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 주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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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을 통해 일본군이 전개한 작전을 통해 뭔가를 배워 보자는 군사전력 및 작전상의

일본군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접한 게 아니라, 한 때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했던 일본 경제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아베 노믹스, ‘위기의 G2’ 등으로 폄하되고 

종국엔 잃어버린 10운운하는 2류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며 작금의

일본, 일본인들이 봉착한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반성하는 자세로 자국의 인텔리들이 분석한 작품이라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그들이 경험한

실패를 경험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 속에 그들이 제시한 문제점에서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내용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해당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작품을 읽다보면 8, 90년대 일본 경제성장과 발전단계를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그들의

뒤태를 마냥 부러워만 했던 기업의 구성원으로 활동했었던 나로서는 그간의 상식을 뒤집는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저자의 관점에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일본은 내가 알고 있고, 접해 왔던 스마트한 일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주장은

일본군의 조직 특성은 전후 일본 사회의 조직 일반에 무비판적으로 계승

된 결과라고 단언하고 있다.

일본군들이 저지른 실패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 대표적인 6개의 실패한 작전을 통해

싸우는 법지는 법의 조직론적 규명에 그 목적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통렬하게 

일본군 실패의 최대 본질은 특정한 전략 원형에 너무나 철저히 적응해 적절한 시기에 학습 

기각을 이루지 못해 자기 혁신 능력을 잃고 만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일본군은 과거의 성공에 얽매인 나머지 자기 혁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으며

일본군이 자기 혁신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일본군 조직 원리 때문이라고 하면서 과거의 성공에서

일반적인 원리를 뽑아내 조직원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이 없었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쓸모

없게 된 지식은 버리는 조직 학습의 과정이 없었으며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조직 문화가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 노몬한 사건(19395~ 9)

1) 작전의 목적이 애매, 중앙과 현지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했다.

2) 정보를 독선적으로 수용, 해석

  - 적의 사정은 물론 자신들이 처한 위치도 모른 채 전투에 참가했고 사무적인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 참모 중 누구도 실제 전장에 나가보지 못한 채 전장에 임함

3) 전투를 객관적 전력보다는 장병들의 정신력에 의존

  - 당시 상하를 막론하고 일본군은 정예 강병이라고 과신하고 있었는데 이는 중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 과정을 거치며 일본군은 전투 조직으로서의 합리성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화

   되었다. 일본군은 근거도 없는 낙관주의에 빠져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하다 보면 어떻게든 

   수가 난다라고 생각한 반면 적군은 합리주의와 물량으로 제압.

 

2. 미드웨이 작전

  1) 불분명한 목적과 예측하지 못한 상황 발생 시 임기응변적 대응 취약 

  2) 정보의 경시와 기습 대처 부족

  3) 모순된 군 편성

  4) 전체를 지휘해야 하는 사령관의 전투 참여

  5) 수색 및 항공 작전지휘의 실패

  6) 방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

  7) 피해 복구에 대한 준비부족


3. 과달카날 작전

  1) 전략상 커다란 밑그림이 없었다.

  2) 빈약한 정보력, 병력의 계속적인 투입 실패

  3) 미군의 상륙작전에 대한 효과적 대처 미흡

  4) 일본 육군과 해군의 합동 작전 미흡

  5) 자율성이 없었고, 현장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4. 임팔 작전

  1) 하지 않아도 되는 작전

  2) 인간관계를 과도히 중시한 인정주의와 강렬한 사명감에 사로잡힌 개인의 돌출행동

  

5. 레이테 작전

1) 작전의 목적이 애매모호, 작전 수행능력이 저하된 부대

2) 임무 분석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작전 


6. 오키나와 작전

사령부와 현지군 사이의 인식 차이와 의견의 불일치 및 그로 인한 비합리적인 전략 수립

, 최고 사령부가 주장한 항공결전 지상주의와 현지 주력군이 주장한 지상전 중시주의

이것은 다시 말해 이상현실의 괴리에서 나타난 패전이었다.

 

[실패의 본질]

- 하나의 실패가 직간접적으로 이후의 실패에 영향을 미쳤다.

  즉, 일본군은 각각의 작전에서 조직으로서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으로서 작전을 실시해

  결과적으로 조직으로서 패배했다.

- 전략상의 실패요인

  1) 애매한 전략 목적

  2) 단기결전 지향의 전략

  3) 주관적이고 귀납적인 전략 수립 - 분위기의 지배

     : 일본군은 귀납적, 미군은 연역적이다. ‘연역이란 일반적 법칙에 따라 개별 문제를 이해하는

     것, ‘귀납이란 경험한 개별 사실을 종합하여 일반적 법칙을 발견하는 것

     따라서 일본군은 사실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직시하지 않은 채, 상상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

     거나 본질과 상관없는 자잘하고 일반적인 일에 몰두하는 상황이 빈번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군 조직 안에 논리적인 의논이 가능한 제도와 풍토가 없었기 때문이다.

  4) 좁고 진화하지 않은 전략 대안들

    : 정신력만 강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의 만연, 반면 군사기술을 정신력 다음이라고 여겨

    경시되었다

    전술의 실패는 전투로써 보충할 수 없고, 전략의 실패를 전술로써 보충할 수 없다.

    가장 두드러진 실패의 원인은 어떤 작전 계획의 중요한 전제가 실전에서 성립되지 않거나 

    상황이 바뀔 경우를 대비해 대응 작전을 짜야 하는데 일본군은 이를 가볍게 여겼다.

  5) 균형이 맞지 않는 전투 기술 체계

 

[조직상의 실패 요인 분석]

  1) 인맥 편중의 조직 구조

  2) 개인 중심의 조직 통합

  3) 학습을 경시한 조직 : 정보 공유 시스템이 없었다

- 어떤 조직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오랜 기간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에 비추어 수정하고, 나아가 학습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이른바 자기 혁신적 

  또는 자기초월적 행동을 포함한 이중고리학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 학습하는 조직만이 진화할 수 있다. 조직은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선택하고 쓸모없는 지식은 버려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직은 지식을 축적해 간다

- 조직 학습은 조직 구성원이 하는 학습이 서로 공유, 평가, 통합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생겨난다.

- 조직문화는 가치, 영웅, 리더십, 조직관리 시스템 의식 등이 서로 일관되게 상호 작용하며 

  만들어진다.

  4) 과정이나 동기를 중시한 평가

- 일본군은 결과보다 과정을 높이 샀다. 개별 전투에서 결과보다 지휘관의 의도 또는 전투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의지를 더 비중 있게 보았다.

 

[실패의 교훈]

- 조직의 환경적응 이론은, 조직이 환경에 능숙하게 적응하려면 그 조직이 직면한 환경이 주는

  기회와 위협을 조직이 갖고 있는 전략과 자원, 조직 특성(구조, 시스템, 행동)과 서로 적합하게

  맞추어야 한다

  즉, 어떤 조직이 환경에 계속 적응해 나가기 위해서는 조직 스스로가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전략을 세우고 또 주체적으로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이 바로 자기혁신 조직이다.

- 조직 안에서 긴장을 창조하려면 리더가 객관적 환경을 주관적으로 재구성하거나 연출할 줄

  아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며, 성질이 다른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며, 적절한 인재를 발탁해

  권력 구조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파괴하는 일이 관건이 된다

- 서로간의 협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통합적 가치 또는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작품을 읽으며 내가 경험했고 목격한 일본인들이 세상 사람들이 내가 파악한 사항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에 대해 너무 과잉 칭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오랜 시간동안 가졌던 것이 사실인데. 일본과 일본인들의 속살을 그들의 관점에서 진솔되게 

벗겨내려 노력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 대목을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게 일본과 일본인들을 생각해도 그들은 반드시 금세기 내에 여러 분야에서 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한계와 파국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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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반사회 - 586, 그들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김은희 지음 / 생각의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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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작품을 덮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작품으로 얻은 무언가를 평하고, 무엇을 느꼈다고 어떤 소회를 기록해야 하는데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양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물도 마시지 않고 대 여섯 개를 연속으로 먹은듯한 느낌이 동시에 들기도 하였다.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한 양반이란 운동권 출신이어야 하고, ‘적폐를 몰아내는 데 선봉에 서야 하며.

일제 잔재 청산에 앞장서지 않는 한 이 시대의 주류 양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날 이때까지 평범하게 살아 온 나는 운동권 운동도, 적폐를 척결해야 한다는 알량한 시대적 

사명감도 없었고 더 나아가서는 일본 순사 출신이었던 외할아버지로 인해 자괴감에 빠져 작품의

화두인 신양반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었다.

