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정권은 왜 국정원을 무력화 시켰을까 -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의 국정원 스토리
이병호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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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은 지난 2024123일 작품을 완독한 후, 작품에 대한 소회를 인터넷에 올리려는 순간

갑자기 들려온 통수권자에 의해 벌어진 이상한 일로 인해 지연시키다 오늘에야 올리게 되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일어난 통수권자의 헛발질로 인해 이런 저자의 외침이 자칫 그 연장선상에 

있는 가치없는 외침처럼, 어떤 측면으로는 보수들의 광란으로 폄하될 수도 있겠다는 찜찜한 

측면도 있었으나 그래도 저자의 주장과 통치권자의 헛발질이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

했기 때문에 일부 수준 낮은 인간들과 저열한 정치 협잡꾼들에 의해 천편일률적인 평가로 폄하될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있었지만 저자의 문제점 지적과 통수권자의 행위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사고의 다양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글을 올리나 그렇다고 내가 통수권자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행한 헛발질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작품은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최고의 정보를 취급했던 조직의 장이 재임 중 경험한 요상한 일들과 그런 요상 야릇한 일을 촉발시킨 주역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희한하고도 기이한 집단으로부터 

받은 어처구니없는 홀대말도 안 되는 조치에 대해 저자의 연륜과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트럼프 가야금 타는 소리 같은 부분을 부분 발췌해 격정적으로 자신의 입장과 함께 그런 판단을 내린 집단의 비열함을 질타한 작품이다.


저자의 한 맺힌(?) 주장을 담은 이야기나 억울함을 토로하는 작품을 읽을 때 자칫 저자의 감정에

휘둘려 당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소회를 밝히는 경우가 

왕왕 있어 이런류의 작품을 읽을 때 몇 가지 개인적 가이드 라인을 설정해 독서하는 게 평소 나의 독서 방식인데 나름 그런 기준을 잘 세워 독서에 임했다고 생각하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작품을 다 읽은 현재는 그 기준이 약간 허물어진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후회되는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저자가 주장하는 특정 정보기관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저자의 

위치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 정보에 기반해 특정 주장을 할 경우 - 특히, 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

하는 내용일 경우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할 수도, 그렇다고 적극 반박할 능력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경험했고, 현실에서 목격한 수많은 작고 소소한 정보들을 나도 나름대로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또 매일 매일 접하는 각종 매체를 통해 수준이 낮기는 하지만 

지득한 단편적인 정보가 있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분야이거나 완전히 

생경한 부분이 아닌 이상은 저자의 일방적인 주장에 쉽게 부하뇌동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평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안보관, 국가관, 정치활동 등)이 특정 이념에 크게 경도되어 있지 않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기에 저자의 간곡한 주장이라 할지라도 나의 견해로 보았을 때 타당성과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을 경우 쉽게 동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접했다,

 

특히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보낸 대다수의 시간과 업무 내용이 기업 리스크 관리와 관련된 

정보 및 보안분야에 관련된 일을 추진했었기에 큰 틀(?)에서 보면 저자의 업무 내용과 방식이 

내가 회사를 다니며 종사한 그것과 비교했을 때 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큰 맥락으로 보았을 때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조직을 위한 발전적 지향점이 비슷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저자가 작품에서 자신의 특정 분야에 대해 어떤 주장이나 억울함을 주장할 경우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작품을 접하고 있었는데 작품에서 평소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명쾌하고도 매력적인 문구로 인해 내가 위에 언급한 나만의 독서 가이드 라인과 상관없이 저자가 주장하는 모든 내용에 대해 숙독하게 되었고 나는 그의 판단을 전적으로 존중

하기로 했는데 나를 이렇게 만든 문구는 바로

'국정원은 긴 수난의 역사를 거쳤다. 다 아는 대로 그 수난의 정점은 문재인 정부시절이었다'

                                                                                                            (P 89)

는 이야기에 완전 공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구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이유로 몇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데,

첫째는 내가 과거 다녔던 기업은 기업 리스크 대응과 관련된 정보 조사업무를 크게 우선시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하게 우선시하지도 않으면서 보통의 업무와 균형감 있게 관리해 왔던 조직이었는데 해당 업무의 담당 임원이 어느날 외부 영입 인물로 대체되면서 리스크 및 조사 업무 담당자들을 회사 매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도, 가시적인 도움도 주지 못하는 조직이라는 이유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비효율적인 조직을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일류기업에 운영하고 있느냐며 비난하며 관련 인력과 조직을 극도로 폄하하는 것 - 적폐청산 - 을 보면서 그동안 회사 생활하면서 가졌던 조직에 대한 충성과 신뢰를 접게 되으면서 이 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회사를 빨리 퇴직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 속에 퇴직하게 되었다.

그 이후 - 잘난 체 하는 게 아니라 - 퇴직한 회사가 그간 자랑으로 여기던 리스크 관리업무 및 

정보 조사 업무시스템이 기존 인력과 조직을 비아냥대던 임원들에 의해 망가져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외부의 안티세력 및 집단으로부터 연일 난타 당할 때 자신들 잘못이 아닌 전임자들로 인해 벌어진 결과라는 말도 안 되는 책임 회피성 발언을 듣고 또 나를 키워주었던 그 조직과 내 손에 의해 육성되던 후배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탄감과 이루 말 할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퇴직 당시 느꼈던 개인감정과 내가 몸담았던 조직과 업무가 

특정 인간들에 의해 매도되고 그 기능의 일부를 제한 당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 저자가 당했을 현실이 내가 당했던 현실과 너무나 유사하게 느껴진 결과, 저자의 울분이 내 울분으로 변하면서 저자가 강하게 주장한 위 문구로부터 일종의 동병상련의 안위를 얻으며 전적으로 동감하게 된 

것이 첫째 이유이고.


둘째는 기업 리스크 관리 업무는 시대와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그 중요성을 낮게 평가해서는 

절대 안 되는 업무이며 이 리스크 관리의 주요 기본 요소는 정보 수집 및 분석임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조직이 어떤 위기와 난관에 봉착하지 않는 이상 그와 관련되는 어떠한 일도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해 어느 누구도 해당 업무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지도, 의문을 갖지도 

않는다는 특성이 있고 설혹 그런 위급하거나 난관에 봉착하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자금과 인맥을 동원,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아주 저차원적 사고에 물들어 있는 게 일반적인 사실이다.

 

우리는 과거 많은 기업들이 칭기스칸이 어떻게 강력한 국가를 만들게 세계를 호령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또 어떤 통치를 통해 그 넓은 면적을 통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연구를 심층적으로 하면서 대체적으로 두 가지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정복한 면적 : 칭기스칸(777), 알렉산더 대왕(348), 나폴레옹(115), 히틀러(219)

                                                              (출전 : CEO 칭기스칸 / 김종래 / 삼성경제연구소)

  - 기업 경영에서 속도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으로 성공의 첩경이다.

  - ()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라는 아주 그럴듯한 그러면서도 누가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결론을 얻어내 거기에 맞는 정책

이나 제도 등을 너도나도 만들어 이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살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았을 때 위의 두 가지 사항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 있었지만 폼 잡고, 외향적인 멋에 도취되어 사는 인간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추상적이고 그 효과가 당장 외부적으로 보여 줄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외면하거나 고의로 누락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칭기스칸의 무리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위의 두 가지보다 ‘‘정보 마인드의 중요성이 그 

무엇보다 강했고 그들은 이를 철저히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칭기스칸에 대래 연구한 이들은 

전부 이를 간과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칭기스칸, 그들은 드넓은 초원에서 외지인을 만나게 되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 대신

'당신이 온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였다고 한다.

가만 상상해 보라.

* 참고문헌  1. CEO 칭기스칸(2005, 김종래/삼성경제연구소)

                2. 칭키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2005, 잭 웨더포드. 사계절)

 

아무도 없는 바람과 먼지만 이는 광활한 광야나 사막에서 우연히 만난 상인이 되었던 지나는 

객이 되었던 칭기스칸은 그런 이들을 만나게 되면 반가움도 있었겠지만 아직 자신들이 가보지 

않은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다. 미지에 사실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도 언젠가는 그쪽으로 갈 것인데 아니면 가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당신이 온 그 쪽으로부터 얻을 만한 상황이 어떤지, 가치가 있는지, 만약 가려고 한다면 어찌 가야 효과적인지 등을 묻고 또 묻고 있다.

방목하는 가축을 키우기 위해 칭기스칸들은 가축을 사육하는 데 초원이 필요했을 것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초원은 어디에 있으며 그 초워은 양질의 초원인지 또 있다면 어떤 상태인지 없다면 

목초지로 만들만 한 땅과 사람은 있는지 등에 대해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이를 오늘의 우리들 특히 기업과 국가 운영에 적용해 보면

치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기업 및 기업의 구성원들은 물론 국가의 대업을 담당

하거나 추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태가 어떠하고 경쟁 상대가 누구이고, 무엇이며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당면한 과제가 무엇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매일같이 점검과 반성을 통해 좀 더 비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보고자 정보 조사를 통해 이를 

확인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세부적인 실천 방안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특정한 목적이 있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외면하는 등 기본적인 사항까지도 전부 다 묶어버리고 눈까지 가려

버리는 만행에 가까운 짓거리를 해 왔다는 저자의 외침과 내가 당했던 당시의 상황이 오버랩되어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를 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런 중차대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보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 땅에서,

내부적으로 국가발전과 국민을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려는 순수 집단과 어떤 의도를 품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자신들의 색깔과 야욕을 감춘 특정 집단 - 그들도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고 있겠지만 그 집단이 추구하는 우선 순위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 이 순수 집단을 무너뜨리려 애쓰고 있는 과정에 또 이들 뒤에서 우리 조선역사에서 가장 불필요한 정쟁의 단초를 

제공했던 사문난적(斯文亂賊,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남발하며 정적을 작살내던 송시열 일파와도 같은 집단과 공동으로 전개되는 이념의 고지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정쟁은 누구 하나 사라질 때까지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지만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지 못해도 그런 집단이 힘쓰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할 우리의 정보 조직을, 긍정을 배가시키고 부정을 제거시켜야 할 우리의 정보 조직을 무력화시키려 작당하는 집단과 

인물에 대해 울분을 토해내는 저자의 입장을 나는 골백번 동의하는 바이기에 다시 한 번 저자가

강조한 해당 문구를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다.

* 고지전의 의미를 알고 싶으면 

   1. ‘신영복을 존경하세요’(넥스테이지),            2. ‘유성룡인가 정철인가’(너무북스)‘, 

   3.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역사의 아침),       4. ’나는 선비로소이다‘(역사비평사),

   5.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21세기 북스) 등을 읽으면 그 의미를 조금 알 수 있다.

