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권유도 8

 

상황은 다르지만 중국판 <세일즈맨의 죽음>이라고나 할까?

 

주인공 허삼관은 생활이 곤궁하거나,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특히 자식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를 해결할 자금 마련의 일환으로 피를 판다. 그것도 피의 양을 많게 하기

위해 냉수를 잔뜩 마시고 소변도 참아가면서 자신의 피를 팔아 목적했던 필요한 돈을

마련한다.

 

작품의 큰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는 '매혈(買血)'은 중국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 어느

곳에서나 몇 년 전까지 - 아마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행하여지고 있을

것이다 - 만 해도 경제적 하층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던 행동으로서, 매혈은 특별한 육체적

노동이나 고생 없이 자신의 몸에서 단순히 일정량의 피를 뽑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손쉽게 벌게 되자, 인간들은 여타의 다른 수단을 고려치 않고 이 행동에 젖어 들었으며,

정상적인 경제적 활동을 통한 부의 획득에서 벗어난 저급한 행동에 익숙해져 쉽게 번 돈을

쉽게 쓰는, 예를 들면 건전치 못한 행동(마약, 매춘 등)으로 없애 버렸기 때문에

'매혈=인간 이하의 행동'이라는 고정 관념이 일반인들 속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나의 중학시절을 돌이켜 보면, 학교 가는 길에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병원이 있었는데

병원 정문 앞에는 매일 아침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 전부가 환자의 가족 내지는 병원과 관계되는 사람들인 줄 알았었으나,

사실은 모두가 피를 팔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속으로 굉장히 놀란 적이

있다. 그런 사정을 모를 때에는 거기에 줄을 선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불쌍하고 안됐다고만

생각하였으나, 그런 속 사정을 잘 아는 친구들로부터 줄을 선 사람들 대부분이 피를 판

돈으로 좋지 못한 목적에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 이상 그들에 대해 불쌍하게만은

보려 하지 않았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매혈이라는 단어가 '마약', '창녀' ''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매혈을 이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살아보려는 없는 자들의 발버둥

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 보았던 매혈의 대열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큰아들이 사고를 쳤을 때, 문화혁명 기간 동안 먹을 식량을 위해, 큰 아들이 간염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 때, 아들들이 좋은 직장을 배정받게 해 주기 위해, 주인공 허삼관은 주저

없이 자신의 팔뚝을 걷었으며 피를 팔았다. 자신의 쾌락과 건전치 못한 행동을 위한

비용이 아닌 가족들의 기본적인 생활 기반을 위해서.

 

젊은 시절 생명과도 같았던 피를 팔아가며 식구들을 먹여 살리던 주인공은 자신만의 행복

(돼지 간볶음과 황주)을 위해 또 다시 피를 팔러 갔을 때, 너무 늙어 피를 사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한다.

젊은 시절, 가족들의 안위에 온 힘을 받치며 살아온 뒤, 마지막으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사용하려고 살펴보니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화가 줄기차게 일어나던 시기에 나라의 경제적 기반이 약했던 우리나라나 중국의 일반

서민들이 택했던 '매혈'은 어쩔 수 없는 삶의 방편을 제공하는 최후의 어쩔 수 없는 없는

자들의 행위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매혈이라는 것은 없는 자들의 최후의 선택 사항임과 동시에 불가항력적인 행동이었으며,

기본적인 삶의 시간을 연장 시킬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이러한 매혈도 말 년에 자기

자신을 위해 쓰려 할 때는 이미 사용할 수 없게 된 가장의 모습이 가슴 깊이 각인되는

작품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맞이하게 될 노년, 노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부인 것이 하찮은

것으로 판명될 때, 우리는 쉽게 그런 현실을 웃으며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울음으로 받아들일까?

나는 오늘을 사는 또 다른 허삼관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허삼관 그를,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중국인이 아닌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우리 아버지 모습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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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 여불위 2
정 시앙밍 지음, 김하림 옮김 / 솔출판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권유도 8

 

최근 우리의 독서계에 돌풍을 몰고 온 작품 '商道'(최인호)라는 작품이 있다.

商人의 진정한 자세와 길에 대해 1800년대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실존했던 인물,

임상옥(林尙沃)이라는 사람을 통해 그리고 있다.

