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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22년 5월
평점 :
추천 권유도 5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해당 작품에 거는 기대가 저자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내게 있어 또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는 독서가의 입장에서 굉장히 기대가 컸었는데 작품을 다 읽고 난 결과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작품을 통해 ‘책’이라는 것에 대해 또 ‘독서’에 대한 어떤 선한 영향력을 받고자 시작했었지만 작품은 너무도 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그래도 돈과 시간이 아까워 작품에서 뭔가를 얻어내려 또 저자의 명성을 감안해 작품으로부터 뭔가를 건지기 위해 악착같이 - 독서는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는데 .... - 저자가 은유적으로 제시하는 뭔가를 찾으려 해당 작품을 두 번 연속해 읽고 또 읽었지만 작품 53쪽에서 저자는
‘내가 제일 많이 들여다보았고 그래서 아마도 제일 잘 안다고 할 만한 영역이라면...(중략)...괴테가 중심이자 정점을 이룬 바로 그 시대의 독일문학이다‘
라고 언급한 내용을 마주하고서는 내가 작품을 통해 얻으려 했던 주제와 약간은 다른 측면으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작품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고 말았다.
작은 성과라고 불러야할지 아니면 큰 실망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잘난척하는 게 아니라
저자가 제시한 ‘독서의 방식(책의 선정, 사후정리 등)’은 내가 평소 해 왔던 방식과 거의 유사해
글을 읽는 나도 상당히 놀랐는데, 그 방식을 알고자 한다면 해당 작품을 사서 읽으시길....
중언 부언의 이야기가 되겠지만 가장 아쉬운 점은 해당 작품 집필 당시의 저자의 환경적 요소가 그러했는지 모르겠지만 독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는 점은 솔직히 해당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람 외에는 해당 작품이 일반적인 대중들에게는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할 내용이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작품 중간에 저자께서 일본 문학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독서에 대하여 1]
- 책 속에는 분명 가치 있는 뭔가가 감춰져있다고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음에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왜 책 읽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작가들에게 있어 길게 보면 인쇄 수입이 대폭 줄어들지언정
심드렁한 독자 수 천 보다는 단 열 명이라도 제대로 알아주는 독자들이 더 고맙다.
- 책은 오직 삶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잘못된 독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부당하다.
- 책을 읽는 사람들은 독서에서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더 풍성한 힘을
얻고자 온 힘을 기울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을 재발견하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몰두할 줄
알아야 한다. 더 의식적으로, 더 성숙하게 우리의 삶을 단단히 부여잡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 산악인이 산을 오르는 마음자세와 군인이 병기고 안에 들어서는 마음으로 굳은 의지를
품고 친구와 조력자들에게 나아가는듯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책의 마력]
-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져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이라는 세계다.
- 어떤 민족에게나 말과 글은 신성하고 마력적인 것이다. 이름을 붙이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은
본래 마력을 지닌 행위, 즉 정신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는 신비한 행위여서 글은 어디서나 신이
내린 선물로 칭송받았다.
온통 문맹인 민중들 가운데 글자라는 비밀에 통달했다는 것이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란, 숨 쉴 줄 안다 내지는 기껏해야 승마를 할 줄 안다는
정도에 준한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정신의 가치 절하이자 이기도 하다.
- 말을 통한 표현과 이러한 표현을 글로써 전승하는 일은 역사와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보조수단 정도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 매스미디어의 범람으로 책이 그 존재가치와 매력을 상실했다고 보여지겠지만 결코 아니다.
- 작가나 지식인 계층이 지성을 주도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여론을 형성
하거나 적어도 일상의 화젯거리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일 뿐 그들이 곧 창조 계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읽기는 누구나 배우지만, 얼마나 강력한 보물을 손에 넣었는지를 진정으로 깨닫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책의 세계는 모든 진정한 독자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이며, 개개의 독자는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추구하며 경험한다.
- 좀 더 세심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더 직접적인 연관 속에서 읽을 줄 알게 되면, 그만큼 더 모든
사상과 문학을 그 일회성과 개별성, 엄밀한 제한성 속에서 파악하게 된다. 나아가 모든 미와
매력이란 바로 이러한 개별성과 일회성에 바탕을 둔다는 점도 알게 된다.
[서재 대청소]
- 가치가 없는 건 가급적 장서로 들여놓지 말고 일단 검증된 것은 절대 버리지 마라.
