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조건 실패의 쓸모 - 어제의 실패를 오늘의 성공으로 만든 사람들
곽한영 지음 / 프런티어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6


작품에 여러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거나 이를 극복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차분히 읽고 나름의 방향성을 점검해 보고 혹은 자신의 의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것도 작품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여러 사례가 아닌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것은 언젠가 내가 작품을 읽고 독후감으로 작성한 것에서 발췌한 내용인데 신앙과 독서에 

관한 이야기다.

, 어렵고 힘들수록 그리고 세상이 난해할수록 위에 언급된 2가지 사실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미국에서 동일한 지역에서 비슷한 경제력과 같은 가족 수를 보인 조너선 에드워즈가문(성경을 삶의 지표로 삼고, 인문 고전을 가까이)마커스 슐츠가문(성경과 인문고전에 무관심)을 비교하였는데


조너선 에드워즈 가문5대 후손 896명을 분석했더니

1명의 부통령, 4명의 상원의원, 12명의 대학총장, 63명의 대학 교수, 60명의 의사, 100명의 목사,

75명의 군인, 83명의 저술가, 130명의 판검사 및 변호사, 80명의 공무원을 배출했다고 하며,


이와는 반대적 삶을 살았던 마카스 슐츠 가문5대 후손 1,062명을 조사 분석해 보니

전과자 96, 알코올 중독자 58, 창녀가 65, 빈민 286, 평생 막노동 460명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출처: ‘리딩으로 리딩하라’, 문학동네)

 

작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특히, 여의도를 보면 미국의 조너선 가문과 같은 가문보다는 

마커스 슐츠’ 가문 같은 집안이 설치는 것을 자주 목격하고는 하는데, 그런 집안은 본인은 

아니더라도 후일 그 후손들이 반드시 후과를 치룰 것이라는 것을 나는 강하게 확신할 수 있다.

제발 정신 차리고 무엇이 중하고 시급한지를 잘 정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 역경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역경을 받아들이는 그 사람의 

  ‘자세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 ‘태도가 인간을 완성한다

- ‘매너는 인간을 완성하지만 매너를 넘어선 헌신은 별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과 돈과 마음의 여유가 아니라 최대한의 집중을 끌어낼 절박함이다.

- 지금 성공을 꿈꾸고 있다면, 실패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중이라면 먼저 내가 생각하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 똑같은 결론을 낳는 두 개의 이론이 경합하고 있을 때는 더 단순한 것이 훨씬 훌륭하다

                                                                                                    (오컴의 면도날)

- 명분과 실리는 서로 붙어 있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이다. 두 면을 펼쳐 한 면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무시하거나 없애는 것은 동전 자체를 파괴하는    일이다.

- 전투에서 이겼음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어 결국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상처뿐인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 한다.

- 개인의 행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그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사는 삶이 아니라 단지 고통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 힘든 상황보다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은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지는 상황이다.

- 성공의 비결이나 실패의 원인은 평정심을 어떻게 잘 유지하는가 어떻게 하면 균형감을 잃지 

  않을 것인가에 있다.

- 성공은 선택이 아닌 준비에서 시작된다.

- 우리는 누군가의 성공을 바라볼 때 그가 기울인 노력과 희생 보다는 행운이라는 요소에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 필연 없는 우연은 거품처럼 사라지지만, 필연의 맥락 위에 놓은 우연은 필연의 흐름을 바꾸는 

  힘을 갖는다성공은 그런 우연과 필연의 정교한 조합이다.

- 뚜렷한 성과도 없고 도착지가 명확히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시간을 견디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길고 힘든 위기이다.

- 결정적인 순간에는 과감할 것, 하지만 바로 그 결정적 순간이 올 때까지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기다릴 것,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키워드다.

- ‘적당이 하지란 바로 그 핵심 목적을 잊지 않고 그 범위 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는 태도이다.

- 이야기로 마음을 사로 잡아라

- 미친 짓도 미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 조직이나 집단을 이끌어가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선의가 아닌 효과적인 리더십이다.

- 진나라 지백을 향한 가신이었던 예양의 충절어린 행동을 잊지 말자.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한다.

---> 지백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대해주었으니 자기도 응당 대단한 충성으로 그에 보답해야

      했다.      너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광야길로 부르셔서 만나를 먹이신 하나님!
임형근 지음 / 더드림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7


나는 주기적으로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또 내가 처음 교회의 문을 두드렸을 당시 가졌던 나의 신앙적 초심을 점검하기 위해 나와 같이 주님을 사모하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고, 살아가려 노력하는지를 알고 싶어 이런 간증 서적을 접하고는 한다.

비록 시간적으로 꽤 오래 전의 작품이기는 하나 오늘 읽어도 시기적인 괴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작품이라 판단되었기에 여기에 좋다고 생각되는 문구를 정리해 올려 보았다.


이런 간증서를 읽을 때 항상 뭔가를 찾으려 노력(?)하는 데 나는 본 작품을 읽으며 크게 느낀 사항을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누가 뭐래도 예수님이 2천 년 전 십자가를 지셨을 때 나를 위해 필요한 모든 죄의 값을 다 지불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과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작업이라는 점을 작품을 통해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데 오늘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긴급 전화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시다.’

라는 것이다

위 문구와 함께 작품에서 크게 느낀 몇 가지 문구를 하단에 함께 정리해 보았다.

 

- 하나님께서 계획 없이 부르신 인생은 없다.

- ‘구원이란 하늘에서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사건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기만 하면 그리고

  그 고백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고백이라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생명책에 

  내 이름을 기록하신다.

  ---> 구원 받았다고 해서 육신의 삶이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더라도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위에서 선포하신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게 된다.

-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헌신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섬기고 드려야 한다.

-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이다.

-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그대로 순종한다.

