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앤 넘버스 - 숫자에 가치를 더하는 이야기의 힘
애스워드 다모다란 지음, 조성숙 옮김, 강병욱 감수 / 한빛비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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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3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일반인 특히 주식에 관심을 갖고 뭔가 일확천금(?)을 꿈꿔보려 노력하는

사람이거나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발전을 위해 기획을 주무기로 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제를 미시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는 분야에 종사하는 중요 

인물이라고 본인 스스로 느끼고 있는 사람이 읽을 책이지 나와 같이 경제에 관해서는 대학에서

혹은 언론 매체를 통해 일반 상식 수준의 경제학 개론 수준에 머물고 있는 문외한급 경제에 관한

지식의 소유자가 읽기에는 너무도 수준 높은 내용이어서 자칫 독서를 혐오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할 우려가 다분히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 작품이다.

솔직히 짜중난 작품이다. 소단원 8부터는 짜증의 극치였다.

 

- 스토리는 우리가 타인과 관계를 맺도록 도울 뿐 아니라, 연구에서도 드러나듯 숫자보다는

  훨씬 잘 기억된다. 그 이유는 스토리는 숫자가 하지 못하는 화학반응과 전기 자극을 유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 비지니스 스토리텔링의 성공 여부를 재는 척도는 창의성이 아니라 약속 전달과 이행 능력

- 불확실성의 세상에서 숫자는 우리에게 정밀하고 객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과도하게 쏠리지 않게 하는 균형추가 된다.

- 투자를 하면서 당장 부딪히는 문제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가 너무 많아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 숫자는 체계적인 평가를 가능하게 해주지만, 스토리가 받쳐주지 않는 숫자는 원칙과 체계가 

  아니라 위협과 편향의 무기가 된다.

- 사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투자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스토리텔링을 조절하고 통제하려면

  평가하려는 기업을 이해하고, 그 회사의 역사와 해당 사업, 현재와 잠재 경쟁자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성, 타당성, 개연성 여부를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 탄탄한 스토리는 숫자가 결코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듣는 이들과의 관계를 맺는다.

- 스토리에 몰입하는 사람일수록 맹목적으로 스토리를 받아들이는 성향도 높다.

- 듣는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을 넘어 그들에게 직접 생각하고 관계를 맺게 하는 스토리가

  가장 좋은 성과를 낸다.

- 신경물질 옥신토신은 스토리를 듣는 동안 분비되는 신경화학 물질이다.

-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이 가장 뚜렷하게 사용되는 분야는 판매와 광고분야다.

- 접근 가능한 정보가 늘어나면 정보 유지가 더 어려워진다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 소셜미디어의 성장은 스토리텔링의 지평을 넓혔다.

- 스토리의 힘이 강한 이유는 사람들의 감정과 관계를 맺고, 쉽게 기억되고, 듣는 이의 행동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 행동경제학은 경제학과 심리학의 교차점에서 최근에 생겨난 학문이다.

- 현실적 제역을 고려하지 않는 스토리텔링은 쉽게 초점을 흩뜨린다.

- 듣는 이를 압도할 정도로 스토리의 힘이 강력하다면, 약속된 결과를 달성하는 데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 비즈니스 스토리는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

  창의성만이 아니라 신뢰성 그리고 스토리에 담긴 약속을 이행하는 능력도 비즈니스 스토리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 의사결정에 숫자를 잘 사용하려면 데이터를 잘 관리해야 한다.

- 스토리텔러가 밟아야 할 단계

   1) 자신의 사업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라

  2) 청중을 이해하라

   3) 사실대로 말하라 

  4) 구체적으로 말하라

   5)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6) 결말에 공을 들여라

- 좋은 스토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는

    1) 단순하다      2) 믿을 수 있다      3) 진솔하다        4) 감성을 건드린다

- 스토리가 관계를 만들고 기억에 쉽게 남게 한다면 숫자는 사람들을 설득한다.

- 기계의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면서 의사결정에 숫자를 이용하려는 추세도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 사람들이 그토록 숫자에 끌리는 이유는 숫자는 편견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의도에도 휘말리지

  않는다는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정밀한 모형이지만 부정확할 수 있고, 반대로 정확한 모형인데도 정밀하지 않을 수 있다.

- 통계학에서는 추정할 때 표준오차로 추정의 잠재적 오차를 드러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실생활에서, 특히 비즈니스와 투자 세계에서는 이런 가르침을 무시하고 추정치를 마치

  사실인 양 다루다가 재앙이나 다름없는 결과가 생기기도 한다.

- 무언가를 측정한다고 해서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정교한 측정 도구를 가졌기 때문에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 숫자가 상식을 몰아낼 

  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가올 위험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할 수도 있다.

- 데이터라는 것은 어쨌든 과거의 데이터이고, 구조적 변화가 발생해 미래가 과거와 크게 

  달라진다면 데이터 기방의 미래 예측은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 집단의 광기를 부수는 최고의 방법은 대안적인(그리고 더 현실적인)스토리를 결합하고숫자로

  그 스토리의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 퀀트 투자로 성공과 번영을 누리려면 스토리텔링과 내러티브를 숫자에 결합시킬 방법을

  아야 한다.

* 퀀트 : 수학이나 공학, 컴퓨터 공학 등에 재능을 갖춘 사람으로 이들 기술을 증권업에 응용하는

         사람

- 모든 연구에는 편향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단지 편향의 방향과 크기가 문제일 뿐이다.

- 숫자와 도구의 용이한 접근성은 모든 사람을 넘버크런치로 만들었다.

- 분석에 개입하는 편향

  1) 평균의 지나친 맹신        2) 정규를 표준으로 보는 경향       3) 이상치 간과

- 데이터 수집 단계에서는 원하는 결과를 만들려는 목적에서 표본에 편향이 스며들고,

  데이터 분석 단계에서는 이상치를 다루는 방법에 편향이 개입한다.

- 좋은 비즈니스 내러티브의 정수

  1) 단순해야 한다                2)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3) 영감을 주어야 한다           4)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 비즈니스 스토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의 역사를 검토해여 하고, 회사가 영업 활동을

 하게 될 시장을 이해해야 하며, 경쟁 양상을 가늠하기 위한 척도를 마련해야 한다.

- 신생기업의 내러티브를 구축할 때는 투자자 입장이 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회사를 운영하는 창업자나 오너들, 그들의 과거 이력 그리고 동종 업계에 속한 다른

  대기업들을 관찰해야 한다.

- 기존 사업 모델에 따라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의 스토리는 경쟁사와 차별화 할 수 있는 낮은

  원가구조나 가격 프리미엄을 붙이는 능력 등 특별한 사업영역을 찾아내고 기존 사업 관행에 

  도전하는 회사는 파괴 모델을 따라야 하며 현상 유지에 노력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파괴의 

  스토리를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라이프 사이클 초기 단계의 기업일수록 파괴의 스토리를 만들기가 훨씬 쉬워진다.

- 좋은 비즈니스 스토리를 만들려면 사업과 그 사업이 속한 시장을 이해해야 한다.

- 기업의 스토리는 가능성, 타당성, 스토리의 개연성 등이 있어야 한다

- 고평가 주범은 성공적인 기업가 정신과 벤처캐피탈 투자의 전제조건이나 다름없는 과잉

  확신이다.

- 성장이 늘어나면 가치는 상승하지만, 위험이나 재투자가 증가하면 가치는 하락한다.

- 고성장을 꾀하는 회사가 성장을 달성하려면 재투자를 높여야 한다.

- 스토리와 가치를 연결하려면 제일 먼저 내재가치평가에 대한 기본부터 이해해야 한다.

- 내재가치란 현금흐름, 기대성장, 위험 등의 펀더멘탈에 근거해 자산에 매겨진 가치를 의미

- 사업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현금흐름, 위험, 현금흐름의 불확실성, 기대되는 성장 수준과 

  효율성의 크기이다.

- 가격결정은 다음 3단계를 밟는다

   1 단계 : 가능하거나 비슷한 자산을 찾는다

   2 단계 : 투자자들이 회사들의 가격을 결정할 때 사용하는 척도를 찾는다

   3 단계 : 기업에 가격을 매긴다

- 스토리를 가격결정에 연결하려면 가격결정의 척도 중심으로 스토리를 구성해야 한다

- 사업가치를 평가할 때는 기존 투자의 가치를 매기고, 이 추정치에서 성장하거나 파괴되는

  가치를 가감한 후 위험 조정한 현금흐름을 두해야 한다

- 사업의 성장 잠재력이 올라갈수록 최종가치가 현재가치에 기여하는 몫 역시 늘어난다.

- 가격결정은 피드백이 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스토리의 각 부분에 대한 피드백이기 보다는

  종합적인 차원에 대한 피드백으로 정답은 없지만 다음 사항을 참조하라

   1) 내러티브와 가치평가를 투명하게 진행하라

   2) 공개적인 토론 자리에서 가치평가에 대한 조언을 구하라

   3) 건설적 비평과 잡음을 구분하라

   4) 내러티브를 사용해 비판을 체계화하라

   5) 연결이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내라

   6)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고민하라

- 새로운 발전과 정보를 만나면 내러티브를 재점검하면서 혹시라도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 성공적인 기업들과 리더들을 보면 단계에 상관없이 몇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스토리를 통제하라

  2. 스토리의 일관성을 유지하라

  3. 스토리에 맞게 행동하라

  4.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결과를 달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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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본색 - 1인자의 본심을 읽어야 국가의 운명이 보인다
김덕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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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제목만 보고 지도자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혹은 지도자라면

태생적으로 또는 후천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시대와 환경이 요구하는 지도자로 육성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 상을 그려보기 위해 

해당 작품을선정해 읽어 보았는데 그런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작품은 우리 모두가 평소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다 알고 있는 고대 로마시대 

대표적 위정자의 통치 등극과정 그리고 그들이 행했던 통치 내역과 업적 분석을 통해 

지도자라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또 위기의 순간에 어떤 혜안을 갖고 난국을 헤쳐 나갔는지를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작품이다.

나는 작품을 읽으며 우리의 여의도와 용산을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당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찾지가 쉽지 않았다.

어찌되었던 간에 작품을 통해 지도자 상에 대한 어떤 정보를 얻어보고자 덤벼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니 주의하기 바랍니다.

