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양반사회 - 586, 그들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김은희 지음 / 생각의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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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덮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작품으로 얻은 무언가를 평하고, 무엇을 느꼈다고 어떤 소회를 기록해야 하는데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양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물도 마시지 않고 대 여섯 개를 연속으로 먹은듯한 느낌이 동시에 들기도 하였다.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한 양반이란 운동권 출신이어야 하고, ‘적폐를 몰아내는 데 선봉에 서야 하며.

일제 잔재 청산에 앞장서지 않는 한 이 시대의 주류 양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날 이때까지 평범하게 살아 온 나는 운동권 운동도, 적폐를 척결해야 한다는 알량한 시대적 

사명감도 없었고 더 나아가서는 일본 순사 출신이었던 외할아버지로 인해 자괴감에 빠져 작품의

화두인 신양반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었다.

하지만 작품을 접하며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는 부분을 발견했고 이를 나의 역사 의식과

사회적인 시각으로 정리해 보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오피니언 리더급 인사들이 인식하고 있었을 여러 문제점을 이제

 까지 어느 누구도 소명 의식을 갖고 공론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며 소위

 이 시대의 리더들이라는 작자들은 그들이 먼저 확보하고 있는 기득권을 쉽게 내려놓지

 않으려는 현상유지 의식과 그 기득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으려는 집단 

 간의 싸움으로 인해 우리 서민들의 삶이 하루가 다르게 피곤해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이를 해소하려는 주인의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박한 질타가 눈에 보였고, 귀에

 들렸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대목 중 내가 큰 공감을 갖는 대목 몇 곳을 정리해 보면

 

1. 조선과 같이 권력이 중앙정부에 집중된 국가에 아무개의 후손들로 구성되는 부계친족 

   집단이 번성했던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희귀한 사례이며 조상이 조정에 들어가 얼마나

   이름을 날렸는가에 따라 후손들의 사회적 신분이 정해졌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 문무관을 지칭하던 양반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 거의 세습적인

   지위가 된다.(P 33)

   죽은 지 4 ~ 500년도 더 되는 먼 조상의 자손임을 확인해 주는 본관같은 관습이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 한국 밖에 없다.(P134)

   본관 제도는 한국 사회에서 조상으로 인정받고 기억되기 위해서는 중앙에 진출하여 널리 

   이름을 알려야 함을 잘 보여준다. 조선 사회에서 혈연이 중요한 이유는 그만큼 중앙집권적

   관료제에 진출하는 것이 친족집단에 중요했기 때문이며(P138~9) 양반은 문화적 규범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았던 신분계층이었기 때문에 양반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P 40)

 

2. 일제에서 해방된 지 70여 년이 되어도 친일파혹은 빨갱이였던 조상 때문에 그 자손은

   손가락질을 당하고 조상의 행적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하는 사실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자는 이 시대에 걸맞는 행동인가를 되짚어 보게 하고 있다.

 

3. 조상과 후손을 동일시하는 아무개 자손이라는 혈연의식은 중국 고대의 종법제가 조선 후기

   양반 계층에 널리 퍼지면서 강화되었는데 중국의 종법제는 하늘에 대한 신앙과 함께 조상 

   숭배를 강조하는 유교사상의 근원이 되었다.(P143~4)

    중국의 종법제는 고대 주나라의 제도였지만 진한시대 이후에는 소멸해(P167) 버렸음에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시퍼렇게 살아서 날 뛰고 있는 게 현실이다.

 

4.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서구 근대사회에서처럼 법을 지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정의로운사회는 법을 지키는 사회가 아니라 유교적 를 실천하는 사회다.(P 42)

    결국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우리 사회의 유교적 공동체주의고 그런 이념적 바탕을 무기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 하는

   저열한 정치집단의 치졸한 이념 논쟁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대표작인 사항이 저자도 주장하고 있지만

독립운동의 정신이 만들어낸 도덕국가에서 촛불시위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선언은 촛불정권인 문 정부에 막강한 도덕적 권위를 부여한다. 문 정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독립운동에서 찾고 독립유공자와 후손에 대한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약속

 하는 것은 종국적으로 운동권 세력의 도덕적 기반을 굳건히 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볼 수 있지만 문 정부가 주창한 남한의 경제적 번영을 독립운동 정신의 결과라고 주장

