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의 역사 2 - 르네상스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이기웅 외 옮김 / 까치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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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권유도 7


이번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의 성()과 사랑,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

어렴풋하게 알던 당시의 생활상에 대해 의구심이 일부 해소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궁금한 점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우리가 쉽게 알지 못했던 낙태 이야기, 임신방지 약을 비롯한 마녀사냥과 관련된 이야기,

중세 유럽에서 독일이란 나라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수도원 설립 이유에 대한 유추 근거와

수도사들의 독신 생활방식의 이유를 비롯한 수도원이 어떤 이유로 힘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여러 저자의 주장이 약간의 합리성을 갖고 전개되고 있는 작품으로 중세유럽의 여러 측면을 쉽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르네상스의 육체미의 이상]

- 르네상스 시대와 같은 창조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에로틱한 관능으로 충만된다.

   , 에로틱한 관능이라는 것은 창조적인 것을 육체를 통하여 드러내는 것이다.(P 9)

- 중세의 세계관은 하늘의 영혼을 가장 높은 관념, 나아가서는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까지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영혼을 둘러싼 육체라는 외피는 관념의 천박한 부속품으로까지 전락

  시켜버렸다. 요컨대 그러한 육체라는 외피는 항상 영혼의 궁극적인 목적을 방행하는

  존재였다.(P 11)

- 르네상스는 하늘을 지상으로 끌어내림으로써 만물로부터 신비성을 박탈했다.(P 13)

- 시대는 항상 하나의 숭배물을 내세운다. 르네상스 시대는 육체로서의 인간을 내세움으로써

  그 시대 전체를 통하여 그것은 도처에서 최대의 예찬을 받았다육체로서의 인간은 르네상스

  시대에 인생의 지고의 의미를 지녔다.(P 24)

-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성의 개인적인 요구를 아주 명확한 형태로 일반 법칙화했으며 복장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P 38)

  그의 상징적 표현으로 유방을 형상화한 분수 조각상들이 15~6세기에 광범위하게 유행했다.

   (P 40) 또한 아름다운 유방은 그 시대 최고의 경이였다.(P 53)

- 르네상스 시대에 위대한 그림에 임신한 여성이 많이 등장한 것은 결국 창조적인 것을 특별히

  그리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선호되었기 때문이며 더욱이 그 시대의 모든 것이 이미 무의식적

  으로 특별히 창조적인 것을 그리는 방향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해서 수태한 여성은 확실히 창조적인 존재의 상징이며, 아이를 가진 성숙은 창조적인

  것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다.(P 42)

- 육체를 관능적으로 이상화했기 때문에 어느덧 육체에 대해서 한없이 절도 없는 예찬만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P 61)  따라서 아내의 육체의 훌륭함이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든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 시대의 매우 인기 있는 화제였고 아내의 비밀스런 육체의 미를 전시하는

  것이 당시에 흔한 풍속이었다.(P 62 ~ 64)

- 시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은 언제나 의상에 반영되며 또한 그러한 이상은 시대의 모든

  의상의 토대를 형성한다. 의상이란 이른바 일상생활의 실천에서 시대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이 전이된 형태이다. 의복의 장식 목적이 주로 육체에 에로틱한 자극을 강하게하는데

  있기 때문에 에로티시즘의 문제에도 속한다.

  또 복장이란 여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구애의 수단이었다.(P 68)

- 르네상스 시대에는 알몸의 여자는 보랏빛 옷을 걸친 여자보다도 더 아름답다는 의견이 신봉

  되었기 때문에 나체로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간주되는

  유방의 노출이 죄악으로 치부되기 보다는 모든 여성이 가장 높이 평가했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의 일부였다.(P 73)

- 유행복은 계급구별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복장의 품위는 상의의 목둘레 선이 깊게 파임에

  따라서 그만큼 높아졌고 한편으로는 노출된 유방이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이 되었다(P 83)

- 강렬한 흉부 노출과 그에 따른 복장의 사치는 1560년데부터 수십 년에 걸쳐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세계적인 불황 때문이었다.(P 85)

 

[연애와 결혼]

- 15, 6세기에 기사계급의 경우 재산상태에 따라 여자가 점차 가사로부터 해방되고 여자의 지적

  수준도 확장되며 강렬한 자의식을 가지게 되면서 기사계급에서 과학 및 일반교양부문에서 

  남자와 경쟁하려고 하는 여자, 즉 비라고(VIRAGO, 이탈리아어로 여장부’)가 나타나게 되었다.

                                                                                                                                    (P107)

- 여자는 처녀성을  잃으면 그 이전에 비해서 머리가 나빠진다고 생각하여 여자는 결혼 전에

  이 고귀한 것을 빼앗아 간 남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었다.(P151)

- 당시 그런 사회적 풍습에 맞추어 처녀막을 인공적으로 만들어주는 사업, 낙태술이 은밀히

  성행하였다(P158~163)

- 중세의 인구는 교회권력이 강화됨에 따라 점점 더 정체되는 현상을 나타냈다

  그 이유는 교회 권력이 강화됨에 따라 수도원이 늘어나고 결혼의 어려움 때문에 

  부득이 수도원에 들어가는 사람의 숫자가 점차 증가했기 때문이다.(P198)

- 중세 당시의 결혼이라는 것은 오늘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자들에게 둘도 없는 

  취직자리였다. 그 이유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P203)

- 중세의 독일은 수백 년 동안 세계 도처에 용병부대에 무진장 인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그 이유는 당시의 독일은 정치적인 혼란으로 경제적인 동요가 그 어느 나라보다

  심했기 때문으로 그 결과 각국의 용병 부대는 거의 독일인들로 채워져 있었다.(P247)

- 인간에게 있어 연애라는 동물적인 소비형태, 즉 연애의 기술적인 행위만을 몇 배로 할 수 있지,

  그것을 여러 개인에게 분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결국 연애는 향락이 되어 버린다.(P251)

- ‘탕음은 자기의 쾌락을 위한 목적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선 다른 여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이기도 했기 때문에 귀족계급은 자기들의 딸들만이 국왕과 침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그들 계급의 세습적인 특권이라고 생각했다.(P264)

- 절대주의가 지배하는 곳은 자연히, 또 예외 없이 도덕적인 타락과 윤리적인 죄악의

  아성이 되고는 했다.(P266)

- 부인에게 정조대를 강요했던 계급은 유산 지배계급 즉 상인들이었던 대부르주아 계급과

  절대군주 계급이었다. (P273)

  웃기게도 정조대가 만들어진 시대에는 바로 또다른 여벌의 열쇠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

  으로 부정을 단속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했으며 자물쇠 달린 정조대가 오히려 부정을 더욱 

  만연시켰다.(P280)



[가톨릭 교회의 도덕]

- 르네상스 시대에 교회의 본산은 현실적으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뿐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야

  말로 진실로 모든 계급의 전반적 생활영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회조직이었다.(P283)

- 독일 국민이 교황의 지배라는 쇠사슬을 끊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종교개혁 운동의 

  원인은 바로 경제적 이해관계였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당시의 사람들은 종교개혁은 가톨릭 교회의 철면피한 경제적 수탈에 대항하기 위해서

  일어난 경제투쟁이라는 사실을 확연히 인식하고 있었다.(P284)

- 당시의 수도원은 유럽 최초의 문명발생지이자 최초의 문명 전파지였으며 중세 과학의 유일한

  산실이었다. 이런 여러 이유로 인해 수도원은 그 지배력이 공고하게 되었던 것이지 신실한 

  기도와 찬송가 덕분은 아니었다.(P289)


* 수도사와 수녀의 독신생활(P290~292)

- 수도사와 수녀의 독신생활은 결코 인간 정신의 길잃음에서 비롯된 우연적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어떤 주어진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였다.

- ‘수도원의 기원을 고찰해 보면,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대다수 수도원들의 시초가 빈민들의 단결로부터 비롯 되었다.

  빈민들이 각기 뿔뿔이 흩어져 살기보다는 함께 모여 서로 단결해 사는 쪽이 물질 생활면에서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개의 수도원은 수공업을 자신들의 생활방편으로 삼았다.

  따라서 수도원은 하나의 경제조직으로서 그들의 시대적 사회문제를 제한된 범위에서만

 동료들끼리 힘을 모아 한정된 세계를 위해 해결하고자 시도한결과 나타난 산물이다.

-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종교라는 허울을 쓰고 등장한 이 조직의 발흥은 그 시대적상황이

  원인이었고 또한 원시 기독교가 고대세계의 경제질서를 거부하고 공산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는 사실 가운데 그 원인이 있었다.

  그러한 조직은 프롤레타리아의 양산과 그에 따른 공산주의적 조직에 대한 요구를 점증시켰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수도원의 토대였다.