하지만 작품을 접하며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는 부분을 발견했고 이를 나의 역사 의식과

사회적인 시각으로 정리해 보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오피니언 리더급 인사들이 인식하고 있었을 여러 문제점을 이제

 까지 어느 누구도 소명 의식을 갖고 공론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며 소위

 이 시대의 리더들이라는 작자들은 그들이 먼저 확보하고 있는 기득권을 쉽게 내려놓지

 않으려는 현상유지 의식과 그 기득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으려는 집단 

 간의 싸움으로 인해 우리 서민들의 삶이 하루가 다르게 피곤해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이를 해소하려는 주인의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박한 질타가 눈에 보였고, 귀에

 들렸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대목 중 내가 큰 공감을 갖는 대목 몇 곳을 정리해 보면

 

1. 조선과 같이 권력이 중앙정부에 집중된 국가에 아무개의 후손들로 구성되는 부계친족 

   집단이 번성했던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희귀한 사례이며 조상이 조정에 들어가 얼마나

   이름을 날렸는가에 따라 후손들의 사회적 신분이 정해졌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 문무관을 지칭하던 양반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 거의 세습적인

   지위가 된다.(P 33)

   죽은 지 4 ~ 500년도 더 되는 먼 조상의 자손임을 확인해 주는 본관같은 관습이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 한국 밖에 없다.(P134)

   본관 제도는 한국 사회에서 조상으로 인정받고 기억되기 위해서는 중앙에 진출하여 널리 

   이름을 알려야 함을 잘 보여준다. 조선 사회에서 혈연이 중요한 이유는 그만큼 중앙집권적

   관료제에 진출하는 것이 친족집단에 중요했기 때문이며(P138~9) 양반은 문화적 규범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았던 신분계층이었기 때문에 양반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P 40)

 

2. 일제에서 해방된 지 70여 년이 되어도 친일파혹은 빨갱이였던 조상 때문에 그 자손은

   손가락질을 당하고 조상의 행적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하는 사실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자는 이 시대에 걸맞는 행동인가를 되짚어 보게 하고 있다.

 

3. 조상과 후손을 동일시하는 아무개 자손이라는 혈연의식은 중국 고대의 종법제가 조선 후기

   양반 계층에 널리 퍼지면서 강화되었는데 중국의 종법제는 하늘에 대한 신앙과 함께 조상 

   숭배를 강조하는 유교사상의 근원이 되었다.(P143~4)

    중국의 종법제는 고대 주나라의 제도였지만 진한시대 이후에는 소멸해(P167) 버렸음에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시퍼렇게 살아서 날 뛰고 있는 게 현실이다.

 

4.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서구 근대사회에서처럼 법을 지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정의로운사회는 법을 지키는 사회가 아니라 유교적 를 실천하는 사회다.(P 42)

    결국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우리 사회의 유교적 공동체주의고 그런 이념적 바탕을 무기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 하는

   저열한 정치집단의 치졸한 이념 논쟁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대표작인 사항이 저자도 주장하고 있지만

독립운동의 정신이 만들어낸 도덕국가에서 촛불시위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선언은 촛불정권인 문 정부에 막강한 도덕적 권위를 부여한다. 문 정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독립운동에서 찾고 독립유공자와 후손에 대한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약속

 하는 것은 종국적으로 운동권 세력의 도덕적 기반을 굳건히 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볼 수 있지만 문 정부가 주창한 남한의 경제적 번영을 독립운동 정신의 결과라고 주장

 하는 것과 비슷하게 북한 정권 역시 해방 후의 역사를 빨치산 항쟁의 역사에 종속

 시키고 있다.(P 59 ~ 60)

 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후 경제적 번영의 역사는 정의가 무너지고’, ‘불의와 타협하는

 왜곡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역사였기 때문에 청산되어야 하며 경제적 발전은 해방 전

 독립운동의 정신이 구현된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이전 정권의 역사관이다.(P116)


이런 역사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전 정권은 그들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대중적 합의나 심도

있는 토론 없이 그들만의 나를 따르라는밀어붙이기식 행동으로 혼란과 국론 분열을 자초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내세운 철학 위에 내세운 인물들인 전 광복회 회장의 비정상적인 회계부정

의심사고를 비롯해 정신대 할머니들의 비용 문제를 일으킨 윤 씨 문제가 그랬고 어느 명문

대가집 조 씨 일가가 벌인 일에 대해, 이전의 총리였던 어느 여성분을 단죄한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또 작금에는 법인 카드로 초밥 몇 만원어치 산 것을 문제 삼는다고 난리치는 상황은 

그들 스스로 신양반임을 천명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작품 내용의 정리에 들어가면(문구와 내용 모두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작품에서 얻은 몇가지를 정리해 보면


- 한국 사회의 구성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양반,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며 살아온 사회운동가들로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사람들, 그리고 일후 사회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이 이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소인, 자신의 이익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기득권적폐 세력을 모두 포함한다.

   이들은 운동가들에게 빚을 졌으며 고로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지자들은 말한다.

   운동가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법 위에 존재하는 윤리 규범인 유교의 에 가깝다.

 

- 유교에서 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기록하고 분석하기 보다는 인물과 행위에 대해 시시

  비비를 가리는 도덕적 평가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운동가들은 한결 같이 법의 원칙과 절차, 그리고 과학적 혹은 합리적으로 도출

  된 사실을 멀리하였다.

  대신 문제의 인물들이 살아온 내력과 평판을 내세우며 그들의 도덕적 우월성과 

   ‘역사적 사실을 강조했다. 그들이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는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금에 문제가 되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용을 임의로 처리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윤 모씨의 불투명한 회계문제, 죽창가를 외치자고 소리 높여 

  외치던 조씨 일가의 문제적 행동에 대해 노동운동과 약자의 인권을 위해 의롭게살아

  왔다며 그의 도덕적 우월성을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대의를 위해 일해 온 사회

  운동가들에게 법률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 역사 바로 세우기는 현대 한국인들이 가진 양반의식과 유교적 역사관을 잘 드러낸다.

   역사기술의 궁극 목적은 근대 역사학처럼 객관적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구분하고 과거를 도덕적 기준에 따라 심판하는 데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바로세우기는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가 되며 불의가

  득세했던과거는 정의로운사회를 만들기 위해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된다.

 

- 유공자 후손에게 보훈의 차원을 넘는 보상을 하는 것은 엄격히 말해 민주사회의 평등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참전 군인을 포함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의 대상은 유공자 

  본인과 그의 배우자 그리고 그의 미성년 자녀로 제한한다.(P 55)

  친일 청산과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는 모근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한 시민

 사회에서 조상이 누구인가를 따지던 양반사회로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다.(P 57)

 

- '친일 청산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겪는 갈등의 중심에는 누가 도덕적으로 우월한가라는

  물음이다. 그들이 지향하는 정의로운사회, ‘공정한나라, ‘진정한민주국가는 도덕성이

  세습되는 불평등 사회다. 특정한 범주의 조상을 가진 사람들을 우대하거나 배제하는 사회는

  평등한 시민사회가 아니다.(P 64)

 

- '통일의 꽃임수경이 탈북자들을 변절자로 매도했던 것도 정신을 물질보다 우위에 두는

  운동권의 관점으로 살겠다고 일제에 저항하지 않은 친일파나 굶주리지 않겠다고 국경선을

  넘은 사람들이나 비슷하게 변절자들인 것이다.(P 66)

 

- 성장보다는 균분과 안정을 강조하고 부의 축적을 죄악시한 양반사회의 경제관은 산업화된

  한국 사회의 많은 민주화운동가들에 의해 계승되어 왔다고 보인다.(P 86)

 

- 이전 정부에서는 빈부격차부의 세습을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 중에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부상시켰다. ‘이익 공유제’, ‘사회적 기업 만들기’, 부동산 투기를 응징하는

  ‘임대차 3등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고 부를 축적하는 일상적 행위까지 지나치게 억압하는

  반자본주의적 정책에는 부의 균등한 분배를 가장 우선시하는 유교적 경제관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P 86)

 

- 운동권 정부는 전문가 집단들과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이 싸움은 명예를 독점하고자 하는

  신양반 운동권과 명예를 획득하려는 전문가들 사이의 싸움이 될 것이다.(P100)

 

- 박정희가 보여주었던 잘 살아보세’, ‘일하는 정부등의 슬로건은 도덕적 교화를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조선시대 양반 리더십과 결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P105)

  박정희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많은 부분은 문화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 ‘민주화세력은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국부를 늘리는 정치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고,

 군주의 강력한 리더십을 견제했던 양반사회의 유교적 관점에서 박정희를 비판했다.(P114)

 

- 유교적 관점에서 항일 무장투쟁은 나라 잃은 민족의 지도자가 해야 할 최고의 도덕적 행위

  였다.(P114)


- 정경유착은 '이익을 추구하고 를 축적하고자 하는 사적 영역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유교적 문화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치적 권력을 등에 업지 않으면 사유재산이 확고하게 보호받지 못 할 때 개인은 정치

 권력을 끼고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고자 한다. 국가권력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법으로 보장

 하지 않고 도덕적인 명분으로 규제하고자 할 때 개인은 부자가 되기 위해 정치권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P116)

 

- 정부가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는 특정한 정치 성향의 시민단체 활동가만 사회적 가치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대우하고 그들에게만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특권층으로 만드는 것이며 민주주의가 가진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P188)

  정부의 여론 정치는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공론정치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이다.