작품 商道의 주인공 임상옥은 '商人'으로서 자신의 분야에 최선을 다한 -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여불위'라는 작품의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이라면,

중국의 巨商 '여불위'는 단순한 보석상으로 출발해 '왕권이라는 상품'을 거래한 글자

그대로 희대의 '巨商'이었다.

 

여불위, 그는 상인이었으면서도 물품에 대한 혜안과 함께 사람에 대한 혜안을 두루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국(조나라, 효성왕)에 볼모로 잡혀 간 세손(이인, 후에 이름을 '子楚'로 바꿈)의 행동

면면을 보고 그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계획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으며, 국가 간

및 국가 내 권력 상층부의 상관관계를 냉철히 분석하고, 파악하여 줄대기를 잘 했으며

확실한 줄을 확인하고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있는데 상인이기 이전에 그는 전략가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작품을 읽으며 - 작품 자체는 우리의 작품 '商道'가 갖는 주제성, 극적 전개 등 과는 비교도

안 되는 3류 수준의 작품으로 밖에는 볼 수 없는 -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고 있는 샐러리맨

들이 배워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점검해 보면

 

첫째, 商人 이상의 현실 인식력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여불위는 우연한 기회에 적국인 조나라(효성왕)에 볼모로 와 있던 진나라(소양왕)의 세손

(이인)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 세손에게 접근하고 있다.

 

둘째, 목표 접근력과 달성방법에 대한 전략이 우수했다는 점이다.

여불위는 베팅 목표가 설정되자 자신이 자지고 있는 모든 것을 투자한다. 단순한 투자가

아닌 투자자로서 투자의 대상에게 '자산 가치 상승 방법'에 대해서도 지도하고 있다.

 

셋째 어떤 형태이든 '리더'는 덕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불위가 세손에게 비록 치졸한 방법이기는 하나 돈으로서 - 당시 사회 구조상 왕손인데

다른 무엇으로 할 수 있는 방법보다 돈으로서 부하를 이끄는 방법 외에는 더 이상의

최고의 방법이 없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 인근 마을사람들과 수하에 선비를 이끌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상기의 3가지 점이 바로 내가 '거상 여불위'라는 작품을 통해 어떻게 현상을 분석하고

접근해야 하는지에 관해 얻은 지혜이다.

거상 여불위는 한 나라의 왕권에 대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 베팅을 했고, 성공했다.

여불위를 일부 사학자나 작품 속에서 간악하고, 모사를 잘 꾸미는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나의 견해로는 그는 한 시대를 풍미 했고,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꾼

진정한 商人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사람이 셋이서 걸어가면 그 중에 선생이 반드시 한 명이 있다'는 옛말이 있듯이 어떤

일이든 부정적인 면만을 보지 말고 그런 역사적 사건의 뒤에 숨겨져 있는 참 모습 혹은

그 의미를 오늘의 관점으로 재분석하여 나름대로의 지침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여불위'를 바라보고, 삼국지에서 간악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 '조조

생각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우리가 읽고 있고, 들어서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승자의 입장에서 기술된 역사서를 기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은

올바른 시각은 아니라 여겨진다. 여불위와 같은 사람이 요새 우리나라의 정치권을 흔들고

있기는 하나 여불위의 상인 정신 정도는 배워 볼 만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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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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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8

  

조선시대를 통 털어 왕이면서 사후에 후손들로부터 ''혹은''라는 명칭으로 추존되지

못한 분이 두 분 계시는데 '연산군(10)''광해군(15)'이다.

작품은 그 중, 광해군이 어째서 존호를 부여받지 못하고 ''으로 격하되었는지 역사적

배경과 당시의 국제 정세 등에 대한 분석서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의 부족한 역사관에 부끄러움을 한

없이 느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그 어느 왕보다 외유를 많이 하여 민생의 처참함을 직접

목도한 광해군은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고, 안정화시키고자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각종 역사서는 증거하고 있으나 나는 여기서 광해군의 실책 몇 가지

확인해 보았다.