- 수도원이 유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생산수단과 소비수단을 공유하는 제도를 채택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사회적 빈곤으로부터 탈출이 시급했던 수도원의 구성원들은 공동체

  유지 발전을 위한 사유재산제의 포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P291)

- 독신제도는 경제적 조건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수도사와 수녀들은 동거는 허용되었으나

  가족이라는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 당시 어느 경제조직들과 비교해고 경제적으로 우월했기 때문에 곧 수도원은 결국 권력과 부를

  장악할 수 있었으며 점차 생산단체로부터 수탈단체로 변질되어 갔다.

- 수도원에서 나온 잉여생산물은 경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무한정 보관할 수 없었기에 신속한

  처분을 위해 베품의 형태를 띄기도 하지만 결국 화폐가 등장하면서 잉여생산물을 화폐형태로

 축적할 수 있게 되면서 수도원의 자선행위는 점차 인색해져 갔다.

- 수도원의 독점력이 증가되면서 처움 빈민들을 위한 단체가 아닌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교단에

  물질적 이득을 주는 신자들 유치에 몰두하게 되고, 심지어는 결혼을 하지 못하는 딸이나 차남을

  맡기는 양육원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 이유는 장남이 아닌 자식에게 재산을 분배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그러했던 것이다.

- 수도원에서 부의 축적은 바로 '독신제도' 덕분이었다. 사제가 아내를 두는 것은 교황청의

  수입원과 권력행사의 범위를 축소시키기 때문이다.(P301~302)

- 교황의 정치조직으로서의 교회는 세속을 멀리한 수도단체로서 처신한 것이 아니라역사의 

  단계에 따라 정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든 기독교도 위에 군림한 최고의 권력자였다.(P322)

- 중세말기와 르네상스 사대의 많은 수도원들은 결코 정진과 금욕과 기도로 충만한 신성한

  장소가 아니었다.(P329)

 

 

[유곽]

- 중세 당시에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도제의 결혼이 금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평생 자신의 성욕을

  결혼이외의 방법으로 밖에는 해소할 수 없어 매춘이 성행했다.(P337)

- 로마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으로 인해 수만 명에 달하는 가톨릭 성직자가 해마다 로마로 왔으며

  가톨릭의 본산 로마에 체재했는데, 성직자 중에는 여성도 있었으며 이들은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연애에 나섰다고 한다.(P343)

- 매춘부를 고용한 유곽에 대한 세금징수는 해당 군주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하였으며 축제 때 

  매춘부들의 역할은 경기를 부양시킬 정도로 경기 순선환구조의 선봉에 있었다.

또한 프로 매춘부들도 나오게 되었으며 당시 모든 미술 전문가들이 열중했던 소재가

바로 매춘부들이었다.

- 세상 사람들의 품행이 방정해지면서 매춘은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데 직접적인 원인은

경기불황과 함께 매독의 창궐이었다.

 

 

[사교생활]

- 르네상스 시대에는 욕탕생활이 최고의 향락이었기 때문에 온천장은 당시 사교생활의

중심이 되었다.(P444)

- 공동 목욕탕의 쇠퇴 역시 경기불황매독때문이었다.(P453)

- ‘사육제는 교회헌당 축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에서 대단히 중요한 민족축제로 사육제의 중심

  내용은 고대 그리스의 축제의 연속으로서 결국 육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기회에 지나지 않았다

                                                                                                                                    (P474)

 

 

[병든 관능]

- 1490년부터 1650년에 걸친 시대는 마녀재판이 대단한 세력을 떨쳤던 시대로 당시 

  마녀재판이 광기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째, 가톨릭 교회의 일반적인 태도로 교회는 악마로 대변되는 악을 이용하여 노인을 이용하고

        무서운 그림이나 연극을 통해 교회의 이익이 되는 논리를 사람들의 뇌리에 심었다.

           15 ~ 17세기에는 악마문학이 무섭게 유행하던 시기다.

 둘째는 악마를 영혼의 사냥개로 만들므로해서 교회가 얻는 이득이 컸다.

 특히, 새로운 경제제도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시대는 사람들 앞에 대중빈곤의 공포와 전율을 

 가져다주었다.(P502)

-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사회의 복잡함만으로 인해서 파멸한 것이 아니라 발전단계의 어느시점

  에서 반드시 파멸에 이르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이 있었다.

  13세기와 14세기에 나타났던 시대적 희망은 15세기 말경부터는 도처에서 비참한 환멸로

  변하고 있었다.(P503)

- 시대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엄습하는 절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너도나도 미신에 빠져들었으며 이 현상은 15세기 말경부터 대중적인 현상으로 등장한

  악마숭배와 유행병적인 마녀소동의 역사적 배경이다.(P505)

- 왜 여자인 마녀만 있고, 남자 마녀는 없는가?

  이는 고대 게르만 여성의 종교적 지위로부터 왔을 것으로 추측. 즉 독일에서 여성은 

  언제나 신의 권력과 동맹하고 있는 여제사장이었다

  마녀는 어떤 의미에서는 게르만적 여제사장의 후예였던 것이다

  또한 여성을 조직적으로 멸시하는 태도에 기인한다.(P506)

  끊임없이 남자를 충동질하는 여자의 욕망이 남자의 공상 가운데서 여자를 악마로 

  만들었고 은밀한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바로 남성의

  시대였기 문이다.(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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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비아 만나다 시리즈
마크 래리모어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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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전문가), 비전문가(3)


주님에 다가선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심자 수준인 나의 신앙심을 제고하기 위해

본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다.

성서 욥기는 대체적으로 위로를 주는 책, 자기 수양을 돕는 책, 혼란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가슴에 담고 또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욥에 대한, 욥기가 품고 있는

종교적 의미를 알아보자는 아주 단순 무식한 수준에서 작품에 도전했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혼쭐이 난 작품이었다.

종교학 및 종교철학 공부를 3년 이상(?) 하였거나 현직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 아니면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무지몽매인 종교적 문외한은 가급적 도전하지 않기를 권유합니다.

 

생뚱맞게 욥기는 누가 지었는가, 욥기는 여러 작품이 짜깁기 된 것이다. 욥은 유대인인가?

등등 성경을 단편적으로 접한 나에게 작품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런 질문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시련의 연속으로 몰고가는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와 같은 종교적 깊이가 낮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신 저명하신 분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단문 위주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해당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그 내용도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것은 확신이 서지를 않지만 .......

 

참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욥의 유언 필사본은 10세기 사본이며 오늘날까지도 욥의 전설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설명이 담긴 문헌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깊이가 낮은 분들은 가급적 본 작품을 외면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하더라도 말입니다.

 

[서 론]

- ‘욥기는 분명 성서에 속한 어떤 책보다도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데 악의 문제에 관한

  성서의 답변으로 이해되곤 한다.

-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에서 무고한 이들은 언제나 고통 받는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들은 도울 방편을 마련해 두신다고 말한다.(P 9)

- 그리스도교 장례 의식을 치를 때 성직자들은 의 연설을 인용하곤 했다

  이 인내의 한계를 규정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P 21)

-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욥기의 면모는 그 자체로 욥기를 둘러싼 신비의 일부가

  되었다.(P 24)

- ‘욥기가 제기하는 물음들, 섭리와 악,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 하느님의 본성,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 등은 모두 손쉽게 종결될 수 없는, 종결되기를 거부하는

  물음들이다.(P 24)

- ‘욥기의 중심 대목은 널리 통용되는 지혜를 늘어놓는 의 친구들(엘리바즈, 빌닷소바르)을 

  하느님이 질책하는 부분이다.(P 25)

- ‘욥기의 전기는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욥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즉 자신이 이라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그와 관련된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한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P 32)



[고대 해석자들이 바라본 욥기]

- ‘욥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해석인 인내하는 욥이다.(P 36)

- 그리스도교들은 을 그리스도의 예형(type)으로 보았다. 히에로니무스는 욥기주석에서

  욥이라는 이름은 슬픔과 고통을 뜻한다고 주장. 그는 그리스도의 원형이었다’(P 39)

- 번영은 재앙을 수반한다. 절망이 희망을 수반하듯(P 48)

- ‘의 유언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P 50)

-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네 우리가 주님에게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보여 주실 때까지 인내합시다.

- ‘제임스 쿠걸이라는 유대인 성서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고대 해석자들의 작품

  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빌론 유수 이후 지신들의 경전에 새로운 해석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

   1) 성서는 근본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문헌이다. , 성서에 A라고 적혀 있을 때 흔히 실제 

     의미는 B.

   2) 성서는 당대 독자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성서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책이 아니다. 성서는 유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다.

   3) 성서는 모순이 없으며 실수도 없다.