- 믿음이란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

- 전도할 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닌 성령의 감동이다. 전하는 자가 성령 충만하고 듣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

- 기적은 하나님을 보는 창구이며 기적은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준다.

- 영혼을 얻기 위해서는 지식보다는 성령의 감동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 변화되기 원하는 사람은 변화를 결단해냐 한다. 그리고 변화되기를 원한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하나님께 보여야 한다. 성령님은 우리가 변화되려 하지 않는 데에도 변화시키시는 분이 

  아니시다.

- 하나님의 모든 은사가 그렇듯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간절한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

- 기도할 때는 환경을 보고 낙망하면 안 된다. 하나님을 보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 하나님이 우리를 내실 때 다 다르게 내셨다. 단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유창한 말이 아닌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다.

- 순종은 우리의 몫이고 인도와 돌보심은 하나님의 일이시다.

- 우리가 하나님의 판단에 앞서서 이것은 구해도 된다. 저것은 구하면 안 된다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그저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주시고 안 주시고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이다.

- 먼저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려라 그러면 하나님의 지갑이 열린다.

- 하나님을 위해 대단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낫다.


작품을 통해 크게 느끼게 한 문구

1. 믿음이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닫고 확신하는 마음이다. 눈이 있다고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빛을 주시지 않았으면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다. 내가 귀가

   있다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공기를 주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다리가 있다고 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을 딱딱하고 요동하지 않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껏 뛰어다니며 활동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을 말한다.(P135)


2.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셨다.

   하나님의 긍휼이 은혜의 출발점이다. (P220)


3. 기도가 오랫동안 응답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추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변화시키기 위해 쓰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도구요 방법이다. (P220)


4.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감사는 하나님을 믿는 증거이다.

   감사는 가장 차원 높은 믿음의 단계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없고,

   감사하지 못할 것이 없다. 감사가 빠진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아니다. (P236)


5. 광야는 결코 절망의 늪이 아니다. 광야는 결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장소가 아니다.

   하나님을 새롭게 알고 만나는 곳이다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쓰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가르치시려고 광야로 부르신다. (P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인생 수업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6


과거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쉽고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요번에 

작품을 통해 마주하니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듯한 기분에 젖었다.

나아갈 길이 불확실하기에, 삶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생각해 보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선택이란 어떤 것을 택하든지 두려운 순간이다. 선택이 내게는 고르는 것이라기보다는 고르지 

 않는 걸 버리는 것

이다선택은 미리 준비된 사람의 몫이다. 왜냐하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망설이는 순간, 시간은 

우리에게서 멀리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 선택을 함에 있어 행복을 선택할 것이냐 그 반대를 선택할 것이냐? 두 말하면 잔소리요 

헛소리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는 것은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영원한 진리 아니겠는가.

행복에 대한 정의, 추구 방법 등등 행복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이를 완성시키려 노력하는 사람에 따라 또 그 행복을 받아들이는 해석의 방점에 따라 행복은 여러 각도에서 해석되고, 재평가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개의 사람들은 정작 행복한 삶이 무엇에 달렸는가를 모른 채, 걱정과 

고민이 가득 찬 상태로 언제일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찾아올 행복을, 마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속 두 주인공과 같은 마음 자세를 갖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는 게 또 그런 삶의 형태가 일반적인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행복에 대한 관점과 해석 방법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작품에서 언급된 몇몇 

철학자의 의견을 언급해 보면,

세네카는 행복한 삶은 자신의 본성에 맞추는 삶이라고 말하며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행복한 삶의 지름길이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고 하루아침에 봄이 오지 않듯이 사람도 하루아침에 또는 단기간에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행복은 지금이 순간이 주는 선물이며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행복감이라고 저자는 여러 철학자들의 관점을 이용해 강조하면서 지속 가능한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이 순간이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책을 보니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 3가지라는 내용이었는데, 책에서 언급된 3가지는 지금, 황금소금이었다.

이 내용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지 않겠지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는 사람마다, 각자가 처한 환경마다 또 각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내용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단어의 우선 순위는 전부 다를 것이지만 나의 경우는 지금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의 순간을 과거에 대한 후회와 원망 등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채운다면 다가올 미래도 과거의 모습을 닮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다인생을 살면서 그 무엇도 원망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 이유는 원망하면 원 없이 망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작품 전체적인 내용은 일반적이고 누구나 다 아는 사항에 대해, 누구나 조금만 신경 쓰면 다 실천 가능한 사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결국 행복이란 거창하거나 위대한 명제로 도전이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는 이야기며 누구나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모두 저자가 마지막에 강조한 이 말만은 가슴에 새기고 살았으면 한다.

신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길 바라기 때문에 우리의 가슴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심어 놓았음을 잊지 말고 오늘을, 지금을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자

나부터 그렇게 살 것이다.

 

1장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

- 우리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고 말한다. 모든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자신을 찾아

  가는 길이고, 그 길을 가려는 시도이며, 각자 최선을 다해 자신의 본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 그 

  자체이다(헤르만 헤세, '데미안')

- 살면서 가장 힘겨운 상황에 부딪힐 때, 자신의 내면으로 뛰어들어야 강력한 내면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내 곁에서 내 삶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던 것들이 흔들릴 때, 비로소 우리는 더욱 

  성장한다.

- 우리는 자신의 약점이나 자신이 겪는 고통과 시련까지도 자기발전의 계기로 승화시킬 줄 아는

  초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자기실현을 이루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 세계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인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다.

- 운명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이 내 운명을 사랑해야 한다.

-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여행은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에우다이모니아'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행복'으로 더 많이 번역되는 데,

  이 단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말하고자하는 중심 개념이다.

- 진정한 여정이란 오즈의 마법사의 등장인물들처럼 길을 걸으며 각자가 지닌 세상살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네잎 클로버는 '행운'을 이야기하지만 세잎 클로버는 행복을 이야기함을 잊고 산다.