 

첫째, 정책의 중심으로서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비록 정권을 잡고 있는 대북파들의 입김이 거세게 작용해서 왕권이 제대로 발휘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나, 왕으로서 중요한 것은 참모들의 진언을 듣는 것도 중요

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왕으로서, 권력의 핵심으로서 추진하고자 하는 일에 확신이

섰을 때 이를 밀어 붙였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한 결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소견으로 광해군은 당시, 정치적인 입지가 부족했다고는 하나 너무도 대소

신료들에게 크게 의존하였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시 말해 역사는 후세에 전해지는 치적에 의해 당시의 왕을 평가할 뿐이지 왕을 보위

하는 신하를 통해 당시의 왕을 평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민중과 긴 시간을 함께 호흡했음에도 민심을 너무 몰랐다는 점이다.

임란 당시 북진해 오는 왜군을 피해 왕과 왕자들은 제각각 도피생활을 한다.

이때 함경도 쪽으로 피난 간 왕자들을 현지 백성들이 잡아서 일본인들에게 넘겨주었다는

점과 임란 당시 다른 집보다 궁궐이 제일먼저 불이 났다는 사실을 광해군은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왕권을 확립하고 자신과 선대 왕의 꿈인 북벌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할 수 있겠으나

왜란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궁궐을 중수하고, 신축하고 거기다가 국방을 튼튼히

한다는 이유로 인력을 무리하게 동원한 것은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몸뚱아리는 하나인 백성들이 이를 모두 몸으로 때우기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계획이나 연차적인 시행이 아쉬운 대목이라 하겠다.

 

셋째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 '夷夷制夷'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북파에 의해 정권의 핵심에서 밀려난 인물들을 왕 자신의 뜻을 세우고자 아무런 후속

대책도 없이 정권의 핵심으로 불러 들여서, 종내는 이들에게 배척 당하는 꼴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문제라는 것이다.

또 하나 아무리 화급하다 할지라도 왜군을 몰아내기 위해 또 다른 ''인 명나라군을

들인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들 명나라군은 끝내 조선에 대해 각종 행학이 지나쳐

나중에 광해군 자신의 족쇄로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이이제이전법을 쓰기 위해서는 정말로 심사숙고한 뒤에 추진했어야 할 것이나

광해군은 비록 자신의 아버지인 '선조'가 추진했다고는 하나, 이에 대한 방비가 미약했다

할 것이다.

광해군이 당시 처한 정치적 국제적 상황 속에서 행한 각종 정책이나 외교술은 당시의

시대적 안목을 꿰뚫고 행하였다는 점에서는 반론은 없으나 너무도 소심하게 추진한 것이

오히려 그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작금의 우리의 정치 현실을 보면 임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입장이기는 하나,

민생의 아픔과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하는 국회라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와 날로

쌓여만 가는 민생 법안들을 보면서 또 다른 광해군의 시대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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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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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9

 

조선시대의 정치적 사상과 크나큰 역사적 사건 주변에 송시열은 항상 있어 왔다.

그가 행했던 일에 대해 그린 작품이다.

 

[송시열의 등장과 성리학의 발전 기반]

송시열은 율곡의 학통을 이어받은 김장생의 문인이라는 점과 지방을 장악하고 있는

유학자라는 점을 인정받아 과거도 거치지 않고 '대군사부'가 되어 조정에 진출하는데

여기서 그가 조정에서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되는 이유는 '인조'의 둘째 아들인 '봉림대군

(장자 소현세자는 급서한다)의 스승이 되는데, 이 봉림대군이 인조의 뒤를 이은 '효종'

되면서이다. 졸지에 왕의 스승이 되어버린 송시열은 그의 문하생들을 중요보직에 앉히게

된다.

 

[효종의 북벌의지와 송시열에 대하여]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은 줄기차게 송시열에게 북벌을 요구하나 송시열은

의도적으로 이를 외면하였다고 한다. 효종은 북벌을 가시화시키기 위하여 당시 권력의

핵심부에 있던 송시열과 송준길을 각각 '이조판서''대사헌'에 올려 '인사권과 탄핵권'

주어가면서까지 또 조선시대 정치사에서 절대 금기시하던 왕과의 독대까지 하면서 북벌을

종용하였으나 송시열은 이를 외면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효종이 서거한다.