 하는 것과 비슷하게 북한 정권 역시 해방 후의 역사를 빨치산 항쟁의 역사에 종속

 시키고 있다.(P 59 ~ 60)

 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후 경제적 번영의 역사는 정의가 무너지고’, ‘불의와 타협하는

 왜곡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역사였기 때문에 청산되어야 하며 경제적 발전은 해방 전

 독립운동의 정신이 구현된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이전 정권의 역사관이다.(P116)


이런 역사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전 정권은 그들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대중적 합의나 심도

있는 토론 없이 그들만의 나를 따르라는밀어붙이기식 행동으로 혼란과 국론 분열을 자초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내세운 철학 위에 내세운 인물들인 전 광복회 회장의 비정상적인 회계부정

의심사고를 비롯해 정신대 할머니들의 비용 문제를 일으킨 윤 씨 문제가 그랬고 어느 명문

대가집 조 씨 일가가 벌인 일에 대해, 이전의 총리였던 어느 여성분을 단죄한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또 작금에는 법인 카드로 초밥 몇 만원어치 산 것을 문제 삼는다고 난리치는 상황은 

그들 스스로 신양반임을 천명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작품 내용의 정리에 들어가면(문구와 내용 모두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작품에서 얻은 몇가지를 정리해 보면


- 한국 사회의 구성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양반,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며 살아온 사회운동가들로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사람들, 그리고 일후 사회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이 이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소인, 자신의 이익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기득권적폐 세력을 모두 포함한다.

   이들은 운동가들에게 빚을 졌으며 고로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지자들은 말한다.

   운동가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법 위에 존재하는 윤리 규범인 유교의 에 가깝다.

 

- 유교에서 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기록하고 분석하기 보다는 인물과 행위에 대해 시시

  비비를 가리는 도덕적 평가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운동가들은 한결 같이 법의 원칙과 절차, 그리고 과학적 혹은 합리적으로 도출

  된 사실을 멀리하였다.

  대신 문제의 인물들이 살아온 내력과 평판을 내세우며 그들의 도덕적 우월성과 

   ‘역사적 사실을 강조했다. 그들이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는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금에 문제가 되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용을 임의로 처리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윤 모씨의 불투명한 회계문제, 죽창가를 외치자고 소리 높여 

  외치던 조씨 일가의 문제적 행동에 대해 노동운동과 약자의 인권을 위해 의롭게살아

  왔다며 그의 도덕적 우월성을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대의를 위해 일해 온 사회

  운동가들에게 법률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 역사 바로 세우기는 현대 한국인들이 가진 양반의식과 유교적 역사관을 잘 드러낸다.

   역사기술의 궁극 목적은 근대 역사학처럼 객관적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구분하고 과거를 도덕적 기준에 따라 심판하는 데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바로세우기는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가 되며 불의가

  득세했던과거는 정의로운사회를 만들기 위해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된다.

 

- 유공자 후손에게 보훈의 차원을 넘는 보상을 하는 것은 엄격히 말해 민주사회의 평등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참전 군인을 포함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의 대상은 유공자 

  본인과 그의 배우자 그리고 그의 미성년 자녀로 제한한다.(P 55)

  친일 청산과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는 모근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한 시민

 사회에서 조상이 누구인가를 따지던 양반사회로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다.(P 57)

 

- '친일 청산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겪는 갈등의 중심에는 누가 도덕적으로 우월한가라는

  물음이다. 그들이 지향하는 정의로운사회, ‘공정한나라, ‘진정한민주국가는 도덕성이

  세습되는 불평등 사회다. 특정한 범주의 조상을 가진 사람들을 우대하거나 배제하는 사회는

  평등한 시민사회가 아니다.(P 64)

 

- '통일의 꽃임수경이 탈북자들을 변절자로 매도했던 것도 정신을 물질보다 우위에 두는

  운동권의 관점으로 살겠다고 일제에 저항하지 않은 친일파나 굶주리지 않겠다고 국경선을

  넘은 사람들이나 비슷하게 변절자들인 것이다.(P 66)

 

- 성장보다는 균분과 안정을 강조하고 부의 축적을 죄악시한 양반사회의 경제관은 산업화된

  한국 사회의 많은 민주화운동가들에 의해 계승되어 왔다고 보인다.(P 86)

 

- 이전 정부에서는 빈부격차부의 세습을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 중에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부상시켰다. ‘이익 공유제’, ‘사회적 기업 만들기’, 부동산 투기를 응징하는