  행복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 '우리가 생각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사는 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해답이다.

-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그가 읽고 있는 책을 살펴보면 된다. 독서는 그 사람의 

  인생을드러내기 때문이다.

-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

  1) 좋은 책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 한다.

  2) 고전은 혼란스럽고 답답한 정신을 위한 청량제이다.

  3) 책은 그 사람의 인생을 드러낸다.

- 예술은 우리가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예술은 우리가 어떤 빛깔을 띠어야 

  할지 자신만의 예민한 감각을 찾게 한다. 또한 예술은 삶이 가슴 절절히 아프고 힘든 것임을 

  알고 감동과 울음을 선사하여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 삶의 보석을 발견하는 창조적인 삶을 살려면 일상과 자연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온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2장 우리는 사랑으로 산다

- 사랑은 우리가 고통과 인내하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강랄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 매몰

  차게 극복해 나가는 것.

-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누군가와의 우연한 만남이 결국 하나의 운명이라는 외양을 띄게 되는 

  것이 바로 사랑의 선언’. 사랑의 선언은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르는 이행의 과정이고, 그 이후 

  그 사랑은 어마어마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게 된다.(철학자 알랭 바디우)

- 타인과의 관계를 치유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개선하라.

- 사랑이란 꽃과 흙의 관계처럼 묵묵히 모든 것을 받아 준다.

  흙은 꽃을 피우지만, 흙은 꽃에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 슬픔이 가득할 때는 슬픔에 기대야 한다

  슬픔을 극복하려고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슬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만히 슬픈 내 그림자를 보며 하루하루 살다 보면 불행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힘이 

  생긴다. 슬픔을 일상으로 여기는 것 그리하여 무뎌지는 것. 요철처럼 튀어 나온 슬픔을 평평하게

  두드려 평온함을 유지해야만 한다.

- 현대인들 대부분이 사랑을 단순한 감정의 문제로만 알고 있기에 사랑에 대해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그 이유는?

  첫째, 사랑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문제로 생각한다.

  둘째,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로 생각한다.

  셋째, 사랑을 하게 되는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지속적 상태, 혹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있는 상태를 혼동한다,

-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 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인 관심을 두어라.



3장 단 한번뿐인 삶, 욕망하라

- 사랑은 외부 원인의 관념에 동반하는 기쁨(스피노자, ‘에티카‘)

- 왜 행복한 감정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행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 

  때문이다(프랑스 철학자 알랭의 행복론’)

  ---> 행복은 전염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행복해지려면 결국 나 자신부터 행복해야 한다.

        나의 행복은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의지에 달려 있다. 행복한 삶에 대한 의욕을 갖자.

        행복이란 행복해지려고 하는 의지를 갖는 일이다.(알랭)

-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잘 분별해야 한다.

-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란 자신의 삶에서 이제 마지막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먹고, 마시고, 노래

  하고춤추는 삶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삶이라 할지라도 행복해지는 방법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삶이 고난과 고통으로 불행할지라도 그 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담담히 걸어가는 것이다.

-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할 수 밖에 없다.

- 변화를 꿈꾼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미지의 세계로 내던지는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삶이 스스로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낄수록 변화를 꿈꾸자.

 


4장 살아 있음이 곧 기적이다

-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찌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는 문장은 노인과 바다를 대표하는

  가장 의미 심장한 말이다. , 인간은 파괴되어 없어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겨루어 질 수는 

  없다는 뜻이다.

- 인간의 생애는 희망에 의해 끊임없이 기만당하면서 죽음의 품속으로 뛰어드는 것‘(쇼펜아우어)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 사랑의 기쁨을 줄 것인지 상상하라 그러면 

  기적으로 가는 길이 열릴게 된다.

- 기적이란 밖에서 무엇인가 변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인가가 변하길 

  기대하는 것이다.

- 우리의 삶은 그저 정해진 대로 흘러갈 뿐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를 

  바꾸는 것이다. 내면에 진정한 존재를 향해 귀 기울일 때, 자신의 운명을 발견할 수 있다.

 


5장 내 삶의 의미를 묻다

-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자만이 사랑할 수 있거나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다.(라르스 스벤젠)

- 인간 대부분의 불행은 고독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앤서니 스토)

- 시련이 고통스럽고 괴롭다고 하여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곤경에 처한 삶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 삶의 의미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것이다.

- 희망이란 불안정한 기쁨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에 대한 관념에서 생겨난다.

- 희망은 담쟁이덩굴처럼 누군가와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으로 담쟁이덩굴의 

  꽃말은 정이다.

- 진정한 삶은 자신에게 흔적을 남겼더 시련을 극복랄 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라.

   ---> 하루하루가 마치 자신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6장 행복해지고 싶을 땐

- 노자의 도덕경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나온다

  노자는 를 물에 비유하면서 우리에게 물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은 언제나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른다. 삶이 물처럼 그 자체로 흘러가게 내버려 둬야 한다.    그저 강물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긴 채 흘러가면 된다. 그 흘러감 자체에서 우리는 궁극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 우리 삶이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설책이라면 이제 갓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실패한 일에

  집중하게 되면 안 될 것이다.

- 정신이 풍요로워질수록 내면의 공허가 들어찰 공간이 줄어든다.

-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한 가지는 자기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 참된 행복은 운명의 여신이 좌지우지하는 물질적인 것, 권력, 명성 그리고 육신의 쾌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데 있다.

- 사람들을 심란하게 하는 것은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다.

   ---> 중요한 것은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믿음이다.

- 내 삶이 외로울 때 외면하지 않고 지탱해 주는 사람, 내가 더 이상 꿈을 믿지 않을 때 그 꿈의 

  문을 닫지 말라고 말해주는 사람, 아무것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말해주는

  사람그가 바로 우리의 진정한 친구다.