 

[1차 예송논쟁 혹은 기해예송]

자식인 효종이 죽자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喪服)의 기간이 문제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효종은 장자인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왕위에 오른 엄밀한 의미에서의 차자

, 둘째 아들인 것이다.

이것은 굉장한 의미를 갖는데 만약 차자의 상복을 입을 경우 선왕인 인조, 효종, 현종이

모두 정통성을 부여 받지 못하는 왕이 된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장자 직계들만이 왕권을 계승하였다는 점이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따라서 상복의 문제는 입는 기간의 문제 이전에 왕권의 정통성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송시열을 중심으로 하는 서인들은 '부모가 3년복을

입지 못하는 이유 4가지' , 사종지설(四種之說)을 올리게 된다.

 

[송시열(서인)과 윤휴(남인)의 대결]

송시열과 윤휴의 대립은 제1차 예송논쟁 당시부터 불거진다.

예송논쟁으로 인해 '사문난적(斯文亂賊)'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학문적, 정치적 적대자로

변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사문난적 논쟁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차 예송논쟁과 경신환국]

현종의 어머니가 죽으며 복제 문제가 또 다시 문제로 떠 오른다. 숙종은 등극하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송시열일파로 인해 곤란을 겪는 것을 목격하고는 서인인 송시열파를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의 입지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과감한 인사 조치를 취하며 송시열을

유배시키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서인 송시열의 퇴진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던 청남파(소론)와는 달리

허적은 송시열의 문제를 온건하게 처리하자는 탁남파(노론)였는데, 허적이 사사받으므로

해서 온건파가 조선 정치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고 서로 물고 물리는 당파싸움과

공작 정치가 판을 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난정의 등장과 송시열의 몰락]

장옥정이라는 여인이 숙종의 총애를 받다 왕자를 낳는다.

장옥정이 어린 왕자를 후계자로 삼는 과정에서 남인들의 집요한 공격으로 83세를 일기로

사사를 받고 죽는다. 송시열의 죽음은 남인의 재집권이라는 의미와 함께 조선 정치사에서

'화해의 정치'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結言]

송시열 그는 분명 뛰어난 학자였기는 하였으나, 그 학문이 갖는 특색인 '스스로를 정학

(正學)이라 부르고 여타의 학문은 사학(邪學)이라고 규정'한 편협된 사고로 인해 조선

개국의 정치적 이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의 국가를 정체와 후퇴 속으로 몰고가게

만든 역할을 하였으며 시대와 환경이 바뀌면 그에 맞는 사상과 이념이 변해야 함에도 불구

하고 정치적 기득권층의 기반 유지를 위한 사상의 정체로 인해 우리의 모든 면은 후퇴를

하게 된다. 송시열 그는 분명 훌륭한 성리학자였는지는 모르나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 학자면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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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이는 유대인의 모든것
김욱 지음 / 지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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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추천권유도 7

 

유대인은 유대교라는 종교적 합일성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한 단일정신의 군락이다.

국경과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진 현대 사회에서 '민족의 정체성'은 편협한 민족주의적

발상에 근거한 구시대적 명제이기는 하나 수 천 년을 떠돌이적 삶을 살아오면서 또 그 어떤

민족보다도 더 가혹한 냉대와 멸시 그리고 탄압을 받았으나 아직도 지구상에서 살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떳떳한 그들, '유대 민족'에 대한 저력을 확인해 보지 않고 위와같은 논리를

덮어 두기에는 뭔가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작품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다가가는 정도와 느낌은 각양 각색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단순한 '유대 민족의 고난사'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유대 민족의

'세계 역사 등장기' 정도로 이해하고 싶었으나, 작품 구석구석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네들의

'인내심''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보는 대목에서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한기를 느낀

그런 작품이었다.

 

그들이 5000년을 준비했다는 탈무드의 내용도 그렇고 '사업 = 우물'이라는 논리,

특히 세계의 내노라하는 전쟁의 이면에는 반드시 유대인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그 전쟁을

통해 한 몫 단단히 잡고 있다는 내용에서는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독한 놈들........' 하면서 말이다.