 

지도자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언젠가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이야기하고, 강조한 사실이

있지만 지도자는 스스로 타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여러 작품을 통해 얻은 결론은

첫째, 지도자를 키우는 확실한 조력자(부모, 친구 등)가 있어야 하고

둘째, 지도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시대적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야 하며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도자는 태생적으로 그런 인격을 갖고 태어나야 하며

넷째, 다른 여러 조건보다 우선적으로 어떤 경우라도 상대를 포용하려는 강력한 

      자세가 있어야 하고

다섯째,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한 각고의 개인적인 노력과 더불어 지도자를 지지해

         줄 강력한 동참세력이 있어야 한다

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작금의 우리 주변을 보면 어떤가?

기가 차고, 한심스런 작태가 연일 벌어지고 있으며 모두가 난리를 치며 당신은 틀렸다고

외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자신은 억울하며 아니라면서 모함이라고 울부짖으며

난리를 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최근에 방송된 모 프로에 나온 어느 유명 여자 탈렌트가 어느 영화 촬영 당시 아무리 노력

해도 시나리오에서 요구하는 표정 연기가 안 되어 속상해 하며 돌아서서 눈물지을 때 그

영화감독이 문자 한통을 보내 왔다고 한다.

모두가 환호할 때 인정하십시오

라는 문자였다고 한다.

자꾸 아니라고 하지 말고 모두가 의심할 때 인정하고 자중 모드로 들어가는 그런 지도자가

보고 싶다. 진짜로 .......

 

[선견지명의 함정] --- 그라쿠스 형제(티베리우스, 가이우스)

- 기원전 2세기 중엽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해 서부 카르타고와 마케도니아를

 속주로 편입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지만

각종 전리품과 전쟁 포로의 유입으로 경제적 활기

헬레니즘 문화와 함께 동방의 선진문물이 급속 유입

전쟁의 장기화, 대농장의 등장으로 중소 자영농이 급속 붕괴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사회 혼란 가중의 폐해 발생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즉, 그라쿠스 형제의 등장

- 그라쿠스 형제의 아버지는 한니발을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인 코르넬리

  아와 결혼하면서 권력을 독차지하나 12명의 자녀만 남기고 죽는다.

자녀 중 그라쿠스 형제와 셈프로니아()만 남고 모두 죽는다.

어머니 코르넬리아는 재혼도 거부한 채 자녀 교육에 몰두, 그라쿠스 형제를 로마의

   위대한 개혁가로 성장시킨다.

딸은 그라쿠스 가문과 좋은 관계가 아니었던 스키피오가문과 혼인하나 개혁 운동에

   앞장선 그라쿠스 형제와는 달리 개혁에 중도적, 부정적 견해를 보인 스키피오파 가문과

   반목하게 된다.

- 그라쿠스의 형인 티베리우스가 제안한 농지개혁법이 통과되자 원로원중심의 기득권

  과 평민중심의 민회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한 끝에 기득권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티베리우스의 비타협적이고 강력한 개혁 추진과 비록 가짜 뉴스로 인한 오해로부터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원로원이 주축이 된 폭력 행사가 사회 위기를 증폭해 불신과

   증오의 불씨를 심는 결과를 초래했다.

티베리우스의 동생 가이우스도 형처럼 평민을 위한 개혁 운동에 참여하나 죽임을

   당하고, 그의 동생들인 그라쿠스 형제 역시 호민관에 등극하여 평민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다 형은 1년 만에, 동생은 2년 만에 정치 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공화정 초기의 타협과 소통의 정신은 사라지고 극단적인 대치와 폭력만 난무하며 사회

   갈등이 심화돼 결국 로마는 길고 긴 내전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혼란의 시기가 지나가고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평화시대를 연 이후 그라쿠스 형제

   가 제시한 개혁정책들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다.

-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반대하는 자들을 일소하는 대신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 옳고 따라서 나만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는 순간 개혁은 명분을 잃은 채 이권

  다툼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바로 그라쿠스 형제의 실수였다.

 

[피를 부른 지도자의 근시안]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시도와 죽음 이후 로마는 민회와 원로원, 평민파와 귀족파로 분열

  되고, 마리우스(평민파)와 술라(종신 독재관)의 등장

- ‘술라는 몰락한 귀족 집안이었는데 여인(부유한 연상녀와 계모)를 만나 재산과 명예를

  물려받으며 정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 당시 실권자인 집권자 마리우스밑에서 재무관을 지낸 술라는 킴브리아 전쟁과 동맹국

  누미디아가 일으킨 유구르타 전쟁등을 거치며 시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집정관에 당선

  되는데, 이때 마리우스는 군제개혁을 도입 징집제도를 개혁하지만 추후 징병제도의 

  개혁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개혁이 되는데, 전장에서 승승장구하며 평민파의 지도자로

  성장할 때 부관이 바로 술라였다.

- 50대의 마리우스와 30대의 술라....술라가 마리우스의 종려 집정관의 부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둘 사이는 분열하게 된다. 법무관에 오른 술라는 동맹국 전쟁으로 입지가 부각

  이때 흑해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무리들과의 전쟁인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전쟁에서 총사령관을 누가 할 것인가를 놓고 평민파의 대표자 마리우스와 귀족파의

  술라가 갈등하게 되는데 귀족파의 지지를 받은 술라가 총사령관이 된다

   ---> 로마 역사상 최초의 내전발발(마리우스파와 술라파)

- 마리우스는 술라에 의해 아프리카로 도망갔다.

  ‘킨나의 도움으로 국내로 복귀한 그는 자신의 반대파에 대한 피의 숙청을 감행하지만 

  이내 술라의 복귀로 다시 정권을 빼앗긴다.

  이 과정에서 술라가 저지른 적폐 청산은 마리우스파의 절멸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후 밀어붙인 개혁은 반동적 성격이 강해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힘으로 상대를 억누르면 당장의 효과는 있어서 내 뜻을 실현하고 사회 안정을 이룰 

  것처럼 보이지만, 그 힘 자체가 영원할 수 없다. 내가 힘을 잃는 순간 상대가 발톱을

  드러낼 것이고, 평화는 깨진다. 그런즉 복수의 연쇄를 끊는 지도자, 자신을 핍박한

  상대를 용서하는 지도자는 위대하다.

* ‘술라의 정권 등극 후 보인 행태와 이전 정부 시절 보인 행태가 거의 유사하다.

술라가 유사시 원로원이 특정인에게 비상 대권을 주는 패착으로 인해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듯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느 단체장의 어설픈 시민단체에게 각종 이권을 줘서

그럴듯한 통치 모습을 보였지만 종국에는 그들로 인해 스스로 먹칠한 행동가가 되었듯

술라의 묘비명은

친구에게 선행을 베푸는 데 그를 따를 친구가 없었고, 적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데 그를

따를 적이 없었노라는 문구는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인민을 위한다는 명분, 또는 핑계]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카이사르는 고모부인 평민파의 수장 마리우스가 죽자 그의 오른팔 킨나와 협의, 그를

  유피테르 신전의 제관으로 임명하고 킨나의 딸과 혼인하지만 술라가 카이사르에게 

  사면을 제시하며 자신의 사촌과의 결혼을 요구하며 회유

- 카이사르는 우여곡절 끝에 속주의 참모로 공적을 세우며 은신하고 있던 중 절대 권력자

  술라가 죽자 집정관귀족파간의 주도권 다툼이 일어나는데 또 다른 집정관이자

  실력자인 레피두스가 카이사르와 함께 할 것을 제의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제안을 거절하고 법정의 변호인 혹은 고소인으로 활동하는 요즘말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입지를 다진다.

-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당시 귀족파의 실력자 돌라벨라히브리다를 고소하면서 그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 졌으며 동시에 수사학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키케로가 글과 말로써 국가에 봉사했다면 카이사르는 정치와 군대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와중에 15명으로 구성된 신관단의 한 명인 코타가 죽가 카이사르가

  신관으로 선임되는데 이는 정무관으로서 첫 번째 경력이 된다.

- 카이사르가 살았던 공화정 시대의 로마는 어떤 관직이라도 민회에서 투표로 선출한

  사람에게 맡겼기 때문에 인민의 지지 없이는 합법적인 지도자가 될 수 없었는데 지도자

  는 인민의 지지 위에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카이사르는 여러 속주의 참모(재무관 등)로 일하면서 역량과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데

  술라의 손녀(폼페이아)와 재혼하면서 또 평민파의 대부인 마리우스의 정신을 계승하면

  서 정체성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평민들의 지지를 쉽게 얻는다.

- 카이사르는 평민을 위한 혁신적인 조치들을 단행함과 동시에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정권을 공동관리하나 크라수스의 패전으로 정권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자 세력이 더

  강했던 카이사르를 견제하기 위해 원로원이 폼페이우스를 단독 집정관에 선임하면서

  내부 암투가 시작된다

- 카이사르는 평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여러 개혁조치를 취하면서 폼페이우스와 파르살루

   스 평원에서 대접전을 벌여 승리를 쟁취하는데 아프리카로 도망간 폼페이우스는 당시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측근들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삼두정치를 종식된다

- 카이사르가 험한 시기를 보낸 이후 보여준 것은 복수가 아닌 관용이었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에게 대항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였지만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적극 대항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같은 편으로 간주하였으며 

  전투에 참여한 병사들에게는 누구든 한 사람은 살려주어도 된다고 했다. 심지어 정적들

  이 관직에 나가는 것조차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 지도자는 국가 운영의 중심, 즉 법과 제도가 인민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카이사르는 사리사욕과 기득권 유지에 집착한 원로원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 그는 많은 정치적 개혁과 민생 복지를 위한 노력을 많이 했으나 갈리아전쟁에서 승리

  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끈테 권력의 최고 자리를 탐한 결과 왕을  두지 않는다는 

  공화정 초기 정신이 크게 훼손되면서 원로원의 미움을 사 죽게 된다.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세울 때 로마에는 왕을 두지 않는다는 선언에 따라 누구든지

  왕이 되고자하면 아무리 많은 업적을 쌓더라도 죽어야 했다.