- 공감은 만남의 온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생각과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며상대방과 하나가 되었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또한 공감이란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몸속으로 들어가 타인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공감은 상상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상상력에 힘입어 타인의 입장을 공감

  할 때, 그 둘의 관계는 더욱 두터워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진민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8


작품은 이전에 출판되어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라틴어 수업이라는 작품의 아류정도로 여겨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은 작품이라 판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작가와 출판사는 어떤 의도로 

해당 작품을 만들었을까?’

라는 의구심 속에서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이 웬지 모를 울림 같은 것이 느껴져 작품을 쉽게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특히 9단원에서 언급한 라우스부르프(Rauswurf), 라우스슈미스(Rausschmiss)’와 관련된 이야기는 유치원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인 듯 하였지만 단어가 주는 의미성을 많이 생각하게 한 시간이었다.

저자는 작품 도입부에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조그만 단어 안에 얼마나 커다란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 그 안에 인간 희로애락의 퇴적층이 수 세기에 걸쳐 얼마나 두껍게 쌓여 있는지 생각하면 새삼 놀랄 때가 있다고 하면서 

언어란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빚어낸 작품이고, 단어는 그 작품의 중요한 

기본 재료다어떤 단어가 존재하는가를 통해 그 사회를 알 수 있고, 여러 단어가 있다면 어느 

상황에 어떤 단어를 선택해 쓰는가를 통해서도 그 사회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여하튼 라틴어 수업이라는 작품의 아류라고 섣불리 판단하였던 점에 대해 사과하며 특히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나 직장 생활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거나 새롭게 출발하려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작품이다.

 

1. 화이어아벤트(Feierabend)

: 하루 일을 마감할 때 쓰는 명사.

  즉, 열심히 생업에 종하한 사람들이 주로 평일 근무의 끝자락에 외치는 단어.

- ‘훈색은 노을이 질 때 하늘에 보이는 분홍에 노랑이 섞인 색이다.


2. 세르부스(Servus)

: 우리말 안녕이라는 말처럼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쓰이는 인사말

  이 인사말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같은 성서 속 표현에서 기원을 찾는다.

* 오스트리아에서도 이 인사가 널리 쓰인다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에서 널리 쓰이는 또 다른 

  인사로 ‘ ’그뤼스 고트(Grüß Gott!!)라는 표현도 있다. 인사를 뜻하는 단어와 신을 뜻한는 단어가

  만난 것으로 신의 은총을 기원하는 인사말로 해석하면 된다.

 

3. 게팔렌(gefallen)

: ‘무엇이 마음에 든다라고 할 때 쓰이는 동사로 사람에 쓰일 때는 나는 저 사람이 좋아보다는

  ‘나 저 사람이 마음에 들어, 저 사람 괜찮은 것 같아라는 정도의 의미로 사용된다.

* 우리가 이해하려는 대상이 복잡할수록 다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래야 이 광선들이 수렴하여 우리가 많음을 통해 하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된 시각의 본질이다.(칠레, 벵하민 라바투트)


4. 숫자 읽기에 관하여

: 123,456이라는 숫자를 읽을 때 우리는 1-2-3-4-5-6 순서로 읽지만 독일은 1-3-2-4-6-5순서로 

  읽는다. 긴 숫자는 세 자리씩 끊어서 읽되 뒤의 두자리는 뒤에서부터 읽는다.

  즉, 25라는 숫자를 읽을 때 우리는 이십오라 읽지만 독일에서는 ‘520’이라고 읽는다.

* 동양인들은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는 성향이 있어 부분보다는 전체에 주의를 더 기울이고 사물을

  독립적으로 파악하기보다 다른 사물과 맺는 관계를 통하여 파악한다고 한다.

  반면 서양의 분석적인 사고방식은 주인공인 사물과 사람 자체에 주의를 돌리고 관계보다는

  ‘논리에 주목한다.(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5. 아르바이트(Arbeit)

: 독일에서는 노동, , 작업, 과제등의 뜻으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근무를 뜻한다.

* 예술가의 작업처럼 사람들이 웬지 좀 더 고상한 것으로 여기는 일에는 아르바이트 대신 

  베르크를 쓴다.

* 아르바이트는 슬픈 어원을 가지고 있다. 인류 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가난한 하인이 되거나

  운명적으로 고된 노동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고아들이었다. (중략

  아르바이트의 어원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옛 인도 유럽어의 ‘orbh~'라는 어근은 아비가 없는

  이라는 뜻이고, 여기에서 고아라는 뜻의 영어 단어 orphan과 노동이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

  Arbeit가 각각 유래되었다고 한다.

* Arbeit macht frei(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위 문구는 나치가 유대인 강제수용소 정문에 박아두었던 글귀라고 한다.  

  독일에서는 이 문구를 잘못 인용할 경우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6.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 독일어로 10월을 뜻하는 옥토버와 축제를 뜻하는 페스트가 결합된 단어로 10월에 열리는 

  축제인데10월의 첫째주일이 축제의 마지막날로 해당 축제는 9월에 열린다고 보면 된다.

* ‘Prost’라는 단어는 축제기간 내내 울려 퍼지는 단어로 독일에서 건배할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어원은 사용하다’, ‘’유익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prodesse가 변화한 prōsit좋기를, 유익하기를)

  에서 왔다고 한다. 잔을 부딪치는 상대방이 탈 없이 건강하며 모든 일이 순조롭기를, 이전과 

  우리의 시간이 또 대학 박사 학위 구술시험에서부터 시작된 유래도 있다.