저자는 울분에 가득차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전 정부에서 민생을 상대로 보여주기 식으로 펼쳤던 정책과 그들이 벌인 적폐청산'이라는 칼춤 속에 양산되는 정치범(P172)을 보면서 또 자유를 찾아 탈출한 사람들을 도운 인도주의적 

노력조차 조사 대상이 되게 한 잔인함(P206)과 어렵게 탈출한 동포를 사지로 다시 몰아넣을 때 

북자들이 절규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우리의 공무원이 표류하다 저들의 총에 사살된 사건을 

남의 일처럼 대하는 모습과 그들로부터 그 어떤 사과를 받아내려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간첩 잡자는 법을 만들지도 간첩 잡는 수사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의 저열한 수준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숨겨진 민낯을 더욱 자세히, 리얼하게 알게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의 하나가 바로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둔 

시점에 남대서양 앞바다에서 발생한 우리 국민 22명이 수장된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 사건이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시점이 바로 대통령 선거 직전이라 유가족 표를 의식해 수천 미터 바다 밑에 수장된 선원의 시신을 찾아와 유가족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겠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언론도 맞장구를 치면서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교훈삼아 가족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사고 원인은

물론 실종자까지도 찾아드리겠다며 난리를 치다 막상 당선 후 모르쇠로 일관하며 덮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패산 도룡룡이 죽어간다고 스님이 단식 투쟁에 돌입하자 스님도 살리고 도룡룡

도 살려야 한다며 매스콤 앞에서 주접떨던 인물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에서, 침몰한 선원 가족을

도룡룡만큼도 취급하지 않았던 그와 그가 속한 집단의 정체가 어떠한지를, 노동자의 망치질과 

판사의 망치질의 가치가 동일해야 한다며 환호하며 우리의 사법기관 판결봉 무게도 동일 수준

으로 끌어내린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행한 정보 업무 파괴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기에 역시

저자가 강력하고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국정원은 긴 수난의 역사를 거쳤다. 다 아는 대로 그 수난의 정점은 문재인 정부시절이었다'

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 것이다.

 

작금 거대한 어느 정당이 국정 운영 뒷다리를 잡아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정권 탄생 초기 

나는 이념과 방식 그리고 당선인이 속한 집단이 과거에 어떠한 행동을 했었는지를 문제 삼지 

말고 당선인이 집권 초기에 그가 갖고 있는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통치 여건을 만들어 주자고 

우리 모두는 이념을 초월해 좋고, 싫음을 떠나 새롭게 출발하는 정권의 성공적인 출발을 성원해야 한다고 하면서 조금씩 양보하고 자제하며 출범하는 새 정부에 협조하자는 꼴값을 떤 적이 있었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연일 남발하는 탄핵 시리즈를 보며 지금은 과거 내가 했던 주장을 

무지 후회하고 있다.

나는 이전 정부의 리더와 그의 일파들이 촛불 운운하며 순박한 민중을 동원해 난리로 정권을 

잡은 것에 맛을 들여 이상한 짓거리하다 정권을 뺏긴 뒤 새로이 선출한 전과자 경력을 가진 

리더와 함께 역대 입법부 수장중 가장 질 낮은 수장과 함께 벌이는 한풀이 횡포와 추잡한 행동을 보면서 크게 든 생각은 무식한 리더보다 그런 리더를 보좌하는 참모들이 더 문제라는 생각을 

크게 하고 있다.

얼마 전 돌아가신 민주화의 산 증인이셨던 장기표 선생도 강한 톤으로 이야기했듯이 그를 보좌

하는 측근들이 문제라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는 최근 통수권자의 한심한 행위로 인해 발생한 난리로 인해 장날 미친년처럼 나대는 인간 

말종들의 얼굴 아니 면상을 보면 중국에서 한 시대를 쥐고 흔들었던 희대의 간신들인 역아’, 

개방’, ‘수조와 더불어 진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이 되었다.

박 역아, 전 개방, 정 수조, 이 진회, 최 개방, 서 역아, 조 개방, 한 역아......


작금의 우리 정치판에는 간신이 없는 듯 보이지만 국가의 존망을 좌지우지하는 광의의 간신을 뜻하는 의미에서의 간신들은 수면 밑에 가라 앉아 노회한 정치 야바위꾼들과 수준 낮은 박수

무당급 인간들, 입만 열면 독설을 날리며 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는 이상하고도 이상한 박복한 

여인들, 이상한 발언으로 리더의 눈에 들어보려 노력하는 새내기 초년 정치모리배들이다.

이들 모두는 광의의 간신들이다

이들 때문에 머리가 무거운데 더 문제인 것은 그런 수준 이하의 인간들을 대표로 뽑아놓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해당 지역구민들의 한심한 수준으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전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지만 하지만 어쩌랴 그들도 우리 유권자들인 것을 다시는 그 유권자들이 반 푼이,

박수무당급 대표를 뽑지 않기를 마음으로 빌 뿐이며 앞으로 진실된 참 일꾼을 대표선수를 뽑아 줄 것을 기대할 수밖에..........

간신들 이야기를 보니 이런 이야기가 생각났다.

중국의 여황제 무측천밑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던 [색원례][주홍]이라는 인물이 

있었다그들은 당시 잔학한 고문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무측천이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권력을 주무르게 되자 그간 자신에게 충복을 다 했다. 하지만 '무측천'은 두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계책의

일환으로 [주홍]이라는 자에게 [색원례]주살’하도록 지시 내린다

따라서 [주홍]은 절친인 [색원례]를 불러 주연을 베풀며 

어떻게 하면 사람을 쉽게 고문할 수 있느냐?’고 묻자. [색원례]는 즉각

'커다란 솥에 물을 붓고 장작불을 때서 서서히 물을 끓여 가며 불게 하면 쉽다

고 알려 주자 일순간 표정을 바꾸어 [색원례]의 죄상을 열거하며 그가 이야기한 방식으로 

고문하자 [색원례]는 즉시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런 [주홍] 역시 오래지 않아 '무측천'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죽었다고 한다.

어제의 동지...정의가 출장나가 불의가 자리를 틀고 있음 언젠가 당신들도 색원래가 되고 주홍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말 귀를 못 알아 듣는 인간이 너무 많다.


위와 같은 사실 외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또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를 

더욱 힘들게 하는 집단이 바로 사법기관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하는 내용 중 나의 판단과 일치한다고 

여겨지는 내용을 나의 의견을 약간 추가해 그대로 옮겨보면

 

나는 정치인들이 사법기관을 쥐고 흔들 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작금 벌어지고 있는 내용을 가만 들춰보니 사법부는 그들 스스로 박쥐같은 처신으로 자기 무덤을 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P222)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의 행간을 읽어보면 여의도 쪼다들과 서초동의 머저리들이 대한민국 

무뇌아 합창곡을 연이어 만들어 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나는 이를 반박할 이유를 근거를 절대 찾을 수 없었다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비겁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합의로 판결했다. 이 중차대한 역사적 판결에 소수 의견 하나 없었던 것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얼마나 비겁했는지, 어떻게 법관으로서의 소신과 양심을 저버렸는지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다. 민주주의를 채택한 문명국 역사상 그렇게 쉽게, 불과 몇 달 만에 증거도 없이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 사례는 전무하다. 그렇게 해서 

졸지에 문재인 전부가 들어섰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잃어버린 5년이 대한민국을 덮쳤다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잔혹한 조선 시대 사화(士禍)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현되었다.

갈등과 분열, 증오와 미움만이 가득한 상처 난 사회가 등장했다. 공정과 정의가 사라지고 법치가 유린당했다. 문재인 정부가 남김 정치적 유산이다. 이제는 누구도 미국산 소고기 때문에 '뇌송송 구멍 탁'을 주장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으로 지금은 누구도 '촛불 혁명'을 자랑스럽게 주장하지 

않는다. 광우병 시위와 촛불 시위는 우리 사회의 시민 의식 수준이 얼마나 낮고 선동에 취약한가를 보여 준 전형적 사건들이다막무가내 뗏법이 법치를 짓밟았다.

이전 정부와 민노총, 전교조 등 좌파 세력은 뗏법 분위기에 올라탔고 민주주의 이름으로 가짜 

뉴스를 주동적으로 선동하고 시위를 부추겼다. 종국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그렇게 불행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가 쓰였다.(P216)‘ 또한 국정원 특활비 사건을 심리한 적폐 청산의 정치 

논리가 정한 '답정너'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 중 한 명도 소수 의견을 낸 사람이 없다는 것이 김명수 대법원의 민낯이었으며 이 판결에 임한 법관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싶지도 않으며 모르긴 몰라도 대장동이나 다른 실력자들의 뒤를 봐주는 부업에 참여 하느라 바빠서 그랬을 것

 

이라고 일갈하고 있는데, 작품이 출판된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런 내용을 갖고 가타부타 

시비를 거는 법관들이나 서초동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니 맞는 말인 둣하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다.

 

내가 무슨 정치평론가도 아니고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진다는 것이다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리더이고 그 뒤에서 

이 나라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쟁의 전쟁터로 만들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촛불로 연계시키려는 질 낮은 브레인들의 분탕질 단막극 조장 세력과 질 낮은 리더를 조정하려는 송시열과 같은 인간 말종들을 싸그리 손을 봐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며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래야 살 맛 나는 세상일 될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절제의 기술(스벤 브링크만/강경이 /다산초당) 라는 작품에 이런 글귀가 

있어 옮겨본다.

철학자 해리 클로는 절제하는 정치인을 이상적으로 보았다. 이런 정치인은 협의를 만들어가며 통합한다파벌을 넘어 동의를 구하고 대립하거나 선동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결을 위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 , 그는 정치에서 절제하는 행위를 사려 깊은 과학 연구에 비유한다.”

이 땅에 이런 작품, 이런 아픔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절제가 부족한 인물이 나와서 권력을 

잡아서도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국가안보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절대적 가치다. 그 가치의 수호는 정보로부터 시작된다.

- 독재는 원칙적으로 나쁜 것이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원칙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바람과 의지만으로 꽃피울 수 없다.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냉엄한 역사의 교훈이다.

- 대표적 운동권이었던 민경우씨는 '운동권에 대한 박해 주장은 10, 20배 이상 부풀려져 있고      당시 군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던 폭력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약했다'라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P39)

- 정보활동의 3요소는 사람, 환경, 과학기술 이중 정보 업무의 핵심은 사람이다.

- 정보 분석과 평가 작업은 정교한 사회과학적 지식과 접근 방법이 사용되는 분야이다.

- 정보 업무에서 스파이의 운영, 즉 휴민트가 중요하다. 휴민트 포섭의 수단을 보통 MICE(Money,

   Ideology, Compromise, Ego)라고 한다.