 

유대인, 그들은 불특정 다수의 민족들로부터 갖은 압박과 피박을 받았음에도 그들은

웃었으며 또 그들은 존재해 왔다. 작품은 유대 민족의 저변에 흐르는 정신적, 상황적 실태

를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는데, 단순히 유대 민족들의 고난사로 이해치 말고 유대 민족의

알려지지 않은 민족 투쟁사라는 측면으로 이해하고 읽으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유대인은 대단하다'라는 인식보다는 그들로부터 오늘을 사는

우리 민족이 아니 내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확인해 보는 그런 시간이었다.

작품의 주요 부분을 발췌하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내가 알고 있는 잡상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쓰지 않고 책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서 요약해 정리해 보았다.

 

 

   우리의 상식을 넓혀 주는 유대인에 관한 상식 문구들

 

- 유대인이 하나님을 부를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또 자신들을 가르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라고 부른다. 

- 1299'영국 정부'는 유대인 성서와 율법 책인 '토라'와 유대교 잠언집으로 불리우는 

   '탈무드'를 소각할 것을 법으로 정한 뒤 유대인에게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을 명한다.

   당시 영국은 문명국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문맹율이 높았으나 유대인들은 6~7세만 되면

   아이들이 읽고 쓸 줄 알았기 때문에 영국 정부는 유대인들이 무서워 그렇게 했던 것이다.

- '토라'에는 하나님과 유대인과의 계약 관계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라고 한다.

- 고대에는 유대인을 '히브리인(Ivrim)'이라고 불렀는데 '이브리'에서 유래한 말로서 

   '우리와 다른 인종'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유대인 노예들이 건설한 축조물이다.

   '개는 식탁에 앉혀도 히브리 노예는 앉힐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유대인을 피박했다.

- 아브라함은 바로 유대인의 시작인데, '모세''강물에서 건진 아이'라는 뜻임.

- 모세가 시나이 산 부근에서 유대인을 대표해 하나님과 종교적 계약을 맺는데 이것이 

   '십계명'.

- 유대인 격리 수용지구를 뜻하는 '게토(ghetto)'라는 말은 1516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 에스파냐 정부가 유대인을 박해한 이유는 이교도인 그들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 5세기부터 17세기 말까지 자행된 유럽의 유대인 박해는 1789년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

   부터 누그러졌다.

- 유대인들의 즐겨 쓰는 '루프트 멘슈(공기)'라는 단어의 의미는 '사물로 고정되는 대신

   기체가 됨으로써 타인의 손아귀에 쥐어지지 않는 것'을 말하는 데, 오랜 박해와 인고의

   세월이 그들의 가치와 개념을 여타 민족과 확연히 구분시키는 것으로 박해받던 시절

   유대인을 정신적으로 이끌어 주던 단어라고 한다. 

- 기독교인들이 볼 때 유대인은 예수를 살해한 죄로 민족 전체가 나라를 잃고 떠도는 저주

   받은 백성에 불과했다.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자비를 베푸는 행위는 유대인에게

   벌을 내린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모독으로까지 간주되었다.

- 로마 카톨릭은 유대 사회에 가장 적대적인 세력이었는데, 가톨릭의 선구자 '바올로'는 

   물론 교황의 시초가 된 '베드로' 역시 유대인이라고 한다.

-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마쉬아흐(Maschiach)'라고 하는데,

   이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고대 유대인이 왕에게 성스러운 기름을 붓던데서

   유래한 말이다헬라어로 하면 '크리스토스(Christos)'이며 여기서 그리스도가 나왔다.

- 가톨릭이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를 첫 번째로 여기는 까닭은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천국의 문을 관할하는 열쇠를 맡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으로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뱃사람이었다.

- 이슬람이 유대인과 다른 점은 아브라함과 여종 '하갈' 사이에 태어난 이스마엘 후손임.

   이와 달리 유대인은 아브라함과 본처인 '사라'사이에 태어난 이삭의 후손임을 자처 한다.

-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는 예루살렘에 아니라 미국의 뉴욕이다.

- 현대 사회로 대변되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 구축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모두 유대인이다.

- 유대인들은 생업을 가르켜 '우물'이라는 은유적으로 표현하길 좋아하는 데, 이들은 일생

   을 통해 우물을 3개 정도는 항상 마련해 두었다고 한다.

