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1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조대웅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8


본 작품은 10권으로 구성된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윤리학서로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리케이온(아테네의 학원) 원장을 지낸 그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부친이 생전에 행한

윤리학적 관점에 관해 이야기한 것을 정리한 작품이다.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면 항상 소위 방귀 좀 끼는 지식인들이 나 이런 사람이야하고 정치와

인간의 기본에 대해 걸핏하면 이야기하는 내용 중, 해당 작품과 작품 속 내용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 십 여 년 전에도 위와 같은 호기심으로 인해 작품을 읽고 그 소회를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 금번에도 그런 궁금증이 또 일어서 접하게 되었다 - 다시 한 번 해당 작품을 접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과거에는 연륜경험이 일천해 귀중한 작품 내용의 핵심적인 내용을 

무심코 흘려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 작품이 던져 주는 알찬 내용을 단순히 읽고 넘겨

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더 알차게 내용을 이해하고자 금번에는 철저한 작품 읽기와

독후감 작성에 도전하게 되었다.

솔직히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읽기에 바빴고 작품 정리도 대충했었다 - 내용에 대한 분석은

둘째였다. 읽었다는 결과론적 실적만이 내게 중요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었기 때문이다 -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독서 좀 한다는 폼 잡으려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내게 연륜삶의 경험이라는 게 쌓이면서 본 작품을 포함해 과거의 독서 

패턴에서 간과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다 또 내가 쉽게쉽게 읽고 아무 의미 없이 책장의

공간만을 차지시키기 위해 책장으로 옮겨간 여러 작품을 하나씩 소환해 다시 찬찬히 접하고 

있는 중인데 그 많은 작품 중 이 작품도 하나다.

 

본 작품은 과거 처음 접한 이후 세세하게 곱씹으며 찬찬히 읽기는 두 번째 완독이기는 하지만 

독후감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읽고 또 읽어가며 의미를 곱씹어 가며 썼기에 최소 5번 이상은 읽은 듯한 작품이지만 쉽게 받아들이기에는 난해한 구석도, 오늘날 적용하기에 버거운 내용도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된다.

몇 번씩 읽은 내가 아직 미 구독한 분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사항은 작품을 통해 알량한

잡지식을 확장시키는 수준으로 본 작품을 활용하지 말고 복잡한 세상을 때 묻히지 않고 살아

가기 위한 어떤 길라잡이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작품을 읽는다고 고매한 윤리적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이념이나 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고 대신 문장 그대로, 그 옛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여러 대중을 향해 일갈했던 내용 그 자체로만 이해하고 느끼라는

이야기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의 경우는 읽는 내내 특정 문구, 특정 내용에만 매몰되지 않고 큰 틀로

내용을 음미하려 노력했으며 그 결과 새로운 시각이 저절로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그러한 느낌을 실생활에 은연 중에 적용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려 노력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는

나 스스로도 상당히 놀랐다. 따라서 해당 작품을 읽을 독자들이라면 나와 같은 느낌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독후감을 쓰는 사람으로서 얄팍하게 정리된 것을 읽고 전부를 읽은 듯하면 안 될 것이다.

아래의 문구는 위의 방식대로 읽고 내가 느낀 나만의 관점에서 바라본 내용이기에 작품에는 나의 관점과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부분이 많아 아래 내용을 읽은 것으로 전부를 읽은 듯 

행동하거나 어디 가서 자랑을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오늘을 사는 현대의 지성인들이라면 해당 작품 같은 것은 한 권 정도 사 두고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러 비이성적 일을 마주할 때 철학자들은 어찌 했었는지를 들춰보는 것도 자신의

삶의 깊이를 제고하는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본 작품의 요지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라고 한다면, 행복을 구성하는 내용은 무엇이며

  그 목적에 다다르는 방법은 무엇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인 이성을 잘 발휘해 욕구감정을 잘 다스려

중용의 실천을 통해 품성적인 덕에 이를 것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인 행복임을 이야기 한 작품으로 이해하고 있다.

 

평소 제3자에게 비춰진 상대를 대하는 나의 행동과 말투가 그다지 윤리적으로 평가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기에 나는 이런 작품을 자주 읽고, 스스로 순화시키려 나름 노력하고 있는 인물아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당초에 위와 같은 개인적 핸디캡을 커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해당 작품을 선정하지 않았으나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의 인간성을 보강, 보충하기 위한 노력을 해 보자는 오기가 발동해

나름 열심히 읽고 느끼고 분석해 나갔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을 접할 때마다 쉽게 나의 

관점과 가치관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거나 현재의 생활에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아

상당히 고민을 하고 읽었던 작품이다.

 

나의 관점에서 발굴한 내용들

 

[인간을 위한 ]

- 우리의 모든 활동의 최종 목적은 (, 좋은 것)의 달성이다.

