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핑크북, 분홍 책인거까지야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앞뒤표지가 온통 분홍 컬러로 뒤덮여있고, 채도와 명도 별로 각종 핑크템이 그려져있는 책이라 그런 것일수도 있었다. 블루북이라고 해도 보통은 한 가지 채도와 명도로 뒤덮여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디자인을 많이 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책의 뒷 날개에는 어떤 핑크 소품 별로 점수가 적혀져 있었는데, 책을 읽기 전이지만 한 번 계산해봤다. 의도치 않게 핑크 북이 하나 있었고, 핑크 셔츠가 하나, 핑크 그릇이 하나, 핑크 예술품 하나, 핑크 신발이 하나해서 나는 총 5개의 핑크 소품을 가지고 있었고 점수로 환산을 해보니 20점 정도 되었다.이 책을 읽으면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2007년에 개봉한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볼 때 영화 내내 분홍색 소품이 계속 뛰어다녀서 눈이 아팠던 기억 때문이었다. 분홍/핑크라는 하나의 색깔 개념 아래 이렇게 많은 명도와 채도가 존재할 수 있는지 그 때 처음 알았었다.
단순히 핑크 예찬론을 벌이는 책이 아니라서 좋았다. 문화와 시대적으로 분홍색에 대한 개념이 왜 다른지,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분홍이 가진 연대의 의미와 뜻도 알 수 있어서 나름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조선시대 때, 분홍색이 신뢰를 나타내어 명종 대에는 선비의 복장으로 제안되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가다가 진담반 농담반으로 '핑크는 남자의 색'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는데 실제로 옛날에는 빨간색이 용감함을 상징했기 때문에 분홍색은 남자아이를 위한 색깔이었고, 푸른색은 성모마리아를 상징했기 때문에 파란색은 여자 아이를 위한 색깔이라는 내용이 나왔었다. 그것이 어린이용 물건을 마케팅 할 때 색을 입히니 물건이 더 잘 팔렸고 어느 순간부터 '핑크=여성', '블루=남성'이라는 공식으로 마케팅이 되었다는 것이다. - 결국 이미지는 마케팅의 산물이었던가?
핑크 역삼각형이 나치 시대 때, 남성 동성애자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영화 '벤트'를 보고 이미 알았던 내용이지만 여성 동성애자의 상징은 검은 삼각형이었다는 사실도 짧게나마 나와 알 수 있었다.
핑크/분홍은 거의 언제나 나의 타입은 아니었지만 나름 신선하고 즐거운 재미를 준 책이었다.
최근 홍보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 이거 : https://bit.ly/2OlWMq5
처음 영상을 봤을 때는 조만간 개봉하는 한국 스릴러 영화의 홍보 영상인 줄 알았다. 영상에서는 기이해 보이는 돌담과 죽은 남성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것은 영화 홍보 영상이 아니라 이두온 소설가의 신작 소설 '타오르는 마음'의 홍보 영상이었다. - 타오르는 마음의 상세정보가 궁금하면 내 리뷰가 아니라 요기 링크(http://aladin.kr/p/xN7tU)로 가길 바람.
소설가 이두온의 첫 작품이었던 시스터와 마찬가지로 '타오르는 마음' 역시 스릴러 계열의 소설이다.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두 소설 모두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스릴러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책 표지를 봤을 때 이게 사람 뒤통수인지 아니면 영상에 나왔던 돌무더기인지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돌무더기로 생각했느냐 묻는다면 책에서 처음 발견된 살인 피해자가 바위 위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집에 도착하기 전 다른 책을 하나 읽고 있었기 때문에 내용이 궁금했지만 바로 읽지는 못했다. 읽고 있던 책을 다 읽고 이두온 소설가의 새로운 책 '타오르는 마음'을 집어 들었다.
처음 시작은 연쇄살인과 관련이 없어 보였다.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퀴즈쇼에 출연한 여성과 옷을 벗고 나체로 돌아다니는 남성의 대화였으니까. 그 둘의 공통점은 연쇄살인이 일어난 마을에서 자랐으며, 최근에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죽은 여성과 나름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이다. 죽어가는 마을에 죽은 사람이 발견되었다.
마을이 죽어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으나 여기는 애초에 사회적 인프라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 그나마 돈을 벌 수 있는 건더기인 '국도'를 달리는 운전자에게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고속도로'가 생기고 난 뒤, 이 마을은 서서히 말라비틀어져 죽어간다.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은 마을과 함께 죽지 않기 위해 축제를 벌이지만 이 마을을 살린 것은 축제가 아니라 '살인사건'이었다. 마을에 나타난 시체 여러 구가 마을을 살렸다. 사람은 죽었는데 마을은 살아나는 기이한 일이 벌어져 버렸다.
실제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빨리 밝혀졌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으면서 악의 근원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다. 연쇄살인을 저지른 이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내지는 '살인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그에게 악의 근원을 묻는 것은 이상해 보였다. 그저 '악' 그 자체일 뿐이었으니까.
마을 자체가 악으로 둘러싸여 버린 것은 분명히 악의 근원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마을을 둘러싼 살인을 위한, 살인에 의한, 살인을 즐기는 사람을 위한 축제는 실제 살인과 별개로 분명 이상해 보였다. 근데 그런 이상함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상한 곳에 이상한 사람이 모여드는 형국이었다.