 

- ‘도학정치를 실현하겠다는 훌륭한 의도로 제도화된 삼사의 간쟁 활동은 국왕의 일거수

 일투족이 공사 구분 없이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신진 사류의 급진적인 간쟁 활동은 조정 대신들에게는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대신들이 지적했던 신진 사류의 문제점은 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세력혹은 운동권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P190)

 간관들은 자주 대신들의 인격과 인간성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만

 옳고 바르며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 대신은 악인으로 비난하고 배척하였다.

 요즈음 친일파조상을 따지듯이 그 당시에도 남의 조상 파헤쳐 고발하는 것이 곧은 행동인 양

 생각했으며 , ‘훈구파들은 상소문을 올리며 신진사류들을 비판하였다.(P191)

 

- 향촌 사회에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추상적인 규칙이나 원리원칙에 따르지 않고

  지지 세력을 동원하고 과시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하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P212)

 

-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시민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생각만을 시민의 명령이라고 불렀다.(P216)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 시대의 진정한 신 양반은 아래 컬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우정 칼럼] 유시민의 프락치 사냥, 그 후예들(논설위원, 2022.08.24.)

 

요즘 기이한 장면이 김순호 행정안전부 신임 경찰국장을 겨냥한 야당과 재야 좌파의 프락치 

사냥이다. 논점은 단순하다. 33년 전 주사파 운동권에서 공안 경찰이 된 김 국장의 변신과정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동료를 배신하고 밀고한 대가로 경찰에 특채된 것 아니냐

프락치 경력을 자백하라고 한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모호한 말들 이외에 증거는 없다

누군가 이런 식으로 빨갱이 사냥을 했다면 그들은 일치단결해 색깔론으로 역공을 퍼부었을 

것이다.

 

프락치 사냥은 말로 끝내는 논쟁이 아니다.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의 피해자 전기동씨가 3년 전 김명일 현 조선NS 기자와 가진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 실감할 수 있다.

방송통신대 법학과 3학년 때 자료를 얻으려고 서울대에 갔다. 누군가 얘기 좀 하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아니라고 하자 교련복으로 갈아입히고 눈을 가렸다.

돌아가면서 몇 시간씩 폭행했다.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부었다.” “전두환 전 씨라고 더 심하게 때렸다는 증언에선 가해자들의 악마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남의 신체에 고통을 주다 못해 인격을 가지고 장난질을 친 것이다.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으로 구속된 유시민씨.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감금, 고문인격

살인을 저질렀지만 수감 중 시종일관 당당했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법정에서 후회한 일도 사죄한 일도 없다. 가해자 대부분은 한국 사회의 지배층으로 출세했고,

피해자는 프락치 낙인을 안고 대부분 불행한 삶을 살았다.

서울대생을 부러워하는 방송대생, 공무원 시험 준비생, 재수생 등 4명이 피해자였다.

프락치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범인들은 1년 안팎의 징역형만 받았다. 법정에서 후회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영웅 놀이를 했다.

유시민씨는 그때 얻은 명성을 발판으로 장관에 올랐고 TV에 나와 당시 일을 자랑했다.

유시민은 노덕술, 이근안을 포함한 한국의 역대 고문 가해자 중 가장 출세한 인물이다.

공범 윤호중씨는 민주당 원내대표, 이정우씨는 로펌 변호사, 백태웅씨는 미국 대학 로스쿨

교수가 됐다. 공범들은 유씨가 고마울 것이다. 그의 현란한 언행이 추악한 범죄를 민주주의

서사로 둔갑시키고, 일그러진 자화상에 민주 투사의 가면을 씌웠기 때문이다.

그들을 단호하게 단죄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도 계속되는 프락치 사냥이다.

 

김 국장의 이력을 보면 그가 왜 타깃인지 알 수 있다그는 낮은 계급인 경장에서 시작해 장기간 공안 수사에 몸담았다. 반제·반파쇼·민중민주주의

혁명 그룹 사건을 해결해 특진했고, 남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동맹 사건을 해결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한국의 좌익은 공안 경찰을 정보기관보다 더 증오한다고 한다.

좌파의 풀뿌리를 뽑아내 그들의 증식 공간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몸담았던 인노회 조직원들은 통일사회주의 혁명, 민족 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했다.

대법원이 이적 단체라고 했든 안 했든,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지배했다면 지금 한국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조직을 버리고 경찰로 전향한 것은 공격받을 일이 아니다.

설사 그들 주장대로 김 국장의 수사 협조 때문에 조직이 해체되고 조직원이 체포됐다고 가정해도

자유민주주의 기반 위에 존립하는 한국 국회가 그를 매도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프락치 사냥은 유시민으로 끝나지 않았다. 원조 사냥꾼이 영웅이 됐으니 당연하다.

5년 뒤 연대생 5명이 동양공업전문대 학생 설인종씨를 프락치라며 끌고 가 끈으로 손발을

묶고 각목으로 때렸다. 고려대생 3명도 가담했다. 술 냄새와 응원가 소음이 신촌을 가득 채운

연고전 마지막 날이었다. 축제의 밤, 설씨는 연세대 적십자 동아리 방에 갇혀 맞아 죽었다.

그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일류대 학생인 척한 게 전부였다. 각목으로 때리다가 쓰러지면 발로

밟았다. 기절하면 물을 끼얹어 깨우고 다시 때렸다.

설씨가 과다 출혈로 죽자 가해자들은 젖은 옷을 벗겨 증거를 감췄다.

그러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몰려가 보호를 요구했다. 그들은 설씨가 프락치라는 증거라

며 자백 내용까지 공개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연세대 민간인 고문 치사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19891020일자 사회면. 연대생 5명과

고대생 3명이 학교를 속이고 연세대 동아리 활동을 한 동양공전 학생을 프락치로 몰아 납치한

뒤 학생회관에 끌고가 때려죽였다.

당시 전국 대학에서 같은 유형의 폭행 사건이 수십건 발생했다.

전남대에서 송원전문대 졸업생 이종권씨가, 한양대에서 선반 기능공 이석씨가 한총련 대학생

들에게 프락치로 몰려 맞아 죽은 때는 8년 후인 1997년이다.

전남대 사건 가해자인 정의찬씨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발탁으로 경기도 월드컵재단 사무총장에

올랐다. 대선 직전 여론에 밀려 사퇴할 때까지 정씨도 유시민씨가 누린 미래를 꿈꿨을

것이다.

 

김순호 경찰국장에 대한 공격은 유시민식 프락치 사냥이 밀실에서 벗어나 공공의 정치 영역에

서 부활했음을 알려준다. 집단 린치가 재개된 것이다.

경찰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 경찰 정책의 상징인 경찰국을 흔들어 정권에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노골적이다. 넓게 보면 한국 현대사를 뒤집으려는 일련의 시도와도 연결돼

있다. 정권 입장에서 국장급 간부 교체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양보해선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들의 프락치 사냥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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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의 역사 2 - 르네상스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이기웅 외 옮김 / 까치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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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권유도 7


이번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의 성()과 사랑,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

어렴풋하게 알던 당시의 생활상에 대해 의구심이 일부 해소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궁금한 점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우리가 쉽게 알지 못했던 낙태 이야기, 임신방지 약을 비롯한 마녀사냥과 관련된 이야기,

중세 유럽에서 독일이란 나라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수도원 설립 이유에 대한 유추 근거와

수도사들의 독신 생활방식의 이유를 비롯한 수도원이 어떤 이유로 힘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여러 저자의 주장이 약간의 합리성을 갖고 전개되고 있는 작품으로 중세유럽의 여러 측면을 쉽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르네상스의 육체미의 이상]

- 르네상스 시대와 같은 창조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에로틱한 관능으로 충만된다.