   4) 성서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주셨으며 하느님은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혹은 예언자들을 

     거쳐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P 60)

- 절망에 사로잡힌 채 울부짖는 의 말, 그의 분노 어린 말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성서 

  전체의 것,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의 것이다.(P 62)

-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에게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 열쇠는 신약 성서였다.(P 75)

- 모세의 율법을 읽는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으며 이 너울은,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주님(예수)께로 돌아갈 때에 비로소 벗겨진다.(P 75)

- 중세 그리스도교의 토대가 된 기에 관한 저작은 하나다. 바로 기원후 578년에서 595

  사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저술한 욥기의 교훈들이다.(P 77)

- ‘은 경건한 인물이지만 더 많은 의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P 78)

- 자신이 덕이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영혼을 해지는 것은 없다.

-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평온함이다.(P 82)

- '고통'은 죄라는 ''을 퇴치할 때 필요한 '화학요법'이다. 문제는 하느님이 사악한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선한 사람들을 치료

  하지 않는 것이다.(P 83)

- 어떤 행동이 그 당시에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가치 있는 예언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듯 

  어떤 상황이 역사적 차원에서는 미덕이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악인 경우가 

  자주 있다.(P 85)


 

[논쟁 속 욥기]

- 에피크로스는 물었다.

  “신은 악을 없애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악하다. 신은 악을 없앨 수 있으며

  악을 없애려 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 92)

- ‘욥기는 하느님의 존재 여부를 묻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성을 묻는 책이다.(P 93)

- ‘욥기는 신성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곡,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섭리에 관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문헌이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과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욥기는 섭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참여하는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이다.(P 95)

- ‘욥기는 인간이 가장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철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P 96)

- ‘과 친구들의 발언은 그것이 긍정하는 내용보다는 부정하는 내용 때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P105)

- 악은 엄밀한 의미의 실체가 아니며 본질상 선한 모든 피조물에게 기생충처럼 붙은 결핍

  혹은 왜곡이다.(P110)

- 중요한 것은 섭리(우리는 이를 알 수 없다)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다(P115)

-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칼뱅에게 욥기가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피조물보다 너무나 높이 있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올바름의 규범조차 궁극적이지 않음을 욥기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컬뱅이 보기에 욥기를 읽는 실마리, ‘욥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논쟁에서 은 

  선한 편을 고수하는 반면, 그의 적대자들은 악한 편을 고수한다는 점이다”(P121)

  "‘과 친구들이 재기하는 물음은 동일하다. 즉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

  하는가? 그에 따르면 은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때 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의 친구들은 다른 누군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의 친구들처럼 응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P122)

-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는 겸손과 침묵을 지키며 다른 이가 고통 받을 

  때는 그를 배려하고 위로한다.(P125)

- 섭리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는 하지만)하느님에게서는 멀고 인간 동료들에게는 가까운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P130)

 


[공연되는 욥기]

- 수 세기에 걸쳐 성인은 나병 환자,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P135)

- 그리스도교인들은 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P139)

- ‘이야기는 참되고 확실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야기인 것 못지않게 거짓 위안과

  감언이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P150)

- 구원에 대한 믿음은 섭리에 대한 확신과 인내만큼이나 성취하기 어렵고 유지하기 힘들다.

- 하느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인내를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P160)

- 짧은 생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계속 애통해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현명한 이들은 이 세계라는 깊은 구렁텅이를 순례하는 동안 인내심을 기른다.(P163) 

- 철학자들은 이성 너머 저편에서 오는 도움이나 통찰을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적어도 고결한 

  습관을 갖기 위해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다른 의심으로 대치하곤 했다.(P168)

 


[신정론과 욥기]

* 신정론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하나님의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를

  학문적으로 모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는데, 왜 세상에 악이 존재 하는가? 이 세상에 모순이

  이렇게도 많은가?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볼 때, 혹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은

  아니신가? 하는 회의(懷疑)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신정론이다.

   그리스어로 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올바름을 뜻하는 디케(dike)'를 합쳐

  신정론(theodicy)'라는 말이 나왔다.(p186)

 

-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느님이 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활동하는지

  설령 활동한다 해도 신이 정녕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물었다.(P182)

- 하느님은 왜 악을 용납하는가? 사람들이 악을 당연하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여기지 않게되자 

  악은 독특한 철학적 문제가 되었다.(P185)

- 칸트는 욥기를 성서, 교회 전통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도덕적 자율성을 지니고 신과 

  대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았다.(P192)

- 자신의 동기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 이해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진다.(P197)

- 참으로 고귀한 일은 고통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이다.(P197)

- 종교는 도덕 법칙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칸트),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코헨) (P198)

- 고통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처벌이다.

-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은 성서에 나오는 주장이나 성서가 그리는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너머 핵심에 있는 시적 진리를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욥기는 그 중심이 

  되었다.(P202)

- ‘욥기에 담긴 신의 선물은 욥기가 표현하고 또 빚어내는 인간의 감정이다.(P205)

- 자신의 경건함으로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면서도, 경건함 때문에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인정했다. 바로 그 사이에서 사탄이 나왔다.(P222)

- 모든 고통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정의

  결과다.(P223)

 

 

[추방당한 욥기]

- 하느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이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욥기 28:28)

  이 구절을 욥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P234)

- 역사 비평은 근대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좋은 도구를 활용해 성서를 이해하려는 선의를 담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P237)

- ‘이 보여 주는 인내는 그의 비판과 저항을 포함할 때 더욱 심오해진다.(P250)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침묵만이 궁극적으로 기억과 희망이라는 역설적 임무에 온전히

  부합하는 실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침묵이 전도서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보여 주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P259)

- 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의 이름 (EL)'은 물음을 뜻하는 말인 셰엘라(she'elah)'안에 머물고 있다.

  ‘은 자신이 차갑고 냉소적인 세계(참된 친구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하느님은 외로운 인간과 자신을 연결하고자 한다.(P260)

- 하느님과 투쟁을 할 때조차 은 하느님이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하느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할 뿐이다.(P265)

-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임을 알았다. 동시에 그분이 자신들을 

  박해함을 받아들일 때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P266)

- ‘은 커다란 상실 가운데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현대인의 인도자다.

   기도서 이후로 은 개인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P273)

- ‘욥기는 신이 부재한 것처럼 보일 때, 세계가 윤리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때, 특히 정의가 

  실추되고 의미가 부정되어 상실과 고통을 겪을 때 오히려 신의 존재를 가장 예리하게 감지

  할 수 있다는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다.(P273)

- ‘욥기는 예언적 행동과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관상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P281)

- ‘욥기는 삶의 한가운데서 상실을 겪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천민들, 희생양들, 사대의 

  이단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다.(P283)

 

 

주워들은 이야기

 

- ‘성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책들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비블리아에서

  나왔다.

- ‘미드라시란 히브리 용어로 성경 주석의 설교 방식을 뜻한다

- 성무도일 : 매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성직자, 수동자들이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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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1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조대웅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 권유도 8


본 작품은 10권으로 구성된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윤리학서로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리케이온(아테네의 학원) 원장을 지낸 그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부친이 생전에 행한

윤리학적 관점에 관해 이야기한 것을 정리한 작품이다.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면 항상 소위 방귀 좀 끼는 지식인들이 나 이런 사람이야하고 정치와

인간의 기본에 대해 걸핏하면 이야기하는 내용 중, 해당 작품과 작품 속 내용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 십 여 년 전에도 위와 같은 호기심으로 인해 작품을 읽고 그 소회를 정리한 적이 

있었는데 금번에도 그런 궁금증이 또 일어서 접하게 되었다 - 다시 한 번 해당 작품을 접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과거에는 연륜경험이 일천해 귀중한 작품 내용의 핵심적인 내용을 

무심코 흘려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또 작품이 던져 주는 알찬 내용을 단순히 읽고 넘겨

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좀 더 알차게 내용을 이해하고자 금번에는 철저한 작품 읽기와

독후감 작성에 도전하게 되었다.

솔직히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읽기에 바빴고 작품 정리도 대충했었다 - 내용에 대한 분석은

둘째였다. 읽었다는 결과론적 실적만이 내게 중요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었기 때문이다 -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독서 좀 한다는 폼 잡으려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내게 연륜삶의 경험이라는 게 쌓이면서 본 작품을 포함해 과거의 독서 

패턴에서 간과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다 또 내가 쉽게쉽게 읽고 아무 의미 없이 책장의

공간만을 차지시키기 위해 책장으로 옮겨간 여러 작품을 하나씩 소환해 다시 찬찬히 접하고 

있는 중인데 그 많은 작품 중 이 작품도 하나다.

