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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거하라 - 포도나무와 하나된 가지처럼
유기성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23년 12월
평점 :
추천 권유도 8
어느 작품이던 작품의 특징 내지는 작품의 집필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프롤로그’는
굉장한 의미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데, 책을 접하면 해당 부분을 세세히 읽으며 저자가
의도하고 있는 사고의 핵심을 찾아보려 노력하고 있는데 독서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작품은 오늘날 하나님을 흠모하고 사랑하며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순수 기독인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는 저성장의 늪에 빠진 교회와 신앙적 저열정에 대한 반성적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우선 저자께서는 위와 같은 부진한 대한 단정적인 이유를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데, 우리가 주님을 무시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낙심하고
시험에 들고 영적으로 메말라지는 이유는 환경이나 사람 때문이 아니라 주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
이라는 지적을 저자는 하고 있다.
종교적 무지랭이 수준을 갓 벗어난 나도 이와 같은 의견을 갖고 있으니 하여간 문제는 문제라고 보여진다. 중언부언하는 이야기지만 저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종교력이 깊지 않은 내가 보아도
저자인 목사님의 분석이 맞아도 아주 정확히 맞다고 본다.
- 완전히 공감할 정도의 종교적 지식이나 개신교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
에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 고 판단하기에 또 과거 한때 무신론을 주장하다 어느날 갑자기 내게
부어진 성령의 힘에 의해 주님의 어린 양으로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나의 과거 행적을 잘 아는 이들이 내가 무신론에 심취해 기독인과 기독교를 비난하거나 사회적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한
종교, 종교인들의 행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때 내가 과거 그런 사건에 대해 사용했던 언사와
행동이 어떠했는지를 나의 주변인들이 알고 있기에 그들이 나를 향해 내가 했던 용어를 사용하며 비난할 때 나는 합리적으로 대응할 변명을 찾지 못해 괴로웠고 - 내가 기독교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그 구성원으로서의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기에 - 또 얼굴을 들기가 정말로 힘들었던 게 사실이었는데, 저자의 이런 위와 같은 한말씀을 통해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는 논리를 나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논리가 있음 무엇하겠는가 문제는 문제인 것을 온 세상이 손가락질 하는 사건에 앞장서
난리치는 종교인들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로서 특정 지역에서 공권력을 무시하고 알박기에 가까운 난동질하다 정권을 상대로 별 희한한 짓을 합법과 종교자유를 사칭하여 벌이는 질낮은 행동의 목사들, 어떻게 해서든 권력자를 흠집내 자신의 이름을 자신이 속한 집단을 띄워보려는 수준 낮은 자칭 목사와 그 조무래기들, 낮에는
호날두를 능가하는 축구 능력을 보여 주고 밤에는 여신도를 농락했음이 수사와 법의 심판을 통해 명명백백 밝혀졌음에도 구세주라 외치고 난리치는 모지리 목사와 이를 추종하는 그 심복들,
사회적 보호 대상을 이용해 온갖 비리란 비리를 저지른 저질 인간임에도 자신이 목사라고 우기는 인간들, 양의 탈을 쓴 짐승처럼 평신도와 친한 교역자 돈 떼먹고 튄 어느 중견 신도부터 평신도를 가스라이팅하는 간부 신도들, 이 모든 게 잘못되어 우리의 기독교가 이런 꼬라지가 되었다고 핏대 올리는 평신도인 나는 또 어떤가!
종교적인 측면에서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며 수양이 덜 된 인간인 내가 이런 글 쓰는 것 자체가
큰 고역이 아닐 수 없지만 나라도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런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고역을 자청하고 있다.
나는 말과 글로서는 세상을 구원하는 듯한 자세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 듯이 행동하고 있지만 속성은 세상의 때에 물들대로 물든 그런 인간으로
‘예수님을 기도의 제목으로만 여기지, 진짜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닌 세상의 축복이고 기도의
응답이며, 세상적 성공이다.‘
결론적으로 나 역시 위선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도 여타의 종교인들처럼 내가 할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마치 하나님이 채무자이고 내가
채권자인양 무조건 달라기만 하고 달라고 한 것을 잘 주지 않으시면 삐진다.