- 지도자는 시대를 정확히 읽고, 인민의 지지를 얻으며,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카이사르는 그 모든 것을 겸비한 인물이었지만 정적인 공화파의 반격의

  빌미를 준 권력욕, 명예욕 그들을 과소평가한 안이함이 그의 치명적 실수였다.

-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인권변호사 카이사르와 

  종신 독재관 카이사르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므로.

 

[처음에 이기고 마지막에 패배하는 지도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 카이사르 사후 타협 및 고도의 정치 행위로 로마의 위기를 극복한 지도자, 또는 외세와

  손잡고 로마를 배신한 매국노, 안토니우스를 향한 극단적 평가가 있다.

  특히 부정적 인상을 각인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키케로로 그는 카이사르

  암살 당시 안토니우스를 함께 죽이지 못한 것을 최대의 실수라 했다.

  키케로는 추후 안토니우스의 계부가 카탈리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처벌되자 이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 키케로에게 복수하며 둘 간의 악연은 막을 내린다.

- 옥타비아누스와의 내전을 비롯한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 악티움 해전 및 알레산드리아

  전투에서 연이어 패한 전력과 각종 영웅전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등으로 역사적으로

  안토니우스에 대한 부정적인 경향이 높은 게 사실이다.

- 안토니우스의 조상은 보수적인 성향의 귀족파였지만 할아버지가 술라파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마리우스에게 처형당한다. 모계의 집안도 카이사르의 친척이었으나 마리우스와

  킨나의 반대편에 섰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전력이 있는 집안이었다.

- 안토니우스의 친구 클로디우스를 카탈리나의 모반연루자로 키케로가 지목, 둘 사이는

  급속히 악화되는 데 평민파 운동에 가담하면서 클라디우스가 키케로를 추방하는 데

  성공하지만 훗날 이 일로 귀족파에게 살해 당한다.

  불안한 정세 속에서 안토니우스는 그리스로 넘어가 수사학을 배워 카이사르파의 일원이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 안토니우스는 수많은 전쟁에서 많은 공적을 세우는 등 군대에서 역량을 뽐내기 시작.

  특히 이집트 내전에 관여한 것을 기회로 클레오파트라와 관계를 맺게 된다.

  당시 로마는 키케로와 폼페이우스를 주축으로 하는 귀족파, 카이사르를 주축으로 하는

  평민파와 갈라져 있었는데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지목된 옥타비아누스는 초기 안토니우스와 반목하는 듯하다

  레피두스와 안토니우스의 동생들을 권력의 주변에 배치하며 권력을 확장해 나간다.

  특히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 암살자들을 관대히 처리한 결과 카이사르

  의 병사들에게 반감을 샀음을 잘 알고 카이사르의 후계자로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기 시작

- 공화정의 재건을 꿈꾸던 키케로는 옥타비아누스를 제거하려 했지만 카이사르의 후광과

  병사들의 지지에 힘입어 공화정의 원로들을 제거하고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와 함께

  카이사르파의 재건을 도모한다

- 카이사르 제거에 앞장섰던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필리피 전투에서 옥타니아누스와

  안토니우스를 제거한 후, 카이사르 암살자들을 돕고 공화파를 지원했는지를 묻기 위해

  클레오파트라를 소환한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로마의 지원이 필요했고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의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이집트의 지원이 절실했다.

- 옥타비아누스와 클레오파트라-안토니우스 연합군과의 악티움 해전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패한 안토니우스는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자기를 죽여달라고 하인(에로스      에게 지시하지만 막상 그 순간에 하인이 이를 결행치 못하고 스스로 자결하다 미수에 

  그친 상태에서 자신을 찾으러 온 클레오파트라의 하인 디오메데스에 의해 발견되어

  클레오파트라에게 인도되어 그녀의 품안에서 죽는다.

- 안토니우슨은 전시의 군사적 재능은 출중했지만 평시의 통치 능력은 부족했던 것이

  카이사르가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의 최대 실책은 정치권력의 근거지를 로마가 아닌 이집트로 잡았다는 것이다

- 지도자로서 안토니우스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 분열을 극복한다는 대의가 아니었다.

  카이르 암살 뒤 혼란을 수습할 때나 삼두정치를 구성하고 유자할 때나 모두 자신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부터 고민했다. 그래서 그의 대통합은 힘이 없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야합이었다. 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모든 것이 자기 계산대로

  되고 있다는 안일함 속에서 안토니우스는 자멸하고 말았다.

 

[굴욕을 대하는 태도]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

- 졸지에 로마의 일인자가 되어 버린 옥타비아누스는 최고의 자리에서 모든 권력을 내려

  놓고 즉, 대권을 원로원과 인민에게 반납하고 공화정의 회복을 선언한 그는 인간 이상의

  ‘존엄한 자라는 뜻인 아우구스투스로 불렸다. 

   --->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기틀 마련

- 옥타비아누스(이우스투스)에 대한 평가

  1) 권력욕에 취해 적과 손잡고 친구도 배신하는 불신의 아이콘

  2) 남의 아내를 빼앗은 부정한 자

  3) 권력 세습을 위해 외동딸을 세 번이나 정략결혼의 희생물로 삼은 잔인한 아버지

  4) 어떠한 굴욕에도 포기하지 않은 야심가

  5) 국가를 혼란과 무질서에서 구한 구구의 영웅

- 옥타비아누스의 집안은 재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덕분에 아버지가 카이사르의

  둘째 누나(율리아)의 딸인 아티아와 결혼하는데 그가 태어날 즈음 카이사르는 평민파의

  우두머리로 서서히 떠오르는 별이었다.

- 카이사르의 죽음을 알게 된 옥타비아누스는 친구와 동행하여 로마로 들어간다.

  이때 하층민 출신이자 친구이자 충성스런 이인자인 이그리파가 있었다.

  로마에 입성한 옥타비우스, 안토니우스는 둘 다 카이사르파였지만 안토니우스 온갖

  방해와 비협조로 유언장에 언급된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안토니우스의 세력 확장에 우려하던 공화파가 옥타비우스에게 손을 내민다.

- 원로원의 배신으로 옥타비우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간 안토니우스의

  방해로 미뤄오던 양자 입양 절차를 마무리하고 옥타비아누스라는 새 이음을 얻고 명실

  상부한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우뚝 선다.

- 내분을 극복한 카이사르는 본격적으로 공화파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당한 이는 안토니우스를 가장 비판하고 옥타비아누스를 배신한 키케로였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권력 집권에 도움을 준 삼두정치의 동료(섹스투스, 레피두스)를 

  하나씩 제거하는데 33세에 로마의 일인자가 된 옥타비아누스 그가 내전의 최후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아그리파라는 친구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 후계를 이으려던 아우구스투스의 계획은 그의 절친이자 사위인 아그리파의 죽음으로

  권력 세습의 불안을 느끼자 구원투수로 의붓아들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스우스 네로

  였다.

- 아우구스투스는 권려과 권위를 자신에게 집중하고 세습할 수 있었다.

  이로써 지중해 세계 전체에 로마의 평화를 확장해 이후 서구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반대급부로 공화정이 보장하고 원로원을 중심으로 행사된 로마 인민의 자유는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

- 야심을 품지 않는 지도자는 없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힘을 갈망한다. 꿈이 큰 만큼은

  고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포기할 상황에서도 지도자는 가능성을

  찾는다. 그리고 집요하게, 성실하게, 정확하게 목표를 좇는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지도자의 그릇을 판가름 할 기준이다.

 

[완벽한 통치의 비밀] 트라야누스

- 국가의 정의로운 시스템 덕에 황제에 오른 속주 출신의 인물이 황제 트라야누스로 그는

  제12대 황제 네르바의 양자로 지명된 끝에 다음 황제로 즉위했고, 제국의 최전성기인

  ‘오현제 시기를 대표하는 황제가 되었다.

- 황제 네르바 시절에 각종 복지 정책을 도입했는데 이전까지 로마의 복지는 지배층이

  마련한 기금이나 황제의 사재로 이루어졌는데 처음으로 국가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추진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정이 긴축되면서 근위대가 들고일어나는데 이를 완벽하게 방어한 인물이

  트라야누스 즉, ‘게르마니쿠스였던 것이다.

- 로마 전통의 상징인 원로원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기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사소한 절차와 의례도 성실히 따랐지만 원로원에 끌려다니지 않았고 황제로서

  권위를 포기하지 않았고 평소 긍정적인 이미지와 합쳐져 경건하고 엄격한 분위기를 자아

  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뛰어난 자들을 대거 선발해 원로원 의원으로 삼았다.

- 황제 네르바가 도입한 각종 복지 정책을 알리멘티라 불렀는데, 가난한 이들이 늘어나고

  인구 감소로 이어지자 로마군은 제국을 방어할 뿐 아니라 속주들을 로마화해 제국의

  통일성을 선도하는 주요 자원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알리멘트라는 복지정책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

- 트라야누스는 공공 건축에서도 로마의 위상을 높인 위대한 건설자였는데 복잡하고 

  얽히고 설킨 복지 문제, 인구 문제, 경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 지도자로 그가 눈앞의

  인기를 얻는 것보다 국가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임을 잘 이해한

  지도자였다.

- 3세기 중반 이후 신임 황제가 즉위하면 원로원은 아우구스투스보다 더 행복하고

  트라야누스보다 더 훌륭한 황제가 되시라라는 말로 축하를 전하는 게 전통이었는데

  이런 기대에 부응한 황제는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 지도자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그래서 어떤 시스템으로 구체화하는지다. 트라야누스가 위대한 황제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 개인이 정의로워서이기도 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정의로운 사회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뚝심과 아집의 차이] --- 하드리아누스

-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의 양자로 로마의 제14대 황제로 그는 21의 재위 기간 중

  13년을 순행하는 데 받친 발로 뛰는 황제였던 반면, 그리스 문화를 좋아했던 그를

  트라야누스는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순행 중에 만난 안티노우스라는 청년과

  동성애에 빠지기도 한다.

- 파르티아 원정을 나갔던 황제 트라야누스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후계자 문제가 불거지나

  친위대장인 아티아누스와 황후인 플로티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황제로 등극.

- 전임 황제 트라야누스의 공격적인 영토 확장에 따른 속주들의 반발에 따른 뒷수습은

  후임 황제인 하드리아누스 몫이었다.

