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지역을 읽으면 세계가 보인다 - 국제정치 전문가 김준형의 세계 10대 분쟁 이야기
김준형 지음 / 날(도서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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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매번 매스콤을 통해 접하는 지역분쟁에 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요번엔 왜?’, ‘?’,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라는 수준으로 

지역분쟁을 받아들였지 그런 분쟁의 배경 혹은 영향에 대해 관심을 크게 갖지 않았던 게 사실인데 금번 작품을 통해 지구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주요 지역분쟁의 

원인을 확인하고는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분쟁지역을 읽으면 세계가 보인다?’는 이야기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지역 분쟁이 지금 당장 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기에 

분쟁으로 인해 세계가 보였다고까지는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고 그 보다는 

세계가 아닌 인간의 탐욕이, 강대국의 음흉한 계략이, 정치적 리더들의 수준 낮은 

안목이, 인간을 행복으로 이끌어가야 할 종교적 이기주의가 눈에 들어온 시간이었다.


해당 작품에서 얻은 여러 경우의 수를 내가 살고 있는 우리 한반도에 적용해 보니 

중국에서 벌이는 어떤(?) 행사에 맞춰 방문한 뚱보 돼지 색히의 뒤뚱거리는 모습에서 

나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이용만 당했던 쿠르드 난민이 생각났으며

그 돼지 색히를 격려하는 나이 처먹고 뒷방 노인네 역할만 해도 버거운 노욕에 

색히들이 돼지 색히를 격려하는 호전적인 수준 낮은 행동을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도 자칫 분쟁 지역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스런 마음이 들었는데 특히, 돼지

색히로 인해 국제적으로 우리 땅이면서 독도라 부르지 못하고 리앙쿠르트로 불리게 만든 일본 놈들과 같은 일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에서 벌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게 나타난 순간이었다.

 

작품을 통해 작금의 지역 분쟁의 원인이 과거 강대국이었고 지금도 강대국이라 불리는 몇몇 특정 국가에 의해 자행된 결과의 산물임을 고려해 볼 때 몸뚱이만 컸지 지적 능력이 한 참 떨어졌던 중국이과거 열강들이 자신에게 행한 방식으로 작금의 세상에서 

세계를 대상으로 정치, 경제, 군사적인 측면에서 난동에 가까운 패악질을 벌이며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약소국 14개국을 대상으로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키고 있고 앞으로 이런 분쟁이 지속될 것이 예측되는데 그렇게 될 경우 과거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조지 프리드먼의 저서 ‘100년 후에’(김영사)에서 언급한 중국의 분열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게 저자도 그렇고 작품을 읽은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 열강에 의해 주도되어 원래의 모습에서 변질된 약소국(?)의 모습은 분쟁 이전으로 즉,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으로 중국의 경우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해당 지역의 문화와 인종을 말살시키려 난리치는 티베트 문제와 신장 위구르 문제는 물론이고 바닷길 가로막고 지랄하는 문제도 반드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중국은 반드시 분열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아무튼 지역 분쟁 역사를 읽으며 중국, 중국인들이 앞으로 펼칠 광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1.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까]

- 22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데 이유는 91년 바르사뱌 조약기구가 해체

  되면서 서방에 대해 러시아는 NATO의 해체를 요구하나 NATO는 동유럽 확장은 물론

  새 회원국에 대해 군대와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러시아와 

  이웃한 조지아우크라이나까지 가입하려 하자 위기감을 느끼며 침공

  --->우크라이나는 독립국으로 자신들이 선택할 문제라며 NATO가입 강행

  --->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자기 나라 일부로 여겨 전쟁이란 용어 대신 특수 군사

         작전이라 부른다.

- 러시아는 미국에 대해 새로운 나토 회원국에 배치한 군대와 핵무기 철수를 요구함과

  동시에 2014년 체결한 민스크 협정준수를 요청

  * 민스크 협정 

    : 벨라루스 수도인 민스크에서 돈바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우크라이나, 러시아

      러시아 분리주의 집단 간 맺은 국제 협정으로, 전통적으로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돈바스 지역 주민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를 원해 일어난 분쟁으로 해당 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분쟁이 종식되었으나 우크라이나는 이를 인정하지 않아

      러시아 침공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함.


[2.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올까, 이스라엘 - 팔레슽타인 분쟁]

-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랍과 유대인 사이에서 양다리 전략

  구사1915후세인-맥마흔 선언으로 아랍 국가 건설을 약속하지만 2년 후 1917

  유대인들의 전쟁 자금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벨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국가 건설 지지.

  ---> 1차 대전 후 국제 사회는 유대인들의 지원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며 

         유대인 손을 들어 줌.

  --->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다수인 아랍인들을 어떤 대책도 없이 강제로 추방할 때 

         유대인들은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피해 이 지역으로 밀려들어 옴 

- 2차 세계대전 후인 국제연합은 해당 지역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마련해당 지역을 예루살렘(공동 지역)은 남겨두고 유대국가아랍인 

  국가로 분할하자는 방안 수립.

  ---> 아랍인들이 이를 거부하고 원만히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국이 철수하자 

         제1차 중동전쟁 발발

*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 국제사회가 법적으로 인정한 팔레스타인 기구, 독립국 팔레스타인 건국을 목표로

  1964년 결성

· 중앙집권적 정치조직이 아닌 여러 정당과 단체가 연대한 조직

· 대표적 정당은 파타하마스가 있는데, ‘파타2국가 해법을 인정하고 비폭력 

  독립운동을 지지하나 하마스는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무장조직으로 2국가 해법에

  반대

- 1956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으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과 

  2차 중동전쟁

   --->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의 요충지를 점령

- 1967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군사동맹을 맺고 주변 아랍국과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다

  실패(3차 전쟁)

  --->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 완승, 이스라엘 영토는 3배가 확장되며 유엔이 당초 

        제안한 땅의 5배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함.

- 19733차 전쟁 당시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이집트와 시리아가 공격하나 

  이스라엘에 완패(4차 전쟁)

 ---> 시나이 반도는 협상을 통해 이집트가 되찾았으나 시리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고원은 미회복.

* 1993년 미국의 주도로 오슬로 협정으로 PLO가 마침내 수립.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주권 국가로 독립해 국가 대 국가로 공존하자(2국가 해법)

--->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자치정부, 점령지 반환 및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 투쟁금지)

· 3차 전쟁 이전의 국경선으로 되돌아 갈 것

  --->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 일부 지역에서 철수

- 1996년 팔레스타인을 축출하려는 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가 집권하면서 평화는 

   오래가지 못하며 팔레스타인도 2006년 강경파 하마스가 집권하며 분쟁이 격화.

- 이스라엘의 우경화가 강화되고 있는 이유 ---> 인구 구성의 변화

· 건국 초에는 유럽 중동부 출신의 유대인인 이슈케나지(히브리어, 아슈케나즈의 

  유대인)가 많았다아슈케나즈는 히브리어로 독일을 뜻하기에 아슈케나즈 유대인

  독일 유대인이란 뜻으로 이들은 금융, 무역업에 주로 종사했다.

· 건국 후에는 이베리아반도 출신의 유대인 즉, 세파르디(히브리어, 스페인이란 의미

  유대인 집단으로 이들은 주로 이스라엘에서 하류층을 이룬다.

  ---> 따라서 팔레스타인들의 삶의 기반과 겹치게 되었고, 사회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이들은 진보 세력의 점령지 반환 정책에 반대하며 이스라엘의 우경화를 주도.


[3.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에 무관심해졌을까, 미국 - 아프가니스탄 전쟁]

- 아프가니스탄은 아시아와 중동, 러시아를 잇는 중요한 땅으로 부동항을 찾는 

   ‘러시아와 인도양으로 진출을 꾀하는 이란의 주요 표적이 되나 영국이 이를 방어.

  --->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3차에 걸쳐 침공하나 실패.

  ---> 러시아가 부동항을 얻기 위해 접근하며 아프가니스탄과 군사적으로 교류를 확대

  ---> 러시아 군사 연수를 수료한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이 소련식 공산주의를 추구하며

        세력 형성, 이들의 반대 세력 즉, 부족 세력들은 이슬람이란 종교를 중심으로 

        서구화는 물론 소련식 공산주의에도 반발.

- 1978년 좌파 군인들에 의해 공산정권 수립

  ---> 무자헤딘(성전에서 싸우는 전사)이라는 반정부군이 결성되어 아프가니스탄 내전

         발발

  ---> 소련 남부지역(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이슬람권 국가들

        에게 이슬람 혁명이 일어날 것을 염려한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에서 전쟁을 일으켜

        혁명이 번지지 않게 차단

  ---> 소련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무자헤딘 소멸 작전 전개(소련판 베트남 전쟁)

- 1990년 주요 장성들이 친소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쿠데타 모의 사실이 발각되어

  내분 발생

  ---> 무자헤딘의 승기, 소련의 붕괴와 맞물려 1992년 탈레반 정부 수립

* 텔레반이란 (알카에다는 아랍어로 근본주의라는 뜻이다)

   아프가니스탄 남부에 거주하던 파슈툰 부족에서 시작한 반정부군 조직, 탈레반은

   ‘학생이라는 뜻으로,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양성하는 신학교 학생들이 

   반정부군으로 주로 활동하면서 붙여진 이름

- 2001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 알카에다를 보호한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나 탈레반 간부가 미국에게 시계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면서 

  미국에 대해 지구전을 전개

  ---> 2021년 미국은 에너지 시대가 변화(석유 ---> 셰일가스)하면서 에너지 수입국

        에서 수출국으로 또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중동 문제에 개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 

* 블로백(BlowBack)이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를 군사 강국으로 키우나 미국은 후세인의 이라크와 

  전쟁을 벌여야 했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텔레반을 도왔으나 

  미국은 추후 20년간 텔레반과 전쟁 전개


[4. 대만은 왜 국기가 없을까, 중국 - 대만의 갈등]

- 중국 역사에 대만이 등장하는 것은 청나라 때로, 푸젠성, 광둥성 등에서 한족이 이주

  대만이 주목받은 이유는 필리핀과 중국 본토를 잇는 거점인 데다 교역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 대만인은 본성인(本省人, 청나라 때 건너와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대만 거주 한족)

   외성인(外省人1949년 중국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대만으로 건너온 한족)

   으로 구성되는데 장제스로 대표되는 이들은 교육과 소득이 높아 대만 정부의 고위직

   과 관리직을 독차지.

- 2차 대전 직후 대만의 국민당과 중국의 중국공산당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대립.

  ---> 중국은 대만을 전쟁에 패한 장제스가 세운 괴뢰정부, 대만은 중국을 쿠테타를

        일으킨 공산당 세력으로 본다.

- 1970년대부터 데탕트 시대로 접어들면서 미국과 중국, 소련과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1971년 미국이 유엔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의 대표로 인정하고 1972년 중국의 

  ‘하나의 중국원칙에도 동의

  ---> 국제사회에서 대만은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고 표기할 때는 중화 

         타이페이라고 표기, 1983년부터 중국은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 특별

         행정구로 지명, 홍콩/마카오와 같은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여기고 있다.

* 중국의 새 이념은 민족주의

  중국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하여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사실상 더는 공산주의 이념으로 국민을 통치하기 어려워졌다. 국민을 결속할 다른 

  이념이 절실했는데 찾아낸 것이 민족주의라는 이념이다.

  ---> 민족주의가 뿌리내리면서 영토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

  ---> 내륙에서는 주변국(인도, 파키스탄, 부탄 등)과 영토를 놓고 분쟁하고, 동중국해

         와 남중국해에서도 해상 영유권을 놓고 분쟁 중.

* 대만에는 민진당과 중국국민당(이하 국민당)이 있는데,

내륙에서 중국공산당과 치른 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건너왔는데, 공산당과 다시 

싸우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대만을 통치하는 데 주력, 그 결과 국민당은 38년간 

계엄령을 유지하다 지난 1987년 해제.

민진당은 1986년 이후 대만 사회도 민주화되면서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합법 정당으로

활동 시작또 국민당으로부터 소외된 본성인을 지지층으로 삼으며 중국 본토 수복은

비현실적인 구호라 여기며 국민당이 중국 본토 수복을 핑계로 현상을 유지하고 부패만 일삼고 있다고 싫어함.


[5. 중국군과 인도군은 왜 몸싸움을 벌였을까, 중국 - 인도 분쟁]

- 갈등의 씨앗은 영국으로 19세기 인도제국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부탄 등     까지 포함한 제국으로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섞여 있었는데, 영국은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들 이익을 위해 러시아 제국의 남하를 막기 위해 국경선을 

   설정한다.

   ---> 영국은 청나라에 아다그- 존슨 라인을 제안하는데 이는 청나라가 지배하던 

          카슈미르 일부 지역인 악사이 친지역이 포함된 국경선이다.

   ---> 청이 반감을 표시하자 악사이 친을 다시 청나라에 돌려주는 방안

         (매카트니 - 맥도널드 라인)을 제시

          그러나 청나라 내부 사정으로 이런  수정안에 대한 공식적인 수락도, 거부가 

          없자 영국은 당초 제안한 아다그 - 존슨 라인으로 국경을 확정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내부가 안정된 중국이 국경선에 관심을 

          가지며 영국과 인도를 비난하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인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면서 본격적 국경선 갈등 시작.

          티베트 지역이 인도 쪽으로 돌아서면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티베트를 중국이 기습 점령하자 서남시아에서 리더 역할

          을 생각했던 인도는 이런 중국으로 인해부담을 크게 느낌 .

   ---> 1962년 중국이 맥마흔 라인에 근거, ‘악사이 친과 북동부 아루나찰 프라데시

          지역을 중국에 편입 미국이 개입을 천명하자 중국은 느닷없이 휴전을 선언하고

          아루나찰 프라데시에서 철수하고 악사이 친’ 지역을 점령해 버리면서 자신들은 ‘         아다그 - 존슨라인을 수락한 적이 없다고 발표.

          결국 인도는 아루나찰 프라데시, 중국은 악사이 친지역을 갖는 식으로 

          추진됨.

- 중국과 인도의 국경 길이가 약 3천 킬로미터로 국경 분쟁이 일어나는 곳이 20여 곳에     달하고 있다.

   인도는 중국과 국경 분쟁을 벌일 때는 미국과 가깝게 지내지만, 그렇다고 반중 

   노선을 취하지 않고 미국이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제재하려는 것에도 반대하는 

   스탠스를 유지하는 국가로 이런 인도의 이중적인 태도에 미국은 불만을 갖고 있으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국가로 최적이기에 지속적인 우호관계 유지 중

.

[6. 이웃과 왜 싸우게 되었을까, 인도 - 파키스탄 분쟁]

- 카슈미르 지역은 16~19세기 중반까지 인도 최초의 통일 국가인 무굴제국의 땅이었으

   나 무굴제국이 영국 식민지가 되면서 인도제국이 된다.

   1947년 영국이 떠나면서 인도 임시정부 수립을 놓고 힌두교와 이 슬람교가 갈등

   하면서 힌두교는 인도이슬람(무슬림)은 파키스탄으로 나뉘는데, 이때 카슈미르 

   지역도 인도 땅과 파키스탄 땅으로 나뉘어지며 훗날 인도령 일부인 악사이 친을 

   중국이 차지하해 카슈미르 지역은 인도령, 파키스탄령, 중국령으로 나뉜다.

-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은 영국이 해당 지역에서 실시한 분할 

  통치에 기인한다.

  즉, 영국은 의도적으로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차이를 부각해 두 종교인들 간에 적대감

  을 품게 했는데이슬람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힌두교 사람을 지배층으로 편입

  시켜 영어를 포함한 서구식 교육을 통해 친영 세력으로 만들어 이슬람 세력을 관리

  하게 만드는 전략으로 하지만 힌두교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 

  세력도 동시에 지원한다.