  즉, 돈을 통한 매수, 체제에 대한 환멸이나 이념적 신념의 활용, 개인의 약점을 이용한 강요와 

  타협그리고 개인의 자만심을 활용하는 방법이 스파이 포섭에 사용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법을 전면 개정했다. 그러나 이 법 개정 시 정보 업무의 3대 기능의 하나인

  비밀 활동에 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개정된 국정원법에도 이 기능이 누락되었고

  그 결과 국정원 정보활동의 실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개정된 국정원법 제4조는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국외 및 북한에 관한 정보, 방첩, 대테러, 국제

  범죄 조직에 관한 정보'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이 수행하는 대북한 특수활동은

  두 법적 근거가 없는 활동이 된다. 또한 북한과의 막후 접촉 업무도 법적 근거가 없는, 해서는 

  안 되는 업무가 된다. (P 73)

  ---> 정보기관이 동원된 작전은 현재와 같은 우리 국정원법으로는 수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거 문제인 정부가 국정원을 남북 대화를 위한 대북 교섭 업무에 동원하고 있다.

         이는 검찰이 주장하는 국정원법에 나와 있지 않은 활동이다. 검찰의 논리에 따르면 이 

         업무는 불법이다.(P 75)

- 문재인 정권 시절의 권력자들이 왜 국정원을 첫번째 표적으로 조준했을까?

  민주화 세력으로 포장되었지만 그들 운동권 세력의 사상적 표리부동과 비리,

  그리고 무능을 잘 아는 조직이 국정원이기 때문이다.(P 92)

- 한국의 민주주의는 법이 아닌 야수가 된 민중이 지배한다. 한국 민중은 부패했다. 한국은 민중의

  뜻이면 죄 없는 대통령도 감옥에 보낼 수 있다는 체험을 했다.(외신 클럽 회장), P219)

- 핵을 포기한 리비아 카다피의 몰락은 북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로

  각인되어 있다.(P247)

- 다른 인간을 굴복시키는 무한한 권력을 경험한 자는 누구든 자신의 감각(이성)을 제어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독재는 습관이다. 이는 마침내 질병으로 변한다. 권력의 습관은 훌륭한 인간을

  죽일 수 있으며 짐승 수준으로 타락시킬 수 있다. 피와 권력은 도취를 낳는다.(도스토옙스키)

- 적의 의도 보다는 적의 실체적 역량을 주시하라.

- 나라를 지키려면 나라를 위협하려는 자가 그 나라를 두려워하거나 존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절대로 얕보이면 안 된다.

- 가난하면 적을 선택할 수 없다. 우선은 가난에 지배당하고 결국에는 운명에 지배당하게 된다.

- 남한과의 평화 공존은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해야 할 정당성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 정권을 내 

  놓아야 하고 김씨 왕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김정은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 때문에 남북

  관계는 늘 교착상태일 수밖에 없다. 비관적 견해지만 한반도의 진실이다.(P260)

- 국정원은 다른 선진국 정보기관과는 달리 국정원이 하는 일을 모두 몹쓸 짓으로 고착화

  시키려는 강력한 비토 세력과 직면해 있다. 이 비토 세력의 주축은 우리 사회 각계에 포진해 

  있는 종북 세력이다.(P266)

- 전교조나 민주노총은 진정한 의미의 좌파 세력이 아니다. 오로지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자신들

  을 추종하는 일반 시민을 자신들의 권력 쟁취를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 세력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초법적, 초국가적 경계를 넘나들며 국제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상식을 외면하는 북한을 추종하는 변형된 사이비 좌파 세력일 뿐이다.(P273)

  ---> 간첩 수사에는 어김없이 민변 소속 변호가가 등장한다. 이들은 마치 북한이 보낸 변호사 

        같은 행동과 역할을 한다.(P277)

- 진정한 발견의 항해는 새로운 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마르셀 프루스트)

-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정치권력이 어떻게 진실과 정의를 약탈할 수 았는지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사건으로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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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1 - 역사평설 병자호란 1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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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9


나라 전체가 진실 규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목소리 큰 놈이 주인 행세하고, 분별없이 

엄한 짓한 주인은 세인들의 눈총을 받고 엄한 곳으로 붙들려 가 제 목소리도 못 내는 이런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이와 유사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우리 선조들은 어떤 혜안으로 어지러운 

국가적 난국 상황을 극복했고, 헤쳐나갔는지를 역사로부터 얻어서 개인 차원에서 주변에 널리 

알리기 위해 홍경래의 난이라는 작품 이후 또 다른 작품에서 교훈을 얻고자 - 내가 국가와 민족

을 그 누구보다 생각하는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건전한 상식을 지닌 그냥 평범한 한 

국민으로서 - 고심하던 중 우리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런 능욕을 당했고 가장 큰 혼란의 시기

였다고 판단된 병자호란이라는 사건을 선정해 작품으로 이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평소 알고 

있었던 내용보다 작품으로 마주한 우리 조상들의 피해 정도와 후유증이 더욱 심각할 것 같아 

읽는 과정내내 속 뒤집어지기가 수차례였다.

작품을 접하면 느낀 사항을 독후감으로 정리하려다 보니 역사관이 흐릿하거나 과거에 대한 

무지의 수준이 과도한 인간들이 나의 독후감을 보았을 때 요즘 사태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비루한 인간으로 비춰지거나 자칫 누구로부터 사주 받아 글을 올리는 으로 비춰져 폄하할 

것 같아 고민하다. 쉽고 평이한 수준에서 머리 속에 맴도는 내용과 나만의 주장을 갖고 정리하려

노력했다.

 

작품으로 들어가,

다른 이들은 본 작품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는 최근 우리의 

통수권자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과정과 인조반정을 합리화하는 모반 세력들의 처세술, 청나라와

맺는 굴욕적인 외교상황 그리고 이를 비준하는 과정에서 논의하는 신료들의 말과 행동이 최근 

우리의 통수권자에 의해 초래된 질 낮은 통치 행위를 촉발시킨 행위와 상당한 유사성을 띄고 

있었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런 질 낮은 조치를 취하게 만든 정치 환경을 보면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역사는 누가 뭐래도 반드시 반복 된다는 것과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 그리고 깨진 

유리창 효과,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들었음직한 여러 귀한 문구들

이 지닌 의미성이 한꺼번에 밀려와 큰 소름이 돋았던 시간이었다.

특히, 작금의 사태와 연관지어 보았을 때 위에 언급된 하인리히 법칙깨진 유리창 법칙에 

부합되는 여러 사건이 시종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나타난 현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대표적인 그 이유로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반정공신들과 그 자식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을 

바라보면 '촛불정신' 운운하며 집권했고 아직도 그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 뒷다리 잡기가

특징인 어느 집단의 패악질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으며

자신의 리더만을 위해 만민 앞에 평등해야 할 법을 악용하고 남용하는 집단을 통해 패거리로 

왕과 백성을 농단했던 송시열의 잔당들이 살아 돌아온 느낌이 들었으며,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고 비토권을 남발하는 못된 인간 군상들을 통해 또 이유도

명분도 빈약한 상태에서 정권 쟁취에 몰두하는 수준 낮은 무뇌아 집단도 보았으며,

대단한 권력이라도 잡은 양 입만 열면 국민의 대표라고 큰소리 치는 대표같지도 않은 인간과 

연륜과 경험도 일천한 인간이 옛날같았으면 마주 보지도 못할 선배에게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며

조선에서 포로로 청나라 잡혀간 뒤 악질로 변한 역관들과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에 들어와 패악질

을 일삼던 중국의 사신들과 보았다.


특히, 전임자의 알박기 인사로 후임자의 인사권을 제한하며 악날하게 버틴 후 퇴임과 동시에 터진

아가리로 지랄하는 수준 낮은 인간과 자신이 무슨 큰 벼슬을 하고 있는 인간인양 아무에게나 

막말과 하대하는 저질의 인간과 민의의 전당해서 국정을 운영해야 할 인물들 줄줄이 탄핵시키고

돌아서서 자랑스럽게 웃음짓는 모습에서 남송의 재상 악비를 제거하는 데 앞장 선 희대의 

간신이자 매국노의 상징인 진회(1090~1155)라는 인물의 환생도 마주했고, 그런 인물이 틈만 

나면 우리를 깔보고 흔들어대는 국가에 대해 쎄쎄만 하라고 외치는 모습과 그런 리더를 믿고 

따르자는 무지 몽매한 저능무뇌아 집단을 보면서 저들을 진정 내가, 우리가 뽑은 국민의 

대표인가하는 의구심과 자괴감에 밀려와 미치는 줄 알았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을 갖고 난리친다고 해서 그런 인간들과 그런 인간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집단을 질책하자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그런 그의 상대가 똑똑해서 또 그들의 행위가 올바르기

때문에 그의 적수가 되는 집단을 칭찬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집권 세력의 반대의 편에 선 집단이 지금과 같이 국가와 국민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작은 

발언 하나, 행위 하나하나가 정권 쟁취라는 그들의 대의명분에 가려져 지속적으로 자살 행위적 

발언으로 연결될 경우 언젠가 그보다 몇 배 아니 몇 백 배 크나큰 부담과 국가적 변란으로 우리

에게 나타날 것이 우려되기에 , 소소한 현재의 작은 잘못이 하인리히 법칙깨진 유리창 

법치으로 연결되는 것이 우려스러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일념 하에 지적하는 것이다.


정치권이 이런 저런 이유로 정신 차리지 못하고 이전투구식 헤게모니 싸움으로 난리를 칠 때 

과거 우리의 리더였던 사람이라면 큰 어른으로서 양 쪽을 자제시키고 합심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그 리더였던 양반은 아직도 과거의 미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모문룡의 후손들에게 받았던 홀대는 잊은 채, 고무다리 긁는 애먼 소리만 남발하고 있고

정치권의 수장이라는 어느 인간은 자기의 분수와 그릇도 모른 채 루돌프 사슴도 아니고 방울소리

요란하게 딸랑거리며 중국집만 기웃거리고 내가 왕이 될 상이 아닌가하고 헛심을 품고 다니며

비루한 면상으로 만면에 웃음을 띠면 자신이 높아지는 줄 알고 폼잡고 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그 사람 집에는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도 없는 모양이다. 그런 인간을 보면 거울을 사 주고 싶은 

심정이다. 집에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이다. 

 - ‘군주의 거울’(21세기 북스, 김상근 )이라는 작품을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하고 싶다 -


거듭 이야기하지만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깨진 유리창 법칙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그 단초를

작금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의 일부 몰지각한 위정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단초는 우리가 찾아간 나라에서 받은 홀대에 관한 사항으로 나는 굳이 그것을 

혼합의 문제라 칭하지는 않겠지만 하인리히 법칙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그와 같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강조하고 싶다.