*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에서는 식사 때 물 대신 알코올 도수가 0.5도에서 2.8도 사이의 아주 약한

  맥주를 여성과 아이들이 마셨다고 한다. 이유는 석회질이 많아 물의 질이 안 좋았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세균에 오염되지 않은 식수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즉, 맥주를 마시면 이의로 당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던 식중독에 걸릴 확률이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의사들이 사람들에게 맥주를 권했다.

* 독일에서 무슨 맥주를 마셔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그냥 수도사들이 그려진 맥주를 마시면 될 

  만큼 수도원에서 만든 맥주는 맛과 향이 뛰어나다. 당시 수도사들은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실험과 연구를 통해 좋은 맥주를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고 전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사순절과 맥주 그리고 교황과의 연관성이 높은 종교개혁과도 상당히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참고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부인(카타리나)도 맥주 장인이었다고 하는데 많은 펍과 

  브루어리에  루터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7. 기프트(gift)

: 독일어로 Gift는 독()을 뜻하며, 선물은 게셍크(Geschenk)라는 단어를 쓴다.

* 19세가 초까지만 해도 기프트가 영어처럼 선물이라는 의미로도 쓰였지만 지금은 이라는 

  뜻만 남았다고 한다. 만물에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선물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과다복용하면

  약도 독이 되듯이 선물도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영어 표현으로 재능 있는 아이‘gifted child라 하는데 재능이 독이 되는

* 독일에서 특정 기념일에 선물을 주고받는데 고가의 명품을 선물한다는 개념이 거의 없고 

  선물을 주는 이들이 손수 만든 조그만 것들을 귀하게 여기고 기뻐한다고 한다.

* 독일에서는 돈 자랑을 굉장히 천한 것으로 여기고 부끄러워 한다. 심지어 돈은 말하는 게 

  아니고 그저 갖고 있는 것, 즉 언급의 대상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일 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그냥 조용히 갖고 있지 떠벌리지 말라는 이야기다.

 

8. 킨더가르텐(Kindergarten)

: 독일은 세계 최초로 '프리드리히 프뢰벨'에 의해 유치원이 설립되었으며 그는 아이들은 꽃과 

  같은 존재’ 라는 말을 남겼다. 킨더가르텐은 아이들(kinder)을 위한 정원(garten)이다.

* 유치반인 킨더가르텐(3~6)과 유아반인 크리페(3세 전)가 있는데, 나이가 다른 아이들을

  섞어서 반을 구성하는 게 기본이다.

* 유치원에서의 아이들의 모습은 레벤(leben, 삶을 살다)이다.

  즉,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그냥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놀고먹는 곳,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곳 등 사는 데 기본이 

  되는 것들을 조금씩 하는 곳이다.

 

9. 라우스부르프(Rauswurf), 라우스슈미스(Rausschmiss)

: 유치원을 졸업하는 아이들을 유치원 밖으로 던져주는 것이 독일 유치원의 하이라이트.

* 우리는 내던져지는 존재지만, 타인을 어딘가로 던져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중요하게는 

  나 자신도 어디론가 던져질 수 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피투성과 더불어 등장하는 

  ‘기투성이다.

  피투성은 필연이고 수동이지만, 기투성은 가능성이고 능동이다. 비록 이 세상으로 오는 일에는

  아무도 나의 자유의지를 신경 써주지 않았지만, 일단 던져져서 어느 정도 크고 나면 그때부터 

  구르는 방향이며 속도는 내 몫이다.

* 126~137쪽의 내용은 비록 유치원과 관련된 내용이기는 하나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내용이다.

  여기에 내가 작품을 요약정리하기 보다는 독서하시는 분들이 책을 직접 구매해 읽어본다면 

  가치 있는 행동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 작가의 수준이나 내용을 의심하다 본격적으로 저자를 신뢰하기 시작한 첫 번째 부분.

* 진정한 독립은 그럴듯한 간판의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는 능력과 태도의 여부에 

  있다.


10. 이네레 슈바이네훈트(Innere Schweinehund)

: '내 안의 돼지개라는 의미로 우리는 개돼지라 부르지만 독일에서는 돼지개로 부른다.

  독일에서의 돼지개내면의 약한 자아를 뜻하는 말로 평소에 친근하게 자주 등장하는 단어

  우리의 개돼지가 비하하는 말이라면 독일의 돼지개는 자기 합리화에 관련된 일상적 표현이다.

* 149~152쪽의 내용은 읽고 내가 작가를 믿고 내용을 음미하게 만든 두 번째 내용이다.

* 인간이란 원래 사방에서 자기를 잡아당기는 듯한 힘에 갈피를 못 잡는 존재이자, 내 행동을 

  내 힘으로 통제 못 해 의아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조너선 하이드)

* 딴청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기술이다.

  ---> 사람이 계획대로만 가다 보면 영감을 잃기 쉽고, 당위에 떠밀리다 보면 오히려 목표가 

        흐려진다.

        사람이 살다 보면 쓸데없는 일을 하며 무수히 쌓아온 시간이 갑자기 쓸모 있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쌓인 시간과 경험은 절대로 바지런히 계획이나 목표를

        세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우리는 뭘 자꾸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긴 싸움이기 때문에 무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며 자기와의 싸움에서도 좀 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와의 싸움에서 나는 언제나 이기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내가 이기느냐의 문제지

  둘 다 나니까. 그러니 한쪽의 내 목소리를 너무 죽이며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는다.

  대신 조금 게으르더라도 꾸준한 삶을 살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다정하게 단호할 수 있듯이

  게으름과 꾸준함은 함께 갈 수 있다.


11. 멜덴(Melden)

: 한쪽 팔을 위로 뻗어 검지 손가락을 높이 드는 동작으로 멜덴알리다’, ‘보고하다, 신청

  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멜덴을 할 때는 두 손의 검지 모두 사용해서 한 손 검지는 높이 들고

  (‘할 말 있어요라는 의미), 입에 갖다 댄 또 다른 손 검지는 - ’(‘하지만 내 차례까지 조용히 

  기다릴게요라는 표시)하는 모습처럼 입에 갖다 대기도 한다.