- 제 소임을 다한 지 이미 오래되고 이제 없어도 아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 시대의 주요 저서 중
하나라고 그 시대의 얼굴을 만드는 일조한 책이 있다고, 그러니 그런 책이라면 어느 정도
경외심을 표하며 보존해야 한다.
[소설 한 권을 읽다가]
- 큰 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한 일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 당연시하는 태도는
쇠퇴의 시작.
- 거창한 신념과 태도나 강령들이란 서슬이 퍼래도 막상 찬찬히 뜯어보면 종이호랑이에 불과해서
아연실색하는 일이 많다.
---> 오늘의 우리 정치판을 빗대어도 맞는 듯한 말이지 않을까?
* 나는 저자께서 질타하는 내용 즉, 무성의한 작품 전개로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편집으로 작품과
출판사 탓을 한 적은 있으나 저자를 갖고 뭐라 한 적은 없다. 저자는 그럴 수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표현들과 같은 오류가 가끔 발견될 때 그런 오류를 지적하는 맛이 독서의
또다른 즐거움이란 생각을 갖고 있는데 작품을 다 읽고 별도로 올리는 독서 서평에 해당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충고도 함께 올리기도 한다.
인간이기애 실수할 수 있다. 그런 그들도 우수한 오류를 잡아내는 기계가 도입되면 실업자가 될
수 있으니 참아주는 것도 미덕의 한 형태이기는 한 데 독자가 떨어질까 그게 더 걱정이다.
[애 독 서]
-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읽는 문학의 범위와 소장도서 중에서 특정 문학이나 사조 혹은 작가들을 골라내는 데는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 전적으로 동의한다.
짱아찌는 짱아찌대로, 만두는 만두대로 초밥은 초바대로의 맛이 있는데 이 중 가장 맛있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
[작가에 대하여]
- 자유 작가들이란 한량과 고용 작가 (즉 저널리스트)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진 입장이다.
-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전문작가들끼리만 공유하는 특별한 수식어이자 은밀한 자격증은
‘공인된 필력’이라는 타이틀이다. 이 공인된 필력이란 작가의 허영심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원하는 글을 얻어내는 도구로 이런 수법은 오늘날 모든 신문의 문예란에 횡행한다.
- 작가에게 더 많은 일거리를 가져다 주는 이들은 다름 아닌 동료들이다.
---> 전적으로 동의하며 작가들의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글쓰기와 글] ---> 내 수준에서 해당 제목으로 이 글을 이해하기란 참 어렵다
- 모든 글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는 하나다. 어휘를 달리 고른다든지 문장의 구조나 길이가 달라질
수는 있다 또 관련 도구가 달라질 수는 있으나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오직 하나일
뿐 영원한 것이다. 없었기에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일본을 그렇게까지 볼
[문학과 비평이라는 주제에 대한 메모]
- 타고난 비평가는 타고난 작가보다 드문 세상이다. 언론의 발달로 비평가는 마치 공적인 상설
기관처럼 불가결의 요소로 꼽히는 직업이 되었다.
- 진정한 작가라면 진정한 비평가를 반기기 마련이다. 진정한 비평가에게는 언어의 수준과 진정성
에 대한 감각이 늘 있지만, 평범한 비평가는 원본과 모조품을 쉽게 혼동하고 때로는 속임수에
말려든다,
- 진정한 비평가를 쉽게 구분하는 방법
1) 진정한 비평가는 자기가 구사하는 언어와 허물없이 친숙하여 오용하는 법이 없으니 글이
살아 있다.
2) 자신의 주관성과 개인적 기질을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와 노력이 있다.
- 비평가에게 중립이란 거의 언제나 미심쩍은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결함, 즉 정신적 체험에서
열정의 결핍을 뜻한다. 비평가에게 열정이 있다면 그것을 숨길 게 아니라 드러내야 마땅하다.
- 어떤 작품의 중심인물들과 특징적인 문제 등은 작가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엄밀히
따지면 모든 문학의 원재료이니, 바로 작가의 비전과 정신적 체험이다.
- 예술가는 삶 앞에서 예술로 도피해서는 안 된다.
예술이란 그야말로 삶의 불충분한 면을 보충하고 실현 불가능한 소망들을 허구 속에서 실현
하려는, 한마디로 소화되지 않는 현실의 모습을 정신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시도이다.