 

본 작품은 과거 처음 접한 이후 세세하게 곱씹으며 찬찬히 읽기는 두 번째 완독이기는 하지만 

독후감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읽고 또 읽어가며 의미를 곱씹어 가며 썼기에 최소 5번 이상은 읽은 듯한 작품이지만 쉽게 받아들이기에는 난해한 구석도, 오늘날 적용하기에 버거운 내용도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된다.

몇 번씩 읽은 내가 아직 미 구독한 분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사항은 작품을 통해 알량한

잡지식을 확장시키는 수준으로 본 작품을 활용하지 말고 복잡한 세상을 때 묻히지 않고 살아

가기 위한 어떤 길라잡이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작품을 읽는다고 고매한 윤리적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나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이념이나 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고 대신 문장 그대로, 그 옛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여러 대중을 향해 일갈했던 내용 그 자체로만 이해하고 느끼라는

이야기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의 경우는 읽는 내내 특정 문구, 특정 내용에만 매몰되지 않고 큰 틀로

내용을 음미하려 노력했으며 그 결과 새로운 시각이 저절로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그러한 느낌을 실생활에 은연 중에 적용하려는 자세를 견지하려 노력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는

나 스스로도 상당히 놀랐다. 따라서 해당 작품을 읽을 독자들이라면 나와 같은 느낌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독후감을 쓰는 사람으로서 얄팍하게 정리된 것을 읽고 전부를 읽은 듯하면 안 될 것이다.

아래의 문구는 위의 방식대로 읽고 내가 느낀 나만의 관점에서 바라본 내용이기에 작품에는 나의 관점과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부분이 많아 아래 내용을 읽은 것으로 전부를 읽은 듯 

행동하거나 어디 가서 자랑을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오늘을 사는 현대의 지성인들이라면 해당 작품 같은 것은 한 권 정도 사 두고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러 비이성적 일을 마주할 때 철학자들은 어찌 했었는지를 들춰보는 것도 자신의

삶의 깊이를 제고하는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본 작품의 요지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라고 한다면, 행복을 구성하는 내용은 무엇이며

  그 목적에 다다르는 방법은 무엇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인 이성을 잘 발휘해 욕구감정을 잘 다스려

중용의 실천을 통해 품성적인 덕에 이를 것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인 행복임을 이야기 한 작품으로 이해하고 있다.

 

평소 제3자에게 비춰진 상대를 대하는 나의 행동과 말투가 그다지 윤리적으로 평가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기에 나는 이런 작품을 자주 읽고, 스스로 순화시키려 나름 노력하고 있는 인물아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당초에 위와 같은 개인적 핸디캡을 커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해당 작품을 선정하지 않았으나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의 인간성을 보강, 보충하기 위한 노력을 해 보자는 오기가 발동해

나름 열심히 읽고 느끼고 분석해 나갔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을 접할 때마다 쉽게 나의 

관점과 가치관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거나 현재의 생활에 적용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아

상당히 고민을 하고 읽었던 작품이다.

 

나의 관점에서 발굴한 내용들

 

[인간을 위한 ]

- 우리의 모든 활동의 최종 목적은 (, 좋은 것)의 달성이다.

  ‘최고의 선()’을 다루는 학문이 정치학이며 모든 학문은 정치학에 종속되며 그런 이유로

  정치학은 인간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인간에게 최고의 선()’’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정치학의 목적은 앎(지식)에 있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실천적 학문)이다.

  평범한 사람이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든 모두가 최고의 선()’을 일반적으로 행복

  이라 말한다.

  좋은 습관을 익히며 훌륭하게 자란 사람은 보다 쉽게 정치학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 ()이란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는 어떤 단일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모든 범주에서 선()이 이야기되지 않고 오직 하나의 범주에서만 이야기되어야 한다.

- 선이란 불리는 것에는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어떤 것은 그 자체에 있어서 선()’이런 것들

  때문에 선()’이다. ‘

  따라서 단일한 이데아에 따른 공통적인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 완전한 것이 여럿 있다면 그중에서 가장 완전한 것이 최고의 선()’이다.

  이는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으로 추구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행복은 언제나 행복이라는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지 건강하기 위해서 행복을 추

  한다거나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행복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행복이야말로 궁극적이고 자족적이며 다른 모든 행위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란 인간으로서 우수하게이성적인 정신의 활동을 실현하는 것으로 이성을 잘 실현

  하는 활동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 행복한 사람은 잘 살며, 행동으로 잘 실천한다. 행복은 좋은 생활과 좋은 행위다.

- 행복은 덕을 추구한 결과에 대한 보상이며, 덕을 추구한다는 그 자체가 최고의 것이고 신적

  이며 축복된 것으로 신들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로 생각된다.

  또한 행복은 노력을 통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선물이다.

-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덕을 추구하는 활동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불행에 기여

  한다. 참으로 선을 추구하고 현명한 사람은 인생의 변화를 훌륭하게 견뎌나가며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이용한다.

 

[도덕적인 덕() 1]

- ()에는 두 종류가 있다. ‘지적인 덕도덕적인 덕이다.

  ‘지적인 덕은 교육에 의해 얻어지므로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도덕적인 덕은 올바른 습관들이 쌓여서 생긴다.

  ‘ 이런 까닭에 도덕, 윤리를 의미하는 에티케(ethike)‘라는 말은 습관을 의미하는

  ‘에토스(ethos)’에서 나온 것이다.

- 품성의 차이는 그 품성에 해당하는 행동들에서 생긴다. 그래서 인간은 좋은 행동들이 좋은

  성질의 행동이 되도록 해야 한다. 행동의 차이에 의해 품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절제용기지나침부족함에 의해 파괴되고 중용에 의해 보존된다.

- 덕은 쾌락과 고통에 관계되어 있다. 덕은 그것을 생겨나게 하는 행위들에 의해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행위들에 의해 파괴된다. 덕은 행위를 통해 형성되며, 행위 속에서 실현된다.

- 쾌락과 싸우는 것은 분노와 싸우는 것보다 힘들다(헤라클레이토스)

- 모든 악은 무지에서 나오고 모든 덕은 참된 앎에서 나온다(아리스토텔레스)

- 덕이 감정이나 능력이 아니라면, 덕은 결국 품성이다.

- 덕이란 합리적인 행위를 선택하는 품성 상태로 중용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용은 실천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 행동을 결정할 때 따르는 기준이다.

- 덕은 그 실체와 본질에 있어서는 중용이지만, 최선의 것과 가장 옳은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정점(극단)을 따르는 것이다.

- 두려움과 태연함이란 감정 사이의 중용은 용기이다.

- 중간의 것(중용)을 목표로 삼는 사람은 먼저 중간에 더욱 반대되는 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 모든 것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즐거움이나 쾌락이다.

 

[도덕적인 덕() 2]

- 선택은 덕과 가장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사람의 품성은 그의 행동보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통해 파악하는 것이 더 낫다.

- 선택은 자신의 힘으로 이울 수 있는 것만을 선택한다. 소망은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을 바라지만 선택은 아니다. 소망은 대개 목적과 관계하고 선택은 대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관계한다.

- 우리는 우리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에 관해 심사숙고

  한다. 심사숙고 대상은 우리 곁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항상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들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할 것인지를 심사숙고한다.

  목적이 심사숙고의 대상이 아니라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들을 찾는 것이 심사숙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 선택이란 우리 자신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에 대한 숙고된 욕구일 것이다.

- ‘소망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것인 반면, 심사숙고와 합리적 선택은 그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이며, 이렇게 목적을 달성하게하는 행위들은 자발적인 합리적 선택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덕은 바로 목적을 달성하게하는 것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덕의 실현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악덕 또한 그러하다. ‘

- 어떤 특정한 활동을 계속하게 되면 특정 성격이 만들어지는데 본래 못생긴 사람은 누구도

  비난하지 않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 추하게 된 사람은 비난한다.

- 덕은 중용이며 품성이다. 덕은 자신에게 연원하는 행위들을 자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것. 덕은 우리의 능력 범위 안에 있고 자발적인 것이며 올바른 이성이 명령하는 방식대로 

  실천에 옮길 수 있다.

- 용감한 사람은 고귀한 목적을 위해 참고 견디며 용기 있는 행동을 한다.

- ‘방종은 쾌락으로 인해 생기고 비겁은 고통으로 인해 생기는데, ‘쾌락은 우리가 선택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고통은 우리가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도덕적인 덕()]

- 관후(寬厚, 마음이 너그럽고 후덕하다)는 재물에 관련된 중용이다. 방탕과 인색의 중용.

- 쓰임새가 있는 것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은 그것과 관련된 덕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은

  재물을 가장 잘 사용할 것이다. 이런 사람을 관후한 사람이라 한다.

- 관후한 사람은 자신의 재산에 따라 마땅히 써야 하는 곳에 쓰는 사람이다.