  ---> 경청, 배려, 존중, 공평 같은 공동생활의 예쁜 씨앗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심는

        것이 멜덴의 핵심이다.

* 독일 사회의 멘델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아직 의사 표현이 서툰 아이들에게 멜덴은 허락의 의미가 강하다면, 아이가 커가면서 멜덴은

  ‘공동 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해진다.

 

12. 아우프베켄(aufwecken)

: 독일어에는 잠을 자다가 일어나는 것에 관한 동사 중 헷갈리기 쉬운 삼총사가 있는데,

  ‘아우프슈테엔’, ‘아우프바헨’, ‘아우프베켄으로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아우프(auf)는 독일어에서

  무척 많이 사용되는 동사에 붙는 접두사로 위쪽을 향한다라는 의미다.

* ‘아우프슈테엔은 일어나서 침대에 더 이상 누워 있지 않은 상태

  ‘아우프바헨은 일어났는데 아직 침대에 누워 있을 수 있는 상태

  ‘아우프베켄은 내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남을 깨우는 상태

 

13.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

: 독일에서는 사라져서는 안 되는 걸림돌이 있는데 그래서 아픔과 부끄러움의 감각을 부단히 

  일깨우기를 바라는 걸림돌이 있는 이를 말한다.

* ‘슈톨퍼슈타인은 독일 예술가 권터 뎀니히가 나치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1992년부터

  시작해 지금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본래 유대인 희생자들을 대상으로 시작했지만 나치 정권에 의해 반사회적 인물

  로 분류되어 희생되었던 수많은 이들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14. 벨트슈메르츠(Weltschumerts)

: 일상에서 사용되는 단어가 아닌 문학 용어로, 영어로 표현하면 ‘world pain’ 정도로 해석되는데,

  잔인하고 무자비한, 차갑기 그지없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 밀려드는 

  고통과 슬픔, 다시 말해서 나의 주체성과 자유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현실이 있고

  그런 현실의 파도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고 속절없이 휩쓸리는 모래알 같은 내 모습에서 오는 

  마음의 통증을 말한다.

  --->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다고, 돈과 명예가 있다고 친구가 많다고 벨트슈메르츠가 

        없어지는것은 아니다 이 통증은 발현 시기를 기다리며 잠복하고 있는 인류의 유전적 결함

        같은 것이다.

* 미국인들은 주로 칭찬으로 스몰토크(small talk)를 시작하는 반면, 독일인들은 누군가 쏘아 올린

  불평에 자신의 불평을 한마디씩 보태며 낮선 이들과 유대감을 나눈다

  ---> 독일인이 불평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픈 거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라고 함.

* 고통과 불안은 인간 삶의 조건이기 때문에 완전히 제거할 수 없듯이 행복을 위해서 불행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 불행이 없다면 행복도 없다는 몹쓸 진실이, 벨트슈메르츠라는 통증의 숨겨진 발병 이유다.

 

15. 지허하이트(Sicherheit)

: 안전하고 견고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느낌, ‘안전, 안정성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영어로

  security, safety, reliability, certainty, guarantee 등의 의미가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살았던 경험자들이 작품을 쓰면 꼭 중간 중간에 해당 국가에 대한 찬사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밑도 끝도 없이 해당 국가 칭찬을 할 때는 솔직히 좀 역겨운 느낌이 상당히 든다.

해당 작품 19쪽을 읽다보면 독일에 살면 뭐가 좋으냐..... 삶의 여유다

라는 이야기를 저자께서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데, 우리와 비교해 우리에게 부족하고 해당 국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해되나 무턱대고 일방적으로 칭찬하는 내용을 접하게 되면 무지하게 짜증이 난다.


얼마 전 작고하신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였다의 저자께서도 작품 속에서 파리의 택시 운전과

운전사 그리고 톨레랑스에 대한 찬사를 하는 것을 읽으면서 그렇게 파리가 좋고 파리에서의 택시

운전이 부러우시면 그 나라에서 택시 운전이나 하시면서 살지 뭐하러 이런 쪼잔한 국가에 들어와 사셨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외국에 대해 국뽕적 감정으로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칭찬하는 표현이 자제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불만을 써 보았다.

 

일본의 유명 축구선수였던 미드필더 나까다가 과거 한일전을 패한 후 일본 기자로부터 

오늘 한일전에서 패했는데 소감?’

이라고 물었을 때, 나까다는 나는 여러 경기 중 한 경기를 패한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

라는 소감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탔다고 몇주 전 만 해도 온 나라가 난리도 아니었다. 책도 읽지 않는 잡스런 인간들이 이야기하는 꼴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노벨상도 여러 상 중 하나일 뿐이고 그보다 더 멋지고 훌륭한 작품이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은데 그런 것은 찾지도 않으면서...내 주변인들이 노벨문학상 발표직후 해당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에게 물아왔을 때 나는 해당 작품을 이미 몇 개월전 전부 읽어보았기 때문에 주변인들에게 작금의 

논란이 되었던 부분을 예상하고 추천하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지난 2000년 중국 출신 프랑스 작가 가오싱 젠의 장편 소설인 영혼의 산이라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그 작품이 왜 노벨 문학상을 탓는지 - 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 와 

우리의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탄 이유를 비교해 가면서 책 구매를 자제시켰다.