- 지도자는 다양한 이유에서 정치적 결절을 내린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수도 있고,

  자신의 당파를 위해서일수도 있다. 다만, 그 결정의 궁극적인 평가 기준은 공공의

  이익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다.

- 순행 중 속주의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 자기 뜻을 관철하는 치명적 실수를 범한다.

  즉, 유대인의 성지 예루살렘 근방에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라는 자신의 씨족명을 붙인

  식민시를 건설하고자 하는데 로마 - 유대전쟁이 한창이던 70년에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

  터에 유피테르 신전을 세우는 실수를 범한다.

  이에 반발한 유대인들이 봉기를 일으켜 유대인 50만 명 이상이 죽었다.

  반란이 진압된 후 남은 유대인들은 강제로 이주를 당했고, 정해진 날만 예루살렘 출입이

  허용되었다. 유대 지방은 시리아 팔레스티나 속주로 편입되어 철저히 관리되었다.

  유대인들은 제국 곳곳으로 흩어졌도 다시 나라를 세우기까지 1800여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유대인들의 비극,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 하드리아누스는 속주민으로 구성된 보조 군단도 손 보았는데 이들의 임무는 변경 요새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 밖의 상황에 대비한 새로운 보조 군단인 누메리도 창설하였다.

  또한 팔랑크스라는 새로운 전술도 개발하였다.

- 하드리아누스는 로마 법제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특히 법률가들이 합의해 제출한

  보고서에 법적 권위를 부여해, 판사들이 유사한 사건을 심의할 때 참고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추후 로마대법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여러 차원에서 진행된 하드리아누스의 사법 개혁은 로마의 법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 하드리아누스의 여러 업적 중 다른 황제들을 압도할 만큼 탁월한 것은 제국 전역에서

  추진된 공공 건축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로마시의 판테온이며 아직 남아 있는

  또 다른 건축물로 하드리아누스 대능원이 있다

-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즉위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을 뿐더러 로마 황제 중 그만큼 그리스

  문화에 빠진 사람은 없었고 그리스 문학과 철학에 조예가 깊었던 것은 물론이고 그리스

  문화의 상징인 수염을 기른 최초의 황제이다. 이런 모든 과오에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오현제에 드는 것은 순행으로 보여 준 지도력 덕분이다.

 

[함께 통치하는 지혜] --- 디오클레티아누스

- 235년부터 284년까지 무려 20여명의 황제가 등극하나 평균 3년도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살해당하거나 쫓겨난다. 3새기의 로마는 안과 밖이 모두 위태로운 상태였는데

  제43대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개천출신으로 광대한 

  제국을 혼자 통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권력 투쟁만 불러일으킨다고 

  진단하며 권력을 나누기로 생각한다.

- 42대 황제 카루스의 근위기병대장이었던 디오클레스는 황제가 갑자기 죽으면서 그를

  추종하던 추종세력에 의해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다른 황제들에게

  없던 정치 감각이 있었고 원로원의 지지을 얻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로마시를 방문한다.

- 북방(게르만)과 동방(페르시아)의 끊임없는 외침에 고민하던 황제는 잉를 막아내기 위해

  서방을 맡아 다스릴 부황제(막시미아누스)를 임명하게 되는데 이 전략이 크게

  성공한다.

-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는 둘 다 아우구스투스로 불리웠고, 각각 동방과 

  서방을 맡았으며 각자의 황국와 군대와 행정기관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제국이 둘로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두 명의 황제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8년만인

  292년 두 황제가 각각 부황제를 두어 총 네 명이 통치하는 ‘4제 통치를 도입한다.

- 공동체가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지도자는 놀라운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권력을 나눠 다른 훌륭한 이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동체가 겪는 문제는 대부분 너무나 복잡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면 결국 식물 지도자되기에 십상이다.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

  지도자에게 함께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 민생을 위협하는 인플레이션이 심했고, 이를 잡기 위해 조세개혁을 추진하였으며

  그리스도교를 극심하게 탄압한 시대였다.

- 그는 생전 스스로 제위에서 물러난 로마사 유일의 황제였는데 집권 과정에서 경쟁 

  상대를 폭력적으로 제거하고 제위를 차지했다. 그는 발칸반도를 근거지로 한 군인

  황제들의 뒤를 이어 로마의 일인자가 되었다. 군사적 재능으로 황제가 되었지만 앞선 

  군인 황제들과는 다른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치 감각과 능력을 발휘해 끝이 보이지 

  않던 혼란과 무질서를 끝냈다.

  그의 최대 공적은 50여 년간 계속된 군인 황제 시대를 마감하고 제국을 위기에서

  건져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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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코터의 위기감을 높여라 - 혁신에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전략
존 코터 지음, 류현 외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8


위기는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며, 특히 급변하는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간주

되며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양강장제이다.

위기가 없는 삶은 단조로우며 위기가 없는 삶은 도전이 없는 삶일 뿐만 아니라 꿈과 비전이

없는 삶이다.

반면에 위기의 길목을 지키면서 미리 대응 방안을 준비하면 위기란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런 기회는 순식간에 위험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대기업에 30, 중소기업에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오는

기업의 위기를 각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이 어떤 자세로 이를 받아들이고 대처하는가를

가까이에서 목격해 오고 있는 데 그 대하는 자세가 기업의 크기에 관계없이 천양지차라는 것을

무수히 느끼고 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던 간에 위기에 봉착한 기업주는 일단 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그 조직에 속한 구성원들의 경우는 기업주와는 완전 다른 생각 속에 살고 있음을

느끼고는 한다.

대기업의 경우 - 내가 다닌 대기업의 총수는 30년 동안 매 신년사에서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 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일단 임원들은 자기들 목숨(보직) 연장의 방편으로, 중소기업의 경우는 위기감이라는 단어를 자기와 상관이 없는 별나라 이야기

대하듯 한다는 것이 내가 목격한 큰 차이라면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소속된 기업이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대기업의 경우에 있어서의 고위급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일단 아랫사람들을 쥐잡듯이 하는 게 무슨 공식처럼 사용되어 온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는 각자도생, 자신이 다니고 있는 기업이 망하면 언제든 나는 다른 곳,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철저히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보면 틀림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 기업의 크기에 관계없이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기업주가 외치는 절박한 심정

내지는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무당집 똥개의 외침 수준으로 밖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내가 경험한 일반적인 우리 기업 속의 소속된 구성원들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가 아닐 수 없다.

 

나의 이런 의견을 대변하는 내용은 작품 191쪽에 나와 있는 위기(RISK)의 본성'을 바라보는 시각 분석에 대한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위기무서운 사건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불타는 갑판으로 저자는 당면한 위기를

바라본다는 분석을 하고 있지만 내 견해로는 대기업은 모르겠는데 중소기업의 경우는 절대

위의 두 가지 시각이 아닌 3의 시각도 존재하고 있음을 나는 무수히 경험해 왔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 우리의 중소기업에는 난파선의 쥐새끼같은 인간들이 너무도 많아 자신이 승선하고 있는 배(기업, 회사)가 침몰하면 곧바로 다른 배로 갈아타겠다는 즉, ‘위기 = 배를 갈아탈 시점

이라는 이상한 심보의 인간들이 너무도 많은데 작품은 이런 현실적인 부류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이상적인 이야기만 다루고 있어 답답하였다.

 

나는 과감히 이야기한다.

기업의 위기감 대처 방식을 논하기 전에 이런 쥐새끼들을 박멸하는 방법론적인 이야기가

심도 있게 병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해당 내용의 말미에 이런 이야기가 또 나온다.

문제는 조직이나 집단의 평판이 아닌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이 피해 대책 중심의 사고방식을 자주 이용한다는 데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 문제는 위기감을 조성하고 필요한 행동을 이끌어내며 조직 및 집단이 급변하는 세계에서 번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회를 박탈한다

무슨 의미인지를 기업에 다녔고 위기의식에 연루된 대책 T/F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위기감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노노스의 존재에 대한 처리도 상당히

업체로서는 부담스런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노노스 그들은 의미 있는 대화나 토론을 방해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의 실행을 지연시키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다.

그들은 지금 추진하고 있는 혁신은 잘못된 것이라서 아예 추진하지 않아야 한다

혁신을 추진할 경우 우리에게 심각한 폐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논리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특히, 기득권이 강한 중소기업과 매너리즘에 빠진 대기업의 집단에서 특히 더하다.

나는 그런 노노스를 최근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왕창 잘라낸 적이 있다. CEO는 그들이 퇴사하면 마치 회사가 망할 것 같은 죽는 소리를 했지만 나는 심도 있는

분석과 그간의 업무적 경험치 분석을 통해 그런 노노스를 제거해도 회사가 초반엔 조금 힘들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절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잘라냈다.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일갈했다.

뱀의 꼬리가 몸통을 좌지우지 하지 마라

 

결론적으로 위기, 위기, 위기라고 해서 너무 주눅들 필요도 무서워 할 이유도 없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나름의 방법은 다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우자(愚者)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자(賢者)는 역사에서 배운다

 

[모든 것은 위기감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지나치게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오늘날 최고경영자의 최고 딜레마는 위기감무사안일주의

- 무사안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무시하거나 부인한다.

- 작금과 같이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에서 현재 상태에 만족하거나 자만에 

  빠지면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 무사안일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은 진정한 위기감이다.

   진정한 위기감은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긴 하지만,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으로 우선

  순위를 나누는 의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 진정한 위기감은 사안의 중요성에

  관계없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 진정한 위기감은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라 주어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에 

   이끌린다.

진정한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집단에 중요한 기회 요소 혹은 문제 

   요소가 발생하면 주저 없이 그것을 관련자나 책임자에게 알린다.

진정한 위기감은 매우 적극적인 태도이자 모든 구성원의 힘이 한데 뭉쳐진 상태이다.

진정한 위기감은 지위고하를 떠나 중요한 자산을 조성하거나 이를 위해 필요한 리더십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의지 및 행동의 산물이다.

