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꽃향기를 만난 순간'은 원래 퀴어 미디어 전문 OTT GagaOOLala에서 2021년 공개된 대만 퀴어 드라마라고 한다. 원래는 6부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인데 이거를 합쳐 1시간 40분 정도 되는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용이랑 연출은 좋은데 중간중간 뭔가 끊어진 느낌이 든다 싶었는데 6부작 드라마를 영화로 만들다보니 그 연결성이 애매하게 되었었나보다.
영화의 장점은 아무래도 영상, 그리고 영상과 잘 어우러지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상 자체도 배우의 미묘한 감정선을 잘 따라가게끔 만들어졌고 그에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나와서 좋았다. 고등학교 시절 배구부로 만났던 두 여성에 대한 내용인데 영화에서는 배구하는 장면은 딱히 많이 나오지 않는다. 팅팅이 이밍에게 반하는 순간만 배구 경기 장면이고 그 외로는 거의 배구 연습 장면이다. 배구 연습 장면조차 두 사람의 감정을 엿보게 해주는 순간이라 두 시퀀스 정도만 넣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배구부인데 하라는 배구는 안 하고 하교길에 데이트하는 모습이 더 많이 보였던 2人.
영화 초반부터 팅팅은 이미 자신을 정체화하고 직진으로 이밍에게 들이대는데, 이밍은 팅팅의 직진 사랑을 다 받아주면서 자신을 헤테로섹슈얼로서만 정체화하였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드라마를 안 봐서 모르겠지만 이밍은 자신이 팅팅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헤테로만이 정상이라는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날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고,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가족관계에서 오는 것 아닌가 싶다. 영화 내에 나오는 대화로 짐작해보건데 이밍은 배구를 좋아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모습을 가족, 특히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고 아버지의 말에 거의 무조건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다 자유스럽게 살아와서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팅팅과 달리 이밍은 자신을 숨기는데 더 익숙한 사람이었나보다. 그러다보니 팅팅을 향한 감정을 무조건적으로 '우정'으로 강제 개념화 시킨 것이 아닌가싶다. 대학생 시절 이밍이 팅팅에게 말한 '동성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정일 뿐 사랑이 아니다.'라는 대사를 이밍의 남평이 이밍에게 했을 때, 이밍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 무언가 달라질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달라지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 팅팅과 이밍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그저 달라지려고 애쓰려다 제자리로 돌아온 것 아닐까?
대만에서 동성결혼 법제화가 2019년이 아닌 2009년이나 1999년에 통과되었다면 이밍과 팅팅 모두 상처를 덜 받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