는데 상황이 바뀌자 특활비가 없어 일하기 힘들다면서 자기들 손으로 삭감한 특활비 부활을 요구하고 있는데 일을 하다 보면 상황 예측이 잘못되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를 복원하는 과정이 치졸하다.
특활비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일단 상대를 ‘내란당’, ‘반란 세력’ 등과 같은 단어로 자신들의 실수를 상쇄시키기 위해 상대를 몰아 부친 후 뒷말 속에 자신들의 목적을 은근 살짝 끼워 넣어 관철
시킨다.
그 방식도 좋기는 하지만 요구하는 액수도 합리적이어야지 아주 얍쌉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즉, 전임 정부의 특활비 1년치에 해당하는 82억원 보다 훨씬 많은 92억 원을 요구하고 있는데,
신권력이 지난 6월에 정권을 잡았으니 년 말까지 일할 특활비 7개월치만 요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왜 전임 정부 1년치 특활비 82억원을 상회하는 금액을 반년 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신청했는지가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신정부가 구성되어 인수위 과정도 없었고, 전임 정부의 무능으로 할 일이 태산처럼 쌓였다고’
그럼 지금이라도 인수위를 만들고 무엇을 할 것인지 업무 리스트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공표해
비용이 왜 많이 들어가는 지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과거 박수무당이 이야기한 영수증도
없이 집행될 예산이 왜 그리도 많이 소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한 소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나라 곳간도 비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비용을 왜 그리 많이도 신청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하여간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가 기계체조하는 모습이 곳곳에 숨어 있다.
모두가 내란당 운운하며 전임 통수권자의 옥중 투쟁기에 관심을 쏟게 하고 그들은 사육장의 곰 쓸개즙 빼 먹듯 예산 사용의 단물을 즐기며 자신들만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또 하나 ‘사면권 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모든 이들의 저의를 더 확실히 확인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강력한 포퓰리즘으로 많은 이들을 달콤함에 취하게 한 후 외부의 그 어떤 자극에 쉽게
반응하지 못하도록 만든 후 자신들이 숨겨놓은 ‘암수목표’를 공공연히 노출한 후 손쉽게 목표
달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즉, 이 놈 저 놈 다 사면시키고 과거에 지은 죄 전부를 없는 것으로 풀어 놓으면 전과자 아닌 인간 찾기가 아주 어려워지는데, 그럴 경우 온 천지 사방이 전부 전과자 세상인데 특정인의 전과 기록은 그런 인간들 이슈에 묻혀 문제화 되지 않을 것이 뻔하게 될 것이다. 이쯤되면 해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자기에게 돌 던질 사람 있음 나와 보라’
는 전략으로 밀고 나갈 것이 눈에 보인다. 그래도 이것을 지적하는 기레기들이나 때만 되면 지랄하는 이데올로거들과 질낮은 단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면서 연일 전임자 옥중 투쟁기와 그 부인의 목걸이 사건과 구두만 갖고 콧수염 앞세우고 난리에 난리들이라는 것을 태종처럼 승부하려고 연구하다 보니 금번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누군가가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태종처럼 승부’하기를 원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스스로 언관이 되라’는 전략을 추진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언론’을 이용해 대응하라는 것으로 이해되기 쉬우나 그게 아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항을 기록해 후손들에게 오늘의 이 현상을 명명백백 증언해 주라는 것으로 기업으로 이야기하면 ‘불량품 새벽 시장’이나 ‘불량품 전시회’ 같은 행사를 하라는 것이다.
내란당이라고 위축되어 다수당의 우두머리 박수무당이 입만 열면 비상식적 발언에 너무 위축
되지 말고, 다수당이라고 자만에 빠지지 말고 진정으로 협치의 노력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분간 절대 다수가 내란당이니 반란 세력이니 하는 단어를 즐겨 쓰며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 단물을 있는 대로 빼 먹으려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인데
이를 막아보겠다고 나서지 말고 그들이 펼칠 막춤을 감상한다는 마음을 갖고 느긋하게 지켜
보라 전략이다.
왜? 내란당, 반란세력이 입이 열 개여도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그들이 지속적으로 난리를 피우며 추게 될 ‘권력의 막춤’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막을 방법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나 그렇다고 저들의 행동을 손 놓고 그냥 구경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바로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 그 옛날 언관들처럼 다수들이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전부 기록한 후 저들의 모든 행동을 ‘백서’ 형태로 만들어 주기적으로 발표하라는 것이다.
어느 인간이 어떤 법안을, 어떤 의도로 발의했고, 누가 동의했으며, 법안을 발의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부 기록해 주기적으로 언론에 발표하던지 나름의 장소를 만들어 전시하자는 전략이다.
상대의 것만 이야기하면 안 된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도 포함하여 반성하는 차원에서 발표해야 합니다. 이것은 문재앙 시절부터 소급해야 운영되어야 합니다.
통계조작으로 나라의 백년대계를 망치려 한 작태 경위와 내용, 주택 정책 및 부동산 정책의 오류로 젊은이들 길거리로 내 몬 경위, 국제적으로 망신살을 뻗치게 한 새만금 잼버리 행사의 실패
원인과 감사결과, 싸드 설치 반대를 외치며 가발 쓰고 춤춘 인간들, 세월호와 천안함 침몰 당시
허위 사실을 공공연히 퍼트린 인간들, 고위 공직자로 있으면서 자기 부친 민주화 유공자 만든
인간들 모두를 전부 기록해 발표하고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상시 전시를 해 놓으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더 나아가서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입장이 바뀌어 태세가 전환된 사건과 법안에 대해서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아마 그 모든 자료를 모으면 아마 팔만대장경은 거의 부록 수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과거 어느 분이 어떤 집단을 향해 외치던 구호가 생각납니다.
‘대가리는 親日, 아가리는 反日’
이라는 구호입니다. 이 구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나 단체가 친일적일까요 아니면 반일적일까요?
지금 이 땅에 이런 특성을 지닌 집단이 구국의 선봉대로 활개치고 있습니다.
할 이야기 너무 많은데 손가락이 아파 여기서 줄일까 하며
하지만 나는 이런 이들에게 어느 신문 컬럼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가인은 질투 끝에 아벨을 죽였지만 사실은 자신을 해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인과 아벨은
대립적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통해 온전해지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흙으로 빚어진
외형’, 아벨은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를 뜻합니다. 육체와 호흡이 함께해야 온전한 인간이
되듯, 가인과 아벨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중략)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은 ‘흙’, 하와는 ‘생명’입니다. 흙만 있으면 죽은 존재이고
생명만 있으면 허상입니다. 두 존재가 만나야 진정한 인간이 됩니다. 따라서 성경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어떤 학자는 이를 “이웃을 사랑하라. 왜냐하면
그가 곧 네 몸이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합니다. 이웃을 미워하거나 해치는 것은 곧 자기 파괴
행위입니다.
(중략)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함께 있어야 온전한 인간입니다. 이웃은 나를 온전하게 만드는
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뜻 안에서 서로를 품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국민일보 오늘의 설교, 2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