노벨문학상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고 우리의 스타일대로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진정한 삶의 여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안에 거하라 - 포도나무와 하나된 가지처럼
유기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천 권유도 8


어느 작품이던 작품의 특징 내지는 작품의 집필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프롤로그는 

굉장한 의미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데, 책을 접하면 해당 부분을 세세히 읽으며 저자가 

의도하고 있는 사고의 핵심을 찾아보려 노력하고 있는데 독서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작품은 오늘날 하나님을 흠모하고 사랑하며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순수 기독인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교회와 신앙적 저열정에 대한 반성적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우선 저자께서는 위와 같은 부진한 대한 단정적인 이유를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데, 우리가 주님을 무시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낙심하고 

 시험에 들고 영적으로 메말라지는 이유는 환경이나 사람 때문이 아니라 주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

이라는 지적을 저자는 하고 있다.

종교적 무지랭이 수준을 갓 벗어난 나도 이와 같은 의견을 갖고 있으니 하여간 문제는 문제라고 보여진다중언부언하는 이야기지만 저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종교력이 깊지 않은 내가 보아도 

저자인 목사님의 분석이 맞아도 아주 정확히 맞다고 본다.

완전히 공감할 정도의 종교적 지식이나 개신교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

  에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 고 판단하기에 또 과거 한때 무신론을 주장하다 어느날 갑자기 내게

부어진 성령의 힘에 의해 주님의 어린 양으로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나의 과거 행적을 잘 아는 이들이 내가 무신론에 심취해 기독인과 기독교를 비난하거나 사회적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종교, 종교인들의 행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때 내가 과거 그런 사건에 대해 사용했던 언사와

행동이 어떠했는지를 나의 주변인들이 알고 있기에 그들이 나를 향해 내가 했던 용어를 사용하며 비난할 때 나는 합리적으로 대응할 변명을 찾지 못해 괴로웠고 - 내가 기독교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그  구성원으로서의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기에 - 또 얼굴을 들기가 정말로 힘들었던 게 사실이었는데, 저자의 이런 위와 같은 한말씀을 통해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는 논리를 나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논리가 있음 무엇하겠는가 문제는 문제인 것을 온 세상이 손가락질 하는 사건에 앞장서 

난리치는 종교인들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로서 특정 지역에서 공권력을 무시하고 알박기에 가까운 난동질하다 정권을 상대로 별 희한한 짓을 합법과 종교자유를 사칭하여 벌이는 질낮은 행동의 목사들, 어떻게 해서든 권력자를 흠집내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속한 집단을 띄워보려는 수준 낮은 자칭 목사와 그 조무래기들, 낮에는 

호날두를 능가하는 축구 능력을 보여 주고 밤에는 여신도를 농락했음이 수사와 법의 심판을 통해 명명백백 밝혀졌음에도 구세주라 외치고 난리치는 모지리 목사와 이를 추종하는 그 심복들

사회적 보호 대상을 이용해 온갖 비리란 비리를 저지른 저질 인간임에도 자신이 목사라고 우기는 인간들, 양의 탈을 쓴 짐승처럼 평신도와 친한 교역자 돈 떼먹고 튄 어느 중견 신도부터 평신도를 가스라이팅하는 간부 신도들, 이 모든 게 잘못되어 우리의 기독교가 이런 꼬라지가 되었다고 핏대 올리는 평신도인 나는 또 어떤가!

종교적인 측면에서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며 수양이 덜 된 인간인 내가 이런 글 쓰는 것 자체가 

큰 고역이 아닐 수 없지만 나라도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런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고역을 자청하고 있다.

 

나는 말과 글로서는 세상을 구원하는 듯한 자세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 듯이 행동하고 있지만 속성은 세상의 때에 물들대로 물든 그런 인간으로 

예수님을 기도의 제목으로만 여기지, 진짜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닌 세상의 축복이고 기도의

 응답이며세상적 성공이다.‘

결론적으로 나 역시 위선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도 여타의 종교인들처럼 내가 할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마치 하나님이 채무자이고 내가 

채권자인양 무조건 달라기만 하고 달라고 한 것을 잘 주지 않으시면 삐진다.

하나님도 지치셨을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사던 신도들이건 간에 앞 뒤 구분치 않고 자신들의 본분은 잊어버리고 막장에 가까운 활개를 치다보니 주님께서도 창피하셨던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신도, 비신도들 보기에 민망해 그러신지는 잘 모르겠으나 요즘 기적을 잘 보여주지 않고 계시다.

그러면 또 그런 잡스런 목사나 간부 신도들은 여타의 교인들과 신입 성도를 향해 기도빨이 약해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조용히 살아가려는 모두를 향해 

난리를 쳐대며 힘들게 하고 있다. 하여간 짜증나는 세월이다.

이런 시기에 저자이신 유기성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마음을 새롭게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작품에 여러 성경 문구가 언급되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귀중하지 않은 문구는 없을 것이지만 

해당 작품의 주제적 관점에서 보면 나는 두 개의 문구를 너무도 사랑한다.

1.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그분의 지체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을 것이다.

2.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 7)

나는 이 두 문구가 갖는 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며 이 문구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진정한

의미를 믿고 또 믿는다!!! 아멘, 아멘, 아멘!!!

 

여러 이야기를 하기 전에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내가 항시 의문을 갖고 있던 

특정 부분에 대한 결론적인 이야기이기에 여기에 먼저 정리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예수님이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P 23)

 ---> 누구도 예수님읕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 6)

 

- 예수님 안에서 내가 죽었음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라고 하는 말이 곧 

  ‘나는 죽었다는 뜻입니다. (P 36)

- 예수님 안에서 문제를 보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더 깊은 은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P 40)

- 영생을 얻는 사람은 예수님을 인생의 기초로 삼고 말씀에 순종하며 삽니다.(P 52)

   ---> 우리 인생은 주님의 말씀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라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로 

         영생과 지옥이 갈라진다.

- 요한3: 16절에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에서 그를 믿는 자마다의 진실된 뜻은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믿는 자마다혹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안에 머물러 있는 자마다라는 

  의미이다.(P 54)

- 영어 성경 속에서 ‘Believe in him'(그분 안에서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 자신을 맡긴다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구원받는 믿음이다.(P 55)

- 성령의 내주하심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삶의 기초가 된 

  사람입니다.