- 성공적인 변화관리를 위하 8가지 단계

  ◆ 1 단계 : 위기감을 고조시켜라

   ☞ 위기감 고조를 통해 조직이 직면한 중요 기회와 위기를 찾게 하라

  ◆ 2 단계 : 변화 선도팀을 구성하라

   ☞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팀을 꾸리고 성공적인 완수에 대한 신뢰감을 보내라

  ◆ 3 단계 : 올바른 비전을 정립하라

   ☞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한다

  ◆ 4 단계 : 참여를 이끌어내는 의사소통을 전개하라

   ☞ 선도팀과 동참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에게 비전과 전략을 납득시켜라(커뮤니케이션)

  ◆ 5 단계 : 권한을 부여하라

   ☞ 비전 실현을 위해 책임을 맡은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걸림돌은 제거한다

  ◆ 6 단계 :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공을 이끌어내라

   ☞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 7 단계 : 변화의 속도를 늦추지 마라

   ☞ 궁극적인 비전이 달성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마라

  ◆ 8 단계 : 변화를 정착시켜라

   ☞ 변화를 구조, 시스템, 그리고 문화로 제도화하여 조직 내부에서 그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정착시켜라

- 위기감의 부재가 진정한 위기다. 진정한 위기감은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져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는 많은 위기뿐 아니라 멋진 기회도 제공한다.

  그 중에서 기회를 잡으려면 숙련된 기술자원이 필요하다. 물론 그 출발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위기감을 조성하는 데 있다진정한 위기감을 조성해야 변화 과정이 

  시작되면서 조직 및 집단이 원하는 것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 위기는 준비하는 사람에게 기회라는 선물을 가져다준다.

 

[무사안일주의와 그릇된 위기감]

진정한 위기감을 조성하려면 먼저 그것과 정반대되는 상태, 즉 무사안일주의와 그릇된

   위기감을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 무사안일주의는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은 또한 

  의식적, 합리적 분석의 문제라기보다 무의식적인 감정의 문제에 가깝다.

-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신이 무사안일주의에 뻐져 있다는 것을 간과하며 심지어

  자신이 상황에 맞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착각한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하며

   자기 책임을 남에게 쉽게 전가한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현재 상태에 만족하며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두려워해

   현재 상태를 고수하려 한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자기 조직이나 집단이 직면한 새로운 기회 및 위기를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는데 그런 생각은 누구나 빠질 수 있다.

- 많이 배우고 빈틈이 없는 사람들이 정작 중요한 변화가 왔을 때 무사안일주의에 빠지는 것은

  과거의 성공에 도취되기 때문이다.

- 그릇된 위기감을 갖는 원인은?

  1) 실패의 산물이거나 조직 및 집단에 과중한 압력을 부과되면서 발생

  2) 그릇된 위기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며 상사가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 괜한 압력을 행사

    한다고 여긴다

3) 정신없이 분주하며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주요 문제와 기뢰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자신을 보호하거나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비판하는 데 더 적극적이다.

- 진정한 위기감이 있는 사람은 조직이나 집단내의 무사안일주의를 간파하고 그릇된 위기감을

  감지하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기꺼이 행동에 나선다.

- 파스칼은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때로는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고 했다. 이 명제에 따라

  습관적이라는 말을 해석하며 습관이라는 의미와 같다. 습관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벗어나기 어려운 타성으로 자리 잡는다.

- ‘타성은 개인은 물론 기업에도 해롭다. 개인적인 타성이 조직 차원으로 확장되어 나타나는

  역기능적 현상이나 폐해를 활동적 타성이라고 한다.

  활동적 타성은 기업이 외관상으로는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의 성장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현상을 뜻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무사안일주의.

- 그릇된 위기감이 조성되면 사람들은 거울을 보기보다 창문을 바라본다.

   , 일이 잘 풀리면 창문을 바라보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일한 덕분이라고 하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거울을 보면서 내 탓으로 돌리는 일류 리더가 있는 반면,

  이류 리더는 일이 잘되면 거울을 보고 내가 잘한 덕이라며 자만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창문을 바라보면서 바깥 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강력한 위기감으로 향하는 혁신적 방법]

진정한 위기감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감정과 관련이 있다. 감정이란 지금 바로 행동에 옮겨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의미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강박감에 가깝다.

- ‘위대한 리더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는다.

- 마음을 겨냥해 그리고 성공적으로 위기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전술

   1)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2) 인상적인 경험은 인간의 모든 감각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3) 경험은 어떤 감정적 반응을 촉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4) 경험은 말로 표현하거나 설명하기 어렵다

   5) 경험은 통찰력을 길러준다

- 위대한 리더는 심장을 겨냥한다. 인간의 뇌가 파워포인트나 추상적인 개념보다 이야기에 더 

  잘 맞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은 감정적 요소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용이다.

- 위대한 리더는 과거의 성공이 조직 및 집단을 자만에 빠지게 하고, 외부보다 내부에 더 초점을

  맞추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가장 성공적인 전술

   1) 지나치게 내부에만 초점을 맞추는 조직 및 집단 구성원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외부의

     다양한 정보를 안으로 가져온다.

   2) 진정한 위기감이 있는 사람은 한결같이 진정한 위기감에서 행동한다.

   3) 진정한 위기감이 있는 사람은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4) 진정한 위기감이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노노스(NoNos' 문제에

    정면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대응한다.

- 1온스의 감성이 1톤의 사실보다 훨씬 효과적이다.(맨프레드 캣츠 드 브리스)

   , 백마디의 설명보다 한 마디 설득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 이성은 결론을 낳지만 감성은 행동을 낳는다.(, 도날드칸)

- 1온스의 경험이 1톤의 이론보다 중요하다.(, 존 듀이)

  강력한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위기를 극복한 다른 기업의 사례, 위기 극복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구체적인 행동, 그들이 겪은 현실적인 경험을 들려주는 편이 설득력이 높다.

- 경험이 마음을 움직이려면 신뢰가 형성되어야 하고 되도록 구체적이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동시대성을 담고 있는 적합한 경험이라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첫 번째 전술 : 조직 외부의 의견을 내부로 가져오라]

위기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람들이 내부에서

   보고 느끼는 것 사이의 간극을 가능한 최소화하는 것이다.

- 사람들이 외부의 기회나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면 내부에서 무사안일주의가 고개을 내민다.

   이때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방법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사람들이

  내부에서 보고 느끼는 것 사이의 간극을 가능한 최소화하는 것이다.

- 조직 및 집단을 내부 지향적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성공이다

  , 조직이나 집단이 내부 지향적이 되면 경쟁자, 고객, 법이나 제도 변화에서 비롯된 새로운

  기회 혹은 위기를 쉽게 간과한다. 더불어 위기감이 하락하고 외부에서 새로운 기회와 문제를

  찾고자 하는 경향도 줄어드는데 바로 이때 무사안일주의가 고개를 내민다.

   ---> 조직 및 집단 전체에 위기감이 급속히 떨어진 사례 IBMGM

- 위기감을 고조시키려면 외부 세계를 분명하게 직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둘러 짧은 시간

  내에 조직 구성원이 외부에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공식적인 매커니즘과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일선에서 고객과 직접 상대하는 현장 직원의 이야기나 의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내부와

   외부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한 방법이다.

-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효과적인 자세

   1) 신뢰를 바탕으로 접근하라

   2) 현장 직원을 경우에 맞게 세심하게 배려하라

   3) 바른 자세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

* 비디오 제작을 통한 문제점 제기도 효과적이다.

- 정보를 숨기는 것은 문제를 가리는 것이다. 경영진은 정보가 알려질 경우 조직 구성원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공개한다.

- 최고경영자가 경영 혁신을 추진하고 싶어도 중간 관리자에게 충분한 위기감이 없다면

  그가 원하는 변화를 수행하는 것은 쉼지 않다.

- 최고경영자는 조직의 변화 과정에서 누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미리 예측한다.

  불안이나 분노를 표출할 가능성이 있는 그룹에게는 열정, 자신감, 결의를 보여주라.

- 조직 및 집단의 구성원에게 외부의 주요 고객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위기감을 

  고조시킬 수 있다.

- 외부 세계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은 조직 및 집단 내부와 외부의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오늘날 가장 널리 이용하는 전술이다.

- 위기감을 진정한 위기감으로 바꿀 수 있는 원천은 단호하면서도 자신감에 찬, 그리고 불평 

  없이 열정적이고 유능한 행동임.

-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조직 안팎의 위기를 자기 것으로 느낄 때 비로소 심각한 위기로 인식될

  수 있다. 허심탄회한 개방적 커뮤니케이션 필요

 

[두 번째 전술 : 위기의 5분 대기조가 되어 번개처럼 움직여라]

-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일 뿐이다.

- 모든 임원들은 빛보다 빨리 반응하고, 바람보다 세게 움직여야 한다.

   1) 늘 대화, 회의, 이메일 등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위기감을 겉으로 표현하라

   2) 직원들이 부탁하는 것은 급한 일이 아니어도 날짜와 시간을 정해 분명히 답을 주겠다고

     확답하라

   3) 직원들에게 이메일 등을 보낼 때마다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를 반드시 한 문장

     으로 임원의 생각을 표현하라

   4) 관련업체 방문은 지속적으로 실시하되, 성과가 없으면 방법과 방식을 바꿔라

-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한 방식

   1) 경쟁사, 시장 그리고 변화를 강조한다

   2)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계속 언급함으로써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켜라

   3) 매번 말만 앞서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라

- 잦은 사소한 행동은 무사안일주의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조이다빠르게 변하는 세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계심과 민첩성이고 이것은 위기감을 필요로 한다.

- 임원들은 가능한 많은 사람이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을 듣고 볼 수 있도록 처신한다.

   뿐만 아니라 직위를 이용해 직원들을 사사건건 가르치려들거나 훈계해선 안 된다.

- 진정한 위기감을 갖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1) 불필요한 약속은 취소하고 책임과 권한은 과감히 위임하라

   2) 발빠르게 움직여라

   3) 열정을 담아 이야기하라

   4)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라

   5) 당신의 위기감을 볼 수 있도록 많은 이들 앞에서 하라

- 위기의 순간일수록 리더의 말과 행동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리더는 위기 상황 속에서

  솔선수범과 언행일치의 리더십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1) 팀원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어라

   2) 논리적인 설명보다는 감성적으로 설득하라

   3) 낮은 자세로 다양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직관적으로 판단하라

   4) 전향적인 위기의식을 갖고 판단하라

   5) 팀원의 약점보다 강점, 비난과 힐난보다 칭찬을, 호통과 질책보다는 소통에 중점을 두고

     관심과 배려, 인정과 격려에 앞장서라

   6) 신속하면서도 신중하고 결연하면서도 멈출 때를 알며, 결단을 감행하면서도 직관적 포기의 

     미덕을 겸비하라

 

[세 번째 전술 : 위기는 잠재적 기회]

- 위기를 이용하되 조심하라.