  ‘최고의 선()’을 다루는 학문이 정치학이며 모든 학문은 정치학에 종속되며 그런 이유로

  정치학은 인간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인간에게 최고의 선()’’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정치학의 목적은 앎(지식)에 있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실천적 학문)이다.

  평범한 사람이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든 모두가 최고의 선()’을 일반적으로 행복

  이라 말한다.

  좋은 습관을 익히며 훌륭하게 자란 사람은 보다 쉽게 정치학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 ()이란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는 어떤 단일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모든 범주에서 선()이 이야기되지 않고 오직 하나의 범주에서만 이야기되어야 한다.

- 선이란 불리는 것에는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어떤 것은 그 자체에 있어서 선()’이런 것들

  때문에 선()’이다. ‘

  따라서 단일한 이데아에 따른 공통적인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 완전한 것이 여럿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이 최고의 선()’이다.

  이는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으로 추구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언제나 행복이라는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지 건강하기 위해서 행복을 추

  한다거나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행복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행복이야말로 궁극적이고 자족적이며 다른 모든 행위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란 인간으로서 우수하게이성적인 정신의 활동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성을 잘 실현

  하는 활동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 행복한 사람은 잘 살며, 행동으로 잘 실천한다. 행복은 좋은 생활과 좋은 행위다.

- 행복은 덕을 추구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며, 덕을 추구한다는 그 자체가 최고의 것이고 신적

  이며 축복된 것으로 신들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로 생각된다.

  또한 행복은 노력을 통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이다.

-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덕을 추구하는 활동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불행에 기여

  한다. 참으로 선을 추구하고 현명한 사람은 인생의 변화를 훌륭하게 견뎌나가며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이용한다.

 

[도덕적인 덕() 1]

- ()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지적인 덕도덕적인 덕이다.

  ‘지적인 덕은 교육에 의해 얻어지므로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도덕적인 덕은 올바른 습관들이 쌓여서 생긴다.

  ‘ 이런 까닭에 도덕, 윤리를 의미하는 에티케(ethike)‘라는 말은 습관을 의미하는

  ‘에토스(ethos)’에서 나온 것이다.

- 품성의 차이는 그 품성에 해당하는 행동들에서 생긴다. 그래서 인간은 좋은 행동들이 좋은

  성질의 행동이 되도록 해야 한다. 행동의 차이에 의해 품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절제용기지나침부족함에 의해 파괴되고 중용에 의해 보존된다.

- 덕은 쾌락과 고통에 관계되어 있다. 덕은 그것을 생겨나게 하는 행위들에 의해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행위들에 의해 파괴된다. 덕은 행위를 통해 형성되며, 행위 속에서 실현된다.

- 쾌락과 싸우는 것은 분노와 싸우는 것보다 힘들다(헤라클레이토스)

- 모든 악은 무지에서 나오고 모든 덕은 참된 앎에서 나온다(아리스토텔레스)

- 덕이 감정이나 능력이 아니라면, 덕은 결국 품성이다.

- 덕이란 합리적인 행위를 선택하는 품성 상태로 중용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용은 실천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 행동을 결정할 때 따르는 기준이다.

- 덕은 그 실체와 본질에 있어서는 중용이지만, 최선의 것과 가장 옳은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정점(극단)을 따르는 것이다.

- 두려움과 태연함이란 감정 사이의 중용은 용기이다.

- 중간의 것(중용)을 목표로 삼는 사람은 먼저 중간에 더욱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 모든 것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즐거움이나 쾌락이다.

 

[도덕적인 덕() 2]

- 선택은 덕과 가장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사람의 품성은 그의 행동보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통해 파악하는 것이 더 낫다.

- 선택은 자신의 힘으로 이울 수 있는 것만을 선택한다. 소망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을 바라지만 선택은 아니다. 소망은 대개 목적과 관계하고 선택은 대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관계한다.

- 우리는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에 관해 심사숙고

  한다. 심사숙고 대상은 우리 곁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항상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들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한다.

  목적이 심사숙고의 대상이 아니라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들을 찾는 것이 심사숙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 선택이란 우리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에 대한 숙고된 욕구일 것이다.

- ‘소망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인 반면, 심사숙고와 합리적 선택은 그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이며, 이렇게 목적을 달성하게하는 행위들은 자발적인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덕은 바로 목적을 달성하게하는 것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덕의 실현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악덕 또한 그러하다. ‘

- 어떤 특정한 활동을 계속하게 되면 특정 성격이 만들어지는데 본래 못생긴 사람은 누구도

  비난하지 않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 추하게 된 사람은 비난한다.