- 유대인에게 '거지(슈노렐)'라는 직업도 있다. 이들은 학식도 높고, 가정도 있다

   전통적으로 이들 거지를 가르켜 '하나님의 배려'라고 부른다. ,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 수 있게끔 하나님이 거지들을 예비했다는 뜻이다.

- 인류가 시작된 '아담'은 유대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임. 오직 유대인만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자긍심이 오랜 박해 속에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낸 배경이었으며,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유대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삶의 모태이다.

- 유대인은 고통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수고를 낳으며, 수고가 결국 성공을 낳는다고는 

   전통적인 가르침을 철저하게 신봉하고 있다.

- 유대인들에게 있어서의 '유월절'400년간 지속된 이집트의 박해에서도 그들 문화에

   동화되지 않았으며,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기념하는 날로서 모든 음식은 삶을수록

   부드러워지지만 달걀은 더욱 단단해지기 때문에 이 날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삶은 달걀

   을 먹는다고 한다

- 유대인은 실패를 기억하지 않는다. 성공을 기념하지도 않는다. 오직 고난과 역경만을

   기억하고 기념한다.

- 미국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미국식 정식 이름은 '대학살 순교와 영웅(미국 친구)

   들의 기념관'으로, 히브리어 정식 명칭은 '야드 바셈'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름을 기억다

   는 뜻이라고 한다.

- 유대인의 속담에 "돈을 벌고 싶다면 혼란을 틈타라"라는 말이 있다. 역사적으로 전쟁의

   비극이 있을 적마다 유대인들에게는 비극이 아닌 기회였다.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원정,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 등)

- 나폴레옹과 영국이 전쟁을 벌이자 각각의 군대에 군자금을 '로트실트 형제' 가 댔는데,

   셋째가 밀은 영국이 승리하자 '붉은 방패'라는 뜻이 담긴 독일어 'Rothschld' 에 귀족

   호칭을 하사하고 영국식 발음인 '로스차일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로스차일드는 철도 회사를 운영했는데 철도가 안고 있는 운송적 가치보다 정보적 가치를

   더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한 량의 객차마다 정보원을 배치해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해

   정치권에 제공했다.

- 강한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 유대인이 가장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노년에 자식의 도움이 필요할 때'라고 한다.

- 사업상의 신뢰는 반드시 지키나, 인간적으로는 신뢰하지 않는 것이 유대인의 철학이다.

- '싱크 탱크'를 최초로 생각해 낸 집단이 바로 유태인이다. 싱크 탱크는 한마디로 권위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데 존재의 가장 큰 이유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 유대인과 몽골족은 성벽을 거부함으로써 성공한 대표적인 민족이다.

- 유대계 인물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찾아냄으로써 성공을 이뤄

   냈으며, 성공한 유대인으로 회자되고 있는 사람의 특징은 모두 기존의 막강한 권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 탈무드의 맨 마지막 장은 항상 여백이다. 그 이유는 유대인의 삶이 계속되는 한 탈무드의

   지혜도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 구약성서의 아가, 잠언,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 왕으로, 그는 유대인 최초로 그들만의

   성전을 건축한 인물이다. 잠언의 히브리어 제목은 '미실레 셸로모'로 이는 '솔로몬왕이

   가르치는 슬기로운 삶의 지혜'라는 의미로, 전도서의 히브리어 제목은 '코헬렛'으로 이는

   '백성에게 지혜를 전파한다'라는 의미다.

- 유대인의 자식 교육 방식 '나보다 단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된다'이다.

- 영어의 'jewish mother'라는 단어는 '유대인 어머니'라는 뜻도 있지만 '어머니들의

   극성스런 치맛바람'이라는 뜻도 있다.

- 아파도 눈물이 나오고, 웃어도 눈물이 나오나 웃을 때의 눈물은 눈동자를 빨갛게 만들지 

   않는다.

- 설득은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이지 관계를 돈돈히 만드는 데 적합한 방법이 아니다.

- 현대사회에서 자녀에게 올바른 감수성과 정확한 판단력을 길러 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아이들이 어른들의 세계에 다가 오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는 어른에게만 주어진 책임과

   특권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기 위해서이다.