- ‘방탕은 주는 면에서 지나치고, 취하는 데 있어서 부족하다. 그런 반면에 인색은 대체로 주는

  면에서 부족하고, 취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작은 일에서만 그렇다.

  ‘인색방탕보다 더 큰 악덕이다.

- ‘긍지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큰일을 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긍지에는 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명예이다. ‘명예에 대한 상이며, 뛰어난 사람에게 수여

  되는 것이다.

- ‘행운긍지를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건이며 존경은 완전하고도 온전한 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 ‘비굴한 사람은 자신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스스로 낮추어

  자신이 할 만한 것을 스스로 박탈한다.

- ‘온화함은 분노의 감정과 관련된 중용이다.

- ‘교제와 관련된 중용 세 가지는 진실’, ‘친절(우애)’, ‘재치이다.


[정의]

- ‘정의란 사람들에게 옳은 일을, 올바른 태도로 행하도록 하고, 또 옳은 것을 원하게 하는

  품성으로 정의 속에는 모든 덕이 다 들어있다

- ‘전체적인 불의부분적인 불의의 차이는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느냐, 아니냐)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조정한다는 의미의 시정이란 이익과 손해의 균등을 회복시켜준다.

- 교환되는 모든 것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비교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것을 위하여 이 도입되었으며 돈은 일종의 중간자다 된 것이다.

- 정치가는 정의의 수호자이며, 정의의 수호자라면 균등한 분배의 수호자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어떤 보수가 주어져야만 하며 그 보수란 존경영예일 것이다.

- 올바른 행위와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은 자발성이다.

- 보편적인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법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시정하는 것이

  ‘근원적 공정성이다.

 

[지적인 덕]

- 지나침과 부족함을 측정하고 중용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조율하는 것은 올바른 이성이다.

- 정신 속에는 행위와 권리를 지배하는 세 가지는 감각’, ‘지성’, ‘욕구이다

- 정신으로 하여금 긍정과 부정을 통해 진리에 이르게 하는 5가지 상태

  1) 기예 : 참된 이성을 동반해서 무엇인가를 제작할 수 있는 일종의 품성 상태로 기예가 없다는

           것은 거짓된 이성을 동반하는 경우다

  2) 학문적 인식

  3) 실천적 지혜 : 자신에게 좋은 것,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숙고할 수 있다는 것이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의 특징으로 인간적인 것들과 숙고가 가능한 을 대상

                   으로 하지만 안다고 해서 행하는 것이 증가하지 않는다.

  4) 철학적 지혜 : 가장 고귀한 것들에 관해, 학문적 인식과 직관적 지성이 결합된 것

                   인간의 행복을 위한 어떠한 것도 탐구하지 않는다

  5) 직관적 자성

- ‘심의란 유익함에 따른 올바름을, 마땅히 도달해야 할 것에, 마땅히 해야 할 방식으로마땅히

  해야 할 때에 따르는 올바름이다.

-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잘 이해한다거나, 이해심이 있다거나, 공감적 이해를 한다는 말은

  그 사람이 실천적 지혜와 관계되는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

- 덕은 합리적인 선택을 올바로 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그 선택이 실현되게 하는 것은 덕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능력으로 선한 사람이 아니고는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은 실천적 지혜가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

- 덕이란 올바른 이치를 따른 품성의 상태이며, 올바른 이치의 존재를 함축하고 있는 상태.

   올바른 이치란 바로 실천적 지혜를 따른 이치이다.

  실천적 지혜가 없이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도덕적인 덕이 없이는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없다.

- 덕은 목적을 결정하고 실천적 지혜는 그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자제와 자제하지 못함, 쾌락]

- 우리가 피해야 할 3가지 품성은 악덕’, ‘자제력 없음그리고 짐승과 같은 야만성이다.

- 자제력 있는 사람과 인내력이 있는 사람, 자제력이 없는 사람과 유약한 사람들은 분명히 

  쾌락과 고통에 관계하고 있다.

- 자제력이 있음과 없음은 쾌락과 관계가 있고, 유약함과 강인함은 고통과 관계 있다.

  지지 않는 것과 이기는 것이 다르듯이 저항하는 것과 극복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자제력

  있음이 강인함보다 더 선택할 만한 것이다.

- 본성적인 것이건 습관에 의한 것이건, 덕은 원리적 출발점에 대해 옳게 판단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

- 자제하는 사람은 감정이나 욕망 때문에 넘어가지 않지만, 고집쟁이는 이치에 닿는 말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데, 그것은 여러 가지 욕망에 사로잡히고 쾌락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 아는 것만으로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아는 바를 실행에 까지 옮겨야 실천적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앎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의식해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라, 앎을 가지고 있되 자고 있는 사람처럼, 술에 취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

- 모든 쾌락은 감각을 통해 본성을 충만시켜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즐거움

- 사람들이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 이유는 우선 쾌락이 고통을 몰아내기 때문이다.

- 고통의 치유 수단으로써의 쾌락이 우연히 즐거운 것이라면, 본성상 즐거움에 속하는 쾌락은 

  본성적으로 즐거운 것이며 건강한 본성의 활동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친 애]

- 사람들은 가난할 때나 불행이 닥쳤을 때 친구가 유일한 피난처라고 한다.

- 사람들은 자신에게 선(좋은) 인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선(좋은 것)으로 보이는

  것을 사랑한다.

- 친애는 선의를 주고받는 관계에서 성립한다. 완전한 친애는 선하고 덕이 서로 닮은 사람들의

  친애이다. 애정은 감정이지만 친애는 품성 상태다.

- 좋은 사람이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좋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좋은 사람은 유쾌함과 동시에 유익한 사람이다.

- 친애는 균등한 주고받음을 내포하고 있다. 친구란 같은 것을 원하고, 같은 것을 얻으며,

  같은 것을 나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명예를 좋아하는 것은 명예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따르는 부수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 불평과 비난은 주로 유용성에 기초한 친애에서 나타나며 또한 주로 친애의 관계가 시작할 때의

  마음과 끝날 때의 마음아 서로 같지 않을 때 발생한다.

- 덕에 근거를 둔 친애에서 불평은 존재하지 않지만, 갚음의 기준이 되는 것은 베푸는 사람의 

  선택인 것 같다. 덕이나 품성이 그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 명예는 덕과 선에 대한 선물

- 재물이나 덕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은 존경으로 갚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갚지 않으면 

  안 된다. 친애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 가치에 따르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들이나 부모에게도 그렇다.

  우리가 얻은 만큼을 돌려줄 수는 절대로 없지만, 능력이 닿는 대로 그들을 돌보는 자가 훌륭한

  사람이다. 부모가 자식을 내팽개치는 것은 가능해도, 자식이 부모를 내팽개치는 것은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혜택을 받기는 원하나,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베푸는 일은

  이익이 없다고 하여 회피한다.

 

[친애의 근거]

- 잘못을 고칠 가능성이 있는 친구라면 그 사람의 품성에 대해 도움을 주어야 한다.

- 호의는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가질 수 있고, 상대방이 그것을 알지 못해도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호의는 친애의 시초다.

- 화합을 이룬다는 것은 동일한 것을 동일한 사란에게 맡길 것을 생각한다는 것

-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친구가 필요하다. 본성적으로 좋은 것은 좋은 사람에게 좋은 것이고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 많은 친구를 갖고 있으면서 그들 전부와 친밀하게 대하는 사람은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닌 것이다.

 

[쾌락, 행복]

- 고통은 만물이 회피하는 것이므로, 그 반대인 쾌락은 만물이 선택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고통은 본성적인 것의 결핍이며, 쾌락은 충족이라고 한다.

- 쾌락의 형상은 그 어느 시간에서나 완성된 것이다.

- 삶과 즐거움은 활동과 결부되어 있어서 활동이 없으면 쾌락이 생기지 않고 활동은 그에 따르는

  쾌락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 행복한 사람이란 외부적인 것은 수수하게 가지고 있으나 고귀한 행위를 하며 또 절제 있게 

  생활하는 사람이다(솔론, 그리스 정치가 겸 시인)

- 덕에 있어서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덕을 소유하며 활동시키도록 해야 하며,

  혹은 선하게 되는 데 다른 길이 있는가를 살펴서 시도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작품에서 얻은 잡지식

 

- 철학자(Philosophy)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의 Philo(사랑한다, 좋아한다) + sophia(지혜)

   에서 나온 말이다.

 

- 오늘날 수를 나타내는 말 넘버(Number)'는 라틴어의 누무스(Nummus)'에서 유래했다.