-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거듭났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삶은 변화되지 못하는 것일까?

  ---> 예수님을 믿으면 성경이 말한 대로 놀랍게 변화된 삶, 거듭난 삶이 반드시 우리에게 

         주어진다.(P 63)


*** 예수님을 영접한 초창기에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던 내가 갖고 있던 마음 속의 예수님을 

     표현한  내용 ***

   ‘예수님을 믿어도 삶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만 예수님이 자신 안에 계시다는 사실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다고 고백은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마음에 임하셨다고 하면

    서도 문제와 질병과 시험앞에서 두려워하고 염려한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건성으로 믿고

    있는 것으로 엄밀히 이야기하면 안 믿는 것이다.‘


- 성경에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구절이 164회 언급되고 있는 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신앙의 핵심이다. (P 67)

- 어떻게 믿음을 강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믿음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분을 의지하는 것이다.(P 72)

   ---> 믿음은 가지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맡기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 그러한 믿음을 가졌음에도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께 

         진정으로 자신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는 할 수 없음을 감사합니다’, ‘나의 실패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능히 주께서 저를 

  주님과 하나 된 자로 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

  합니다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자세입니다.(P 78)

- 예수님을 진짜 믿고, 진짜 맡기면 때때로 실패가 오고 좌절이 와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문제를 해결해주실 예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미리 감사하고

  예수님이 역사하실 것을 선포하게 됩니다.(P 78)

- 우리가 예수님만을 따르며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주님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신다.

   --->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역사는 나타날 수 없다.(P 89)

   ---> 감사가 나오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P 97)

-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면 염려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다.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맡기라.

-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P102)

- '오늘은 예수님이 어떻게 하실까? 어떻게 이끄실까?‘ 하며 늘 함께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그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 예수님은 우리가 계속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신다.(P105)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확실하고 빠른 응답이 아니라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P106)

  ---> 진정한 성공이나 행복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누려지는 것.

- ‘항상 기뻐하라는 말음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뜻(P127)

- '내가 있잖아!‘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P128)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이 말을 다시 표현해보면

          ‘예수님을 바라보라, 나를 바라봐, 내가 있잖아라는 의미다.(P138)

-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핵심이다.(P135)

- 어떤 시험이 와도 마음을 지켰다면 승리한 것이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실 것이다.(P148)

  ---> 마음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P152)

- 성경 말씀이 갖고 있는 5가지 능력(프린스 목사, P155)

  첫째, 생명의 양식이다 

  둘째, 하나님의 약병이다

  셋째, 삶의 힘이 된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지혜이다

  다섯째, 구원의 능력이다

- 품지 말아야 할 생각이 자꾸 마음에 들어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회개와 고백.(P169)

-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긴다는 것으로 주님을 완전히 믿는 

  것이다.(P181)

- 우리의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는 일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되고, 주님을 완전히 믿을 때 주님이 역사하신다.(P184)

- 예수를 믿는 성도가 영적인 충만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목마름이 느껴지든 느껴지지    않든 꾸준히 주님 안에 거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사는 것.(P192)

- 가장 무서운 죄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도 예수님이 왕이심을 거부하는 것(P205)

-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확신이 

  생겨야 한다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P218)

- 예수님만 원하고, 예수님만 만나고 싶고, 예수님 안에서만 거하고 싶고, 예수님만으로만 살고 

  싶을 뿐이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상관없다.(P226)

-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살면 인생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P241)

   ---> 인간사 모든 문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아 생기는 문제입니다.

   ---> 무릎을 꿇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꺽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 감정, 계획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각에 맞추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해 가는 것이 무릎을 꿇는 

         것이다.(P249)

- 기도의 열쇠는 주님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하면 어떤 형편에서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인도하실 수 있다.(P259)

- 기도를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 안에서 기도하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기도

  하는 것이다.(P262)

  --->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P267)

  ---> 예수님 앞에 거하는 자세란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가운데 운전해하는 자세를 말한다,

- 끝모를 장시간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언제쯤 풀려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대신 매 순간 예수님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버틸

  수 있었다.(P270)

- 왕이신 예수님의 지시를 받지 못했다면 잠잠히 기다려야 하고, 어떤 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우리가 늘 가까이하는 사람의 얼굴은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음성에

  늘 귀를 기울여 살면 반드시 예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P280)

- 우리가 진정으로 죄를 애통해 하며 죄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며 주님께 나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용서하고 사랑하신다. 그러나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 죄를 끊어버리려는 확실한 결단 

  없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찬양한다면 이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P282)

-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받게 되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모두 

  받는데에베소서에서는 그 복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셨다

  둘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았다

  셋째,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셨다.

-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는 이유는 우리가 약속받은 하늘에 속한 모든 복,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것과 예수님의 피로 속죄함 받은 것을 보증해 주시기 위해서이다.(P302)

- 우리는 앞으로 복을 받을 사람이 아니고 이미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P308)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받을 은혜가 아닌 받고 있는 은혜를 아는 것.(P314)


* 2024117일 가정예배 365의 말씀 중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오늘날 교회 연약함의 뿌리에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 곧 하나님의 도(way)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에 대한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knowing about God)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God)

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문제 앞에 직면해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가지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눈앞에 보이는 문제보다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 문제는 작아지고 하나님이 커집니다.

 

사실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보다 더 큰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원망과 낙심이 들 때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기록합니다(8:32).

삶에서 흔들리고 두려울 때,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을 

명확히 붙든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삶의 어려움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신앙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그 속에서 진짜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느껴보십시오.

하나님을 바로 알 때 삶의 모든 문제는 작아지게 됩니다.

                                                                                                  [출처] - 국민일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