- 덕은 중용이며 품성이다. 덕은 자신에게 연원하는 행위들을 자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것. 덕은 우리의 능력 범위 안에 있고 자발적인 것이며 올바른 이성이 명령하는 방식대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

- 용감한 사람은 고귀한 목적을 위해 참고 견디며 용기 있는 행동을 한다.

- ‘방종은 쾌락으로 인해 생기고 비겁은 고통으로 인해 생기는데, ‘쾌락은 우리가 선택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고통은 우리가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도덕적인 덕()]

- 관후(寬厚, 마음이 너그럽고 후덕하다)는 재물에 관련된 중용이다. 방탕과 인색의 중용.

- 쓰임새가 있는 것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은 그것과 관련된 덕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재물을 가장 잘 사용할 것이다. 이런 사람을 관후한 사람이라 한다.

- 관후한 사람은 자신의 재산에 따라 마땅히 써야 하는 곳에 쓰는 사람이다.

- ‘방탕은 주는 면에서 지나치고, 취하는 데 있어서 부족하다. 그런 반면에 인색은 대체로 주는

  면에서 부족하고, 취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작은 일에서만 그렇다.

  ‘인색방탕보다 더 큰 악덕이다.

- ‘긍지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큰일을 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긍지에는 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명예이다. ‘명예에 대한 상이며, 뛰어난 사람에게 수여

  되는 것이다.

- ‘행운긍지를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건이며 존경은 완전하고도 온전한 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 ‘비굴한 사람은 자신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스스로 낮추어

  자신이 할 만한 것을 스스로 박탈한다.

- ‘온화함은 분노의 감정과 관련된 중용이다.

- ‘교제와 관련된 중용 세 가지는 진실’, ‘친절(우애)’, ‘재치이다.


[정의]

- ‘정의란 사람들에게 옳은 일을, 올바른 태도로 행하도록 하고, 또 옳은 것을 원하게 하는

  품성으로 정의 속에는 모든 덕이 다 들어있다

- ‘전체적인 불의부분적인 불의의 차이는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느냐, 아니냐)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조정한다는 의미의 시정이란 이익과 손해의 균등을 회복시켜준다.

- 교환되는 모든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비교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이 도입되었으며 돈은 일종의 중간자다 된 것이다.

- 정치가는 정의의 수호자이며, 정의의 수호자라면 균등한 분배의 수호자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어떤 보수가 주어져야만 하며 그 보수란 존경영예일 것이다.

- 올바른 행위와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은 자발성이다.

- 보편적인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법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시정하는 것이

  ‘근원적 공정성이다.

 

[지적인 덕]

- 지나침과 부족함을 측정하고 중용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조율하는 것은 올바른 이성이다.

- 정신 속에는 행위와 권리를 지배하는 세 가지는 감각’, ‘지성’, ‘욕구이다

- 정신으로 하여금 긍정과 부정을 통해 진리에 이르게 하는 5가지 상태

  1) 기예 : 참된 이성을 동반해서 무엇인가를 제작할 수 있는 일종의 품성 상태로 기예가 없다는

           것은 거짓된 이성을 동반하는 경우다

  2) 학문적 인식

  3) 실천적 지혜 : 자신에게 좋은 것,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숙고할 수 있다는 것이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의 특징으로 인간적인 것들과 숙고가 가능한 을 대상

                   으로 하지만 안다고 해서 행하는 것이 증가하지 않는다.

  4) 철학적 지혜 : 가장 고귀한 것들에 관해, 학문적 인식과 직관적 지성이 결합된 것

                   인간의 행복을 위한 어떠한 것도 탐구하지 않는다

  5) 직관적 자성

- ‘심의란 유익함에 따른 올바름을, 마땅히 도달해야 할 것에, 마땅히 해야 할 방식으로마땅히

  해야 할 때에 따르는 올바름이다.

-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잘 이해한다거나, 이해심이 있다거나, 공감적 이해를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이 실천적 지혜와 관계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

- 덕은 합리적인 선택을 올바로 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그 선택이 실현되게 하는 것은 덕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능력으로 선한 사람이 아니고는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은 실천적 지혜가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

- 덕이란 올바른 이치를 따른 품성의 상태이며, 올바른 이치의 존재를 함축하고 있는 상태.

   올바른 이치란 바로 실천적 지혜를 따른 이치이다.

  실천적 지혜가 없이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도덕적인 덕이 없이는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없다.

- 덕은 목적을 결정하고 실천적 지혜는 그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자제와 자제하지 못함, 쾌락]

- 우리가 피해야 할 3가지 품성은 악덕’, ‘자제력 없음그리고 짐승과 같은 야만성이다.

- 자제력 있는 사람과 인내력이 있는 사람, 자제력이 없는 사람과 유약한 사람들은 분명히 

  쾌락과 고통에 관계하고 있다.

- 자제력이 있음과 없음은 쾌락과 관계가 있고, 유약함과 강인함은 고통과 관계 있다.