   , 에로틱한 관능이라는 것은 창조적인 것을 육체를 통하여 드러내는 것이다.(P 9)

- 중세의 세계관은 하늘의 영혼을 가장 높은 관념, 나아가서는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까지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영혼을 둘러싼 육체라는 외피는 관념의 천박한 부속품으로까지 전락

  시켜버렸다. 요컨대 그러한 육체라는 외피는 항상 영혼의 궁극적인 목적을 방행하는

  존재였다.(P 11)

- 르네상스는 하늘을 지상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만물로부터 신비성을 박탈했다.(P 13)

- 시대는 항상 하나의 숭배물을 내세운다. 르네상스 시대는 육체로서의 인간을 내세움으로써

  그 시대 전체를 통하여 그것은 도처에서 최대의 예찬을 받았다육체로서의 인간은 르네상스

  시대에 인생의 지고의 의미를 지녔다.(P 24)

-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성의 개인적인 요구를 아주 명확한 형태로 일반 법칙화했으며 복장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P 38)

  그의 상징적 표현으로 유방을 형상화한 분수 조각상들이 15~6세기에 광범위하게 유행했다.

   (P 40) 또한 아름다운 유방은 그 시대 최고의 경이였다.(P 53)

- 르네상스 시대에 위대한 그림에 임신한 여성이 많이 등장한 것은 결국 창조적인 것을 특별히

  그리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선호되었기 때문이며 더욱이 그 시대의 모든 것이 이미 무의식적

  으로 특별히 창조적인 것을 그리는 방향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해서 수태한 여성은 확실히 창조적인 존재의 상징이며, 아이를 가진 성숙은 창조적인

  것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다.(P 42)

- 육체를 관능적으로 이상화했기 때문에 어느덧 육체에 대해서 한없이 절도 없는 예찬만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P 61)  따라서 아내의 육체의 훌륭함이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든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대의 매우 인기 있는 화제였고 아내의 비밀스런 육체의 미를 전시하는

  것이 당시에 흔한 풍속이었다.(P 62 ~ 64)

- 시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은 언제나 의상에 반영되며 또한 그러한 이상은 시대의 모든

  의상의 토대를 형성한다. 의상이란 이른바 일상생활의 실천에서 시대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이 전이된 형태이다. 의복의 장식 목적이 주로 육체에 에로틱한 자극을 강하게하는데

  있기 때문에 에로티시즘의 문제에도 속한다.

  또 복장이란 여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구애의 수단이었다.(P 68)

- 르네상스 시대에는 알몸의 여자는 보랏빛 옷을 걸친 여자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의견이 신봉

  되었기 때문에 나체로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간주되는

  유방의 노출이 죄악으로 치부되기 보다는 모든 여성이 가장 높이 평가했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의 일부였다.(P 73)

- 유행복은 계급구별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복장의 품위는 상의의 목둘레 선이 깊게 파임에

  따라서 그만큼 높아졌고 한편으로는 노출된 유방이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이 되었다(P 83)

- 강렬한 흉부 노출과 그에 따른 복장의 사치는 1560년데부터 수십 년에 걸쳐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세계적인 불황 때문이었다.(P 85)

 

[연애와 결혼]

- 15, 6세기에 기사계급의 경우 재산상태에 따라 여자가 점차 가사로부터 해방되고 여자의 지적

  수준도 확장되며 강렬한 자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기사계급에서 과학 및 일반교양부문에서 

  남자와 경쟁하려고 하는 여자, 즉 비라고(VIRAGO, 이탈리아어로 여장부’)가 나타나게 되었다.

                                                                                                                                    (P107)

- 여자는 처녀성을  잃으면 그 이전에 비해서 머리가 나빠진다고 생각하여 여자는 결혼 전에

  이 고귀한 것을 빼앗아 간 남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었다.(P151)

- 당시 그런 사회적 풍습에 맞추어 처녀막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주는 사업, 낙태술이 은밀히

  성행하였다(P158~163)

- 중세의 인구는 교회권력이 강화됨에 따라 점점 더 정체되는 현상을 나타냈다

  그 이유는 교회 권력이 강화됨에 따라 수도원이 늘어나고 결혼의 어려움 때문에 

  부득이 수도원에 들어가는 사람의 숫자가 점차 증가했기 때문이다.(P198)

- 중세 당시의 결혼이라는 것은 오늘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자들에게 둘도 없는 

  취직자리였다. 그 이유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P203)

- 중세의 독일은 수백 년 동안 세계 도처에 용병부대에 무진장 인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그 이유는 당시의 독일은 정치적인 혼란으로 경제적인 동요가 그 어느 나라보다

  심했기 때문으로 그 결과 각국의 용병 부대는 거의 독일인들로 채워져 있었다.(P247)

- 인간에게 있어 연애라는 동물적인 소비형태, 즉 연애의 기술적인 행위만을 몇 배로 할 수 있지,

  그것을 여러 개인에게 분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결국 연애는 향락이 되어 버린다.(P251)

- ‘탕음은 자기의 쾌락을 위한 목적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선 다른 여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이기도 했기 때문에 귀족계급은 자기들의 딸들만이 국왕과 침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그들 계급의 세습적인 특권이라고 생각했다.(P264)

- 절대주의가 지배하는 곳은 자연히, 또 예외 없이 도덕적인 타락과 윤리적인 죄악의

  아성이 되고는 했다.(P266)

- 부인에게 정조대를 강요했던 계급은 유산 지배계급 즉 상인들이었던 대부르주아 계급과

  절대군주 계급이었다. (P273)

  웃기게도 정조대가 만들어진 시대에는 바로 또다른 여벌의 열쇠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

  으로 부정을 단속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으며 자물쇠 달린 정조대가 오히려 부정을 더욱 

  만연시켰다.(P280)



[가톨릭 교회의 도덕]

- 르네상스 시대에 교회의 본산은 현실적으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뿐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야

  말로 진실로 모든 계급의 전반적 생활영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회조직이었다.(P283)

- 독일 국민이 교황의 지배라는 쇠사슬을 끊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종교개혁 운동의 

  원인은 바로 경제적 이해관계였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당시의 사람들은 종교개혁은 가톨릭 교회의 철면피한 경제적 수탈에 대항하기 위해서

  일어난 경제투쟁이라는 사실을 확연히 인식하고 있었다.(P284)

- 당시의 수도원은 유럽 최초의 문명발생지이자 최초의 문명 전파지였으며 중세 과학의 유일한

  산실이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인해 수도원은 그 지배력이 공고하게 되었던 것이지 신실한 

  기도와 찬송가 덕분은 아니었다.(P289)


* 수도사와 수녀의 독신생활(P290~292)

- 수도사와 수녀의 독신생활은 결코 인간 정신의 길잃음에서 비롯된 우연적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주어진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였다.

- ‘수도원의 기원을 고찰해 보면,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대다수 수도원들의 시초가 빈민들의 단결로부터 비롯 되었다.

  빈민들이 각기 뿔뿔이 흩어져 살기보다는 함께 모여 서로 단결해 사는 쪽이 물질 생활면에서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개의 수도원은 수공업을 자신들의 생활방편으로 삼았다.

  따라서 수도원은 하나의 경제조직으로서 그들의 시대적 사회문제를 제한된 범위에서만

 동료들끼리 힘을 모아 한정된 세계를 위해 해결하고자 시도한결과 나타난 산물이다.

-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종교라는 허울을 쓰고 등장한 이 조직의 발흥은 그 시대적상황이

  원인이었고 또한 원시 기독교가 고대세계의 경제질서를 거부하고 공산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는 사실 가운데 그 원인이 있었다.

  그러한 조직은 프롤레타리아의 양산과 그에 따른 공산주의적 조직에 대한 요구를 점증시켰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수도원의 토대였다.

- 수도원이 유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생산수단과 소비수단을 공유하는 제도를 채택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사회적 빈곤으로부터 탈출이 시급했던 수도원의 구성원들은 공동체

  유지 발전을 위한 사유재산제의 포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P291)

- 독신제도는 경제적 조건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수도사와 수녀들은 동거는 허용되었으나

  가족이라는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 당시 어느 경제조직들과 비교해고 경제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에 곧 수도원은 결국 권력과 부를

  장악할 수 있었으며 점차 생산단체로부터 수탈단체로 변질되어 갔다.