- 인생은 'what'을 찾아 떠나는 인생이다. 'what'을 상실한 인생이 'how'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 묵묵히 자신의 정신을 가다듬는 자만이 훗날 남과 다를 수 있다.(중국, 강엄)

 

[가정 교육에 관한 그들의 지혜]

- 아버지를 뜻하는 히브리어 '압바(abba)''교사, 선생'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 방관도 교육이며 인간의 가장 오래된 학교는 체험이다

- 지혜는 듣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데서 시작한다.

- 하나를 듣고 한 가지를 외우는 것보다, 반마디 말을 듣고 세 마디 말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교육이다.

- 받아 들이고 받아 들이지 않고는 전적으로 아이의 타고난 개성과 능력에 달려 있다.

- 싫다면 할 필요가 없다. 다만 하고 싶다면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 자녀를 주의하라, 그 아이들은 온 몸으로 듣고, 기억한다.

 

[책에 언급되어 있는 탈무드의 가르침]

 

유대인이 위기 때마다 다가올 변화를 예측하고 방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태의 핵심인 

    인간의 본직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수를 준비했기 때문인데 그것이 5000년에 걸쳐

    준비한 '탈무드'이다.

 

노아의 방주 당시 모두가 쌍을 이루어 배에 타라고 했으나 '(')'은 혼자 탈 수 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홀로 남은 '()'에게 같이 가자고 하자 ''은 같이 배에 타는

     조건으로 ''에게 어디든 함께 다니자고 제안했다.

     그 후로 ''이 있는 곳에는 항시 ''이 따라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처음 ''을 마셨을 때는 양처럼 순해진다.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분노하고,

     그 보다 더 마시면 '돼지'처럼 지저분해 진다. 더욱 많이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을

     추거나 노래를 한다. 이는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손을 쥐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쥘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죽을 때 손을 펴는 이유는 그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악마는 사람을 찾으러 다니기 힘들 때마다 자신을 대신해 ''을 보낸다.

 

가장 강한 인간이란 자신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인간이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나타나는 남자의 일곱 가지 변화

   1) 한 살은 왕            2) 두 살은 돼지                   3) 열 살은 염소새끼

   4) 열 여덟은 말        5) 결혼 한 후 당나귀      6) 중년은 개         7) 노년은 원숭이

  

탈무드의 동화에 하나님이 인간의 눈을 '검은자위''흰자위'를 주신 이유를 인간은

    어두운 부분을 통해서 만이 참다운 인생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마음이 거만해지려고 할 적마다 조물주가 모든 만물 가운데 가장 맨 마지막에

    만든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떠 올려라.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에서 만든 이유는 그녀가 늘 남자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존재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 남자는 결혼하면 죄가 늘어난다. 아내를 이유없이 괴롭히지 말라. 하나님이 그녀의

    눈물을 세고 계신다.

 

나를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다. 죄는 처음에는 여자처럼 약하지만, 내버려 두면

    남자처럼 강해진다. 죄는 처음에는 거미줄처럼 가늘지만, 나중에는 배를 묶을 수 있는

    밧줄처럼 단단해 진다.

 

소문은 살인보다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만 죽일 수 있지만, 소문은 한꺼번에

    세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다. 소문을 퍼트린 사람, 그 소문을 믿는 사람, 그리고 소문의

    주인공이 그들이다. 손가락이 자유로이 움직이는 까닭은 소문을 듣지 않기 위해서다

    소문이 들리면 서둘러 귀를 막아라.

 

안식일을 가르켜 '3의 눈'이라고 한다. 6일 동안 육신의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보았다면 안식일의 휴식으로 나를 바라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인이 되는 7가지 조건

   1)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으면 침묵하라

   2) 남이 이야기할 때 말허리를 자를지 마라

   3) 대답할 때 당황하지 마라

   4) 늘 알아듣기 쉬운 말로 질문하고, 조리 있게 대답하라

   5) 먼저 쉬운 일부터 시작하고, 어려운 일은 뒤로 미루라

   6) 자신이 모를 때는 인정하라

   7) 사실을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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