  ---> 영국이 떠나기로 한 후 인도 임시정부 수립을 놓고 협의할 때 힌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영국은 임의대로 인도를 파키스탄과 인도,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 3국으로 분할해 버린다.

  ---> 독립 당시 카슈미르 지역 대부분 주민은 이슬람 교도로 무슬림이 많은 파키스탄

         에 편입되기를 희망했으나 지배층은 힌두교도가 많아 대다수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흰두교의 국가 인도에 편입되어 인도와 전쟁이 일어남

         ☞ 인도령, 파키스탄령으로 나뉘는데 중국이 인도령을 침공해 점령.

  ---> 인도는 카슈미르 지역의 60%를 차지하고 있어 국내 문제로 보고 있으나 

        카슈미르 인구의 80%와 파키스탄과 해당 지역의 분리주의자들은 국제 분쟁

        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로 파키스탄은 유엔 결의에 따라 카슈미르를 누구 

        땅으로 할 것인지 국민 투표를 제안했으나 인도는 외면 중.

- 1944년 인도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자 파키스탄도 카슈미르를 놓고 인도의 

   군사력을 실감하며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중국이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측면 지원한다.

   또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미국에게 파 키스탄 기지 제공 대가로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 지지를 얻어내어 1988년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에 성공.


[7. 왜 쿠르드족은 국가를 세울 수 없었을까, 튀르키예 - 쿠르드 분쟁]

- 쿠르드족은 국가 없는 최대 단일민족’‘, ’중동의 집시로 불린다. 중동에서 아랍인

  이란인, 튀르키예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민족으로 이 중 절반이 튀르키예에 산다.

  ---> 인종, 역사적으로 이란계 산악 민족인 관계로 이란과 접경 기역인 튀르키예 

         동부에 많이 거주. 종교적으로 수니파(공동체가 뽑은 대표자를 계승자로 여기는

         파) 무슬림으로 고유한 정서와 문화언어를 가지고 있다.

- 쿠르드 문제를 2의 팔레스타인 분쟁이라고 하나 팔레스타인이 아랍 민족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과는 달리 쿠르드족은 어떤 국가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이라크만

  자치권을 인정)

- 쿠르드족은 오스만 제국이 1차 대전에서 패하자 세브르 조약’(연합국-오스만제국)

  의거 쿠르드족에 자치권이 부여되기로 하였으나 오스만 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이후 로잔 조약이 체결 때에는 쿠르드 족에게 주기로 했던 땅에서 유전이 

  발견되자 영국이 그 지역을 편입하면서 또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연합국이 오스만 제국이 해체된 후 쿠르드족이 세운 국가를 무효화해 버리며 

  국가를 세울 수 없게 됨

- 2차 대전 이후 소련은 쿠르드족의 마하바드 공화국을 수립하나 이는 이란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것이었는데 소련이 이란과 협정을 맺고 철수하자 

  이란이 쿠르드를 공격할 때 소련에 도움을 요청하나 소련은 이를 외면, 이란이 

  쿠르드족을 무참히 학살함.

- 1972년 이란과 미국이 이라크에 쿠르드 자치 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을 믿고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이란을 위해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나 

  이란이 이라크와 협상을 맺어 분쟁을 종식하자. 

  쿠르드 독립 문제는 외면하며 또 1980년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을 벌이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족이 이란을 도울 것을 염려하여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학살.

- 1991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와 전쟁을 벌인 미국에 대한 지원을 주도적으로 

  추진하였으나 미국은 또 쿠르드족의 공로를 외면하고 종전 후 독립을 지원하지 않음.

  뿐만 아니라 2003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과 IS 격퇴 과정에서 쿠르드족이 미국을 

  위해 노력했으나 철저히 외면 받음.

- 쿠르드족이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는 이유는 튀르키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가

  쿠르드족이 거주하는 지역에 자원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략적 요충지가 많기

  때문에 독립 국가 건설을 반대하는 것이고

  쿠르드 내부적으로도 부족이 무려 500개가 넘어 여느 무슬림 공동체처럼 부족주의 

  성향이 강해 근대적이고 중앙집권적 국가를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


[8. 시리아에서 전쟁은 끝난 걸까, 시리아 내전]


[9. 군부가 계속 집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얀마 내전]

- 위의 두 내전은 자국내 리더들의 성숙치 못한 행동과 종파주의적 사고에 의해 국민간

  분열을 촉발시킨 점이 많아 정리에서 제외하였는데, 어찌되었든 시리아 내전과 

  미얀마 내전은 닮은 점이 많다.

  민주화 운동에서 무장 투쟁으로 전환된 점, 종교.민족 등의 요인으로 시민들이 

  나뉜 점, 주변국은 물론이고 세계 열강의 이해관계가 얽힌 점이 그렇다.

  한마디로 두 나라의 내전을 보면 우리 정치인들이 보고 배울까 겁이나 정리에서 

  제외했다.


[10.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왜 학살자가 되었을까, 에디오피아 내전]

- 수준 낮은 정치인들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참극으로 누가 배울까 겁이 나서 역시 

   정리에서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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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처럼 승부하라 - 권력의 화신에서 공론정치가로 군주 평전 시리즈 1
박홍규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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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8


누가 뭐라 하던 나의 관점으로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을 세운 이성계부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명 군주의 518년의 한국사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왕은 권력의 화신’ 

혹은 유교적 군주라 불리는 태종 이방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당 작품은 그런 태종에 대해 평가를 하기 위해 여러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나는 그런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을 제외한 주변 상황과 배경에 관한 이야기 중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저자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고 합리적 개관성이 인정된다고 생각되는 내용만을 중심으로 정리를 해 

보았다.

만약 세세한 이야기까지 포함한 내용을 쓴다면 아마도 해당 작품의 분량보다 더 많은 내용으로 이야기 될 수 있었을 것이며 누구나 다 아는 내용에 대한 정리는 역사를 식상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여기서 제외하였다.

 

작품 내용을 정리한 후 후반부에 나의 관점, 해당 작품을 통해 얻어진 어느 카멜레온 같은 집단과 인간 등에 대한 평가도 하겠지만 태종 이방원, 그는 최소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교언영색(巧言令色)적 일구이언(一口二言)’은 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확인하였으며 

그렇게 입으로 짓고 까불고 있는 개인 그리고 집단들이 횡행하는 작금의 여의도를 보면 오른팔이든 왼팔이든 한심함을 떠나 처절함을 느끼고 있다.


* 역사 찬탈자들의 논리(P 52 ~ 55)

- 보통 사람은 폭력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폭력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장수가 그렇다. 폭력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또 있는데 혁명가. 혁명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폭력을 사용해 정치 사황을 반전시킨다. 이방원은 정치적폭력 사용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 아버지(이성계)는 혁명가가 가진 정치적 폭력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몽주 격살 후 이성계를

  추대하는 기간은 이방원이 주역이었으며 이방원다운 이방원만의 시간이었다. (P 52)

- 신하가 자신이 섬기는 군주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는 찬탈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유교이념을 향하는 왕조국가에서 이 문제는 온당한 처사인가?

  ---> 맹자의 역성혁명론을 통해 이성계 일파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다.

         즉, ‘()을 해치는 자를 도적이라 부르고, ()를 해치는 자를 잔악하다 한다

         잔악하고 도적질하는 이런 사람을 한낱 필부라 부른다.(P 55)

    ☞ 결론적으로 필부를 해치는 행위를 문제 삼을 수 없다.

        역사의 찬탈자들은 자기들이 몰아낸 군주를 폭군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의 폭력적

        행위를 정당화한다.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맹자혁명론을 사용한 것이다.


* ‘맹자역성혁명론에 대한 주자의 조건부 승인(P 56)

- 인자(仁者)가 출현해 전국시대를 종결시킬 것이라는 맹자의 확신에 찬 주장과는 달리 천하는

  ‘법가사상을 따른 진나라에 의해 통일

  ---> 진나라 이후 맹자의 의도와는 달리 한나라를 운영하는 데는 유교와 더불어 법가사상이 

         혼용됨

- 한나라 멸망 후 천하는 분열되며 유교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인도로부터 전파된 불교가 정치

  세계를 지배하며 유교의 존재감이 약화

- 송나라가 시작되면서 정치무대에 나선 사대부들은 선진시대의 공자와 맹자의 유교를 부활

  계승하면서 불교의 논리를 극복하고자 했다.

  ---> 유교에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생명력 제공하며 송나라 학문이라고 송학’, ‘()’나 

         ‘()’를 중시 한다고 해 도학이나 리학또는 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해 

         ‘성리학이라고 부른 이 새로운 학풍은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다.

  ---> 주자에게 맹자라는 텍스트는 진리 그 자체로 맹자의 역성혁명론을 주자는 인정하지만 

         그 혁명론이 찬탈자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주자는 잘 알고 있었으나

         ‘맹자를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주자는 맹자의 논리를 인정하지만 주석을 붙여 후대의 찬탈자들이 악용하지 

         못하도록 제한 장치를 설정.

         “오직 아랫자리에 있는 자(신하)가 탕(), ()와 같은 인()이 있고, 윗자리에 있는 

          자(군주)가 (), ()와 같이 포악하다면 가하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이는 찬탈의 

          죄를 면치 못한다

       ☞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의 건국세력은 맹자의 혁명론을 사용해 찬탈한 행위를 통한 조선

          건국을 정당화했고, 이방원 자신도 그러한 폭력적 행위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 ‘역성혁명론에 대한 신권력의 관점

- 마키아벨리가 정상적인상황에서 군주가 갖추고 있으면 찬양받을 만한 성품들로 자비, 신의

  절제, 정직진지함 등을 꼽았다.(P 59)

  ---> 신중한 지성인이라면 어떤 사람이 왕국을 조직하거나 공화국을 세우기 위해 사용한 

        부당한 행위에 대해 책망하지 않는다. 비록 그 행위가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가 용서받을 만한 것이라면 여하튼 적절한 것이다.(P 60)

- 새로운 왕조에서의 정도전의 첫 작품은 17가지 조목의 <즉위교서>로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를 천명인심이라는 [맹자]의 혁명 개념으로 설명

  ---> 당시의 집권자들은 명나라 황제의 승인에 의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자학을 가지고

        사태의 본질을 변질시킴으로써 찬탈에 의한 왕조교체를 정당화시키고자 했다.

  ---> <즉위교서>는 이제부터 혁명에 상응하는 실적을 올림으로써 비록 출발은 찬탈이었을지

        모르나 언젠가 정통 왕조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의 건국세력은 맹자의 혁명론을 사용해 찬탈한 행위를 통한 조선 건국을

    정당화했고, 이방원 자신도 그러한 폭력적 행위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 왕은 관념상으로만 절대권을 가지고 재상을 임명하는 데 그치고, 정치 운영의 실권을 재상이 

  쥐고 통솔해야 한다는 정도전의 견해를 이방원은 용납할 수 없었기에 사적 이익을 위해 도당을

  형성해 권력을 장악한 자들이 반역을 도모했기에 이방원은 자신의 정변 행위는 그들을 징벌

  하고 조선의 사직을 안정시킨 정의로운 행위라 주장한다.(P 91)

 

* ‘이방원의 행위에 대해 마키아벨리에게 묻다(P 97~101)

- 태종은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 환경에 불편해 했다.

  ---> 자신의 행위(2차 왕자의 난)는 계획한 것이 아닌 긴급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대응한 정당

        방위.

  ---> 국가의 공익을 위해 자신의 비르투(Virtu, 탁월함)를 발휘.

         즉, 네체시타(정상적인 상황에서 통용되는 도덕률을 벗어나 반도덕적인 행위를 허용하는

         ‘불가피한 국면을 의미) 국면에서 비르투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정치영역에서 이 개념을 사용할 때는 개인적인 이익이나 도덕성에 대한 통상적인 고려보다

    자신이 태어난 정치공동체의 영광과 공동선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뜻한다.(P 98)

- 비르투를 발휘한 행위라고 내세우려 해도 스스로 당당하지 못했고 아무리 자신의 능력 행사로

  사태의 본질을 포장하려 해도 되지 않자 태종은 사람의 힘이 아닌 하늘의 도움이었다고 변명

- 포르투나는 운명의 여신을 의미,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일에 개입하는 힘 또는 존재로 포르투나    를 사용마키아벨리는 포루투나의 압도적인 힘에 지배되어 순응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보다,

  자신의 비르투를 사용해 포르투나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포르투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사람을 

  높이 평가

  ---> 태종은 결코 네체시타 국면에서 비르투로 돌파한 인물이 아닌 권력에 마취되어 지성이 

         마비된 그런 인물이었을 뿐이다.

 

* 태종의 이데올로그’, 권근 (P120~127)

- 태종은 지속되는 정변 구조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지속적인 정당화 작업과 함께 

  구왕조와 운명을 같이하려 했던 인물들에 대한 회유 등에 대한 적임자로 권근에게 요청했고

  당대 최고의 성리학 이론가이자 문장가였던 그는 이를 성실히 수행한다. (* 또다른 변절자는 

  ‘하륜)

  ---> 이방원 교서, 태자 옹립 교서, 이방원에게 왕위를 전하는 교서 등 중요 정치적 문건들과 

        폭력으로 얼룩진 권력 투쟁의 사건들을 성리학적 이론과 용어로 포장해 낸다.

- 무인정변 이전까지 태종과 특별한 관계가 없던 권근은 자신의 문장력으로 태종 집권기에 

  권력의 핵심적 지위에 진입한다.

  ---> 대표적 사례가 궁궐(수창궁)의 화재 사건인데, 동중서에 의해 정비된 천견론(天譴論, 하늘

        이 경계를 내림)을 잘 포장한 사례

 

* 하륜, 유교국가의 기틀을 만든다(P138)

- 권근과 마찬가지로 신권력의 회유로 조선왕조에 편입된 인물로 이재에 밝았고 태종도 무한

  신뢰했음.

  ---> 이재(吏材)란 국가제도를 만들고 국사를 처리하는 국정 운영 능력을 지칭하는 말로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유감없이 자신의 이재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태종의 신임과

        비호가 있었기 때문심지어 그가 탄핵을 당할 경우에도 태종이 전면에 나서서 보호해 주고

        있다.

 

* 한비자와 술치(術治) 그리고 가지치기 (P172~177)

- 이방원의 정변은 유교적 국가 정체성으로부터의 일탈 행위였지만, 그는 유교 개념을 사용한 

  정당화의 논리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일탈 행위가 아닌 유교적 국가 정체성의 충실한 수행자임

  을 천명.

  ---> 태종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와 함께 그런 민심을 배경으로 이 일어난다.

  ---> 형제의 난조사의 난’(P115참조)을 겪으며 누군가가 난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의구심

        과 강박감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세력이 누구인지를 생각.

  ---> ‘위협에 대한 객관적 사실보다 태종 자신의 주관적 인식이 더 크게 작용

- 가장 귀중한 것은 인민이고, 그다음은 사직이며, 군주는 가벼운 것이라는 맹자의 주장과는 

  달리 한비자는 군주제에서 군주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한 논리를

  활용.

  ---> 만물 가운데 군주 자신의 몸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자신의 지위보다 더 존엄스러운 것은

        없으며 군주의 권위보다 더 중한 것은 없고, 군주의 세력보다 더 성한 것은 없다.

  ---> 군주가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한비자()’()’을 제시

- 한비자()’()’

  ‘()’이란 담당할 힘에 맞추어서 관직을 주고 명분에 따라서 실적을 추구하며 살생하는 

  권병을 손에 들고 여러 신하들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 이것은 군주가 장악하는 것이다.