- 수도원에서 나온 잉여생산물은 경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한정 보관할 수 없었기에 신속한

  처분을 위해 베품의 형태를 띄기도 하지만 결국 화폐가 등장하면서 잉여생산물을 화폐형태로

 축적할 수 있게 되면서 수도원의 자선행위는 점차 인색해져 갔다.

- 수도원의 독점력이 증가되면서 처움 빈민들을 위한 단체가 아닌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교단에

  물질적 이득을 주는 신자들 유치에 몰두하게 되고, 심지어는 결혼을 하지 못하는 딸이나 차남을

  맡기는 양육원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 이유는 장남이 아닌 자식에게 재산을 분배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그러했던 것이다.

- 수도원에서 부의 축적은 바로 '독신제도' 덕분이었다. 사제가 아내를 두는 것은 교황청의

  수입원과 권력행사의 범위를 축소시키기 때문이다.(P301~302)

- 교황의 정치조직으로서의 교회는 세속을 멀리한 수도단체로서 처신한 것이 아니라역사의 

  단계에 따라 정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든 기독교도 위에 군림한 최고의 권력자였다.(P322)

- 중세말기와 르네상스 사대의 많은 수도원들은 결코 정진과 금욕과 기도로 충만한 신성한

  장소가 아니었다.(P329)

 

 

[유곽]

- 중세 당시에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도제의 결혼이 금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평생 자신의 성욕을

  결혼이외의 방법으로 밖에는 해소할 수 없어 매춘이 성행했다.(P337)

- 로마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으로 인해 수만 명에 달하는 가톨릭 성직자가 해마다 로마로 왔으며

  가톨릭의 본산 로마에 체재했는데, 성직자 중에는 여성도 있었으며 이들은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연애에 나섰다고 한다.(P343)

- 매춘부를 고용한 유곽에 대한 세금징수는 해당 군주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하였으며 축제 때 

  매춘부들의 역할은 경기를 부양시킬 정도로 경기 순선환구조의 선봉에 있었다.

또한 프로 매춘부들도 나오게 되었으며 당시 모든 미술 전문가들이 열중했던 소재가

바로 매춘부들이었다.

- 세상 사람들의 품행이 방정해지면서 매춘은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데 직접적인 원인은

경기불황과 함께 매독의 창궐이었다.

 

 

[사교생활]

- 르네상스 시대에는 욕탕생활이 최고의 향락이었기 때문에 온천장은 당시 사교생활의

중심이 되었다.(P444)

- 공동 목욕탕의 쇠퇴 역시 경기불황매독때문이었다.(P453)

- ‘사육제는 교회헌당 축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에서 대단히 중요한 민족축제로 사육제의 중심

  내용은 고대 그리스의 축제의 연속으로서 결국 육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회에 지나지 않았다

                                                                                                                                    (P474)

 

 

[병든 관능]

- 1490년부터 1650년에 걸친 시대는 마녀재판이 대단한 세력을 떨쳤던 시대로 당시 

  마녀재판이 광기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째, 가톨릭 교회의 일반적인 태도로 교회는 악마로 대변되는 악을 이용하여 노인을 이용하고

        무서운 그림이나 연극을 통해 교회의 이익이 되는 논리를 사람들의 뇌리에 심었다.

           15 ~ 17세기에는 악마문학이 무섭게 유행하던 시기다.

 둘째는 악마를 영혼의 사냥개로 만들므로해서 교회가 얻는 이득이 컸다.

 특히, 새로운 경제제도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시대는 사람들 앞에 대중빈곤의 공포와 전율을 

 가져다주었다.(P502)

-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사회의 복잡함만으로 인해서 파멸한 것이 아니라 발전단계의 어느시점

  에서 반드시 파멸에 이르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이 있었다.

  13세기와 14세기에 나타났던 시대적 희망은 15세기 말경부터는 도처에서 비참한 환멸로

  변하고 있었다.(P503)

- 시대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엄습하는 절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너도나도 미신에 빠져들었으며 이 현상은 15세기 말경부터 대중적인 현상으로 등장한

  악마숭배와 유행병적인 마녀소동의 역사적 배경이다.(P505)

- 왜 여자인 마녀만 있고, 남자 마녀는 없는가?

  이는 고대 게르만 여성의 종교적 지위로부터 왔을 것으로 추측. 즉 독일에서 여성은 

  언제나 신의 권력과 동맹하고 있는 여제사장이었다

  마녀는 어떤 의미에서는 게르만적 여제사장의 후예였던 것이다

  또한 여성을 조직적으로 멸시하는 태도에 기인한다.(P506)

  끊임없이 남자를 충동질하는 여자의 욕망이 남자의 공상 가운데서 여자를 악마로 

  만들었고 은밀한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바로 남성의

  시대였기 문이다.(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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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비아 만나다 시리즈
마크 래리모어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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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전문가), 비전문가(3)


주님에 다가선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심자 수준인 나의 신앙심을 제고하기 위해

본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다.

성서 욥기는 대체적으로 위로를 주는 책, 자기 수양을 돕는 책, 혼란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가슴에 담고 또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욥에 대한, 욥기가 품고 있는

종교적 의미를 알아보자는 아주 단순 무식한 수준에서 작품에 도전했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혼쭐이 난 작품이었다.

종교학 및 종교철학 공부를 3년 이상(?) 하였거나 현직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 아니면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무지몽매인 종교적 문외한은 가급적 도전하지 않기를 권유합니다.

 

생뚱맞게 욥기는 누가 지었는가, 욥기는 여러 작품이 짜깁기 된 것이다. 욥은 유대인인가?

등등 성경을 단편적으로 접한 나에게 작품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런 질문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시련의 연속으로 몰고가는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와 같은 종교적 깊이가 낮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신 저명하신 분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단문 위주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해당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그 내용도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것은 확신이 서지를 않지만 .......

 

참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욥의 유언 필사본은 10세기 사본이며 오늘날까지도 욥의 전설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설명이 담긴 문헌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깊이가 낮은 분들은 가급적 본 작품을 외면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하더라도 말입니다.

 

[서 론]

- ‘욥기는 분명 성서에 속한 어떤 책보다도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데 악의 문제에 관한

  성서의 답변으로 이해되곤 한다.

-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에서 무고한 이들은 언제나 고통 받는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들은 도울 방편을 마련해 두신다고 말한다.(P 9)

- 그리스도교 장례 의식을 치를 때 성직자들은 의 연설을 인용하곤 했다

  이 인내의 한계를 규정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P 21)

-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욥기의 면모는 그 자체로 욥기를 둘러싼 신비의 일부가

  되었다.(P 24)

- ‘욥기가 제기하는 물음들, 섭리와 악,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 하느님의 본성,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 등은 모두 손쉽게 종결될 수 없는, 종결되기를 거부하는

  물음들이다.(P 24)

- ‘욥기의 중심 대목은 널리 통용되는 지혜를 늘어놓는 의 친구들(엘리바즈, 빌닷소바르)을 

  하느님이 질책하는 부분이다.(P 25)

- ‘욥기의 전기는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욥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즉 자신이 이라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그와 관련된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한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P 32)



[고대 해석자들이 바라본 욥기]

- ‘욥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해석인 인내하는 욥이다.(P 36)

- 그리스도교들은 을 그리스도의 예형(type)으로 보았다. 히에로니무스는 욥기주석에서

  욥이라는 이름은 슬픔과 고통을 뜻한다고 주장. 그는 그리스도의 원형이었다’(P 39)

- 번영은 재앙을 수반한다. 절망이 희망을 수반하듯(P 48)

- ‘의 유언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P 50)

-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네 우리가 주님에게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보여 주실 때까지 인내합시다.

- ‘제임스 쿠걸이라는 유대인 성서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고대 해석자들의 작품

  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빌론 유수 이후 지신들의 경전에 새로운 해석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

   1) 성서는 근본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문헌이다. , 성서에 A라고 적혀 있을 때 흔히 실제 

     의미는 B.

   2) 성서는 당대 독자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성서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책이 아니다. 성서는 유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다.

   3) 성서는 모순이 없으며 실수도 없다.