외국 사절을 불러놓고 혼 밥을 하게 하는 문제는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받은 치욕적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 국민과 국가에 대한 모독 행위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어느날 우리의 새로운 후임 지도자가 모문룡홍타이지후손들에게 동일한 대접을 

받아 항의해도

너희 전임자에게 대접했던 방식과 유사하게 너희 신임 리더를 동일하게 대접했는데 옛날 

 전임자는 조용히 밥만 잘 먹고 쎄쎄하고 갔는데 후임자는 전임자와 달리 왜 지랄하냐?“

며 타박하면 무어라 대응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가 우리의 자위권을 위해 도입한 방어 무기에 대한 굴욕적인 정책을 전임자가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우리의 주적에게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지도 모를 USB도 줬는데 저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아마도 더한 것을 갖다 주었을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후임자가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저들이 전임자는 인상만 써도 잘만 갖고 오던데 

너희 후임자는 왜 안 갖고 오냐고 몽니를 부리면 어찌할 것인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결국 전임자의 수준 낮은 대응 자세로 인한 악순환은 관례가 될 것인데 그래도 혼밥의 문제가 

향후 우리의 위상을 결정지을 요소가 아니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혼밥 한 그 당사자는 오늘도 자신은 떳떳하며 해당 출장 기간 동안 자신은 그들 서민의

실생활을 잘 파악하고 왔노라 이야기하고 앉아 있으니....국가를 대표해 회담하러 가라고 했지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다 나오는 그들의 실생활을 파악하러 거기까지 가서 할 일인지가 자못 

궁금하며 우리의 말단 공무원도 그런 식으로는 답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리더라는 양반은 원래 모지리라 그렇다 치더라고 그를 보좌한 참모라는 작자들이 더 문제이며

진정으로 나라와 리더를 위하는 참모라면 그렇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최근 러 - 우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가 만나 회의 도중 면박 당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졌을까?

절대 아니다.

트럼프가 당선되기 전부터 해 왔던 일련의 발언들을 생각해 보라.

작은 게 모여 그런 큰 모습을 보인 것이다

청나라에 의해 이 땅이 침탈 당할 때 수 십 만의 우리 선조들은 북으로 북으로 끌려갔고 종국에는

포로로 끌려간 선조들이 상품으로 취급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진정으로 모르고 있다는 것인가?

그런 그들에게 쎄쎄를 외치며 굴종하자는 어느 리더의 선조 중 한 사람이 그 호란 당시 북으로 끌려간 사람 중 자신의 조상이 한 명이라도 끼여 있었다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었을까?

세월이 흘러 지금은 몰라도 자잘한 증세가 모여 어느날 크게 밀려 올 때 당신의 후손도, 나의 

후손도 안전할 수 없으며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의 이런 발언은 그런 상대국과 철천지 원수로 지내자는 게 아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리더라면 발언을 하더라도 책임 있는 자세로, 행동을 하더라도 국민을 대신한다는 당당한 자세로 해 달라는 것이지 비열한 웃음을 띠며 쎄쎄하며 헤롱거리지 말라는 이야기다.

제발 우리 민족이 당한 아픈 역사책 좀 읽고 다시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갖추어 수준 낮은 망발과 국민을 낮추어 보이게 하는 발언은 지양하라는 의미다.

법인 카드로 호의호식했을 터인데 그런 구분도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성격은 얼굴에 나타나고, 본심은 행동에 나타나며, 인간성은 약자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남을 우리 국민 모두는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거듭 이야기합니다.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그리고 어정쩡한 색이든 정신들 차립시다.



작품을 분석해 보니


첫째, 지금도 우리 역사에서 하인리히 법칙의 단초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옛날의 임진왜란의 일본병자호란의 중국에 의해 발생한 역사적 침탈 행위, 근세사에서는 

일제에 의한 한반도 강점과 중공에 의한 한국 전쟁 참전등의 사건은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

으로 연결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과 중국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자잘한 사건, 사고 역시 또 다른 역사적 하인리히 

법칙으로 연결되어져 몇 년 전 일본에 의해 벌어진 반도체 원재료 수출 금지사건과 중국이 

사사건건 몽니를 부리는 싸드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특히 후자로 발생된 일본과 중국이 일으킨 문제는 우리의 수준 낮은 리더가 입만 열면 죽창가

운운하며 과학적으로 규명된 오염수 문제를 통해 저열한 반일 감정을 부채질하고 우리의 안보를 위해 도입한 싸드에 대한 실행하지도 못할 삼불일한약속을 남발해 중국의 수모를 자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쎄쎄만 하면 모든 게 해소된다는 망발로 인해 또 다른 하인리히 법칙을 초래했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특히 아쉬운 것은 어느 분이 짱개주의에 대해 극찬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자 그에 대한 맞장구를 

치면서 극찬하고 있는데 과거 청나라가 호란 당시 우리 선조 수 십 만을 끌고 가 상품으로 취급

했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그러면 그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언제적 이야기를 하느냐며 과거에 얽매여 미래지향적이지 못한 수준이하의 사람이라고 질타할 것이다.

과거를 들먹여 그들과 싸우자는 게 아니다. 과거를 정확히 알고, 미래를 잘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동일한 실수를 발생시키지 않으려면 즉,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을 재발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며 왜 그렇게 중국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죽창가를 운운하며 오염수 방류에 대해 난리를  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전 정부를 삶은 소대가리로 평가한 북에서도 일본은 100년의 적, 중국의 천년의 적이라 표현

하지 않았던가. 그런 적 앞에서 쎄쎄하라?

심청이 아버지 시력검사 하는 소리하고 있는 우리의 질 낮은 차기 리더라고 외치는 어느 작자의

미소가 참으로 가소로울 뿐이며 그런 리더에 아부하는 수준 낮은 무뇌아 집단들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하인리인 법칙을 끊어보고자 지금의 통수권자는 당신이 그렇게 밖에 할 수

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잘못된 수단의 선택으로 인해 국민을 아주 피로하게

만들고 있고 그의 편에 서서 무엇을 이야기하려 해도 모든 게 부정 당하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같은 이야기의 무한 반복이지만 좀 더 신중했어야 하며 좀 더 체계적이어야 했었다.

결국 리더는 하늘이 내지만 그런 리더를 믿고 따를 수 있는 목표가 정당하고 합리적이어야 했다.


둘째는 리더의 자질도 중요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리더를 보좌하는 참모다운 참모의 부재(不在).

1) 광해 정권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요소 중 하나가 훈련대장 이흥립의 사위였던 국왕의 경호실장

   격인 훈련도감 대장인 장신의 변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 전란 중에 가장 시급했던 것은 민생 문제였으나 조정 신료들은 후금과의 화의가 불가피

   했으나 오랑캐와 화약을 맺을 수 없다는 명분 때문에 고민한다

   ‘윤황은 후금과의 화의에 반대하면서 

   ‘오늘의 화친은 이름만 화친일 뿐 실제로는 항복입니다. 전하는 요행을 바라는 간신들에 

    넘어가 더러운 오랑캐 사자를 접견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십니다라는

   직격탄을 날리나 오히려 

   ‘유식한 그대들은 오랑캐에게 항복한 임금을 섬기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라고 맞받으며 윤황을 잡아다 국문하라고 지시했다.

    ** 요즈음 우리 정치현실과 비슷하다고 여져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3) 당시의 상황을 보면,

  신하들은 무관은 춥지도 않은데 떨고 문관은 천장만 바라보고 슬퍼하면서 임금에게만 모든 

  허물을 전가한다고 통탄하고 있다홍타이지는 조선의 신료들을 상대로 책은 읽었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해 경륜을 발휘할 줄은 모르면서 한갓 허언만 일삼는 소인배들이라면서 왕은 지금 

  서생들의 이야기만 듣고 있다고 힐난하고 있다.

4) 인조는 사태의 책임을 앞뒤를 따져 보지도 않고 오버했던 것이 청의 침략을 부르고, 궁극에는

   자신과 백성을 끔찍한 지경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했지만 전란 중에 문제를 일으킨 반정공신

   과 그의 자손들 김자점, 김경징, 장신 등에 대해 엄격한 군율 적용을 주저하고 있다.

5) 진정한 참모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신규 세력이 등장하면서 구세력을 감싸지 않고 처단을 

  택해 발전의 동력을 스스로 제거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조반정 직후 이이첨과 정인홍을 비롯한 30여 명의 관인들을 처형했다. 쉽게 이야기해 적폐

  청산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던가...‘적폐청산이라고....

  그러다 보니 인조반정이 성공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새 정권이 구정권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새 정권의 행로를 주시하던 구정권의 잔당들 그리고 새 정권에 기대를 걸었던

  사민들 가운데 불만을 품은 자들이 역모와 고변을 자주 언급하면서 인조 정권은 공신들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기득권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정신이 극히 희박했다.

1) 반정 공신들인 이귀, 김류, 이서, 신경진의 행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한된 자료에 국한되어 전체를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기득권 세력이 된 반정공신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보위와 영구 집권을 위해 반이성적 행위의 주도자들이었다.

   특히 군사부문에 있어 반혁명 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기찰(譏察, 향동을 넌지시 살핌)’

   강화해 국가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더욱 강화했는데, 이괄의 난 이후에는 자신들을 보호하는

   사병의 숫자를 대폭 늘리는데 혈안이 되었었지만 정작 인조를 경호하는 인력은 극히 제한

   시켰으며 반정공신 신경진의 경우는 인조가 군사적 지시를 내렸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

   ---> 호란 당시 후금 군에 대항해 싸우다 전사한 남이홍인조 정권 실세들이 벌이는 

       '기찰' 때문에 군사 훈련도 변변히 할 수 없었다는 유언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2) 반정 공신들은 광해군 정권을 뒤엎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괄에 대한 공훈을 낮춘 결과

   ‘으로 연결되어 인조가 파천하는데, 인조를 지원하는 인력이 추종해 이를 따르는 무리가 

   거의 없었고 인조가 궁궐을 비우자 약탈이 심했다고 하며 심지어 반정 공신들의 집이 백성들

   에게 약탈당했을 정도로 민심이 반정 세력으로부터 떠나 있었다는 것은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집단이 무슨 짓을 했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으며 간단히 이야기해 혁명

  으로 권력을 잡은 공신들이 이전 정권의 문제점이라 지적했던 폐정을 바로 잡기는커녕 광해군

  대에 자행되었던 비리를 반복했음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3) 부제학 정온은 인조에게 진정으로 오랑캐와 싸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반정

   공신들이 거느리고 있던 정예병들을 정규군에 배속시킬 것을 간청했으나 인조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고 반정공신인 김류는 남한산성에서 청의 기습에 당한 것을 자신의 지휘부재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을 잘 따르지 않았던 부하들의 책임으로 돌렸으며, 왕실이 강화화도로 

   파천하자 강화도 방어 책임자로 자신의 아들(김경징)을 추천하지만 그는 도성을 출발할 때부터

   철저히 멸공봉사(滅公奉私)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인조의 기대를 저버렸다 특히 그가 강화도

   에서 보인 패악질은 극에 달했다고 한다. .