  ‘()’이란 관청에 명시된 법령과 인민의 마음속에 새겨진 형벌로, 상은 법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고 벌은 명령을 어기는 자에게 가해지는 것.

  군주에게서 ()’이 없으면 윗자리에서 신하들이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신하에게 

  ‘()’이 없으면 아래에서 나라가 어려워진다. 모두 제왕이 갖출 조건들이다.

  ---> 군주가 속임을 당하지 않고 신하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 필요하고, 술을 구사하는

        데는 ()’과 달리 비밀성을 유지해야 한다.

  ---> 군주가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술조차도 거리낌 없이 구사하는 것을 

        ‘술치라 하며 가지치기(피목, 披木)’가 한비자의 술치가 제시하는 백미다.

 

* [춘추]에서의 춘추대의와 태종 그리고 가지치기(P177)

- [춘추]는 노나라 사관이 기록한 춘추시대 각국의 역사를 공자가 수정하고 정리한 책으로, 유교

  경전인 오경(五經) 중의 하나로, 공자가 춘추시대 242년간의 사실을 빌려 자기의 사회적 이상과

  정치적 관심을 표현한 책이다.

  ---> 구절마다 시비선악을 판단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를 춘추대의라 한다.

- ‘춘추대의에서 군주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 신하의 사고와 행위를 판단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신하의 모반이 객관적으로 입증되어야 하고, 신하를 처단하기 위해 군주는 없는 

  사실을 날조 해서는 안 된다반면, 가지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왕권의 강화다.

  군주가 왕권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권신의 세력이 왕권을 위협하는지를 살펴야 하고,

  이때 그가 실제로 모반을 꾀했는지 객관적 사실 여부보다는 그의 세력이 왕권을 가리고 위협

  하고 있는가 하는 정치적 고려가 더 중요하다. ,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군주의 주관적인 인식과

  판단이 더 크게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가지치기는 군주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 술치의 핵심으로 이방원의 사돈인 이거이와 처남 민씨 형제 처단에 적용!!!


* 정도전과 국가전략(P204~233)


[명나라 관점]

- 무력 팽창전략을 사용했던 원나라와는 달리 명나라는 무력 사용을 제한하고 주변국에 대해 

  외교사절을 파견,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자 했다. 이런 정책은 책봉조공 관계를 통해 

  명나라 중심의 천하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 명나라와 주변국사이에 책봉, 조공 제도를 통해 수직적 질서를 형성하는 데 이론적 자원으로 

  사용된 것이 화이론(華夷論)’으로 이는 명나라를 문명을 구현하고 있는 중화로 설정하고 

  주변국을 중화문명으로부터 벗어난 이적, 즉 야만적인 오랑캐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사유다.


[조선의 관점]

- 정도전 주도로 국가 경영의 텍스트격인 조선경국전을 제정 기본적으로 신생 국가 조선이 

  명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천하질서 속에서 취해야 하는 국가 전략을 담고 있다.

- 또한 천자제후를 수직적 관계가 아닌 동일한 원리에 의해 존재하는 각각으로서 수평적

  으로 묘사조선 왕조의 유지는 책봉한 천자가 해주는 것이 아닌 조선의 임금이 인정을 베푸는

  가에 달려 있음을 주장 즉, 조선은 맹자가 말하는 천명인심에 따른 혁명을 통해 건국했고,

  맹자가 말하는 인정'을 시행함으로써 존속해 갈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 조선은 작은 주나라(=소중화)를 만들 것이니 명은 큰 주나라(=대중화)를 만들어서 함께 

  ‘중화공동체를 형성하자는 것으로 이러한 중화공동체 전략은 조선 중심주의가 아니라 

  명나라와의 협조체제를 형성하고자 하는 공동체 지향의 전략이다.

  ---> 조선은 천자가 추구하는 평천하의 길을 포기하고, ‘치국이라는 제후국 국왕의 길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 태종은 정도전의 사람됨’, 즉 사적인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소인배로 규정하고 폄하했을 

  뿐이지그가 설정하고 추진한 조선의 전략과 국가 정책을 비판, 변경, 폐지한 적이 없다.

  오히려 태종은 정도전의 중화공동체 전략과 그에 따른 국가정책을 충실히 계승했다.

 

* 태종, 수성(守成)의 시대를 열며(P204~233), 

                                         ‘유신의 교화를 선언하다(P246~266)

- 태종에게 이성계의 존재는 정변 구조의 근원이자 정변 구조 지속의 상징적 존재였는데 

  이성계의 죽음은 태종에게 부친이자 군주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는 부담으로 인해 

  무기력증에 빠져 있을 때 태종이 등극과정에서 행한 행위가 불효가 아닌 대효였음을 

  주장하는 하륜의 폭력적 권력을 위한 곡학(曲學)의 진수로 태종은 정사를 재개하게 된다.

- 태종의 집권기는 1398년 정변에서 시작해 태종 10년 민씨 형제의 처결까지를 전반기로, 유신의

  교화 선언 이후를 후반기로 한다.(P250)

- 태종은 죽은 태조와 신의왕후를 종묘에 모시는 부묘(祔廟) 직후 배향공신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 유신의 교화(維新之化)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데 조선왕조실록원문에는 총 502회나

         나온다, 유신의 교화는 태조 없는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었는데, 전반기와는 

         전혀 다른 공론정치를 구현하기 시작한다.

  ---> 대표적인 사례가 이거이, 이저 부자의 복권과 이색의 아들 이종선이 자신의 부친의 업적을

        기리는 비명(碑銘)에 언급된 용사자와 관련된 해석의 문제로 발생된 권근, 하륜에 대한 

        처분을 통해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

- 전반기의 태종은 자신의 정체성을 무인의 그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유교적 군주상과 일정한 선을

  그으며 권력정치가로서의 자율성을 누리고 싶어 했다면, 집권 후반기의 태종은 자신을 유교적

  군주로 완전히 위치시킴으로써 신하들과 더불어 유교적 정치를 펼쳐나가고자 했다.(P238~268)


* 성리학적 공론정치(P303~304)

- 주자는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수기修己를 강조하고, 수기를 이룬 인간이 통치를 하는

  ‘치인治人을 수기의 연장선에서 생각한다.

  ‘주자주의는 천리天理와 인성人性, , 의 정치사상이다. 그것은 절대 불변적인 천리의 

  세계로의 가능성을 인성에서 구하는 정치사상이다. ---> 수기치인(修己治人)

  ---> ‘주자주의는 초월자나 극락을 믿지 않으며 오로지 이 세상 내에서 존재, 인간, 수양, 통치의

        모든 것에 걸쳐 일관된 체계를 꼼꼼하게 구축하고 그 실천을 추구한다. - ‘천리인성

        탐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이 성리학이고, 성리학에서의 정치, 즉 주자주의는 천리에

        부합하는 공론을 도출해 실행하는 정치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적 공론정치다.

  ---> ‘은 공공성 또는 공정성으로 천리 그 자체의 속성을 나타내고, ‘은 공개적이고 

        비판적인 논의의 측면을 나타낸다. 그리고 공론公論은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찾아낸 

        천리에 부합하는 의견을 말하고, ‘공론정치란 공론을 찾아 실행하는 정치를 말한다.

- 태종은 신군주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강한 의욕을 갖고 저화법(종이 화폐)’을 야심

  차게 추진하지만 일방적인 정책 결정과정과 추진으로 파국을 맞고 유신의 교화를 선언한 이후

  새로운 정치(공론정치)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시행된다.

  ---> ‘노비변정 사업은 유신의 교화 이후 태종의 강화된 왕권과 리더십, 그리고 신료들과의 

        긴밀한 논의와 토론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가장 어려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공론정치 사례다.

 

* 태종의 아픈 상처....세자 양녕(P335~359)

- 세자 양녕의 일탈적모습은 양녕이 원자로 책봉된 이래 오랜 기간에 걸쳐 태종을 롤 모델로 해

   형성되어 온양녕의 정체성이 변화한태종의 정체성과 충돌하면서 발생된 현상.

   특히 태종이 세장의 공부에 흡족해하지 않은 것은 세자가 못해서라기보다 태종의 기대치가 

   높아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어린 시절(태종 5~6) 잘 극복해 오던 영민한 세자가 태종 12년에 이르러서는 세자로서 부여

  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데 그 아유는

  첫째, 세자라는 신분적 제약성과 궁궐이라는 공간적 제약성이 세자의 일탈적행위를 초래했고

  둘째, 세자의 자부심이 어느덧 자만심으로 변질되어 태종의 성군 프로젝트에 저항, 반발함.

- 태종이 세자 교체의 파행성이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폐세자를 감행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정체성의 변화를 통과한 태종의 이념의 세계에 대한 의지, 즉 태종의 이념성에서 찾을 수 있다.

                                                                                                                 (P438)

- 세자 양녕을 폐위하고 목숨을 유지시켜 지방에 안치한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기에 양녕의 

  아들을 후계로 삼지 않아도 좋다는 주장으로 이런 권도론은 주자주의에 위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자주의자들이 때가 되면 어김없이 사용하는 논리다.

  ---> 이런 논리에 대해서는 사전에 태종과 교감(밀지)이 있었던 것으로 유추


* 상왕정치의 장치들(P469)

- 상왕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이유 중 으뜸은 세종의 군무 능력을 교육시키는 데 있다.

  국왕의 통치권은 교지(敎旨)를 통해 행사된다. 국왕의 명령이 담긴 말을 ()’, ()’는 

  여기에 담긴 국왕의 의중을 가리킨다. 따라서 교지란 국왕의 명령이 담긴 말씀이다.

  교지를 왕지(王旨), 교지를 내리는 것을 하지(下旨)라고 하고, 교지를 전달하는 것을 전지(傳旨)

  라고 하고 교지를 받는 것을 수교(受敎)라고 한다.

  ---> 상왕의 경우는 비록 금상보다 높은 위상을 갖고 있지만 최고의 통치권자가 아니다

        따라서 상왕은 자신의 의중을 금상의 교지를 통해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금상인 세종의 교지와는 별도로 행사되는 명령을 선지(宣旨)’라 는 명칭으로 정했다.

- 상왕이 지적한 핵심적인 논지는 상왕 자신은 사헌부의 감찰과 규탄의 대상이 아니며 자신에게

  할 말이 있으면 금상이나 병조에 고해 전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상왕 자신은 극가의 공적

  제도 밖에 있는 초법적인 존재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P475)

 

* 신권력의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P483)

- 세종 2(1420) 56세 나이로 태종의 무인정변 성공의 큰 역할을 한 대비 원경왕후가 생을 

  마감

- 원경왕후의 투기와 민씨 형제들의 억울한 옥사로 인해 불만을 품은 왕비에 대해 태종이 왕비를

  폐위시키려 하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되며 대신 후궁을 간택하기로 함.

- 태종 7년에 이어 태종 16년에 또다시 민씨 형제에 대한 추가 처리하자 태종에 대한 왕비의 

  불만이 높은 상태에서 대비가 죽게 되나 대비의 장례에 관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비를

  향한 차가운 마음이 엿보이는 장면만 있을 뿐이다.

  ---> 태종은 즉위 직후 불교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불교신자인 이성계로 인해 실행하지 못함

        고려말 불교 폐단의 본질(방대한 토지 및 노비 점유)을 목격하고 국가 관리를 추진

        태종은 대비의 장례와 관련된 불교식 의례를 유교식으로 변경시키거나 불교식 관례를 

        폐지시켜 유교적 군주로서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 소중화 조선, 대마도를 정벌하다(P493 ~ )

- 조선은 명의 일본 정벌 계획을 크게 우려했다. 명의 일본 정벌이 실행될 경우 조선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은 명의 일본 정벌을 사전에 막기 위해 명의 왜구 

  피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대마도를 정벌했다는 것이다.

- 왜국의 조선 침략은 중화공동체 전략을 구사한 대 일본 기미정책에 대한 도전이었고, 소중화

  조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었다고 판단한 상왕(태종)은 그러한 대마도주의 배신을 응징

  하고자 했다.

- 중국의 서쪽과 북쪽 변경의 일을 처리하기에 몰두하고 있는 영락제가 동쪽의 여진을 관리

  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굳이 바다 건너 일본을 정벌하지는 않을 것으로 태종은 판단.

  ---> 영락제는 일본을 정벌할 의지도 계획도 없었다. 왜구 정벌은 왜구 침략이 있을 때 표명된

        수사에 불과했다. 그것은 일본에 대해서는 압박용으로, 조선에 대해서는 협조용으로 사용.

 

* 책으로부터 얻는 상식

- 표전문(表箋文)이란 중국에 대한 사대문서(事大文書)로 조선 국왕이 중국의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표문(表文), 황태후, 황후 또는 황태자에게 올리는 글을 전문(箋文)이라 한다.(P 82)

- 도언반사(倒言反事) 신하가 하는 간악한 일의 실정을 알기 위해서 군주가 일부러 뒤바꿔서 말을

   하고 반대 행동을 보이는 것.(P192)

- 균름(囷廩)이란 각 지방의 곡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던 창고(P273)

- [서경]은 요, 순을 비롯한 삼대 제왕들의 사적과 치적들을 여섯 가지 문체로 기록한 문헌으로 

   중국 고대 성왕들의 구체적인 제도와 가르침을 제시한 경전으로 중시되었다.

   ---> <무일>[서경]의 여러 편 중에서 <洪範홍범>과 함께 가장 많이 인용된 편으로 

         조선에서는 이 부분만 별도로 필사해 왕세자 교육에 사용했다.(P297)

- 편달(鞭撻)이란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종아리나 볼기를 때리는 것(P335)

- 조계(朝啓)란 조정의 신하들이 왕에게 국사를 아뢰는 정규회의(P350)

- 무연(憮然)이란 크게 낙심하여 허탈해하거나 멍한 상태를 의미(P421)

 

 

작품을 읽으며 무책임한 행동으로 밖에는 평가되지 않는 상황을 만든 어리숙한 리더가 그런 상황

으로 몰고간 원인 제공자와 해당 집단을 오히려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어버린 기기묘묘한 우리의 현실과 작품 속 상황을 대비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가급적 외눈박이적사고의 틀로 현실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작품을 통해 다시는 그런 미성숙한 리더를 선택하지 않기 위해서 또 한편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러한 최악의 선택을 피할 수 있는지를 역사를 통해 배워보고자 했으나 그 보다는 역사를 왜 읽어야 하는지를 크게 느낀 시간이었다.

 

작품을 통해 크게 다가왔던 것은 권력층의 암투혹은 권력 쟁취를 소재로 한 역사 작품을 

접하면 권력층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식 다툼이 그 옛날에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작품을 통해 그런 내용을 발견하게 되면 권력 암투의 전개 과정과 방식보다는 가급적 그런 다툼의 이면에 흐르는 배경힘의 논리에 더 주안점을 두고 사건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한다

그 이유는 여러 역사작품을 접하다 보니 역사, 그것도 좋지 못한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는 

사실을 여러 작품과 실제 우리의 역사 속에서 자주 목격하고는 했기 때문이며 그런 사실을 깊이 사유하다 보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당시의 환경과 참여자의 목적이 유사 사건과 조금은 상이

하더라도 큰 틀에서 조망해 보면 지금 당장 우리에게 일어나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 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건의 승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특징 중 하나를 또 다시 확인하였는데, 그것은 승리 세력들이 벌이는 

같은 편 공적() 나눠 먹기와 상호 챙겨주기‘ 

로 아주 웃긴 것은 최근의 공훈 챙기기 현상은 과거 자신에게 국한되던 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최근에는 해당자 부모, 자식들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공훈자로 둔갑시키는 아주 기묘한 현상이 역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적() 챙겨주기가 헌신적(?)으로 운영되다보니 실제가 아닌 가공의 인물과 허위의 인물에 대해서도 유공자로 둔갑되어 포상금 잔치까지 벌어지는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데이러다가는 홍길동은 없는 자들을 위해 의적 활동을 했다고, 흥부전의 

흥부도 제비 다리를 고쳐주어 야생 동물 보호와 관련된 유공자로 선정해 그들의 혼백이라도 

현충원에 안장하자고 덤비지 않을까 심히 걱정될 지경이며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이 땅에 사는 

우리 국민이 유공자 집단비유공자 집단으로 나뉘어지는 사태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고 있지만 마땅한 공적도 없고 나를 그런 집단에 넣어줄 사람도 없어 문제가 있다는 말도 못 꺼내고 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유공자로 선정된 위인(?)의 후손들이 자신의 조상을 평소 흠모하여 조문 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을텐데 그런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출입을 금지시킬까 그것도 걱정된다.