---> 인간의 모든 업적이 오직 곤경을 통해, 혹독한 압박 하에서만 생겨난다.
- 시사비평에서 미움받는 또 다른 ‘도피’는 이른바 과거로의 도피이다.
- 가장 심한 열성 돌연변이야말로 스스로를 세련된 진보로 가장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 성과를 공인받기에 이른 프로이트 학파의 학설이, 대중에게 유포되고 그 방식과 전문용어들이 다른 정신영역까지 광범위하게 유입되면서 상당히 거슬리는 역겨운 부산물이 생겨났는데,
얼치기 교양인들의 사이비 심리학과 일종의 딜레탕트 문학 비평이다
* 딜레탕트(P103)란 예술이나 학문 따위를 직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 삼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 전문가들이라면 이런 딜레탕트적인 작업과 분명하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시에 대하여]
- 한 편의 시가 탄생하는 기원에는 살아있는 영혼이 자신의 체험과 격동을 또렷이 의식하고자
또는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내뿜는 분출이요, 외침, 아우성, 탄식, 몸짓, 반응이다.
- 어떤 시는 시인의 내면을 토로하여 이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타인의 마음까지 움직이고 기쁨
과 감동을 선사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아름답다고 하는 시란 바로 그런 것이다. 타고
[언 어]
- 언어는 다른 누구보다 시인이 가장 괴롭게 느끼는 결손이요 이승의 짐이다.
- 시인이 음악가를 날이며 날마다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이유는 음악하는 데 쓰이는 자기만의
언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세인들은 공상가들ㄹ을 곧잘 광인(狂人)에 비교하곤 한다. 예술가나 수도자나 철학자들처럼
자기 내면의 깊은 심연을 파고들어 간다면, 분명 당장에 미쳐버리고 말 터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심연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건 무의식이라 하건 아니면 또 다른 뭐라
칭하건 간에, 우리 삶의 모든 추진력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독서와 장서]
- 활자화된 모든 것은 정신적 노고의 산물이므로 경의를 표해야 마땅하다.
기본적으로 올바른 독자라면 장서가(藏書家)이기도 하다.
- 올바른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
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을 뜻한다.
- 나이가 많건 적건 누구나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기만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 책을 통해 스스로를 도야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고자 하는 데는 오직 하나의 원칙과 길이
있다. 그것은 읽는 글에 대한 경의, 이해하고자 하는 인내, 수용하고 경청하는 겸손이다,
- 친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책을 읽는 사람에게 책들은 자신을 활짝 열어 온전히 그의 것이
될 것이다.
[세계문학 도서관]
- 진정한 교양이란 완성을 추구하는 모든 노력ㅇ이 그러하듯 어떤 목적을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 ‘교양’, 즉 정신적, 영적 완성을 향한 노력도 특정 목표를 향한 고생스러운 노정이 아닌, 원기
왕성한 의식의 확장이요 삶을 더욱 풍요롭고 신명나게 만들어주는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교양은 진정한 신체 단련과 마찬가지로 성취인 동시에 계기이며 어느 지점에 있건
목표를 이미 이룬 것이되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교양의 목표는 특정 능력이나 기능의 향상이
아닌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를 이해하며 준비된 자세로 두려움
없이 미래를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교양으로 인도하는 길 중 으뜸이 되는 것 하나가 ‘세계문학의 탐구’이다
- 최대한 많이 읽고 많이 아는 것이 아닌 좋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택해 틈날 때마다 읽으면서
타인들이 생각하고 추구했던 그 깊고 넓은 세계를 감지하고 인류의 삶과 맥, 아니 그 총체와
더불어 활발하게 공명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
- ‘교양(Bildung)'이란 무언가 ’양성하는(bilden)' 것, 즉 인격과 인성의 도야를 전제로 한다.
그것이 없다면 그래서 알맹이가 빠진 채 공허하게 이루어진 교양이라면, 거기에서 지식은
생길지 몰라도 사랑과 생명은 나오지 못한다. 애정이 결여된 독서, 경외심 없는 지식, 가슴이
텅 빈 교양이란 정신에게 저지르는 가장 고약한 범죄 중 하나다.
[책과의 교제]
---> 책에 대한 생각과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나와 정말 유사해 깜짝 놀랐다.