하나님도 지치셨을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사던 신도들이건 간에 앞 뒤 구분치 않고 자신들의 본분은 잊어버리고 막장에 가까운 활개를 치다보니 주님께서도 창피하셨던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신도, 비신도들 보기에 민망해 그러신지는 잘 모르겠으나 요즘 기적을 잘 보여주지 않고 계시다.
그러면 또 그런 잡스런 목사나 간부 신도들은 여타의 교인들과 신입 성도를 향해 ‘기도빨이 약해’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조용히 살아가려는 모두를 향해
난리를 쳐대며 힘들게 하고 있다. 하여간 짜증나는 세월이다.
이런 시기에 저자이신 ‘유기성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모두가 마음을 새롭게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작품에 여러 성경 문구가 언급되고 있는데 어느 것 하나 귀중하지 않은 문구는 없을 것이지만
해당 작품의 주제적 관점에서 보면 나는 두 개의 문구를 너무도 사랑한다.
1.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그분의 지체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을 것이다.
2.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 7)
나는 이 두 문구가 갖는 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며 이 문구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진정한
의미를 믿고 또 믿는다!!! 아멘, 아멘, 아멘!!!
여러 이야기를 하기 전에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내가 항시 의문을 갖고 있던
특정 부분에 대한 결론적인 이야기이기에 여기에 먼저 정리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도 예수님이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P 23)
---> 누구도 예수님읕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 6)
- 예수님 안에서 내가 죽었음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라고 하는 말이 곧
‘나는 죽었다’는 뜻입니다. (P 36)
- 예수님 안에서 문제를 보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더 깊은 은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P 40)
- 영생을 얻는 사람은 예수님을 인생의 기초로 삼고 말씀에 순종하며 삽니다.(P 52)
---> 우리 인생은 ‘주님의 말씀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라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로
영생과 지옥이 갈라진다.
- 요한3: 16절에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에서 ‘그를 믿는 자마다의 진실된 뜻은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믿는 자마다‘ 혹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 안에 머물러 있는 자마다‘라는
의미이다.(P 54)
- 영어 성경 속에서 ‘Believe in him'(그분 안에서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 자신을 맡긴다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구원받는 믿음이다.(P 55)
- 성령의 내주하심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삶의 기초가 된
사람입니다.
-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거듭났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삶은 변화되지 못하는 것일까?
---> 예수님을 믿으면 성경이 말한 대로 놀랍게 변화된 삶, 거듭난 삶이 반드시 우리에게
주어진다.(P 63)
*** 예수님을 영접한 초창기에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던 내가 갖고 있던 마음 속의 예수님을
표현한 내용 ***
‘예수님을 믿어도 삶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만 예수님이 자신 안에 계시다는 사실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다고 고백은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마음에 임하셨다고 하면
서도 문제와 질병과 시험앞에서 두려워하고 염려한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건성으로 믿고
있는 것으로 엄밀히 이야기하면 안 믿는 것이다.‘
- 성경에서 ‘그리스도 안에’라는 구절이 164회 언급되고 있는 데,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신앙의 핵심이다. (P 67)
- 어떻게 믿음을 강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믿음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분을 의지하는 것이다.(P 72)
---> 믿음은 가지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맡기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 그러한 믿음을 가졌음에도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께
진정으로 자신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는 할 수 없음을 감사합니다’, ‘나의 실패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능히 주께서 저를
주님과 하나 된 자로 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
합니다’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자세입니다.(P 78)
- 예수님을 진짜 믿고, 진짜 맡기면 때때로 실패가 오고 좌절이 와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문제를 해결해주실 예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미리 감사하고,
예수님이 역사하실 것을 선포하게 됩니다.(P 78)
- 우리가 예수님만을 따르며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주님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신다.
--->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역사는 나타날 수 없다.(P 89)
---> 감사가 나오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P 97)
-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면 염려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다.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맡기라.