 

위의 사실에 기반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살펴보면 이전에 읽었던 중종과 관련된 작품에서도 언급되었던 리더나 권력자들의 측근들이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들의 공적에 대해 댓가 즉, 새롭게 출현한 신권력 집단에 대해 자신들도 일조를 했으니 공훈을 인정해 권력의 지분을 

공개적, 암묵적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이며 이를 요구받은 신권력 집단은 이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무슨 일만 벌어지면 나라가 금방 절단이라도 날듯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무슨 연대혹은 단체에 소속된 수준 낮은 인간들이 벌이는 지랄 수준에 가까운 아우성도 공훈 챙겨주기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자기들에게도 뭐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런 잡탕들 난리 굿에 기름을 붓는 인간집단들이 또 있는데 나라에 무슨 일만 벌어지면 원탁

회의니 무슨 구국대회를 외치는 한물간 이데올로거들이 벌이는 굿판으로 그런 노욕에 찬

이데올로거들을 보면 어느 작품 제목과도 같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도 같은 또 다른 

주인공 엄석대를 발견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여간 사면을 받아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출소하자마자 고급 음식점에서 된장

찌개로 서민 코스프레하는 종자와 법원도 인정한 기금 횡령에 대해 일언반구 사과도 없는 어느 철면피한 인간에 대해 행해지는 공훈 챙겨주기 발언은 이 땅에서 벌이고 있는 수준 낮은 아주 

저급한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사면권이야기가 나와 한마디를 덧붙여 보면

지금 사면권을 발동한 대표자는 과거 통수권자들이 행했던 사면권에 대해 얼마나 비난을 했었는지는 세세히 열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최근 벌어진 사면권 쇼는 하여튼 삶은 소대가리도 아닌 설익은 소대가리도 웃게 만들고 있으며 스스로 사면권을 희화화시킨 웃기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금번 사면령을 아주 우려스럽게 바라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앞으로 이와 같은 수준 낮은 

사면권 발동과 유사한 조치가 이 땅에서 일방적으로 자주 실시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내가 감히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보통 사람과 뇌구조가 다른 이상한 사람은 절대 안 변하기 때문이다.

사면권과 사람 안 변하는 게 무슨 연관성이 있냐고 할 수 있지만 해당 작품을 읽어보면 나의 이런 주장이 왜 나왔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태종은 술치(術治)’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해 왔는데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 나의 이런 주장이 왜 나왔는지 궁금하면 작품을 읽어보시라 -

, 태종이 자신의 처남들을 작살냈고, 사돈을 사약으로 처단하였듯이 가족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타인을 존중할 수 없으며 그 자신 안에 내재된 참혹한 본성과 독불장군식 조치를 

자신에게 부여된 최고의 권한을 활용하여 반드시 만천하에 보여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권력이 추구하는 전략 몇 가지를 살펴보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암수목표 달성 전략이다.

대표적인 행위가 상대편을 내란당’, ‘반란세력운운하면서 코너에 몰아넣고 자기의 이득을 취하는 다시 말해

작은 거 하나 주고 더 큰 하나를 뺏어가는 전략

으로 그들은 낮 뜨거운 난해한 목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반드시 내란당반란 세력이라는 

단어를 서두에 꺼내든다. 그러면 모두가 그 단어에 집중해 뒤에 무슨 말이 나오는지 거의 신경을

쓰지 않거나 앞 단어의 무게에 눌려 뒷 문장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거나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만든 후 자신들이 목적하는 바를 슬쩍 끼워넣는다.

대표적인 사항이 특활비 부활이다.

그들은 이전 정부가 돈이 없어 일 못한다는 이야기는 말도 안 된다면서 특활비 82억 전액을 

삭감시킨 전력이 있는데 상황이 바뀌자 특활비가 없어 일하기 힘들다면서 자기들 손으로 삭감한 특활비 부활을 요구하고 있는데 일을 하다 보면 상황 예측이 잘못되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를 복원하는 과정이 치졸하다.

특활비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일단 상대를 내란당’, ‘반란 세력등과 같은 단어로 자신들의 실수를 상쇄시키기 위해 상대를 몰아 부친 후 뒷말 속에 자신들의 목적을 은근 살짝 끼워 넣어 관철

시킨다

그 방식도 좋기는 하지만 요구하는 액수도 합리적이어야지 아주 얍쌉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 전임 정부의 특활비 1년치에 해당하는 82억원 보다 훨씬 많은 92억 원을 요구하고 있는데

신권력이 지난 6월에 정권을 잡았으니 년 말까지 일할 특활비 7개월치만 요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왜 전임 정부 1년치 특활비 82억원을 상회하는 금액을 반년 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신청했는지가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신정부가 구성되어 인수위 과정도 없었고, 전임 정부의 무능으로 할 일이 태산처럼 쌓였다고

그럼 지금이라도 인수위를 만들고 무엇을 할 것인지 업무 리스트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공표해 

비용이 왜 많이 들어가는 지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과거 박수무당이 이야기한 영수증도 

없이 집행될 예산이 왜 그리도 많이 소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한 소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말대로 나라 곳간도 비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비용을 왜 그리 많이도 신청하는지 궁금할 뿐이다하여간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가 기계체조하는 모습이 곳곳에 숨어 있다.

모두가 내란당 운운하며 전임 통수권자의 옥중 투쟁기에 관심을 쏟게 하고 그들은 사육장의 곰 쓸개즙 빼 먹듯 예산 사용의 단물을 즐기며 자신들만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또 하나 사면권 발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모든 이들의 저의를 더 확실히 확인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강력한 포퓰리즘으로 많은 이들을 달콤함에 취하게 한 후 외부의 그 어떤 자극에 쉽게 

반응하지 못하도록 만든 후 자신들이 숨겨놓은 암수목표를 공공연히 노출한 후 손쉽게 목표 

달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 이 놈 저 놈 다 사면시키고 과거에 지은 죄 전부를 없는 것으로 풀어 놓으면 전과자 아닌 인간 찾기가 아주 어려워지는데, 그럴 경우 온 천지 사방이 전부 전과자 세상인데 특정인의 전과 기록은 그런 인간들 이슈에 묻혀 문제화 되지 않을 것이 뻔하게 될 것이다. 이쯤되면 해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자기에게 돌 던질 사람 있음 나와 보라

는 전략으로 밀고 나갈 것이 눈에 보인다그래도 이것을 지적하는 기레기들이나 때만 되면 지랄하는 이데올로거들과 질낮은 단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면서 연일 전임자 옥중 투쟁기와 그 부인의 목걸이 사건과 구두만 갖고 콧수염 앞세우고 난리에 난리들이라는 것을 태종처럼 승부하려고 연구하다 보니 금번 독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누군가가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태종처럼 승부하기를 원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스스로 언관이 되라는 전략을 추진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언론을 이용해 대응하라는 것으로 이해되기 쉬우나 그게 아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각종 사항을 기록해 후손들에게 오늘의 이 현상을 명명백백 증언해 주라는 것으로 기업으로 이야기하면 불량품 새벽 시장이나 불량품 전시회같은 행사를 하라는 것이다.

내란당이라고 위축되어 다수당의 우두머리 박수무당이 입만 열면 비상식적 발언에 너무 위축

되지 말고다수당이라고 자만에 빠지지 말고 진정으로 협치의 노력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분간 절대 다수가 내란당이니 반란 세력이니 하는 단어를 즐겨 쓰며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 단물을 있는 대로 빼 먹으려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인데 

이를 막아보겠다고 나서지 말고 그들이 펼칠 막춤을 감상한다는 마음을 갖고 느긋하게 지켜

보라 전략이다.

? 내란당, 반란세력이 입이 열 개여도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그들이 지속적으로 난리를 피우며 추게 될 권력의 막춤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막을 방법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나 그렇다고 저들의 행동을 손 놓고 그냥 구경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바로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 그 옛날 언관들처럼 다수들이 행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전부 기록한 후 저들의 모든 행동을 백서형태로 만들어 주기적으로 발표하라는 것이다.

어느 인간이 어떤 법안을, 어떤 의도로 발의했고, 누가 동의했으며, 법안을 발의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부 기록해 주기적으로 언론에 발표하던지 나름의 장소를 만들어 전시하자는 전략이다

상대의 것만 이야기하면 안 된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도 포함하여 반성하는 차원에서 발표해야 합니다. 이것은 문재앙 시절부터 소급해야 운영되어야 합니다.

통계조작으로 나라의 백년대계를 망치려 한 작태 경위와 내용, 주택 정책 및 부동산 정책의 오류로 젊은이들 길거리로 내 몬 경위, 국제적으로 망신살을 뻗치게 한 새만금 잼버리 행사의 실패 

원인과 감사결과, 싸드 설치 반대를 외치며 가발 쓰고 춤춘 인간들, 세월호와 천안함 침몰 당시 

허위 사실을 공공연히 퍼트린 인간들, 고위 공직자로 있으면서 자기 부친 민주화 유공자 만든 

인간들 모두를 전부 기록해 발표하고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상시 전시를 해 놓으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더 나아가서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입장이 바뀌어 태세가 전환된 사건과 법안에 대해서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아마 그 모든 자료를 모으면 아마 팔만대장경은 거의 부록 수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과거 어느 분이 어떤 집단을 향해 외치던 구호가 생각납니다.

대가리는 親日, 아가리는 反日

이라는 구호입니다. 이 구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나 단체가 친일적일까요 아니면 반일적일까요?

지금 이 땅에 이런 특성을 지닌 집단이 구국의 선봉대로 활개치고 있습니다.

할 이야기 너무 많은데 손가락이 아파 여기서 줄일까 하며


하지만 나는 이런 이들에게 어느 신문 컬럼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가인은 질투 끝에 아벨을 죽였지만 사실은 자신을 해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인과 아벨은

 대립적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통해 온전해지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흙으로 빚어진 

 외형’, 아벨은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를 뜻합니다. 육체와 호흡이 함께해야 온전한 인간이

 되듯, 가인과 아벨은 분리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중략)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담은 ’, 하와는 생명입니다. 흙만 있으면 죽은 존재이고 

 생명만 있으면 허상입니다. 두 존재가 만나야 진정한 인간이 됩니다. 따라서 성경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어떤 학자는 이를 이웃을 사랑하라. 왜냐하면 

 그가 곧 네 몸이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합니다. 이웃을 미워하거나 해치는 것은 곧 자기 파괴 

 행위입니다.

                      (중략)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함께 있어야 온전한 인간입니다. 이웃은 나를 온전하게 만드는

 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뜻 안에서 서로를 품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국민일보 오늘의 설교, 2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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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평전 - 사화의 시대, 성리학적 이상을 꿈꾼 개혁가의 비상과 추락 한겨레역사인물평전
신병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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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작품을 우리 역사에서 개혁이란 타이틀로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인 조광조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기대하고 접하였지만 그런 내용보다는 ‘4대 사화(士禍)’, 그것도 제일 처절한 피비린내를 초래했던

‘3대 사화의 배경과 결과를 더 비중 있게 다룬 작품으로 역사에 깊이 있는 지식이 미비한 이들과 역사에 관심을 가지려는 초보 역사 애호가들에게 도움이 된 이야기였지 작품 제목처럼 어느 특정

인물에 대한 평전으로 평가하기가 다소 애매했던 작품이었다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내가 생각해 볼 때 평전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주인공에 대한 공과(功過)’를 독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다루어지고 평가 - 그렇게 할 경우 평전이 아닌 새로운 장르로 갈 우려가 높겠

지만 - 되어야 진정한 평전이라 할 수 있지 특정 부분만 - 주인공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 혹은 주장이 주인공 전체의 업적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 부각된 상태에서 평전이라 부르는 것은 역사에 기본 지식이 일천한 사람에게 그리 좋은 방식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조광조라는 인물에 대한 평전으로 이름을 붙이려면 더 심층적으로 개인의 업적에 

대해 언급이 선행된 후 그에 따른 업적에 대한 공과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각도에서 언급되었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작품을 읽으며 작품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나의 판단이 옳은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훈(위훈)삭제기묘사회라는 파장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파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정치사의 근현대사 중 매번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이를 감추려는 자의 논란의 단골 

논쟁 거리인 '‘518 유공자 명단공개에 대한 논의를 공개적으로 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정보와 상식으로는 해당 사안을 꺼내기만 하면 밝히려는 자밝히지 않으려는 자

에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차제에 이 부분에 대해 조사를 명확히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해당 사안에 대해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이 항시 발목을 잡고 넘어지려는 자세에 대해 확실한 대못을 박는다는 심정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자들이 명명백백 유공자분들의 명단과 개인별 공훈 업적내지는 선정 이유를 밝혀 다시는 발목 잡는 인간들이 이 땅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후손들에게는 떳떳한 자료로 남겨보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진실을 감추려 하거나, 밝히지 않으려는 자들이 518 유공자분들이 잠들어 계신 

신성한 장소에 대해 돌아가신 분들로부터 무슨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들처럼 행동하면서 이 나라의 국민이고 그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유로운 조문이 가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문 오는 분들에 대해 어떤 근거로 조문을 막는지 그리고 그런 행동이 과연 옳지 행동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있으며 그런 행동이 잠들어 계신 영현들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일군 오늘날의 대한민국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조문을 온 몸으로 저지하는 분들이 잠들어 계신 분들의 진정한 후손인지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계속해 오고 있었는데 이러다가는 조만간 황해도 안중근 의사충청도 이봉창 의사, 마산의 김주열 열사와 서울의 연세대 이한열 열사 등을 조문하려 할 때 그 지역 사람이나 관계자가 아니면 조문을 못 받겠다고 난리치거나 조문을 방해하는 집단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으며 곧 조문오는 사람들에게 잠들어 계신 분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주민등록 등본과도 같은 증명서를 제출해 돌아가신 분과 어떤 연관성이 명확한 확인이 되어야만 조문이 가능한 날이 올 것 같아 아주 걱정스럽다.


매번 선거철이나 무슨 때만 되면 민주화 영현께 조문 오는 것을 막는 자들도 이상하고 그래도 

가겠다고 박박 우기며 아우성치는 사람들은 더 이상하다. 오지 말라고 하는 데 굳이 우기며 가는 행동은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을 모신 곳이 특정 지역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앞으로 계속 이런 저런 사유로 특정 지역에서 특정 단체나 사람들의 조문을 막는다는 것은 유공자가 특정 지역과 단체의 상징이 아니기에 또 다른 현대판 지역차별이요 인격 차별이라 생각되기에 

굳이 그런 차별화가 일상화된 지역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고 다른 민주화 영현들께서 잠들어 

계신 지역을 성시화하여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관리에 적극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질 낮은 작태를 보면서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후손이라면 그렇게 치졸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번 기회에 정확히 유공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제안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조문 오는 사람을 막고 난리 피우는 이유는 유공자 후손들 속에 가짜가 많거나 무늬만 

유공자 후손인 자들이 많아 그 가짜 후손들이 난리를 치기 때문이며 또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난리를 그악스럽게 쳐대야 진짜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 속에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이런 나의 생각이 완전 틀렸다고 생각하는지요?