친구 1人이 좋아할 만한 소설 스타일이라 친구에게 선물로 주기로 하였다.
책 제목은 나름 흥미로웠다. 나도 한 때 홍대를 다니지 않지만 홍대에서 친구를 만나 노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내가 홍대 앞에서 주로 놀았던 나잇대는 고등학생 무렵이었고, 그 때 친했던 친구는 모두 홍대 놀이터에서 만난 중고등학생무리였다. 우리는 (당연하게도) 홍대를 다니지 않았지만 홍대에서 노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홍대일대는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며, 많은 사람이 약속을 잡는 공간 역시 홍대입구 9번출구이다.
'홍대 앞은 왜 홍대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할까'의 최초의 목차는 역시 홍대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홍대에서 끝나지 않고 다양한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디자인을 나누는 책이다.
홍대의 경우 '인식' 자체가 젊은 사람이 많고 트렌디한 장소로 디자인 되었기에 다양한 문화공간과 카페, 맛집이 몰려있는 공간이 되었고, 더 많은 사람이 '놀기 위해' 가는 장소가 되었다.
책에서 제안한 다른 장소와 경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가 자주 가는 중고서점 알라딘의 경우 호주의 워킹홀리데이와 묶어 중고의 경제학을 제안한다.
호주의 경우 워킹홀리데이 유입 인구가 매년 급증하였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이 그 곳에서 돈을 벌어 세계여행을 하거나 자신의 나라에 돈을 보내려는 사람이다. 즉, 호주에서 번 돈을 호주에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고 호주의 경제적 자원이 다른 나라로 유입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호주는 경제적 손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왜 워킹홀리제도를 그대로 두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온 사람이 벌어 '호주 내에서 살기위해 쓰는 돈'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돈'보다 경제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두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여러 제도적은 보완을 했겠지만.
알라딘의 오프라인 중고서점 역시 마찬가지이다. 알라딘은 온라인에서 책 판매를 하다가 오프라인 중고서점을 종로에 맨 처음 오픈하였다. 처음에는 2~3개의 지점을 열고 말겠지 했던 중고서점은 어느 새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이제 미국까지 진출한 상황이다. 동대문에 헌책방거리가 있었지만 알라딘은 중고서점을 공유경제로 리디자인하면서 더 깔끔하고 검색하기 편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경제 리디자인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일본식 년도 표기가 너무 불편했다. 일본은 아직도 일왕이 바뀔 때마다 연도를 바꿔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에 일왕이 바뀌었기에 2018년은 헤이세이 30년이지만, 2019년은 레이와 1년, 2020년은 레이와 2년이다. 사건을 추리해가는 화자가 일본 사람이다보니 '1932년 7월'이 아닌 '쇼와 7년'이라고 쓰여있는 표기법이 낯설었다. - 일본에서 보통 연호는 일왕의 이름과 별개로 중국 고전에서 차용되어 지었는데 '레이와'는 일본 만요슈에서 따왔다고 한다.화자는 크게 2명이다. 동양계 미국인 조슈아 칼린과 일본 기자 오자키 호츠미. 초반에 조슈아 칼린이 동아시아 3국 중 어느 나라 사람인지 크게 고민했었다. 초반에 조슈아는 미국 사람은 물론 일본 사람이나 중국 사람하고도 대화를 나누었고, 대화를 쓸 때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중에 어떤 것일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상하이에서는 4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 '살아남기'에는 제일 적합했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무언가를 속단할 수는 없었다. 조슈아 칼린은 살아남아 복수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아마 4개국어를 모두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예상한다.소설을 읽으면서 식민국가에서 피지배계층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피비린대가 물씬 나게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가해자가 누구이건 '피해사실'은 분명히 존재했다. 가해자는 전쟁 아니면 미친 군국주의라는 시대적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 가해자가 선택한 결과 때문에 일어난 피해라는 것이다. 소설의 자세한 내용을 쓸 수는 없지만, 모든 사건은 가해자 탓이리라.
consious : 1. 의식하는, 자각하는 2. 의식이 있는, 지각·판단 기능이 정상인 3. 의식적인, 의도적인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의 감각이 얼마나 예민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당신이 하루종일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느끼는가?
우리는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의 의식하지 않고 행동한다.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는 것에는 자기 의지가 내포되어 있지만, 그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씹는 행위, 혀에서 음식을 맛보는 것, 그리고 식도로 음식을 삼키는 것부터 모든 행동을 하나하나 의식해서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기획을 하는 단계에서는 뇌에서 활동을 하겠지만 그 기획 내용을 컴퓨터로 활자화 시킬 때,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든 행동을 의식적으로 감각적으로 하지 않는다. 아마 하루종일 일상생활에서 하는 모든 행동을 의식을 가지고 모든 감각을 느끼면서 살아간다면 사람의 몸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이고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컨셔스는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모든 것을 의식하고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 보다는 모든 일을 관성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나 회사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 사용하는 모든 감각을 '관성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모든 날을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나 회사의 첫출근 같이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의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의식을 사용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 지배되어 살게된다. 프랑스 소설가 폴 부르제가 썼던 것처럼 'One must live the way one thinks or end up thinking the way one has lived.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모든 사람은 정확한 장기 목표를 세웠고 언제나 생각하는대로 사는 삶을 지속하였다. 나는 많은 사람이 삶에 매몰되지 않고 '생각하는대로 사는 삶'을 꿈꾸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