   ---> 반정공신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약을 받을 정도였다면 어느 정도의 

       패악질이 강화도에서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며 반정공신의 아들의 비리가 이정도였다면

        반정공신과 그 가속들에 의한 비리는 입에 담지 모 할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4)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었던 백년 전쟁 당시 잉글랜드군에 저항한 책임을 물어 도시를 대표

   하는 칼레의 6과도 같은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 같은 위정자들이 있었던 반면,

   인조를 비롯한 높은 관료들은 자칫 자신들이나 자신의 자식이 전쟁의 결과로 청의 인질로 끌려

   갈 것을 우려해 고위 관료직을 사직하거나 임명되지 않으려 높은 벼슬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 해당 부분의 부실함이 호란을 초래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하고 싶고,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 두 개가 아니나

   나보다 더 똑똑한 분들이 많아 조용히 넘어가고자 한다

   하여간 나쁜 인간들이 너무도 많이 활개치는 세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넷째 권력쟁취와 리더의 안위 보전에 몰입되어 국가 운영에 대한 전략과 

     전술이 전혀 없었다.

1) 국내적으로는 광해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수립된 인조정권은 권력 쟁취 후 국가 운영에 대한 

   대안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직 광해 정권을 무너뜨리며 제시한 대의명분(폐모살제, 재조

   지은, 청과의 관계무리한 토목공사로 인한 백성 원망) 중 어느 하나 합리적인 운영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보여 주었고, 국가적 변란 중 보여 준 지도층의 수준 낮은 행동

   으로 인해 그들도 이전 정권과 다르지 않았음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다.

2) 국외적으로는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외교 전략에 대한 분석 능력도, 대처 능력도 부실을 

   초래한 결과심각히 전개된 대륙의 거대 세력 싸움에서 오판함으로써 나라와 백성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데,

   대표적 사례가 광해에 의해 치루어진 사르후 전투’(심하전투)‘ 사후 대처부실로 인해 집권층과

   백성들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3) 병자호란을 통해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역사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청나라에 인질로 나가있던

    기간 동안 신문물을 접한 소현세자를 귀국 즉시 독살(?)시켰다는 점이다.

   이로써 조선은 국가 발전은 고사하고 외부 세계와의 철저한 단절모드로 들어간 결과 당시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에 대한 난맥상으로 중국과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만 당했다는 점이다.

   - 당시 조선은 새로운 칸으로 누르하치’ 8남 홍타이지(1592~1643)에 대해 주시하면서 적정을

     탐지할 사신 등을 통해 후금의 내부 사정을 파악했지만 내부 권력 다툼이 심화되면서 대처 

     능력을 상실했고

   - 임진왜란 이후 철저히 관리해 온 일본에 대해서 정보(조선 재침략, 청과의 연합을 통한 조선

     침공)를 파악하면서 견제하려 했으나 가장 시급했던 누르하치 위협에 대처하려면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다고 판단해 일본의 몽니에 가까운 요구를 대폭 수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은 이를 적극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병자호란을 바라보는 개인적인 종합적인 판단

해당 독후감을 작성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했으나 나로서는 이 내용을 정리하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내가 어떤 형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던 시간이 지나 작금의 이 글을 본다면 동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서쪽에서 난리를 칠 것이고, 서쪽으로 쓰면 동쪽에서 지랄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땅에 역사의 하인리히 법칙과도 같은 고난사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동이고 서이고간에 남이고 북이고 간에 합심할 것은 합심하고 가슴에 묻어둘 것은

묻어두면서 ,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겠다는 자세로 화합하며 앞으로 전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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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
김선주 지음, 김범 옮김 / 푸른역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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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지역적 특수성과 차별로 인해 일어난 농민들에 의해 일어난 홍경래의 난에 관한 작품으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저자의 통찰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여느 역사 작품과는 달리,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학자적 시각으로 시대 환경적 요소를 대입하며 해당 사건을 분석하고 있어

나와 같은 시대적, 학문적 깊이가 짧거나 문외한에 가까운 이들이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일시에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한편으로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섣불리 옳고, 그르다는 경솔한 의견 

표현은 나의 학문적, 역사적 관련 지식에 대한 깊이가 깊지를 않아 여타의 방법으로 알게 된 해당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이 있다 할지라도 부분적인 내용이라 전체에서 차지하는 

진실의 비중이 낮아 저자의 의견에 쉽게 동의를 할 경우 귀가 얇은 것아닐까 하는 우려로 인해

알면서도 모르는 것으로 하고 일방적으로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던 고통이 수반된 시간이었기에

작품을 읽는 내내 큰 부담이 되었던 시간이었지만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기쁨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는 내내 큰 위안이 된 것은


개그 콘서트적 여의도 희극인들이 벌이는 연기와 그런 희극인들이 자신들은 국민을 대표한다며

 더 많은 국민이 선택한 리더의 뒷다리를 마구 잡아대는 통에 힘들어서 더는 리더 못 해 먹겠다


고 난리치는 하수상한 세월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난세 극복의 가르침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선정해 접해 보았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당초 해당 

작품을 선정하며 기대했던 내용에서 벗어난 느낌이 커서 그러했는지 모르겠으나 그 방향으로는

큰 수확은 없었던 시간이었다.


홍경래의 난을 비롯한 세계사적 주요 혁명은 농업 사회에서 일어났으며 민란의 경우는 대체적

으로 경제적 문제 때문에 농민이 일으킨 저항운동으로, 변란은 불만을 품은 지식인들이 계획한

좀 더 정치적 저항을 지닌 반 왕조적 운동이라는 점을 높고 볼 때,

농업사회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최근 통수권자에 의해 발동된 모종의 질 낮은 조치에 대한 사건의

성격이 정확히 규명되거나 정의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국가 변란 사건이라고 확정해 

앞 다퉈 기레기들과 수준 이하의 일부 모리배들 그리고 국민을 대표한다는 수준 이하의 작자들

입에서 마구 튀어나오고 있는데 - 그런 불미스런 조치를 촉발시킨 통수권자의 행위는 백번 만번

이야기해도 잘못된 것으로 어떤 변명도 무색한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확정되지도 않은 행위와

행위자에 대해 수준 이하의 막말, 하대 등의 용어를 마구 남발하면서 그와는 대칭점에 서 있는 

전과 4범인 어느 잡범 리더에게는 존칭을 사용하는 언론과 그 하수인들을 보면서 그람시가 

우려했던 이 사회의 진지전이 아주 심각히 뿌리 내렸음을 확인하고는 급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


위에서 정의 내린 민란변란등과 같은 사건의 성격을 정확히 규명할 적절한 표현 단어를

찾으려 노력했으나 내 식견으로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지금도 고민하고 있던 중 이런

재미난 창작 이야기가 떠올라 여기에 옮겨본다.


작품을 읽으며 국정 운영에 있어 중요 요소는 많고도 많지만 특히 본 작품은 기본적으로 무엇을

중시해야 하는 지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을 언급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지역차별과 인간적 차별 그리고 당파를 이루어 끼리끼리만 해 먹으려는 기득권들 - 요새 

문제가 되고 있는 어느 부처의 가족회사 같은 - 의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집단은 무슨 사단이 일어나도 골 백번 일어 난다는 것을 본 작품은 강력히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데.

굳이 내가 특정 단어를 써가며 해당 역사적 사건에 대한 반성과 교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 우리는 모두가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본 건에 대해 중언부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꼭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조선의 지존 숙종에 대해 읽고 있는데

송시열의 잘못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단하라는 작자가 빙빙 돌려 이야기하자 숙종이 추상

같이 일갈합니다.


스승은 중요하고 왕은 졸()로 보이냐!’


라고 말입니다. 요즘 세상에 딱 어울리는 문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1장 청북지역의 역사적 발전과 지역 지배층

- 조선 후기에 청천강 이북 지역은 청북으로, 이남은 청남으로 불렸으며 홍경래 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지역은 청북지역이었다. 이와 더불어 관서는 평안도를, ‘관북은 함경도 지역을

  ‘서북은 평안도와 함경도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 조선 후기의 대중 반란을 이해하려면 중앙과 지방의 권력관계와 민란 지역주민의 다양한 사회

  신분을 분석하는 게 핵심이다.

- 조선 후기 문과 급제자가 급증하고 그 결과 더 큰 지배집단이 창출되면서 평안도 지배층 사이의

  경쟁은 격렬해졌으며 평안도 출신은 조정의 명망 있는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데서 일상적으로

  차별을 받았다.

  (과거 급제자 수는 임진왜란 전 15명에서 왜란 후 30명으로 1753년 이후는 45명으로 급증)

   ---> 지역 차별로 인한 북부 지역 주민이 오랫동안 중앙 정부에 품어온 분노가 증폭

- 북부지역 출신이 중앙 조정의 요직에 오를 수 없었던 까닭은 그 지역이 문화적으로 뒤떨어졌기

  때문인데 선조 때 이전에는 뛰어난 인물을 배출할 수 없었고, 선조 이후에는 당쟁이 격화되어 

  그 지방의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지도적 인물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 홍경래의 난의 원인 중 하나였던 지역차별이 언제 나타났고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찾아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중요한 사실은 차별만으로는 반란에 찬성하는 상황을 만드는데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주변 지역에 살고 있던 소외된 지배층은 모두 정치적 차별의 대상이었으며, 권력과 

  명망은 수도나 그 부근에 거주하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비교적 소수의 지배층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평안도의 경우 지역 지배층은 조선 전기 중앙 정치에서 위상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자신들의 자원을 교육과 과거제도에 투자해 조선 후기에는 중앙 조정에 진출하는

  사람이 늘어났다그러나 그들은 경이로운 수적 증가와 중앙에서 높은 명망과 특권을 얻으려는

  열망을 보였음에도 당시 확고히 자리 잡은 평안도 출신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차별 때문에 

  그들의 관직 경력은 일찍 끝났고 기대한 명예를 얻지 못했다. 스스로 힘을 기른 지역 지배층은 

  실력주의를 지향하는 유교의 이상과 중앙 지배층의 배타적 정치 운영 사이의 모순을 경험한 뒤

  극도로 좌절하면서 중앙 정부를 강력히 증오하게 되었으며이런 경험은 반란에 정당한 근거가

  있는 명분을 제공하였다.