 

진실은 시간이 흐른다고, 손으로 가린다고 가려지는 게 아니니 이런 저런 방식과 사유로 진실을 가려도 언젠가 누군가 반드시 밝혀 낼 것입니다.

하여튼 518 민주화 유공자 명단과 숫자를 정확히 알고 싶을 뿐입니다.

 

작품을 읽으며 작금의 이 땅에는 왜 이렇게 함량 미달의 정치인들과 무늬만 민주화 유고자들이 갑자기 넘쳐 나게 되었는지 이유가 몹시 궁금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위에서도 언급되었고, 작품에서도 기묘사화를 촉발시킨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가짜 유공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 ‘빈 수레가 요란하듯가짜가 진짜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가짜가 선동적으로 난리쳐 국가 사회적으로 혼란스럽고도 시끄럽게 만들어야 난리치는 가짜들을 수용하는 어떤 중재안이 나와 더 

이상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얼렁뚱땅 넘어가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함량 미달인 가짜들도 거기에 은근 슬쩍 섞여 자신들도 진짜로 포장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혼란한 정국을 숙주로 함량 미달의 암적인 정치인들과 인사들이 갑자기 늘어나게 된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위선으로 가득한 가짜들의 특징은 누가 봐도 겉과 속이 다른 행실로 국민을 기가 차게 만들고 

있지만 자칫 구설수에 휘말리기 싫은 대다수의 국민들과 매체들은 극성스런 팬덤 현상에 매몰

되지 않으려 좌도 우도 아닌 중도에서 미적지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진행된 청문회에서 들의 비상식적 수준 낮은 행실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런 후보와 그런 후보를 지명한 집단에 대해 질타는커녕 오히려 그들 편에 서서 사과 없이 변명하려는 주도 세력의 기이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대중들은 너희도 별 수 없구나라는 식으로 침묵하고 있지만 이럴 때 나서야 할 우리의 매체들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파수꾼으로서 기능을 다해 

팩트를 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집단이 내 놓는 논평을 받아쓰기에 급급한 이상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지만 누구하나 이를 지적하지 않거나 반성하지 않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

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느 수준 낮은 인사가 청문회에서 문제되는 사항을 지적하자 임명권자를 

이기려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으나 누구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대응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주장하는 내용이 옳아서라기보다 그런 질 낮은 지적질에 일일이 대응하였다가 

그런 수준 낮은 인간과 그의 평가를 인정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언급을 외면하는 것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 개 무시로만 일관하고 있는 그런 자세가 좋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일견 답답한 - 민주주의는 답답한 면이 강하다 - 면도 있다.

그 이유는 그런 질 낮은 발언에 환호하는 집단은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일인자가 행한 평가에 

대해 아무도 비판하거나 댓거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비판이 맞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근자감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호도되어 그의 생각과 시각에 벗어난 집단과 개인에 

대해 조롱질 하는 것이 정의고 진리라 믿으며 더욱 활개치고 있어 그런 답답함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저질 발언을 한 인간은 더 기세등등하여 내 말이 맞으니 세상이 내가 이렇게 

말을 해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내 말이 맞지‘, ’나를 이길 자는 없다고 하면서 온갖 폼 

다 잡고 콧수염 날리며 한마디 더 하고 있다. ‘내가 뭐랬어...별거 아니라 했지?’

 

이런 갑갑한 시절에 전진과 발전의 토대를 더욱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처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기본기 충실과 함양 방법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초석을 놓은 우리의 민주화 유공자들 툭히 518 유공자에 대한 조사를 통해 그분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오셨는지와 어떤 방법으로 현실적 난제를 해결해 오셨는지를 연구해 

보자는 것이다.

, 그분들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과 버려야 할 점이 무엇이지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전, 현직 정치인들을 우선 대상으로 조사해 보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

조사 대상으로 그들을 먼저 선정한 이유는 작금의 현실에서 앞장서서 난리를 치니 너는 얼마나 깨끗한지 조사해 보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난리치는 너의 조상은 이러이러한 관용과 아량을 

갖고 계신 훌륭한 분이었다는 것을 부각시켜 화합과 상생의 방식을 찾아보자는 의미이며 이를 

바탕으로 모두가 화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보자는 차원에서 제안하는 것이니 용단을 내려 동참하기를 읍소하는 바입니다.

 

어느 신문을 통해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가 있어 여기에 옮겨 본다.

 

140년 전 이 땅에 선교사 윌리엄’‘메리 스크랜턴이라는 두 사람이 한국 땅에 파송되었습니다.

윌리엄 스크랜턴은 병을 앓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는 진료소를 엽니다그 진료소가 바로 상동교회입니다.

그곳에 돌을 던진 소년이 있었습니다. 전덕기.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던 가난한 숯장수였습니다하지만 스크랜턴 부부는 그를 품었습니다. 그 사랑이 아이를 바꿨습니다. 그는 자라 

상동교회의 목사가 돼 하늘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윌리엄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은 여성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화학당, 오늘의 이화여자대학교. 수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그곳에서 배웠습니다

한 번의 용서가 한 교회를 살렸고 그 교회가 도시를 살렸고, 그 도시가 민족을 흔들었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은 것은 우리가 선하거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비로우시기 때문

입니다그 용서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도 용서의 사람이 됩니다. 그 은혜가 지금도 우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출처 국민일보 20250728]

 

- 조선 전기,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던 보수 세력인 훈구파에 의해 새로운 개혁 진보 세력인

  ‘사림파가 화를 당한 대표적 사화가 무오사화(1498, 연산 4), 갑자사화(1504, 연산 10),

  기묘사화(1519, 중종 14), 을사사화(1545, 명종 즉위년)이다.

  * ‘훈구파공훈을 지닌 구세력을 뜻하는 용어로 조선 건국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공신의 

     특권을 가지고 그 기득권을 제대로 승계한 정치 세력을 지칭한다.

     ---> 훈구파의 세력이 공고히 된 이유는 세조 집권 과정에서 공신이 대거 배출되었고 

            그들에게 많은 특권을 주었기 때문인데 정치적으로 보수 기득권 세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강했지만 조선의 제도와 문물을 정비하고 외교와 국방을 튼튼히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학문적, 실무적 능력을 겸비했던 이들의 역할이 컸었다.

- 사림파의 뿌리는 여말선초,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면서 조선왕조의 건국에 반대한 길재

  (吉再)등의 영남사림파로부터 시작되며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등극하며 급속 그 세력이 

  확산된다.

   ---> 성종이 사림파 인물들을 정계로 불러들여 훈구파 견제라는 역할을 기대하지만 의리와 

          충절이라는 성리학 명분으로 무장한 사림파에게 세조의 불법적인 왕위 찬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었다.

- 왕에 대한 견제를 주 업무로 하던 사림파들은 주로 언관직에 진출해 있었는데 왕에 대해 사사

  건건 제동을 걸던 사림파들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찾던 연산군의 폭정이 더해지면서 사림파는

  크게 화를 입는다.

    ---> 특히, 김종직의 조의제문으로 촉발된 1498년 무오사화는 영남사림파의 몰락을 초래

- ‘무오사화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사림파의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사건이 동시에 

  이들이 추진한 과거사 바로잡기가 훈구파의 저항을 받은 사건이다.

- 친모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어 일어난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능상(凌上, 위를 업신 여긴

  다)에 대한 피해 의식이 확실히 드러난 사건.

   ---> ’연려실기술에서는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모친의 죽음에 대해 알린 것이 사화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 무오사화 피해자가 52명이었던 것에 비해 갑자사화는 239명인데 이중 40%96명이 

         사형되었다.

   ---> 갑자사화는 표면적으로는 모친에 대한 복수극인 듯하지만 실제는 독재 군주(연산군)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은 가차 없는 처벌이 뒤따른다는 어떠한 비판 세력도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사건이다.

   ---> 1506년 연산군의 이복동생 진성대군(중종)’을 옹립하는 반정으로 조광조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주요 배경이 된다.

- 조광조의 인생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은 무오사화로 평안도에 귀양 온 김굉필과의 

  만남으로 이는 영남사림파의 학맥이 기호사림파에게 접목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의 학문과 사상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책은 소학으로 소학은 주자가 삼대의 이상을 실현

  하기 위하여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여러 책에서 주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편집한 책으로 수신

  (修身)’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림파 성향에 부합되는 측면이 많았다.

  한마디로 소학은 유교사회의 도덕규범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내용을 가려 뽑은

  책으로유학 교육의 입문서이다.

   ---> 김굉필의 학문을 계승한 조광조는 중앙의 정치 현실에서 소학을 정책 이념으로 구현

          함으로써 스승의 사상을 뒷받침하고자 했다. 조광조를 위시한 중종 시대를 대표하는 

          사림파 학자들은 연산군 이래 퇴폐해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소학으로 존중과 학문  

          의리를 구명하는데 몰두했다.(P57)

- 조광조는 성리학의 이념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소학과 함께 향약(鄕約)’ 보급에도 

  전력을 다했다.

  ---> 기묘사화로 향약이 흐지부지되며 1574(선조 7)을 고비로 향약을 전국적으로 실시하던 

        흐름이 중단되고 각 향촌마다 특수성을 반영한 개별 향약들이 다수 등장한다.

- 중종 반정의 주요 공신(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이 모두 사망하자 중종은 왕의 입지를 찾기 

  시작했중종은 자신의 입장을 적극 추진할 인재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조광조를 적극 

  신임하게 된다.

   ---> 중종과 조광조의 동거와 몰락의 과정은 조선 건국 초기 신권 강화론을 주장한 정도전이

          왕권 강화론의 핵심 인물인 태종에 의해 제거되었던 정치적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 중종 대의 정치적 과제들 중에서 중요했던 일 중 하나는 폐위된 왕비 신씨에 대한 명예

  회복이었다.

  1) 소릉 복위운동

    :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안치된 소릉에 대한 복위 운동으로 소릉 복위는 세조 대의 

      정치적 유산을 청산하고 사림파의 입지를 강화하고자 했던 조광조에게 날개들 달아준 사건

  2) 폐비 신씨 복위론

    : 중종을 왕으로 추대 직후 단경왕후인 왕비(연산군 처남인 신수근의 딸)를 폐위 시킨 것에 

     대한 복위 문제는 조광조가 주도가 되어 추진하였다.

- ‘소격서는 원래 도교의 제천 행사를 주관하던 관청으로 나라에 천재지변이 있을 때 일월성신

  (日月星辰)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는데, 조광조는 성리학의 이념에 입각한 도덕정치의

  실천을 위해 소격서의 혁파를 추진.

   ---> 조광조와 중종 개인 사이의 논쟁을 넘어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보여 준 사건으로 조광조가

         실각한 이후 소격서는 다시 설치된다.

- 조광조는 개혁정치를 추진하면서 자신과 손발이 맞는 세력을 원했는데 이런 인력을 과거를

  통해 끌어 모으는 데 한계가 있어 인재 등용의 한 방법으로 천거(薦擧)’제도를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해 강력 반발한 이가 이조판서 남곤이었다.

  천거제도는 추후 현량과로 변모하여 인력 추천 방식이 더 강화되지만 이를 통해 조광조가

  정치적으로 세력화하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결집시키는 계기와 함께 조광조의 몰락을 

  재촉하는 원인이 된다.

   ---> 소격서 혁파, 향약 실시에 이어 현량과까지 추진하면서 개혁에 탄력을 받은 조광조는 

         중종이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기득권 세력에 치명타를 가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국공신의 전면적인 개정 요구였다.


역대 왕별 공신 숫자

   · 태조 개국공신 52· 태종 1차 왕자의 난 정사공신 29, 즉위 직후 좌명공신 46

   · 계유정난 직 후 정난공신 43· 세조 등극 후 좌익공신 46

   · 이시애의 난 직 후 적개공신 45· 예종 즉위 후 익대공신 39

   · 성종 즉위 후 좌리공신 75· 중종 정국공신 120여명

    ---> 정국공신들 중 상당수가 문제가 있는 인물임을 공표하는 것은 반정으로 즉위한 중종으로

          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으로 왕으로서의 정통성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는 상황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 중종의 결단으로 바로잡을 공신 명단이 발표되는 데 약 76명의 공신 명단에서 제외됨

    ---> 조광조 세력은 명단 발표 4일 후 중종이 대대적인 역습에 직면한다.

- 중종은 조광조를 붕당 형성 죄목으로 전격 구금시키지만 영의정 정굉필이 조광조에게 붕당죄를

  적용하면 중종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붕당 죄 적용이 중종의 뜻인지 홍경주나 남곤과 같은

  인물의 뜻인지를 분명히 해 줄 것을 요구.

   ---> 정굉필 및 안당과 성균관 유생들의 논리에 중종은 일단 후퇴, 조광조 일파의 처형을 

          미룬다.

- 홍경주와 남곤 그리고 홍경주의 딸인 희빈 홍씨가 작당하여 만든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으로

  조광조를 더욱 사지로 내 몬 결과 거세되고 만다.

  결국, 사관의 기록을 보면 조광조는 중종에 대한 믿음을 계속 보였지만, 조광조 세력의 성장에

  부담을 느낀 중종의 갑작스러운 변심에 의해 기묘사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 남곤, 홍경주, 심정은 이들이 주도한 기묘사화로 인해 조선 최고의 간신으로 평가되고 있다.

- 중종은 조광조가 시의를 헤아리지 않고 날뛰었기에 죄를 주었다고 하면서 조광조 일파를 

  처리한 직후 공신 개정에 관한 일을 재 논의할 것을 지시하고 남곤과 심정을 조정의 요직에 

  전진 배치함은 물론 현량과 폐지 문제를 거론하면서 조광조가 추진했던 각종 개혁 흔적 

  지우기에 집중.

- 인종은 세자 시절 사림파를 중용했는데 그중에서도 인종의 스승으로 활약을 한 대표적인 

  인물은 김인후였는데, 인종 즉위 직후 조광조와 기묘사림에 대한 신원 상소가 성균관 유생,

  사헌부, 홍문관 등 곳곳에서 올라왔다.

  조광조의 신원의 당위성을 알면서도 선왕인 중종의 처분을 쉽게 바꿀 수 없었기에 인종은 

  고민했다.

   ---> 1567년 선조 즉위 후 사림정치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때에 이르러 가능했으며 조광조 

         추존의 대미를 장식하는 사업은 문묘 종사로 1610(광해군 2) 광해군이 오현의 문묘 

         종사를 허락한다.

   --->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이자 사림파의 영수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조식, 이황,

         이이는 공통적으로 조광조에 대해 깊은 존승을 표시하고, 그의 학문을 계승하는 것을 

         소임으로 삼았다.