   4) 성서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주셨으며 하느님은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혹은 예언자들을 

     거쳐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P 60)

- 절망에 사로잡힌 채 울부짖는 의 말, 그의 분노 어린 말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성서 

  전체의 것,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의 것이다.(P 62)

-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에게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 열쇠는 신약 성서였다.(P 75)

- 모세의 율법을 읽는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으며 이 너울은,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주님(예수)께로 돌아갈 때에 비로소 벗겨진다.(P 75)

- 중세 그리스도교의 토대가 된 기에 관한 저작은 하나다. 바로 기원후 578년에서 595

  사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저술한 욥기의 교훈들이다.(P 77)

- ‘은 경건한 인물이지만 더 많은 의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P 78)

- 자신이 덕이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영혼을 해지는 것은 없다.

-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평온함이다.(P 82)

- '고통'은 죄라는 ''을 퇴치할 때 필요한 '화학요법'이다. 문제는 하느님이 사악한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선한 사람들을 치료

  하지 않는 것이다.(P 83)

- 어떤 행동이 그 당시에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가치 있는 예언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듯 

  어떤 상황이 역사적 차원에서는 미덕이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악인 경우가 

  자주 있다.(P 85)


 

[논쟁 속 욥기]

- 에피크로스는 물었다.

  “신은 악을 없애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악하다. 신은 악을 없앨 수 있으며

  악을 없애려 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 92)

- ‘욥기는 하느님의 존재 여부를 묻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성을 묻는 책이다.(P 93)

- ‘욥기는 신성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곡,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섭리에 관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문헌이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과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욥기는 섭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참여하는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이다.(P 95)

- ‘욥기는 인간이 가장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철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P 96)

- ‘과 친구들의 발언은 그것이 긍정하는 내용보다는 부정하는 내용 때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P105)

- 악은 엄밀한 의미의 실체가 아니며 본질상 선한 모든 피조물에게 기생충처럼 붙은 결핍

  혹은 왜곡이다.(P110)

- 중요한 것은 섭리(우리는 이를 알 수 없다)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다(P115)

-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칼뱅에게 욥기가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피조물보다 너무나 높이 있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올바름의 규범조차 궁극적이지 않음을 욥기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컬뱅이 보기에 욥기를 읽는 실마리, ‘욥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논쟁에서 은 

  선한 편을 고수하는 반면, 그의 적대자들은 악한 편을 고수한다는 점이다”(P121)

  "‘과 친구들이 재기하는 물음은 동일하다. 즉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

  하는가? 그에 따르면 은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때 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의 친구들은 다른 누군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의 친구들처럼 응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P122)

-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는 겸손과 침묵을 지키며 다른 이가 고통 받을 

  때는 그를 배려하고 위로한다.(P125)

- 섭리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는 하지만)하느님에게서는 멀고 인간 동료들에게는 가까운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P130)

 


[공연되는 욥기]

- 수 세기에 걸쳐 성인은 나병 환자,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P135)

- 그리스도교인들은 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P139)

- ‘이야기는 참되고 확실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야기인 것 못지않게 거짓 위안과

  감언이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P150)

- 구원에 대한 믿음은 섭리에 대한 확신과 인내만큼이나 성취하기 어렵고 유지하기 힘들다.

- 하느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인내를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P160)

- 짧은 생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계속 애통해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현명한 이들은 이 세계라는 깊은 구렁텅이를 순례하는 동안 인내심을 기른다.(P163) 

- 철학자들은 이성 너머 저편에서 오는 도움이나 통찰을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적어도 고결한 

  습관을 갖기 위해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다른 의심으로 대치하곤 했다.(P168)

 


[신정론과 욥기]

* 신정론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하나님의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를

  학문적으로 모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는데, 왜 세상에 악이 존재 하는가? 이 세상에 모순이

  이렇게도 많은가?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볼 때, 혹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은

  아니신가? 하는 회의(懷疑)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신정론이다.

   그리스어로 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올바름을 뜻하는 디케(dike)'를 합쳐

  신정론(theodicy)'라는 말이 나왔다.(p186)

 

-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느님이 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활동하는지

  설령 활동한다 해도 신이 정녕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물었다.(P182)

- 하느님은 왜 악을 용납하는가? 사람들이 악을 당연하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여기지 않게되자 

  악은 독특한 철학적 문제가 되었다.(P185)

- 칸트는 욥기를 성서, 교회 전통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도덕적 자율성을 지니고 신과 

  대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았다.(P192)

- 자신의 동기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 이해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진다.(P197)

- 참으로 고귀한 일은 고통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이다.(P197)

- 종교는 도덕 법칙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칸트),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코헨) (P198)

- 고통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처벌이다.

-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은 성서에 나오는 주장이나 성서가 그리는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너머 핵심에 있는 시적 진리를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욥기는 그 중심이 

  되었다.(P202)

- ‘욥기에 담긴 신의 선물은 욥기가 표현하고 또 빚어내는 인간의 감정이다.(P205)

- 자신의 경건함으로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면서도, 경건함 때문에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인정했다. 바로 그 사이에서 사탄이 나왔다.(P222)

- 모든 고통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정의

  결과다.(P223)

 

 

[추방당한 욥기]

- 하느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이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욥기 28:28)

  이 구절을 욥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P234)

- 역사 비평은 근대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좋은 도구를 활용해 성서를 이해하려는 선의를 담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P237)

- ‘이 보여 주는 인내는 그의 비판과 저항을 포함할 때 더욱 심오해진다.(P250)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침묵만이 궁극적으로 기억과 희망이라는 역설적 임무에 온전히

  부합하는 실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침묵이 전도서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보여 주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P259)

- 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의 이름 (EL)'은 물음을 뜻하는 말인 셰엘라(she'elah)'안에 머물고 있다.

  ‘은 자신이 차갑고 냉소적인 세계(참된 친구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하느님은 외로운 인간과 자신을 연결하고자 한다.(P260)

- 하느님과 투쟁을 할 때조차 은 하느님이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하느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할 뿐이다.(P265)

-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임을 알았다. 동시에 그분이 자신들을 

  박해함을 받아들일 때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P266)

- ‘은 커다란 상실 가운데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현대인의 인도자다.

   기도서 이후로 은 개인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P273)

- ‘욥기는 신이 부재한 것처럼 보일 때, 세계가 윤리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때, 특히 정의가 

  실추되고 의미가 부정되어 상실과 고통을 겪을 때 오히려 신의 존재를 가장 예리하게 감지

  할 수 있다는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다.(P273)

- ‘욥기는 예언적 행동과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관상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P281)

- ‘욥기는 삶의 한가운데서 상실을 겪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천민들, 희생양들, 사대의 

  이단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다.(P283)

 

 

주워들은 이야기

 

- ‘성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책들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비블리아에서

  나왔다.

- ‘미드라시란 히브리 용어로 성경 주석의 설교 방식을 뜻한다

- 성무도일 : 매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성직자, 수동자들이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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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1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조대웅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8


본 작품은 10권으로 구성된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윤리학서로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리케이온(아테네의 학원) 원장을 지낸 그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부친이 생전에 행한

윤리학적 관점에 관해 이야기한 것을 정리한 작품이다.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면 항상 소위 방귀 좀 끼는 지식인들이 나 이런 사람이야하고 정치와

인간의 기본에 대해 걸핏하면 이야기하는 내용 중, 해당 작품과 작품 속 내용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 십 여 년 전에도 위와 같은 호기심으로 인해 작품을 읽고 그 소회를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 금번에도 그런 궁금증이 또 일어서 접하게 되었다 - 다시 한 번 해당 작품을 접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과거에는 연륜경험이 일천해 귀중한 작품 내용의 핵심적인 내용을 

무심코 흘려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 작품이 던져 주는 알찬 내용을 단순히 읽고 넘겨

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더 알차게 내용을 이해하고자 금번에는 철저한 작품 읽기와

독후감 작성에 도전하게 되었다.

솔직히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읽기에 바빴고 작품 정리도 대충했었다 - 내용에 대한 분석은

둘째였다. 읽었다는 결과론적 실적만이 내게 중요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었기 때문이다 -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독서 좀 한다는 폼 잡으려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내게 연륜삶의 경험이라는 게 쌓이면서 본 작품을 포함해 과거의 독서 

패턴에서 간과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다 또 내가 쉽게쉽게 읽고 아무 의미 없이 책장의

공간만을 차지시키기 위해 책장으로 옮겨간 여러 작품을 하나씩 소환해 다시 찬찬히 접하고 

있는 중인데 그 많은 작품 중 이 작품도 하나다.