  위기를 심각한 문제인 동시에 잠재적 기회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데 위기에서 기회를 

  찾으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 위기를 적절히 다루는 규칙

   1) 위기를 항상 잠재적인 기회로 생각하라

   2) 위기가 자동적으로 무사안일주의를 줄이는 것은 아니다.

   3) 위기를 무사안일를 줄이는데 적용하려면 조직이나 집단에 좋지 않은 소식을 최소화하거나

     감추고자 하는 충동과 맞서 싸워야 한다.

   4) 위기감이 예상보다 낮다면 외부의 것을 내부로 가져와 매일 위기감을 안고 행동하라

   5) 진정한 위기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위기 상황을 만들 때

     - 자칫 통제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 사람들이 자신이 조종당하거나 위기에 직면하는 것을 눈치 채면 큰 반발

   6) 당면한 위기를 확인한 다음 그것을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을 찾아가 

     협력 할 것

-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과 동일하다.

 

[네 번째 전술 : 핵심방해세력, 노노스와의 전쟁에서 이기는 법

- 노노는 다른 사람의 말은 이유를 불문하고 곧이곧대로 들으려 하지 않으며 자기 생각과 의견만

  고집하는 사람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조직이나 집단에 큰 위험을 초래한다.

- 노노스가 지극히 위험한 이유는 근거 없는 정보를 퍼뜨려 변덕이 심한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

  하기 때문이다. 노노스는 혁신이 살아남지 못히게 길목마다 버티고 서서 발목을 잡는 악성

  바이러스 중의 악성 바이러스다.

- 노노스는 위기감을 조성하는 과정뿐 아니라 이후 혁신에 가속도가 붙는 과정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 노노는 조직 및 집단에 근심을 초래하며 기회를 적극 활용하고 위기는 피하고자 하는 새로운

  결의에 찬물을 기얹는 데 일가견이 있다.

- 경영 혁신을 위한 변화는 위기를 의미하고 위기는 불확실성으로 불안과 근심을 동반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노노의 행동은 이러한 불확실성에 기초한다.

- 노노를 대하는 효과적인 해결책

   1) 이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서 그들이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는다

   2) 그들을 조직에서 퇴출시킨다

   3) 그들의 행동을 폭로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들의 행동을 견제하도록 만든다.

- 노노를 다룰 때 사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

   1) 누가 노노인지 확인할 것

   2) 노노라 초래할 수 있는 피해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 것

   3) 노노를 다루는 데 효과가 있는 세 가지 전략 중 한 가지 이상을 사용할 것.

       그중 하나는 반드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4) 모두가 원하는 21세기형 조직을 만들 것. 이것이 투자자 직원, 고객,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일이다.

- 사람들은 이노베이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은 이노베이션을 사랑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위기감을 고조시켜라]

- 진정한 위기감을 항상 높게 유지하려면 먼저 그러한 위기감을 제대로 조성할 필요가 있고

  다음으로 계속해서 그것을 새롭게 조성해 나가야 한다

- 커다란 성공 뒤에 위기감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자만심에 자리를 넘겨주기 십상이다.

   조직이나 집단이 변화의 국면에 직면했을 때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 새로운 목표를 추진할 최적의 시기는 지존 사업에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이미 그것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이다.

- 명확하게 두드러지는 단기간의 성공은 미래에 대한 비전이 신뢰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 성공에는 한 가지 중요한 과제가 따라야 한다. 더 큰 목표를 달성하려면 혹은 계속해서 좋은 

  성과를 내려면 그에 필요한 위기감도 계속 고조되어야 한다.

- 매일 위기감을 고조시키고자 할 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 위기감이 문화로 자리 잡은 조직이나 집단의 구성원들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새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위기를 피하며 계속해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능력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 성공 뒤에도 계속해서 위기감 고조시키기

   1) 위기감이 떨어질 수 있는다 것을 미리 예상할 것

   2) 해결책을 준비할 것

   3) 예상이나 계획과 상관없이 위기감이 떨어지기 시작하자마자 마음을 겨냥한 전술의 

     틀 내에서 위기감을 고조시킬 수 있는 다른 전술들을 적절히 접목해 사용할 것

    - 외부의 것을 더 많이 내부로 가져올 것

    - 새롭고 신선한 방식에서 위기감을 안고 행동할 것

    - 새로운 위기를 사용(또는 참조) 할 것

    - 조직이나 집단 내에 남아 있는 노노스를 다룰 것

   4) 무엇보다 위기감을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

 

[미래는 오늘 당장 시작한다]

   - 즉각 실천하라

   - 빠를수록 좋다

   - 상황을 인식하도록 해주는 것은 논쟁이 아니라 바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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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 - 태평양 전쟁에서 배우는 조직경영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박철현 옮김, 이승빈 감수 / 주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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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본 작품을 통해 일본군이 전개한 작전을 통해 뭔가를 배워 보자는 군사전력 및 작전상의

일본군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접한 게 아니라, 한 때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했던 일본 경제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아베 노믹스, ‘위기의 G2’ 등으로 폄하되고 

종국엔 잃어버린 10운운하는 2류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며 작금의

일본, 일본인들이 봉착한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반성하는 자세로 자국의 인텔리들이 분석한 작품이라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그들이 경험한

실패를 경험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 속에 그들이 제시한 문제점에서 반면교사로 삼을만한

내용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해당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작품을 읽다보면 8, 90년대 일본 경제성장과 발전단계를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그들의

뒤태를 마냥 부러워만 했던 기업의 구성원으로 활동했었던 나로서는 그간의 상식을 뒤집는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저자의 관점에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일본은 내가 알고 있고, 접해 왔던 스마트한 일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주장은

일본군의 조직 특성은 전후 일본 사회의 조직 일반에 무비판적으로 계승

된 결과라고 단언하고 있다.

일본군들이 저지른 실패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 대표적인 6개의 실패한 작전을 통해

싸우는 법지는 법의 조직론적 규명에 그 목적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통렬하게 

일본군 실패의 최대 본질은 특정한 전략 원형에 너무나 철저히 적응해 적절한 시기에 학습 

기각을 이루지 못해 자기 혁신 능력을 잃고 만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일본군은 과거의 성공에 얽매인 나머지 자기 혁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으며

일본군이 자기 혁신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일본군 조직 원리 때문이라고 하면서 과거의 성공에서

일반적인 원리를 뽑아내 조직원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이 없었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쓸모

없게 된 지식은 버리는 조직 학습의 과정이 없었으며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조직 문화가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 노몬한 사건(19395~ 9)

1) 작전의 목적이 애매, 중앙과 현지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했다.

2) 정보를 독선적으로 수용, 해석

  - 적의 사정은 물론 자신들이 처한 위치도 모른 채 전투에 참가했고 사무적인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 참모 중 누구도 실제 전장에 나가보지 못한 채 전장에 임함

3) 전투를 객관적 전력보다는 장병들의 정신력에 의존

  - 당시 상하를 막론하고 일본군은 정예 강병이라고 과신하고 있었는데 이는 중국 침략과 

   식민지 지배 과정을 거치며 일본군은 전투 조직으로서의 합리성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화

   되었다. 일본군은 근거도 없는 낙관주의에 빠져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하다 보면 어떻게든 

   수가 난다라고 생각한 반면 적군은 합리주의와 물량으로 제압.

 

2. 미드웨이 작전

  1) 불분명한 목적과 예측하지 못한 상황 발생 시 임기응변적 대응 취약 

  2) 정보의 경시와 기습 대처 부족

  3) 모순된 군 편성

  4) 전체를 지휘해야 하는 사령관의 전투 참여

  5) 수색 및 항공 작전지휘의 실패

  6) 방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

  7) 피해 복구에 대한 준비부족


3. 과달카날 작전

  1) 전략상 커다란 밑그림이 없었다.

  2) 빈약한 정보력, 병력의 계속적인 투입 실패

  3) 미군의 상륙작전에 대한 효과적 대처 미흡

  4) 일본 육군과 해군의 합동 작전 미흡

  5) 자율성이 없었고, 현장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4. 임팔 작전

  1) 하지 않아도 되는 작전

  2) 인간관계를 과도히 중시한 인정주의와 강렬한 사명감에 사로잡힌 개인의 돌출행동

  

5. 레이테 작전

1) 작전의 목적이 애매모호, 작전 수행능력이 저하된 부대

2) 임무 분석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작전 


6. 오키나와 작전

사령부와 현지군 사이의 인식 차이와 의견의 불일치 및 그로 인한 비합리적인 전략 수립

, 최고 사령부가 주장한 항공결전 지상주의와 현지 주력군이 주장한 지상전 중시주의

이것은 다시 말해 이상현실의 괴리에서 나타난 패전이었다.

 

[실패의 본질]

- 하나의 실패가 직간접적으로 이후의 실패에 영향을 미쳤다.

  즉, 일본군은 각각의 작전에서 조직으로서 전략을 수립하고 조직으로서 작전을 실시해

  결과적으로 조직으로서 패배했다.

- 전략상의 실패요인

  1) 애매한 전략 목적

  2) 단기결전 지향의 전략

  3) 주관적이고 귀납적인 전략 수립 - 분위기의 지배

     : 일본군은 귀납적, 미군은 연역적이다. ‘연역이란 일반적 법칙에 따라 개별 문제를 이해하는

     것, ‘귀납이란 경험한 개별 사실을 종합하여 일반적 법칙을 발견하는 것

     따라서 일본군은 사실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직시하지 않은 채, 상상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

     거나 본질과 상관없는 자잘하고 일반적인 일에 몰두하는 상황이 빈번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군 조직 안에 논리적인 의논이 가능한 제도와 풍토가 없었기 때문이다.