- 고려와 조선 전기에 걸쳐 형성된 북부 지역의 지배층은 다른 지방에서 이주해온 명문가 출신들

  이 원래 가문의 지파를 형성함으로써 만들어졌는데, 임진왜란, 정묘/병자호란은 남부 지역 가문

  에도 그랬던 것처럼 북부지배층에게 자신의 지역사회에서 권력과 위신을 강화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가 됐다.

 

2장 지역 차별과 홍경래 난

- 조선 전기 동안 북부 출신 가운데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물은 매우 적었으며 과거에도 좋은 성적

  을 올리지 못했다. 조선 후기 과거에서 북부 출신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음에도 관직 취득에는

  상당한 정치적 차별이 있었다.

  예로서 문관의 경우 유명 가문(청족, 淸族)출신 급제자는 승문원(承文院, 외교를 담당) 북부 

  출신은 성균관(교육기관), 양반의 서얼은 교서관(校書館, 경서의 출판 등)에 배치하였고

  무관의 경우 청족 출신은 선전관청(宣傳官廳)에 배치되어 그곳을 거쳐 더 높은 관직으로 승진

  했으나 가문적 배경이 떨어지는 사람은 부장청(部將廳)이나 수문장청(守門將廳)에 배속되었다.


1) 북부 출신이 중앙에서 출세하여 성공하기란 엄청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홍문관(弘文館)은 

   조선 시대 조정의 경서(經書사적(史籍) 관리 및 문한(文翰) 처리와 더불어 국왕의 각종 자문에

   응하는 업무를 맡았던 중앙 관서로 집현전의 후신으로 옥당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으며

   사헌부·사간원과 더불어 삼사라 하였는데, 홍문관원을 선발하는 도당록에 따르면 조선 후기

   평안도 출신 급제자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북부 출신이 당상관(3품 이상의

   고위 관리를 칭하는 말)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음을 보여 주는데, 조선 후기 

   당상관직에 오르른 주요 경로는 홍문관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2) '백경해'라는 당시 실존 인물의 사례(P 78 ~ 98)를 통해 당시 북부 지역 사람들이 과거를 통해

    출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북부 지역 인물에 대한 지역적 

    차별은 소세양(1486~1562)이라는 인물이 효시라고 한다.

    특히, 1714(숙종 40) 평안도 암행어사 여필휘(1679~1721)평안도 사람은 이적이나 

    금수와 다를 바가 없다고 결론지으면서 30년 동안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

    했으며 숙종이 이를 여필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당시 해당 지역 출신에 대한 정치적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널리 퍼져 있었던 인식

  첫째 그곳에는 양반이 없고

  둘째 그 지방에는 오랑캐의 땅과 가깝다는 이유였으며

  셋째 그곳에는 학문이 없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3) 조선의 국왕들은 지역 차별에 대한 수많은 상소와 발언을 읽고, 들었으며 어떤 지역 출신을 

   세습적으로 선호하는 관행은 수정되어야 한다며 능력과 재능에 따라 사람들을 등용하고 승진

   시키라고 명령하지만 아무도 이런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이는 19세기 후반까지 

   유지되었다.

4) 평안도의 지역 지배층은 중앙의 정치과정에서 동등한 참여자로 인정받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그러나 중앙 양반의 높아진 신분의식과 그들이 채택한 배제 전략일 뿐이었다. 그들이

   맞닥뜨린 변함 없는 정치, 사회적 차별 사이의 불일치는 그들의 불만에 연료를 공급했다.

 

3장 홍경래 난의 경제적 맥락

1) 과거에 급제하려면 오래 기간 학업에 전념해야 하는데, 상당한 물질적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그러므로 조선 후기에 평안도 출신 문과 급제자가 급증했다는 사실은 그 지역이 물질적

   으로 비교적 풍요해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2) ‘환자제도는 원래 봄에 곡식이 모자라는 동안 사람들을 구휼하려는 목적이었다.

    18세기 후반 중앙과 지역의 모든 관서는 자금을 늘리기 위해 이자를 받고 비축곡을 대여했다.

    ---> 환자 비축곡 분량은 각 군현에 고정돼 있었고 지역 관원은 그 제도를 유지할 책임이 

          있었기에 문제가 나타났는데, 농민의 높은 상환 연체율을 감안했을 때 수입과 지불 준비

          를 맞추는 유일한 방법은 장부 조작과 농민 작물을 갈취하거나 이자 수입을 얻기 위해 

          환자가 필요치 않은 농민 혹은 부유한 가호에게 독단적으로 강제 분배하는 것이었다.

    ---> 홍경래의 난 직전 1822년 황해도 곡산의 농민 반란은 환자제도의 운영과 관련된 복잡한

          문제수령 및 아전과 서리 / 동일 지역 유력자와 농민 납세가 사이의 갈등을 드러냈다.

3) 곡산 부사 박종신은 곡물 비축량을 충원하는 과정에서 지역 유력자들이 조세 행정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안한 관행을 자의적으로 중단시켰고, 그것이 지역민의 불만을 야기해 반란을 

    불러온 것이다.

    ---> 여러 잡역과 관용비용을 편리하게 조달하려 설치된 기구였던 민고(民庫)’도 부정한 운영

           자들로 인해 해가 갈수록 원금 손실이 커짐에 따라 민원이 높아지면서 민란의 요인으로

           작동.

    ---> 홍경래의 난을 빈곤한 농민이 일으킨 조세 폭동의 성격으로 분석하고 있으나 1811년 말

          100년 동안 최악의 가뭄으로 인해 유효 적절한 구휼을 시행하지 않은 무능력한 중앙의 

          부패한 관원들에 의해 무리하게 환자 상환을 추진해 일어난 사건으로 분석하는 게 맞다.

4) 조선 후기의 대동법과 같은 조세제도의 변화는 상인들의 상업자본 축적과 독립적 장인의 출현

    과 권력층 양반들의 사치스런 향락으로 인한 사치품의 수입이 급증하면서 무역이 자유롭게 

    허용될 수밖에 없게 되면서 해외무역과 국내 상업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 표준적이고 안정

    된 저책의 부재, 불합리한 규제 그리고 밀수자에 대한 엄벌로 평안도 상인들에게 좌절을 안겨

    주면서 홍경래의 난에 참여자가 늘었을 것으로 판단.

5) 조세와 환자 운영처럼 지방에서 관리해 온 사안에 대해 중앙이 점차 압력과 개입이 늘면서 

    국가에 대한 반감을 불러왔을 것이며 상인의 재력이 커졌지만 사회적으로 상승할 수 없다는

    모순은 평안도 출신 계급자들이 늘었지만 지역 차별 때문에 중앙 관원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반란 세력으로 연결되어 갔을 것으로 분석한다.

 

4장 예언과 대중 반란

1) 삶이 자연재해, 가뭄, 전염병으로 타격을 받았을 때 그리고 자신의 사회, 정치적 상황이 위험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약속한 대중 신앙에 더욱 쉽게 영향을 받았다,

   ---> 새 왕조에서 주연이 될 것이라는 약속은 자신의 정치적 열망을 이룰 수 없던 소외된 

          지배층에게 대단히 강한 호소력이 있었다. 반란 지도자들로서는 그들이 정부의 정치에 

          불의를 강력히 느끼고 민생의 악화를 참으로 걱정하든 아니든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널리 퍼진 정감록의 예언적 전통에서 언급된 대로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선포할 

          필요가 있었다.

2) 풍수설의 의사 과학적 생각은 전통시대 한국사 전체를 휩쓸었다.

    풍수설은 당(617~907)과의 문화교류가 활발하던 통일신라(668 ~ 935)에 한반도에 들어

    왔는데, 풍수설의 주요 원천인 역경(易經)’은 풍수설과 성리학을 포함한 모든 사상체계의 

    연결고리였다.

    풍수설과 예언은 대중의 지원을 동원하고 반란을 정당화하는 데 중요한 정치적 도구였다.

    ---> 풍수설은 자연 안에서 활동하는 힘에 대한 인간의 응답으로 성공에 집착한다. 풍수설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 성취를 이미 이뤘지만, 자신과 자손이 더 번성하기를

          바라기 시작할 때다.

          이미 성공했다면 그는 자신의 지속적 성공을 보장할 보든 풍수적 예방을 하지 않을 수 

          없다달리 말하면 모든 사람은 학문, 부의 축적, 종교에 의지한 행운의 추구를 통해 

          자신과 후손의 상황을 향상시키는 조치를 추진할 권리를 부여 받았다.

    ---> ‘풍수는 길한 묫자리를 잡는 데 널리 활용되었을 뿐 아니라 모든 계층에서 이를 널리 

          활용했는데, 당시 북부 주민이 풍수를 후원할 수 있는 일정한 재정적 잉여를 누렸으며 

          예언적 신앙에 투자해 더 나은 경제적 상황과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열망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3) 정감록의 이념은 나라를 다스리는 권한은 하늘에게서 부여받은 것이므로 하늘은 도덕적으로

   부패한 지도자에게서 그 권한을 박탈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은 자연재해와 초자연적 

   징조를 통해 지도자에게 불만을 전달한다. 대중 반란은 지도자에 대한 하늘의 분노를 대표하며 

   도덕적으로 올바른 새 지도자를 세우는 합당한 방법이었다.

   ---> 정감록에서 미래 변화를 위한 모든 예언은 풍수적 담론을 빌렸지만 왕조 교체에 관련된 

         기본 개념은 유교에서 발원한 것이었다. 예언적 신앙을 이용한 것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7세기 후반 정여립의 음모였다.

4) 영조(1724~76) 때는 다른 시대보다 많은 음모가 발각되는데, 모반이 빈번하게 일어난 것은 

   주기적인 자연재해로 백성의 삶이 불안해지고 노론의 권력이 공고해진 뒤 많은 양반 지배층이

   정치적으로 소외된 것을 반영한 결과이다.

 

5장 반란 세력 지도부와 참여자

6장 반란 세력과 진압 세력

* 상기 2장은 너무 학술적인 내용으로 내가 추구하는 독서의 방향과 맞지 않아 정리에서 제외

 

7장 수세에 몰린 반란 세력

1) 당시 주요 인물들은 서북지역의 반란(홍경래의 난)을 질병과 가뭄으로 고통받는 농민에게 

   관원이 부정을 저지르고 자의적으로 조세를 부과한 데 있다고 결론지었다. 특히 사간원 정5

   ‘임업은 일부 지방 수령과 향리의 부패와 탐욕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상소했다.

   따라서 공정한 인사 운영과 지방 행정에서 강직한 인물을 등용하는 것이 지방을 안정시키는 데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반란에 대한 응답으로 국왕은 풍년이 들 때까지 세금을 보류하고, 환자에 쌓인 이자를 

         탕감하며 반란이 일어난 기간과 그 이후의 군포를 줄여주었다.