- 기묘사화의 비극은 왕권에 대한 견제 장치로서 성리학의 이념을 무기로 하여 등장한 신권의 

  도전에서 신권, 즉 조광조가 패배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기묘사화는 우리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인물이었던 조광조의 정치 노선이 중종과 보수 세력의

  반격을 받아 좌초한 사건으로 조광조의 사림파 학통을 계승한 인물인 이황은 자신의 언행록

  에서 냉정하게 조광조를 평가하며, 조광조가 일의 형세와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 무리하게 

  개혁 정책을 추진한 점과 걷잡을 수 없는 개혁의 분위기 속에서 정치적 타협을 이루지 못한 

  점을 실패원인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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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조선의 지존으로 서다 - 타고난 절대군주가 뿜어낸 애민의 카리스마 숙종의 진면목 이한우의 군주열전
이한우 지음 / 해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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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은 숙명이요 운명이다. 어떤 국왕을 만나느냐에 따라 한 시대, 한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한 개인의 운명까지 결정된다는 뜻으로 숙종에 대해 평가한다면 한 마디로 

쇠잔한 조선에 힘을 불어넣은 임금

이라 평할 수 있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는데작품을 읽는 과정에서 마주한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또 다른 리더 숙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작품을 통해 역사 속에 

남긴 그의 자취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그 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 중 가장 두드러진 

사항은 아마도 조선판 마키아벨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고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은 아마도

숙종을 끝으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염원인 북벌(北伐)’에 대한 의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도 

일부 확인한 아쉬운 시간이었다.


조선 19대 왕 숙종(肅宗)은 재위기간 4510개월로 그의 명칭은 사후에 신하들이 붙인 묘호(廟號)(, 엄숙할 숙)손에 수건(, 수건 건)을 들고서 깊은 연못(, 못 연)에서 일을 한다는 것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매우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연못에 임하듯이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숙종의 아버지 현종이 17녀 중 독자였고, 숙종 역시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 사이에서 13녀로

독자로 1667(현종 8) 세자위에 올라 10세 때 김만기의 딸(인경왕후)과 혼인하여 딸만 둘을 

두었으나 자식들은 어려서 모두 요절했으며 부인 인경왕후도 20세에 천연두에 걸려 발병 8일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어떤 이유로 그런 평가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경왕후가 장수하였다면 숙종대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역사적 평가가 있다.

 

숙종을 거론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장희빈을 함께 언급하며 숙종을 조선의 여타의 

왕들처럼 여인을 밝혔던 왕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함이 없는데 이는 일부로 전체를 평가하려는 

편협한 생각이라고 본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숙종 재위기간 행한 여러 정치적 조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14세의 어린 나이에 권좌에 올랐으나 나이를 뛰어넘는 그의 정치적 행보만 봐도 숙종에 대한 

섣불리 내린 평가가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숙종은 신하들에게 엄숙했으며 신하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던 반면 공포와 경계의

대상으로 말 그대로 엄한 왕이었다고 한다.

숙종의 숙청([肅淸] 혼란한 세상, 그릇된 일 따위를 엄하게 바로잡음 혹은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을 추방하거나 제거함)은 무자비했고 또 국왕으로서의 위엄을 강조할 때는 서늘한 늦가을 

같았다고 한다.

그 결과 조선 ‘4대 사화를 통해 죽은 선비 모두를 합쳐도 숙종에 의해 목숨을 잃은 선비 숫자보다

훨씬 많았음에도 숙종을 어느 역사가도 폭군(暴君)‘이라 부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 에브러험 링컨은 재위기간 동안 남북전쟁이라는 특수 사정이 있어 그랬다고는 하지만 언론을

  그 어느 미국 대통령보다 탄압했고, 통폐합하는 등 그 어느 대통령보다 언론을 심하게 다루었음

  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미국인들은 링컨을 언론을 탄압한 저급한 대통령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과 동일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링컨이 이 땅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격변의 시기마다 자주

  심판 대상이 되어 아마 몇몇 무늬만 사학자인 저질 폴리테이너들과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자리

  차지하려는 이상한 놈들이 주도하는 무늬만 이상한 단체인 것들에 의해 폄훼되고 평가 절하

  되어 국회라는 곳에서 언론 압살의 주역으로 평가되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겪은 뒤 국립현충원 

  명부에서도 삭제되었을 것이다 -


숙종의 성격내지는 통치술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는 사례는 태종이나 세조는 숙청을 단행할 때

최소한 관련 공신(功臣)만은 어느 정도 남겨놓고 정리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숙종은 한순간에 

모든 신하를 전격적으로 단칼에 바꿔버리는 환국(換局)을 단행한 인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

데 숙종은 자신이 계획한 거사를 실행함에 있어 조금의 미련도, 아쉬움도 남기지 않았던 인물

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숙종은 알면 알수록 과단성이 강하며 권위와 능력을 겸비한 왕으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다했던 리더로 평가할 수 있는데 작품에 나타난 숙종의 정치적 행보를 통해 얻은 강한 느낌을 

정리해 보면

* 본 작품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특정 사안에 대한 원인과 배경, 처리 결과에 대한 분석보다는 숙종시대에 

  활약했던 관련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 인물과 관련된 집안 설명이 많아 사건 내용에 집중했던 여타의 

  작품과는 차이가 있었다.

절대 왕권에 의해 운영되던 고려와는 달리 신하 및 참모에 의해 국가를 통치하고자 하는 이념이

강했던 조선은 좋게 이야기해 신하들의 자율성이 극대화된 혹은 여론 수렴 창구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역으로 이런 현상은 자칫 왕권을 무시하는 행위로도 비춰질 수도

있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항이 사문난적이라는 단어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던 당시 문관들의 절대권위자

였던 우암 송시열은 어린 나이에 권좌에 등극한 숙종을 가볍게 보고 - 송시열, 그는 나름 이유와

사정이 있어 그랬겠으나 왕의 출사 권유를 습관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은 내가 왕이라도 그런 행동

을 보이는 인간을 왕은 자신을 낮추어 본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 4번에 걸친 숙종의 출사 권유를

외면하는데선대왕부터 이어져 온 왕권의 정통성을 의심케 하는 복제논쟁과 현종(숙종의 

아버지)묘지문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조정과의 악연을 그의 제자들이 이를 옹호한다고 무리

하게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숙종의 미움을 받아 큰 화(사화, 士禍)를 자초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서인에서 남인으로 정권의 주도 세력을 바꾸지만 숙종은 서인들은 다루기는 어려우나 신뢰할 수 있었던 반면 남인은 다루긴 쉽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숙종은 참모들을 통치를 위해 자기를 보좌하는 집단으로 여기기 보다는 

단순히 자신의 정적 제거를 위한 수단이요 도구로 인식하기 시작한 결과숙종이 직접 특정인을 지명해 그를 탄핵시키도록 노골적으로 3사를 압박하는 일이 예사였다고 한다.


이즈음 되면 최근에 일어난 우리의 탄핵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숙종에 의해 주도되었던 당시의 탄핵과 최근 우리 정치사에서 남발되었고 지금도 툭하면 터져 나오는 다수당에 의해 추진되는 탄핵을 비교해 보면,

숙종의 탄핵은 절대권자가 지향하는 국정방향 내지는 의도하는 정치적 야망에 반할 경우 이에 

해당하는 집단 내지는 개인에 대한 정리 차원에서 추진되었다고 한다면, 작금의 탄핵은 민생을 

대표하는 다수당이 자신들의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다고 판단되면 민생 문제와는 관계없이 자신들이 속한 정당의 목표 달성을 위해 탄핵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마치 중국 

문화혁명 시대홍위병들이 순수한 소년 홍위대를 이용해 난리치던 방법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 내 눈에만 그렇게 비춰지는 것일까?


듣보잡으로 살다 뱃지를 달게 해 준 리더에게 보은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이 앞장서서 난리

치는 모습과 정치 전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나라 걱정하는 질 낮은 행동을 보면서 웃음 이전에 눈물부터 나오는 것은 왜일까?

마치 어린이 성폭행범인 XX’이가 어린이 성범죄 예방 및 인권재단 이사장을 뽑는 단체에 

회장후보로 입후보하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또 왜일까?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특히 겸손이 힘들다고 난리치는 어떤 고매하신 안면 불량 자칭 언론인은 말도 안 되는 가짜 뉴스를 통해 짭짤한 수입을 올리며 연일 예술적으로 난리치면서 뚫린 입이라고 확인할 수도 없고,

취재원 보호라는 미명하에 첩보운운하며 마구 떠들어대도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는 특정 집단과 그에 편승해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하면서 수수방관을 가장하고 오히려 응원하는 

듯한 모습에서 그들이 진정 이 땅의 진정한 참 언론인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고는 하는데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더욱 애처로운 것은 무슨 일만 벌어지면 고발장 접수하러 집단으로 몰려다니는 서민의 대변인이 아닌 고발장 접수를 주 업무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수준 낮은 인간들이 더욱 문제이고 웃기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의도에 민생 챙기라고 보내놨더니 그런 일보다는 무슨 일만 생기면 고발장 접수하러 몰려다니고그런 모습을 남기겠다고 기념사진 촬영에만 열중하고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인간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난리치며 접수한 고발장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된 것이 무엇인지 나는 궁금할 따름이며 정말로 있다면 어느 내용인지 밝혀주길 바랄 뿐이다.

하여간 모두가 봉숭아 학당의 맹구 수준의 행동을 하지만 맹구처럼 자신은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눈깔 부릅뜨고 난리치고 있으니 애처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이다.


나는 얼마 전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을 만들지 말자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벌서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 수준 낮은 중국 대표라는 저질 인간 아가리에서 드디어 우려되던 사항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미국이 부과한 한국의 관세가 낮아진 이유가 자신들이 미국과 싸운 결과이기에 자신들의 은공을 잊지 말라는 심청이 랩하는 개소리를 했다고 한다. 내가 뭐랬는가...수준 낮은 어느 인간의 혼밥질

과 영혼 없는 쎄쎄 발언 여파는 언젠가 후세에 또 다른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이다앞으로 이 색히들 더하면 더했지 질낮은 간섭질 절대 줄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서해 우리 영해에서 양식장을 위장한 채 해양영토를 넓히려는 야욕이 어떤 형태의 하인리히 법칙으로 나타날지 걱정스런 마음 뿐이며 그런 모습에 대해 쎄쎄라고 또 이야기할 것인지가 자못 궁금하다.


여기에 더하여 더욱 애타는 것은 간첩 때려잡는 관련 법안을 만들지 못하게 해 이제는 중국의 

고등학생까지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국가 안보시설을 촬영해 난리도 아닌 중차대한 시국에 원천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자기 반성적 성찰과 함께 정치인 모두가 합심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없고 이미 판결로 위법이 확정된 문제 사항을 사골뼈 진국 우려먹듯 재탕 삼탕하면서 상대 짓밟기에만 전력투구하는 어느 집단을 보면 공동의 외부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죽일 놈이라 그런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행동하는 집단의 저의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잘못된 것일까?

 

두 번째는 안타깝게도 숙종시대나 현 시대나 동일하게 지록위마([指鹿爲馬]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제 마음대로 휘두름) 세상이라는 것이다.

이 고사는 너무나 잘 알려진 것으로 중국 진()나라의 조고(趙高)가 자신의 권세를 시험해 보고자 제2(황제 호해(胡亥)에게 사슴을 가리켜 ()’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작금 우리 정치사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거의 유사해 이렇게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특정 정당의, 특정 인물에 의해 위의 고사와 같은 현상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숙종은 3사를 동원해 지록위마를 실현하였으나 작금은 소년 홍위병들을 동원해 곳곳에 조고(趙高)같은 인물이 주도가 되어 숙종 시절 호가호위하던 김석주같은 인물이 여기저기서 나와 

난리치고 있는 모습이 위의 고사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고만고만한 김석주가 나오다 보니 차별화한다고 비슷하게 어필하거나 

밋밋하게 어필하면 자신에게 은전을 베푼 리더에게 찍힐까봐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사사건건 침소봉대하고 같은 문제라도 임팩트를 증가시키려 격한 단아와 문구로 이목을 집중

시키려는 현상이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정 집단에만 나오는 현상도 아니다. 모두가 난리다.

대표적인 예가 종교지도자라고 참칭하는 어느 말도 안 되는 인간은 자기 수준의 괴상망칙한 말도 안 되는논리로 통수권자의 헛발질을 찬양하고 이를 빌미삼아 이를 반대하는 인간들은 기회를 

잡은 양 밑도 끝도 없는 제보형식을 빌어 세상을 마구 흔들어 대고 있으며, 민생 문제를 갖고 민의의 전당에서 토의하라고 하면 발제와는 상관없는 사항을 갖고 상대를 면박 주는 저급한 발언을 일삼고 이를 지적해야 할 중립을 지켜야 할 어느 리더는 한쪽에 치우쳐 자신이 왕이 될 상이라고 맹구같은 헛소리만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새 시대가 오면 바뀔 것이라고 외치며 촛불로 정권을 세운 이들도 그들의 정권이 막을 내린 뒤 

장부를 뒤져 보니 만만치 않은 여러 문제 사실이 나오고 있는 등 그 밥에 그 나물이었음이 나타

나며 상황이 좋지 않게 전개되자 반성은 고사하고 상대의 약점을 더욱 더 파헤치는 물타기 작전과 성동격서식 화제 전환용 단어를 주구장창 생성해 내면서 자신들의 선임자들이 저지른 오류와의 단절과 은폐를 유도하려 하나 그게 말같이 되지 않으니 이를 막아보겠다고 전직 고위직에 

있던 어느 인간은 보이는 것만 시원치 않은 줄 알았더니 터진 입도 쓰레기라 주접떠는 것 보면 

대학시절 사람 패 죽이라고 사주하다 전과자가 된 어느 잡독설가처럼 오늘도 자신만 똑똑하고 

예지력이 있다고 외치고 있다.

독설을 날리며 그들의 옛 영화를 구현하고 싶으면 또 그들이 정말로 그렇게 잘 났으면 그들의 

전임자들이 유야무야 덮어 버리고 지나간 518 민주화 유공자 명단과 선정 이유, 사드로 중국과 

밀약한 삼불일한에 대해, 혼밥의 달인이 통돼지에게 넘겨준 USB 내용에 대해 조사하자고 왜 

이야기를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으며 이전부터 문제가 있어 이야기되어 와 금번에 문제가 되었던 통계조작에 대해 설명을 시원하게 줄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누구 말처럼 입으로만 반일을 외치고 머리로는 친일하지만 말고 올바른 독설가이고 나라를 진정 걱정하는 인물이라면 동일한 잣대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데 어찌 생각하는지 자못궁금할 뿐이며 이런 

수준 낮은 질문에 답을 못하면 정말로 그대들이 수준 낮은 인간들일 것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갖고 미래를 행해 닥쳐오는 시련을 이겨나가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어 가는 것이다라고했습니다.

우리에게 멋지고도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에 노력을 하시는 

창조적 소수자들에게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 것은 혼란한 세상에 이름 한 번 남겨 보겠다고 

오지랖 떠는 것도 중요하지만 엘라 골짜기에 나뒹구는 누구의 몽뚱이처럼 되지 마시고 아무리

자기의 리더가 말()을 갖고 사슴(鹿)이라 칭한다고 할 때 이를 적극 부정할 수 있는 올바름을 

최우선적으로 지녀주길 당부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에휴...어찌 되었던 나부터라도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원망하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는 가족에게 

욕 안하고 작은 일 갖고 침소봉대하지 않으며 비전과자 출신인 정치꾼이 아닌 정치가를 뽑고자 합니다.

 

오늘도 핏대 올리며 협치와 협력을 입으로만 외치는 창조적 소수자님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비천한 상태로 유배당했고 거기서 종말의 신비한 계시록을 받았고 

민족의 개혁을 꿈꾸던 정약용도 강진으로 비천하게 유배된 다음 목민심서를 썼다고 합니다

부채를 떠안은 채 치명적 마비 ㅇ증세를 앓으면서 구금상태로 지내던 헨델은 세기적 명곡을 

창작했습니다. 영광의 메시아, 할렐루야 대합창은 비천한 상태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런 심정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갈 혜안을 발휘해 주시길 희망합니다.