 

본 작품은 과거 처음 접한 이후 세세하게 곱씹으며 찬찬히 읽기는 두 번째 완독이기는 하지만 

독후감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읽고 또 읽어가며 의미를 곱씹어 가며 썼기에 최소 5번 이상은 읽은 듯한 작품이지만 쉽게 받아들이기에는 난해한 구석도, 오늘날 적용하기에 버거운 내용도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된다.

몇 번씩 읽은 내가 아직 미 구독한 분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사항은 작품을 통해 알량한

잡지식을 확장시키는 수준으로 본 작품을 활용하지 말고 복잡한 세상을 때 묻히지 않고 살아

가기 위한 어떤 길라잡이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작품을 읽는다고 고매한 윤리적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이념이나 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고 대신 문장 그대로, 그 옛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여러 대중을 향해 일갈했던 내용 그 자체로만 이해하고 느끼라는

이야기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의 경우는 읽는 내내 특정 문구, 특정 내용에만 매몰되지 않고 큰 틀로

내용을 음미하려 노력했으며 그 결과 새로운 시각이 저절로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그러한 느낌을 실생활에 은연 중에 적용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려 노력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는

나 스스로도 상당히 놀랐다. 따라서 해당 작품을 읽을 독자들이라면 나와 같은 느낌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독후감을 쓰는 사람으로서 얄팍하게 정리된 것을 읽고 전부를 읽은 듯하면 안 될 것이다.

아래의 문구는 위의 방식대로 읽고 내가 느낀 나만의 관점에서 바라본 내용이기에 작품에는 나의 관점과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부분이 많아 아래 내용을 읽은 것으로 전부를 읽은 듯 

행동하거나 어디 가서 자랑을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오늘을 사는 현대의 지성인들이라면 해당 작품 같은 것은 한 권 정도 사 두고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러 비이성적 일을 마주할 때 철학자들은 어찌 했었는지를 들춰보는 것도 자신의

삶의 깊이를 제고하는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본 작품의 요지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라고 한다면, 행복을 구성하는 내용은 무엇이며

  그 목적에 다다르는 방법은 무엇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인 이성을 잘 발휘해 욕구감정을 잘 다스려

중용의 실천을 통해 품성적인 덕에 이를 것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인 행복임을 이야기 한 작품으로 이해하고 있다.

 

평소 제3자에게 비춰진 상대를 대하는 나의 행동과 말투가 그다지 윤리적으로 평가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기에 나는 이런 작품을 자주 읽고, 스스로 순화시키려 나름 노력하고 있는 인물아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당초에 위와 같은 개인적 핸디캡을 커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해당 작품을 선정하지 않았으나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의 인간성을 보강, 보충하기 위한 노력을 해 보자는 오기가 발동해

나름 열심히 읽고 느끼고 분석해 나갔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을 접할 때마다 쉽게 나의 

관점과 가치관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거나 현재의 생활에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아

상당히 고민을 하고 읽었던 작품이다.

 

나의 관점에서 발굴한 내용들

 

[인간을 위한 ]

- 우리의 모든 활동의 최종 목적은 (, 좋은 것)의 달성이다.

  ‘최고의 선()’을 다루는 학문이 정치학이며 모든 학문은 정치학에 종속되며 그런 이유로

  정치학은 인간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인간에게 최고의 선()’’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정치학의 목적은 앎(지식)에 있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실천적 학문)이다.

  평범한 사람이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든 모두가 최고의 선()’을 일반적으로 행복

  이라 말한다.

  좋은 습관을 익히며 훌륭하게 자란 사람은 보다 쉽게 정치학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 ()이란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는 어떤 단일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모든 범주에서 선()이 이야기되지 않고 오직 하나의 범주에서만 이야기되어야 한다.

- 선이란 불리는 것에는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어떤 것은 그 자체에 있어서 선()’이런 것들

  때문에 선()’이다. ‘

  따라서 단일한 이데아에 따른 공통적인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 완전한 것이 여럿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이 최고의 선()’이다.

  이는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으로 추구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언제나 행복이라는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지 건강하기 위해서 행복을 추

  한다거나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행복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행복이야말로 궁극적이고 자족적이며 다른 모든 행위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란 인간으로서 우수하게이성적인 정신의 활동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성을 잘 실현

  하는 활동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 행복한 사람은 잘 살며, 행동으로 잘 실천한다. 행복은 좋은 생활과 좋은 행위다.

- 행복은 덕을 추구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며, 덕을 추구한다는 그 자체가 최고의 것이고 신적

  이며 축복된 것으로 신들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로 생각된다.

  또한 행복은 노력을 통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이다.

-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덕을 추구하는 활동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불행에 기여

  한다. 참으로 선을 추구하고 현명한 사람은 인생의 변화를 훌륭하게 견뎌나가며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이용한다.

 

[도덕적인 덕() 1]

- ()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지적인 덕도덕적인 덕이다.

  ‘지적인 덕은 교육에 의해 얻어지므로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도덕적인 덕은 올바른 습관들이 쌓여서 생긴다.

  ‘ 이런 까닭에 도덕, 윤리를 의미하는 에티케(ethike)‘라는 말은 습관을 의미하는

  ‘에토스(ethos)’에서 나온 것이다.

- 품성의 차이는 그 품성에 해당하는 행동들에서 생긴다. 그래서 인간은 좋은 행동들이 좋은

  성질의 행동이 되도록 해야 한다. 행동의 차이에 의해 품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절제용기지나침부족함에 의해 파괴되고 중용에 의해 보존된다.

- 덕은 쾌락과 고통에 관계되어 있다. 덕은 그것을 생겨나게 하는 행위들에 의해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행위들에 의해 파괴된다. 덕은 행위를 통해 형성되며, 행위 속에서 실현된다.

- 쾌락과 싸우는 것은 분노와 싸우는 것보다 힘들다(헤라클레이토스)

- 모든 악은 무지에서 나오고 모든 덕은 참된 앎에서 나온다(아리스토텔레스)

- 덕이 감정이나 능력이 아니라면, 덕은 결국 품성이다.

- 덕이란 합리적인 행위를 선택하는 품성 상태로 중용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용은 실천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 행동을 결정할 때 따르는 기준이다.

- 덕은 그 실체와 본질에 있어서는 중용이지만, 최선의 것과 가장 옳은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정점(극단)을 따르는 것이다.

- 두려움과 태연함이란 감정 사이의 중용은 용기이다.

- 중간의 것(중용)을 목표로 삼는 사람은 먼저 중간에 더욱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 모든 것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즐거움이나 쾌락이다.

 

[도덕적인 덕() 2]

- 선택은 덕과 가장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사람의 품성은 그의 행동보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통해 파악하는 것이 더 낫다.

- 선택은 자신의 힘으로 이울 수 있는 것만을 선택한다. 소망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을 바라지만 선택은 아니다. 소망은 대개 목적과 관계하고 선택은 대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관계한다.

- 우리는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에 관해 심사숙고

  한다. 심사숙고 대상은 우리 곁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항상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들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한다.

  목적이 심사숙고의 대상이 아니라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들을 찾는 것이 심사숙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 선택이란 우리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에 대한 숙고된 욕구일 것이다.

- ‘소망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인 반면, 심사숙고와 합리적 선택은 그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이며, 이렇게 목적을 달성하게하는 행위들은 자발적인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덕은 바로 목적을 달성하게하는 것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덕의 실현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악덕 또한 그러하다. ‘

- 어떤 특정한 활동을 계속하게 되면 특정 성격이 만들어지는데 본래 못생긴 사람은 누구도

  비난하지 않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 추하게 된 사람은 비난한다.

- 덕은 중용이며 품성이다. 덕은 자신에게 연원하는 행위들을 자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것. 덕은 우리의 능력 범위 안에 있고 자발적인 것이며 올바른 이성이 명령하는 방식대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

- 용감한 사람은 고귀한 목적을 위해 참고 견디며 용기 있는 행동을 한다.

- ‘방종은 쾌락으로 인해 생기고 비겁은 고통으로 인해 생기는데, ‘쾌락은 우리가 선택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고통은 우리가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도덕적인 덕()]

- 관후(寬厚, 마음이 너그럽고 후덕하다)는 재물에 관련된 중용이다. 방탕과 인색의 중용.

- 쓰임새가 있는 것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은 그것과 관련된 덕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재물을 가장 잘 사용할 것이다. 이런 사람을 관후한 사람이라 한다.

- 관후한 사람은 자신의 재산에 따라 마땅히 써야 하는 곳에 쓰는 사람이다.

- ‘방탕은 주는 면에서 지나치고, 취하는 데 있어서 부족하다. 그런 반면에 인색은 대체로 주는

  면에서 부족하고, 취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작은 일에서만 그렇다.