  ‘임대차 3등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고 부를 축적하는 일상적 행위까지 지나치게 억압하는

  반자본주의적 정책에는 부의 균등한 분배를 가장 우선시하는 유교적 경제관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P 86)

 

- 운동권 정부는 전문가 집단들과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이 싸움은 명예를 독점하고자 하는

  신양반 운동권과 명예를 획득하려는 전문가들 사이의 싸움이 될 것이다.(P100)

 

- 박정희가 보여주었던 잘 살아보세’, ‘일하는 정부등의 슬로건은 도덕적 교화를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조선시대 양반 리더십과 결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P105)

  박정희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많은 부분은 문화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 ‘민주화세력은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국부를 늘리는 정치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고,

 군주의 강력한 리더십을 견제했던 양반사회의 유교적 관점에서 박정희를 비판했다.(P114)

 

- 유교적 관점에서 항일 무장투쟁은 나라 잃은 민족의 지도자가 해야 할 최고의 도덕적 행위

  였다.(P114)


- 정경유착은 '이익을 추구하고 를 축적하고자 하는 사적 영역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유교적 문화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치적 권력을 등에 업지 않으면 사유재산이 확고하게 보호받지 못 할 때 개인은 정치

 권력을 끼고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고자 한다. 국가권력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법으로 보장

 하지 않고 도덕적인 명분으로 규제하고자 할 때 개인은 부자가 되기 위해 정치권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P116)

 

- 정부가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는 특정한 정치 성향의 시민단체 활동가만 사회적 가치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대우하고 그들에게만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특권층으로 만드는 것이며 민주주의가 가진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P188)

  정부의 여론 정치는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공론정치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이다.

 

- ‘도학정치를 실현하겠다는 훌륭한 의도로 제도화된 삼사의 간쟁 활동은 국왕의 일거수

 일투족이 공사 구분 없이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신진 사류의 급진적인 간쟁 활동은 조정 대신들에게는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대신들이 지적했던 신진 사류의 문제점은 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세력혹은 운동권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P190)

 간관들은 자주 대신들의 인격과 인간성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만

 옳고 바르며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 대신은 악인으로 비난하고 배척하였다.

 요즈음 친일파조상을 따지듯이 그 당시에도 남의 조상 파헤쳐 고발하는 것이 곧은 행동인 양

 생각했으며 , ‘훈구파들은 상소문을 올리며 신진사류들을 비판하였다.(P191)

 

- 향촌 사회에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추상적인 규칙이나 원리원칙에 따르지 않고

  지지 세력을 동원하고 과시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하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P212)

 

-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시민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생각만을 시민의 명령이라고 불렀다.(P216)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 시대의 진정한 신 양반은 아래 컬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우정 칼럼] 유시민의 프락치 사냥, 그 후예들(논설위원, 2022.08.24.)

 

요즘 기이한 장면이 김순호 행정안전부 신임 경찰국장을 겨냥한 야당과 재야 좌파의 프락치 

사냥이다. 논점은 단순하다. 33년 전 주사파 운동권에서 공안 경찰이 된 김 국장의 변신과정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동료를 배신하고 밀고한 대가로 경찰에 특채된 것 아니냐

프락치 경력을 자백하라고 한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모호한 말들 이외에 증거는 없다

누군가 이런 식으로 빨갱이 사냥을 했다면 그들은 일치단결해 색깔론으로 역공을 퍼부었을 

것이다.

 

프락치 사냥은 말로 끝내는 논쟁이 아니다.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의 피해자 전기동씨가 3년 전 김명일 현 조선NS 기자와 가진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 실감할 수 있다.

방송통신대 법학과 3학년 때 자료를 얻으려고 서울대에 갔다. 누군가 얘기 좀 하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아니라고 하자 교련복으로 갈아입히고 눈을 가렸다.

돌아가면서 몇 시간씩 폭행했다.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부었다.” “전두환 전 씨라고 더 심하게 때렸다는 증언에선 가해자들의 악마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남의 신체에 고통을 주다 못해 인격을 가지고 장난질을 친 것이다.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으로 구속된 유시민씨.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감금, 고문인격

살인을 저질렀지만 수감 중 시종일관 당당했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법정에서 후회한 일도 사죄한 일도 없다. 가해자 대부분은 한국 사회의 지배층으로 출세했고,

피해자는 프락치 낙인을 안고 대부분 불행한 삶을 살았다.