어느 박수무당 닮은 질낮은 인간이 자장면 쳐 드시면서 터진 입으로 개소리하는 영상이 가끔 

보이던데 우리의 수준 높은 창조적 소수자님들은 진중했으면 합니다.

첨언해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경계하지 않는 자신의 장점은 언젠가 자신에게 두 배의 약점으로

돌아온다는 것과 또 입으로 성공한 자는 반드시 입으로 망했음을 기억하라는 이야기입니다.

 

- 자의대비, 즉 장렬왕후 조씨는 말 그대로 비운의 왕비로, 15세에 인조 16년 인렬왕후 한씨의 

  뒤를 이어 인조의 계비가 되지만 피부병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문제로 인조와 사실상 별거에 

  들어간다.

  인조와 효종 사후 손주며느리인 명성왕후가 수렴청정을 할 경우 자의대비의 존재가 껄끄러워질

  것을 우려해 자신의 가족을 지배세력으로 넣으려 국왕인 숙종을 보필할 사촌 김석주를 등용

  시킨다.

- 숙종의 아버지 현종은 조선 국왕 중에 유일하게 정실왕후(명성왕후 김씨) 한 사람만을 아내로

  두었다명성왕후는 영의정을 김육의 아들인 김우명의 딸로 숙종 즉위 후 일어나는 주요 사건에

  배후 조정자로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 14세의 숙종의 명령에 송시열은 대놓고 4번이나 거부하며 항명한다. 아니 게겼다는 게 맞다.

  1) 송시열을 원상에 임명하나 이를 거부

  2) 성균관 유생들의 건의를 받아 요직에 앉히려 하나 이를 거부

  3) 현종의 묘지문을 지어 올리라는 명을 거부

  4) 중추부 판사라는 관직을 제수하나 이를 거부

  숙종은 조선 최고의 호모 폴리티쿠스태종에 버금갈 정도의 정치력을 갖춘 인물로, 집권

  과정에서 정변을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세져야 할 공신이 없었다. 군주로서 본인의 능력만 

  탁월하다면 왕권강화를 추구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 어린 시절 누구로부터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었느냐 하는 것은 훗날 그가 보여줄 통치

  방식을 미리 점칠 수 있게 해준다.

  14세 숙종의 공부는 논어자치통감을 양축으로 진행된다. 허적의 추천으로 조정에 들어온

  남인계통의 허목과 윤휴도 특별히참여하게 되는데, 숙종의 기본적인 학문 틀은 남인계열에 

  의해 만들어진다.(P122)

  * 송시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문제로 영의정 허적과 의견이 갈려 허목은 강경파 청남(淸南)

   영수가 되고 허적은 온건파 탁남(濁南)의 영수가 되어 대립

  * 윤휴는 독학자답게 당시 유학자라면 누구나 당연시 하던 주자학적 경전해석을 거부하고 

    독자적 해석을 가해 당시 큰 파문을 일으킨다.

- 숙종 대에 행한 여러 치적 중 눈에 띄는 것은 선대에 대한 예우가 극진하였다는 점이다

  1)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를 태묘에 배향하고 태조와의 사이에서 출생한

     이방석(소도군), 이방번(무안군)을 추증했다는 사실이다.

  2) 태종 이방원에 의해 허수아비 임금을 했던 공정대왕을 정종으로 정한 일

  3) 자칫 왕실의 정통성을 위협할 수 있는 노산대군을 단종으로 정한 일

  4) 사육신의 복작(復爵)을 명하고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한 일

  5) 인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소현세자의 강빈과 그의 세 아들에 대한 회복을 명한 일

- 숙종은 청나라와의 항복 조건을 깨고 북한산성을 수축하고 강화도를 요새화하고 군제를 개편

  하는 등 북벌의 꿈을 키우게 되는데 숙종 6년 청나라 사신들이 귀국길에 백두산에 들로 제사를

  올리는 일이 조정에서 현안으로 떠올랐는데 숙종의 엄명으로 청나라의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

  시키라는 엄명을 내린다.

  특히,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외교 문서를 통해 일인들에게 분명하게 통보하였으며 2년에 한번씩

  강원도 부사들이 현지를 순찰하고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 화폐유통을 건의한 인물은 영의정 허적과 좌의정 권대운인데 화폐유통은 태종도 실패한 국가

  프로젝트로 숙종은 특유의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화폐유통을 관철시킨다. 그로 인해 조선의

  상공업은 일대 약진(P199)

  반면에 상업이 본격화되고 농민의 이농현상이 극심했으며 화폐유통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

  전국을 떠돌며 유리걸식하는 유민의 숫자도 급격하게 증가했다.(P401)

- 암행어사 제도는 세종 때 예종에서 당나라의 예에 의거해 강력히 추진하던 제도이지만 숙종 

  때처럼 거의 해마다 조선 팔도 전체에 파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암행어사를 파견할 때 

  숙종은 즉위 초부터 지방 수령과 변방의 장수를 반드시 직접 불러서 격려와 함께 경고를 잊지

  않았다.

- 인재 발굴의 어려움에 봉착하자 경연에서 신하들이 인재 부족을 토로하자 숙종은

  인재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 어찌 말세여서 인재가 없기 때문이겠는가? 예부터 창업한 임금은

   모두 이전 나라의 인재를 등용하여 성공에 이르렀으니 어느 시대인들 인재가 없겠는가? 다만

   알아보지 못함으로 인해 쓰지 못할 뿐이다’ 라고 일갈하고 있다.(P208)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리는 적폐청산이전청산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 집안은 송시열과 같은 서인임에도 불구하고 대동법을 비롯해 

  여러 문제로 송시열과 갈등을 빚어왔다. 사촌 오빠 김석주와 함께 남인이 추진한 송시열 제거에

  동의한 이유가 그런 맥락이다.

- 숙종 5년 중반부터 남인의 과도한 당파성과 무능에 숙종이 싫증을 내기 시작했고 그 점을 

  간파한 김석주는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의 핵심 인사들과 비밀리에 의견을 교환하며 정권 

  교체 준비에 들어갔다.


작품에서 얻은 지식들

- 함벽여츤(銜璧與櫬) 패한 나라의 군주가 손을 뒤로 결박 지은채 구슬을 입에 물어 진상하며 

  죽음에 처해도 이의가 없다는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관()을 짊어지고 가는 것

- ‘참람하게란 분수를넘어서 왕실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뜻이다.(P 95)

- 일언가파 [一言可破] 한마디의 말만으로도 능히 판단할 수 있음. 즉 단칼에 정곡을 찔렀다.(P102)

- 도목정(都目政) 이조와 병조에서 매년 두 차례씩 인사평가를 하여 승진과 좌천시키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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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 시켰을까 -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스토리
이병호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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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본 작품은 지난 2024123일 작품을 완독한 후, 작품에 대한 소회를 인터넷에 올리려는 순간

갑자기 들려온 통수권자에 의해 벌어진 이상한 일로 인해 지연시키다 오늘에야 올리게 되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일어난 통수권자의 헛발질로 인해 이런 저자의 외침이 자칫 그 연장선상에 

있는 가치없는 외침처럼, 어떤 측면으로는 보수들의 광란으로 폄하될 수도 있겠다는 찜찜한 

측면도 있었으나 그래도 저자의 주장과 통치권자의 헛발질이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

했기 때문에 일부 수준 낮은 인간들과 저열한 정치 협잡꾼들에 의해 천편일률적인 평가로 폄하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있었지만 저자의 문제점 지적과 통수권자의 행위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사고의 다양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글을 올리나 그렇다고 내가 통수권자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행한 헛발질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작품은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최고의 정보를 취급했던 조직의 장이 재임 중 경험한 요상한 일들과 그런 요상 야릇한 일을 촉발시킨 주역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희한하고도 기이한 집단으로부터 

받은 어처구니없는 홀대말도 안 되는 조치에 대해 저자의 연륜과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트럼프 가야금 타는 소리 같은 부분을 부분 발췌해 격정적으로 자신의 입장과 함께 그런 판단을 내린 집단의 비열함을 질타한 작품이다.


저자의 한 맺힌(?) 주장을 담은 이야기나 억울함을 토로하는 작품을 읽을 때 자칫 저자의 감정에

휘둘려 당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소회를 밝히는 경우가 

왕왕 있어 이런류의 작품을 읽을 때 몇 가지 개인적 가이드 라인을 설정해 독서하는 게 평소 나의 독서 방식인데 나름 그런 기준을 잘 세워 독서에 임했다고 생각하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작품을 다 읽은 현재는 그 기준이 약간 허물어진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후회되는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저자가 주장하는 특정 정보기관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저자의 

위치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정보에 기반해 특정 주장을 할 경우 - 특히, 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는 내용일 경우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할 수도, 그렇다고 적극 반박할 능력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경험했고, 현실에서 목격한 수많은 작고 소소한 정보들을 나도 나름대로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또 매일 매일 접하는 각종 매체를 통해 수준이 낮기는 하지만 

지득한 단편적인 정보가 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분야이거나 완전히 

생경한 부분이 아닌 이상은 저자의 일방적인 주장에 쉽게 부하뇌동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평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안보관, 국가관, 정치활동 등)이 특정 이념에 크게 경도되어 있지 않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기에 저자의 간곡한 주장이라 할지라도 나의 견해로 보았을 때 타당성과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쉽게 동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접했다,

 

특히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보낸 대다수의 시간과 업무 내용이 기업 리스크 관리와 관련된 

정보 및 보안분야에 관련된 일을 추진했었기에 큰 틀(?)에서 보면 저자의 업무 내용과 방식이 

내가 회사를 다니며 종사한 그것과 비교했을 때 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큰 맥락으로 보았을 때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조직을 위한 발전적 지향점이 비슷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저자가 작품에서 자신의 특정 분야에 대해 어떤 주장이나 억울함을 주장할 경우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작품을 접하고 있었는데 작품에서 평소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명쾌하고도 매력적인 문구로 인해 내가 위에 언급한 나만의 독서 가이드 라인과 상관없이 저자가 주장하는 모든 내용에 대해 숙독하게 되었고 나는 그의 판단을 전적으로 존중

하기로 했는데 나를 이렇게 만든 문구는 바로

'국정원은 긴 수난의 역사를 거쳤다. 다 아는 대로 그 수난의 정점은 문재인 정부시절이었다'

                                                                                                            (P 89)

는 이야기에 완전 공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구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이유로 몇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

첫째는 내가 과거 다녔던 기업은 기업 리스크 대응과 관련된 정보 조사업무를 크게 우선시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하게 우선시하지도 않으면서 보통의 업무와 균형감 있게 관리해 왔던 조직이었는데 해당 업무의 담당 임원이 어느날 외부 영입 인물로 대체되면서 리스크 및 조사 업무 담당자들을 회사 매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도, 가시적인 도움도 주지 못하는 조직이라는 이유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비효율적인 조직을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일류기업에 운영하고 있느냐며 비난하며 관련 인력과 조직을 극도로 폄하하는 것 - 적폐청산 - 을 보면서 그동안 회사 생활하면서 가졌던 조직에 대한 충성과 신뢰를 접게 되으면서 이 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회사를 빨리 퇴직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 속에 퇴직하게 되었다.

그 이후 - 잘난 체 하는 게 아니라 - 퇴직한 회사가 그간 자랑으로 여기던 리스크 관리업무 및 

정보 조사 업무시스템이 기존 인력과 조직을 비아냥대던 임원들에 의해 망가져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외부의 안티세력 및 집단으로부터 연일 난타 당할 때 자신들 잘못이 아닌 전임자들로 인해 벌어진 결과라는 말도 안 되는 책임 회피성 발언을 듣고 또 나를 키워주었던 그 조직과 내 손에 의해 육성되던 후배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탄감과 이루 말 할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퇴직 당시 느꼈던 개인감정과 내가 몸담았던 조직과 업무가 

특정 인간들에 의해 매도되고 그 기능의 일부를 제한 당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저자가 당했을 현실이 내가 당했던 현실과 너무나 유사하게 느껴진 결과, 저자의 울분이 내 울분으로 변하면서 저자가 강하게 주장한 위 문구로부터 일종의 동병상련의 안위를 얻으며 전적으로 동감하게 된 

것이 첫째 이유이고.


둘째는 기업 리스크 관리 업무는 시대와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그 중요성을 낮게 평가해서는 

절대 안 되는 업무이며 이 리스크 관리의 주요 기본 요소는 정보 수집 및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조직이 어떤 위기와 난관에 봉착하지 않는 이상 그와 관련되는 어떠한 일도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해 어느 누구도 해당 업무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도, 의문을 갖지도 

않는다는 특성이 있고 설혹 그런 위급하거나 난관에 봉착하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자금과 인맥을 동원,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아주 저차원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게 일반적인 사실이다.

 

우리는 과거 많은 기업들이 칭기스칸이 어떻게 강력한 국가를 만들게 세계를 호령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또 어떤 통치를 통해 그 넓은 면적을 통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를 심층적으로 하면서 대체적으로 두 가지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정복한 면적 : 칭기스칸(777), 알렉산더 대왕(348), 나폴레옹(115), 히틀러(219)

                                                              (출전 : CEO 칭기스칸 / 김종래 / 삼성경제연구소)

  - 기업 경영에서 속도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으로 성공의 첩경이다.

  - ()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라는 아주 그럴듯한 그러면서도 누가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결론을 얻어내 거기에 맞는 정책

이나 제도 등을 너도나도 만들어 이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살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았을 때 위의 두 가지 사항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 있었지만 폼 잡고, 외향적인 멋에 도취되어 사는 인간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추상적이고 그 효과가 당장 외부적으로 보여 줄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외면하거나 고의로 누락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칭기스칸의 무리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위의 두 가지보다 ‘‘정보 마인드의 중요성이 그 

무엇보다 강했고 그들은 이를 철저히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칭기스칸에 대래 연구한 이들은 

전부 이를 간과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칭기스칸, 그들은 드넓은 초원에서 외지인을 만나게 되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 대신

'당신이 온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였다고 한다.

가만 상상해 보라.

* 참고문헌  1. CEO 칭기스칸(2005, 김종래/삼성경제연구소)

                2. 칭키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2005, 잭 웨더포드. 사계절)

 

아무도 없는 바람과 먼지만 이는 광활한 광야나 사막에서 우연히 만난 상인이 되었던 지나는 

객이 되었던 칭기스칸은 그런 이들을 만나게 되면 반가움도 있었겠지만 아직 자신들이 가보지 

않은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다. 미지에 사실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도 언젠가는 그쪽으로 갈 것인데 아니면 가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당신이 온 그 쪽으로부터 얻을 만한 상황이 어떤지, 가치가 있는지, 만약 가려고 한다면 어찌 가야 효과적인지 등을 묻고 또 묻고 있다.