  ‘인색방탕보다 더 큰 악덕이다.

- ‘긍지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큰일을 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긍지에는 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명예이다. ‘명예에 대한 상이며, 뛰어난 사람에게 수여

  되는 것이다.

- ‘행운긍지를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건이며 존경은 완전하고도 온전한 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 ‘비굴한 사람은 자신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스스로 낮추어

  자신이 할 만한 것을 스스로 박탈한다.

- ‘온화함은 분노의 감정과 관련된 중용이다.

- ‘교제와 관련된 중용 세 가지는 진실’, ‘친절(우애)’, ‘재치이다.


[정의]

- ‘정의란 사람들에게 옳은 일을, 올바른 태도로 행하도록 하고, 또 옳은 것을 원하게 하는

  품성으로 정의 속에는 모든 덕이 다 들어있다

- ‘전체적인 불의부분적인 불의의 차이는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느냐, 아니냐)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조정한다는 의미의 시정이란 이익과 손해의 균등을 회복시켜준다.

- 교환되는 모든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비교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이 도입되었으며 돈은 일종의 중간자다 된 것이다.

- 정치가는 정의의 수호자이며, 정의의 수호자라면 균등한 분배의 수호자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어떤 보수가 주어져야만 하며 그 보수란 존경영예일 것이다.

- 올바른 행위와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은 자발성이다.

- 보편적인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법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시정하는 것이

  ‘근원적 공정성이다.

 

[지적인 덕]

- 지나침과 부족함을 측정하고 중용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조율하는 것은 올바른 이성이다.

- 정신 속에는 행위와 권리를 지배하는 세 가지는 감각’, ‘지성’, ‘욕구이다

- 정신으로 하여금 긍정과 부정을 통해 진리에 이르게 하는 5가지 상태

  1) 기예 : 참된 이성을 동반해서 무엇인가를 제작할 수 있는 일종의 품성 상태로 기예가 없다는

           것은 거짓된 이성을 동반하는 경우다

  2) 학문적 인식

  3) 실천적 지혜 : 자신에게 좋은 것,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숙고할 수 있다는 것이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의 특징으로 인간적인 것들과 숙고가 가능한 을 대상

                   으로 하지만 안다고 해서 행하는 것이 증가하지 않는다.

  4) 철학적 지혜 : 가장 고귀한 것들에 관해, 학문적 인식과 직관적 지성이 결합된 것

                   인간의 행복을 위한 어떠한 것도 탐구하지 않는다

  5) 직관적 자성

- ‘심의란 유익함에 따른 올바름을, 마땅히 도달해야 할 것에, 마땅히 해야 할 방식으로마땅히

  해야 할 때에 따르는 올바름이다.

-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잘 이해한다거나, 이해심이 있다거나, 공감적 이해를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이 실천적 지혜와 관계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

- 덕은 합리적인 선택을 올바로 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그 선택이 실현되게 하는 것은 덕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능력으로 선한 사람이 아니고는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은 실천적 지혜가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

- 덕이란 올바른 이치를 따른 품성의 상태이며, 올바른 이치의 존재를 함축하고 있는 상태.

   올바른 이치란 바로 실천적 지혜를 따른 이치이다.

  실천적 지혜가 없이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도덕적인 덕이 없이는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없다.

- 덕은 목적을 결정하고 실천적 지혜는 그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자제와 자제하지 못함, 쾌락]

- 우리가 피해야 할 3가지 품성은 악덕’, ‘자제력 없음그리고 짐승과 같은 야만성이다.

- 자제력 있는 사람과 인내력이 있는 사람, 자제력이 없는 사람과 유약한 사람들은 분명히 

  쾌락과 고통에 관계하고 있다.

- 자제력이 있음과 없음은 쾌락과 관계가 있고, 유약함과 강인함은 고통과 관계 있다.

  지지 않는 것과 이기는 것이 다르듯이 저항하는 것과 극복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자제력

  있음이 강인함보다 더 선택할 만한 것이다.

- 본성적인 것이건 습관에 의한 것이건, 덕은 원리적 출발점에 대해 옳게 판단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

- 자제하는 사람은 감정이나 욕망 때문에 넘어가지 않지만, 고집쟁이는 이치에 닿는 말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데, 그것은 여러 가지 욕망에 사로잡히고 쾌락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 아는 것만으로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아는 바를 실행에 까지 옮겨야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앎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의식해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 앎을 가지고 있되 자고 있는 사람처럼, 술에 취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

- 모든 쾌락은 감각을 통해 본성을 충만시켜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즐거움

- 사람들이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이유는 우선 쾌락이 고통을 몰아내기 때문이다.

- 고통의 치유 수단으로써의 쾌락이 우연히 즐거운 것이라면, 본성상 즐거움에 속하는 쾌락은 

  본성적으로 즐거운 것이며 건강한 본성의 활동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친 애]

- 사람들은 가난할 때나 불행이 닥쳤을 때 친구가 유일한 피난처라고 한다.

- 사람들은 자신에게 선(좋은) 인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선(좋은 것)으로 보이는

  것을 사랑한다.

- 친애는 선의를 주고받는 관계에서 성립한다. 완전한 친애는 선하고 덕이 서로 닮은 사람들의

  친애이다. 애정은 감정이지만 친애는 품성 상태다.

- 좋은 사람이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좋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좋은 사람은 유쾌함과 동시에 유익한 사람이다.

- 친애는 균등한 주고받음을 내포하고 있다. 친구란 같은 것을 원하고, 같은 것을 얻으며,

  같은 것을 나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명예를 좋아하는 것은 명예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불평과 비난은 주로 유용성에 기초한 친애에서 나타나며 또한 주로 친애의 관계가 시작할 때의

  마음과 끝날 때의 마음아 서로 같지 않을 때 발생한다.

- 덕에 근거를 둔 친애에서 불평은 존재하지 않지만, 갚음의 기준이 되는 것은 베푸는 사람의 

  선택인 것 같다. 덕이나 품성이 그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 명예는 덕과 선에 대한 선물

- 재물이나 덕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은 존경으로 갚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갚지 않으면 

  안 된다. 친애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 가치에 따르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들이나 부모에게도 그렇다.

  우리가 얻은 만큼을 돌려줄 수는 절대로 없지만, 능력이 닿는 대로 그들을 돌보는 자가 훌륭한

  사람이다. 부모가 자식을 내팽개치는 것은 가능해도, 자식이 부모를 내팽개치는 것은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혜택을 받기는 원하나,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베푸는 일은

  이익이 없다고 하여 회피한다.

 

[친애의 근거]

- 잘못을 고칠 가능성이 있는 친구라면 그 사람의 품성에 대해 도움을 주어야 한다.

- 호의는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가질 수 있고, 상대방이 그것을 알지 못해도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호의는 친애의 시초다.

- 화합을 이룬다는 것은 동일한 것을 동일한 사란에게 맡길 것을 생각한다는 것

-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본성적으로 좋은 것은 좋은 사람에게 좋은 것이고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 많은 친구를 갖고 있으면서 그들 전부와 친밀하게 대하는 사람은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닌 것이다.

 

[쾌락, 행복]

- 고통은 만물이 회피하는 것이므로, 그 반대인 쾌락은 만물이 선택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고통은 본성적인 것의 결핍이며, 쾌락은 충족이라고 한다.

- 쾌락의 형상은 그 어느 시간에서나 완성된 것이다.

- 삶과 즐거움은 활동과 결부되어 있어서 활동이 없으면 쾌락이 생기지 않고 활동은 그에 따르는

  쾌락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 행복한 사람이란 외부적인 것은 수수하게 가지고 있으나 고귀한 행위를 하며 또 절제 있게 

  생활하는 사람이다(솔론, 그리스 정치가 겸 시인)

- 덕에 있어서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덕을 소유하며 활동시키도록 해야 하며,

  혹은 선하게 되는 데 다른 길이 있는가를 살펴서 시도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작품에서 얻은 잡지식

 

- 철학자(Philosoph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Philo(사랑한다, 좋아한다) + sophia(지혜)

   에서 나온 말이다.

 

- 오늘날 수를 나타내는 말 넘버(Number)'는 라틴어의 누무스(Nummus)'에서 유래했다.

  ‘누무스란 바로 화폐라는 뜻으로 이는 그리스어의 을 의미하는 노미스마(nomisma)

  에서 유래, 이것은 관습과 법을 의미하는 노모스(nomos)'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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