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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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8

 

상황은 다르지만 중국판 <세일즈맨의 죽음>이라고나 할까?

 

주인공 허삼관은 생활이 곤궁하거나,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특히 자식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를 해결할 자금 마련의 일환으로 피를 판다. 그것도 피의 양을 많게 하기

위해 냉수를 잔뜩 마시고 소변도 참아가면서 자신의 피를 팔아 목적했던 필요한 돈을

마련한다.

 

작품의 큰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는 '매혈(買血)'은 중국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 어느

곳에서나 몇 년 전까지 - 아마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행하여지고 있을

것이다 - 만 해도 경제적 하층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던 행동으로서, 매혈은 특별한 육체적

노동이나 고생 없이 자신의 몸에서 단순히 일정량의 피를 뽑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손쉽게 벌게 되자, 인간들은 여타의 다른 수단을 고려치 않고 이 행동에 젖어 들었으며,

정상적인 경제적 활동을 통한 부의 획득에서 벗어난 저급한 행동에 익숙해져 쉽게 번 돈을

쉽게 쓰는, 예를 들면 건전치 못한 행동(마약, 매춘 등)으로 없애 버렸기 때문에

'매혈=인간 이하의 행동'이라는 고정 관념이 일반인들 속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나의 중학시절을 돌이켜 보면, 학교 가는 길에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병원이 있었는데

병원 정문 앞에는 매일 아침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들 전부가 환자의 가족 내지는 병원과 관계되는 사람들인 줄 알았었으나,

사실은 모두가 피를 팔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속으로 굉장히 놀란 적이

있다. 그런 사정을 모를 때에는 거기에 줄을 선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불쌍하고 안됐다고만

생각하였으나, 그런 속 사정을 잘 아는 친구들로부터 줄을 선 사람들 대부분이 피를 판

돈으로 좋지 못한 목적에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 이상 그들에 대해 불쌍하게만은

보려 하지 않았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매혈이라는 단어가 '마약', '창녀' ''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매혈을 이런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살아보려는 없는 자들의 발버둥

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 보았던 매혈의 대열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큰아들이 사고를 쳤을 때, 문화혁명 기간 동안 먹을 식량을 위해, 큰 아들이 간염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 때, 아들들이 좋은 직장을 배정받게 해 주기 위해, 주인공 허삼관은 주저

없이 자신의 팔뚝을 걷었으며 피를 팔았다. 자신의 쾌락과 건전치 못한 행동을 위한

비용이 아닌 가족들의 기본적인 생활 기반을 위해서.

 

젊은 시절 생명과도 같았던 피를 팔아가며 식구들을 먹여 살리던 주인공은 자신만의 행복

(돼지 간볶음과 황주)을 위해 또 다시 피를 팔러 갔을 때, 너무 늙어 피를 사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한다.

젊은 시절, 가족들의 안위에 온 힘을 받치며 살아온 뒤, 마지막으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신을 사용하려고 살펴보니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화가 줄기차게 일어나던 시기에 나라의 경제적 기반이 약했던 우리나라나 중국의 일반

서민들이 택했던 '매혈'은 어쩔 수 없는 삶의 방편을 제공하는 최후의 어쩔 수 없는 없는

자들의 행위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매혈이라는 것은 없는 자들의 최후의 선택 사항임과 동시에 불가항력적인 행동이었으며,

기본적인 삶의 시간을 연장 시킬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이러한 매혈도 말 년에 자기

자신을 위해 쓰려 할 때는 이미 사용할 수 없게 된 가장의 모습이 가슴 깊이 각인되는

작품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맞이하게 될 노년, 노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부인 것이 하찮은

것으로 판명될 때, 우리는 쉽게 그런 현실을 웃으며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작품 속의 주인공처럼 울음으로 받아들일까?

나는 오늘을 사는 또 다른 허삼관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허삼관 그를,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중국인이 아닌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우리 아버지 모습으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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