2) 오위 부호군 오연상이라는 인물은 상소를 통해 반란의 원인과 대책을 날카롭게 제시하였는데,

   국왕의 특별 명령으로 한 번씩 열렸던 도과(道科)’를 치를 것을 제안했는데 이 시험의 합격자는

    다른 예비시험을 거치지 않고 서울에서 열리는 최종 시험에 나갈 수 있었다.

    평안도에서 도과는 인조 때인 호란 직후 1643년 처음 열렸고 그 뒤 10년마다 해당 시험 실시

    되었으나 도과를 치르지 않은지 오래되어 해당지역 사대부들의 불만이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험도 상소를 올린지 3년 뒤에나 실시되었다. 더욱 나쁜 것은 조정의 차별적 승진

    제도에 관련된 개혁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 평안도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20세기 초까지 지속됐다.

 

8장 홍경래 난 연구에 나타난 민족, 계급, 지역

1) 반란을 우연히 목격한 평민 시인 조수삼(1762~1849)

   ‘용납할 수 없는 반역으로 보았지만, 관원의 부패와 지의적 조세, 그리고 좀 더 날카롭게 지역

   차별을 비판했다

2) 홍경래의 난을 바라보는 시각은 20세기 일제 강점기를 통해 사건과 지역 차별의 문제를 분리해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 부패한 왕조를 무너뜨려 대의를 펴고 세계에 공의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반란

                                                                                                             (최남선)

- 조선을 독재국가로 규정하면서 그 반란은 관원 등용의 지역 차별 - 정치적 노예생활 - 때문에

  일어났다고 주장(이돈화)

- 민중 혁명의 선구였으며, 홍경래는 양반사회를 철저히 파괴하기 위해 무장 투쟁을 일으켰다

                                                                                                              (문일평)

- 민중의 권리를 옹호한 혁명운동(안 확)

- 반란은 반 왕조적 사회운동이었다.(현상윤)

   ---> 일제 강점기 한국인 학자들은 홍경래의 난에서 토착적, 진보적, 혁명적 전통을 찾았지만

          일본인 학자들은 한국 병탄을 함축적으로 정당화하는 쇠퇴와 침체를 찾았다

3) 반란에 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계급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 평안도 주민이 마주한 사회,

    정치적 차별이다. 반란 세력은 사회, 정치적 차별을 그 지역의 전체 주민에게 오명을 씌우는 

    지역적 문제로 보았다.

4) 집단행동이 성공하려면 지역적 분화를 뛰어넘고 협소한 지역적 공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사람들을 통합할 수 있는 타당한 이념적, 사회적 명분이 필요했다.

   반란이 지역사회의 단단한 사회적 연결망을 끊을 수 있는 열쇠였던 가장 높은 사회 신분층 

   - 곧 문과 급제자와 지역 지배층 가운데 성공한 부류 - 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한 것은 집단이 

    정부를 지원하기로 선택했다는 뜻이었고, 그것은 결국 반란 진영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

    ---> 지역 양반의 기회주의는 반란이 종막에 가까워지면서 증가한 의병 숫자와 관군에 더욱 

          자주 물질적 기부를 한 것에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1812년 사건은 사회 기층이 시작한 계급투쟁이라기보다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누적된 불만을 지역 지배층이 국가에 맞서 폭발시킨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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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담판의 역사
함규진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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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작품은 특정 시기에 벌어진 여러 사건 중 하나 혹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아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경미한 사건으로 치부해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는 쉬쉬하며 덮거나 쉽게 잊으려하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자잘한 사건이 누적되면서 마치 하인리히 법칙처럼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파급력으로 모두에게 질타를 받게 되면 그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과거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간에 잊기 위해 묻어버렸던 작은 사건이 불씨가 되어 확대되었음을 확인하고는 쉽게 묻어버린

특정 사건을 다시 재조명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본 작품은 그런 역사적 사건 11가지 장면에 숨겨진 담판의 진실에 대한 뒷 이야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작품에서 언급된 11가지 사건 중 내가 역사를 관찰하는 시각과 기준 속에서 나름

대로 의미성 있는 사건이라고 판단한 사건만을 선정해 보았다. 

제외된 7장의 신성로마 황제 자리유럽의 패왕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내용과 8장에서 언급된 이탈리아 통일의 숨은 주역 가리발디 장군이야기, 9장의 일본 근대화의 기수라 불리우는 일본의 료마 이야기’, 10장 레이건 - 고르바초프 회담과 11장의 6.15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세부적인 추진 경과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른뒤 개별적으로 연구해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11장(남북회담)은 생각해 볼 부분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전 정부 대통령과 로켓맨 김정은간 회담에서 전임 대통령이 뜬금없이 그 누구와 상의 없이 USB를 로켓맨에게 넘겨주었는데 그 USB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회담이 성과가 있었네, 역사적인 회담이었네 하고 섣불리 평가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문제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전달되어진 USB에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이것이 확인되고 이를 받아든 로켓맨이 

그것을 어찌 활용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당시의 회담이 역사적이었는지 넘겨준 우리 국가를 

망국으로 이끌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이기에 당시의 회담에 대해 다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당시의 회담에 대해 평가를 쉽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평가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여기에 동의할 사람이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말이 나와 하는 이야기지만 의심과 남을 몰아붙이기로 한 성격하는 우리의 여의도 보이스카웃들은

왜 로켓맨에게 전달된 USB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확인하자고 게거품을 물고 요구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며칠 전 TV를 통해 동물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보는데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 후퇴할 줄 모르는 동물이 이라는 내용의 방송 프로를 시청한 적이 있다.

나는 뱀에게 그런 특성이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기에 아직도 그 방송 내용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지만 공영방송에서 틀리게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니 그냥 알려주는 대로 믿기로 했다.

하지만 그 답을 듣는 순간 우리의 여의도에는 그런 특성을 가진 인간들이 차고 넘치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뱀의 특성에 대해 완전 동의를 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썩소가 나왔다.


아무튼 뱀의 행동 특성을 지닌 인간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도토리 키재기 싸움을 하는 것을 바라보니 뜬금없이 상대 진영의 멀쩡한 사람을 뇌구조가 이상하다고 이야기한 아무리 좋게봐도 박복하게 

생긴 어느 촌스런 여인네와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무표정한 듯한 얼굴로 자기 통제에 잘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질을 남발했던 어느 박수무당급 표정의 달인이 떠올랐는데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면 어쩌면 방송에서 이야기한 뱀의 특성과 일치하는지 크게 공감하였으며 공영방송이 알려준 

정보를 나는 확실히 믿기로 했다.

 

아무튼 작품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내용 속 각 인물들이 행한 여러 행태의 내용을 통해 역사적 

교훈과 그 사건의 이면에 감춰진 여러 이야기를 알 수 있었는데 그 중 교황 레오 1와 

예루살렘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몰랐던 사실에 대한 학습의 시간이었기에 아주 유익한 시간

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학습을 통해 내가 이 될 가능성을 제거했기 때문에 더욱 좋은 시간이었고 이런 

자료를 다수의 국민들과 공유해 많은 사람들이 뱀을 잡는 땅꾼으로 육성시켰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램이다.

 

과거 어느 동네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뱀이나 흑염소를 보약으로 만들어 주던 건강원이 

상당수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사악한 뱀과 뱀과 유사한 구렁이들이 그렇게

창궐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의 관련기관에서 내 글을 읽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아주 우연한 기회에 나의 

글을 읽게 되다면 

뱀탕을 전문으로 끓여주는 건강원을 여의도에 집중 허가해 줄 것

을 간곡히 건의드리니 심도 있게 검토해 주실 것을 희망합니다. !!!

 

1장 파라오의 자존심, 히타이트 - 이집트 협정

[되짚어 볼 사항]

서로의 요구에 매달리지 말고 욕구를 보라상대방의 특별한 사정으로 제대로 이해하고,

상대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은 포기하되 양보할 수 있는 조건에서 이득을 꾀하라

 

2장 천하를 놓고 칼춤을 추다, 홍문(鴻門)의 회()

[되짚어 볼 사항]

힘으로 압박하여 마지못해 수립된 담판은 성공한 담판이라고 하기 어렵다.

언제고 상황이 바뀌면 깨어지기 마련이다. 담판 성과가 오래 보전되게 하려면 상대방이 

다소 아쉽기는 해도 대체로 큰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여기게 할 만한 윈- 윈 전략을 구사

하고 상대가 담판으로 이루어진 구도를 되도록 깨고 싶지 않도록 당근과 채찍을 구사해야 한다.

 

3장 두 마리의 사자, 한니발과 스키피오

[되짚어 볼 사항]

이길 자신이 없다면 싸우지 말자는 담판을 먼저 제의해서는 안 된다.

열세이면서 담판을 성공시키려면 상대를 솔깃하게 하거나 움찔하게 만들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카르타고는 로마 특히 스키피오를 탐욕에 빠트릴 조건도, 공포에 빠트릴 술책도 

없었다.

그럼에도 승리자였던 스키피오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하지 않았음을 후회했을 것이다

 

4장 교황 레오 1세와 훈족 아틸라, 로마의 운명을 걸다

[되짚어 볼 사항]

막강하게 보이는 상대가 품고 있는 약점을 꿰뚫어보고 스스로를 최대한 보호하는 쪽으로 상대의 뜻을 유도할 줄

아는 협상력과 정확하고 조리 있는 설명력 그리고 깊은 신앙심에서 비롯된 용기가 두루 필요하다.

 

5장 술자리에서 병권을 거둬들이다, 송태조 조광윤

[되짚어 볼 사항]

송 태조는 항우가 유방을 상대로 열었던 홍문의 회같은 연회 방식을 통해 피바람을 초래할 수 있었지만

믿고 따르는 측근 세력들과의 상호 토의 및 진솔한 대화를 통해 사직의 안녕과 천하의 평화를 도모한 점이

리더의 좋은 전형을 보여준 사례로 여겨진다.

 

6장 예루살렘 담판의 두 주역, 살라딘과 발리왕

[되짚어 볼 사항]

협상의 상황에서 절망적일 경우 자존심이란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협상에 임해서는 억지나 사기가 아닌 이상 할 수 있는 말은 모두 하고 끝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행운도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역사적 담판 사실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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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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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어떤 기준으로 작품에서 각 이슈의 꼭지를 발굴하는 기간을 설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역사 35백 년 역사 중 전쟁이 없던 시기는 270년에 불과하며, 1945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90년에 이르기까지 2,340주 동안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던 기간은 단 3주라고 한다.

한마디로 이야기해 세계는 하루도 빠짐없이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고 항시 전쟁 속에서 전진하고 진보해 왔다는 것이다.