서울대생을 부러워하는 방송대생, 공무원 시험 준비생, 재수생 등 4명이 피해자였다.

프락치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범인들은 1년 안팎의 징역형만 받았다. 법정에서 후회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영웅 놀이를 했다.

유시민씨는 그때 얻은 명성을 발판으로 장관에 올랐고 TV에 나와 당시 일을 자랑했다.

유시민은 노덕술, 이근안을 포함한 한국의 역대 고문 가해자 중 가장 출세한 인물이다.

공범 윤호중씨는 민주당 원내대표, 이정우씨는 로펌 변호사, 백태웅씨는 미국 대학 로스쿨

교수가 됐다. 공범들은 유씨가 고마울 것이다. 그의 현란한 언행이 추악한 범죄를 민주주의

서사로 둔갑시키고, 일그러진 자화상에 민주 투사의 가면을 씌웠기 때문이다.

그들을 단호하게 단죄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도 계속되는 프락치 사냥이다.

 

김 국장의 이력을 보면 그가 왜 타깃인지 알 수 있다그는 낮은 계급인 경장에서 시작해 장기간 공안 수사에 몸담았다. 반제·반파쇼·민중민주주의

혁명 그룹 사건을 해결해 특진했고, 남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동맹 사건을 해결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한국의 좌익은 공안 경찰을 정보기관보다 더 증오한다고 한다.

좌파의 풀뿌리를 뽑아내 그들의 증식 공간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몸담았던 인노회 조직원들은 통일사회주의 혁명, 민족 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했다.

대법원이 이적 단체라고 했든 안 했든,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지배했다면 지금 한국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조직을 버리고 경찰로 전향한 것은 공격받을 일이 아니다.

설사 그들 주장대로 김 국장의 수사 협조 때문에 조직이 해체되고 조직원이 체포됐다고 가정해도

자유민주주의 기반 위에 존립하는 한국 국회가 그를 매도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프락치 사냥은 유시민으로 끝나지 않았다. 원조 사냥꾼이 영웅이 됐으니 당연하다.

5년 뒤 연대생 5명이 동양공업전문대 학생 설인종씨를 프락치라며 끌고 가 끈으로 손발을

묶고 각목으로 때렸다. 고려대생 3명도 가담했다. 술 냄새와 응원가 소음이 신촌을 가득 채운

연고전 마지막 날이었다. 축제의 밤, 설씨는 연세대 적십자 동아리 방에 갇혀 맞아 죽었다.

그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일류대 학생인 척한 게 전부였다. 각목으로 때리다가 쓰러지면 발로

밟았다. 기절하면 물을 끼얹어 깨우고 다시 때렸다.

설씨가 과다 출혈로 죽자 가해자들은 젖은 옷을 벗겨 증거를 감췄다.

그러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몰려가 보호를 요구했다. 그들은 설씨가 프락치라는 증거라

며 자백 내용까지 공개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연세대 민간인 고문 치사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19891020일자 사회면. 연대생 5명과

고대생 3명이 학교를 속이고 연세대 동아리 활동을 한 동양공전 학생을 프락치로 몰아 납치한

뒤 학생회관에 끌고가 때려죽였다.

당시 전국 대학에서 같은 유형의 폭행 사건이 수십건 발생했다.

전남대에서 송원전문대 졸업생 이종권씨가, 한양대에서 선반 기능공 이석씨가 한총련 대학생

들에게 프락치로 몰려 맞아 죽은 때는 8년 후인 1997년이다.

전남대 사건 가해자인 정의찬씨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발탁으로 경기도 월드컵재단 사무총장에

올랐다. 대선 직전 여론에 밀려 사퇴할 때까지 정씨도 유시민씨가 누린 미래를 꿈꿨을

것이다.

 

김순호 경찰국장에 대한 공격은 유시민식 프락치 사냥이 밀실에서 벗어나 공공의 정치 영역에

서 부활했음을 알려준다. 집단 린치가 재개된 것이다.

경찰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 경찰 정책의 상징인 경찰국을 흔들어 정권에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노골적이다. 넓게 보면 한국 현대사를 뒤집으려는 일련의 시도와도 연결돼

있다. 정권 입장에서 국장급 간부 교체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양보해선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들의 프락치 사냥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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