방목하는 가축을 키우기 위해 칭기스칸들은 가축을 사육하는 데 초원이 필요했을 것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초원은 어디에 있으며 그 초워은 양질의 초원인지 또 있다면 어떤 상태인지 없다면 

목초지로 만들만 한 땅과 사람은 있는지 등에 대해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이를 오늘의 우리들 특히 기업과 국가 운영에 적용해 보면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기업 및 기업의 구성원들은 물론 국가의 대업을 담당

하거나 추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태가 어떠하고 경쟁 상대가 누구이고, 무엇이며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당면한 과제가 무엇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매일같이 점검과 반성을 통해 좀 더 비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보고자 정보 조사를 통해 이를 

확인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세부적인 실천 방안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특정한 목적이 있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외면하는 등 기본적인 사항까지도 전부 다 묶어버리고 눈까지 가려

버리는 만행에 가까운 짓거리를 해 왔다는 저자의 외침과 내가 당했던 당시의 상황이 오버랩되어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를 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중차대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보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 땅에서,

내부적으로 국가발전과 국민을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려는 순수 집단과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자신들의 색깔과 야욕을 감춘 특정 집단 - 그들도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고 있겠지만 그 집단이 추구하는 우선 순위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 이 순수 집단을 무너뜨리려 애쓰고 있는 과정에 또 이들 뒤에서 우리 조선역사에서 가장 불필요한 정쟁의 단초를 

제공했던 사문난적(斯文亂賊,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남발하며 정적을 작살내던 송시열 일파와도 같은 집단과 공동으로 전개되는 이념의 고지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정쟁은 누구 하나 사라질 때까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지만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지 못해도 그런 집단이 힘쓰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할 우리의 정보 조직을, 긍정을 배가시키고 부정을 제거시켜야 할 우리의 정보 조직을 무력화시키려 작당하는 집단과 

인물에 대해 울분을 토해내는 저자의 입장을 나는 골백번 동의하는 바이기에 다시 한 번 저자가

강조한 해당 문구를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 고지전의 의미를 알고 싶으면 

   1. ‘신영복을 존경하세요’(넥스테이지),            2. ‘유성룡인가 정철인가’(너무북스)‘, 

   3.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역사의 아침),       4. ’나는 선비로소이다‘(역사비평사),

   5.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21세기 북스) 등을 읽으면 그 의미를 조금 알 수 있다.

저자는 울분에 가득차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전 정부에서 민생을 상대로 보여주기 식으로 펼쳤던 정책과 그들이 벌인 적폐청산'이라는 칼춤 속에 양산되는 정치범(P172)을 보면서 또 자유를 찾아 탈출한 사람들을 도운 인도주의적 

노력조차 조사 대상이 되게 한 잔인함(P206)과 어렵게 탈출한 동포를 사지로 다시 몰아넣을 때 

북자들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우리의 공무원이 표류하다 저들의 총에 사살된 사건을 

남의 일처럼 대하는 모습과 그들로부터 그 어떤 사과를 받아내려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간첩 잡자는 법을 만들지도 간첩 잡는 수사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의 저열한 수준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숨겨진 민낯을 더욱 자세히, 리얼하게 알게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의 하나가 바로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 남대서양 앞바다에서 발생한 우리 국민 22명이 수장된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 사건이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바로 대통령 선거 직전이라 유가족 표를 의식해 수천 미터 바다 밑에 수장된 선원의 시신을 찾아와 유가족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겠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언론도 맞장구를 치면서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교훈삼아 가족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사고 원인은

물론 실종자까지도 찾아드리겠다며 난리를 치다 막상 당선 후 모르쇠로 일관하며 덮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패산 도룡룡이 죽어간다고 스님이 단식 투쟁에 돌입하자 스님도 살리고 도룡룡

도 살려야 한다며 매스콤 앞에서 주접떨던 인물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에서, 침몰한 선원 가족을

도룡룡만큼도 취급하지 않았던 그와 그가 속한 집단의 정체가 어떠한지를, 노동자의 망치질과 

판사의 망치질의 가치가 동일해야 한다며 환호하며 우리의 사법기관 판결봉 무게도 동일 수준

으로 끌어내린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행한 정보 업무 파괴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기에 역시

저자가 강력하고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국정원은 긴 수난의 역사를 거쳤다. 다 아는 대로 그 수난의 정점은 문재인 정부시절이었다'

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 것이다.

 

작금 거대한 어느 정당이 국정 운영 뒷다리를 잡아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정권 탄생 초기 

나는 이념과 방식 그리고 당선인이 속한 집단이 과거에 어떠한 행동을 했었는지를 문제 삼지 

말고 당선인이 집권 초기에 그가 갖고 있는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통치 여건을 만들어 주자고 

우리 모두는 이념을 초월해 좋고, 싫음을 떠나 새롭게 출발하는 정권의 성공적인 출발을 성원해야 한다고 하면서 조금씩 양보하고 자제하며 출범하는 새 정부에 협조하자는 꼴값을 떤 적이 있었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연일 남발하는 탄핵 시리즈를 보며 지금은 과거 내가 했던 주장을 

무지 후회하고 있다.

나는 이전 정부의 리더와 그의 일파들이 촛불 운운하며 순박한 민중을 동원해 난리로 정권을 

잡은 것에 맛을 들여 이상한 짓거리하다 정권을 뺏긴 뒤 새로이 선출한 전과자 경력을 가진 

리더와 함께 역대 입법부 수장중 가장 질 낮은 수장과 함께 벌이는 한풀이 횡포와 추잡한 행동을 보면서 크게 든 생각은 무식한 리더보다 그런 리더를 보좌하는 참모들이 더 문제라는 생각을 

크게 하고 있다.

얼마 전 돌아가신 민주화의 산 증인이셨던 장기표 선생도 강한 톤으로 이야기했듯이 그를 보좌

하는 측근들이 문제라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최근 통수권자의 한심한 행위로 인해 발생한 난리로 인해 장날 미친년처럼 나대는 인간 

말종들의 얼굴 아니 면상을 보면 중국에서 한 시대를 쥐고 흔들었던 희대의 간신들인 역아’, 

개방’, ‘수조와 더불어 진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이 되었다.

박 역아, 전 개방, 정 수조, 이 진회, 최 개방, 서 역아, 조 개방, 한 역아......


작금의 우리 정치판에는 간신이 없는 듯 보이지만 국가의 존망을 좌지우지하는 광의의 간신을 뜻하는 의미에서의 간신들은 수면 밑에 가라 앉아 노회한 정치 야바위꾼들과 수준 낮은 박수

무당급 인간들, 입만 열면 독설을 날리며 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는 이상하고도 이상한 박복한 

여인들, 이상한 발언으로 리더의 눈에 들어보려 노력하는 새내기 초년 정치모리배들이다.

이들 모두는 광의의 간신들이다

이들 때문에 머리가 무거운데 더 문제인 것은 그런 수준 이하의 인간들을 대표로 뽑아놓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해당 지역구민들의 한심한 수준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전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지만 하지만 어쩌랴 그들도 우리 유권자들인 것을 다시는 그 유권자들이 반 푼이,

박수무당급 대표를 뽑지 않기를 마음으로 빌 뿐이며 앞으로 진실된 참 일꾼을 대표선수를 뽑아 줄 것을 기대할 수밖에..........

간신들 이야기를 보니 이런 이야기가 생각났다.

중국의 여황제 무측천밑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던 [색원례][주홍]이라는 인물이 

있었다그들은 당시 잔학한 고문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무측천이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권력을 주무르게 되자 그간 자신에게 충복을 다 했다. 하지만 '무측천'은 두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계책의

일환으로 [주홍]이라는 자에게 [색원례]주살’하도록 지시 내린다

따라서 [주홍]은 절친인 [색원례]를 불러 주연을 베풀며 

어떻게 하면 사람을 쉽게 고문할 수 있느냐?’고 묻자. [색원례]는 즉각

'커다란 솥에 물을 붓고 장작불을 때서 서서히 물을 끓여 가며 불게 하면 쉽다

고 알려 주자 일순간 표정을 바꾸어 [색원례]의 죄상을 열거하며 그가 이야기한 방식으로 

고문하자 [색원례]는 즉시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런 [주홍] 역시 오래지 않아 '무측천'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어제의 동지...정의가 출장나가 불의가 자리를 틀고 있음 언젠가 당신들도 색원래가 되고 주홍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말 귀를 못 알아 듣는 인간이 너무 많다.


위와 같은 사실 외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또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를 

더욱 힘들게 하는 집단이 바로 사법기관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하는 내용 중 나의 판단과 일치한다고 

여겨지는 내용을 나의 의견을 약간 추가해 그대로 옮겨보면

 

나는 정치인들이 사법기관을 쥐고 흔들 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작금 벌어지고 있는 내용을 가만 들춰보니 사법부는 그들 스스로 박쥐같은 처신으로 자기 무덤을 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P222)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의 행간을 읽어보면 여의도 쪼다들과 서초동의 머저리들이 대한민국 

무뇌아 합창곡을 연이어 만들어 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나는 이를 반박할 이유를 근거를 절대 찾을 수 없었다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비겁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합의로 판결했다. 이 중차대한 역사적 판결에 소수 의견 하나 없었던 것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얼마나 비겁했는지, 어떻게 법관으로서의 소신과 양심을 저버렸는지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다. 민주주의를 채택한 문명국 역사상 그렇게 쉽게, 불과 몇 달 만에 증거도 없이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 사례는 전무하다. 그렇게 해서 

졸지에 문재인 전부가 들어섰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5년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잔혹한 조선 시대 사화(士禍)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되었다.

갈등과 분열, 증오와 미움만이 가득한 상처 난 사회가 등장했다. 공정과 정의가 사라지고 법치가 유린당했다. 문재인 정부가 남김 정치적 유산이다. 이제는 누구도 미국산 소고기 때문에 '뇌송송 구멍 탁'을 주장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으로 지금은 누구도 '촛불 혁명'을 자랑스럽게 주장하지 

않는다. 광우병 시위와 촛불 시위는 우리 사회의 시민 의식 수준이 얼마나 낮고 선동에 취약한가를 보여 준 전형적 사건들이다막무가내 뗏법이 법치를 짓밟았다.

이전 정부와 민노총, 전교조 등 좌파 세력은 뗏법 분위기에 올라탔고 민주주의 이름으로 가짜 

뉴스를 주동적으로 선동하고 시위를 부추겼다. 종국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그렇게 불행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가 쓰였다.(P216)‘ 또한 국정원 특활비 사건을 심리한 적폐 청산의 정치 

논리가 정한 '답정너'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 중 한 명도 소수 의견을 낸 사람이 없다는 것이 김명수 대법원의 민낯이었으며 이 판결에 임한 법관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싶지도 않으며 모르긴 몰라도 대장동이나 다른 실력자들의 뒤를 봐주는 부업에 참여 하느라 바빠서 그랬을 것

 

이라고 일갈하고 있는데, 작품이 출판된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런 내용을 갖고 가타부타 

시비를 거는 법관들이나 서초동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니 맞는 말인 둣하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무슨 정치평론가도 아니고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진다는 것이다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리더이고 그 뒤에서 

이 나라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쟁의 전쟁터로 만들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촛불로 연계시키려는 질 낮은 브레인들의 분탕질 단막극 조장 세력과 질 낮은 리더를 조정하려는 송시열과 같은 인간 말종들을 싸그리 손을 봐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며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래야 살 맛 나는 세상일 될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절제의 기술(스벤 브링크만/강경이 /다산초당) 라는 작품에 이런 글귀가 

있어 옮겨본다.

철학자 해리 클로는 절제하는 정치인을 이상적으로 보았다. 이런 정치인은 협의를 만들어가며 통합한다파벌을 넘어 동의를 구하고 대립하거나 선동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결을 위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 , 그는 정치에서 절제하는 행위를 사려 깊은 과학 연구에 비유한다.”

이 땅에 이런 작품, 이런 아픔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절제가 부족한 인물이 나와서 권력을 

잡아서도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국가안보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절대적 가치다. 그 가치의 수호는 정보로부터 시작된다.

- 독재는 원칙적으로 나쁜 것이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원칙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바람과 의지만으로 꽃피울 수 없다.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냉엄한 역사의 교훈이다.

- 대표적 운동권이었던 민경우씨는 '운동권에 대한 박해 주장은 10, 20배 이상 부풀려져 있고      당시 군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던 폭력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했다'라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P39)

- 정보활동의 3요소는 사람, 환경, 과학기술 이중 정보 업무의 핵심은 사람이다.

- 정보 분석과 평가 작업은 정교한 사회과학적 지식과 접근 방법이 사용되는 분야이다.

- 정보 업무에서 스파이의 운영, 즉 휴민트가 중요하다. 휴민트 포섭의 수단을 보통 MICE(Money,

   Ideology, Compromise, Ego)라고 한다.

  즉, 돈을 통한 매수, 체제에 대한 환멸이나 이념적 신념의 활용, 개인의 약점을 이용한 강요와 

  타협그리고 개인의 자만심을 활용하는 방법이 스파이 포섭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법을 전면 개정했다. 그러나 이 법 개정 시 정보 업무의 3대 기능의 하나인

  비밀 활동에 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개정된 국정원법에도 이 기능이 누락되었고

  그 결과 국정원 정보활동의 실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개정된 국정원법 제4조는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국외 및 북한에 관한 정보, 방첩, 대테러, 국제

  범죄 조직에 관한 정보'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이 수행하는 대북한 특수활동은

  두 법적 근거가 없는 활동이 된다. 또한 북한과의 막후 접촉 업무도 법적 근거가 없는, 해서는 

  안 되는 업무가 된다. (P 73)

  ---> 정보기관이 동원된 작전은 현재와 같은 우리 국정원법으로는 수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거 문제인 정부가 국정원을 남북 대화를 위한 대북 교섭 업무에 동원하고 있다.

         이는 검찰이 주장하는 국정원법에 나와 있지 않은 활동이다. 검찰의 논리에 따르면 이 

         업무는 불법이다.(P 75)

- 문재인 정권 시절의 권력자들이 왜 국정원을 첫번째 표적으로 조준했을까?

  민주화 세력으로 포장되었지만 그들 운동권 세력의 사상적 표리부동과 비리,

  그리고 무능을 잘 아는 조직이 국정원이기 때문이다.(P 92)

- 한국의 민주주의는 법이 아닌 야수가 된 민중이 지배한다. 한국 민중은 부패했다. 한국은 민중의

  뜻이면 죄 없는 대통령도 감옥에 보낼 수 있다는 체험을 했다.(외신 클럽 회장), P219)

- 핵을 포기한 리비아 카다피의 몰락은 북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로

  각인되어 있다.(P247)

- 다른 인간을 굴복시키는 무한한 권력을 경험한 자는 누구든 자신의 감각(이성)을 제어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독재는 습관이다. 이는 마침내 질병으로 변한다. 권력의 습관은 훌륭한 인간을

  죽일 수 있으며 짐승 수준으로 타락시킬 수 있다. 피와 권력은 도취를 낳는다.(도스토옙스키)

- 적의 의도 보다는 적의 실체적 역량을 주시하라.

- 나라를 지키려면 나라를 위협하려는 자가 그 나라를 두려워하거나 존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절대로 얕보이면 안 된다.

- 가난하면 적을 선택할 수 없다. 우선은 가난에 지배당하고 결국에는 운명에 지배당하게 된다.

- 남한과의 평화 공존은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해야 할 정당성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 정권을 내 

  놓아야 하고 김씨 왕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김정은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때문에 남북

  관계는 늘 교착상태일 수밖에 없다. 비관적 견해지만 한반도의 진실이다.(P260)

- 국정원은 다른 선진국 정보기관과는 달리 국정원이 하는 일을 모두 몹쓸 짓으로 고착화

  시키려는 강력한 비토 세력과 직면해 있다. 이 비토 세력의 주축은 우리 사회 각계에 포진해 

  있는 종북 세력이다.(P266)

- 전교조나 민주노총은 진정한 의미의 좌파 세력이 아니다. 오로지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자신들

  을 추종하는 일반 시민을 자신들의 권력 쟁취를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 세력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초법적, 초국가적 경계를 넘나들며 국제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상식을 외면하는 북한을 추종하는 변형된 사이비 좌파 세력일 뿐이다.(P273)

  ---> 간첩 수사에는 어김없이 민변 소속 변호가가 등장한다. 이들은 마치 북한이 보낸 변호사 

        같은 행동과 역할을 한다.(P277)

- 진정한 발견의 항해는 새로운 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마르셀 프루스트)

-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정치권력이 어떻게 진실과 정의를 약탈할 수 았는지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건으로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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