작품은 위와 같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 중 누구나 알고 있고, 나름 의미를 

갖고 있는 사건이지만 쉽게 알 수 없는 사건 30여 개를 선정하여 간략하게 이를 분석하며 그 사건이 지닌 의미성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나는 작품에서 언급하고 있는 30개의 사건 중,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거나 그 사건의 진의가 왜곡되어 내게 기억되고 있는 사건 4꼭지를 작품에 근거하여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으며 기타의 사건에 대해서는 일반상식 수준에서 참고하는 수준에서 정리해 보았다.


사건 1)

- 1939년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등장한 화염병은 당시 소련의 외무장관 이름

  에서 차용된 몰로토프 칵테일이라 불리는데, 핀란드는 당초 소련이 침공하면서 요구했던 

  이상의 영토와 산업시설의 10%를 상실하지만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독일편에 서서 소련에

  대해 대응하나 전쟁 말기에는 독일과의 연합군 형태를 깨고 자국의 안정을 위한 전략을 택하게

  된다.

  즉, (소련)에게 역부족일 경우 고개를 숙였지만 복수를 위해 적(독일)에게 접근해 칼을 가는

  숯 돌을 빌릴 줄 알았고, 적이 다시 득세할 기미를 보이자 냉큼 돌아서서 동맹군을 저버렸다.

  ---> 핀란드 지도자들이 소련에 대해 벌인 조변석개식 국가 운영 방식에 대해 이를 지탄할 수는

        있었지만 국가의 리더가 자국과 자국민의 안정을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적 선택

        이었다.

  ---> 당시 독일과 연합해 소련에 대항했던 라스토 뤼티대통령은 전쟁 이후 전범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징역 10년에 처해 강자가 되어버린 소런으로부터 동정을 받으나 그것은 그 순간

        을 살아나가려는 국가적인 였으며 뤼티 대통령의 업적을 기려서 추후 그의 동상을 

        국회의사당 앞에 세운다.


* 우리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으면 낮은 수준으로 근근이 빌어먹는 듣보잡 역사학자들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노동자 대표단체들, 처음 들어보는 여러 시민단체들, 뻑하면 튀어나와 

  정의를 외치는 몰염치 종교인들이 아마 연일 데모를 했을 것이다.

  왜? 진실은 중요치 않다. 약자들을 대변한다는 미명하에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는 것만 중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난리를 잘 쳐야 추후 호가호위가 일상화 되어 있고 비상식이 난무하며 몰염치가

  판치고 어떤 저급한 짓을 하던 제식구만 감싸는 정치권 입장 티켓을 받아 후일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공산 진영의 역사에 두 명의 붉은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영웅 칭호를 받는 인물이 있었는데

  한 명은 소련군의 젊은 원수 미하일 투하쳅스키와 베트남의 보응우옌잡장군이다.

  ---> 보응우옌잡은

  1)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가 아닌 나의 사전에 불가능한 싸움은 없다가 슬로건.

  2) 3불 전략으로 적들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는다’, ‘적들이 싸우고 싶어하는 장소에서 

     전투를 치르지 않는다‘, ’적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싸운다

- 수나라가 고구려를 무릎 꿇리지 못한 이유는 고구려가 강력하게 저항한 측면도 있으나 고구려

  군이 항복 의사를 표해 올 경우 승기를 잡았다고 공격을 감행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고, 어떻게

  할지 반드시 황제에게 물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포르투칼이 영국과 교역하자, 프랑스에게 스페인이 포르투칼

  을 징벌할 것을 제안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경유 포르투칼을 점령하기 위해 스페인 도착했으나 오히려 스페인에

         눌러 앉음 

   ---> 스페인 국민들은 당시 왕(카를로스 4)을 몰아내고 그의 아들 페르난도 7세를 옹립

   ---> 스페인 국민들은 게릴라전을 전개, 조직적으로 프랑스군에 대항(스페인 독립 전쟁)

- 고려 거란전쟁을 통해 새로이 발굴된 '양규 부대'는 그들이 구한 고려인이 자그마치 3만 명

  이었다고 한다고려 인구를 300만 명 정도로 잡으면 인구의 1%를 구해낸 것이다.

- 나치의 만행을 폭로한 인물로 독일인 쿠르트 게르슈타인과 폴란드 군인 비톨트 필레츠키가 

  있다.

-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각본을 담당한 돌턴 트럼보는 시나리오 작가였다. 그는 할리우드에 

  매카시즘 선풍이 몰아칠 당시 공산주의자 색출을 목적으로 한 청문회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서

  증언을 거부한 열 명, 할리우드 텐의 일원이었다.

- ‘합스부르크가문은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중부 유럽의 패권을 거머쥐었던 가문으로 

  14세기 초 스위스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혹한 지배하에 있었는데 빌 헬름 텔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라 스위스 역사학자 에기디우스 추디라는 인물이 쓴 창작물이다.

- 중세(유럽)에서 가장 잔혹한 전투로 꼽히는 모르가르텐 전투에서 스위스 보병이 용맹성이 

  오늘날 교황 근위대의 전통이 되었다.

   --->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약하지만 비루하지 않고, 작지만 바스라지지 않는 자존감을 

         고수하는 약자는 그 어떤 위기에서도 용기의 빛을 발하고 패하더라도 굴하지 않으며,

         타인들로부터 존중을 획득한다.

- 6.25 전쟁당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동원한 영국군 중 29여단 글러스터 대대 600명은 

  중공군 3만 명과 대치해 방어전을 펼치게 되는데 이 전투의 결과로 죽거나 포로가 되지 않고 

  생환한 이는 67명 뿐이었다.

- 칠레의 가수이자 누에바 칸시온(스페인어로 새로운 노래‘)운동의 가수 빅토르 하라

  ---> 빈곤층과 인디오를 위해 노력한 인물 살바도르 아옌데를 위해 만든 노래 벤세레모스

         (스페인어우리 승리하리라)’를 앞세워 아옌데 열품을 불러일으키며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하지만 미국과 칠레의 군부는 쿠테타로 사회주의 정권을 좌절

         시킨다.

-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사를 사진으로 기록한 이기복

 

사건 2)

- 송나라 태조가 반역의 죄가 아닌 한 죄를 묻지 않는다시씨 집안에 내린 단서철권(丹書

   鐵券)을 부여시씨 가문은 과거 조광윤이 반란을 일으키자 어린 황제(시씨 가문)로부터 

   황제 자리를 양보 받아 제위에 올라 송 왕조를 시작하게 된다.

    ---> 13세기 원나라의 침공을 받자 어린 황제를 보위하며 마카오 근처 애산에 집결한다

          대대로 송나라 황실의 보호를 받았던 시씨 가문 사람들이 절망적인 전투에 참가하지만 

          멸절되고 만다.

    ---> 애산 전투는 신뢰와 가치로 뭉친 용감한 약자들의 위대한 패배였다.

 

- 남북전쟁 당시 흑인들로 구성된 매사추세츠 54연대 이야기(영화 영광의 깃발’)

- 세계사 최대의 악한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인물은 슈타우펜베르크대령이었고 이에 버금가는

  인물로는 초등학교만 겨우 나온 목수 게오르크 엘저라는 인물이다.

- 이탈리아 마피아와의 전쟁을 수행한 조반니 팔코네 검사와 보르셀리노 판사

   ---> 마피아 조직원 344명에게 내린 형량이 무려 2,665년에 이른다.

- ‘코뮌(commune)이라는 단어는 공동 생활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을 뜻하는 중세 

  라틴어에서 나온 단어.

 

사건 3)

- 해양으로 뻗어나가던 스페인과 포르투칼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서경 4337분 서쪽은

  ‘스페인이 동쪽은 포르투칼이 차지하는 것으로 합의한다.

   ---> 포르투칼은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동쪽과 서쪽 해안 일부를 점령, 식민지화했다. 서남부

         아프리카 해안에 상륙한 포르투칼은 유용한 상품인 노예를 발견하는데 우선 상대한 

         나라는 콩고였다

   ---> 당시 콩고의 왕 은징가 아 은쿠우가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면서 유럽 문화를 적극 받아

         들였으나 포르투칼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콩고를 중심으로 노예를 마구 잡아들일 때 

         주변국 은동고(현재의 앙골라’) 왕국의 은징가 음반데가 반기를 든다.

   ---> 은징가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면서까지 자국의 종족을 보호하려 노력한다.

         당시 포르투칼인들은 악독한 노예 무역상인인 동시에 신실한 가톨릭교도이기도 했는데

         ‘이교도들을 개종시킴으로써 영혼을 구한다는 명목은 위선적이었을지언정 그들은 성스러

         운 임무로 받아들였다.

   ---> 스페인, 포르투칼인들이 흑인 노예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건 그들이 남미 대륙에서 

         노예로 부리던 인디오들의 수가 격감한 탓도 있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인디오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 힘을 얻었던 연유도 있다.

   ---> 포르투칼의 이익과 대척점에 서 있던 스페인 선교사들에 의해 바티칸의 중재로 왕권을 

         인정받아 포르투칼이 그녀와 그녀의 나라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데 성공한다.

- 에티오피아는 아르메니아, 조지아에 이어 역사상 세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나라이다.

 

사건 4)

- 종교의 자유를 위해 최강대국과 맞선 네덜란드의 오라네공 빌럼에 관한 사항이다.

  스페인 카를 5세의 아들 필리페 2세는 스페인 전성기를 이끈 황제로 신앙심이 독실한 인물로,

  신교도들을 탄압하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인물이었는데 그의 치세기간 동안 벌어진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은 그의 이력에 큰 오점을 남긴다.

  ---> 네덜란드는 당시 스페인에게 황금알을 안겨 주는 나라였지만 이교도들의 세력 확장을 

        필리페 2세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당시 네덜란드의 총독으로 오라네공 빌럼

        1가 등극하면서 네덜란드 주민들의 정치적, 종교적 자유의 대변자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

  ---> 필리페 2세의 이교도 말살 정책에 빌럼은 저항에 나섰고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구심점으로

        부상한다.

   ---> 네덜란드인들은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가지며 어느 누구도 종교에 의해 심문을 받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며 수많은 항전을 벌인다

         그 중 대표적인 저항이 레이던 공방전으로 네덜란드 독립전쟁의 상징과도 같은 전투이다.

   ---> 네덜란드인들은 흰색, 빨간색 등이었던 당근을 교배해 오렌지색 당근을 만들어 퍼뜨렸다

         고 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오렌지 즉, 오라네공 빌럼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 오라네공 빌럼은 곧 자유와 독립의 상징이었고, 지배자가 아닌 대표자였으며, 군주가 아닌

         동지였다. 세계사의 거대한 진전을 이뤄낸 시민혁명의 서막을 연 이 사건은 미국 독립보다,

         프랑스 대혁명보다 200년이나 앞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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