-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P102)
- '오늘은 예수님이 어떻게 하실까? 어떻게 이끄실까?‘ 하며 늘 함께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그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 예수님은 우리가 계속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신다.(P105)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확실하고 빠른 응답이 아니라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P106)
---> 진정한 성공이나 행복은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누려지는 것.
- ‘항상 기뻐하라’는 말음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뜻(P127)
- '내가 있잖아!‘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P128)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말을 다시 표현해보면
‘예수님을 바라보라, 나를 바라봐, 내가 있잖아’라는 의미다.(P138)
-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핵심이다.(P135)
- 어떤 시험이 와도 마음을 지켰다면 승리한 것이다.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실 것이다.(P148)
---> 마음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P152)
- 성경 말씀이 갖고 있는 5가지 능력(프린스 목사, P155)
첫째, 생명의 양식이다
둘째, 하나님의 약병이다
셋째, 삶의 힘이 된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지혜이다
다섯째, 구원의 능력이다
- 품지 말아야 할 생각이 자꾸 마음에 들어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회개와 고백.(P169)
-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모든 염려를 주님께 다 맡긴다는 것으로 주님을 완전히 믿는
것이다.(P181)
- 우리의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는 일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되고, 주님을 완전히 믿을 때 주님이 역사하신다.(P184)
- 예수를 믿는 성도가 영적인 충만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목마름이 느껴지든 느껴지지 않든 꾸준히 주님 안에 거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사는 것.(P192)
- 가장 무서운 죄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도 예수님이 왕이심을 거부하는 것(P205)
-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오직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확신이
생겨야 한다.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P218)
- 예수님만 원하고, 예수님만 만나고 싶고, 예수님 안에서만 거하고 싶고, 예수님만으로만 살고
싶을 뿐이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상관없다.(P226)
-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살면 인생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P241)
---> 인간사 모든 문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아 생기는 문제입니다.
---> 무릎을 꿇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꺽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 감정, 계획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이 주시는 생각에 맞추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해 가는 것이 무릎을 꿇는
것이다.(P249)
- 기도의 열쇠는 주님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하면 어떤 형편에서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인도하실 수 있다.(P259)
- 기도를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 안에서 기도하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기도
하는 것이다.(P262)
--->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P267)
---> 예수님 앞에 거하는 자세란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가운데 운전해하는 자세를 말한다,
- 끝모를 장시간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언제쯤 풀려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대신 매 순간 예수님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버틸
수 있었다.(P270)
- 왕이신 예수님의 지시를 받지 못했다면 잠잠히 기다려야 하고, 어떤 소리가 들려왔을 때는
우리가 늘 가까이하는 사람의 얼굴은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의 음성에
늘 귀를 기울여 살면 반드시 예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P280)
- 우리가 진정으로 죄를 애통해 하며 죄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며 주님께 나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용서하고 사랑하신다. 그러나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 죄를 끊어버리려는 확실한 결단
없이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찬양한다면 이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P282)
-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받게 되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모두
받는데, 에베소서에서는 그 복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해 주셨다
둘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속죄함을 받았다
셋째,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셨다.
-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는 이유는 우리가 약속받은 하늘에 속한 모든 복,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것과 예수님의 피로 속죄함 받은 것을 보증해 주시기 위해서이다.(P302)
- 우리는 앞으로 복을 받을 사람이 아니고 이미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P308)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받을 은혜가 아닌 받고 있는 은혜를 아는 것.(P314)
* 2024년 11월 7일 가정예배 365의 말씀 중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오늘날 교회 연약함의 뿌리에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 곧 하나님의 도(way)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에 대한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knowing about God)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God)
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문제 앞에 직면해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가지지 못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눈앞에 보이는 문제보다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면 문제는 작아지고 하나님이 커집니다.
사실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보다 더 큰 문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원망과 낙심이 들 때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붙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기록합니다(롬 8:32).
삶에서 흔들리고 두려울 때,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을
명확히 붙든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삶의 어려움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신앙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그 속에서 진짜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느껴보십시오.
하나님을 바로 알 때 삶의 모든 문제는 작아지게 됩니다.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