  ‘누무스란 바로 화폐라는 뜻으로 이는 그리스어의 을 의미하는 노미스마(nomisma)

  에서 유래, 이것은 관습과 법을 의미하는 노모스(nomos)'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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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념 - 나와 세상을 바꾸는 힘에 관하여
피트 데이비스 지음, 신유희 옮김 / 상상스퀘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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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SNS를 접하던 중 평소 관심은 있었으나 나에게는 그리 호감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인물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우상(?)인 돈 재벌 워렌 버핏이 추천했다는 작품이라고 해서 - 돈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서 - 접한 작품이었다.

소개하는 사람의 어투와 자세를 유심히 살펴보며 어느 정도 믿음이 들어 혹시나 하는 반신반의

생각 속에 작품을 들여다 보며 작품에 거는 기대를 A+로 잡고 읽었는데(초반부는 슈퍼 A급이다) 읽어 보니 전체적인 느낌은 B급 수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 해당 작품을 바라보고 의미를 받아들이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는 그렇다는 것이다

, 2%가 아닌 5% 부족한 느낌이었다 -

그 이유는 여기저기 쉬운 이야기를 상당히 꼬아서 강하게 이야기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으로, 작품 초반부에 언급되고 있는 내용은 현대인의 행태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는 새로운 시각과 해석법으로 인해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초점이 분산되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저히 가슴에 와 닿지를 않았다는

느낌으로 다가와 평범한 이야기를 참 어렵게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었다.

 

초반부에 저자께서 주장한 내용에 크게 공감한 이야기는 탐색 모드자발적 전념하기에 대한 저자의 주장과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지만 쉽게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분석하는 관점은 크게 

동의하는 주장으로 인구감소에 대한 대안을 찾는 이들이나 그런 자식을 둔 부모들이 한 번쯤 

관심을 갖고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게 하였다.

특히, ‘전념하기 특징을 비롯한 여러 분석 내용은 한 번 음미해 볼만하지만 SNS 소개자가 작품에

대해 극찬할만큼의 내용은 아닌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이야기하고 싶다.

젊은이로서, 사회 초년생들이라면 또 뭔가를 이루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권할만한 작품은

된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던 작품을 전체적으로 2~3회 반복해 읽어보면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이나 CEO등과

같은 분들이 뭔가를 얻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제10(선택지 열어두기의

경제 : VS 특정성) 이후의 내용은 그런 내용이 왜 들어갔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게 아쉽다면 아쉬운 내용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 보고 있지만 왜 이런 내용이 들어갔을까를 놓고 한참 고민하였는데 아직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작품을 대표하는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 하나를 들라고 한다면

그냥 첫발을 내디뎌라. 그리고 다음 단계가 조금 뚜렷해지면 그때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된다.“

이 문구는 나이와 년륜 모든 게 필요 없다. 주저할 시간이 없는 세상이기에 위의 문구를 택했다.

무슨 일이던 일단 뛰어들어 전념해 보자. 비록 뛰어든 그 길이 조금 지나 후회와 함께 

이 산이 아닌가벼라는 순간이 오더라도 말이다. 어찌 되었던 산을 올라간만큼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 60대 이후는 그러면 곤란하니 좀 생각하시고 행동에 옮겼으면 한다.

내가 읽고 느낀 부분이 컸던 내용들을 간추려 모아 보면

 

1장 문화의 두 가지 유형

- 여러 선택지를 열어두는 것이 지금 세대를 정의하는 특징으로, 이를 액체 근대라 하는데

  다시 이야기해 현대인들은 어느 한 가지 정체성, 장소, 공동체에 스스로 묶어두기를 원치않으      며 마치 액체처럼 어떠한 형태의 미래에도 맞춰서 적응할 수 있는 유동적 상태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

  즉,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액체 근대다.

- 오늘날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분위기와 완전 상반되는 문화를 반문화라 칭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전념하기같은 것이다.

  현대인들이 문화의 두 가지 유형, 즉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와 전념하기 반문화 사이에서

  갈팡지팡하는 문제로부터 시작한다.

- 이전에는 하나에 헌신하고 몰입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이 금세 흩어

  지고 사그라드는 것을 보면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그러나 스타카토처럼 불연속적인 정보

  가득한 디지털 시대에서 좀 더 영구적이고, 좀 더 의미 있고, 진중한 무언가를 붙잡으려 한다.

  이것은 자신의 삶을 더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욕망에서 발현된 것이다.

- 우리는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열광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탐색 모드에만 머무는

  이유가

    1. 후회(regret)에 대한 두려움

    2. 유대(association)에 대한 두려움

    3. 고립(missing out)에 대한 두려움

  위와 같은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제대로 된 대안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선택지를 열어둔 채

  하염없이 탐색 모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기술, 신념, 공동체에 꾸준히 전념하기 보다는 경력을 쌓고 출세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는 장기적으로는 결코 유지될 수 없는

  문화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바로 자발적 전념하기

  이는 우리 스스로 단단한 사람이 됨으로써 우리 세계를 단단하게 변화시켜 가자는 것이다.

- 영원한 탐색만 하다가는 깊은 절망에 빠지기 쉽지만 무언가에 전념하면 큰 기쁨을 얻는다.

  즉, 전념하기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다. 하지만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념하기를 향한 두려움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변화에 꾸준함이 요구되는 데 그 이유는 변화를 만드는 일이 전투 전략을 짜고 시행하는

  것보다 관계를 일구고 유지하는 일에 가까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참고로 성공한 운동이나 캠페인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그럴듯한 전투 전략이 아니라

  그 비전과 가치에 꾸준하게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념하기]

   - 전념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와 삶을 불안해하지 않는다

   - 불확실성은 우리가 무언가에 전념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 전념하기는 우리 안에서 믿음이 유기적으로 자라도록 한다.

   - 전념하기의 핵심은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다. 죽음은 삶의 길이를 통제한다. '  

   그러나 삶의 깊이를 통제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전념하기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을

   인정하는 대신, 제한 없는 깊이를 추구하겠다는 결정이다.

- 당장 무한 탐색 모드에서 벗어나 제대로 고른 영화나 운동 경기를 끝까지 몰입해서 보자.

 

2장 무한 탐색 모드의 장점

- 가짜 자아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제일 기쁘게 해줄 것 같은 사람, 공동체 내에서 특권층에 

  속하는 사람, 특정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 탐색의 가장 단순한 장점은 새로움이다. 삶에서 가능한 많은 새로움을 즐기겠다는 생각은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이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남들만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공포감을 가리킨다.

 

3장 무한탐색 모드의 단점

- 무한 탐색 모드의 융통성은 곧 결정 마비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즉,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병들게 한다.

  과도한 선택의 자유가 우리에게 지나치게 많은 책임감을 부여해 결정 마비를 일으킨다

- 선택의 자유가 커질수록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쇼핑 피로때문이다.

- 인간의 자살 유형은 너무 다양하다. 문화의 유형에 따라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도 다른데

  세부 유형을 보면 개인의 특성이 그가 속한 문화의 기준에 지나치게 구속될 때 일어난다

  즉, 강압적인 규율에 미래가 무자비하게 막혀 있고, 열정이 폭력적으로 질식될 때 절망한

  수감자, 억압적인 가정이나 공동체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또 다른 유형은

  공동체와 기대치가 나를 얽매지 않아 일어난다. 이는 무의미, 무관심, 허무주의에서 오는

  절망으로 이러한 유형의 자살을 아노미적 자살이라 한다.

  ‘아노미란 그리스어로 을 뜻하며 아노미는 삶을 조작할 수 있는 기준이나 법이 없다고 

  느끼는 것으로 이는 가치 있는 목적지가 없을 때 느끼는 절망이다.

  이의 해독제는 진짜 공동체이다.

- 사람들은 책임을 지기 원한다. 책임감이 우리를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깊은 내면은 진짜 공동체 그리고 그와 함께 투쟁할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갈망한다.

- 전념하기는 우리 세계에 형태를 가져오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 깊이는 새로움을 이긴다는 것이 린디 효과이다

- 지속성은 최소한 삶의 몇 가지 측면에서 깊이를 측정하는 대략적인 기준이 된다.

- 전념하기의 영웅들은 올바른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4장 해방 vs 헌신

- 자유는 우리 정체성의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한다. 나머지 절반을 채우는 것은 헌신이다.

  사람들은 자유롭길 원하지만, 속박에서 벗어난 다음 무언가를 하기를 원한다.

- 전념하려면 전념하기의 미덕을 가꿔야 한다.

   1) 먼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목표를 마음속에 그릴 수 있는 상상력

   2)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통합력

   3) 집중할 수 있는 집중력

   4) 새롭지 않아도 계속해서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는 근성

   5) 관계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열정

   6) 열정이 있을려면 존경심도 뒷받침 되어야 하며

   7) 무엇보다도 디른 선택지가 있어도 계속해서 하나에 매달릴 수 있는 전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 액체근대라는 용어는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액체의 특성을 빗댄 것으로 해방과 헌신 사이에

  갇히게 된 후에 다시 고체가 될 방법을 찾지 못한다.