  4) 좁고 진화하지 않은 전략 대안들

    : 정신력만 강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의 만연, 반면 군사기술을 정신력 다음이라고 여겨

    경시되었다

    전술의 실패는 전투로써 보충할 수 없고, 전략의 실패를 전술로써 보충할 수 없다.

    가장 두드러진 실패의 원인은 어떤 작전 계획의 중요한 전제가 실전에서 성립되지 않거나 

    상황이 바뀔 경우를 대비해 대응 작전을 짜야 하는데 일본군은 이를 가볍게 여겼다.

  5) 균형이 맞지 않는 전투 기술 체계

 

[조직상의 실패 요인 분석]

  1) 인맥 편중의 조직 구조

  2) 개인 중심의 조직 통합

  3) 학습을 경시한 조직 : 정보 공유 시스템이 없었다

- 어떤 조직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해 오랜 기간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에 비추어 수정하고, 나아가 학습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이른바 자기 혁신적 

  또는 자기초월적 행동을 포함한 이중고리학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 학습하는 조직만이 진화할 수 있다. 조직은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선택하고 쓸모없는 지식은 버려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조직은 지식을 축적해 간다

- 조직 학습은 조직 구성원이 하는 학습이 서로 공유, 평가, 통합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생겨난다.

- 조직문화는 가치, 영웅, 리더십, 조직관리 시스템 의식 등이 서로 일관되게 상호 작용하며 

  만들어진다.

  4) 과정이나 동기를 중시한 평가

- 일본군은 결과보다 과정을 높이 샀다. 개별 전투에서 결과보다 지휘관의 의도 또는 전투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의지를 더 비중 있게 보았다.

 

[실패의 교훈]

- 조직의 환경적응 이론은, 조직이 환경에 능숙하게 적응하려면 그 조직이 직면한 환경이 주는

  기회와 위협을 조직이 갖고 있는 전략과 자원, 조직 특성(구조, 시스템, 행동)과 서로 적합하게

  맞추어야 한다

  즉, 어떤 조직이 환경에 계속 적응해 나가기 위해서는 조직 스스로가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전략을 세우고 또 주체적으로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이 바로 자기혁신 조직이다.

- 조직 안에서 긴장을 창조하려면 리더가 객관적 환경을 주관적으로 재구성하거나 연출할 줄

  아는 통찰력이 있어야 하며, 성질이 다른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며, 적절한 인재를 발탁해

  권력 구조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파괴하는 일이 관건이 된다

- 서로간의 협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통합적 가치 또는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는 작품을 읽으며 내가 경험했고 목격한 일본인들이 세상 사람들이 내가 파악한 사항과는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에 대해 너무 과잉 칭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오랜 시간동안 가졌던 것이 사실인데. 일본과 일본인들의 속살을 그들의 관점에서 진솔되게 

벗겨내려 노력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 대목을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게 일본과 일본인들을 생각해도 그들은 반드시 금세기 내에 여러 분야에서 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한계와 파국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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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반사회 - 586, 그들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김은희 지음 / 생각의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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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덮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작품으로 얻은 무언가를 평하고, 무엇을 느꼈다고 어떤 소회를 기록해야 하는데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양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물도 마시지 않고 대 여섯 개를 연속으로 먹은듯한 느낌이 동시에 들기도 하였다.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진정한 양반이란 운동권 출신이어야 하고, ‘적폐를 몰아내는 데 선봉에 서야 하며.

일제 잔재 청산에 앞장서지 않는 한 이 시대의 주류 양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날 이때까지 평범하게 살아 온 나는 운동권 운동도, 적폐를 척결해야 한다는 알량한 시대적 

사명감도 없었고 더 나아가서는 일본 순사 출신이었던 외할아버지로 인해 자괴감에 빠져 작품의

화두인 신양반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었다.

하지만 작품을 접하며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는 부분을 발견했고 이를 나의 역사 의식과

사회적인 시각으로 정리해 보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오피니언 리더급 인사들이 인식하고 있었을 여러 문제점을 이제

 까지 어느 누구도 소명 의식을 갖고 공론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며 소위

 이 시대의 리더들이라는 작자들은 그들이 먼저 확보하고 있는 기득권을 쉽게 내려놓지

 않으려는 현상유지 의식과 그 기득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으려는 집단 

 간의 싸움으로 인해 우리 서민들의 삶이 하루가 다르게 피곤해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이를 해소하려는 주인의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박한 질타가 눈에 보였고, 귀에

 들렸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대목 중 내가 큰 공감을 갖는 대목 몇 곳을 정리해 보면

 

1. 조선과 같이 권력이 중앙정부에 집중된 국가에 아무개의 후손들로 구성되는 부계친족 

   집단이 번성했던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희귀한 사례이며 조상이 조정에 들어가 얼마나

   이름을 날렸는가에 따라 후손들의 사회적 신분이 정해졌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 문무관을 지칭하던 양반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 거의 세습적인

   지위가 된다.(P 33)

   죽은 지 4 ~ 500년도 더 되는 먼 조상의 자손임을 확인해 주는 본관같은 관습이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 한국 밖에 없다.(P134)

   본관 제도는 한국 사회에서 조상으로 인정받고 기억되기 위해서는 중앙에 진출하여 널리 

   이름을 알려야 함을 잘 보여준다. 조선 사회에서 혈연이 중요한 이유는 그만큼 중앙집권적

   관료제에 진출하는 것이 친족집단에 중요했기 때문이며(P138~9) 양반은 문화적 규범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았던 신분계층이었기 때문에 양반의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P 40)

 

2. 일제에서 해방된 지 70여 년이 되어도 친일파혹은 빨갱이였던 조상 때문에 그 자손은

   손가락질을 당하고 조상의 행적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해야 하는 사실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자는 이 시대에 걸맞는 행동인가를 되짚어 보게 하고 있다.

 

3. 조상과 후손을 동일시하는 아무개 자손이라는 혈연의식은 중국 고대의 종법제가 조선 후기

   양반 계층에 널리 퍼지면서 강화되었는데 중국의 종법제는 하늘에 대한 신앙과 함께 조상 

   숭배를 강조하는 유교사상의 근원이 되었다.(P143~4)

    중국의 종법제는 고대 주나라의 제도였지만 진한시대 이후에는 소멸해(P167) 버렸음에도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시퍼렇게 살아서 날 뛰고 있는 게 현실이다.

 

4.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서구 근대사회에서처럼 법을 지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정의로운사회는 법을 지키는 사회가 아니라 유교적 를 실천하는 사회다.(P 42)

    결국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우리 사회의 유교적 공동체주의고 그런 이념적 바탕을 무기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 하는

   저열한 정치집단의 치졸한 이념 논쟁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대표작인 사항이 저자도 주장하고 있지만

독립운동의 정신이 만들어낸 도덕국가에서 촛불시위가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선언은 촛불정권인 문 정부에 막강한 도덕적 권위를 부여한다. 문 정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독립운동에서 찾고 독립유공자와 후손에 대한 최고의 존경과 예우를 약속

 하는 것은 종국적으로 운동권 세력의 도덕적 기반을 굳건히 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볼 수 있지만 문 정부가 주창한 남한의 경제적 번영을 독립운동 정신의 결과라고 주장

 하는 것과 비슷하게 북한 정권 역시 해방 후의 역사를 빨치산 항쟁의 역사에 종속

 시키고 있다.(P 59 ~ 60)

 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후 경제적 번영의 역사는 정의가 무너지고’, ‘불의와 타협하는

 왜곡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역사였기 때문에 청산되어야 하며 경제적 발전은 해방 전

 독립운동의 정신이 구현된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이전 정권의 역사관이다.(P116)


이런 역사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전 정권은 그들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대중적 합의나 심도

있는 토론 없이 그들만의 나를 따르라는밀어붙이기식 행동으로 혼란과 국론 분열을 자초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내세운 철학 위에 내세운 인물들인 전 광복회 회장의 비정상적인 회계부정

의심사고를 비롯해 정신대 할머니들의 비용 문제를 일으킨 윤 씨 문제가 그랬고 어느 명문

대가집 조 씨 일가가 벌인 일에 대해, 이전의 총리였던 어느 여성분을 단죄한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또 작금에는 법인 카드로 초밥 몇 만원어치 산 것을 문제 삼는다고 난리치는 상황은 

그들 스스로 신양반임을 천명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작품 내용의 정리에 들어가면(문구와 내용 모두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작품에서 얻은 몇가지를 정리해 보면


- 한국 사회의 구성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양반,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며 살아온 사회운동가들로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사람들, 그리고 일후 사회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이 이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소인, 자신의 이익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기득권적폐 세력을 모두 포함한다.

   이들은 운동가들에게 빚을 졌으며 고로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지자들은 말한다.

   운동가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법 위에 존재하는 윤리 규범인 유교의 에 가깝다.

 

- 유교에서 역사는 객관적 사실을 기록하고 분석하기 보다는 인물과 행위에 대해 시시

  비비를 가리는 도덕적 평가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운동가들은 한결 같이 법의 원칙과 절차, 그리고 과학적 혹은 합리적으로 도출

  된 사실을 멀리하였다.

  대신 문제의 인물들이 살아온 내력과 평판을 내세우며 그들의 도덕적 우월성과 

   ‘역사적 사실을 강조했다. 그들이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는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금에 문제가 되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용을 임의로 처리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윤 모씨의 불투명한 회계문제, 죽창가를 외치자고 소리 높여 

  외치던 조씨 일가의 문제적 행동에 대해 노동운동과 약자의 인권을 위해 의롭게살아

  왔다며 그의 도덕적 우월성을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대의를 위해 일해 온 사회

  운동가들에게 법률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 역사 바로 세우기는 현대 한국인들이 가진 양반의식과 유교적 역사관을 잘 드러낸다.

   역사기술의 궁극 목적은 근대 역사학처럼 객관적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구분하고 과거를 도덕적 기준에 따라 심판하는 데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바로세우기는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가 되며 불의가

  득세했던과거는 정의로운사회를 만들기 위해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된다.