  지지 않는 것과 이기는 것이 다르듯이 저항하는 것과 극복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자제력

  있음이 강인함보다 더 선택할 만한 것이다.

- 본성적인 것이건 습관에 의한 것이건, 덕은 원리적 출발점에 대해 옳게 판단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

- 자제하는 사람은 감정이나 욕망 때문에 넘어가지 않지만, 고집쟁이는 이치에 닿는 말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데, 그것은 여러 가지 욕망에 사로잡히고 쾌락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 아는 것만으로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아는 바를 실행에 까지 옮겨야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앎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의식해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 앎을 가지고 있되 자고 있는 사람처럼, 술에 취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

- 모든 쾌락은 감각을 통해 본성을 충만시켜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즐거움

- 사람들이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이유는 우선 쾌락이 고통을 몰아내기 때문이다.

- 고통의 치유 수단으로써의 쾌락이 우연히 즐거운 것이라면, 본성상 즐거움에 속하는 쾌락은 

  본성적으로 즐거운 것이며 건강한 본성의 활동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친 애]

- 사람들은 가난할 때나 불행이 닥쳤을 때 친구가 유일한 피난처라고 한다.

- 사람들은 자신에게 선(좋은) 인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선(좋은 것)으로 보이는

  것을 사랑한다.

- 친애는 선의를 주고받는 관계에서 성립한다. 완전한 친애는 선하고 덕이 서로 닮은 사람들의

  친애이다. 애정은 감정이지만 친애는 품성 상태다.

- 좋은 사람이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좋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좋은 사람은 유쾌함과 동시에 유익한 사람이다.

- 친애는 균등한 주고받음을 내포하고 있다. 친구란 같은 것을 원하고, 같은 것을 얻으며,

  같은 것을 나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명예를 좋아하는 것은 명예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불평과 비난은 주로 유용성에 기초한 친애에서 나타나며 또한 주로 친애의 관계가 시작할 때의

  마음과 끝날 때의 마음아 서로 같지 않을 때 발생한다.

- 덕에 근거를 둔 친애에서 불평은 존재하지 않지만, 갚음의 기준이 되는 것은 베푸는 사람의 

  선택인 것 같다. 덕이나 품성이 그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 명예는 덕과 선에 대한 선물

- 재물이나 덕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은 존경으로 갚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갚지 않으면 

  안 된다. 친애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 가치에 따르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들이나 부모에게도 그렇다.

  우리가 얻은 만큼을 돌려줄 수는 절대로 없지만, 능력이 닿는 대로 그들을 돌보는 자가 훌륭한

  사람이다. 부모가 자식을 내팽개치는 것은 가능해도, 자식이 부모를 내팽개치는 것은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혜택을 받기는 원하나,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베푸는 일은

  이익이 없다고 하여 회피한다.

 

[친애의 근거]

- 잘못을 고칠 가능성이 있는 친구라면 그 사람의 품성에 대해 도움을 주어야 한다.

- 호의는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가질 수 있고, 상대방이 그것을 알지 못해도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호의는 친애의 시초다.

- 화합을 이룬다는 것은 동일한 것을 동일한 사란에게 맡길 것을 생각한다는 것

-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본성적으로 좋은 것은 좋은 사람에게 좋은 것이고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 많은 친구를 갖고 있으면서 그들 전부와 친밀하게 대하는 사람은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닌 것이다.

 

[쾌락, 행복]

- 고통은 만물이 회피하는 것이므로, 그 반대인 쾌락은 만물이 선택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고통은 본성적인 것의 결핍이며, 쾌락은 충족이라고 한다.

- 쾌락의 형상은 그 어느 시간에서나 완성된 것이다.

- 삶과 즐거움은 활동과 결부되어 있어서 활동이 없으면 쾌락이 생기지 않고 활동은 그에 따르는

  쾌락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 행복한 사람이란 외부적인 것은 수수하게 가지고 있으나 고귀한 행위를 하며 또 절제 있게 

  생활하는 사람이다(솔론, 그리스 정치가 겸 시인)

- 덕에 있어서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덕을 소유하며 활동시키도록 해야 하며,

  혹은 선하게 되는 데 다른 길이 있는가를 살펴서 시도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작품에서 얻은 잡지식

 

- 철학자(Philosoph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Philo(사랑한다, 좋아한다) + sophia(지혜)

   에서 나온 말이다.

 

- 오늘날 수를 나타내는 말 넘버(Number)'는 라틴어의 누무스(Nummus)'에서 유래했다.

  ‘누무스란 바로 화폐라는 뜻으로 이는 그리스어의 을 의미하는 노미스마(nomisma)

  에서 유래, 이것은 관습과 법을 의미하는 노모스(nomos)'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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