-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를 전통적인 고체들을 녹이는 과정으로 정의했다.

  즉, 충성심, 적절하지 않은 의무, 세습되는 영토, 가족 전체에 씌워지는 족새 등과 같이 과거 

  사회를 빽빽하게 채웠던 윤리적 의무는 이제 녹아 없어졌다. 

- 새로운 액체 근대에서는 온갖 변화에 맞춰 새로운 형태를 취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춘 기업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 밀레니엄 세대에 결혼이 늦은 이유 중 하나는 부모 세대보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이 넓고 

  따라서 잠재적 연인으로 고려할 수 있는 대상의 수가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 유대는 느슨해졌고, 신뢰는 얇아졌으며, 선택지 열어두기가 이 시대의 모토가 되었다.

 

5장 전념하기의 영웅

- 청년들은 대개 무언가 크고 대단한 일에 헌신하길 원한다. 대의를 위해 나서서 이름을 

  날리는영웅이 되고, 따분한 일상 따위는 뒤로 한 채 거침없이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나서는

  로맨틱한 상상을 꿈꾼다. 이러한 충동은 무한 탐색 모드도 아니고 비자발적인 헌신도 아닌

  제3의 길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이 자발적 전념하기의 길이다.

- 우리가 자발적 헌신할 준비가 됐다는 것은 위대함을 떠안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 삶에 대의와 신념을 부여하는 것은 숭고하다. 그러나 일상에 대의와 신념을 부여하는 것은

  그보다 더 숭고하다.

 

6장 반문화 둘러보기

- 악에 무관심은 악 그 자체보다 나쁘다. 자유 사회에서 실제로 죄를 짓는 사람은 일부지만

  그 책임은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 신념은 별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스스로 전념할 수 있는 한 가지면 충분하다.

- 평온과 성공을 얻는 핵심은 자기 자신에게 성공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의하는 것

- 무언가를 지키려면 일종의 책임감과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전념하기 반문화의 사명이다.

 

7장 후회에 대한 두려움과 목적의식이 주는 자유

- 전념하기 길을 가고자 할 때 후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런 마음을 극복하려면

  선택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하라.

- 내가 선택한 길이 잘 안 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전념하기의

  핵심적 요소이다.

- 마음을 깨끗하게 비운 후 각각의 선택지를 깊이 그려보면서 그때마다 내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껴보는 것 그래서 선택지의 장단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이것을 이냐시오적 식별이라 한다.

- 깨달음과 이해는 적막과 위안을 경험하고 다양한 감정을 분별함으로써 얻어진다.

- 우리를 어느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은 긍정적인 감정과 영감과 이성적인 판단의 혼합물

-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방에게 홀로 조용히 앉아있는 능력의 부재에서 나온다.

- 위대한 헌신은 처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그냥 첫발을 내디뎌라. 그리고 다음 단계가 조금 뚜렷해지면 그때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된다.

-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만든다. 따라서 선택지 고르기의 과제는 올바른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연적으로 선택한 미래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 선택이 올바른 것이 되도록 만드는 데에 집중해야 

- 전념하기의 생명력은 과거의 어느 한순간이 아니라 그 길을 가는 모든 순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 변화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사람들이 과대평가하는 이유는 심리적 면에 체계의 힘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의미를 덜 두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의 결정이 옳았는지 곱씹으며 괴로워하기보다 그렇게 결정

  했던 이유를 합리화함으로써 과거의 결정에 심리적으로 적응한다.

- 새로운 헌신의 결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냄으로써 나의 전환을 고정하도록돕는 의식은 

  모든 문화에 존재한다.

- 사명 의식은 헌신에 어떤 신성함을 부여한다.

- 나르시즘은 우리가 진정한 자아대신 껍데기를 쌓아 올릴 때 뿌리를 내린다. 사실 알고 보면 

  나르시스트는 과장되게 부풀린 껍데기에 둘러싸인 약한 사람들이다. 나르시스트가 되는 것은

  전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이 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남들이 그것을 

  알아차릴까봐 전전긍긍한다.

- 나쁜 상황을 무작정 없애려고 하는 것보다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방법이 언제나 훨씬 효과적

- 목적 의식이 있는 사람은 상황에 끌려가기보다 먼저 나서서 상황을 주도한다

 

8장 유대에 대한 두려움과 오랜 관계가 주는 편안함

- 무언가와 깊은 관계를 맺으면 자신의 정체성, 평판, 통제감이 위협받을까 봐 걱정하게 되는데

  이를 유대에 대한 두려움이라 한다.

- 새롭게 전념하기의 길을 가려며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자아 개념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

- 운동가들이 새로운 조직을 만들면서 내분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때는 조직의 비전과 목표를 

  정하는 단계이다.

- 평판 위협은 다른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 자신의 자아가 고정적이고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면 나와 딱 들어맞지 않는 모든 것이 위협적

  으로 느껴진다.

- 정체성은 고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여러 관계를 통해 만들어 가는 것이다.

- 고정된 개인적 특성이 아닌, 우리가 헌신하는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한다.

- 사회와 자아는 서로 공생한다. 우리가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가 우리를 형성한다.

- 사람들은 자신이 무언가와 유대를 맺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까봐 두려워서 유대 맺기를 꺼린다.

- 특정한 것에 헌신한다는 것은 좋은 것에도, 나쁜 것에도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다.

- 무조건적 사랑은 상대방의 표면적인 조건이 아닌 온전한 한 인간에게 깊이 헌신한다는 것.

- 사회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그들이 개혁하고자 하는 장소에,

  공동체에 기관에 다시 포함되는 것.

- 상대방의 신롸를 얻어야 조언할 수 있다.

- 연대란 나보다 더 큰 무언가에 헌신할 때 반대로 나도 그 무언가의 헌신을 받는다는 뜻.

-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태도와 다른 사람들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합치는

  과정이 연대다.

 

9장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깊이가 주는 기쁨

- 새로움과 목적, 이 두 가지가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힘(펠릭스 비더만)

- 새로움과 목적의 차이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열쇠다.

-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새로움만 추구하는 사람은 삶의 모든 것이 재미있거나

  반대로 지루하다고 느낀다.

- 목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면, 새로운 경험이 주는 즉각적인 즐거움보다 깊이가 가진

  힘이 더 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판타지를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깊이 있는 전념이다.

- 깊이 있는 전념 역시 장기적으로 보면 배당금을 지급하는 행복 창출 자산을 형성한다.

- 예술가가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벽과 한계를 정하는 것이다.

- 깊이 있는 헌신이 발휘하는 영감의 힘에는 한계가 없다.

- 깊이 파고드는 것을 막는 위협들

  1) 지루함    2) 산만함    3) 불확실    4) 유혹    5) 목표 변절

- 모든 의미는 지속할수록 축적된다.

- 유대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고 연대를 형성하면 더 큰 공동체와의 관계를 찾는다.

  깊이가 주는 즐거움으로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치면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를 찾는다.

- 우리가 시간의 길이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깊이는 통제할 수 았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10장 선택지 열어두기의 경제 : VS 특정성

- 문화는 어떤 목적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킨다.

- 대부분 문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여역을 강력하게 보호했다.

- 한 가지 영역(, 명성, 외적 아름다움, 정치적 연줄 등)의 힘을 다른 영역의 힘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해질 때 부조리가 생긴다.(마이클 왈저)

- 예전에는 돈이 특정 목적을 위한 수단에만 머물렀다. 그러나 돈이 그 한계를 벗아나 문화

  전체를 장악하면서 논리가 뒤집혔다. 돈이 곧 목적이 된 것이다.

- 개인적 차원의 화폐화, 기업적 차원의 금융화, 공동체의 상업화, 이 모든 현상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선택지를 열어두기 위해서 소중하고 특정한 것들을 녹여서 가장 특정하지 

  않는 돈으로 액체화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기업이 특정하고(특정한 사람들을 위해 특정한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 만든)

  오래 유지될 때(우리가 애정을 갖게 될 때까지의 시간을 줄 수 있을 만큼), 거기에 애정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 노동조합의 급감은 회사에 대한 노동자들의 무관심을 의미한다.

- 거대한 단체가 전문가를 고용해서 관리하는 형태로 변화하면서, 사람들은 공공 생활에

  주인의식을 갖기 않게 되었다.

 

11장 선택지 열어두기의 경제 : 무관심 VS 명예

- 사회적 자본은 서로를 신뢰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협동하고, 상호성의 원칙을 지키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뜻한다

- 오늘날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벽이 두꺼워짐에 따라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것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원만하게 어울리는 것이 더 가치 있는 행동으로 여겨지게 됐다.