 

- 유공자 후손에게 보훈의 차원을 넘는 보상을 하는 것은 엄격히 말해 민주사회의 평등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참전 군인을 포함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의 대상은 유공자 

  본인과 그의 배우자 그리고 그의 미성년 자녀로 제한한다.(P 55)

  친일 청산과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최고의 예우는 모근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한 시민

 사회에서 조상이 누구인가를 따지던 양반사회로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다.(P 57)

 

- '친일 청산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겪는 갈등의 중심에는 누가 도덕적으로 우월한가라는

  물음이다. 그들이 지향하는 정의로운사회, ‘공정한나라, ‘진정한민주국가는 도덕성이

  세습되는 불평등 사회다. 특정한 범주의 조상을 가진 사람들을 우대하거나 배제하는 사회는

  평등한 시민사회가 아니다.(P 64)

 

- '통일의 꽃임수경이 탈북자들을 변절자로 매도했던 것도 정신을 물질보다 우위에 두는

  운동권의 관점으로 살겠다고 일제에 저항하지 않은 친일파나 굶주리지 않겠다고 국경선을

  넘은 사람들이나 비슷하게 변절자들인 것이다.(P 66)

 

- 성장보다는 균분과 안정을 강조하고 부의 축적을 죄악시한 양반사회의 경제관은 산업화된

  한국 사회의 많은 민주화운동가들에 의해 계승되어 왔다고 보인다.(P 86)

 

- 이전 정부에서는 빈부격차부의 세습을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 중에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부상시켰다. ‘이익 공유제’, ‘사회적 기업 만들기’, 부동산 투기를 응징하는

  ‘임대차 3등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고 부를 축적하는 일상적 행위까지 지나치게 억압하는

  반자본주의적 정책에는 부의 균등한 분배를 가장 우선시하는 유교적 경제관이 깊이 반영되어

  있다.(P 86)

 

- 운동권 정부는 전문가 집단들과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이 싸움은 명예를 독점하고자 하는

  신양반 운동권과 명예를 획득하려는 전문가들 사이의 싸움이 될 것이다.(P100)

 

- 박정희가 보여주었던 잘 살아보세’, ‘일하는 정부등의 슬로건은 도덕적 교화를 최고의 목표로

  삼았던 조선시대 양반 리더십과 결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P105)

  박정희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많은 부분은 문화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 ‘민주화세력은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국부를 늘리는 정치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고,

 군주의 강력한 리더십을 견제했던 양반사회의 유교적 관점에서 박정희를 비판했다.(P114)

 

- 유교적 관점에서 항일 무장투쟁은 나라 잃은 민족의 지도자가 해야 할 최고의 도덕적 행위

  였다.(P114)


- 정경유착은 '이익을 추구하고 를 축적하고자 하는 사적 영역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유교적 문화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치적 권력을 등에 업지 않으면 사유재산이 확고하게 보호받지 못 할 때 개인은 정치

 권력을 끼고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고자 한다. 국가권력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법으로 보장

 하지 않고 도덕적인 명분으로 규제하고자 할 때 개인은 부자가 되기 위해 정치권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P116)

 

- 정부가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는 특정한 정치 성향의 시민단체 활동가만 사회적 가치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대우하고 그들에게만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특권층으로 만드는 것이며 민주주의가 가진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P188)

  정부의 여론 정치는 조선 후기 양반사회의 공론정치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이다.

 

- ‘도학정치를 실현하겠다는 훌륭한 의도로 제도화된 삼사의 간쟁 활동은 국왕의 일거수

 일투족이 공사 구분 없이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신진 사류의 급진적인 간쟁 활동은 조정 대신들에게는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대신들이 지적했던 신진 사류의 문제점은 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세력혹은 운동권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P190)

 간관들은 자주 대신들의 인격과 인간성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만

 옳고 바르며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 대신은 악인으로 비난하고 배척하였다.

 요즈음 친일파조상을 따지듯이 그 당시에도 남의 조상 파헤쳐 고발하는 것이 곧은 행동인 양

 생각했으며 , ‘훈구파들은 상소문을 올리며 신진사류들을 비판하였다.(P191)

 

- 향촌 사회에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추상적인 규칙이나 원리원칙에 따르지 않고

  지지 세력을 동원하고 과시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하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P212)

 

-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시민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생각만을 시민의 명령이라고 불렀다.(P216)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 시대의 진정한 신 양반은 아래 컬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선우정 칼럼] 유시민의 프락치 사냥, 그 후예들(논설위원, 2022.08.24.)

 

요즘 기이한 장면이 김순호 행정안전부 신임 경찰국장을 겨냥한 야당과 재야 좌파의 프락치 

사냥이다. 논점은 단순하다. 33년 전 주사파 운동권에서 공안 경찰이 된 김 국장의 변신과정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동료를 배신하고 밀고한 대가로 경찰에 특채된 것 아니냐

프락치 경력을 자백하라고 한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모호한 말들 이외에 증거는 없다

누군가 이런 식으로 빨갱이 사냥을 했다면 그들은 일치단결해 색깔론으로 역공을 퍼부었을 

것이다.

 

프락치 사냥은 말로 끝내는 논쟁이 아니다.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의 피해자 전기동씨가 3년 전 김명일 현 조선NS 기자와 가진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 실감할 수 있다.

방송통신대 법학과 3학년 때 자료를 얻으려고 서울대에 갔다. 누군가 얘기 좀 하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프락치라고 몰아세웠다. 아니라고 하자 교련복으로 갈아입히고 눈을 가렸다.

돌아가면서 몇 시간씩 폭행했다. 물이 담긴 세면대에 머리를 처박거나 바닥에 눕히고 주전자로

얼굴에 물을 부었다.” “전두환 전 씨라고 더 심하게 때렸다는 증언에선 가해자들의 악마성을 

발견할 수 있다. 남의 신체에 고통을 주다 못해 인격을 가지고 장난질을 친 것이다.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고문 사건으로 구속된 유시민씨.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감금, 고문인격

살인을 저질렀지만 수감 중 시종일관 당당했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법정에서 후회한 일도 사죄한 일도 없다. 가해자 대부분은 한국 사회의 지배층으로 출세했고,

피해자는 프락치 낙인을 안고 대부분 불행한 삶을 살았다.

서울대생을 부러워하는 방송대생, 공무원 시험 준비생, 재수생 등 4명이 피해자였다.

프락치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범인들은 1년 안팎의 징역형만 받았다. 법정에서 후회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대신 영웅 놀이를 했다.

유시민씨는 그때 얻은 명성을 발판으로 장관에 올랐고 TV에 나와 당시 일을 자랑했다.

유시민은 노덕술, 이근안을 포함한 한국의 역대 고문 가해자 중 가장 출세한 인물이다.

공범 윤호중씨는 민주당 원내대표, 이정우씨는 로펌 변호사, 백태웅씨는 미국 대학 로스쿨

교수가 됐다. 공범들은 유씨가 고마울 것이다. 그의 현란한 언행이 추악한 범죄를 민주주의

서사로 둔갑시키고, 일그러진 자화상에 민주 투사의 가면을 씌웠기 때문이다.

그들을 단호하게 단죄하지 못한 결과가 지금도 계속되는 프락치 사냥이다.

 

김 국장의 이력을 보면 그가 왜 타깃인지 알 수 있다그는 낮은 계급인 경장에서 시작해 장기간 공안 수사에 몸담았다. 반제·반파쇼·민중민주주의

혁명 그룹 사건을 해결해 특진했고, 남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동맹 사건을 해결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한국의 좌익은 공안 경찰을 정보기관보다 더 증오한다고 한다.

좌파의 풀뿌리를 뽑아내 그들의 증식 공간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몸담았던 인노회 조직원들은 통일사회주의 혁명, 민족 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했다.

대법원이 이적 단체라고 했든 안 했든,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지배했다면 지금 한국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조직을 버리고 경찰로 전향한 것은 공격받을 일이 아니다.

설사 그들 주장대로 김 국장의 수사 협조 때문에 조직이 해체되고 조직원이 체포됐다고 가정해도

자유민주주의 기반 위에 존립하는 한국 국회가 그를 매도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프락치 사냥은 유시민으로 끝나지 않았다. 원조 사냥꾼이 영웅이 됐으니 당연하다.

5년 뒤 연대생 5명이 동양공업전문대 학생 설인종씨를 프락치라며 끌고 가 끈으로 손발을

묶고 각목으로 때렸다. 고려대생 3명도 가담했다. 술 냄새와 응원가 소음이 신촌을 가득 채운

연고전 마지막 날이었다. 축제의 밤, 설씨는 연세대 적십자 동아리 방에 갇혀 맞아 죽었다.

그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일류대 학생인 척한 게 전부였다. 각목으로 때리다가 쓰러지면 발로

밟았다. 기절하면 물을 끼얹어 깨우고 다시 때렸다.

설씨가 과다 출혈로 죽자 가해자들은 젖은 옷을 벗겨 증거를 감췄다.

그러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몰려가 보호를 요구했다. 그들은 설씨가 프락치라는 증거라

며 자백 내용까지 공개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연세대 민간인 고문 치사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19891020일자 사회면. 연대생 5명과

고대생 3명이 학교를 속이고 연세대 동아리 활동을 한 동양공전 학생을 프락치로 몰아 납치한

뒤 학생회관에 끌고가 때려죽였다.

당시 전국 대학에서 같은 유형의 폭행 사건이 수십건 발생했다.

전남대에서 송원전문대 졸업생 이종권씨가, 한양대에서 선반 기능공 이석씨가 한총련 대학생

들에게 프락치로 몰려 맞아 죽은 때는 8년 후인 1997년이다.

전남대 사건 가해자인 정의찬씨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발탁으로 경기도 월드컵재단 사무총장에

올랐다. 대선 직전 여론에 밀려 사퇴할 때까지 정씨도 유시민씨가 누린 미래를 꿈꿨을

것이다.

 

김순호 경찰국장에 대한 공격은 유시민식 프락치 사냥이 밀실에서 벗어나 공공의 정치 영역에

서 부활했음을 알려준다. 집단 린치가 재개된 것이다.

경찰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 경찰 정책의 상징인 경찰국을 흔들어 정권에 상처를

입히려는 의도가 노골적이다. 넓게 보면 한국 현대사를 뒤집으려는 일련의 시도와도 연결돼

있다. 정권 입장에서 국장급 간부 교체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양보해선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들의 프락치 사냥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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