1) 독서에 대해
- 책과의 교제, 독서의 기술은 다른 여러 가지 삶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공들여 제대로 배울 가치가
있다.
-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의지이며 완전무결한 판단이 아닌 수용성과 진솔함, 선입견 없는
마음자세이다.
- 책 속에 담긴 모든 시대 작가들의 사고와 본질은 결코 죽은 것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인
세계다.
- 책은 진지하고 고요히 음미하고 아껴야 할 존재다. 그럴 때에만 비로소 책은 그 내면의
아름다움과 힘을 활짝 열러 보여준다.
* 어떤 책을 처음 접하면서 인상을 받았거든 얼마쯤 지난 후에 꼭 다시 읽어보라, 두 번째 읽을 때
비로소 그 책의 진수를 발견하게 되고,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던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글 고유의
힘과 아름다움이라 할 내면의 가치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얼마나 경이로운 경험인지 모른다.
---> 전적으로 천 % 동의하며 몇 해 전부터 내가 해 오고 있는 독서의 방식이다.
- 독자로서의 자세
1)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들한테는 절대 책을 빌려주지 마라
2) 어떤 책을 구입해야 할지에 대해 정해진 조언이란 없다. 각자 자신의 생각과 취향에 따르면
된다.
3) 독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대목은 편견이나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 위 2, 3번은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특히 독자들은 최근 우리 작가가 수상한 특정 상 획득 작품에 열광하는 데, 그 상은 여러
상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것에 현혹되어서도 또 호도되어서는 진정한 독서인이 될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작품은 소재성과 작품이 전해주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나는 신문이나 잡지류를 통해 접하는 정보를 통해 작품을 선정하기도 한다.
여기에 ‘어떤 출판사’에서 발간했느냐도 작품을 고르는 중요한 변수이기도 하다.
- 독서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세간의 평가와 합치되는지 여부가 아니라 오직 기쁨을 맛보고 자기
내면의 재산에 또 하나의 소중한 보물을 새로이 추가한다는 바로 그 점이다.
- 우리가 애정을 기울여 몰두할수록 독서는 더 깊어지고 오래간다. 책을 대할 때는 친구나 연인을
대할 때처럼 각각의 고유성을 존중해 주어야 하며, 그의 본성에 맞지 않는 다른 어떤 것도 요구
하지 말아라.
- 감동적인 언어로 쓰여서 무척 아끼는 책들이라면 때때로 낭독하도록 한다.
2) 책에 대해
- 독서하다 잠시 멈출 때 책을 덮지 않고 펼쳐놓은 채로 그냥 두는 습관은 좋지 않다.
- 집안 바닥에 아무리 멋진 카펫이 깔려 있고 호화로운 벽지와 명화가 온 집안을 뒤덮고 있다고
해도 책이 없다면 가난한 집이다.
[예술가와 정신분석]
- 정신분석학이 민중설화나 전설과 문학을 직접적으로 다루게 된 이후로, 예술과 정신분석 상호
간에 긴밀하고 유익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 새로운 토대 위에 세워진 심리학에 예술가들이 보낸 관심과 지지는 공식적인 학계에서보다
훨씬 더 컸다 특출하게 급진적인 사상의 경우 늘 학자보다 예술가 쪽이 훨씬 공략하기 쉬운
법이다. 이리하여 오늘날 프로이트 사상은 심리학자나 의학 전공자들보다도 오히려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더욱 활발하고 광범위하게 논의와 수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빌헬름 셰퍼 주제에 의한 변주]
- 참인 것은 그 역 또한 참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진리란 특정한 극에서 바라본 세상에 대한
통찰을 간략한 문장으로 담은 것인데, 모든 극에는 그 반대 극이 있기 때문이다.
- 작가의 소임이란 단순한 것을 중대하게 말하는 일이 아닌, 중대한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일이다.
즉, 작가의 소임이란 임의의 사소한 것을 마치 대단한 것인 양 꾸며내는 일이 아니라 진정으로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을 소재로 선택해 가능한 한 단순하게 기술하는 일이었다.
- 작가의 직분이란 세상에서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판별하는 일이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의미라는 것이 그저 단어에 불과함을,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없으면서 또한
모든 것에 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과 그러지 않아도 될 일이 따로 있지 않음을 끊임 없이 보여주는 그런 소임. 그런 고결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