  ‘모든 사람은 무엇이 진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에 관하여 자기만의 감각에 기초해서

  자기만의 인생 형태를 이끌어갈 권리를 가진다

- 도덕성에서 중립으로의 전환은 종종 도덕의 자리를 규칙이 대신하는 현상을 동반한다.

- 도덕성이 중립으로, 사명이 효율성으로, 도덕이 규칙으로 대체되는 현상은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본디 생동감 있고 활발했던 기관의 본서이 차갑고 황량하고 기계적으로 변했다.

- 명예의 문화에서는 내 성공이 곧 집단적 성취로 이어진다.

- 명예의 문화가 요구하는 취약함은 내밀한 것을 공유하는 취약함이 아니라, 꾸준히

  헌신하는 과정을 통해 내 미래의 일부를 공유하는 취약함이다.

- 집단의 이기주의와 독선을 적절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용서다.

 

12장 선택지 열어두기의 경제 : 발전 VS 애착

- 종교적인 교육이란 의무와 존경을 심어주는교육이다.

- 세상을 배운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지식은 곧 책임을 뜻하며, 책임은 곧 보살핌을 뜻한다

- 교육자의 일은 학생들이 특정한 사람, 장소, 생각, 가치에 애착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일단 애착이 형성되고 나면 그다음은 학생들에게 그것을 좀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공간과 

  안정과 격려를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 교육은 곧 애착을 일구는 과정이다. 질 좋은 교육이란, 아이들이 특정한 것에 애착을 형성할 

  다양한 기회를 학교 안팎에서 제공하는 교육이다.

- 출세를 추구하는 이유는 명성과 자존심(또는 돈)이 아니라 두려움, 즉 선택의 문이 닫힐까

  걱정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 더 작은 내부조직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구는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다. 내 삶의 중심을 내부

  조직에 두고 사는 것은 끊임없이 양파를 까는 것과 같다(루이스)

- 교육은 저마다의 깊이와 의미를 지닌 공동체에서 그들을 꺼내서 각자의 특징과 개선을 제거

  하고 대신에 추상적인 기술, 기술적인 수준의 정보, 어디에도 어울릴 수 있는 사근사근한 

  태도를 입힌다.

- 애착을 위한 교육이 제공될 때 우리는 특정한 직업, 기술, 대의, 공동체에 정착하는 법을 배우고,

  거기에서 존경과 의무가 주는 평화를 찾을 수 있다.

 

13장 홍수와 숲

- 반문화에 합류한다는 것은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의 가치와 결과를 뒤집기 위해 노력한 영웅과    덕목과 의미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 깊이 전념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14장 초대

-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촛불 하나를 밝히는 것이 훨씬 낫다

선택지 열어두기의 경제 : VS 특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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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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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영국의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과 한국의 고승 네 분(성파, 도법, 금강, 정관)과의 평범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원초적 문제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이야기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개신교 신자인 이같은 작품을 접한 이유는 편협 된 종교관에 매몰되어 있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노력(?) 때문으로 속된 말로 좀 있어 보이려고 접하게 되었다.

 

난 개신교도이지만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 논리인 내 종교만이 최고다 라는 생각은 갖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나의 종교와 종교적 신념이 중요하면 타인의 종교도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기에 기꺼이 이런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 개신교 입장에서 보면 거의 역적 수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으나 아닌 것 아니다 -

가끔 언론을 통해 내 종교가 좋은 것이니 타 종교를 폄훼하는 일부 몰상식한 개신교도들의

사고치는 소식을 들으면 참으로 속상하며 진정으로 그들이 믿는 종교의 절대자께서 진정 그런

그들의 저급하고도 몰상식한 모습을 좋아 하실런지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절대 아닐 것이다.

 

최근 정권이 바뀌면 새로이 출범하는 정권이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경내를 관람하던 어떤 옹졸,

치졸빤스같은 인간이 불상에 절하는 다른 사람을 보고 난리를 친 사건이 일어난 모양인데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개신교도인 나만이라도 내 종교 외의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또 서로를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상대 종교에 대해 존경은 아니더라도 폄훼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런 자세가 올바른 종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순복음 조용기 목사님을 부처님 오신날

조계종인지, 동국대인지를 방문해 종교와 관련된 특강을 과거에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타 종교의 거두께서 상대 종교시설에 가서 특강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상대편 종교인을 초빙한 불교인들에 대해서도 높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그들의 성숙된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작품 속에서 눈에 들어온 대목은

-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이런 기분이 들 때는 바로, 나 자신에게 

   ‘어떤 틀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 자기의 틀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는 것은 상대에게 다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내가 그 을 깨야 한다.

라는 대목으로 나이가 들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위의 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종교를 떠나서 나이가 든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 타협을 모르는 

정치인들, 갈라치기를 주업으로 삼고 사는 인간들은 위 문구를 잘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 대목은

- 자신이 준 것만 따지는 사람은 불행하고,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대목은 성경의 말씀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이었다고 생각하며 매번 위 문구처럼 살려고 하는데

그게 쉽지를 않다. 그런 나는 오늘도 나의 절대자에게 위 문구처럼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품 제목 오래된 질문은 답이 없어 물어본지 한 참 지난 오래된 질문이 아니라 세상이,

시간이 흐르며 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즉, 구성원들이 쉼 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던져진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도 역시 변할 수밖에 없기에 외견상 질문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질문이 아닌 오늘을 사는 모두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마음을 잘 추슬러 보라는 죽비적 가르침을 던져주려는 작품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 ‘생명이란 DNA나 두뇌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끊임없이 교류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 삶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 아득한 심연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재대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쓸데없는 고통의 연쇄에 매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깨달음은 일상과 동떨어지고 신비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몰랐던 걸 알았다’, ‘잃었던 것을   

  찾았다‘, ’가려졌던 것이 벗겨졌다등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나의 참모습, 이 세상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확신하는 경험적 지혜가 바로 

  깨달음이다. 그 깨달음에 맞게 내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더욱 중요하다.

- 지금 현실적인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면,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당면한 문제를 줄일 수 있는지 묻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 고통은 그 자체로 우리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그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따라

  괴로움의 정도가 달라진다. 쓸데없이 과도한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그런 고통이 대부분 우리가

  관념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고통은 외부에서 주어진 상황이나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유래

  한다. 붓다는 이를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찾았다.

- 남들이 우리에게 붙인 이름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것이 바로 지혜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중도라 부른다.

-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라.

- ‘염화 미소란 말로 통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다.

- 시비, 분별, 번뇌, 망상이 있기 이전의 마음, 비교하기 이전의 마음, 나라고 하는 개념이 있기 

  이전의 마음, 부처님은 항상 그런 마음으로 행동한다.

- 그대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대에 의지하여 내가 존재합니다. 나를 존재하게 하는 

  그대는 무한히 높은 자요, 귀한 자요, 고마운 자입니다그대 앞에서 나는 무한히 낮은 자입니다.

  끊임없이 나를 낮추고 비우고 나누어야 하는 자입니다.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몸짓이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이란 주체적으로 낮은 자, 비우는 자, 나누는 자의 삶을 실천하는 행위이다.

- 자존심이 센 사람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남과 견주어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 ‘좌선(坐禪)’이란 번뇌와 망상이 없는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로 앉는 것을 말하는데

  ‘()’란 어지러운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것을 진짜 앉아 있다고 말한다

  ‘()’이란 어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고요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 ‘화두는 반드시 그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거 계속 반복해서 되뇌면서

  평화로운 본연의 마음 상태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 감정에 휘둘리거나 쉽게 끌려가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금강이라 한다.

- 참선은 삶을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

- 진정한 삶의 변화는 저 멀리 특별한 장소에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 노예로 살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주인으로 사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이다.

- 삶은 내가 마음먹고 행동하는 대로 살아지고 창조될 뿐이다.

- 남과 자꾸 비교할수록 내 행복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처한 지금의 환경과 함께하는 사람들

  그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교는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 동양에서는 왼손을 ()’라 하고 오른손을 ()’이라 한다.

  ‘체용론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동양 철학의 아주 오래된 패러다임이다.

  ‘는 사물의 본체나 본질을 의미하고, ‘은 사물의 작용이나 현상을 의미한다.

- 사찰음식에는 마늘, , 달래, 부추, 아위 이렇게 5가지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는다.

-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것은 따로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이다.

 

* 출판사에 표하는 이의제기

- P 46쪽에는 도법스님이 17살에 출가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P 24쪽에서 이미 도법스님은

  18살에 출가한 것으로 씌여져 있다.

  독자는 이런데서 출판사에 대한 신뢰, 편집인에 대한 신뢰를 눈여겨 보게 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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